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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인칼럼]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경인칼럼] '법치'가 아니라 정치를! 지면기사

    제자백가 중 법가(法家)는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秦)의 국가 사상이었다. 그런데 법가를 대표하는 상앙(商앙)과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는 하나같이 비참하게 죽었다. 진효공을 도와 변방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진(秦)을 중원 최강의 군사 대국으로 키웠던 상앙은 효공 사후 정적들의 탄핵을 받아 자신이 제정한 형벌인 능지처참을 당했다. 법가 사상의 완성자로 진시황을 매료시켰던 한비자는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으로 독살당했다. 한비자와 이사는 모두 순자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제자였다. 옛 친구를 제거한 후 승상이 되어 최고 권세를 누리던 이사도 시황제 사후에 간신 조고(趙高)의 배반으로 길거리에서 처형되고 만다.진나라의 운명도 마찬가지, 진시황이 죽자 황제가 된 2세 호해는 전형적 혼군(昏君)이었다. 권력 암투와 내란이 격화되어 천하 통일 15년, 진시황 사후 3년 만에 제국은 무너지고 만다. 진 제국 멸망의 도화선이 된 진광·오승의 반란도 기실 엄격한 형벌 제도가 한 원인이었으니 법치로 세운 나라가 결국 법치 과잉으로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진왕조의 멸망사를 통해 법가의 정치사상적 가능성과 한계를 볼 수 있다. 법가와 법가의 나라 진의 흑역사는 2천년 전의 중국의 일이라 치부할 수 있겠으나, 새 대통령과 각료들이 남발하는 '법치주의'는 예사롭지 않다. 행정이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거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한다면 법치주의라면, 또 법치주의는 역사적으로는 절대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성립한 근대시민국가의 정치원리를 천명한다면,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 문제는 왜 지금 법치주의인가라는 질문이다. '법치'는 과거 치안본부나 국정원이 공안정국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혹은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예고였다. 법률의 형식으로 행해지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횡포였다.법 앞에 평등은 당위론에 불과하다.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믿는다.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은 그만큼 깊다. 약자들은 법으로 얽으면 걸려들지 않을 수 없지만 법의 허점을 아는 기술자들에게 법은 그저 성긴 그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 [경인칼럼] 우리나라 인물 백과사전 '조선고금명현전'(1922)

    [경인칼럼] 우리나라 인물 백과사전 '조선고금명현전'(1922) 지면기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타인의 수고요, 자연의 은혜다. 오늘 아침 내가 먹은 계란 프라이만 해도 닭과 닭을 사육한 농장주와 이를 운반하고 유통시켜준 물류관련 종사자들과 조리한 이의 수고다. 더 따져보면 사료를 만들고 공급하는 사람과 이를 운반할 차량을 만들고 도로를 뚫고 수리한 사람과 아스팔트 포장을 위해 원유를 시추하고 이를 유조선으로 운반한 사람과 정유한 사람 등 한 개의 계란 프라이가 내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일상 하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수고와 은혜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한다. 요즘 같은 IT세상에서는 웹 검색을 통하면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거의 다 얻을 수 있다. 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그녀가 역사적 인물이든 작가든 연예인이든 검색만하면 거의 다 나온다. 요새는 대부분 역사적 인물이나 예술인보다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먼저 화면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소소한 정보도 입력한 이의 수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물들을 정리한 이들의 노고와 연구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정보다.한동안 세계 각국의 인물 정보를 얻으려면 '후즈후'(who's who)라는 세계 인명 백과사전을 이용해야 했다. 근대 조선에서도 이런 국내판 '후즈후'가 있었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인 1922년 홍문사에서 나온 '조선고금명현전'(1922)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정보는 고급 정보나 전문 지식에 포함되지도 않지만, 이 같은 보편성을 만들어 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수고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말 역사상 인물 889명과최치원 부터 조돈까지 77명의 초상화 정리 도서관이나 출판사정이 열악했던 그때 그 시절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역사상의 인물 889명과 더불어 동국문종(東國文宗)으로 통하는 고운 최치원의 초상화부터 죽석 조돈(竹石 趙暾)에 이르기까지 77명의 초상화를 정리해놓은 귀중한 자료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들도 있고 낯선 인물들도 있으나 일체의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

  • [경인칼럼] 최저임금법은 방아쇠법

    [경인칼럼] 최저임금법은 방아쇠법 지면기사

    근래 들어 손님이 뜸한 시간대인 오후 3∼5시에 '브레이크타임'(휴게시간)을 갖는 접객업소들이 크게 늘었다. 이 시간대에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야 하는 이들은 난감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이따금 단골식당을 찾은 식객들은 낭패감에 화가 치민다. 코로나19가 도심거리의 풍경을 바꿨다.브레이크타임은 노동자들의 과로 방지목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54조는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제공할 것'을 명시했다. 브레이크타임의 저변확대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매출 격감이 결정적이나 인건비 부담도 간과할 수 없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문재인정부 집권 초인 2017년에 6천470원이었으나 2022년에는 9천160원으로 5년 만에 41.6%나 올랐다. 파리만 날리는 오후에 가게 문을 열은 상태에서 직원들에게 휴게시간을 주려면 추가고용이 불가피하다. 시간당 최저임금 文정부 초기보다 41.6%↑업종별 차등적용 영세중기·소상인들 숙원 지난달에는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경제계의 최대관심거리였다. 기업들이 임시직이라도 채용하려면 퇴직금은 고사하고 최저임금에다 노동자가 1일 8시간씩 주(週) 5일 근무 시 하루치의 주휴수당과 4대 보험까지 부담해야 하니 말이다. 24시간 영업하는 편의점들은 야간근무(오후 10시 ∼오전 6시) 직원들에게 주간(晝間) 임금의 1.5배를 부담해야 한다. 국내 4대 편의점그룹(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의 간판을 단 점포들 중에서 편의점 한 곳만을 운영하는 생계형 자영업자 비중이 70%인데 코로나19와 과당경쟁 등으로 전체 매출이 2∼3년 전 수준으로 주저앉았단다. 전국 80만 외식업체들은 식자잿값까지 가파르게 올라 더 불안하다.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숙원(宿願)이었다. 산업별 노동강도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음식·숙박업 등 서비스업종과 도·소매업 등 취약한 업종일수록 최저임

  • [경인칼럼] '공생'아닌 '소멸'로 갈 것인가

    [경인칼럼] '공생'아닌 '소멸'로 갈 것인가 지면기사

    한국정치의 성격을 규정짓는 말 중 '적대적 공생'이란 말처럼 정확한 말이 있는가 싶다. 물론 적대적 공생이란 단어는 비단 정치에서만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영정치가 위세를 발휘하는 한국정치에서 이 단어는 정치를 함축하는 상징적 용어다. 민주화 이후 5년만에 정권교체를 경험한 첫 대선에서 패배한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에 진 책임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성찰과 숙고로 답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친문 대 친명의 계파갈등이 그칠 줄 모른다. 오는 8월28일 전당대회에서의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권력다툼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권력의 핵으로 하는 그룹들은 이 대표를 끌어내리는 데 일단 성공한 형국이다. '0.73' 매직의 함의를 두 정당 모두 잊고 있는 결과다.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에게 이 의미는 야당과 부단히 소통하고 문재인 정권 때의 정권을 변경할 때 충분히 협의하여 국회는 물론 국민일반의 동의를 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압도적 승리의 경우 이러한 절차가 생략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경계가 선거라는 집단지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민주당은 불과 0.73%라는 근소한 차이로 졌지만 5년만에 정권을 내 준 참담한 결과를 거울삼아 팬덤에 몰입되고 독선과 내로남불에 도취된 행태를 근본부터 바꾸고 진보의 본래의 가치를 찾으라는 국민의 명령이었다. 여야, 선거직후 당권잡기 권력투쟁에 몰입양당 당내 갈등 개선안된 공천제도에 기인 그러나 두 정당 모두 선거 직후부터 당권을 잡기 위한 당내 권력투쟁에 경쟁하듯이 몰입하고 있다. 여권은 정부 내의 여러 혼선을 노출하고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은 해묵은 안보이데올로기 논쟁으로 본질이 비껴가고 있다. 급기야 여권의 지지율은 임기 말 식물정권을 방불케 하는 30%대로 추락했다. 검수완박법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으로 번졌고, 야당은 여권이 검찰과 경찰을 장악하기 위해 좌동훈 우상민을 내세워 역대급 권력사유화에 나섰다며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총선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다. 양당의 적대는 선거 전보다

  • [경인칼럼] 위장애민(僞裝愛民) 그만 보고 싶다

    [경인칼럼] 위장애민(僞裝愛民) 그만 보고 싶다 지면기사

    민선 8기 전국 지자체장들이 지난주 취임했다. 재선한 박형준 부산시장은 '다시 살고 싶은 부산'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은 평생의 과업'이라며 소외계층을 찾았다. 울산시장은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주창했다. 취임사마다 명품, 미래, 환경, 복지, 첨단이란 말이 빠지지 않는다.4년 임기를 시작하는 단체장들 머릿속은 몽환적(夢幻的) 구상으로 충만하다. 수도권 단체장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의 꿈, 대한민국 미래를 만들겠다'고 한다. 8년 전 '인천을 대한민국 발전의 전초기지이자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며 취임했으나 재선하지 못한 이력을 지녔다.심술 폭우로 경기지사와 시장·군수 여럿이 취임식 대신 수해현장을 돌았다. 시정(市政) 청사진을 뿌리면서 아쉬운 속을 달랬다. 잘만 되면 산업단지에 기업들이 몰리고, 사통팔달 시원한 도로망에 대중교통망이 촘촘한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멀지 않았다. 자녀들은 강남 8학군 못지않은 교육환경에, 안심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다.임기 시작하는 단체장들 몽환적 구상 충만해주민들은 시큰둥… 시작은 늘 창대 끝은 미약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불과 한 달 전이나, 누굴 찍었는지 감감할지 모른다. 유권자 절반 가까이는 투표장에도 가지 않았다. 30여 년, 보고 듣고 경험한 게 있기에 기대치가 바닥권이다. 시작은 늘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 재임 중 얄팍한 밑천에, 일그러진 인성이 들통 나 공천도 못 받은 전임자가 허다하다. 어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을 넘치도록 행사하다 법의 심판을 받는 처지가 됐다. 이런 사유로 재선 시장이 한 명도 없는 도농복합 지자체가 있다. 빛나는 전통은 맥이 끊기지 않았다.민선 8기가 이전과 다를 게 없을 거란 예견들을 한다. 보름 남짓 인수위를 보면서다. 어떤 당선인 주변엔 자리와 이권을 탐하는 식승(食蠅)들만 꼬였다고 혀를 찬다. 전·현 공직자, 개발사업자, 정당인, 토호, 각급 단체장 집단이 줄을 대려 애썼다는 후문이다. 여러 지역에서 인수위 구성을 둘러싼 잡음이 일었고, 점령군이란 위세가 여전했다는

  • [경인칼럼] 스케치 기사와 권력

    [경인칼럼] 스케치 기사와 권력 지면기사

    스케치 기사는 쓰지 말 것! 이 지시는 1986년 9월에 공개된 '보도지침'에서 10개월 동안 무려 20회나 반복적으로 나타난 주문이었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의 문화공보부 홍보조정실이 국내 신문과 방송 등을 통제하는 가이드라인으로 매일 각 신문사 편집부에 은밀하게 전달되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상황, 사태의 보도 여부는 물론 보도 방향과 내용, 특정 기사의 배치와 원고 분량, 사진의 사용 여부까지 규정하는 편집지침이었다. 보도지침의 기준은 간단하다. 언론이 대통령이나 정부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사는 키우고 정권에 불리한 사건, 야당이나 재야의 목소리는 축소하거나 아예 다루지 말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왜 하필 스케치 기사의 보도형식을 통제했을까? 스케치 기사는 팩트 위주로 간결하게 작성된 스트레이트(Straight) 기사와 달리 사건의 분위기나 정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보도문이다. 취재 현장에서 기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림 그리듯'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현장 분위기나 모습을 동영상처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스케치 기사의 목적이다. 선거유세장 풍경이나 선거 당일 전국 곳곳의 투표장 풍경, 대규모 집회장의 모습 등은 스케치 기사가 적절하다. 현장성과 생동감 때문에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생생한 현장 분위기 그림 그리듯 기사 작성무소불위의 5공 시절 아예 금지 지침 선택 스케치 기사는 사건 현장에 대한 묘사적 글쓰기로 이뤄진다. 묘사의 글쓰기는 미학적으로는 언어를 사용한 회화적 재현에 해당한다. 묘사는 있는 그대로를 기술한다는 표면적 정의와는 달리 실제 재현 과정에서는 묘사 주체의 태도와 생각이 은연중에 배어들게 마련이다. 묘사 대상의 선택, 대상에 대한 느낌과 묘사문의 언어에 녹아 있는 뉘앙스가 그것이다. 묘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포함될 수도 있다. 묘사문은 디테일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정교한 글쓰기이다. 악마(신)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1면 톱의 제목보다 한 줄 스케치 기사가 강한 여운

  • [경인칼럼] 삼중당문고(三中堂文庫)

    [경인칼럼] 삼중당문고(三中堂文庫) 지면기사

    시인 서정주를 키운 것은 '8할의 바람'이었고, 우리 세대 문청들을 키운 것은 '삼중당문고'였다. 인생과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마치 군대 병영생활 같았던 학교에서 나를 지탱시켜 준 것은 친구들과 삼중당문고였다.시내버스비가 50원이던 그때 시절 방과 후 학교(북중학교)부터 세류동 집까지 꼬박 40~50분을 걸어서 다니며 아낀 돈으로 재개봉 동시상영관에서 철 지난 영화를 보거나 삼중당 문고본을 샀다. 학교도서관도 있었지만 모양만 도서관이었지 책도 많지 않았고 그나마 문이 닫혀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국어교과서와 자습서 외에 문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길이 없었던 내게 수원 종로 일대에 즐비했던 서점들은 꿈의 거리요, 정신의 해방구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중학생에게 접근이 가능한 책은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완전정복 시리즈의 자습서들 그리고 삼중당문고가 거의 전부였다. 버스비를 아껴서 살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에 신학기 집에서는 자습서를 사야 한다고 돈을 타내 헌책방에서 철 지난 전년도 자습서를 구입하고 그 차액으로 몇 권의 문고본을 더 샀다. 황순원의 '일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광수의 '흙' 그리고 염상섭·김동인 등 주로 교과서에서 배웠던 작가들의 작품을 사서 읽었다. 버스비·자습서 살 돈 아껴 읽은 문학작품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삶의 지지대 역할 '안나 카레니나', '춘희', '여자의 일생' 등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봤고 '데미안', '지와 사랑' 같은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나 '마의 산', '파우스트', '일리아드 오디세이' 등은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작은아버지의 서재에서 꺼내 읽었다. 헤세는 잘 읽혔으나 다른 작품들은 뭔지도 모르고 억지로 책장만 넘겼던 기억이 난다. 우리 문고본은 1927년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첫 권으로 시작한 이와나미문고(岩波文庫)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에 나왔다. 1907년 박문서관을 세운 노익형이 1939년 도남 조윤제의 '교주 춘향전'을

  • [경인칼럼] 러시아의 역사적 반전

    [경인칼럼] 러시아의 역사적 반전 지면기사

    1941년 9월 말 독일군대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를 봉쇄했다. 러시아인들의 문화적 긍지인 레닌그라드를 함락시키면 소련 장악은 시간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그 와중에서 히틀러는 소련 농무성 응용식물분류국의 종자은행 탈취를 시도했다. 육종학의 선구자인 러시아의 니콜라이 바빌로프 박사가 전 세계 64개국에서 발품을 팔아 확보한 신품종 17만여 씨앗들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정복지인 러시아 서쪽에 독일인 농업이민을 위해 우량종이 필요했다.독일군이 가장 탐을 낸 품종은 서양인들의 주식인 감자였는데 당시 종자은행에는 바빌로프가 남미의 안데스산맥을 누비며 확보한 6천 품종 이상의 감자 수천 킬로그램이 보관되어 있었다. 연구원 60여 명과 인근 주민들은 독일군의 눈을 피해 10만여 점 이상의 표본과 5t의 각종 식량 종자들을 헤르첸가 44번지의 허름한 건물로 옮기고 직원 3∼5명씩 교대로 24시간 감시했다. 독일군의 장기봉쇄에 따른 식량난과 혹한, 그리고 쥐들과의 전쟁이 연구원들을 피폐케 했다. 1942년 1월 바빌로프의 제자이자 가장 연장자인 드미트리 이바노프 연구원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쌀이 가득 찬 포대들에 둘러싸인 채 숨을 거두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바노프가 굶어 죽어가면서도 자신이 지키던 쌀은 단 한 톨도 먹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군의 봉쇄는 1944년 봄까지 900여 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종자은행의 연구원 30여명이 이바노프처럼 먹거리로 가득 찬 식량창고 안에서 굶어죽었다. 900여 일의 봉쇄기간 동안에 러시아인 수십만명이 아사했다. 16C 스비아토히르스크 라브라 수도원 전소러軍, 우크라 침략 보물급 문화재 파괴 약탈 지난 5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국립 자연공원 내에 위치한 스비아토히르스크 라브라 수도원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전소(全燒)되었다. 이 수도원은 16세기에 건축된 우크라이나 정교회 3대 성지 중의 하나로 매년 수천 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했었다. 지난 2월 말 러시아군의 침략 이후 우크라이나 곳곳의 문화유적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미국 버지니아박물관은 위성추

  • [경인칼럼] 정치개혁 실종과 정당 패착은 어디에 기인하나

    [경인칼럼] 정치개혁 실종과 정당 패착은 어디에 기인하나 지면기사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등 4년 동안 네 번의 전국 선거가 있었다. 평균 매년 한 번 꼴이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선거에 의해 정권을 구성하고 국민의 대표를 선출한다. 지방정치는 주민자치의 원칙에 따라 단체장과 지방의회를 구성한다. 민주주의는 기회비용이 많은 드는 제도다. 소모적인 과정을 거쳐 대표를 선출하고 이들의 각축이 정치불신을 키우지만 이 또한 현실정치의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규범적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 없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끝났다. 앞으로 2년 가까이 전국 규모의 선거가 없다. 선거를 의식하지 않으면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여야 정당이 당내 권력투쟁에 매몰되어 오만해지고 독선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도 반성하지 않고 독단과 진영에 갇혔던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보면 선거가 있다고 민심에 조응하는 것도 아니다. 제8회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완승이라고 하지만 정권 출범 3주만에 치러진 탓에 여권은 평가를 받을만한 이렇다 할 대상도 없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선 패장 당사자와 당 대표가 출마하고 대선 직후 성찰과 쇄신을 뒤로 한 채 검수완박의 무리한 추진 등 민심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 데 대한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포기 때문에 승리한 것이다. 오죽하면 민주당의 아성이자 전략적 투표 성향과 정치관여도가 높은 광주에서 37.7%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왔을까. 여야 혁신위, 의제 삼을 개혁메뉴 차고 넘쳐논쟁속 계파 형성땐 갈등 마다할 이유 없어원론적이지만 선거의 존재이유는 민생과 경제를 위해서다. 여기에 정치공학과 각종 이슈, 구도와 바람, 인물 등의 요소가 복잡다기하게 얽히면서 선거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구성된다.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수단으로서의 선거 본연의 의미가 상실된 채 정치공학과 정치인들의 탐욕이 목적이 되어버린 목적과 수단의 도치가 정치의 현주소다. 민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정의가 공허하지만 최소한의 정치

  • [경인칼럼] '정치 추경(追更)'

    [경인칼럼] '정치 추경(追更)' 지면기사

    전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통장에 정부 지원금이 꽂혔다. 지역별로 시차는 있겠으나 6·1지방선거 전 일단락될 전망이다. 직종과 피해 규모를 따져 적게는 600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까지, 371만명이 수혜를 받는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거리 두기로 생계가 버거운 서민들이 단비를 맞았다.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인 코로나 손실보상은 여정이 고단했다. 이달 중순께 주겠다는 정부 계획보다 보름 남짓 늦어졌다. 여·야 셈법이 달라 산통(産痛)이 요란했다. 여당은 지방선거전 지급을 원했고, 야당은 지방선거 뒤로 미루려 했다. 표심에 미치는 득실이 달랐기에 타협이 쉽지 않았다.여야 합의 시점이 절묘하다.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대통령에 영수회담을 역제의한 야당은 심상치 않은 여론에 더는 버티지 못했다. 눈치를 살피다 계양을에서 예상 밖 접전 중인 이재명 후보가 윤허(允許)하자 서둘러 회군했다. 국회 전반기 마지막 날 타결되면서 선거 전 집행됐다. 야당은 사전선거의 직접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됐다. 여야가 절반씩 주고받은 셈이다. 일정이 촉박해 지방선거 이후 집행될 것이란 야당 예측은 빗나갔다. 정부·여당은 치밀하게 대처했다. 관련 부처 직원들은 휴일에도 비상근무를 했다. 전국 동시 처리를 위해 전산망을 확충하고 간편 인증 기능을 보완했다. 정부는 30일 이른 아침 국무회의를 열어 집행 절차를 매조지했다. 본회의 통과 9시간 만이다. 같은 날 오후 통장에 지원금을 쏘아댔다. 야당의 허를 찌른 전광석화다. 직전 정부가 국무회의 개회 시간을 늦춰가며 '검수완박' 법안을 완결지은 장면과 오버랩 된다.소상인·자영업자 정부지원금 선거전 수혜야, 심상치않은 여론에 버티지 못하고 합의 60조원 넘는 추경은 역대 기록을 뛰어넘는다. 국가부채가 늘고, 물가를 자극하는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올해 거둬들일 세수 초과분 53조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국고에는 아직 쟁이지 못한 미수금이다. 한국은행에서 꿔다 쓰고 연말에 갚기로 했다. 국채발행에 따른 부담을 덜고, 비난을 피하려는 뻔한 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