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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 지면기사
오늘이 소서(小暑)다. 입춘으로 시작하는 24절기중 11번째, 작은 더위라는 뜻이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날이다. 연중 가장 덥다는 대서(大暑)와 초복, 중복도 이달중에 들어있다. 올해는 가뭄으로 모내기가 늦어져 벼농사도 다소 지연되고 있으나 예년 같으면 제초제나 농약을 뿌리는 것도 이때부터다. 이상기후 탓인지 올해는 가뭄과 더위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와 도내 도시지역은 벌써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고 포항은 섭씨 37.5도, 영천 36도, 대구 35도를 기록, 더위로 숨진 사람도 나왔다. 미국 영국등 에서는 이시기를 Dog days라고 한다. Dog days는 엄격히 말하면 가장 무더운 7월 3일부터 8월11일까지를 말한다. 우리처럼 보신탕을 즐겨해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별자리 가운데 Dog star(大犬座-큰개 별자리)의 별(실리우스)이 해와 함께 뜨고 지는 시기라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신문사에서는 한 여름철을 Silly Seaon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어리석은 계절 또는 노망의 계절쯤이 되겠지만 그게 아니다. 기사거리가 없는 기사고갈시기를 말한다. 무더위속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핫 뉴스가 없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단순한 얘깃거리(Silly story)로만 지면을 장식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초·중·고교의 여름방학도 20일 전후에 실시돼 이때쯤이면 여름휴가철이 본격궤도에 오른다. 경기가 다소 나아 진것일까, 쓰고 보자는 낭비풍조 때문일까. 이달 중순이후의 괌, 사이판, 발리 등 동남아 피서지행 항공기 편의 예약률이 이미 96%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그런데 올해 7월은 신문사들에게 Sillly Season이 될것같지는 않다. 탈세 언론사들에 대한 수사로 관련자들의 소환조사가 계속되고 이에 따른 야당의 공세가 정국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좀 수그러 들었다고는 하지만 뙤약볕 아래 민노총의 파업과 비정규직 노조의 파업도 우려되고 있다. 어수선한 정국이 사회를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무더위의 지금 시기가 이래 저래 2중의 짜증스러운 계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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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한 일 지면기사
지금 우리 식탁은 온갖 수입 농산물과 식품들로 가득차 있다. 그러다 보니 다이옥신 환경호르몬 등 각종 식품안정성 문제들로 국민 불안과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갖가지 유해성 여부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유전자변형(GM) 농작물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속 먹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직면해 있다. GM 농작물의 전세계 재배면적은 자그마치 4천300만㏊(2000년 현재)에 달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의하면 GM 농작물 재배가 너무 급속도로 확산,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 국민이든 GM 농작물을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지고 있다 한다. 전세계 콩 및 옥수수 수출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가 싼 가격에 많은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GM 농작물을 대거 생산, 소비자들이 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형편 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몇달 전엔 미국에서 가축사료로만 쓰이는 GM 옥수수 ‘스타링크’를 우리 나라에 식용으로 수출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준 일이 있었다. 그때 우리 국민들은 미국의 파렴치성에 치를 떨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링크는 성분 단백질인 Cry9C가 소화장애와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어 식용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이미 지난 98년 5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으로부터 사료와 공업용으로만 인정 받았던 작물이다. 더구나 재배사인 아벤티스사 마저 지난 해 10월 12일 스타링크 종자에 대한 승인을 자진 취하하고 종자시장에서 완전히 철수시키기 까지 했었다. 그런 걸 식용으로 수출했으니 우리 국민들이 격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처럼 미국만 탓할 처지도 못되는 모양이다. 누가 시키기도 전에 우리네 식품업체들이 자진해서 스타링크를 수입, 식용으로 유통시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통관이 보류되자 제지 접착제 등 공업용으로 용도를 변경, “식용으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해놓은 상태에서다. 이쯤되고 보면 몇달 전 미국에 분노했던 일이 차라리 민망할 따름이다. ‘그것 보라’는 듯한 미국의 비아냥 거림이나 없으면 다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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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평등 헌장 지면기사
'분수대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오줌을 갈기고 있는 아이는 왜 꼭 남자아이여야 하는가. 남녀차별이 아닌가'하는 여성 행인의 불만을 담은 86년 10월13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만화쯤은 애교다. 남녀차별의 사각지대도 아닌 '사각(死角) 국가'는 아직도 지구상에 수두룩하다. 99년 2월8일 후세인 요르단 국왕 장례식에 갔던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여사와 국무장관 울브라이트가 입장을 거절당했다. 베아트릭스 네덜란드 여왕과 소피아 스페인 왕비 역시 '보기 사납게' 거절당했다. 이유는 물론 '여성은 공식적인 장례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이슬람 율법 때문이었다. 96년 쿠웨이트 여성들이 참정권을 달라며 파업을 하자 겨우 2003년부터 허용된다고 한다. 한데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그 나라 여대생들이 여성의 참정권은 회교 율법에 위배되는 '악의 혁신'이라며 반대 진정서를 의회에 제출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은 거의 100% 남녀차별이 해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직업만 해도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장관 국방장관을 비롯해 사관생도, 조종사, 투우사, 오케스트라 지휘자, 경마장 기수, 권투 심판, 마피아 두목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여성 사제(司祭)는 안된다고 교황이 권위의 못을 박았는데도 영국의 성공회가 32명의 서품을 단행한 것도 이미 94년 3월이었다. 남녀의 '성역(性域)'이 없어졌다는 것은 간호사 미용사 조산원 파출부 등 남자의 직업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전업 '주부(主婦)'가 아닌 '주부(主夫)'도 많다. 프랑스가 14일간의 남성 출산휴가까지 주는 것처럼 징병제도에도 이스라엘처럼 남녀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남성들의 볼멘소리 또한 높아간다. 우리의 남녀평등지수는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굳이 '21세기 남녀평등 헌장'까지 선포하지 않아도 잘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장(憲章)'하면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로 불리는 영국의 대헌장부터 연상되고 헌법, 법률, 법 조항부터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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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와 미국 지면기사
조선시대 석학 이수광이 1614년에 쓴 ‘지봉유설(芝峰類設)’에는 담배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담배는 잎을 따서 폭건하여 불을 붙이어 피운다. …가장 능히 담(痰)과 하습(下濕)을 제거하며 또한 능히 술을 깨게 한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심어 그 방법을 씀으로써 매우 효과가 있다.' 이렇듯 담배는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건강을 해치기는 커녕 되레 의약적 효능이 뛰어난 풀로 여겨졌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횟배를 앓을 때 담배를 피워 진통시키려 했고, 치통이 있을 땐 담배연기를 입안에 품어 통증을 가라앉히려고도 했다. 또 곤충에 물렸을 땐 그 부위에 담배를 피운 후의 침을 바르고, 상처의 지혈 또는 화농방지제, 담 치료제 등으로 이용하였다. 물론 당시에도 담배의 폐해를 진작부터 알고 경계한 글들이 있기는 있었다. 일예로 1638년의 조선왕조 실록엔 '오래 피우면 가끔 간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오래 피운 자가 유해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 해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 일컬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글들이 두루 읽히고 알려지지는 못했다. 현대 문명세계에서 담배를 유익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흡연이 폐암 폐기종 지주막하출혈(蜘蛛膜下出血) 등 무서운 질병을 유발한다는 것쯤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래서 미국 등 서구지역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흡연 피해를 배상하라는 배상청구 소송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담배를 아예 마약수준의 건강유해물로 규정, 흡연행위를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미국이 한국에 대해선 자기네 담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며 갖은 압력을 다 가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우리 정부가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부과하려 하자 압력을 넣어 10%로 대폭 낮추게 했다고 한다. 미국의 몰염치도 밉살스럽지만, 이를 물리칠 수 없는 우리 처지가 더 부아를 돋운다. 오죽했으면 한국도 아닌 미국의 금연단체들이 다 분개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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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기부금 지면기사
1953년 미국 뉴저지주의 재봉틀 회사인 스미스사가 거액의 돈을 주주들의 동의없이 프린스턴 대학의 발전기금으로 기부한 적이 있다. 그러자 주주들은 회사의 이익에 도움이 안되는데 왜 대학에 기부금을 내느냐며 법원에 무효소송을 냈다. 뉴저지주의 고등재판소는 '기업은 좋은 시민성을 가질 의무가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익에 직접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스미스사는 기업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했다고 봐야한다'고 판결, 회사측 손을 들어줬다. 이를 계기로 미국기업들간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미지를 갖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기부행위가 확산되는 전기가 됐다. 미 대학 기부위원회가 집계한 결과 전국 1천34개 대학의 지난 98년 한햇동안 기부금 모금액은 184억달러(약 24조원)에 달했다. 99년 6월 현재 하버드 등 모금액 상위 10개대학의 기부금 자산은 626억4천400만달러(약 81조4천400억원). 같은해 우리나라 일반예산(84조3천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이같이 기업은 대학을 지원하고 대학은 연구의 결과를 기업과 사회에 다시 환원함으로써 미국을 세계최강국으로 올려놓은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1999년 하버드의 수입 17억8천800만 달러중 기부금(23%)과 학생등록금(26%)의 비중은 엇비슷하다. 이에비해 한국의 125개 사립대학의 기부금 비중은 전체수입의 7.7%인 5천207억원에 불과하고 등록금 의존율이 87.1%나 돼 학교운영을 거의 학부모의 호주머니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최근 기업의 대학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는 등 지원책을 마련했다. 대학에 대한 기부활동을 활성화시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참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에앞서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스스로가 기부자에 대해 형식적인 감사패 한 장만 줄게 아니라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길수 있도록 하고 지원금을 인건비나 행정비로 사용할 게 아니라 시설확충 등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하는 등 자체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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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없는 나라 지면기사
미운 털 박힌 사람만 '눈엣가시'는 아니다. 일본 사람들은 세금 또한 '눈 위에 달린 단고부(혹)'라고 한다. 한데 눈 위에 달린 혹을 수술하러 안과에 가지 않아도 될 꿈의 천국, 세금 없는 나라도 다 있다. 동남아의 보르네오 섬 북쪽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 브루나이에는 납세의 의무가 없다. 그 나라의 볼키아 국왕부터가 재산이 250억달러에다 방이 1천788개나 되는 궁궐에서 두 부인, 아홉 자녀와 극락처럼 살아도 세금 한 푼 안낸다. 무궁무진한 석유와 부존 자원 덕택이다. 중동의 아부다비 또한 무세(無稅) 천국인 것도 석유 자원 덕이고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역시 세금이 없다. 그러나 99.9%의 국가와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 며칠 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진 영국의 한 비즈니스 단체가 강연료 10만파운드(약 1억8천만원)를 주기 위해 세무 당국에 유권 해석을 의뢰했다. “예명이 빌 클린턴이고 본명이 윌리엄 제퍼슨 클린턴인 그는 연예인입니까, 정치인입니까?” 왜냐하면 정치인에겐 강연료에 세금이 없지만 연예인은 22%나 제하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정치인'으로 났다지만 요는 왜 정치인은 강연료에 세금이 없는지를 보통 상식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수입의 10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十一條)이라는 성경 말씀처럼 세금이란 기독교 신자든 아니든 국가라는 집체(集體)에 속해 있는 한 그 멤버 피(member fee)로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세금하면 불공평, 면세, 탈세, 포탈, 뇌물, 부정이라는 말부터 떠오르니 문제일 뿐이다. 3개 언론사에 추징 통고된 엄청난 세금이 과연 그대로 걷힐 것이며, 그대로 걷힌다면 언론사 존폐에는 영향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법은 또 과연 명명(明明)한 법의 정신으로 백백(白白)하고도 투명해야 할 조세 정의를 제대로 밝혀 줄 수 있을 것인지가 세간의 비상한 관심거리다. 형평이 기울어 지나쳐도 안되고 부당하고 억울해도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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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언론 지면기사
1968년 미국 제37대 대통령에 당선된 닉슨은 퇴임후 “언론이 나를 죽이려 했다”고 회고했을 만큼 언론과 불화를 겪었다. 그는 임기 2년쯤 됐을 때 월남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AP, UPI통신과 뉴욕 타임즈, 워싱턴 포스트의 백악관 출입기자에 대해 급기야 기자회견장 출입금지령을 내렸다. 언론이 계속 닉슨의 정책을 비판, 반전여론을 부추기자 닉슨의 러닝메이트였던 당시 애그뉴 부통령은 언론에 대해 '사상적 내시들' '속물들'이라고 공격했다. 애그뉴는 그리스계 이민2세의 보수주의자로서 비판언론에 대해 '신문이나 TV는 왜 선동기사로 다수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오도하느냐'고 따지며 전방위반격을 가했다. 197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토 에이사쿠 일본수상도 언론기피 인물이었다. 사토수상은 고별기자회견에 신문기자를 참석시키지 않고 일방적인 TV생방송 연설로 대체했다. 이유는 사실을 왜곡하는 언론과는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언론세무조사 결과와 탈세액징수, 고발을 둘러싸고 해당언론사 및 야당과 정부·여당간에 신경이 곤두서는 칼날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야당과 소위 빅3 해당신문사들은 내년 2대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비판적인 신문에 대해 길들이기 위한 것이라고 공격하고 나섰다. 반면 오홍근 국정홍보처장은 “세무조사는 합법적인 것” “언론 길들이기라는 주장은 심각한 여론오도행위” “일부언론은 수구·부패세력에 해당한다”고 적극 반격으로 대응했다. 다른 언론사들과 일부 언론학자들도 정부의 주장에 가세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정부 여당과 언론세무조사에 비판적인 신문사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권력과 언론은 승자와 패자로 갈라서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권력과 언론간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유지할 때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균형이 깨지고 어느 한쪽으로 힘이 기울 때 그것은 언론자유박탈이 될 수도 있고 언론의 횡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정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언론과의 갈등은 있어왔다. 이를 조정하는 잣대는 국민이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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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눈 흘기기 지면기사
일본과 러시아 사이엔 반세기 넘도록 풀지못한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일본측에서 본다면 쿠릴열도와 홋카이도에 걸쳐있는 북방 4개섬 문제가 그것이다. 2차대전 말기 옛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남사할린과 함께 쿠릴열도를 얻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쿠릴열도엔 일본이 자기네 고유영토라 주장하는 에토로후·구나시리·시코탄섬이 끼어 있었다. 게다가 하보마이 군도 역시 일본 홋카이도의 일부로 돼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은 종전 후 평화조약 체결 없이 이들 4개섬의 영유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도 쿠릴열도 전부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했다. 일본으로선 맥없이 영토를 잃은 판이니 두고만 볼 수도 없었으리라. 소련을 상대로 줄기차게 반환을 촉구해 왔지만 한번 ‘손에 넣은 떡’을 쉽게 내줄 소련이 아니었다. 동서냉전이 종결되고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현재까지도 문제 해결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속내가 결코 편할 리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일·러갈등의 불똥이 애꿎은 한국에까지 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 해 12월 한국과 러시아는 남쿠릴열도 부근 꽁치잡이 조업에 관해 합의한 바 있다. 애초 이를 몰랐을 리 없는 일본이건만 반년이나 지난 지금와서 뒤늦게 트집을 잡고 있다. 한·러합의가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한국 어선이 남쿠릴열도에서 조업을 할 경우, 자기네 배타적 경제수역(EEZ)내 한국 어선의 조업허가를 유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지금 북방 4개섬은 러시아가 엄연히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해역에서 조업하려면 러시아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일본의 주장이 황당한 건 그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보고 눈 흘긴다’더니 지금 일본이 꼭 그 모양이다. 어업과 정치문제를 구분할 능력조차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만만한 게 한국으로 알고 억지를 쓰는지 모르지만, EEZ은 한국에도 있다는 걸 필히 알려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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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게놈 지도 지면기사
진짜 공룡을 본 현대인은 없다. 미국의 귀재 영화감독 스필버그가 진짜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룡의 피를 빤 호박(琥珀) 속의 모기 화석에서 공룡의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루이 17세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것도 DNA 검사로 확인할 수 있었고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황녀 아나스타시아의 처형 여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것도 그 일가의 유골에 의한 DNA 감정 결과였다. 캐나다에 묻혀 있던 타이태닉호의 희생자 3명의 신원이 지난 달 밝혀진 것 역시 같은 결과였다. 유전자 규명과 유전공학은 필요하고도 유익하다. 미국 케네디가의 비극은 바로 '위험을 즐기는 유전자(Risk taking gene)' 때문 이라는 이스라엘의 분자유전학자 리처드 엡스타인 박사의 견해나 클린턴의 오입이 계부의 알코올 중독, 동생의 약물 중독 등 중독 가계(家系) 탓이라는 등의 해석은 차후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유전자 개조와 변조로 이른바 '행위=유전자 명령'이라는 등식을 깰 수도 있고 얼굴이나 손가락 등 겉만 낫는 것이 아니라 암을 비롯한 유전병 등 '속까지 낫는다'는 부모의 책임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위험성도 높고도 크다. 푸른 장미, 파란 달걀, 야광 생쥐, 발광(發光) 원숭이까지는 좋다 치자. 하지만 '닭+메추리'의 '메닭'이나 네 발 달린 닭만 해도 끔찍하다. 하물며 인간의 유전자를 지닌 돼지나 쥐 또는 양 폴리랴. '남남+여' 또는 '여여+남'의 유전자 야합 인간도 모자라 인간 복제에 의한 똑같은 인간,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까지 출현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독충으로 변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아니라 파리와 인간의 유전자가 잘못 합쳐져 거대한 파리인간이 돼가는 미국 영화 '더 플라이'부터 떠오른다. 한국인의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는 것은 낭보는 낭보다. 한데 왠지 떨떠름한 것은 신의 인간 설계도를 그렇게 무엄하게 훔쳐 읽어도 과연 괜찮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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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유감 지면기사
골프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서민대중의 미움을 크게 사는 스포츠도 드물성 싶다. 하긴 골프는 처음 도입될 때부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던 그런 스포츠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 아니면 몇몇 선택받은 귀족층이나 뻐겨가며 즐길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골프의 시초는 1900년경 원산항의 우리정부 세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세관 안 유목산 중턱에 6홀의 골프장을 만들어 경기한 것이 처음 이라고 한다. 또한 1913년 원산 근처 갈마반도의 외인촌과 황해도의 구미포에도 외국인들의 코스가 있었다지만, 목책으로 엄중히 막아 한국인 출입을 절대 금지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러던게 한국인들도 일부 상류층에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영친왕(英親王)부처는 1924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배워 이따금 서울에 와서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때쯤엔 경성골프구락부라는 골프클럽이 탄생하기도 했다지만, 여전히 골프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스포츠 일 뿐이었다. 요즘은 웬만큼 산다는 이들 치고 필드에 한 두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크게 퍼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 그날 살아가기 바쁜 서민대중과 농민들 눈에는 정치인들이나 부자가 즐기는 귀족스포츠 일 뿐이다. 회원권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고, 골프채 마련에도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스포츠를 아무나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즐기는 이들도 크게 늘었지만, 그만큼 위화감을 조성하는 스포츠 이기도 하다. 때로는 주변 상황이나 사정 따윈 아랑곳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즐기다가 눈총을 받는 것 또한 골프다. 군 수뇌부들이 골프를 즐겼다가 두고 두고 구설수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 하루 종일 긴박하고 심상찮은 상황이 펼쳐질 때 유유히 골프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철통같은 국방태세에 자신만만해서 였는지, 아니면 너무 둔감해서 였는지 좀체 판단이 서질 않는다. 군함이 아닌 상선 침범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