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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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맛깔 난 '협치'의 '새 술' 국민에게 안길 때! 지면기사
5월, 대한민국의 의전서열 1·2위 자리가 모두 새 주인을 맞았다.지난 9일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에 취임한 데 이어 24일에는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에 더불어민주당 5선 김진표 의원이 사실상 선출됐다.김 의원은 절차적으로 국회 본회의에서의 무기명투표를 남겨놓고 있지만, 통상 원내 1당 후보가 국회의장직을 맡는 점을 감안하면 선출은 이미 확정된 셈이다. 국회의장은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과 차관급인 비서실장, 입법차장 등에 대한 인사권을 가짐은 물론 국회 의사 일정을 조정하고 법률안을 직접 본회의에 올리는 직권상정 권한도 있다.이렇게 같은 달 행정부와 입법부를 대표하는 수장의 탄생은 대한민국 정치사에도 많은 기대감을 불러온다.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는 입법부로서 당연한 권리의 행사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참된 '협치'가 전제될 경우 민생 현안 해결이라는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다.물론 우려도 따른다. 국민의힘 당적으로 당선된 윤 대통령과 민주당 당적을 보유한 김 의원이 서로 등을 돌리는 '대치'를 선택한다면, 그야말로 파국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이 때문인지 20대 국회 후반기를 이끈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당시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행정부의 관계에 대해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이어 "서로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역지사지는커녕 죽기 살기로 싸우기만 하면 공멸이 기다린다"는 언급도 남겼다.이렇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곧 두 수장의 '공식 동행'이 시작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데, 이미 부대는 준비됐으니 이제 맛깔 난 술을 담가볼 차례 아니겠는가. '대립과 대치'의 역사를 써내려간 21대 국회 전반기의 기록이 후반기에는 부디 '성공한 협치'의 기록으로 쓰이길 바란다. /김연태 정치2부(서울) 차장 kyt@kyeongin.com김연태 정치2부(서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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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의정부에서 생긴 일 지면기사
요즘 음식점들은 '조리과정'을 공개한다. 손님에겐 보이지 않는 주방공간에 CCTV를 달아 주방장이 조리하는 과정을 공개하는 것이다. 꼭 CCTV를 달지 않더라도, 조리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하거나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배달음식점, 밀키트 등이 성황을 이루며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년 전 만해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일부 음식점 등에 시범사업으로 운영한 게 다였지만, 지금은 음식업체들 스스로 조리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만든 음식은 믿고 먹어도 된다'는 신뢰를 파는 것이다.예전 우리 사회 같으면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이 파는 신뢰에 대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서 신뢰를 주고받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한 가치가 됐다는 반증이다. 지방선거의 열기가 절정에 치달은 요즘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이기에 흔히들 지방선거를 지방자치의 축제라 부른다. 이렇게 설레고 즐거운 때에, 지방자치의 신뢰를 깨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것도 인구 약 50만의 북부 최대도시인 의정부에서 말이다. 12년간 의정부를 이끌며 이제 아름다운 퇴장으로 빛날 줄 알았던 안병용 시장이 돌연 의정부 부시장을 직위해제했다. 사유는 '지시 불이행'. 시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부시장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지시일까 살펴봤더니 개발사업 관련 특혜 의혹을 받아 감사원으로부터 해임징계를 요구받은 A 과장의 승진을 지시했고 부시장은 지방공무원임용령을 근거로 '불법지시'를 거부했다. 며칠간 실랑이 끝에 결국 직위해제는 취소됐는데, 그 과정조차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지방자치 역사가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이 희대의 사건은 시대를 역행해도 한참을 역행했다.모두의 신뢰를 사기 위해 평범한 이들도 내밀한 양심까지 끄집어내 증명하는 세상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정치는 더더욱 달라져야 한다. /공지영 정치부 차장 jyg@kyeongin.com공지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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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열흘남짓, 그들을 알아내야 할 시간 지면기사
임태희, 성기선 두 경기도교육감 후보를 안 건 오래되지 않았다. 임태희 후보는 대선 직후 도교육감에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 통화로 처음 만났다. 성기선 후보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본 건 지난주가 처음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경주했으니 보수와 진보를 대표해 교육 수장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을 것이다. 다만 나조차도 낯선 데 오는 6월1일 투표를 해야 할 도민들은 오죽할까 싶다.현장에 나가는 게 일인 기자로서 시민들께 후보를 적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짧은 인터뷰 동안 후보들의 말과 행동에 주목했다. 언어적 메시지뿐 아니라 비언어적 습관도 읽어내고 싶었다. 임 후보는 최신형 아이폰을 쓴다. 말로 꼬투리를 잡아 정쟁을 벌이기 일쑤인 정치권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녹취가 안 되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임 후보는 스스로를 '얼리어답터'라고 지칭했다. 1956년생, 만 66세인 그이지만 캠프 운영 주체는 90년대생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결정하고 후보는 따르면 된다'는 게 임 후보의 지론이다. 생각이 젊은 그는 때로 청년처럼 보였다.성 후보는 정열적이다.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씨를 쓰는데(그는 경남 출생이다) 짧은 말 속에도 비유와 위트를 섞는다. 언뜻 들으면 '가벼운 사람인가' 싶지만 주어·서술어부터 논리 구조까지 거의 완벽하다. 학부에서 시작해 생애 대부분을 교육과 관련된 활동으로 보내 현장과 이론에 모두 능하다. 특히 거침없는 자신감, 탈권위가 가장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성 후보 캠프 같은 선거 사무실을 자주 보진 못했다. 캠프 구성원들이 후보를 어려워하는 법이 없다. 기자들과의 인터뷰 도중에도 전달할 말이 있으면 말을 끊고 바로 후보에게 말하기도 한다. 일견 위계가 없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탈권위일 것이다. 앞으로 보름 뒤면 4천717개 학교, 165만9천182명 학생, 12만5천192명 교원, 1만1천508명 직원(2021년 기준)을 대표할 도교육감을 선출한다. 열흘 남짓, 길다면 길고 참으로 짧은 기간이다. /신지영 사회교육부 차장 sjy@kye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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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생소한 사건 지면기사
"우리에게도 생소했던 수사였습니다."김포 지적장애인 시신 암매장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사건은 숨진 피해자뿐 아니라 피의자들도 지적장애가 있거나 수사과정에서 경계성 지적장애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의 생소하다는 발언은 피의자들의 진술패턴과 피해자를 둘러싼 사건전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피의자들은 책임 전가하는 것 없이 순순히 범행을 진술했다. 더러 진술이 오락가락하기도 했으나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의도가 아닌 지적장애에서 비롯된 것으로 경찰은 판단했다. 피해자 부인이 남편의 실종신고를 하지 않은 것도 부인의 지적장애가 원인으로 지목됐고, 피해자가 피의자들과 별다른 이유 없이 동거한 이유도 지적장애라는 공통분모로 뒤늦게 설명이 됐다.수사 측면에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패턴이 노출됐다. 피해자가 숨지기 두 달 전 그에 대한 감금·폭행신고가 접수됐지만, 현장에서 자취를 감춘 피해자가 경찰과의 전화통화에서 피해 사실을 적극 부인하는 바람에 사건이 아무 일 없이 종결됐다. 출동 경찰관들은 통화상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던 피해자의 장애 여부를 알 수 없었다. 비장애인과 외양적으로 구분이 안 되는 지적장애의 특성 때문이었다.경찰에는 지적장애인을 조사할 때 가족 등 신뢰관계인을 동석하도록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최근 의정부 일대에서 감금 폭행당하다 구출된 지적장애인은 부모를 동석시키고 나서야 피해진술을 시작했다. 암매장사건 피해자의 감금·폭행 신고 당시에도 범행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피해자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해당 가이드라인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일선 경찰들에 생소했고, 이마저도 장애 여부 자체를 파악할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산나물을 캐던 주민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다 죽음에 이르고 야산에 파묻힌 피해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누구나 누려야 할 사회안전망에서 그는 소외돼 있었다. /김우성 지역자치부(김포) 차장 wskim@kyeongin.com김우성 지역자치부(김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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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안양 롤러사고 원인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면기사
지난해 12월 1일 오후 6시40분께 안양여고 사거리 인근에서 지중선로 전기토목공사 도중 중장비 기계인 롤러가 급전진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근로자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0대 롤러 운전자 A씨는 지난 10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금고 2년형을 선고받았다.사고는 지난 3월 열린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2월 2일 국민의힘 후보 신분으로 사고 현장을 찾아 "(사고 원인을) 파악해 유사사고에 대한 확실한 예방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며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데 사고 뒤에 책임을 논하고 수습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예방 방안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다녀간 뒤 경찰 수사 이후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12월 22일 A씨를 구속기소 했고 선고는 지난 10일 내려졌다. A씨에 대한 선고는 이뤄졌지만 아직 사고의 구조적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경찰과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은 지난달 말께나 돼서야 시공사, 하도급 업체, 재하도급 업체 관계자 5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와 전기공사업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호수 배치 유무나 불법 재하도급 여부는 법적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A씨 재판에서 안양지원은 현장의 상황에 대해 '차량의 왕래가 빈번하며 롤러 차량 전담 신호수가 배치돼 있지 않았다'고 봤다.사고 발생 이후 6개월이 지나고 있다. 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롤러 운전자 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 사고 현장의 구조적 문제도 함께 따져봐야 함은 분명하다. 안양지역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12월 5일 긴급하게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고 진상규명과 근본적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활동하겠다고 밝혔다.법원의 명확한 판단이 나오기까지, 대통령과 정치권이 약속을 지킬 때까지 이 사고가 유야무야 시민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길 바란다. /이원근 지역자치부(안양·과천) 차장 lwg33@kyeongin.com이원근 지역자치부(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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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법 위반의 경중 지면기사
"아들뻘 되는 사람한테 범법자 소릴 듣고 한숨도 못 잤습니다."취재현장에서 만난 70대 A씨는 "아무리 사회정의를 위한 행정이라지만 공무원들의 행실이 도를 넘은 것 같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부천 원종동에 공동주택을 지어 분양 중인 A씨는 자신이 건설한 건물 1층 외벽에 분양홍보 현수막을 불법으로 부착했다가 단속됐다. 최근 부천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20~30대로 보이는 공무원 2명이 단속을 나왔는데, 현수막 철거 과정에서 막말과 함께 범법자 취급을 당했다는 것이다.A씨는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까지 보여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사진에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공무원들이 현수막을 철거하는 광경이 담겼다. 신분증을 들이미는 모습도 있었다. 지정된 게시대 이외의 모든 현수막은 단속 대상이다. 엄밀하게 따지자면 A씨는 법을 위반했다. 개발붐을 타고 도심 곳곳에 출몰하는 현수막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닐 공무원들의 고충도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법 위반에도 무게가 각기 다르고 내용은 더욱 천차만별이다. 그중에는 차량 정지선 침범 단속처럼 인식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의 규범도 있다. 현수막이 그렇다. 행정기관들의 홍보를 위해 혹은 정치인들의 정치행위를 위해, 또 영세사업자들의 광고행위를 위해 불법 현수막을 일정 부분 눈감아준 게 사회 통념이었다. 주민들의 민원 제기로 단속을 해야 했다면 철거하고 과태료를 부과하면 그만이다.불법 현수막을 많이 내걸수록 행위자의 과태료 부담은 증가한다. 위반이 반복된다면 고발도 할 수 있다. 현장에서 꾸짖을 사안이 아니다. 불법 현수막을 단속당한 정치인이나 정당이 시청의 항의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A씨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에만 수억원의 세금을 성실히 낸 시민이라고 자부하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시민의 봉사자'라는 사명을 망각한, 과도한 행정행위였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상훈 지역자치부(부천)차장 sh2018@kyeongin.com이상훈 지역자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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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계포일락(季布一諾) 지면기사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한 대한민국에서 협의, 합의, 약속 이행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서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공존하기 위해 협의하면 마땅히 합의가 붙고, 그 합의를 이행함으로써 미래 협의의 장을 열어둔다.검수완박이 어떻게 읽혔을지는 각자의 마음에 있을 테지만 하나 분명한 건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22일, 나흘간에 걸쳐 의장과 양당 원내대표는 주장하고 갈등하고 새벽에 만나 논의한 끝에 합의문에 최종 서명했다. 논란이 있던 검찰개혁법안은 양당 합의로 균형점을 찾았다. 무엇보다 청와대와 인수위마저 수용의사를 밝혀 의미 있는 합의라고 생각했다. 국민의힘은 불과 사흘 만에 최고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를 뒤집었다. 그렇다고 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합의를 파기한 이후 진행된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검찰개혁 관련 법안들은 국민의힘의 검토를 거쳤다.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들은 '의장의 뜻'으로 포장된 국민의힘 요구대로 진행됐다. 그럼에도 표결에는 동참하지 않았다.21대 국회가 후반기를 맞이한다. 바싹 약이 오른 더불어민주당은 후반기 원구성에서 법사위원장을 맡겠다고 한다. 2년 전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후반기에 법사위 위원장을 국민의힘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검찰개혁법안 합의가 깨질 당시 원구성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이미 나왔다고 한다.소탐대실일 수 있다. '남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나도 약속을 안 지킨다'는 편의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주로 국민의힘 패널로 등장하는 장성철 교수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저 사람들이 그랬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아요'라고 해야 국민과 중도층이 정권교체를 잘했다고 박수를 치지 똑같으면 국민들이 얼마나 불행한가." 그 말 그대로 민주당에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민주당이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의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우린 천금같이 여깁니다. 앞으로도 미래에도 우리는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지킬 것입니다. 그것이 가시밭길일지라도." /권순정 정치2부(서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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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한순간 사라진 최북단 모감주나무 자생군락지 지면기사
'모감주나무'라는 나무가 있다. 6~7월이면 황금빛에 가까운 노란색 꽃을 피운다. 열매가 단단해 약재로 쓰이고 염주를 만들기도 해 '염주나무'라고 불린다. 풍요와 부를 상징하는 나무이므로 최근에는 가로수나 정원수 등으로 심는 경우가 많지만, 자생 군락지를 형성한 지역은 많지 않다. 국내 주요 자생 군락지인 충남 태안군 안면도와 경북 포항시 남구 발산리, 전남 완도군 군외면 대문리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모감주나무 자생 군락지가 보호해야 할 생태자원임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최근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 있는 국내 최북단 모감주나무 자생 군락지가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 옹진군이 자생 군락지 인근에 있는 오군포천 소하천 정비공사를 위해 20여 그루를 베어내고, 10여 그루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업무를 담당한 옹진군 건설과에서는 소하천 정비공사 과정에서 나무를 베어낼 수밖에 없어 마을 주민과 협의해 상태가 좋은 일부는 다른 곳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벌목했다고 해명하고 있다.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모감주나무 자생 군락지가 하천 정비로 인해 사라지게 된 이유는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옹진군 내의 녹지와 천연기념물 등을 관리하는 부서와 백령면에서는 이곳의 존재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옹진군 건설과가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곳이 보호 대상인지를 관련 부서에 문의했지만, 보호가 필요한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관리 대상이 아니므로 옹진군은 별도의 보호 대책 없이 공사를 시작한 셈이다.게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은 모감주나무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모감주나무가 이식에 부적합한 품종인 데다, 하천 옆에 있던 나무를 산 중턱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옹진군은 모감주나무의 특성에 맞는 관리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김주엽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차장 kjy86@kyeongin.com김주엽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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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경기도엔 경기 쌀이 있다 지면기사
여행을 다녀오면 엄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밥솥에서 밥 한 주걱을 크게 펐다. 각종 산해진미를 맛보고 왔을텐데도 쌀밥을 먹지 않으면 어딘가 속이 허하다고 했다. 밥 한 숟갈을 크게 뜨고 나서야 이제야 좀 힘이 난다고 말했다. 김포 통진면에서 5천년 전 탄화된 쌀이 발견된 점을 미뤄보면 쌀은 한민족의 수천년 역사와 함께 해왔을 것이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쌀의 힘이 각인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따끈한 쌀밥 한 숟갈을 먹어야 비로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에너지가 차오르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어느덧 쌀은 힘을 잃었다. 쌀을 먹지 않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쌀 소비량이 30년 전인 1991년의 반토막이 됐다는 통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장 오늘 아침부터 점심까지 돌이켜보니 쌀을 단 한 톨도 먹지 않았다. 아침을 거른 채 하루에 두 끼만 먹는 날이 허다하고 그나마도 밀가루와 고기 등으로 식사를 해결한다.쌀 소비가 줄어드니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졌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쌀 시장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돼, 수요가 줄어드는데 공급은 늘어나니 가격이 급락한다. 지난해 쌀 농사가 풍년이었지만 누구도 웃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쌀농사를 너무 많이 짓지 말자고 정부가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게 현주소다.사실 경기도는 유서 깊은 쌀의 고장이다. 지역 곳곳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쌀농사를 지어왔다. 31개 시·군 중 상당수는 지역 대표 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물맑은양평쌀, 슈퍼오닝쌀, 김포금쌀, 수향미, 임금님표이천쌀, 대왕님표여주쌀 등 내로라하는 쌀들이 경기도 땅에서 농부의 땀방울로 재배된다. 쌀이 본연의 힘을 잃은 이때, 경기도 농업의 근간도 흔들리고 있다. 경기도민들만이라도 경기도 쌀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으면 하는 게 지역 농민들의 바람이다. 쌀을 먹지 않는 시대, 경기도의 쌀을 알리는 기획기사 연재를 시작한 이유다. 경기도 쌀들이 다시 힘을 얻길, 백옥의 제 빛을 발하길 소망한다. /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kanggj@kyeongin.com강기정 경제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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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창] 일상의 봄 지면기사
봄날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봄인가 싶다가도 눈꽃이 날리고, 봄인가 싶었는데 땀방울이 흐르는 시간이 뒤섞여서 그런 듯하다. 정초부터 줄곧 기다린 마음을 몰라주고 금세 아스라이 가버릴 것 같다. 어쨌든 요즘, 올해의 봄날이 한창이다. 봄에 한껏 어울리는 행사가 지난 주말 열렸다. 오산시는 가을에 개최할 경기정원문화박람회의 예고편 격으로 '가든&플라워 쇼'를 기획했다. 행사 장소는 꽃과 음악, 웃음과 여유로 장식됐다.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은 사람, 꽃을 향해 돌진하는 반려견을 붙드는 사람, 아이에게 걸음마를 알려주는 사람….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풍경이 얼마 만인지. 그 가운데 누군가 말했다. "진짜 봄 같다." 그는 아마 코로나19 이전의 봄을 떠올리며 한 말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여 동안 손을 깨끗이 하고, 마스크를 휴대하고, 만나는 사람의 숫자를 조정하고, 식사 방법을 바꾸는 등의 새로운 일상을 정립했다. 그러한 노력 끝에 지금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만날 수 있고 실외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도 완화됐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을 날도 가까이 온 것 같다. 그토록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설레고, 또한 아슬아슬 하기도 하다. 아직 코로나19 상황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일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일 씻고, 매일 먹는 것이 필요해서 일상이 됐다. 새로운 일상이 생겼다면 그것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자주 손을 씻고 서로의 비말이 섞이지 않게 조심하는 것은 코로나19 감염이 아니고서라도 감기 예방 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굳이 다시 일상에서 퇴출시킬 이유가 없어 보인다. 코로나19 전과 후의 일상이 혼재하는 5월이 왔다. 일상과 일상이, 화합이 이루어지는 날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민정주 지역자치부(오산·화성)차장 zuk@kyeongin.com민정주 지역자치부(오산·화성)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