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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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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논쟁과 합의 민주주의 지면기사
[경인일보=]요즘 정치권에서는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야권에서는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무상복지를, 그리고 여권에서는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선별적 복지정책이 현 한국 현실에 맞는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작 복지 논쟁에 불을 붙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한국형 복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의원은 민주당의 무상복지를 선거용 캐치프레이즈로, 박근혜 의원의 한국형 복지를 포장만 있고 내용이 없는 것으로, 그리고 한나라당은 복지정책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누구의 정책이 옳건 간에 복지가 한국정치의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은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환영할 만한 일이다. 1997년 이른바 IMF사태라는 외환위기때부터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급속하게 이뤄졌다. 양극화 문제가 가속화되는 주된 요인들 중에는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 전체 노동자의 약 50%인 830만명 정도이며 이들은 정규직의 47%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는데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또한 한국은 OECD 국가 중 저임금계층이 가장 많고 임금불평등도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저임금계층은 452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6.5%이고, 상위 10%와 하위 10% 임금격차는 무려 5.25배나 된다. 그러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며 여기에 대한 건설적인 논쟁은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 벌이고 있는 복지논쟁은 복지가 담고 있는 목적을 벗어나고 있다. 원래 복지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혜택을 사회성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줌으로써 공동체에 대한 사회성원들의 의식을 강화하고 진정한 공동체로서 거듭나기 위해서이다. 이런 맥락에서 복지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개인이 사회성원이면 기본적으로 부여받는 개인적 권리 차원에서의 복지와, 사회성원 그 누구도 사회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평등하게 고려해 공동운명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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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식 배달부 '김승일' 지면기사
[경인일보=]요즘 TV 오락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감동과 휴먼은 기본이고 시청자가 직접 참여해 기적과 같은 현실을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 지난해 케이블 사상 엄청난 시청률을 올린 '슈퍼스타 K'의 경우, 전국에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 가수지망생 수만 명을 제치고 '허각'이라는 환풍기 수리공이 최종 1인이 됐다. 이 소식에 시청자들과 네티즌은 열광했고 평범한 서민도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현실로 보여줬다.그런데 최근 늦게 귀가해보니 아내가 TV를 보며 울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영문인가 들여다 봤더니 '스타킹'이란 프로그램에 등장한 야식배달부 김승일씨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 유명대학 성악과에 들어갈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병간호 등으로 대학을 휴학하고, 10년간 대학 동기들과 연락이 두절된 채 야식배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석에 있던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현재 그의 대학 동기들은 국·공립단체 합창단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김승일씨가 대학 동기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습에 아내는 물론 나역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그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며칠 동안 내 머리에는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사람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대신 허각 이란 친구처럼 감동적인 희망의 스토리로만 내 맘에 남은 게 아니었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이 그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상처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함께 든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식배달부 김승일'이란 이름이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고 있었고, 온 네티즌들의 환호와 지지의 글이 도배를 하고 있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김승일이라는 친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풀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 방송과 시청자들의 순간적인 관심이 사라질 때, 그에게는 뜻하지 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고, 나중에는 이 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후회할 수도 있겠구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게 됐다. 그래서 나는 전혀 안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타킹 담당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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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디자인 시비 지면기사
[경인일보=]공공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널리 쓰인 지도 꽤 되어 이제는 아무도 이 단어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단어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이 단어를 영어로까지 번역하여 'Public Design'이라고 쓰는 것도 봤지만, 그 뜻을 알기 위해 위키피디어를 찾았을 때 '당신이 그 뜻을 만드시오'라고 나왔으니, 이는 영어에도 없는 단어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도 공공디자인학과라는 것을 설립하고 이를 연합한 학회도 만들어 학문적 정당성까지 부여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참으로 의문스럽다. 도대체 이 단어의 뜻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 것일까? 공공이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혹은 공공을 디자인한다는 말인가? 급기야, 중앙정부를 비롯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공공디자인' 사업을 왕성하게 전개하고 있으니, 단어 사용의 오류로 인한 잘못된 사업의 피해를 고스란히 시민이 떠안는다는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서울을 비롯한 지방도시들이 공공디자인을 한답시고 위원회도 만들면서 하는 일은 대개 도로 환경을 예쁘게 꾸미는 일이다. 도로 포장을 바꾸고, 가로등과 버스정류장, 거리간판 등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바꾸거나 혹은 예쁜 공공건축물을 세워 시민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증대시키는 게 그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도시환경을 바꾸는 것이 괄목할 업적이 된다고 여긴 것일 게다. 만약 이런 일이 목적이라면, '공공디자인'이란 단어는 '공공시설물디자인'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단어의 뜻과 사업내용이 일치되고 분명하다.그러나 문제는 정작 여기에 있다. 그런 시각적 세련됨으로는, 도시가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인 공공성을 조금도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혹시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흔해 빠진 나머지 그저 분칠하거나 립스틱 칠하는 정도, 혹은 잘 봐주어 세련된 시설물을 갖다 놓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우리가 행복해질까? 나는 이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아마도 애초에 공공디자인을 도입한 까닭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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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히데키, 그 이름이 가지는 의미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연말, 조촐하지만 뜻 깊은 시상식이 있었다. 번쩍이는 조명이나 화환이 넘치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시상식장은 내내 진지했고 화기애애했다. '제4회 임종국상' 시상식이었다.수상자들의 모습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술부문 수상자는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준영 씨였다. 일본이 이미 청산한 '식민지 법'을 한국은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는 통렬한 자성을 담아 묵묵히 일제 식민지 사법제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온 문 교수의 결실을 참석자들은 박수로 축하했다. 다만 사회부문 수상자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씨의 모습이 조금은 이채로웠다.'임종국상'이란 민족문제연구소와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가 친일청산에 앞장섰던 임종국 선생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친일청산에 공로가 깊은 분들에게 주는 상을 일본인이 받고 있다니. 그는 공식 직함이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 사무국장이었다.그러나 그가 몸 바쳐 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자면 고개를 갸웃거릴 일이 아니었다. 15년이 넘게 그는 한일 과거사의 올곧은 정립을 위해 온 몸을 던져온 일본인이었다. 여러 과거사 문제를 위한 모금운동이나 변론 지원에서부터 일제강점기의 피해와 참상을 알리고 그 반성의 길을 열기 위한 자리에는 언제나 그가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일본 우익으로부터 '반일 인물'로 지목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짧은 머리에 단정한 몸매를 한 수상식장의 그는 투사로서의 이미지와는 먼 한 사람의 예의바른 일본인이었다.지난 여름이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한일병합 100년과 관련한 담화'를 들은 것은 일본 후쿠오카에서였다.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피폭자 추모모임과 청소년 교류회를 마치고 다음 강연지로 향하는 나에게 한 젊은 일본 언론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오늘 발표된 총리의 담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강제병합 100년을 이야기해야 할 일본총리가 문화재 한 두 점의 반환을 언급한 담화는 과거사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한일과거사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나로서는 불편한 마음을 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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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 정상회담과 한미동맹 외줄타기 지면기사
[경인일보=]지난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중미 정상회담은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진정한 G2 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 1990년 소련의 몰락 이후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였으나,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와 현재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먼저 소련은 미국에 버금가는 군사대국이었으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미국 다음의 경제대국이며 연간 10%가 넘는 경제성장을 하고 있어 조만간 미국을 뛰어넘고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다. 둘째 소련과 미국은 서로간의 교류와 대화를 극소화하고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냉전을 치렀지만, 현재 중국과 미국은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용어에서 나타났듯이 경제적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중국과 미국은 서로 최대교역국 중 하나이며 중국은 미국 부채의 약 10.5%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국채 최대 보유국이기도 하다. 셋째 소련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부유럽에서 다수의 위성국가를 갖고 있어 불안정한 블록을 이루고 있었지만, 중국은 전 세계 인구의 4분의1을 갖고 있으면서 문화적으로는 수천 년 동안의 통일을 이루고 있어 매우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미국과 중국이 세계를 양분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이들이 나눈 대화와 협상 그리고 공동성명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제대로 해석하는데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양 정상들이 나눈 북한 관련 안건과 중미 간에 채택된 공동성명 제18항이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타임즈는 오바마 미국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공산당 주석이 주요 안건이 논의되는 소규모 비공식 만찬에서 북한문제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고 보도하였다.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비공식 만찬에서 나온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과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에 대한 우려표시를 중국도 북한 압박에 동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한국의 입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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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초년생, 키높이의 기적을 이루다 지면기사
[경인일보=]2년 전 소극장에서만 10만 관객을 동원했던 '민들레 바람되어'를 21일부터 다시 공연한다. 최근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미친 존재감'이란 칭호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정보석씨가 주인공 남편 역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정보석씨를 처음 만난 건 1989년께 대학로에서 내가 막 연극 배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하이네밀러의 '청부'란 연극에 출연했고 운좋게 포스터에 기주봉, 김학철 등 대선배들과 함께 나오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런데 그때 선배들과 함께 찍은 포스터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포스터상에 나는 긴 의자에 앉고 그 뒤로 키가 조금 큰 김학철씨와 키가 작은 기주봉씨가 서있는 그런 구도였다. 기주봉씨의 키와 나의 앉은키가 별 차이 없이 포스터에 비쳤다.이 포스터를 보고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문열 원작, 곽지균 감독, 정보석 주연의 '젊은날의 초상'이란 작품에 운동권 친구 역으로 나를 보자는 것이었다. 조연급이었으나 신인인 나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꽃단장을 하고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를 찾았다. 나를 기다리던 감독님과 촬영감독님, 영화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을 보며 작은 소리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셨다. "키가 좀 작지않나." "좀이 아니라 역할하고는 안 맞는데, 많이 작아" "운동권 학생이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수도 없고…" "그런데 얼굴은 좋네"(캬~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촬영감독이신 정일성 촬영감독님의 말씀이셨다). 결국 주인공 정보석씨가 180㎝가 좀 넘는 상황이라 다른 조연으로 좀 작은 듯하니 조금 큰 사람을 구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나원참, 사람 키를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키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얼굴(?)은 된다면서요, 키는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뭐 이런 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맴맴거리고 그 순간 참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보자는 약속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마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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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지면기사
[경인일보=]BC 6세기에 중국에 살았던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동양사상의 형성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유가(儒家)의 사상이 인륜의 규범과 정치의 근본을 다룬 것이라면, 도가(道家)는 일반 대중의 삶에 대한 이치를 밝힌 것이라 우리 서민에게는 더욱 밀착된 고전이다. 도를 깨달아 덕을 얻는 내용으로 된 도덕경은 서른 세 장의 도경(道經)과 마흔 네 장의 덕경(德經)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경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 도덕경 전체의 내용을 암시한다. 이런 글귀이다."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이 아니며, 이름이라고 하는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이 문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나 법칙 그리고 지식의 체계나 현상들이 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명구가, 내가 관련하는 건축과 디자인의 세계를 생각하면 너무도 절실하게 다가온다. 요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마치 시대의 화두가 된 듯하다. 성장한계에 부닥친 기업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디자인에서 찾고, 모든 도시들이 디자인위원회를 앞다투어 신설하고 도시 디자인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아 골몰하는데…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대거 그 일들에 참여하게 되니 건축가인 나로서는 반갑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디자인에 대한 본질을 알고 그 많은 전략과 정책을 생산해 내는 것일까? 나는 여러 곳에서 실제 진행된 디자인의 실상을 보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겉가죽의 분칠에 몰두하고 몇 가지 세련된 집기의 설치로 디자인이 다 되었다고 우기는 게 그렇다. 세계의 디자인과 문화의 중심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속히 변모해 나가는데, 우리만 '세계디자인수도'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니 하는 허무한 레토릭으로 자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삼성이나 엘지가 그토록 휴대전화 사업에 몰입했어도, 애플은 아이폰을 내세우며 압도적 격차를 만든 게, 바로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정의로 거둔 승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디자인은 19세기 산업혁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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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먹고 갈비 트림 지면기사
[경인일보=]새해 첫 날의 일이었다. 얼어붙은 길에 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뒷바퀴가 헛돌며 비실비실 미끄러져 내려가던 차는 드디어 길 옆 개골창에 처박힐듯 아슬아슬하게 멈춘다. 미사 시간은 십여 분 앞으로 다가오는데 성당을 눈 앞에 두고 차가 움직이지를 못하니 이를 어쩔 것인가. 새해 첫 미사를 천주교 성지에서 드리기 위해 충북 진천의 깊은 산 속까지 찾아왔는데 자동차가 새해 첫날부터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닌가.성지로 전화를 했다. 어떻게든 미사라도 드릴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수녀는 성지 관리인의 트럭을 보낼테니 타고오라고 했다. 공사장비가 가득한 트럭에 간신히 엉덩이를 붙이고 겨우 성지에 도착했다. 서둘러 성당으로 올라가자니 가득하게 눈이 쌓인 주차장 한 옆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바라보였다. '배티(梨峙)성지가 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을 축하한다'는 신자들의 현수막이었다.지자체가 지역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개발하는데 힘을 기울여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효과를 찾자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바로 이곳 배티성지의 김웅렬 신부가 한 표본이 될 수 있다. 김 신부가 감곡성당을 맡아 성모님을 위한 성지로 가꾸어 가면서 전국에서 감곡 매괴성당(매괴는 장미꽃이라는 뜻)을 찾는 천주교 순례자가 하루 4천명을 넘는 날도 있었다. 한 성당을 찾아 조그만 지방 도시에 하루 4천명이 몰렸다면 이건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수치로 이야기할 일이 아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수익만도 얼마였겠는가. 그래서 김 신부가 감곡을 떠나 이곳 배티성지로 부임하게 되었을 때 감곡의 식당 주인과 택시 기사가 '신부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쩌느냐'고 했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문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여주는 좋은 예의 하나다.지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새롭게 조명하고 다듬어서 기리는 정책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도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고유문화와 제3세계의 지역문화에 눈을 돌리는데서 시작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그 문화재의, 그 가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사려 깊은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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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대권 행보'에 대한 단상 지면기사
[경인일보=]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예상외로 빨라지고 있다. 박 전대표는 지난 20일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통해 한국형 복지모델을 제시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정책을 구상하게 될 싱크탱크 성격의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시켰다. 박 전 대표는 연구원 발기인 총회에서 "우리나라는 지금 새로운 국가발전의 기로에 있다.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국가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대권용 정책연구원을 발족시킨 것은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보다 큰 틀 속에서 보면 박 전 대표의 정책연구원 발족은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아직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이명박 정부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정책 경쟁을 통해 대선 과정의 질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난 2007년 대선은 정책이 실종된 채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으로 시작해서 검찰의 BBK 수사로 끝난 선거였다. 물론 대선 후보의 도덕성 검증은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도덕성에만 맞추면 정책 없는 선거로 빠지기 쉽고 선거가 끝나도 여운이 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원 발기인의 79%가 대학교수 등 학자들이고, 현역 의원은 단 한사람만 참여했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박 전 대표가 연구조직 출범을 정치와 곧바로 연결시키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현역 의원들은 후보 대선 캠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중책을 맡아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런 잘못된 관행은 경선이 끝나고 나서도 후유증이 심각했다. 친이-친박간의 내전은 계속되었고, 도저히 당을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향해 저주하고 주저 없이 칼을 겨눴다. 이런 고질적인 한국적 병폐를 타파한다는 차원에서 캠프를 현역 의원 중심이 아니라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했다는 것은 박근혜식 정치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연구원은 발기인들이 매달 내는 5만원씩의 회비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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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방지위한 국제적합의 가능한가? 지면기사
[경인일보=]인류는 산업혁명 이래 지난 200여년간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가 증가하여 지구온도가 상승하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였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온실가스의 배출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증가할 경우 21세기 말까지 지구온도는 최대 6.5도, 해수면은 59㎜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지구온난화는 이상기후의 원인으로, 북극과 남극의 빙하감소, 홍수 및 가뭄 그리고 해수면 상승 등을 야기하여 자연재해를 유발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환경부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기온 상승률은 세계 평균의 약 2배, 제주도 주변의 해수면 상승은 세계평균의 약 3배에 달하고 있다. 급속한 기온의 상승은 집중호우와 태풍을 유발하여 막대한 인명 및 재산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2천여 명에 달하며 열대병인 말라리아 환자는 1994년의 5명에서 2007년에는 2천227명으로 증가하였다. 금년에도 이상한파와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한 바 있다.전 세계는 1992년 지구온난화방지 국제협약을 체결하면서 인류가 온난화 방지를 위하여 공동 노력할 것을 합의하고, 특히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래 석탄과 석유의 과다소비로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일차적인 책임이 자신들에 있음을 인정하면서 우선적으로 온실가스의 배출 감소에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1997년 일본 교토 총회는 국가별 법적 구속력 있는 감축목표를 명문화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하고 선진국들이 2012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평균 5.2%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규정하였다. 교토의정서는 경제여건, 기후변화의 파급효과, 자연적인 여건 등이 상이한 전 세계 180여개 국가들이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합의 도출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의 감축을 약속함으로써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최대 과제인 지구온난화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보여준 인류 역사상 큰 의미가 있는 회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금년 12월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총회는 교토 의정서협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