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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맨얼굴로 웃다 지면기사
"주말마다 관악산에 올라갔는데, 사람이 드문 산길에서는 슬그머니 마스크를 벗었어. 지난 2년동안 산속에서 '마스크 씁시다' 하는 소리를 두 번 들었어. 예, 하고 지나쳤지."우리는 산속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 예방에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나는 그런 일을 한 번 겪었는데, 횟수가 적다고 해서 내가 더 운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마스크 씁시다"라고 점잖게 말하는 게 아니라 "마스크 똑바로 쓰지 못해?"라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날 나는 마스크를 잘 쓰고 있었으므로 그 고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나운 검열관의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기분을 망치기엔 충분했고 아름다운 산길은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더 문제야! 누가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라고 면허를 줬나? 어디다 대고 욕을 하는 거야!"어느 용감한 시민이 그에게 맞서 소리를 질렀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그에게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냈다. 함께 소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서, 상한 기분을 수습해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을 뿐이었다.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 일주일간 자유 만끽맨 살갗에 와닿는 봄 햇살·꽃 향기에 '감격' 지난 2년 동안 이런 일들을 겪은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시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거대 권력의 존재를 예언하고 빅브라더라고 명명했는데, 알고보니 빅브라더보다 더 무서운 건 스몰브라더 들이었다. 서로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규칙의 위반을 건건이 지적질하는 이웃들의 목소리는 거대권력의 익숙한 협박보다 더 가깝고 피할 길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실외공간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5월 첫 한 주일은 감격스러웠다. 소소한 볼일을 보러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만끽했다. 해마다 봄이면 꽃과 맑은 날씨를 즐겼지만 이번 5월의 도시에서 나를 가장 즐겁게 한 것은 향기였다. 숨쉬는 공기에 이토록 향기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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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검수완박, 그들만의 잔치 지면기사
검사가 잘 할 수 있는 게 뭘까? 범죄와의 싸움, 범죄인과의 싸움이다. 그런데 검사가 대통령이 되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무서운 것일까. 현 정권은 지금 검수완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들에게 '죄가 없으면 검찰 수사권을 박탈할 필요가 없는데 얼마나 죄가 많길래 저렇게 서두르지'하는 의구심만 키워주고 있다. 검수완박이 된다고 이미 지은 죄가 사라지겠는가. 누가 봐도 스스로 범죄자임을 자백하는 듯한 그들을 검사 출신 대통령이 그냥 두겠는가. 공직자 임명은 대통령 권한이니 베테랑 검사 몇 명만 경찰로 임명해 수사를 지휘하게 하면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는 오히려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정권의 눈치를 누가 더 보던가.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도 정권의 뜻을 거슬러 조국 수사를 강행하지 않았던가. 검찰에는 또 다른 윤석열 검사가 얼마든지 남아있다. 그런 뻣뻣한 검사들을 피해 경찰에게 수사를 전담시킨다니 정권 입맛에 맞는 정치적 수사도 더 쉬워져 차기 정권으로서는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검수완박은 차기 대통령에게는 불감청 고소원일 것이다. 며칠 전 검수완박 절충안에 '국민의힘' 원내총무가 극찬하여 국민 모두 어리둥절했다. 셈에 밝은 새 대통령의 뜻과 무관했을까? 민주당이 대통령 권한을 사실상 강화시켜주는 법안을 만들어 바친다는데 굳이 마다할 필요가 있겠는가. 문제는 검수완박의 진짜 피해자가 국민인 바로 우리라는 점이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비결도 경찰력이었다. 당신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당신이 범죄의 피의자가 되었을 때 검찰과 경찰 중 누구의 수사를 받고 싶은가. 정권간 힘겨루기에 찬성파·반대파로 갈려경찰로 수사권 이관땐 결국 국민들만 피해 중학생 때 이발관에서 옆자리 손님이 시계를 잃어버렸다. 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파출소 소장은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발관에 주인과 손님 그리고 나뿐이라서 세 사람 중 훔쳐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낸다고 했다. 이러다 감옥에 갈 수 있겠구나 공포감이 밀려왔다. 경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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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민주당, 이러다간 20년 지나도 정권 못 잡는다 지면기사
문재인 대통령 당선 1년 후 2018년 이해찬은 더불어민주당 20년 장기 집권을 이야기했다. 다음해 당대표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하자 현실화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1933년 이후 30여년 민주당 장기 집권 선례도 있었다. 집권 전략으로서 정책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벤치마킹해 그린뉴딜을, 통치는 조선의 태종과 세종을 모델로 삼기도 했다.그러나 20년 집권 꿈은 5년만에 끝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민은 헌법상 대통령 5년 임기와 상관없이 지난 30년간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면서 보수와 진보, 다시 보수가 차례로 각 10년 집권하도록 했다. 즉 우리 헌법은 5년 단임제이지만 국민은 10년 통치의 기회를 주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20년 집권은 고사하고, 30년간 이어져 오던 10년 국민연임에도 실패했다.분명 대선에 패배한 지금 민주당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서울시장과 충북도지사 공천과 국회 '검수완박' 강행에서 민심과의 괴리, 대선 후 당내 패배주의, 그 와중에서도 헤게모니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민주당이 향후 20년 내에 다시 집권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민주당 위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위기의 구조는 무엇인가? 놀라운 것은 민주당 위기는 당이 가장 전성기 때 시작이 되었다. 2017년 탄핵의 중심인 촛불시민세력을 19대 대선 이후 통치의 기반으로 두고, 이은 2020총선 대승으로 입법 일방주의와 법적 정합성만 따지는 전성기 때였다. 서울시장·충북지사 공천·'검수완박' 강행민심과 괴리… 대선 패배후 모습 정상아냐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당의 위기 출발은 탄핵이다. 입헌민주국가에서 탄핵은 민주적 원칙이나 역사적 평가에서 매우 논란이 된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는 탄핵의 정당성을 역사에만 맡겨놓을 수 없었고 임기 중에 스스로 정당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은 전 정권의 탄핵을 정당화 시켜줄 정치적폐와 부동산·재벌 등 기득권 적폐를 통한 카타르시스 프레임이 필요했다.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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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그 많던 기원은 어디로 갔을까? 지면기사
바둑을 사랑한 사람으로 동네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며 승부에 몰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마다 바둑 두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 견줄 수 없었다. 바둑에는 패배의 쓰라림이 있고, 승리의 달콤한 쾌감과 명예로움이 있다. 동네 기원이 사라지는 것은 바둑 인구가 줄고, 기원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일 테다. 승부의 짜릿함에 취해 기원에서 낮밤을 흘려보낸 기억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다. 바둑은 흑백으로 나뉜 상대가 가로 세로 19개의 줄이 교차하는 361군데 중 한 곳에 돌을 착점하며 누가 더 많은 집을 차지하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바둑판 네 군데 귀에 화점이 있고, 중앙엔 천원이 있다. 바둑판은 하나의 우주를 표상한다. 여기에는 동양의 우주관과 철학이 집약되어 있다. 바둑 규칙은 단순한데, 그 수의 깊이는 헤아릴 길이 없다. 돌 하나는 무한이고 그 변화의 깊이는 심연에 가깝다. 바둑과 장기는 그 규칙이 딴판이다. 장기는 차, 포, 마, 상, 졸로 나뉘고 그 이동 경로가 다르다. 차는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졸은 뒤로 물러설 수 없고 오직 한 칸씩만 전진한다. 바둑의 돌은 그 자체로 동등하다. 다만 돌과 돌은 상호연관 속에서 그 가치의 경중이 달라진다. 어느 지점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어느 돌은 폐석이 되고, 어느 돌은 요석이 된다. 돌이 한 점 한 점이 놓일 때마다 판세가 요동치며 천변만화가 일어난다. 승부는 한쪽으로 기울다가 뜻밖의 변수로 뒤엎어지며, 국면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둑 인구 줄고 운영난에 아련한 추억뿐놀이이되 도덕·정신적인 면 고양 시켜 줘 바둑은 영토를 두고 이익이 상호 충돌하는 까닭에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돌을 놓을 때마다 효율을 따진다. 수의 계산에 밝고, 직관과 논리에 뛰어나며, 판세를 읽는 힘과 자기 제어 능력이 좋아야 바둑이 세질 수 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한이다. 수없는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한 점 한 점을 놓아야 한다. 초보자는 정석(定石)을 외우고, 행마법과 기리(棋理)를 익혀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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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는 어떤 빗방울이 될까 지면기사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나에게 깜짝 놀라 여러번 확인했던 질문이 있었다."너 김신조 몰라? 정말로 김신조가 누군지 몰라?"나는 정말로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를 모른다고 고개를 저으면 어른들은 긴 탄식을 내뿜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김신조를 알게 되었다. 김신조는 1968년에 북한에서 내려와 청와대를 습격하려던 31인 무장공작원 그룹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내가 태어나기 4년 전의 일이었으니 나는 그를 모르는게 당연했는데도 어른들은 내가 그를 모른다고 할 때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냐고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장탄식을 내뿜었다.그때 탄식하던 어른들의 심정을 이제 나도 안다. 내 딸을 포함한 젊은 세대가 이웅평, 황영조, 하다못해 아기공룡 둘리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옛 어른들처럼 놀라며 긴 한숨을 내뿜었다. 그 한숨은 세월의 빠름에 놀라고 세상사의 무상함에 굴복하는 의미였다.요즘 인기를 끄는 소년범에 대한 법정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잊혀진 인물들 중 하나인 신창원을 오랜만에 떠올렸다. 신창원을 안다면 당신은 옛날사람이다. 1997년 신출귀몰한 탈주범으로 세간에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렸을 때 신창원은 물론 소년범이 아니었다. 2년 넘게 도피생활을 계속한 끝에 눈에 띄게 알록달록한 쫄쫄이 티셔츠를 입고 체포되어 사나운 표정으로 끌려갔던 그는 이십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를 인터뷰한 어느 기사에서 그는 소년 시절의 어린 마음을 외쳤다."내가 어릴 때 단 한 번이라도 '너 착한 놈인거 안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그 어린 목소리는 가시처럼 내 마음에 콕 박혀 오늘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인간은 때로는 믿을 수 없이 부조리하다신창원처럼 착한 놈 소리 듣고 싶어한다 심한 범죄를 저지르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말썽꾼'이라는 평판을 얻은 아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나쁜 소문이 자자한 어느 아이를 만났을 때 나는 그 아이가 조심스럽고 참하게 행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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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돈이 뭔 줄 아시오? 지면기사
"돈이 뭔 줄 아시오?" 며칠 전 도쿄에서 처음 만난 그의 물음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뉘앙스로 보아 이 사람이야말로 돈을 정말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사이타마에 사는 그를 만나러, 아니 그의 돈을 만나러 간다. 어쩌면 그의 삐뚤빼뚤 못난 이를 보러 가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가난한 농부가 주는 용돈을 한사코 거절하느라 쌀가마를 서둘러 지다가 꼬꾸라져 앞니 몇 개가 부러졌는데 돈이 없어 꾹꾹 손으로 박아 넣었다고 했다.하정웅. 일본 아키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 올라왔지만 잘 곳도 먹을 것도 없었던 그는 전기부품상에 겨우 취직해 야간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학비를 제하고 2천엔으로 한 달을 살아야 했던 그에게 찾아온 것은 영양실조였다. 그런 그가 1만여 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미술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천경자, 박서보, 쿠사마 야요이, 샤갈,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걸작을 태어나지도 않은 대한민국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어떻게 돈을 벌어 천문학적 가치의 그림을 샀으며 왜 기증한 것일까?시력 손상으로 직장에서도 잘려난 그는 민단을 찾아갔고 박봉의 총무 일을 맡게 되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교포들은 이름도 쓸 줄 몰랐다. 그는 교포들의 손과 발이 되어 뛰어다녔다. 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다. 똑똑한 사람이란 '공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 아닌가! 결혼축의금으로 가전제품을 사러 간 그에게 가게 주인이 사정했다. "오늘 받은 물건값을 가게 부도 막는 데 쓰도록 해 달라. 대신 내가 월부로 갚아 나가겠다" 딱한 사정에 승낙하고 말았는데 월부금 청구서가 계속 그에게 날아왔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 덕분에 그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가게 주인에게 항의하자 가게를 넘겨줄 테니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그가 빚더미의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나자 자녀들 혼수를 장만하려던 교포들이 몰려들었다. 민단에서의 그의 희생적인 친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러져가던 가게가 대리점으로 승격했고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까지 납품하는 큰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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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대통령 국민중임제의 종언 지면기사
1987년 민주화 이후 헌법상으로는 대통령 임기5년 단임제다. 그럼에도 국민은 같은 정당 또는 집권세력의 2 대통령을 연이어 뽑아주었다. 그 결과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보수·진보가 10년을 주기로 집권했다. 즉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헌법상으로는 5년 단임제이지만 국민은 같은 정당이나 진영의 대통령 중임제를 자리잡게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의 당선은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국민중임제에서 연임에 실패한 것이다.실패 원인은 명확하다. 선거 후 승자에게서 승리요인을, 패자에게서 패인을 찾고 있지만 이번 대선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실패다. 한길리서치의 대선 직후 3월12∼14일 조사에서 이번 대선 총평을 물은 결과, 국민은 '윤석열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전략이 앞서서 이겼다'는 6.7%, 상대인 '이재명 후보의 정책이나 선거전략 실패로 이겼다'는 14.6%에 불과했다. 반면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으로 윤석열 후보가 이겼다'는 평가가 48.7%로 두 후보 승패 요인을 합한 수치의 두 배보다 많았다. 즉 국민들은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 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투표한 측면이 크다. 이는 대선 패배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도 더 명확히 드러난다. 대선 패배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에 대한 질문에서 '책임이 있다'가 72.8%로 '책임이 없다'는 평가 24.6%보다 3배 정도가 더 많았다. 민주당 대선패배 文대통령·靑 책임 '72.8%'각 후보 정책적 완성도·국민 공감대 못 얻어 대체로 대선과 총선의 성격을 규정할 때 총선은 대통령 임기 중후반에 치러질 경우 정권심판론이었으며 대선은 미래에 대한 선거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달랐다. 미래 국정에 대한 비전이나 공약 보다는 과거 회귀 성격의 정권 심판이 선거기간 내 일관되었으며 그에 따라 정권심판에 찬성하는 진영을 중심으로 한 후보 단일화와 세대연대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양자 대결 구도를 보였다.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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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는 이상한 미래에서 온 사람이었다 지면기사
젊은이들이 떠나고 시골에 남은 건 노인들, 공허하게 짖는 개들, 여기저기 펄럭이는 폐비닐, 함부로 나뒹구는 농약병뿐이다. 시골은 조개무지, 고인돌, 옛사람의 주거지만 남은 유적이나 다름없었다. 촌락공동체가 깨지고, 마을엔 스산한 적막감이 감도는 시골에서 나는 10년 넘도록 혼자 살았다. 나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시골에서 집을 짓고 생활을 꾸리며 혼자 사는 자의 슬픔과 기쁨을 겪었다. 봄에는 영산홍이 피었다 지고, 봄비가 다녀갔다. 봄비 내린 뒤엔 원추리 싹이 지표를 창끝처럼 밀어올리고, 새로 돋는 작약 움은 착한 소년 같았다. 영양분을 듬뿍 머금은 노오란 햇빛 아래 작약꽃이 피고 나비는 작약꽃에 앉아 우표 만한 날개를 접었다 폈다. 버드나무 가지가 초록빛으로 물들고, 직박구리가 감나무 가지에 와 울던 날엔 나무시장에 가서 묘목 몇 그루를 사다 심었다. 귀한 꽃을 보려고 사오년생 모란과 배롱나무를 심었지만 뿌리가 냉해를 입어 말라 죽었다. 이른 봄날의 냉기 속에서 시린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장자와 노자를 읽고, 강희안의 '양화소록(養花小錄)'이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들춰보거나 그 어렵다는 들뢰즈의 책을 꾸역꾸역 읽었다. 그 외로운 날에 독서가 무슨 쓸모가 있었을까. 목전의 필요와는 상관이 없는 무용한 독서였다. 그것은 영원에 가 닿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와 닮았다. 독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중의 하나다. 어쩌면 그것은 침묵의 신에게 드리는 기도였는지도 모른다. 서재에서 책을 읽는 동안 산에서 내려온 산개구리는 하천에서 시끄럽게 울었다. 호오이, 호오이. 첨엔 낯선 새가 우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한두 해 지난 뒤 누군가 그게 짝짓기 할 짝을 찾는 산개구리 소리라고 알려주었다. 봄날 오후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온 좁쌀막걸리 몇 잔을 들이킨 뒤 불콰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혼자 누워 있자니, 또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적막한 시골에서 10년 넘도록 혼자 살아책을 읽고 일정한 시간에 밥 해 먹고 자고 혼자인 날에도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면 김치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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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선택에 관하여 지면기사
옛어른들 말씀이 '열두 재주 가진 놈 조석끼니 없다'고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때 나는 장래 희망을 묻는 질문에 "과학자랑 외교관이랑 작가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였다. 어른들은 껄껄 웃으며 셋 중 무엇이 되어도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게 덕담인줄 모르고 왜 하나만 하라고 하는걸까 이상하게 여겼다. 그때는 내가 벤저민 프랭클린에 맞먹는 인재인줄 알았다. 거창한 미래상은 겨우 대학 입시 한번을 치르며 현실에 맞게 조정되었다. 나는 세가지 꿈 중에 과학자의 미래를 선택하면서 이 정도 아담한 꿈이라면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분자생물학과라는 낯선 학과를 선택했는데 분자 단위에서 생명현상을 연구한다는 그 학과의 취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생명과학은 미래의 핵심산업이 될 것이 확실했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해보니 과학자의 길이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 생명작용의 과학적 메커니즘 같은 근사한 어휘에 매혹되어 시작했지만 연구의 실제는 끝도 없는 실험과 논문연구, 데이터와 그래프와 통계의 연속이었다. '알고보니 나는 문과였구나' 속으로 후회했다. 게다가 찬란해보였던 생명과학의 미래가 실은 그리 밝지 않다는 식의 암울한 전망들이 줄을 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생명과학 연구인력은 너무 많은데 좋은 일자리는 적다는 것이었다. 힘들고 어려운데 전망까지 어둡다니,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았다. 최선의 선택이 최상 결과라는 착각 때문에오랫동안 앙앙불락하며 어리석은 시간 보내이십대의 용기와 낙관을 긁어모아 나는 문학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과학자의 재목이 아닌 것을 깨달았으니 내 진짜 적성은 문학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문학계는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좋은 상을 받으며 근사하게 등단했고 내가 예술로서 인류에 이바지할 미래를 다시 한번 확신하며 집필의욕을 불태웠다.그리고 10년 뒤, 나는 또다시 번아웃에 나자빠져 있었다. 알고보니 나는 문학적 재능마저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과도 아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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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안철수의 뼈아픈 결단, 윤석열의 든든한 정치력 지면기사
국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단일화가 성사되었다. 그러나 단일화의 진정한 성공과 향후 우리 정치문화의 발전을 위해 단일화 실패의 과정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안철수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협상하자고 요구한 것이 단일화 실패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로운 협상은 약자든 강자든 균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며 정의롭지 못한 협상은 합의에 이르기 힘들다고 했다. 지지율이 박빙이라 윤석열 후보는 혼자 힘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안 후보와 힘을 합칠 때 승리가 보장되는 이런 경우에는 두 후보가 지지율에 상관없이 동등한 출발선에서 협상을 시작해야 정의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윤 후보를 단일후보로 기정사실화하고 안 후보의 사퇴를 종용했으니….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내가 모두 완주하면 승리할 확률은 0%였지만 단일화가 되면 100%에 가까웠다. 복잡하게 계산할 일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는 것보다 정몽준씨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연립정부를 세우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내가 민주당 후보라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은 떳떳한 선택이 될 수 없었다”며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길 가능성이 낮았는데도 정몽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노무현이라는 역사적인 대통령을 만들어냈다. 安, 자리보다 국민 도움되는 일 하고 싶어 해오랜 통화속 정권교체 안 될까봐 진심 걱정안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자신이 패배했던 방식인 여론조사경선을 제안했었다. 안 후보로서는 희생적인 제안이었다. 그런데 윤 후보는 역선택을 염려하며 직접 답을 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지지율이 더 낮았는데도 경선을 받아들였고, 윤 후보는 지지율이 더 높은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간 야권에서는 안 후보에게 총리니 경기지사니 인수위 참여니 하며 몇 자리 주면 사퇴할 거라고 예상했다. 국민들도 몇 자리 준다는데도 완주하겠다는 안 후보가 왜 저러나 의아해했다. 미모를 중시하는 사람은 예쁘냐 미우냐로, 돈을 중시하는 사람은 부자냐 가난하냐로, 권력을 중시하는 사람은 높냐 낮냐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