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언어의 힘 지면기사
광화문·단톡방… 서로 '죽이는 언어' 난무칭찬·격려하며 '살리려는 것' 찾기 힘들어다양한 형태 작가 생태운동가와 다름 없어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각자 변해야주문한 시집이 도착했다. 시인을 알지만, 잘 모른다. 그와 알고 지낸 시간이나 함께 나눈 대화는 내 삶의 다른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다. 하지만 이제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가 앎의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아는 시인은 퉁명스럽지만 따뜻하고, 거칠지만 정교하다. 그는 막연한 낙관이나 섣부른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의 힘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 그것은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관조와는 다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의 몸을 담그는 방식이다. 시인은, 당연하게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으로 그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견디는 데서 시를 쓴다. 그의 시는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단순한 묘사나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현실 인식 너머를 생각한다. 개인과 사회,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구조 등의 관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비결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쩌면 어릴 적 고향의 강가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강물에서 시작되었고 완성되었다. "어린 내가 서러우면 강둑에 앉아 흐르는 물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황규관, '강물' 중) 흘러가는 강물은 시작과 끝에 주목하지 않는다.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주목하고, 반응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조바심이 아니라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다. 멀리서 정류장으로 차가 들어오면 먼저 타려고 뛰어간다. 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아우성이 넘치는 시대에 이번 차를, 다음 차를, 다음다음 차를 그냥 보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다. 그것을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사라지고 말았다. "……이번 차는 모른 척 보내고/우두커니 혼자가 되자/혼자가 되어/멀리서 내리는 빗소리를 듣자//다음 차도 보내고/다음다음 차도 보내고/저물녘에 우는 늙은 새울음도 보내고/슬픔에 사로잡힌 영혼도 보내고……"(
-
[춘추칼럼]문재인 대통령 집권 2년반의 치명적 한계 지면기사
수십조 투입불구 정규직 줄고 비정규직 늘어가장 큰 업적 꼽는 남북협력체제 '교착상태'정계출신 공공기관장 10명중 7명 '캠코더인사'조국 '불공정'·경제난 '대외여건' 남 탓 돌려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11월10일)을 맞이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문재인 정부는 몇 가지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첫째, 무능이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0)'를 '대통령 1호 지시 사항'으로 추진하고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다. 그동안 수십조원의 일자리 예산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일자리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 수는 전년 대비 35만3천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86만7천명 증가했다. 소득주도성장은 현 정부의 핵심 경제 정책이다.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나고, 소비가 늘어나면 투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경제가 성장한다. 소득 양극화는 덩달아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5.3배로 2003년 이후 가장 악화됐다. 한국은행은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이전 분기보다 0.4% 성장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경제 성장률은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 정부가 가장 큰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남북한 협력체제도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올해 한국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고, 문 대통령에 대해 '겁먹은 개', '삶은 소대가리'와 같은 입에 담기 힘든 막말로 비난했다. 심지어 북한은 금강산 내 '남측 시설 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애써 외면하고 북한을 감싸면서 비겁하게 인내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정부가 무능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둘째, 위선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민주당은 총 22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이 예비 타탕성(예타) 조사 없이 진행된다고 강하
-
[춘추칼럼]위기는 곧 기회다 지면기사
김정은, 선임자들 금강산사업 의존정책 비판대북제재로 어려운 상황 관광사업은 자금줄시설 철거 협의위한 후속조치 취할 가능성민간차원 관광문제 포괄적 논의방안 찾아야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3일 금강산 관광 지구를 현지 지도하면서 남측과 협의하여 금강산 지구 내 남측 시설을 철거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는 남북관계의 시금석인 금강산 관광 사업의 존폐와 직접 연계되어 있어 주목된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중단된 이후 거의 10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이 본격화된 2016년 이후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프레임에 맞물리면서 재개의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의 중단은 유엔 대북제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지난 1990년대 말 남북관계의 물꼬를 튼 사업으로 시작되면서 사업 대가나 관광수익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구조가 되면서 대량현금의 유입을 금지하고 있는 안보리 결의와 맞물려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으로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은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런 전제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북한은 우리 측이 대북제재 등을 이유로 금강산 관광 재개에 소극적인 것에 대해 대미굴종행위 등이라며 공개적인 비난의 수위를 높여 왔다.이번 현지지도시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이 남북 간 공유물처럼, 남북관계의 상징, 축도인 것처럼 되어있고 남북관계가 발전하지 못하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그가 이례적으로 선임자들의 잘못된 의존정책을 운운하면서 강도 높은 비판을 한 이유는 지금 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과 연관이 깊다. 대북제재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에 있어서도 관광 사업은 무시할 수 없는 자금줄이다. 중국 등 외국인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한 해 20만 명
-
[춘추칼럼]진솔하지 않은 책들 지면기사
정치인들 출판기념회 스펙 쌓고 자금 얻고대부분 "내가 썼다"… 무슨 책이든 '쓴 척'"내얘기 뭔 문제"해도 거짓 대필땐 부메랑검찰 ·언론이 누구 파듯이 하면 재간 없어대개의 작가는 출판기념회 여는 것에 시큰둥하다. 행사를 준비해 본 분은 알 테다. 바쁜 사람 모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작가는 부조(책값)를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차비를 드려도 시원치 않다. 뷔페 정도는 불러야 한다. 가난한 것으로 소문난 작가는 출판기념회를 누가 열어준다고 해도 기피할 수밖에 없다.무슨 선거가 되었든, 선거를 앞두고 4, 5, 6개월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줄기차게 열리는 행사가 있다. 정치인이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닌 것처럼 출판기념회가 극성을 부린다. 정치인은 왜 그렇게 출판기념회에 열성적일까?여러분이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 정치자금을 걷기 위해서.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 제한을 받지 않는다. 금액한도, 모금액수, 횟수에 제한이 없다. 돈을 준다고 해도 안 갈 분도 있겠지만, 돈 내러 가야할 분도 많은가 보다.돈 때문이 아닌 정치인도 있을 테다. 아무리 모금액수에 제한이 없다지만, 출판기념회로 거둬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겠는가. 돈밖에 없는 정치인에게는 돈은 별로 상관없는 문제일 것이다.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수도 있다.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나오지만 책 읽는 사람은 드물다. 독자는 거의 없지만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크다. 책을 내야 인격을 갖춘, 지식을 겸비한, 소양이 높은, 한 마디로 훌륭한 정치인 같다. 즉 책은 정치인의 필수 스펙 혹은 아이템 혹은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책도 안 낸 자는 정치인 자격 자체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이 책 내는 것을 꼴 같지 않게 보는 유권자도, 정작 책이 없으면, 책도 못 내는 무식쟁이 후보라고 깔볼 테다. 그래서 정치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혹은 꿩 먹고 알 먹기로 책을 내게 된다. 안 낼 수가 없으니 내고, 필수 스펙 쌓고 정치자금도 얻는 것이다.그런데 책은 정치인에게
-
[춘추칼럼]지역축제와 지역문화 지면기사
역사문화 결합 축제가 엉망 되는 이유는 권력자와 장사하는 이가 결탁하기 때문지자체들 규모 키우는 데 신중한 접근을잘되는 식당, 함부로 확장 않는법 배워야축제는 지역문화의 꽃이다. 지역문화 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축제를 접하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지역축제가 정말 많다는 점과, 그럼에도 그 많은 축제를 왜 하고 있는지 가끔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문화의 확장과 맞물려 지역축제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전문가와 시민의 역량이 강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인 지역축제를 넘어 지역 특성을 살린 멋진 축제들도 많아졌다. 그렇기에 축제가 많다는 것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관점에 따라 축제와 같은 문화행사를 예산의 소모나 낭비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 시작하면 사실상 모든 문화와 예술은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 지역축제에 대한 비판은 그 축제들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차별성을 보여주기보다는 유사한 방식과 형태의 축제들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규모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데서 나타난다. 축제를 지역문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광산업 일변도나 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면 외부 이벤트기획사에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을 취하게 됨으로써 지역축제라는 이름으로 일정한 틀에 맞춰 크기만 다르게 찍어내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지역축제에 대한 잘못된 접근 때문이다. 지역축제는 지역문화의 중요한 콘텐츠이고, 이를 통해 다양한 지역문화와 역사문화자원이 결합되어 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하는 공동체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축제가 일시적 이벤트일지라도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와 시민, 지자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오랜 신뢰와 경험을 쌓아가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이 제대로 발현된 결과를 담아내야 한다. 간혹 지역축제가 엉망이 되는 이유는 축제를 '도구'로 생각하는 권력자와 그 주변에서 축제를 통해 '장사'를 하는 이들이 결탁하기 때문이다
-
[춘추칼럼]대통령의 존재 이유와 검찰 개혁의 본질 지면기사
조국장관 임명 강행 이념대립 나라 '두동강'국민들 '나라다운 나라' 만드는 대통령 원해檢개혁 조장관 수사후 진행돼야 진정성 담보진보, 폐쇄적 진영논리 벗어나야 미래보여조국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은 자못 크다. 몇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은 국민의 공복이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부를 통치한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다. 이것을 토대로 국민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전략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모두에게 책임을 진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이 꿈꾸는 대통령의 표상에 대해 다양한 약속을 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심지어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적 대립으로 나라는 두 동강이 났다. 검찰청 앞에서는 진보 진영이 주최한 '조국 수호' 대규모 군중집회,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진영이 총동원되는 '조국 사퇴 촉구' 집회가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줄곧 "사람이 먼저다"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조국이 먼저다"로 방향을 튼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문 대통령을 향해 '하조대 대통령'(하루 종일 조국 장관만 챙기는 대통령)이라는 별명마저 생길까봐 걱정된다. 항간에는 문 대통령이 조국에게 무슨 약점이 잡혔거나, 아니면 조국 수사를 막아야 할 무슨 절박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들이 현시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취임사에서 밝힌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상식과 도덕, 윤리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통령"이 되길 요구한다. 한편 검
-
[춘추칼럼]한반도 비핵·평화 시동건 대통령의 정상외교 지면기사
유엔총회 'DMZ 국제평화지대' 제안세계 가치 공유해야할 문화유산 강조9·19 남북공동선언 영향 현실성 갖춰긴장 완화·화해 협력 전개될때 '탄력'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미국을 방문한 계기에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의 평화구축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얻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가치를 공유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북간에 평화가 구축되면 북한과 공동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이라고도 언급하였다. 문 대통령의 DMZ 평화지대화 제안이 보다 현실성을 갖는 이유는 지난해 9·19 남북공동선언에 따른 군사분야 합의서의 영향이 크다. 군사분야 합의서에서는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육해공 지역에서 남북 간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큰 틀의 합의를 이루었다. 군사분야 합의서 체결 이후 이 지역에서 남북간 충돌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측은 보다 적극적으로 남북 간 합의사항인 JSA의 비무장화 작업과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파주, 철원, 고성 지역에서는 시험 폭파된 GP 장소를 따라 평화의 길 조성 작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군사합의에 따라 판문점 지역에서 왕래가 수월해진 것에 기인한다. 판문점 지역의 자유왕래까지는 아직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지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가는 남북 접경지역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이처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를 평화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은 역대정부에서 늘 있어 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비무장지대 한복판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접경지역을 둘러싸고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여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판문점과 개성을 잇는 지역을 평화협력지구로 지정하고 국
-
[춘추칼럼]'존경하는' 대신 '존중하는' 지면기사
국회 상임위원장 회의진행때 서두에 사용아무렇지도 않게 '남발' 도무지 적응 안돼국민 위해 일하는 충복끼리 우스꽝스러워꼭 붙임말 쓰고 싶다면 '존중…'은 어떨지 진정서를 써본 일이 있다. 지인이 갇혀 있기에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부양하는 가장임을 긍휼히 여겨 집행유예로 봐주십사 애걸복걸하는 내용이었다. 반성문보다 더 쓰기 힘든 글이 남을 위해 쓰는 진정서임을 알았다.무엇보다도 첫 문장 때문에 괴로웠다. 진정서를 어떻게 쓰는 건지 대략 알아보았는데, 하나같이 첫 문장이 '존경하는 판사님'이었다. 정말 존경하는 부모와 스승께도 왠지 쑥스럽고 오해받을까 봐 써보지 못한 말을, 생면부지의 판사에게 써야 한단 말인가?판사가 진정서를 틀림없이 읽어주고, 진정서가 판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인다고 치자. 누구나 쓰듯 '존경하는 판사님'이라고 시작하면, 판사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첫 문장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존경하는'을 쓰지 않으면 판사의 감정이 상할지 모른다. 진짜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불쾌할 수도 있다. "남들 다 쓰는 '존경하는' 말 한마디를 안 붙였네, 성의가 없어!"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친애하는'을 쓰거나 '대쪽 같으신', '사랑해 마지않는', '똑바로 판결해주시리라 믿는', '법의 수호자이신',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하늘님 같으신' 등과 같이, 남다르게 써도 좋은 소리 못 들을 테다. "뭐야, 판사한테 장난쳐?"판사는 실제로 존경할 만한 분일 테다. 공부로 따진다면 내가 한없이 우러러봐야 한다.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절로 존경심이 든다. 경제적인 면을 따지면 나 같이 모자란 사람은 공경을 해도 모자란다.불구하고 '존경하는'이라는 말이 왜 그렇게 쓰기 싫었을까. 아무리 지인을 구하고자 하는 글이지만, 아무리 의례적인 표현이라지만, 내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칭이 아니었기에, 그런 판에 박힌, 진심이 담기지 않은 관용어를 쓰는 것이 저어됐을 테다.'존경하는'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이 토론인지
-
[춘추칼럼]공공의 존재 이유 지면기사
전국지자체 공공시설 미활용·방치 수두룩지역 예술·활동가들 "공간 부족하다" 아우성불균형·불일치 해소 민관거버넌스 역할 중요'공공성' 철저하게 시민으로부터 출발해야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과 민간이 만나서 협력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특히 정부 차원에서 '지방분권'이 강조되면서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는 형태의 구조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혁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간의 역량을 공공 영역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공공과 민간이 만나게 되면 항상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발생하는 일은 별도로 하더라도 지자체만 놓고 본다면 힘의 불균형과 속도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진다.공공이 갖는 가장 큰 힘은 역시 '예산'이다. 지금처럼 불안한 사회에서는 그나마 공적 자금만큼 안정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불합리한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공모사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이런 부분도 포함될 것이다. 공공의 모든 사업은 예산을 기초로 한다. 차기연도 예산을 수립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나 지자체 모든 부서는 예산 확보를 위해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예산에서 자기가 속한 부서나 사업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때론 눈물겹다. 최근에는 추가경정예산도 치열해져서 사실상 '예산 전쟁'은 1년 내내 전개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동네 곳곳에 '예산 확보'라는 플래카드를 열심히 내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제로 예산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으며 사업을 진행할 이유도 없다. 특히 공공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공공 조직에서는 매년 정해진 사업과 예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실무자 정체성이 강할수록 이러한 원칙을 더 강조한다. 그렇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매년 하던 사업들을 없애는 일이 쉽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한 예산을 책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매년 반복되는 보도블록 교체도 비슷한 이유이고, 공공 혁신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시민들이 공공 영역을
-
[춘추칼럼]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지면기사
조국 후보 각종 의혹 촛불정신 '정면 부정''사법개혁' 도덕성·국민 지지 얻어야 가능與, 압수수색 강한 비난 '비뚤어진 감싸기'가족에 맹목적 충성 '공정법치 완수' 불가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루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라고 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24일),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 조 후보자는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다. 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