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의 아야진 해변에 서서 오래도록 바다를 응시했다. 목덜미를 훑는 겨울바람이 차고 매서웠지만, 끝없이 펼쳐진 검붉은 바다는 되레 온화하게 느껴졌다. ‘아, 세상의 깊은 것들은 이리도 따스한 것을’. 문득, 그 따스함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차창에 눈발이 부딪쳤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마치 지난 일들의 잔상 혹은 환영처럼 다가왔다. ‘그래, 많은 일들이 있었지’. 누군가는 몹시 당황했고, 누군가는 한없이 속상해했고, 누군가는 슬퍼했던 일들. 때론 울었고, 때론 함께 웃었고. 한 해의 일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중략)-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1924년 6월 현진건이 발표한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문장은 강렬하다. 인력거꾼 김 첨지가 운 좋게 돈을 많이 번 날, 아픈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 들고 귀가했다. 하지만 그때 마주한 것은 아내의 죽음이었다. 작품의 제목 역시 이중적이다. 하나는 그가 몸담았던 운수(運輸)의 세계이다. 다른 하나는 그날의 운수(運數)다. 작가는 이 두 의미를 끝내 잔인한
2024년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열광 속에 순항하다 직격탄을 맞았다. ‘안대 심사’로 유지됐던 공정성이 레스토랑 미션에서 제작진의 일방적인 룰 변경으로 깨졌다. 중앙선관위 채용비리에 공분했던 사회다. 영문도 모른 채 팀에서 방출당한 셰프들이 수적 열세와 불리한 조건으로 당연히(?) 패배하자 비난이 폭주했다. 안대 심사는 허울이요, 제작진의 폭력적 룰이 현실이라는 사회적 시사(示唆)로 번지자 예능이 다큐가 됐다. 당시 ‘참성단’(2024년 10월 7일자)은 “공정이 고갈된 사회의
최근 인천 산업계의 최대 이슈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한국지엠 철수설’을 들겠다. ‘2025년 임금 및 단체협상(이하 임단협)’으로 촉발된 한국지엠 노사 갈등과 국내사업장 철수 위기는 새해가 시작된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 사측은 임단협 상견례를 하루 앞두고 국내 9개 직영 정비사업소(서비스센터)를 순차적으로 매각하고, 한국지엠 부평공장 일부 부지를 팔겠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조치 등으로 인한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임단협과 맞물린 자산매각 방침에 노조는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주목받고 있는 국민적 관심사의 하나는 행정대통합이다. 5극 3특(5개의 광역경제권과 3개 특별자치권) 체제로 대표되는 행정대통합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대전·충남 행정대통합은 민주당의 특별법 발의와 특별추진위원회를 설립할 정도로 추진 속도가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를 해소하고 수도권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권역별 행정대통합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축소사회, 인구감소, 초고령사회, 지방소멸, 지역양극화 등 한국 사회의 숱한 위기를 해소하고 완화하기 위한 해결책이라는 인상
재외동포청이 인천 개청 3년도 채 되지 않아 ‘서울 이전’을 언급하고 나섰다. 재외동포청은 오는 6월 청사 건물 임대 기간 만료를 앞두고, ‘서울 이전’과 ‘기간 연장’ 등 두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12일 밝혔다. 서울 이전의 경우 현재 외교부가 있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사 이전 검토 과정에서는 인천시와 어떠한 사전 논의도 없었다고 한다. 재외동포청 유치 당시 인천시는 ‘정책 파트너’로서 온갖 행정적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무례한 이전 언급은 인천을 대놓고 무시하는 행위이다. 이전안은 철저히 공
반도체 산업은 수원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의 경쟁력이다. 수원과 경기 남부권은 단순히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설계와 공정, 장비와 소재, 유지보수와 긴급 대응까지 수많은 기능이 촘촘히 연결돼 작동해 온 유기적 공간이다. 이 집적된 구조 속에서 기업과 협력사, 인력이 함께 성장했고 그 축적이 오늘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토대가 되었다. 반도체 산업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불량 비율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반복된 시행착오, 공정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을 지켜온 협력사들의 경험, 그리고 문제 발생 시 즉각
국민의힘이 윤리위원회의 한동훈 전 대표 제명 결정으로 공당의 정치적, 윤리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파면당한 위헌 대통령과의 정치적 절연이 당연함에도 지도부의 퇴행적 친윤 행태로 여론의 냉대를 받아 혼수상태에 빠졌던 국민의힘이다. 윤리위는 14일 새벽 당내 윤석열 청산 세력의 중심인 한 전 대표 제명을 강행했다. 위헌 계엄과 탄핵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정통 보수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요청했던 당내외 여론을 걷어찬 것이다. 상황을 여기까지 주도한 장동혁 대표는 15일 윤리위의 결정을 확정할 최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