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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에서 사는 법 지면기사
지난 9월 27일 경북 구미시 소재 화학제품 생산업체에서 불소산(플루오린화 수소산)이 유출되어 2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2천여명이 치료받았으며 광범위한 지역이 오염의 불안에 휩싸였다. 급기야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었다. 원인은 관 연결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밸브를 연 어이없는 인재였다. 편리한 문명생활 이면 곳곳에대형사고 가능성 산재국가는 위험요소 체계적 관리국민의 안전보장 책임져야사회구성원 개개인도위험요소 제거 적극 대응 필요우리는 이런 위험물질을 제조, 저장, 운반, 사용하는 과정에서 시시각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어디 맹독성 화학물질뿐이랴. 폭발성 있는 가스, 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 동위원소 등 우리의 문명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위험요소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류는 이런 극도의 위험성을 성공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고 그에 따라 우리의 생활에 들여와 유용하게 쓰고 있다. 그러면 위험한 상황은 언제 발생하는가. 위험을 제어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그 즉시 발생한다.그 실패는 이런 극도의 위험은 단지 '제어'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을 때 발생한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난 인간은 위험환경에도 쉽사리 적응해서 일상화된 위험은 더 이상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개인의 안전의식에만 의지하는 위험관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그러나 시스템은 믿을만한 것일까? 위험관리 시스템에서 최상위에 있는 것이 국가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국가는 너무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위험이 발생하는 것은 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복잡다기한 현대 문명사회에서 완벽한 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왕왕 제 목숨도 달려 있는데 오죽 잘 관리할까 하고 믿어 버리려고 애쓰는 경향이 있다. 자기 목숨이 달려 있는데도 그러니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고공 놀이시설에서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번지점프 시설의 줄이 끊어지는 일이 생긴다. 우리는 자기의 목숨이 달린 안전의 문제를 손쉽게 남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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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 다녀오셨습니까 지면기사
가을에는 그 어느 계절보다 축제가 많다. 방방곡곡에서 온갖 축제가 넘쳐난다. 수원의 화성문화제, 이천의 쌀문화축제, 가평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부평의 풍물대축제, 소래의 포구축제 등 10월에만 수십 개의 축제가 경기·인천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무려 750여 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면서 즐기는 축제가 많다고 나쁠 것은 없겠지만, 왜 그렇게 많은 축제들이 열리고, 왜 우리가 축제에 참여하는지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단순한 행사·장사 의미 아닌남녀노소·빈부귀천 없이평등해지는 '놀이의 시공'마음껏 즐기고 난 후이전과 다른, 보다 멋지고의미있는 삶 추구할 수 있어야축제(festival)는 말 그대로 축하의 제사이다. 제례나 연회 혹은 축일로 번역되기도 하는 축제는 종교적 의례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들을 찬양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의례가 축제였다. 다른 종교의례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공간(곧 성스러운 시공) 속에서 일상과는 전혀 다른 규범과 사회적 질서를 창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의례가 축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축제이든 간에 일하고 공부하고 잠자는 일상생활을 벗어나는 것에서 축제가 시작되고, 축제의 시공 속에서는 일상을 모두 잊어버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며,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면서 축제는 끝나는 것이다.평소에는 보잘 것 없이 먹어도 축제에서는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술 먹고 일할 수는 없지만 술 없는 축제는 거의 없다. 가면이나 탈을 쓰면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다 똑같다. 축제 중에는 사회적 신분도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별도 없어진다. 모두가 더불어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놀다보면 귀천도 빈부도 무색해진다. 때론 남녀의 구별도 나이에 따른 서열도 무시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축제를 즐기면서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삶을 향유하게 된다.축제가 끝나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간에 다시 이전에 생활하던대로 살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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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적 위상을 가진 신라의 국왕 지면기사
최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역사 드라마가 제법 자주 방영되는 추세이다. 그만큼 대중들의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현상이라 고무적이라 하겠다. 특히 고대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가 여러 편 방영되었는데, 얼마 전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국왕을 모두 황제폐하라고 호칭하고 있다. 우리의 고대에는 국왕이 직접 황제를 칭한 왕은 보이지 않고 대왕을 칭하고 폐하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황제폐하가 아니라 대왕폐하라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대왕·황후·태제' 호칭과독자적 연호의 사용황룡사9층탑 등에서는중국과 별개의 세계관 표현드라마서 정확한 용어사용잘못된 지식 전달 막아야왕조국가에서는 최고통치자인 군주의 지위에 따라 권력구조가 황제국의 틀을 취하거나 제후국의 틀을 취하여 그 형식을 달리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국가의 대외적 지위가 달라지고 그것이 국가의 위력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에 가장 근접한 외국은 중국에 향해서는 주변 번국의, 국내에 대해서는 독립의 이중 체제를 취하였다. 이는 중국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체면상으로 양보하지 않으면 공격을 받거나 외교상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었고, 아울러 국내에 대해서는 한 나라의 군주는 절대 존엄하지 않으면 그 지위가 보존되지 않았던 것에 이유가 있다. 실제로 중국의 주변국들은 황제국에 예속되었던 왕국에 만족하지 않고 비록 정도는 달랐지만 각각 나름대로 자기중심의 독자적인 국제질서를 상정하고 있었다. 한국 역사상의 왕조들도 그러하였다. 독립성의 정도는 고려 중기 이전에는 이후에 비하면 훨씬 높았다. 고려 중기, 즉 원나라의 간섭을 받기 이전까지는 제도적으로 황제국의 체제였다. 지금도 중국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한 신라를 당의 제후국 정도로 보려는 시각이 있다. 신라는 대외적으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속하였고, 내부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제후국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라가 단순히 중국 왕조, 특히 당나라의 제후국에 불과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신라도 '대왕' 칭호와 독자적 연호의 사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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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시대정신 지면기사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정의에 대한 갈구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나날의 삶이 불공정하다는 정서적 공감이 결코 쉽지 않는 개념인 '공정'과 '정의'라는 인문학의 바다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샌델은 공동체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학자다.표심 잡기 나선 대선 후보들사회정치적 철학 없는무분별한 영입·민생행보담합과 줄서기를국민통합으로 둔갑시켜유권자의 정확한 통찰력 필요그의 정의와 공정의 개념은 사회와의 유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고유한 문화 및 전통의 배경에서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사회의 상대적 형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 정의관과 맞닿아 있다. 이것이 공동체의 붕괴를 막고 사회구성원의 행복을 제고시킬 수 있다는 사회정치 철학의 기저이다. 18대 대선을 가르는 시대정신은 경제민주화와 통합이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일견 야권과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어젠다를 선점하여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으나, 경제민주화는 여야, 보수와 진보 모두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자, 지향해야 할 가치이다. 통합은 경제민주화와 별개의 의제가 아니다. 일반적 개념으로 '민주화'란 소극적 의미로는 절차적 정당성을 뜻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이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사회구성원의 실질적 평등권 보장을 의미하는 실질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의미한다. 전자의 절차적 측면을 의미하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은 민주화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후자의 실질적 평등권과 복지의 충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가 수반될때 비로소 형식과 내용에서 민주주의는 명실상부한 이름값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바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착근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반영된 것이다. 즉 경제민주화란 경제적 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를 향한 공동체의 노력과 제도적 확립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전제될 때 밑그림이 완성될 수 있다. 급식과 교육, 보육의 무상시리즈나 선심성 복지 공약, 그 자체가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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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사회 위해 '적정이윤 개념' 필요 지면기사
1970, 80년대 서민들의 재산형성의 과정은 하루하루 허리띠를 졸라매고 가야하는 참으로 고단한 길이었다. 쥐꼬리만한 한정된 수입에서 이것저것 쓸 것을 따지다보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부들은 위대했다. 우선 저축을 위한 몫부터 떼어놓고 살림을 시작했다. 눈치 없는 손님이 와서 한 끼를 축내고 가면 주부는 남몰래 배를 주려야 했다. 그리고 억척스럽게 적금을 붓고 목돈마련을 위해 계를 들었다. 티끌모아 소중하고도 뿌듯한 성취를 이루어 아이들의 대학 입학금도 만들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그리고 작지만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상 받고 진한 행복감에 온 가족이 기쁨의 눈물을 함께 했었다.공급자 중심의 가격책정 탓천문학적인 아파트 값 형성거품 빠지자 거래실종 시작건설경기 전체적 침체 몰고와철저하고 예외없는 과세 등구체적인 조처 시작해야2000년대, 근세 이래 최대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이룩한 이 시대 사람들은 좌절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지나친 경쟁, 청년실업, 신분상승의 사다리의 상실, 물질만능의 사회적 풍토, 무엇하나 속 시원히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 '격차'의 문제가 있다. 의외로 격차의 문제는 '적정이윤 개념의 상실'에서 시작한다.언제부터인가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큰 손님이 아니면 그렇고 그런 손님은 귀찮을 뿐이다. 박리다매는 옛 말이 된 지 오래다. 기성복이 맞춤양복보다 비싸지면서 시장 지배권이 공급자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값은 제 가치보다 점점 높게 매겨졌다. 씀씀이가 커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일부계층에서는 연봉도 하는 일이나 벌어들이는 수준보다 크게 높아졌다. 값을 정하는 사람들의 권한이 커지면서 모럴해저드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만연해갔다. 가격구조의 왜곡은 고비용 저효율 사회의 구조화를 초래해서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 편중되면서 곳곳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라잡기가 요원해졌다. 성장의 저변은 약화되었고 사람들은 불만을 넘어서 좌절을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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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상념(想念) 지면기사
하늘은 높아지고 말(馬)이 살찌는 계절, 가을이 되었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 한가위(추석, 중추절)가 있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한가위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본다.우리는 흔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을 한다. 한가위에는 친지와 이웃이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모여 놀이를 즐긴다.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때이다. 바로 그 때 우리는 이웃을 돌본다.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주위의 가난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人心)이 넉넉해지는 때가 한가위다.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괴로운 사람도 함께 명절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면 좋겠다. 아니 늘 한가위 같으면 좋겠다.한가위에는 고향을 간다. 민족대이동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한다. 먼 길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고향에 가면 고향 산천을 둘러보고 고향 친구와 친지를 만난다.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도 보게 되고, 고향에서 놀던 놀이도 한다. 수만리 바다를 떠돌다 태어난 개울가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은 연어처럼 우리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갈 고향이 없는 사람들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마음으로나마 고향을 그린다.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님이 있듯이, 누구나 가고 싶고 보고 싶고 즐기고픈 고향이 있게 마련이다. 고향은 그래서 꿈이고 희망이고 기쁨이다. 어디서든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한가위 보름달은 두 손 모은 우리의 염원을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한가위에는 벌초를 하고 성묘를 한다. 제사를 드린다. 차례를 올린다. 돌아가신 분들을 기린다. 모두 모여 그 분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되새겨본다. 어떻게 사셨는지를 생각해본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돌아갈 그날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언젠가 우리의 묘지를 찾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영정과 위패 앞에서 절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차를 따라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던 모습을 되새겨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살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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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 우해왕의 대마도 정벌 설화 지면기사
근래 일본이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또다시 억지 주장하면서, 양국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은 '독도 합동기동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고 한다. 합동참모본부는 훈련 목적을 "이번 독도훈련은 외국 민간세력이 독도 영해를 침범 또는 접근해 오는 상황을 가정해 실시된다"고 한다. 즉 일본 극우세력 등의 '독도 도발'을 가정해서 훈련을 실시한다는 것이다.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기록된 것처럼, 지증왕 13년(512) 6월에 하슬라주(何瑟羅州) 군주인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함으로써, 울릉도와 함께 독도는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울릉도에는 이사부 장군이 울릉도를 병합하기 이전 시기에 우산국의 왕이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한 내용의 '우해왕(于海王)과 풍미녀(豊美女) 설화',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할 당시의 비화를 담은 '사자바위'와 '투구봉' 전설이 전해온다.신라에 복속되기 이전에 우산국은 우해왕이 다스렸는데, 왕은 기운이 장사로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주름잡고 다녔다. 우산국은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매우 강했다. 이때 왜구들이 가끔 우산국에 와서 노략질을 하였는데, 그 본거지는 대마도였다. 우해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대마도 왕을 만나서 담판하였는데, 대마도 왕으로부터 앞으로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항복 문서를 받고 푸짐한 대접을 받았다. 서로 사이좋게 지낼 것을 약속하면서 대마도를 떠나려 할 때 대마도 왕은 셋째 딸인 풍미녀를 우해왕에게 바쳤으며, 우해왕은 그녀를 우산국으로 데려와 왕비로 삼았다. 그런데 이후 왕은 나라 다스리는 일을 멀리하고, 사치를 좋아하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심지어 신라에 몰래 쳐들어가 빼앗아 오기도 했다.한편 우산국이 몰래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자 신라 백성들은 지증왕에게 우산국을 토벌해 달라고 호소하였다. 신라왕의 명령을 받은 실직군주 이사부가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먼저 사신을 보내어 우해왕에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신라군을 가볍게 여기고 도리어 사신을 죽였다. 이에 신라군은 배에 싣고 온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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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 '통합행보' 지면기사
통합이 화두다.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이 불러온 사회적 원심력의 증가는 한국의 미래를 파편화하고, 공동체를 형해화할 수 있다. 또한 성장의 신화를 원점으로 돌려놓을 것이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의 발로가 이른바 '국민통합'이다. 통합과 민생이, 다가오는 대선의 화두임은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고, 여야가 따로 없다. 그러나 통합은 그냥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역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과거와의 화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암울하고 음습한 시대의 터널을 지나왔다. 쿠데타와 인권 유린, 국가의 폭력이 일상화했고, 성장지상주의의 목표 아래 왜곡된 정치와 경제 권력의 횡포 앞에 속수무책인 시절을 보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은 확립됐으나 아직도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는 미완으로 남아있다. 민주주의가 형식적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정당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평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이것이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공고화되어야 한다. 기득권층의 배려와 복지의 제도화가 아우러질 때 경제적 통합의 밑그림이 마련되는 것이고, 이념적으로는 암울했던 군사권위주의 정치가 배태했던 역사의 그늘을 걷어내는 작업과 인식의 대전환이 수반되어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이른바 '통합 행보'는 그래서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정치적 배제, 억압, 경제적 소외, 박탈 등으로 점철됐던 시대의 아픔을 예고나 격식을 갖춘 절차없이 불쑥 찾아가면 유력 대선 주자인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표는 저절로 온다고 생각했다면 국민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았던 일방통행식 권위주의의 부활 그 자체다. 상대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이러한 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성찰과 대화가 없는 득표에 대한 갈증이 초래한 예고된 이벤트다. 박근혜 후보의 5·16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에 머물러 있고, 유신은 '구국의 혁명'이었다면 굳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당위성도, 전태일 열사 재단을 찾아갈 이유도 없다. 이휘호 여사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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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회사 물건을 '훔치지' 않는가? 지면기사
아빠가 아이를 나무라고 있다. 학교에서 친구의 연필을 훔쳤기 때문이다. 아빠는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한참 혼을 내던 아빠는 안쓰러워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렇게 연필이 갖고 싶었니? 진작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그랬어? 아빠 회사에서 얼마든지 좋은 연필 갖다 줄 수 있는데…."아들이 학교에서 연필 훔쳤다고 야단치면서 정작 자신은 회사 물건을 그냥 가져오겠다는 건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언론에 난 정치인 등의 부정, 경제인들의 비리를 보면서 '엄청' 흥분한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은 이런 저런 작은 부정과 작은 비리를 일상적으로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에서 있었던 일이다. 센터의 기념품 매장이 잘되고 있어 거기에는 300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한 해 매출액이 40만달러 정도 되는데 재고 조사를 해 보니 15만달러 정도가 비는 것이었다. 물건은 없어졌는데 돈이 안 들어온 것이다. 틀림없이 도둑의 짓이라 생각하고 탐정을 고용해서 감시를 했다. 드디어 몰래 카메라에 한 사람이 잡혔다. 현금통에서 돈을 슬쩍하는 자원봉사자였다. 그 사람에게 변상을 하게 하고 조용히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그 후에도 현금 유출은 그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공모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슬금슬금 작은 물건을 하나씩, 현금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이었다. 음악이나 연극을 애호하는 교양있는 그리고 부족할 것도 별로 없는 선량한 은퇴자들이 말이다.베이글맨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폴 펠드먼이라는 사람은 직장에 다니면서 우연히 둥그런 빵인 베이글을 사무실에 공급하게 되었다. 일 잘한 직원들에게 칭찬으로 베이글을 사다 줬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다른 부서에서도 베이글을 갖다 달라 해서 매주 금요일 베이글을 휴게실에 갖다 두고 빵값을 스스로 상자에 넣도록 했다. 회수율은 95%였다. 100%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그런 대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폴은 직장에 문제가 생겨 아예 사표를 쓰고 베이글 장사에 나섰다. 여러 사무실을 섭외하여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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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감독을 통해 본 새로운 리더십 지면기사
한국 정부가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사업에 참가하면서 외국 출장 기간에 올림픽을 보았다. 인도의 시인인 타고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소개했던 한국이 역동성을 바탕으로 포효하며 웅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개발도상국에서 보았기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 체육에서도 개발도상국 형을 벗어나고 있다. 과거 우리의 유망 메달 종목이던 태권도, 유도의 격투기 종목에서 수영, 펜싱, 체조 등 선진국 형으로 전환하는 모습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우리 시대의 영웅이 탄생되고 있었다. 사실 메달과 관계없이 몇 초간, 몇 분간의 연출을 위해 4년을 준비해 온 선수 개인 개인의 이야기는 모두가 감동적이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들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감독의 모습도 기억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 선수의 기량을 읽어 내고 발굴하는 것은 감독이다. 개인의 능력을 조직의 능력으로 승화시키는 조직 관리는 감독의 역량과 감각에 의존한다. 선수층의 나이를 고려하려 한 세대 교체, 경기의 흐름을 읽어 내고 적시에 단행해야 하는 선수 교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내는 기술 교체의 과정이 화려한 무대 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 감독은 선수와 호흡을 맞추면서 이러한 변화가 게임에 녹아들도록 선수들과 같이 땀을 흘리는 것이다.일본의 전국시대 영웅을 다룬 대망(大望)의 책에서 울지 않는 새를 다루는 3가지의 리더십 유형이 제시되어 있다. 오다 노부가나와 같이 울지 않는 새는 필요없으니 죽여 버리는 리더가 있다(그 새의 노래는 영원히 듣지 못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같이 때리거나 달래서라도 억지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리더가 있다(노래가 아니라 비명일 것이다). 도쿠가와 히데요시와 같이 노래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리더가 있다(서로가 피곤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 게임을 보면서 감독의 역할과 관련하여 먼저 노래를 부르는 리더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서로가 즐거울 수 있는 리더다. 특히 선수 출신 감독을 보면서 변혁적 리더십을 보여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변혁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