인터뷰…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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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한국자유총연맹 경기도지부 신임 회장' 최창환 장수돌침대 회장 지면기사
경기도가 '후끈후끈'해진다. '별이 다섯 개'로 케이블방송 CF계를 평정한 최창환(69) 장수돌침대 회장이 지난해 말부터 한국자유총연맹 경기도지부 신임 회장을 맡았다.지금까지 맡은 사회단체장과 기업 대표 이력만 30개가 넘는다. 국리민복(國利民福·국민행복과 국가발전)과 자유수호를 기치로 세운 자유총연맹과 최 회장의 철학이 맞아 떨어졌다.최 회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감사하게 여기고 세계 대국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었다"며 "자유수호와 평등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는 자유총연맹의 경기도지부 회장을 맡아 국가 발전이 곧 국민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 영광"이라고 말했다.최 회장과 자유총연맹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다. 국제라이온스협회 서울 송파지회장을 하던 2014년 당시 자유총연맹이 통일안보 자문위원직으로 위촉해 활동했다. 이 인연을 바탕으로 장수돌침대 사업 본거지(경기도 광주시 오포읍)를 관할하는 도지부의 회장을 맡게 됐다.인터뷰를 앞두고 최 회장은 '디테일이 힘'이라는 21세기 신흥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자유회관 2층 도지부 회장실에서 사진 촬영을 앞두고 힘없이 줄지어 늘어진 태극기와 자유총연맹 깃발을 사무용 집게로 집어 판판하게 펴는 작업을 지시하고 본을 보였다.최 회장은 "해병대 병장 만기 전역을 했다. 그때부터 각 잡는 습관이 몸에 배서 우리 장수돌침대 회사 깃발도 다 이렇게 각을 잡아놨다"며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해놓고 생활을 해야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TV 홈쇼핑 준비를 할 때는 프로그램 준비하는 PD도 내 디테일에 놀랐다며 쌍 엄지를 들더라"고 했다.# 불모의 땅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최 회장은 '우리 장수돌침대'의 TV 광고에 직접 출연해 손가락 5개를 쫙 펴면서 '별이 다섯 개'를 외쳤다. 이마에 빛나는 빨간 별 스티커가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중년 탤런트인 줄 아는 이들도 다수다. 사실 탤런트는 맞다. 직접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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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우리 집은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 회장 리 빅토르 지면기사
1860년 무렵부터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어두운 역사를 지나 독립의 기쁨을 누린 1945년 8월15일까지 한국을 떠나 러시아 등 구소련 지역에 이주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농업 이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을 이유로 한국을 떠나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1937년 당시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조국과 멀리 떨어진 지금의 중앙아시아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머나먼 땅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조국을 그리워하며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과 그 후손을 가리켜 고려인이라고 부른다.최근 고국인 한국으로 향하는 고려인이 늘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 정착해 모여 사는 마을도 전국 곳곳에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함박마을'이다. 현재 함박마을에 사는 고려인은 6천여 명 정도로 추산된다.이들에게 2021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다. 지난해 4월 전국 최초로 고려인 스스로 힘을 모아 만든 마을 주민회인 '인천 함박마을 고려인주민회'(이하 인천 고려인주민회)가 발족했다. 연말에는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의 가족이 고려인 등을 대상으로 한 교회 행사에 참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함박마을 고려인들은 감염 확산에 대한 우려로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인천 고려인주민회 리 빅토르(39) 회장을 최근 인천지역 고려인 지원 시민단체인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에서 만났다. 리 빅토르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 3세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연해주에서 태어나 1937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리 빅토르씨의 아버지는 그곳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다. 리 빅토르씨가 나고 자란 곳도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려인 마을이었다. 그는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알아간 것 같다"며 "할머니가 러시아말을 잘하지 못하고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셨는데, 어린 시절 대화하면서 한국말도 조금씩 하게 됐다"고 말했다.리 빅토르씨는 사범대학에 진학해 한국어문학과를 선택했다. 졸업 후에는 여행사와 골프장 등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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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손잡은 업체만 1700여 곳 경영지원플랫폼 기업… 임각균 이트너스 대표이사 지면기사
어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이트너스의 시작도 미미했다.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어도 생존이 달려있기에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실패할 지도 모르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에 기대 달려오길 24년, 지금은 매출 1천억원에 달하는 기업의 대표로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 판교 한복판에 섰다. 새해의 시작점, 판교에 있는 이트너스 본사에서 만난 임각균 대표이사는 "20년 이상을 노력해왔는데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라면서도, 새해에 시도할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판교에 대해 말할 때는 자못 진지하게 개선점을 언급하기도 했다.#월급쟁이, 1천700여 기업들의 '1번 파트너' 되기까지하나의 기업을 운영하는 데는 아주 많은 일들이 수반된다. 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월급을 줘야 하고 각종 후생복지도 이뤄져야 한다. 거래처 대금이 밀리거나 물건이 제때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막아야 한다. 실수 없이 해내야 하지만 신경 써야 할 일은 갈수록 늘어나고,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하다 보면 간혹 틈도 발생한다.이트너스는 이런 기업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경영지원플랫폼 기업이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필요한 복지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일을 이전에는 모두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해야 했다면, 이를 디지털화할 수 있게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이트너스의 주 업무다.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러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이를테면 해외에 주재하는 기업 직원들에게 김치 등 국내 물품을 배송해주는 일이다. 이트너스와 손잡은 기업만 1천700여 곳. 말 그대로 기업들을 위한 기업이다.지난해에는 각 산업별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에게 수여하는 산업포장을 받는가 하면, 중소벤처기업부·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분야에선 최고임을 인증받은 셈이 됐지만 24년 전 창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막막했다. IMF 바람을 피하지 못했던 월급쟁이가 가진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뿐이었다."원래 월급 주고 비용을 정산하는 업무는 지극히 아날로그였는데 1998년 그때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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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12년만에 유도 9단 '유성의 반열' 김도현 인하체육인회 회장 지면기사
김도현 인하체육인회 회장이 유도 입문 60년 만에 공인 9단에 올랐다. 대한유도회는 정기승단심사를 통해 김도현 회장의 9단 승단을 결정했으며, 지난 11월 말에 단증을 교부했다. 김 회장은 8단 승단 이후 12년 만에 9단에 오르며 '유성(柔聖)'의 반열에 섰다.이로써 인천광역시의 유도 9단은 김 회장까지 3명으로 늘었다. 전국에서 유도 9단은 각 광역시·도에 2~3명 정도 있다고 보면 된다. 유도에서 9단 승단이 이처럼 힘든 이유는 단순히 유도를 잘한다고 해서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유도에서 5~6단 정도면 실질적인 기술은 모두 익혔다고 말한다. 그 이상은 유도 발전의 공헌과 훌륭한 인격 등 기술 외적인 요인들이 조건으로 작용한다. 유도에서 최고의 단인 9단이 되기 위해선 유도부(팀) 창단을 비롯해 새 기술을 만들어내거나, 지역 체육 발전에 공헌하는 등의 활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평택에서 출생한 김 회장은 평택중 입학 후 1학년 때 접한 유도에 심취했다. 김 회장은 "남들은 보름 동안 익힐 낙법을 하루 만에 다 배웠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면서 "당시 너무 무리했는지 며칠 후 쇄골이 부러졌는데, 집에서 알면 운동을 못 하게 할까봐 아픈 것을 감추고 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동급생보다 덩치가 컸던 김 회장은 2~3세 많은 고교 선배들과 운동을 같이했고, 기량도 그만큼 빨리 향상됐다. 때문에, 동급생과 경기에선 진 적이 없었다.평택고에 진학한 김 회장은 당시 경기도 제1의 도시였던 인천시에서 열리는 대회에 종종 나섰다. 당시 경기도 학생 유도는 평택고와 인천 송도고가 양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교의 맞대결은 빈번했으며, 라이벌 의식도 상당했다.김 회장은 1968년 인하대(당시 인하공과대학) 응용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체육 특기자가 아닌 입학시험을 통해서였다. 대학에서도 학업과 유도 선수로 활동을 병행하며 1학년 때 출전한 전국체전에서 3위에 입상하는 등 성인 무대에서도 기량을 인정받았다. 군 복무 후 복학해선 일선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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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벼랑 끝 서민경제 살리기에 안간힘… 이민우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 지면기사
위기는 경제적 빈곤을 가속한다. 어떤 역사를 봐도 위기의 결말은 경제의 위기였다. 경제 위기는 사회체계 속 가장 연약한 곳을 찌른다. 빈곤한 이를 더 빈곤하게 하고, 한없이 비참하게 한다. '얼마 저러다 말겠지' 싶었던 코로나19가 우리 서민경제의 폐부를 후비는 것도 마찬가지다. 감기에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확인하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이런 때, 제 역할을 해내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 벼랑 끝에 선 서민경제를 안간힘을 다해 붙잡아 마지막 버팀목이 돼주어야 하는 사람들. 경기신용보증재단(이하 경기신보)의 이민우 이사장을 만났다.얼굴을 마주하자 이 이사장은 내년 3월이면 도래할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상환부터 걱정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로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을 위해 정부에서 대출만기를 총 3차례 유예했고 3번째 유예 조치가 종료되는 시점이 내년 3월이다.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재 코로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 이사장은 "연착륙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일성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코로나 장기화로 3개월 앞당겨 채권 소각절차 4586명 대상으로 진행보증심사기준 완화 공격적 금융 지원… 리스크 관리 조직 확대 개편도중기 ESG경영 도입 준비하는 게 맞아… 우리 경기신보부터 변화해야 서민경제라 일컫지만, 소상공인·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근간이다. 지금 이들은 어떤 상태일까. 이 이사장은 한마디로 "최악"이라고 단언했다. "지난해 초 우리 모두 코로나가 2년이나 길어질 거라곤 생각을 못했어요. 게다가 지금은 3년차를 바라보는 상황이 됐습니다. (소상공인·중소기업들은) 지난해엔 그동안 벌어둔 돈을 가지고 일단 급한 불을 껐습니다. 근데 계속 길어지니 올해는 빌려서 자금을 융통해서 버텼습니다. 소상공인 대부분 최저 생계비를 빌리기 위해 대출로 버텼는데, 이제 내년엔 어떻게 할 것이냐가 정말 문제입니다. 지난해와 올해 통틀어 경기신보에서도 10조 가까운 보증액이 경기도 내 소상공인·중소기업 자금으로 풀렸어요. 그만큼 가계부채가 늘어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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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엔지니어 출신 1세대 CEO' 이영재 (사)남동국가산업단지경영자협의회 회장 지면기사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영재(69) (사)남동국가산업단지경영자협의회 회장의 다짐이다. 이영재 회장은 40년 넘게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엔지니어 출신의 1세대 경영인이다. 창업은 서울에서 했는데 회사가 커지면서 더 넓은 부지를 찾아야 했고, 1990년대초 남동산단에 자리를 잡게 됐다.이영재 회장은 "남동산단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 자녀들 공부시키고, 집안 형편도 나아졌다. 남동산단에 입주해 그동안 많은 혜택을 받은 것 같다. 기업이 돈만 버는 게 목적은 아니다. 인천이 제2의 고향이 된 만큼 지역 사회와 남동산단 입주기업들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뿌리산업의 핵심. 청년 외면 아쉬워"제조업은 '가장 오래된 미래기술'로 불리는 뿌리산업의 핵심으로, 우리나라 선진국 대열 진입에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제품을 만들 때 기본이 되는 금형, 사출 등 기술력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어느 순간 선진국을 앞서게 됐다. 이영재 회장은 "뿌리기술이 가장 밀집돼 있는 곳이 남동산단"이라며 "남동산단의 발전이 곧 인천과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남동산단은 1980년 인천 남동구 남촌동·논현동·고잔동 일원 부지에 지정돼 1985년부터 1997년까지 단계적으로 조성됐다. 현재 총 957만4천여㎡ 부지에 7천여개 업체가 입주해 10만3천여명이 일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9년엔 27조6천여억원의 생산액과 48억1천만 달러(약 5조6천900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수도권을 대표하는 국가산단 중 한 곳으로 성장했다.남동산단에 대한 자부심이 큰 이영재 회장이지만 아쉬움은 있다. 그는 "남동산단 입주업체들은 약 95% 정도가 5~30인 이하로, 영세 업체들이 많다"며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돈도 많이 못 버는 그런 인식이 확산하면서 젊은 청년층들이 외면하는 지역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남동산단 입주기업 1곳당 청년 고용인원은 남동산단의 경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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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주방용품 CEO에서 나눔문화 선봉장으로…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지면기사
1984년 무교동에 등장한 구멍 뚫린 삼겹살 불판은 평범한 40대 주부를 수출 금자탑을 달성한 주방용품 회사 CEO로 만들었다. 또 인생의 절반가량을 살았을 무렵 찾아온 극적인 생애 전환은 그를 기부문화로 이끌었다. 경기도 기부문화의 선봉장, 이순선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불판 나비효과'의 주인공이다.매년 12월이면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의 도청오거리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사랑의 열매'로 널리 알려진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연말연시 기부의 목표 달성을 확인하기 위해 만든 조형물이다. 코로나19로 2년째 조촐한 온도탑 행사가 열린 지난 1일,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이순선 회장을 만났다.이 회장의 삶은 전반전과 후반전이 나뉜 축구경기처럼 확연히 구분된다. 아들 둘에 경찰 공무원 남편을 둔 평범한 가정 주부로서의 삶이 전반부라면 성공한 주방용품 회사 CEO로 해외 수출에 앞장서며 기부에 몰두하는 것이 후반부다.삶의 극적인 반전은 1984년 시작됐다. 큰아들이 고등학생, 작은아들이 중학생이었던 시기였다. 지금은 흔해진 '필수 아이템'인 구멍 뚫린 삼겹살 불판을 만들어 발로 뛰며 영업에 나선 것이다. 대상은 서울 중구 무교동 일대의 삼겹살 가게였다. 기름 빠지는 삼겹살 불판이 처음부터 호응을 받았던 건 아니다.식당에 가서 5개 세트로 구매하면 1개를 끼워 넣어주는 영업을 하는가 하면 무쇠 불판의 표면 코팅이 까지면 무료로 교환해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이 회장은 "당시에 무쇠 불판을 만드는 공장이 뚝섬에 있었어요. 삼겹살 가게는 아무래도 장사하는 곳이니까 불판을 살살 다루지 않거든요. 얼마든지 문지르고 씻고 쓰고 싶은 대로 쓰고 나중에 요청하면 공짜로 새 걸로 바꿔줬죠. 쇳물을 부어 주물로 불판을 만드니까 쓰던 불판을 가져다가 다시 녹여서 새것으로 만들면 그만이었거든요. 그렇게 가게와 공장을 오가면서 영업을 했더니 식당하시는 분들도 믿고 많이 사더라구요"라고 회상했다.1984년 사업을 시작해 1985년 사업자 등록을 하고 1994년 법인을 설립하기까지 과정이 순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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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현존 최고 애관극장 다룬 다큐 '보는 것을 사랑한다' 윤기형 감독 지면기사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으로 알려진 애관극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한 윤기형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작은 영화'라고 낮춰 소개한다. 하지만 인천과 우리나라 공연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따져본다면 결코 작은 영화라 말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최초의 애관극장이 팔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알려지게 된 것도, 이후 애관극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시민모임이 결성되고, 인천시가 매입을 검토하고 나선 상황에 이르게 된 것도 윤 감독이 만들려던 이 작은 영화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애관극장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지난 10월28일 전국 10여개 상영관에 걸린 러닝 타임 75분의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의 윤 감독을 최근 애관극장 앞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개봉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 그가 6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작품의 성적표가 궁금했다. 다른 상영관에서는 영화를 모두 내렸고 현재 애관극장 한 곳에서만 상영을 이어가고 있단다. 아직 1천명의 관객도 만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선 섭섭하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작은 영화잖아요. 너무 지역적인 소재이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보시기는 힘들겠다는 예상을 하긴 했지만 예상대로 극장에 오질 않으시네요. 그래도 인천에서는 좀 봐주시지 않겠냐고 기대를 하긴 했는데, 관객의 판단이니까요."그가 자신의 영화를 작은 영화라고 소개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본업은 CF 감독이다. 자동차, 가전제품, 의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CF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광고를 만들다 보니 마음 한구석에 답답한 마음이 남아있더군요. 광고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거거든요. 남의 이야기를, 남의 물건을, 그것도 아주 잘 해줘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제가 광고주를 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반대로 다큐멘터리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다른 다큐멘터리 감독님이 들으시면 기분 나쁘겠지만 그냥 시간 될 때 조금씩 찍었습니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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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빈자의 미학'을 말하다 지면기사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대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활동반경이 줄어들며 재택근무, 비대면 등 자신만의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공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요즘 여러 매체들을 보면 집, 인테리어 등을 주제로 한 아이템이 넘쳐난다.이는 '건축'을 아우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인문학적 개념까지 더한 '건축인문학'으로 관심을 확대시켰다.얼핏 최신 개념 같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승효상(70)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말해왔다. '빈자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건축철학을 30여 년간 구축해오고 있는 승효상 건축가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 겸 서재, 생활공간이기도 한 '이로재(履露齋)'에서 만났다. 건축철학 '빈자의 미학' 30여 년간 구축'장식은 죄악' 아돌프 로스에 영향'건축가가 건축 통해 세상 혁명' 깨달아가난한 사람의 미학이 아니라가난할 줄 아는 사람의 미학 내세워 먼저 근황을 물었다. "국가건축정책위원장직을 마감하면서 (공공 직책을) 완전히 끝낸다고 선언했다. 제 개인의 건축작업에 집중하겠다 했고 현재 건축설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그는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 서울시 총괄건축가,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등 열거하기도 벅찰 만큼 다양한 직책을 맡아왔고 그런 그가 더 이상 공적인 직책은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사실 그는 쉼 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 건축의 거목 김수근 선생 수하의 공간연구소에서 일했고, 중간에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이후 공간연구소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문을 열었다."198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빈)로 유학을 갔다. 비엔나에 가서 건축가 '아돌프 로스'(20세기 초 활동, '장식은 죄악'이라 규정하고 일체의 장식을 제거한 집을 지었다)를 알게 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감을 받아 모더니즘이 시작됐고 20세기 패러다임이 됐다. 아돌프 로스 이전과 이후 건축이 달라졌다.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세상을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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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첫발 뗀 '위드 코로나'… 동분서주하는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지면기사
매일 신규 확진자, 위중증환자 수를 알리는 뉴스와 일상회복의 희망을 말하는 위드 코로나 뉴스가 공존하는 시대. 참 어렵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럽게라도 희망을 전해야 하는 지금이다.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신중하면서 신속한 판단, 상반된 그것들 사이에서 긴장감은 더 팽팽해졌다. 단계적 일상회복을 통해 '위드 코로나'가 시작된 지 열흘이 되던 지난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지난달 29일 단계적 일상회복 이행계획 발표와 함께 국민이 기대하던 일상회복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기대와 함께 일상회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에 대한 안정적인 연착륙을 위해 중앙과 지방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합니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차장을 겸직하는 전 장관은 매일 전국 17개 시·도지사와 중앙부처 장관들과 위험상황을 공유한다.위드 코로나로 많은 국민들이 코로나19 이전 일상을 조심스럽게 되찾고 있는 것은 희망적이지만 자칫 감염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병상확보, 재택치료, 예방접종 등 코로나 대응 정책은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여기에 더해 완전한 일상회복을 위해선 지역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수시로 영상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요정책의 변경 사안 등에 대해서 전국 17개 시·도지사와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단계적 일상회복 준비과정에서도 시·도지사 협의회장과 시·군·구청장 협의회장이 자치안전분과위원으로 '코로나19 일상회복지원위원회'에 참여해 다양한 사안을 협의합니다. 또 일상회복을 안정적으로 추진하려면 중앙과 지방 정부의 협력이 추진동력이 돼야 하는데, '시·도 및 시·군·구 일상회복 추진단'을 구성해 전국적 협력 추진체계도 갖추었습니다. 추진단을 중심으로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자체 '일상회복과제'를 추진하고 있고 이 중 우수한 과제에 대해선 이달 중으로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타 지자체에 확산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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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40주년 맞은 성정문화재단… 수많은 결실 함께한 김정자 이사장 지면기사
"창밖의 커튼을 젖히고 따뜻하고 환한 곳을 갈 수 있는 우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죠."40년 전 성정문화재단은 그렇게 탄생했다. 해외 문호 개방은 물론 문화가 척박했던 시기, 세상을 밝게 하고 행복함을 나눌 수 있는 산소 같은 것이 필요했다.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마음껏 꿈꿀 수 있는 터전을 만들 수 있는 씨앗, 그것은 문화단체였다."단지 꿈을 꾼 것이다. 꿈이 없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 김정자 성정문화재단 이사장은 재단을 통해 문화예술의 토양을 다지며 음악으로 문화의 꽃을 피워냈다. 40년이 된 지금에서야 "이제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온 것 같다"고 한 김 이사장은 "이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에서도 대한민국의 문화와 음악을 위해 기여하는 디딤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수많은 문화예술의 결실로 이어진 역사성정문화재단은 1981년 난파소년소녀합창단을 창단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다른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었고, 1년 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속해있는 LA 국립 목회자 협회의 초청을 받아 49명의 어린이를 이끌고 해외 초청연주를 다녀왔다.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었던 도전이었지만, 김 이사장은 용기를 냈다. 아이들의 꿈을 함께 하며, 수많은 해외 공연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단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척박한 시기 어린이합창단 첫단추 10년후엔 '성정음악콩쿠르'다음 세대에서도 대한민국 문화와 음악 기여하는 디딤돌 역할입상한 학생들 실력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두각 '보상'과도 같아캐슬린 김·김우경·김기훈 등 한자리 모여 기념음악회 '뜻깊은 무대'그중에서도 국외 교포를 위한 위문공연이 많았는데 '고향의 봄'을 부르면 어르신들이 눈물을 훔쳤고, 아이들에게 용돈도 쥐어 주었다. 김 이사장은 "실수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꼈고, 서로를 위로하며 감사도 했다"며 "합창단이 점차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각국에서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합창단으로 시작한 성정문화재단은 10년 후 '성정음악콩쿠르'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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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2년째 송도국제마라톤 홍보대사… '러닝 전도사' 안정은 런더풀 대표 지면기사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하면서 사적 모임, 체육시설 이용 등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울감과 무기력증을 느끼는 '코로나 블루'에 시달리는 이들까지 생겨나고 있다.코로나19 여파로 건강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특히 시간과 장소, 인원에 제약을 받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운동으로 달리기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안정은(29) 런더풀 대표는 달리기의 긍정적인 영향을 전파하고, 달리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힘쓰는 일명 '러닝 전도사'다.안 대표는 "평소 달리기와 관련한 행사를 기획하고 글을 쓰거나 강연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는데 이를 통합해 부르는 직업이 없어 러닝 전도사라는 명칭을 직접 만들게 됐다"며 "러닝 전도사는 러닝을 시작하기 주저하는 사람들과 함께 달려주는 페이스메이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가 처음 달리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16년이었다. 당시 안 대표는 취업이 안 되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을 느끼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삶에 매일같이 울면서 시간을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던 안 대표는 길을 가던 이웃 주민에게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 도망가듯 달음박질했다고 한다. 5분 정도 달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고,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날 이후 안 대표는 달리기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려고 하니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함께 뛰는 '러닝 크루'를 찾았다"며 "일주일에 한 번씩 수원에서 서울 남산을 찾아가 크루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달렸는데 마음에 위로가 되고, 삶의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달리기는 안 대표의 삶을 완전히 바꿔놨다. 특히 달리기를 시작한 지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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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경기지역 기업인들과 진솔한 대화'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지면기사
지난 18일 동구바이오제약 향남공장. 각 분야를 대표하는 경기지역 기업인들이 한데 모였다. 저마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한편 더 많은 지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왜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가운데 앉은 그는 차분히 모든 얘기를 들었다. "검토해보겠다"고 형식적으로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선 "솔직히 쉽지 않다", "그건 죄송하지만 어렵다"고 선을 긋는가 하면, 오히려 "저희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있으니 기업인 여러분들도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동시에 "혁신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나온다. 변화에 대응하는 순발력이 중소기업에 훨씬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혁신의 힘을 역설했다.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에 진정성이 묻어나왔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얘기다.기업인들과의 간담회 이후 잠시 만난 권 장관은 이날 동구바이오제약을 찾은 데 대해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혁신형 기업들이 성장했다. 제약 기업들이 특히 그랬다. 이곳 동구바이오제약도 혁신형 제약기업인데, 그런 부분을 국민들께 알리고 직접 살펴보고 싶어서 왔다"고 설명하면서 "혁신의 힘을 괜히 얘기한 게 아니다. 지금은 혁신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과거처럼 조금만 밀리는 게 아니라 일순간 완전히 뒤처지는 상황에 놓인다. 중소기업에서 나올 수 있는 혁신의 힘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북돋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인 것 같다"고 말했다.기업 직원부터 중기부 장관까지 "책임감 매우 큰 자리"장관으로 일한지 8개월 남짓. 지금은 국내 중소·벤처기업과 자영업자·소상공인 관련 정책과 사업을 총괄하고 있지만 한때는 한 기업의 직원이었고 스스로 작은 사업을 해보기도 했다. 정치에 입문해 당 사무처에서,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고 경기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인 권칠승'의 행보를 시작했다. 기업 직원·사업·의회 등 다양한 경험했지만 세세히 들여다봐야하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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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우즈베키스탄 연구' 최초 수식어 따라다니는 성동기 인하대 교수 지면기사
중앙아시아 지역의 내륙국 우즈베키스탄을 연구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전문가로 꼽히는 성동기 인하대학교 교수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2000년 한국인 최초로 우즈베키스탄 현지 대학에서 역사학 학위를 받았고, 2007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즈베크어-한국어' 사전을 펴냈다.2010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아미르 티무르'에 관한 책을 국내 최초로 한국어로 썼고, 2014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학을 해외에 수출한 사례로 꼽히는 '인하대 타슈켄트 캠퍼스(Inha University in Tashkent, IUT)'에서 대외협력실장 겸 'IUT 예비대학(IUT Pre-University)' 교장으로 일했다.그는 올해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한국인 저자가 우즈베키스탄의 역사를 한국어로 정리한 책을 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현지 대학서 학위 받고 사전·영웅·역사 정리한 책 출간북방 외교에 중요한 조언도 지난 18일 인하대 60주년 기념관 12층에 있는 연구실에서 성동기 교수를 만났다. 그는 언뜻 보아도 180㎝에 가까운 키에 100㎏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성 교수는 "우즈베키스탄 현지에서는 우즈베크인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웃었다.책장은 낯선 문자로 쓰인 제목의 책들로 빼곡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하며 수집한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로 서술한 역사 관련 책들이라고 그는 설명했다.그에게 왜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졌는지 물었다. 성 교수는 "돌이켜보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경쟁자가 없는 소위 '블루오션'에 관심을 가진 개인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애초에 그의 관심사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었다. 러시아어를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러시아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이렇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지원 학과를 고민하던 시기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자본주의 진영에서 참가를 거부한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이에 맞서 공산권 국가가 대거 불참한 1984년 LA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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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운영단 초대 단장'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지면기사
코로나19 국내 감염이 처음 보고됐던 지난해 1월부터 경기도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 그가 경기도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책임지게 된 이야기는 '운명'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다."경기도 코로나19 대책을 세우는 자리에 서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12년간 일한 병원을 뒤로 하고 경기도의료원으로 옮겨왔고 때마침 코로나19가 발생했습니다. 도에서 감염 대책을 세워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과거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경기도를 도와 일했던 인연이 있던 게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감염병 위기 앞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식과 노하우를 최대한 발휘해 경기도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수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 전쟁의 최전선, '경기도 코로나19 홈케어 운영단'을 이끄는 임 원장을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신종플루·메르스·코로나19까지…경기도 방역 대책을 그리다임 원장은 2008년부터 12년 동안 아주대학교 감염학과 교수로 일했다. 동시에 10여년간 경기도 감염병 전문가로 주요 감염병 정책을 수립하는데 그의 지식을 아낌없이 쏟았고, 현장의 경험과 판단도 담았다.2009년 신종플루 방역 대책, 2015년 5월 국내 발생이 확인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그는 감염병 대책을 세우는 데 함께 했다."코로나19 국내 발생이 보고됐을 때, 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도 방역 대책을 세워야 했고 저를 포함한 감염학 전문가들이 경기도와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며 방역 대책을 짰어요." 12년간 아주대 교수로… 신종플루·메르스 등 감염병과 전쟁 경험경기도 코로나 긴급대응단 1년4개월 활동 지자체간 비상연락 구축일일 확진자 급증하자 한정된 병실수 한계 뛰어넘는 관리체계 필요'확진자 집 입원시설처럼 사용' 표방… 재택·자가 치료 중요성 강조신종플루와 메르스, 앞서 겪은 감염병 전쟁 속에 경기도와 함께 방역 대책을 수립했던 경험은 결국 그를 코로나19 긴급대응단 합류로 이끌었다.하지만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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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프로야구 SSG 랜더스 '첫 1차 지명자' 인천고 윤태현 지면기사
1982년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인천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단에는 이른바 '잠수함'이라고 불리는 훌륭한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원조 잠수함인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중반 SK 와이번스 투수진의 허리를 책임졌던 조웅천, '여왕벌'로 불리며 'SK 왕조' 시절에 벌떼 불펜의 마무리를 책임진 정대현, 2010년대 KBO리그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선발투수 박종훈까지 인천 프로야구단의 잠수함 계보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내년 시즌 SSG 랜더스에는 새로운 잠수함이 출격을 앞두고 있다.2022 KBO리그 드래프트에서 SSG 랜더스의 1차 지명자로 선택된 윤태현(18)이 그 주인공이다.내년부터 KBO리그는 지역 연고지 유망주를 우선 선발하는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할 예정이어서 윤태현은 신생팀 SSG 랜더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고 1차 지명자로 이름을 남겼다.윤태현은 최근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처음 야구를 하게 된 팀이자 평소 열렬히 응원하는 구단에 입단하게 돼 매우 영광"이라며 "프로선수로서 당당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윤태현에게 SSG 랜더스는 매우 특별한 팀이다. 윤태현은 SSG 랜더스의 전신인 SK 와이번스 유소년클럽에서 쌍둥이 동생인 윤태호와 함께 처음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부모님의 권유로 동생과 함께 SK 와이번스 유소년클럽에 다녔다"며 "처음에는 그냥 동생과 공을 던지고 받는 것이 재밌었는데, 야구를 더 오래 제대로 하고 싶어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상인천초등학교 야구부에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상인천초등학교와 동인천중학교를 거쳐 인천고등학교에 진학한 윤태현은 고교 2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직구 최고구속이 120㎞에 머무는 평범한 투수였다"며 "나처럼 사이드암으로 던지는 당시 3학년 임형원(현 NC 다이노스) 선배를 따라다니며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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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세계 첫 '재두루미 이동루트' 밝혀낸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지면기사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한강하구는 오랜 시간 금단의 땅이었다.특별하고 온전한 자연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이자 철새들의 터전인 이곳을 윤순영(67)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은 올해로 꼭 30년째 지키고 있다. 닿을 듯 가까이 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한강의 순수한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억에 담아내며 응시해왔다.윤 이사장은 말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면 자연은 무의미하게 사라집니다. 자연은 우리의 벗입니다." 참 즐거운 시절이었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60년대 초반, 꼬마 윤순영에게 한강은 부족할 것 없는 종합놀이공원이었다. 봄날 들녘의 삘기(띠의 새로 돋아나는 순)에서 솜처럼 생긴 알맹이를 뽑아 껌처럼 씹으면 달콤한 즙이 입안에 감돌았다. 여름에는 한강으로, 계양천(한강지류)으로 발가벗고 뛰어들었다. 물이 얕아지면 한강에서는 재첩을 잡고 계양천에서는 물고기를 손으로 더듬어 잡았다.짝짓기를 돕겠다며 암컷 왕잠자리 허리에 실을 매어 공중에 돌리는 짓궂은 놀이도 하고, 동생들에게 뜀뛰기 시합을 시켜 등수대로 잠자리를 나눠주기도 했다. 한강 제방에 묶인 소의 똥을 헤집으면 소똥구리가 있었다. 고무신에 강물을 퍼와서는 소똥구리가 파놓은 구멍에 물을 부어 잡았다. 본격적인 가을이 오면 메뚜기사냥이 시작됐다. 소주병에 차곡차곡 쌓거나, 풀 줄기에 훈장처럼 꿰어 가져가 참기름에 볶았다. 논두렁에 심은 콩은 훌륭한 영양공급원이었다. 논에서 생불에 구워 먹으면 금세 입 주변이 시커멓게 변했다.민물과 썰물이 넘나드는 계양천은 겨울마다 물이 교차하는 힘 때문에 두꺼운 얼음이 자연적으로 깨져 나갔다. 조각난 얼음 뗏목을 개구쟁이는 물 위에서 둥둥 타고 다녔다. 한밤중 말라비틀어진 소똥과 나뭇가지를 연료 삼아 불붙인 깡통도 숱하게 돌렸다. 이 모든 게 윤 이사장의 고향인 한강하구와 재두루미의 안식처인 김포 홍도평에서 있었던 일이다.윤 이사장은 "70년대 초까지 한강에는 군 경계철책이 없어 언제든 강가에 드나들 수 있었고 또래들과 함께 벌흙을 온몸에 바르고 놀았는데 비누의 매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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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중소기업중앙회 경기북부 지역회장 역할 집중하는 한영돈 한울생약 회장 지면기사
물티슈 하나로 중견기업을 일군 한울생약 한영돈(70) 회장은 중소기업인들 사이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흔히 말하는 '맨주먹 신화'를 이룬 기업가다.그런 그가 요즘엔 자신의 사업보다 지역 중소기업을 위한 일에 더 힘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한 회장은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 이사로 선임된 뒤 곧이어 올해 5월 경기북부 지역회장으로 취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게 됐다. 더구나 중첩규제와 인프라 부족 등 사업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은 지역이라 부담도 따르는 자리다.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말을 듣는 한 회장의 역량에 기대를 거는 기업인이 많다. 무엇보다 한 회장 역시 눈물겨운 시절을 보냈던 터라 중소기업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게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한 회장은 청년창업이 흔한 요즘 시각으로 보면 불혹의 다소 늦은 나이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물티슈라는 창업 아이템도 그가 해온 일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가 성공할 거라고 믿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회장의 첫 직업은 '호텔리어'다. 청소부로 시작해 지배인의 자리까지 오른 성공담은 업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다.한 회장은 "제조업이나 유통업을 해보고 싶은 맘은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뭘 해야겠다는 목표는 없었다"며 "물티슈로 사업을 시작한 건 아주 우연이었다"고 말했다.호텔 일에 회의감이 들던 어느 날, 한약재 판매상을 하는 한 친척이 "한약 성분이 들어간 물티슈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라고 무심코 던진 말에 그는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성공예감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그 무렵 사업을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쳐 앞뒤 재지 않고 사업계획에 몰입했다"며 "어느 정도 계획이 서자 평생 모은 1억5천만원을 들고 고양시에 회사를 차렸다"고 당시를 떠올렸다.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기대와 달리 1년 반 만에 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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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코로나 위기속 수장 맡은 한창희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장 지면기사
"근 10여년간 대한민국에선 감염병이 주기적으로 창궐했습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 최근의 코로나19까지…. 앞으로도 감염병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과 변이를 거듭하면서 발생할 것입니다.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는 상시적인 체계 구축이 필요합니다."한창희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장은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한 병원장은 "의정부성모병원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40일간의 전면 폐쇄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방역 체계에 대한 백신을 단단히 맞았다"며 "3중, 4중 방역 안전망을 갖추고 이제 비로소 정상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 감염관리에 대한 부담과 전국적인 확진 추이는 여전하다"고 말했다.이어 "코로나19도 최근 델타, 람다, 뮤 등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정부 기조는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위중증자 위주의 감염병 치료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감염내과를 중심으로 상설 체계를 갖춰놓고 국가적 감염병 위기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한 병원장은 최근 제24대 의정부성모병원의 수장으로 취임했다. 28년간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일하고 직전엔 진료부원장을 지내 누구보다 병원 안팎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어려운 시기, 위기를 돌파해 제2의 도약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한 병원장은 "지난 64년의 시간 속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의정부성모병원은 새로운 역사,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는 기로에 있다"면서 "전 교직원과 하나 되어 경기북부의 핵심 의료기관으로서 명성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그가 취임하면서 제시한 의정부성모병원의 핵심가치 키워드는 '환자 제일주의'와 '배려와 존중', '구성원 간의 협력'이다. 환자 제일주의는 가톨릭 이념을 구현하는 의료기관으로서 의정부성모병원의 이념적 근간을 이루는 개념이다. 환자의 아픔을 먼저 공감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환자를 가장 먼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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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감] '지구촌 돕는 NGO' 천주평화연합 2지구 황보국 회장 지면기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려운 이웃은 더 힘듭니다.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 침체는 물론 지구촌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이런 시기에 국제적 비영리 민간단체(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인 천주평화연합(UPF·Universal Peace Federation)은 어려운 지구촌 사람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황보국 천주평화연합 2지구(경기·강원) 회장을 만나봤다.황보 회장은 천주평화연합에 대해 묻자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 NGO 단체'라고 했다. 봉사활동과 세계 평화를 위해 뛰다 보니 지난 2018년 7월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 협의 지위'(General 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기도 했다.황보 회장은 "봉사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특히 지난해 불어닥친 코로나19 확산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인들을 불안에 떨게 했고 지금 코로나19는 멈추지 않고 있다"면서 "이런 시기에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은 더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황보 회장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지친 의료진과 힘든 이웃을 돌보는 데 집중했다. 그는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의 의료원과 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인삼 제품을 기증했다. 인삼이 면역에 좋다고 해서 지원했다"면서 "또 대한적십자사에 성금 기탁, 사회 취약계층에 반찬 배달, 다문화가정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가정에 음식배달, 수제마스크 제작 배포 등 코로나19의 어려움을 함께 나눴다"고 피력했다.천주평화연합은 어떻게 창설됐을까. 이 질문에 황보 회장은 "지구촌 분쟁을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 세계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2005년 9월12일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출발했다"며 "전 세계 19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국내에는 16개 광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