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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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경기도리그' 되는 2024시즌 K리그2 지면기사
2024시즌 프로축구 K리그2에 참가하는 13개 팀 중 6개 팀은 경기도 연고 팀이다. K리그2 경기도 연고 팀은 기존 5개 팀에서 수원 삼성의 강등으로 모두 6개가 됐다. 2024년에는 K리그2에서 절반에 가까운 경기도 연고 팀이 K리그1 승격을 위해 치열한 승부를 펼치게 됐다. '경기도리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창단 후 처음으로 K리그2로 강등된 수원 삼성이 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가 큰 관심이다. 수원 삼성은 K리그 팀 중 팬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홈 경기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에도 수많은 수원 삼성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모습은 K리그 팬들이라면 다 안다. K리그2 강등으로 자존심이 상한 수원 삼성은 K리그1 승격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으로 전망된다.김포FC도 2024시즌 K리그2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팀이다. 김포는 올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강원FC에 합산 스코어 1-2로 아쉽게 패해 K리그1 승격에 실패했다. 김포가 프로 3년차인 2024시즌에도 '돌풍'을 이어갈지 주목된다.K리그2에서 잔뼈가 굵은 부천FC1995와 FC안양도 리그에서 무시할 수 없는 팀이다. 다년간의 리그 경험을 바탕으로 언제든지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성남FC도 반전을 노린다. 올 시즌 정규라운드에서 승점 44(11승 11무 14패)를 기록하며 9위에 올라 주춤했던 성남은 2024시즌 더 나은 성적에 도전한다.올해 정규라운드에서 승점 25(6승 7무 23패)로 12위에 머물렀던 안산 그리너스FC는 하위권 탈출을 꿈꾼다. 이처럼 2024년 6개의 경기도 연고 팀들이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승부가 프로축구 팬들 앞에 펼쳐진다. 경기도 연고 팀들이 이끄는 2024년 K리그2는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 넘치고 주목도 높은 시즌이 될 것이다. /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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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숭고한 마지막을 위해 지면기사
숭고한 마지막을 위한 과정에서 반드시 동반되는 것이 고인을 장사(葬事)하는 절차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90%가 장사방법으로 화장을 이용하는데 비해 해당 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미 전국 각지의 봉안당은 포화상태며 화장로 또한 예약이 밀려있어 유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장례 날짜를 늘리거나 먼 곳으로 고인을 모시고 원정화장을 떠난다.양평군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관내 화장률이 92.6%에 달하나 화장장이 없어 모든 주민이 원정화장을 간다. 또한 지역주민 우선 이용 지침 때문에 관내에 시설이 없는 양평주민들은 화장로를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하기 일쑤다.이렇듯 장사시설의 필요성은 제기되나 화장장 추진은 결코 쉽지 않다. 화장장은 '기피시설'이란 인식 때문이다. 아직 주민 대부분은 화장장이 환경오염과 부동산 가격 하락을 동반한다고 인지하며 옛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정서적 불편함은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게다가 군은 3년 전 화장장을 추진하다 주민 반대로 인해 공모를 신청한 마을이 자진 철회하는 사건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가장 많이 외쳤던 말은 "군수와 담당자 나와라"였는데, 당시 다른 문제를 제하더라도 소통이 중요한 사업에서 제기된 '소통부족' 문제는 군이 다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흔을 입혔다.그랬던 양평군이 11월 말, 화장장 재추진을 공표했다. 공모를 통한 모집방식으로 큰 틀 또한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엔 순서가 달랐다. 주민설명회부터 개최하고 군수가 마이크를 먼저 잡았다. 환경과 부동산 등 우려에 대한 대책도 브리핑했다. 추진하고 설득하는 방식에서 설득하고 추진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아직 취재 도중 '화장장에서 뼛가루가 날리지 않냐'는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다. 화장장 추진은 이런 간단한 오해를 푸는 것부터다. 군이 끈질긴 소통을 통해 숭고한 마지막을 위한 공동체적 합의에 도달하길 바란다. /장태복 지역사회부(양평) 기자 jkb@kyeongin.com장태복 지역사회부(양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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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평범한 비극 지면기사
인생의 슬프고 애달픈 순간. 한순간 나락으로 빠져 허우적거리거나 혹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 순간. 벼랑 끝에 몰려 죽음까지 이어지는 극단적인 순간. 이 경우들을 '비극'이라고 부른다.비극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기도 한다. 연극이나 소설에서는 상황을 고조시켜 비극의 서사를 절묘하게 표현한다.형태를 뒤틀어 비극의 처참함을 담아내는 예술 작품과 달리 우리 주변의 비극은 지극히 평범하다. 지난 4월 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인천 미추홀구 한 아파트 앞을 서성거렸다. 하루아침에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곳이 제격이었다. 1시간 정도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을 때쯤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담뱃불이 다 꺼질 때면 새 담배를 물었다.평생 목수 일을 하며 마련한 집이라고 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빚 하나 없이 장만한 전셋집에서 아내와 함께 노후를 보내려고 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느냐. 좀 알려달라"고 처음 본 사람에게 물을 정도로 간절했다. 그때 노인이 짓던 표정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그리고 지난 8월 후배 기자가 전세사기 피해자 중 유명을 달리한 한 노인을 취재했다. 이 노인은 집에서 지병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남편이 집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을 때 아내는 생계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밤새 와상 환자를 간병하고 있었다.이달 초, 취재차 지난 기사를 참고하다 지난 여름 유명을 달리한 노인이 목수 일을 하며 평생 모은 돈으로 전셋집을 장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봄에 만난 노인과 이름, 생김새, 하는 일, 아내의 직업까지 모두 같았다.그의 몸에서 풍기던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날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더 줬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평범한 비극이 소설보다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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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언제까지 서울의 찬가만 부를텐가 지면기사
29년 만에 KBO리그 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의 대표적인 팀 응원가 가운데 '서울의 찬가'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패티 김이 1969년에 부른 이 노래는 '아름다운 서울에서 살렵니다'라는 후렴구가 인상적인데, 산업화 초기 서울의 밝은 분위기를 잘 담아낸 곡이다.노래가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서울을 원하는 정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 정서에 불을 댕기기 위해 김포의 서울 편입론을 꺼내 들었다. 서울 편입추진위원회를 발족한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고 한다. 야당은 '주민 의견을 따르겠다'는 애매한 입장만 던져둔 채 불길이 잦아들길 바라는 눈치다.역설적이게도 윤석열 정부는 올해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9월에는 부산에서 '지방시대 선포식'을 열었고, 이달 초에는 대전에서 '제1회 지방자치 및 균형발전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며 "다 함께 잘 살아 보자"고 했다.김포의 서울 편입론은 대통령의 발언과 상충한다. 서울로 집중될수록 다 함께 잘 살기는 어려워진다. 집중과 균형은 함께 갈 수 없다. 집중은 위계를 형성하고, 위계는 서열을 동반한다. 서울에 집 한 채 가진 것이 성공의 잣대가 된 지금이 과연 바람직한가. 매일 서울로 출퇴근 전쟁을 벌이는 인구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더 불행해진다.서울을 중구와 종로, 용산 등 국가 주요기능이 위치한 일부 지역만 남겨두고 과감히 줄이는 건 어떨까. 나머지 지역은 고양시 은평구, 하남시 강동구, 인천시 강서구 등으로 재편해보자는 의미다. 혹자는 뜬구름 잡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서울시 김포구도 뜬금없긴 마찬가지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표 한 장과 맞바꾸려는 얄팍한 생각은 거두고, 어떡하면 국민들이 조금은 덜 치열하게 살아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정치가 필요한 시기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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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문화유산과 함께 산다는 것 지면기사
풍납토성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계기는 유명하다. 1997년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백제 토기를 대거 발견한 이형구 교수가 지금의 문화재청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도시개발에 제약이 생겼고, 긍정과 부정의 엇갈린 시각 사이에서 문화유산의 발굴·보존 등을 두고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여전히 문화유산의 존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곤혹스러움을 안겨준다. 최근에는 한 유적지 발굴 현장에 동행 취재 요청을 했다가 땅 주인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접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우리나라는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사실상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듯하다. 지키고 보존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 하나와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골치 아픈 존재라는 것 하나다. 문화유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경제적인 부분이 바탕에 있다. 개발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유적이나 유물이 발견되면 조사를 진행하고 마무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니 그만큼 손해이고, 개인의 입장에서도 재산권 행사에 여러 제약이 생기게 되니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제재에 초점이 맞춰진 문화재 관련 법들을 강화하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그만큼 문화유산과 사람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도시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국 에든버러에 취재를 다녀온 뒤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문화유산과의 공존이었는데, 에든버러는 이 부분을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지역 주민들은 살아가는 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인식하고, 도시는 철저하게 세워진 지침 아래 주민들을 위한 방향의 개발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손대지 않고 보기만 해야 하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넘어 그곳에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 담보된다면, 두 개로 갈라져 버린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같은 지향점을 향해 맞닿을 수 있을까. /구민주 문화체육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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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권한과 책무 지면기사
장례식장은 불편하다. 기자라는 신분으로 장례식장을 찾을 때면 항상 발걸음이 무겁다. 누군가를 떠나 보내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계속해서 유족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떠한 죽음 앞에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살피는 게, 자칫 무기가 될 수 있는 기사를 쓸 권한을 가진 기자들의 책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한에 따른 책무가 주어지는 건 비단 기자만은 아니다.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권한과 책무가 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권한이 클수록 뒤따르는 책무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최근 국민의힘이 꺼낸 김포시의 서울 편입 논란을 보며 정치인 권한과 책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행정구역 개편은 절차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 청취 등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공론화 과정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경북 군위군이 대구시에 편입되기까지도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김포시의 서울 편입은 역대 정부가 추진해온 수도권 집중 해소와 상반된 '메가시티 서울'로 확대되는 만큼 지역, 시민의 혼란을 줄이려면 숙의 과정이 필수다.여당은 물론 김포시장은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추가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역들은 '지역 주민이 원할 경우'라며 혹시 모르니 발만 살짝 담갔다.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다면 주민투표가 대표적인 방법인데, 주민투표법상 총선을 비롯한 공직선거법 적용받는 선거 6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는 주민투표를 할 수가 없다. 내년 총선이 지나야 실질적인 논의가 가능한 것인데, 상당수 시민이 이번 논란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정치적 이해관계'라고 일축하는 이유기도 하다.이번 논란뿐인가. 허무맹랑한 공약이 난무함을 보며 또 선거가 다가오는구나를 느낀다. 국회의원과 단체장 등 정치인들은 수많은 권한을 누린다. 사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지역의 혼란을 부추기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입을 떼서는 안 되는 것 또한 그들이 누리는 권한에 따른 책무다. 가벼운 입은 닫고, 자신이 가진 책무를 무겁게 여기는 정치인은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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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역할·기능 재정립 기로에 선 지역사랑상품권 지면기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인천시 지역사랑상품권 '인천e음' 예산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할 기로에 섰다.지역사랑상품권은 팬데믹으로 침체한 상권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것과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재정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는 평가가 교차한다.인천시는 최근 인천e음 캐시백 내년도 본예산을 1천54억원으로 올해(2천19억원) 대비 절반 가까이 축소 편성했다. 서울 등 전국 지자체가 긴축 재정 기조에 접어들었지만, 인천시는 내년도 역대 최대 규모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확대 재정 기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인천시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삭감한 이유는 다른 요인보다도 재정 건전성에 초점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증액 의결할 가능성도 있지만, 그 규모는 비슷한 상황이었던 전년과 비교했을 때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줄어든 예산에 맞춰 인천e음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캐시백 비율과 지급 한도액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문제는 인천e음 캐시백 조정이 자금의 역외 유출, 지역 소비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데 있다. 실제로 지역사랑상품권 이용은 캐시백 등 혜택에 비례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이후 안정기에 접어든 상황을 들어 지역사랑상품권 캐시백 비율 확대 등을 주장하는 이유기도 하다.인천e음이 전국 최대 규모 지역사랑상품권으로 지역 빅데이터 수집·분석, 정책·정보 제공 등 공익성에 초점을 둔 생활 플랫폼 기능도 지속해서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인천시는 인천e음 예산이 재정 건전성이라는 기조 속에 운용되더라도 지역화폐에 내재한 긍정적인 효과가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대책을 함께 강구해야 한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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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전세사기? 또 나올 줄 알았으면서 지면기사
서울 강서부터 인천 미추홀, 대전, 화성 동탄, 구리 등에 이어 최근 수원까지. 발생지를 모두 기억하기 힘들 만큼 대규모 전세사기나 깡통전세에 따른 피해나 우려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전세사기 의혹'이라는 똑같은 꼬리표를 달고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례들의 등장 순서와 지역은 제각각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들에겐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멈출 줄 모르던 주택 매매가 상승세가 주춤해진 지난해 하반기. 그전까지 계속된 부동산 시장 호황에 힘입은 임대인 등 투자자들의 각종 투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이후 꺾일 줄 모르던 상승 곡선이 미끄러져 내려가자 한때 무모했던 투자자들은 그제야 몰아치는 세금 체납, 쌓여가는 은행 이자, 온데간데없는 신규 세입자 등 문제를 맞닥뜨린다. 미리 알았는지 몰랐을지, 무책임한 임대인들은 수습 불가 수준의 채무를 쌓아놓고 난 뒤에야 이를 임차인들에게 떠넘기고 잠적한다.이상한 건 누구나 이 같은 사례가 왜 멈추지 않는지 다 알면서, "언제 어디서든 또 나올 거"라고도 말하면서, 정작 그 피해 가능성을 전수조사해 단 하루라도 미리 대응하도록 해줄 행동에 나서진 않는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임대인에게 '배신 통보' 당해 피해를 눈앞에 둔 임차인들을 위한 지원책에만 몰두할 뿐 당장 내일이라도 추가로 나타나 새로운 피해 지원책을 요구할 임차인들을 미리 찾아내는 데엔 관심이 없다. 이미 앞날이 캄캄해진 피해자들을 구할 지원책을 찾지 말자는 게 아니다. 이들을 돕는 변호사들이 하나같이 "보증금 전부를 돌려받긴 사실 어렵고, 절반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을 숨기지 않는 만큼 추가로 나타날 수 있는 예비 피해자들 피해만큼은 최소화할 방법도 찾자는 것이다.정부·지자체, 관계기관들은 이미 예비 피해자들과 계약 맺은 임대인들의 실거래자료, 피해 가능성 있는 다주택자들 정보, 거액의 근저당이 잡힌 건물들의 자료를 모두 갖고 있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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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K' 유감 지면기사
무릇 '말의 무게'를 실감한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표현들이 어색한 일상어로 굳어지는 사례를 심심찮게 접하기 때문이다. 'K'도 그렇다. 한국적인 것을 뜻하는 접두사로 굳어진 K는 국제 무대에서 한국 노래 장르를 표현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국위 선양급 파급력을 나타내면서 국제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분야라면 여기저기 K가 붙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는 과한 자부심을 주입해 거북하다는 반응을 낳기도 했다. 지면에 남는 표현 하나 하나를 고민하는 입장에선 매 단어마다 어색하게 읽히진 않을지 경종을 울리는 단어인 셈이다.최근 한 K 단어를 독자로서 접했을 때도 익숙한 거북함이 떠올랐다. 허영인 SPC 회장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불출석 이유서에서다. 그룹 내 잇따른 산업재해 책임으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허 회장은 "K푸드 세계화와 함께 SPC그룹 글로벌 사업 확장을 목표로 계획된 불가피한 해외출장"을 이유로 출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식'이라는 어엿한 우리말을 두고 어색한 외래 합성어를 운운하는 것은 둘째치고, 자사 영업활동에 K를 붙여 가며 국감 출석 의무보다 우위에 있다는 정당성을 스스로 부여하는 모양새다. 거론된 김에 한번 K를 써보자면, 설령 SPC가 세계화를 주도한들 이를 동반해 국제사회에 알려질 'K노동'은 어떨까. 지난해 사망사고로 질타를 받고 그룹 차원의 재발방지 약속이 있었음에도 올해 다시 사망사고가 반복됐다. 그룹 전반에 크고 작은 끼임 사고도 여전히 벌어졌고, 국감 기간 한 계열사 대표이사가 고개를 숙인 와중에도 다른 작업장에서는 손가락 골절 사고가 있었다. SPC 세계화의 비결로 이런 K노동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건 자부심은커녕 두려울 일이 아닌가 싶다."신선도가 중요한 식품 제조업 특성상, 다른 산업군과 비교해 보면…." 사측 입장을 물을 때마다 항상 억울한 반론이 돌아온다. 국회 출석 요구는 그것을 직접 설득하라는 요구일 뿐이다. K를 붙일 만한 자부심이라면 그리 어려울 일이 아니지 않을까. 국감장이 아닌 청문회장에 서게 된 허 회장을 주목할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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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고향이 어디세요? 지면기사
"탁구 해외동포부는 조 추첨을 위해 지하 사무실로 모이시기 바랍니다."지난 16일 전남 목포실내체육관. 안내방송에 졸음이 달아났다. 재밌는 취재가 분명하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민을 갔다 다시 고국에 라켓을 잡으러 온 걸까. 전국체전을 위해 모인 16개국 해외 동포 선수 중 경기도민이 없을 리는 만무하다. 당시 시간은 오전 9시40분. 20분 동안 취재를 마치면 10시에 치러지는 경기대 한도윤의 시합도 무사히 볼 수 있다.예상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됐다. "그런데 고향이 어디세요?", "그건 왜 물어봐요? 서울이요.", "오시느라 힘들었겠어요. 고향은 어디예요?", "저요? 서울.", "연습 많이 하셨겠어요. 혹시 고향이?", "청주요." 운이 확률을 배반했다. 인터뷰한 동포 선수 중 경기도민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어느덧 분침은 10분을 가리켰다. 1세트를 시작한 한도윤이 한창 화려한 서브를 날리고 있을 게 자명했다. '사진도 찍어야 되는데…'. 이마에 땀까지 맺혔다.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없었다. 목포에서 경기도민 찾기를 그만두고 탁구 경기장으로 돌아갔다.예상대로 한도윤은 날아다녔다. 우승에 성공한 그는 '호날두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관중에게 소소한 웃음을 줬다. 즉석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승 소감, 기억에 남는 대결 상대, 내년 계획 등 질문 세례에도 그는 논리정연하게 답했다. 덕분에 인터뷰 기사 마감이 손쉽게 끝났다.노트북을 덮자 긴장이 풀리면서 허기가 몰아쳤다. 그 유명하다는 전라도 백반에 밥 한 공기를 싹싹 비우고 나자 기운이 났다. 그러나 포만감도 잠시, 곧이어 미뤄뒀던 탁구 해외동포부 르포 기사가 다시 압박해왔다. 경기도민을 찾지 못한 현장, '경기도민 이야기 없는 경기 지역 신문 경인일보 16면의 어느 기사'.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경기도, 경기도민, 경기도 지역지….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경기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손가락만 움직였다. 완성하고 보니 나쁘지 않았다. 예상외로 '경기도' 없이도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