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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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인천e음카드'에는 슬로건이 없다 지면기사
전세계 다양한 화폐 고유한 문화적 특성지역 주민의 철학과 가치관 내재돼 있어어떻게 설계 했으며 무엇을 배려 했는지인천지역화폐엔 고민·성찰 찾을수 없다지역화폐의 원형은 영국의 선구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이 고안한 '노동증서'다. 사회주의(social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협동조합운동을 창시한 오웬은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가치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해 노동증서를 발행해주면 이를 다른 구성원이 제공하는 물품이나 서비스와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화폐와는 별개였다. 이를 위해 1832년 런던에 전국등가노동교환소까지 설립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화폐 '레츠(LETS :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도 이 노동증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로부터 150년 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코목스밸리의 작은 마을 커트니(Courteney)에서 발행된 지역화폐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출발점은 열악한 경제상황이었다. 지역에 있던 공군기지가 이전하고, 마을주민들의 생계수단이던 목재산업이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았다. 빈곤과 궁핍이 마을을 휩쓸었다. 한 세기 반 전 영국의 노동자들이 처했던 상황과 똑같았다. 이 마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마이클 린턴이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돈이 없으니까 노동을 해주고 물품을 받는 형태의 가치교환이었다. 곧 컴퓨터를 이용해 거래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지역주민들이 이를 이용해 노동과 물품과 기타 서비스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1983년 '레츠'의 태동이다.현재 전 세계 지역화폐는 3천여 종에 이른다. 이름도 '레츠', '녹색달러', '페이퍼', '타임달러' 등 지역별로 다양하다. 당초 노동과 물품의 등가교환 개념이었던 지역화폐는 시간이 흐르면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한 '공동체 통화(community currency)'와 현금적 성격이 강화된 '지역 통화(local currency)'로 나눠지게 된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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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긱(Gig) 이코노미 시대 지면기사
경제 주축 30·40대 고용감소 1년이상 지속제조업 해외투자 속도 국내보다 2.7배 높아기업들 정규직보다 계약직 고용경향 커져사회, 밀레니엄세대 안정된 삶 경제적 도움을소득불평등과 심혈관 질환 사망률 간에 상관관계가 높단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성지동 교수팀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17만8천812명의 수입, 건강검진이력, 사인(死因) 등을 비교한 결과 상위 소득층은 수입 변동에도 심혈관 사망률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에 하위 소득계층의 동일 질환 사망률은 13%로 가장 높았다. 심지어 수입이 감소하는 상위 소득층보다도 3배 이상 높았다. 소득양극화는 국민건강문제인 것이다. 서민생계의 요체는 일자리이다. 지난달 취업자수는 2천740만8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8만1천명이 증가해 1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또한 상반기 취업자 증가는 월평균 20만7천명으로 지난해의 고용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양새다. 그러나 상반기의 월평균 1~17시간 초단기 취업자는 26만9천명이 늘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로만 따지면 전체 취업자 수가 월평균 0.8%씩 증가하는 동안 1~17시간 취업자는 18.5% 늘어난 것이다. 1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통계에 잡히는 지경이니 말이다. 제조업 일자리 점감(漸減)은 점입가경이다. 통계청의 올해 4월 산업별 취업자수 증감 현황자료에 따르면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2018년 4월부터 13개월 연속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 40대의 고용감소는 1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내수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동절약적 기술진보가 화근이나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에 따른 국내기업들의 해외탈출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동안 국내 설비투자액은 99조7천억원에서 156조6천억원으로 연 5.1% 증가한 반면에 제조업 해외직접투자(ODI)는 51억8천만달러에서 163억6천만달러로 연평균 13.6%나 증가했다. 제조업의 해외투자 증가속도가 국내투자보다 무려 2.7배나 높은 것이다. 덕분에 제조업 일자리수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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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총선이 개혁동력을 살릴 수 있을까 지면기사
시민 정치적 의사 대표성 '연동형 비례대표제'후보 선정 객관·공정·투명성 확보 성패 달려양당, 정개·사개특위 양분땐 누더기 될 수도현실주의·권력정치 변화 정합성 제도화 필수정치에는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병존한다. 근대정치학의 시조라 불리는 마키아벨리는 권력정치의 불가피성을 갈파했지만, 정치에 현실주의만 존재한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실과 이상, 실리와 명분이 잘 조화된다면 갈등의 조정이라는 정치의 본령에 가까이 갈 수 있다. 물론 권력구조와 정당체제의 형태, 역사적 배경과 정치문화, 경제사회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정치사회의 작동원리가 정해진다. 한국정치는 현실정치적 요인이 압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이며, 사회적 소수와 약자가 과소대표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지정되고 정치개혁특위 기한이 8월 말까지 연장됐으나 내년 총선에 도입될 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민 각 계층의 정치적 의사가 비례적으로 국회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출신 배경을 보면 고위공직자나 청와대 참모, 법조계, 정당인 등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소수자나 청년, 노동의 국회 진출 비율은 현저히 낮다. 국회란 시민의 대표가 자신들의 이해를 반영하고 제도권 내에서 상충하는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은 대의기구이다. 그러나 특정 계층이 과다대표되고, 약자가 과소대표 되는 구조에서 대의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가 주권자와 유리되고 자신의 특권적 지위에 안주하여 개인의 영달과 입지만을 탐하는 권력기구로 전락한 상황이 국민소환제 공론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선거공학에 익숙지 않지만 시민의 보편적 이익을 대표할 수 있는 인사, 사회적 소수와 약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 정치권에 충원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 비례대표 숫자의 증원이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례숫자의 증원은 당 지도부나 중진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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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내부 투쟁 멈추고 밖을 바라볼 때다 지면기사
중국, 시장 '열었다 조였다' 한국경제 조롱日, 한일협정이후 청구 거부한채 경제제재북, '통미봉남'… 트럼프의 '외교적 상상력'우리를 한반도남쪽에 가뒀다는 직감에 답답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 땅을 밟는 장면은 역사적이었다. 1953년 6·25전쟁 휴전 이후 66년간 이런 장면을 목격하리라고 믿었던 한국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기자의 역사적 오보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독일은 갑자기 통일됐다. 역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전과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옮겨놓기 일쑤다.대한민국이 지금 역사적 변동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무겁다. 태풍의 눈은 맑고 고요해 태풍의 실체를 각성하기 힘들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변동의 한 복판 역시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만 그 사실을 모른 채 무심한 것 아닌가 해서다. 김정은을 판문점으로 불러낸 트럼프의 트윗은 단 몇 줄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판문점 군사분계선 월경(越境)은 단 몇 분이었다. 김 위원장과 50여분 회동한 트럼프가 회동내용을 설명하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한 귀엣말은 30여초였다. 문 대통령이 이를 정리했다. "사실상의 행동으로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한 것"이라고. 6·30 북미 정상 판문점 회동에서 벌어진 몇 토막 이벤트들이 모여 '북·미간의 사실상 종전선언'으로 귀결된 것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남북미 협상은 새로운 양상으로 진입한 모양새다.대한해협에서도 역사적 변동을 재촉하는 불길한 동력이 싹트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족집게 처럼 집어내 경제제재에 나섰다. 한국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 하는 일본산 소재 공급을 막겠다는 결정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국제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일본이 자국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해적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결정에 대한 경제보복이다. 역사적 피해자인 우리가 일본의 정치·경제적 보복을 받는 가치의 전복이 황당하지만, 갈 데까지 간 한·일관계 자체는 생소한 현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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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차별어로 변질한 '다문화' 지면기사
원래용어는 문화적 다양성 가치 장려 근원결혼이민자·이주가족들 구분 용어로 변환당사자에게 수치심·모멸감 주는 '주홍글씨'정체성 혼란 최소화 위한 환경·정책 '시급''다문화'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이색적 서명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용어의 오용을 거듭 지적해온 필자로선 환영하고 지지한다. 더불어민주당 다문화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애초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차원에서 재명명한 '다문화'라는 용어가 의도와는 달리 학교나 사회에서 오히려 차별과 혐오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는 현상을 다시 바로 잡는 운동이다. 연구자들이 쓴 학술논문에서도 객관적인 용어 대신 '다문화 아동' '다문화 자녀' 등의 관용어가 남발되고 있는 실정이며, 교육기관의 교사들도 학생의 이름 대신 '다문화 학생'으로 호명하고 있어, 당사자들에게 '다문화'가 수치심과 모멸감을 강요하는 주홍글씨가 되고 만 것이다.본래 '다문화'라는 용어는 문화적 다양성의 세계적 추세를 분석하는 데 사용하는 술어이며,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주목하고 장려하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뿌리를 둔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였다. 문화다양성의 철학적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것도, 이주민을 차별하는 말이 된 것도 '다문화 가족지원법'의 제정과 관련된다. 다문화주의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결혼이민자나 국제결혼가족에 국한해서 사용한 것은 논리적 오류였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문화론적으로 깊고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개념인데 다문화나 문화다양성의 전형적 사례가 아닌 결혼이민 등을 가리키는 법률적 용어로 사용한 것이다.결국 '다문화'는 한국의 언중들에게 결혼이민자를 비롯한 이주배경 가족들과 자녀들을 구분하여 부르는 말로 바뀌었으며, '다문화'라는 용어가 지닌 본연의 적극적 문제의식도 훼손되고 만 것이다. 차라리 이 법에서 가리키고 있는 '결혼이민자, 국적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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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부고(訃告)기사를 읽다 지면기사
세계적 신문들 인간적 관심사로 열독률 높여국내지면들 연표수준 못 벗어나 '무미건조'이름과 숫자만 나열된 '납세고지서' 같기도이희호 여사 기사 읽으며 관행 허물길 바라 지난 10일 이희호 여사가 별세했다. 언론들이 일제히 부고기사를 실었다. 경인일보도 '한국 여성운동 큰 별 지다'란 제목의 부고기사를 1면에 게재했다. 특히 인천판 1면 기사 '동일방직 여공과 함께 투쟁 여성운동 큰별 지다'는 인천지역 여성운동에 남겨진 고인의 발자취를 따로 짚어 인상적이었다. 2면에도 관련기사가 실렸다. 모처럼 부고기사가 1면과 속지에 함께 자리한 신문을 그날 나는 꼼꼼하게 읽었다.사람의 죽음을 알리고 생애를 반추하는 부고기사는 언제 등장했을까. 언론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쓴 '뉴스의 역사'(1997)에 단서가 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개막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뉴스가 편지 형식의 문자뉴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뉴스레터(newsletter)'의 출현이다. 비잔틴 제국의 심장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던 오스만제국 술탄 모하메드 2세가 1481년 사망하자 뉴스레터가 소식을 유럽으로 실어날랐다. 콘스탄티노플에 사는 한 이탈리아인이 서유럽에 있는 자신의 동생에게 이 엄청난 뉴스를 편지의 형식으로 적어 보낸 것이다. 이 뉴스레터의 필사본들은 다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모하메드 2세가 죽은 지 2년 뒤인 1483년 이탈리아에서 웨일즈의 에드워드 왕자를 위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필사본이 현존한다.부고기사가 이 땅에서 첫 선을 보인 건 1920년의 일이다. 이 해 4월 6일자 동아일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전 판서 이호석씨는 숙환으로 8일 통동 9번지 자택에서 별세하얏는대 14일 오전 10시 자택에서 발인하야 선산에 안장하고, 십오일 오후 5시 왕십리에서 수조(受弔) 한다더라." 조선일보는 1923년 5월 20일자 지면에 독립운동가 김인전 선생의 별세 소식을 이야기 형식의 부고기사로 게재했다. "한국노병회 소속 김인전씨는 삼일운동 이후로 상해에 건너와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우연히 토혈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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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구상나무의 교훈 지면기사
전세계 자국발생 데이터 해외반출 막기 비상외국기업들 국내 정보 무제한 수집 하는데국내기업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활용 못해'데이터 패권주의' 종자전쟁보다 훨씬 심각세계인들에 가장 사랑받는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지구촌 곳곳이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들로 화려하게 장식되니 말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트리는 소나무과의 상록교목인 전나무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한라산과 지리산에서만 자생하는 구상나무로 백 년 전 누군가에 의해 몰래 서양으로 반출돼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이다. 구상나무 소유권을 가진 외국인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매년 수십억 원의 로열티를 받고 있단다.한국은 아열대와 한대가 접하는 전형적 온대 지역으로 사계절의 기온 변화가 심해 식물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특이한 것들이 많다. 국내 자생의 4천여 종의 식물 중 400여 종은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나 이중 상당수가 구상나무처럼 외국산으로 둔갑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국내 생물자원들의 국적이 세탁된 것이다. 1998년 외환위기 때는 토종(土種) 식량종자 소유권마저 경쟁국 육종기업들에 헐값에 넘겨져 한국인의 애용식품인 감자, 배추, 적상추, 버섯, 청양고추와 감귤 등은 더 이상 신토불이가 아니다. 육류를 제외한 농산물 종자 수입액만 매년 2천억 원을 초과하는데 한국특산식품 종자 수입금액도 상당하다.미국과 중국이 정보자료(데이터) 선점문제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최근 3~4년 동안 구글, 애플, MS,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미국 테크기업들이 전 세계의 데이터를 독식했다. 중국정부는 이 기업들의 중국진출에 제동을 걸기 위해 2017년에 '인터넷안전법'을 제정했다. 중국에서 생성된 모든 데이터의 국외반출 금지는 물론 필요시 중국정부가 자국민의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작년 3월 '클라우드법(Claud Act)' 제정으로 즉각 반격했다. 테러 및 범죄 수사와 같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미국정부가 해외에 저장된 미국 기업의 데이터를 들여다볼 권한을 갖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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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한국당은 정당정치를 포기하려는가 지면기사
황 대표 장외투쟁후 '정책 투쟁' 선언 불구여전히 '국회 외면' 정상화 기미는 안 보여색깔론 내세워 결집 시도 시대착오적 퇴행'민심 준엄' 밖에 머무는 시간 짧을수록 좋다정당을 제외하고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다. 민주정치는 정당정치이고, 정당이란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치적 충원 기능과 시민의 이익을 집약·표출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은 갈등을 조정하고, 시민사회의 균열을 제도권에 반영하여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케 하는 가장 중요한 공적영역이기도 하다.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고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공동체의 통합을 꾀하는 기제로서의 정치는 가능의 예술이며 모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한국정당은 불신의 대상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시민사회의 균열과 반목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퇴행적 정당정치의 반복은 거슬러 올라가면 냉전논리와 맞닿아 있다. 적대와 혐오의 언어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정당지지도 상승과 지지층 결집으로 연결되는 정치의 역설은 이념적 진영논리에 기인한다. 집권세력과 제1야당의 대치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개혁입법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쟁점이 없는 민생관련 입법도 진척이 없다. 내년도 총선에 정당의 모든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과, 선거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치부되는 정치현실에서 정당을 나무랄 수만도 없다. 정치를 비판하고 정당을 나무라는 건 국민의 권리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이 가뜩이나 기능을 상실한 정치를 더욱 왜소화시킴으로써 정치실종과 정치부재를 부추기게 된다면 비판의 실익이 없다. 여야 갈등을 보는 관점의 문제를 재정립할 때다. 여당도 야당도, 보수도 진보도 모두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어 정치공세에 몰두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은 일반론적인 시민사회의 동의에 기반하고 있다. 이른바 양비론이다. 그러나 최근 자유한국당의 행태로 볼 때 피상적이고 본질을 호도할 수 있는 양비론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장외투쟁을 마감하고 '정책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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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우국의 시절, 정치적 대타협의 촛불을 켜자 지면기사
좌우 정치 사제들은 오늘도 격렬한 소탕전우여곡절 겪은 국민들이 나랏일 근심·염려전례없는 정파 전면전, 심각한 번아웃 증후군 지식인과 한마음으로 '기구' 결성할때 됐다이념의 제단에 영혼을 고박(固縛)당한 좌우 정치 사제들은 어제도 오늘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서 격렬한 소탕전을 벌인다.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의지로 그들의 진영에 가담했지만, 그들이 목을 매는 전쟁의 이유는 모호하다. 국민들은 최근 깨닫고 있다. 좌우 전쟁은 정의롭지도 않거니와 막대한 전쟁 후유증만 남겼다. 삶은 팍팍해졌고 나라의 기운은 시들어간다. 좌우 사령부의 지휘에 따르다 보니 개인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 이제 민심은 한 줌도 안되는 좌우 정치사제들이 벌이는 전쟁을 의심하고 있다.대한민국은 지금 우국(憂國)의 시절을 관통하고 있다. 국민들이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한다. 건국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온 산업화와 민주화 역정의 고비마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국민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정치세력의 대립을 대범하게 여겼던 국민이다. 수많은 위기에 단련돼 북한의 웬만한 도발에는 눈도 깜박이지 않던 국민이다. 그 국민들이 나라 걱정을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개별적 직감이 모여 위기감은 실체가 되어가고 있다.위기의 진앙은 정치다. 적폐청산. 방향은 옳았지만 방식은 의문을 낳았다. 제도와 관행에 집중돼야 할 청산의 방식이 사람과 정당 이념을 겨냥했다. 진보 진영과 사람에 의한 보수 진영과 사람의 청산으로 변질됐다. 그 결과 적폐청산은 원한만 쌓았다. 보복의 비례성과 대칭성을 강화했다. 진보에 당한 만큼 갚아주기 위해 집권해야 한다는 보수의 복수심은 무섭다. 아니라고? 나는 술자리에서 자주 목격했다. 철없는 소리가 틀림없고 철저하게 배격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수의 심연에 깔린 원한과 보복심리는 발화를 기다리는 또 다른 정치폭탄이다.진보 진영은 이를 잘 안다. 그래서 20년 100년 장기집권을 강조한다. 뻔뻔하다는 비판과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밟고 있는 페달을 멈출 수 없다.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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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역할분담이 필요한 한미동맹 지면기사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입장과 이해 달라결국 비핵화 협상 추진동력 발굴 우리의 몫세부사항은 당사자간 창의적으로 접근 유리신뢰회복 차원 '비핵화 2~3단계 진행' 현명최근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신청을 승인하고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사업에 8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소신있게 추진해나가겠다는 정부의 의지이다. 이 조치가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남북 관계를 대화로 전환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하노이 회담의 옵션으로 거론된 바 있지만 미국 측의 완강한 반대로 철회했다가 하노이의 좌절로 절치부심하고 있는 평양을 향해 뒤늦게, 그것도 일부를, 마지못해 꺼내든 셈이기 때문이다. 바둑에서는 돌을 놓는 순서, 수순(手順)이 승부를 결정한다. 국면을 전환하는 묘수도 수순에서 나오고 다 이긴 판을 놓치는 패착도 수순에서 나온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공단가동으로 얻었던 경제적 이익이나 남북간 신뢰회복 효과까지 두루 감안하면, 개성공단 방문승인은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언젠가는 풀어야 할 매듭이었다. 선택지가 거의 없는 '촉진자의 결단'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를 기대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북미간의 압박이 임계치를 향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이후 한동안 칩거하던 김정은 위원장은 연일 생산현장 방문을 통해 '인민'들의 실망감을 달래는 한편, 군부와 강경파들을 의식한 저강도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 예측하지 못한 하노이 결렬로 인해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까지 손상입은 것으로 알려져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가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도 하노이 노딜의 책임을 북한의 '준비부족' 탓으로 돌리는 한편 북한의 석탄운반선을 압류하는 등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북한이 발사체 발사로 도발의 강도를 조금씩 높여나간다면 교착상태가 긴장과 갈등관계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가장 비관적 시나리오는 북한의 압박과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서로 충돌하면서 비핵화협상을 원점으로 되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