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with+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with+] 목사님의 빵과 스님의 떡 지면기사
빵과 떡으로 기억되는 목사님과 스님이 있다. 목사님은 빵으로, 스님은 떡으로 사람을 기쁘고도 즐겁게 한다. 갓 구워낸 빵과 막 쪄낸 떡처럼 달콤하고 부드러운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다. 바로 이수기 목사님과 형석 스님이다. 이 목사님과 스님은 부처님 오신 날에 빵과 케이크를, 성탄절에 떡과 팥죽을 수년간 보내고 있지만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다. 몇 번 만남을 주선하려고 했지만 두 분 모두 닮은 꼴처럼 웃는 얼굴로 사양했다.이 두 분을 만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한 번도 전도나 포교를 강요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는 복무하고 계시는 교회나 사찰에서도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을 정도다. 목사님과 스님이 신심이 약해서가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존중이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다. 나 또한 둘 중 하나의 종교를 가졌지만, 누구에게도 개인적인 신앙을 묻거나 말하지 않았다. 신앙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지는 것에 있다는 나름의 신념 때문이다.물론 언어를 매개로 창작과 교육 그리고 현장 비평을 하는 나로서도 '말'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말·해·진·다는 것은, 자신의 선행과 악행이 타인의 입을 통해 가시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신앙인의 말은 특정한 종교를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실천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실천이야말로 교리 외 교리를 가로지르는 데 있다.이수기 목사님·형석 스님 선한 일빵·떡으로 종교 가리지 않는 도움 이 실천은 그동안 종교가 수천 년 동안 존립할 수 있었던 이유다. 종교는 믿음을 원인으로 하는 신앙이지만 이 신앙의 실천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결과다. 그러므로 선듯 자신의 종교를 내보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것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종교인을 인도하는 성직자들은 자신이 하는 말의 파급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반면 그 뜻에 충실하기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 뜻은 신을 대리하는 자로서 사람들의 긍휼함을 대신하는 것이다.실제로 이수기 목사님과 형석 스님은 종파와 지역, 국가를
-
[with+] 행불행의 반전 지면기사
딱한 처지에 놓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프랑스 작가 모파상이 쓴 소설 '승마'의 주인공 '엑토르'다. 그는 가난한 귀족으로서 해군성의 사무원으로 일한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두었고 가난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어느 봄에 엑토르는 과장에게서 업무 할당을 더 많이 받게 되어 300프랑의 특근 수당을 탔다. 그는 이 돈으로 말을 빌려 가족 소풍을 가기로 했다. 예정한 날이 되어 엑토르는 말을 타고 아내와 아이들과 하녀는 마차를 타고 그들은 신나게 달렸다. 그들은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베지네 숲 풀밭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들이 돌아올 때 넓은 거리는 마차들로 붐볐다. 그런데 엑토르의 말이 개선문을 지나자 갑자기 제 집을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리 속도를 늦추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앞치마를 두른 노파가 차도를 건너고 있었다. 기관차처럼 내닫는 말 가슴에 노파가 부딪혀 치마가 허공에 펼쳐지며 굴러 떨어졌다.이 사고로 엑토르는 경찰서에 가게 되었다. 노파는 65세인 가정부로 밝혀졌다. 엑토르는 그녀의 치료비를 부담하겠다고 서약하고 치료소로 달려갔다. 의사는 노파가 팔다리는 부러진 데가 없으나 내상이 염려된다고 했다. 그는 노파를 요양원에 보냈다. 한 달이 지났다. 노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기만 해서 살이 쪘다. 다른 환자들과 즐겁게 이야기도 했다. 엑토르가 매일 요양원에 찾아갈 때마다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노파의 병원비를 대야 했으므로 하녀의 급료마저 큰 부담이 돼 하녀를 집에서 내보냈다. 노파의 병세가 여전히 호전되지 않자 이에 낙담한 엑토르의 아내는 결국 "부인을 이리로 데려오는 게 낫겠어요. 그러면 비용이 덜 들겠지요"라고 중얼거렸다.좋은일 인해 나쁜일 생기는 때 많고행운이 되레 화 불러오는 경우 생겨살며 겪은일 돌아보면 다를때 많아 이 소설의 결말은 주목할 만하다. 특근 수당을 탄 일로 말미암아 엑토르와 그의 아내는 노파가 회복될 때까지 그녀의 생계와 병간호를 책임지게 됐고 더 가난해졌다. 반면 노파는 몸을 다친 일로 말미암아 당장은 가정부로 일하지 않고도
-
[with+] 건대글방과 보르헤스 지면기사
오랜만에 보르헤스의 책을 꺼내 들다 책 사이에서 '건대글방'이라는 북마크가 나왔다. '뜻을 이루시기 바랍니다'라는 기원의 문장이 궁서체로 박혀 있고 '대학교재/인문 사회과학/각종고시수험서/공무원수험서/기술서적/컴퓨터 서적/교양도서'라고 다루는 도서종류를 적어놓았다. 북마크를 보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의 회로에 불이 들어왔다. 유동인구가 많은 건대역 2번 출구 앞에 자리 잡은 '건대글방'은 십수 년 전 만남의 장소였다. 서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서점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북적거린다고 할까. 누군가를 기다리기 가장 좋은 장소는 서점일 것이다. 카페처럼 돈을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책 표지와 제목을 훑어보거나 첫 문장을 읽어보는 것은 갈피에 낀 시간을 보내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건대역 2번 출구 자리… 만남의 장소서점은 바깥과는 다른 시간이 흘러차 돌진으로 진열된 책들 '교통사고'자리 옮겼으나 지금은 카페가 입점문 닫아도 책·사람들 소멸하지 않아건대역 거리는 도시의 많은 유흥지와 마찬가지로 술집과 헤어샵과 옷가게와 카페와 길거리 좌판으로 덩어리진 거대한 생물체 같은 느낌을 준다. '젊은 뜨내기' 손님을 상대로 하는 골목은 요란한 네온 간판으로 뒤덮여 있고 큰 소리로 음악이 흘러나와서 정신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소돔과 고모라'가 떠올랐으며 값에 비해 놀랍도록 맛이 없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을 터인데…'라는 탄식을 괜히 흘리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건대 앞 상권은 기죽는 날이 없었으며 부지런히 새로운 가게가 생기고 망하고 재정비하며 모습을 바꿔나갔다. 그 가운데 서점은 그야말로 소금과 같은 존재로, 바깥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흘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서점을 드나든 횟수에 비해 구입한 책은 너무도 적다. 더구나 건대글방에서 책을 한꺼번에 많이 산 것은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였으니 이 서점을 떠올리면 빚진 마음이 든다. 서점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놀랍게도 이 문
-
[with+] 양말이라는 일상 지면기사
생일 선물로 세 켤레의 양말을 받았다. 양말을 정식으로 선물 받은 건 처음이다. 처음에는 시큰둥했는데 이 선물, 묘하게 재미가 쏠쏠하다. 양말 전문 브랜드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브랜드명이 아이헤이트먼데이(나는 월요일이 싫어요)인 것도 마음에 든다. 월요일이 싫은 사람들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는데, 센스있는 작명이라 그런지 효과 만점이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양말 편집숍 홈페이지에도 처음으로 들어가 봤다. 매일 신기 좋은 양말부터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의 시즌 컬렉션 양말까지 핫한 제품들을 선별해 소개한다는데 양말만으로 이렇게 다채로운 구성이 가능하다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다. 오프라인 양말 편집숍 매니저 '재인'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양말을 고르고 사서 신는 과정, 그 자체가 좋다"는 이 매니저에 따르면 양말을 골라 신는 것이 "일상에 좋아하는 것을 하나 더 더하는 삶. 집을 나설 때 공들이는 부분이 하나 더 생기는 삶. 그것이 하루를 명랑하게 만든다"고 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양말 선물 덕분에 예쁘고 질 좋은 양말을 골라 신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됐다. 날씨와 그날의 일정, 내 기분까지를 생각하면서 오늘은 뭘 신어볼까 고민하는 짧은 순간의 즐거움이란! 그런 고민할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고민을 하라고 잔소리할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인생은 계산이 정확한 수학이 아니니까, 일상에서 매일 하나쯤 별 거 아닌 고민을 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양말에 꽂힌 이유 이태원 참사 때문혼란스러울수록 삶 지키는 것 중요재난속 자유로운 사람 누가 있을까 내친 김에 작가가 아주 좋아하는 한 가지 대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아무튼 시리즈' 중의 한 책인 '아무튼 양말'까지 찾아 읽었다. 지네도 아닌데 양말을 88켤레나 갖고 있는 저자의 양말 이야기다. 양말로 뭐 할 이야기가 있다고 책까지 쓰나 싶었는데, 푹 빠져 읽다가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칠 뻔했다. 사실 양말 선물을 받은 지
-
[with+] 율곡과 유지의 플라토닉 러브 지면기사
유지사(柳枝詞)는 율곡의 애절한 사랑노래다. 관기 유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기약 없어 율곡은 애달프다. 그 애달픔이 많은 사람의 애간장을 녹인다.율곡의 나이 39세에 황해도 관찰사로 부임했다. 관찰사라면 최고의 지방 장관이다. 재임 기간은 5~6개월 정도였다. 첫날 관아에서 저녁을 맞았다.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아리따운 소녀가 주안상을 내왔다. 그녀가 유지였다. 주안상을 내려놓고 뒷걸음질 쳐 물러가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아름다운 몸매에 곱게 단장한 얼굴은 갓 피어난 백합화 같았다.율곡이 물었다. "몇 살인고?" "열두 살이옵니다."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말투 또한 교양이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일찍이 기적에 오른 선비의 딸이었다. "시침 들려고 온 것이냐?" 어린 소녀여서 율곡은 다시 물었다. 아직 갈래머리 소녀인 동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지는 부끄러워 얼굴에 홍조를 띠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행수 기생의 명을 받들고 왔사옵니다." "아니다. 수종이나 들고 나가거라." 유지가 조용히 물러났다.그 후 율곡은 유지를 늘 옆에 두고 말벗으로 삼았다. 유지와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녀를 예뻐해 주고 아껴주었으나 율곡은 갓 피어난 꽃봉오리를 보기만 할 뿐 꺾지는 않았다. 아리땁고 청순한 유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율곡이었다. 나이 39세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해'선비의 딸' 열두살 관기와 첫 만남늘옆에 두고 말벗 삼아 마음에 평온 유지는 율곡의 높은 학식과 인품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율곡과 함께하는 시간은 유지에게는 커다란 산 공부고 깨우침이었다. 기녀가 지녀야 하는 몸가짐과 기예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는 늘 몸으로 실천하게 했다.얼마 후 율곡은 임기를 마치고 한양의 집으로 돌아갔다. 유지는 율곡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립고 안타까웠으나 찾아 나서지를 못하고 있었다. 유지에게 율곡은 때론 어버이이고 때론 지체 높은 양반이고 때론 정을 주는 연인이기도 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세월이 흘렀다
-
[with+]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지면기사
여덟 살 딸아이는 학교 방과 후 수업이 끝나면 태권도장으로 간다. 태권도가 끝나면 바로 그 옆집, 피아노학원엘 가고. 워킹맘 가정의 흔한 풍경이다. 운동을 하고 음악을 배운다는 목적보다는 사실 보육 시설에 가깝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당연한 듯 하루를 보낸다.아이가 온종일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불러댔다. 내가 어릴 적 불렀던 노래와는 가사가 달랐다.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였는데 아이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라고 노래한다. 평균 기온 12도, 강수량은 1천300㎜이었는데 아이는 평균 기온 13도, 강수량은 1천800㎜이란다. 그래, 주소도 바뀌었고 기후도 바뀌었다.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00리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다. 200리를 아이들은 모른다. 그래서 87㎞다. 내 아이와 내가 사는 세상이 이만큼 바뀌었다. 아이는 유튜브에서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찾아달라고 했다. 영상을 켜보니 어라, 아이가 매일 집에서 춤추던 그 모습과 똑같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은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모두 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태권도장에서 배운 거라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어지간한 대한민국 아이들은 태권도장에서 다 이걸 배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문득 나 어릴 때 배웠던 국민체조 생각이 났다. '빠라바라바, 빠라바라바' 하는 음악에 맞추어 전 국민이 똑같이 움직였던 그 체조. 우리 세대라면 모를 수 없는 그 풍경. 나는 소파에 앉아 아이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그만 울어버렸다."엄마, 왜 울어?"내 아이는 나중에 자라 '독도는 우리 땅' 플래시몹을 친구들과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 그땐 다 그 플래시몹 따라했잖아. 우리는 어린이집에서부터 핼러윈 파티를 했잖아. 핼러윈 파티 때마다 엄마가 마녀 옷을 사줬고 호박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 동네를 뛰어다녔잖아. 우리 그때 진짜 신났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길 것이다.'독도는 우리땅' 플래시몹·핼러윈축제내 아이 세대에겐 문화이자 추억이다 핼러윈의 유래가 뭔지 나는 잘 모르지만 해마다 어린이집 핼러윈 파티 공지를
-
[with+] 오래된 미래와 수원 지역의 교가 지면기사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향수는 과거에서 파생된 추억이다. 미적인 공간을 함의한 좋은 기억은 소위 고향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장을 함께해온 모교에서도 향수의 결로 묻어있다. 오래전에 떠나 왔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러한 기억의 저장고에는 추억의 노래가 되살아나기도 한다. 바로 중고교 시절 목청 높여 불렀던 교가가 그것이다. 교가는 누구에게나 강한 기억으로 각인되어서 당시의 향수를 불러오고는 한다. 그만큼 재학생 시절 다 함께 공유했던 교가의 리듬과 가사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세월을 타고 생생한 유년의 추억을 자극하기 마련이다.이같이 학교를 표상하는 교가는 건학 정신과 함께 지역의 정서가 내재 되어 있다. 대부분의 교가는 4분의 4박자 또는 4분의 2박자를 통해 합창하기 쉽게 반드시 후렴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교내외 교육 활동을 알리는 이 노래는 입학식 또는 졸업식 등 학교 행사나 의식에서 쓰인다. 학생들은 교가를 다 함께 반복해서 부르게 되면서 외울 필요 없이 가락에 붙여진 가사를 습득하게 된다. 이렇게 학습된 교가는 자연스럽게 애교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모교의 긍지를 가지게 한다. 또한 가사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익히게 됨으로써 미래의 양식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교가의 본질은 이 노래를 제창하는 재학생들을 위하여 존재한다. 재학생들의 미래가 교가에 응축되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인류애와 보편적인 세계관으로서 다음 세대를 정의롭게 펼칠 수 있다. 그것은 공동체 안에서 반복, 학습함으로써 나만의 소리가 아닌 나도 소리를 내면서 서로 어우러진 하모니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물론 졸업생들에게는 교가가 기억의 잉여물로서 지울 수 없는 향수와 같은 것으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이같이 수원 지역 사회에서도 100여 년이 훌쩍 넘은 유서 깊은 학교들의 고유한 교가가 전통을 이어주고 있다. 게다가 졸업생들은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노래를 향유하면서, 선후배들이 모여 순수했던 그 시절 동질성과 결속력을 다지는 것도 그 연유다. 애교심 발동·모교 긍지 불러오지만다문화·다민족·정보 문명사회
-
[with+] 의연한 자세 지면기사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테니스 엘보 등의 병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그래서 2년에 한 번씩 건강 검진을 받을 때면 또 다른 병이 생길까 봐 긴장하곤 한다. 몇 년 전 건강 검진의 결과지를 우편물로 받았는데 정밀 검사가 필요하니 재검사를 받으라는 게 하나 있었다. 유방암 검사였다. 유방암은 전 세계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라 겁이 났다. 마음을 졸이며 대학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괜찮다는 진단 결과를 전해 듣고서야 안도했다. 그때 큰 병에 걸리더라도 버틸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인지 내가 닮고 싶은 인물 유형 중 첫 번째는 병이 생기더라도 그 병을 이겨내고 의연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마치 환자였던 적이 없는 것처럼 근심 없는 듯 밝은 얼굴로 사는 사람이다. 시련을 겪고도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산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병이 생기더라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밝게 산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가 책을 통해서 닮고 싶은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란 소설에 나오는 맹인을 보고 그의 정신 자세를 닮고 싶었다. 그 맹인은 상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집에 방문한다. 그는 아내의 오랜 친구다. 방문자가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방문자와 '나'를 인사를 시키고 '나'는 초면인 맹인과 악수를 한다. "어쩐지 전에 이미 본 사람 같구먼"하며 방문자는 '나'에게 쩌렁쩌렁하게 말한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면서 '나'를 이미 본 사람 같다고 농담을 할 줄 아는 유머인이다. 시각 장애인인 데다가 상처까지 했기에 그의 낙천성이 퍽 인상적인 대목이다. 이런 이는 어떠한 고난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의연한 자세로 돌아올 것만 같다. 불행의 나락 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갖는 이를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도 존재하니까. 가수 이동우가 그렇다. 그는 1993년 SBS 2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남자 개그맨들로 결성한 가수 그룹인 틴틴파이브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04년 병원에서 '망막
-
[with+] 책상… 섬의 항해기 지면기사
10월은 연달아 쉬는 날이 많았다. 직장인은 아니지만 이렇게 빨간 날이 많으면 여러 계획을 세우게 된다. 부모로서 아홉 살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놀러가느냐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최소한 요 정도는 써야지'하는 작업계획도 세우고, 사놓고 못 읽은 책들을 읽어치우려는 계산도 하게 된다.개천절을 낀 주말에는 겨우 책 한 권만 읽었다. 놀다보니 그리된 것이지만 왠지 억울하다. 내 노트북에 새로 쓴 글자가 몇 알이나 담겨있나, 냉장고에 들어있는 사과가 더 많을 것이 아닐까, 스멀스멀 불안이 몰려오면서 작가만의 고해성사를 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고해소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신부님께 털어놓게 되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놀기만 했습니다. 책은 달랑 한 권, 그것도 매우 얇은 산문집 한 권 읽었습니다. 소설 파일을 아예 펴보지도 않았고 노트는 두 장 썼나? 아무튼 형편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세히 늘어놓다보면 갑자기 또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쩨쩨해졌나! 프랜 레보비츠의 경구를 떠올려 보라고! '난 너무 천천히 글을 써서, 내 피를 잉크로 써도 다치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 넉살을 떨어줘야 나무늘보 작가로서 장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에잇, 모르겠다. 놀자! 그리고 놀았다. 한 주가 훌쩍 흘러 한글날 연휴가 끝나가자 이번에는 토니 모리슨의 경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글을 쓰는가? 쓰지 않으면 삶 속에 처박히기 때문이다'. 한창 삶에 처박히는 중이라 그런가 더는 참지 못하고(?) 글을 썼다. 물론 시작은 반성문으로, 끝에는 뭐가 나올지 모를 문장을 우선 달려본다. 휴일 잔뜩 품은 10월 첫째·둘째 주방황끝에 카페 이동 닻 내린 '책상' 쓰면서 문득 생각하니 이 곳이 얼마나 비싼 비용을 치르고 얻은 책상인가 싶다. 대체휴일이 끝나가는 월요일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나는 북카페의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있고, 옆 탁자에는 이숲이가 나무클립을 끼워서 만드는 뭔가에 푹 빠져있다. 이렇게 엄마를 놔주기까지 우리는 문구사에 가서 공작세트를 사오고, 쌀쌀한 날씨에 대비한 옷을 사고
-
[with+] 무거운 식탁 지면기사
소소한 취미가 하나 생겼다. 매일 어디에서 뭘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기록하는, 취미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애매한 일상의 루틴 정도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지만 기록을 들여다보니 내 일상의 패턴이 보인다. 식생활만 놓고 보면 간단 그 자체다. 아침을 거르니까 하루 두 끼 중 80% 이상이 외식이고, 집밥은 20% 남짓이다. 집에서 밥을 먹더라도 배달이나 포장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집에서 둘이 밥을 함께 먹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둘이 먹을 때에는 밥상을 차려 먹는 편인데, 그마저도 직접 만들어 먹기보다는 밀키트나 가공식품을 살짝 조리하는 수준이니, 차려먹는다는 말이 무색하다. 먹는다기보다는 한 끼를 해치우는 수준인데, 매 끼니 정성을 들여 해먹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가끔 친구들과 농담처럼 엄마가 해주는 집밥은 곧 멸종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요즘은 그게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엄마가 해주는 집밥은 곧 멸종"친구와 농담이 곧 현실될 것 같아 얼마 전 장민영 음식탐험가와 김태윤 셰프가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보고 생각한 것들을 나누는 토크 세션 'IN TO THE WILD'에 다녀왔다. 인도네시아는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 외에는 잘 모르는 나라였는데 1시간 반 남짓한 시간 동안 전혀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의 4개 지역을 일주일씩 순회했다는데 바닷속부터 야생 열대우림, 대도시 자카르타까지 지역도 다양했다. 길거리 음식부터 최고급 레스토랑까지 섭렵하고 온 셰프가 재현해 내놓은 다양한 식감의 인도네시아 샐러드 '가도가도'와 달큰한 '떼보틀'까지 곁들여지니 한국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어딘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인도네시아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떼보틀은 딱 달달한 자스민차여서 음료의 맛만 놓고 보면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국적인 향신료 향이 가득한 샐러드와 함께 먹으니 나중에는 왜 같이 먹는지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