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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像 지면기사
일본은 어머니날(5월 12일)과 아버지날이 따로 있다. 어제(6월17일)가 바로 아버지날이다. 스미토모(住友)생명보험회사가 아버지날을 맞아 관심 끄는 앙케트 조사를 했다. '만약 아버지를 한 글자의 한자로 표현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인터넷에 띄운 것이다. 그 결과 자그마치 1만7천명의 네티즌이 응답한 톱 글자는 단연 '優'였다. 2위는 일을 뜻하는 동, 3위는 大, 그리고 酒→力→尊→强→嚴순이었다.1위의 '優'는 '뛰어날 우'자다. '秀勝'이 아닌 '優勝'의, '秀優'가 아닌 '優秀'의 그 '우'자에다 秀, 優, 良, 可로 성적을 매길 때의 그 '우'자다. 우량, 우월, 우위 등의 '우'자, 명배우 명우의 '우'자, 3천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우담화(優曇華)의 '우'자에다 넉넉, 충분, 우아, 고상, 인자, 후함, 여유, 이상적 이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 그런 '優' 아버지 상(像)의 일본 아버지들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이번 아버지날을 맞아 LA의 일본 아버지들이 모임을 결성, 아버지날 선물에 대한 불평 시위를 한 것 또한 '즐거운 비명'일 것이다. 즉 어머니날의 어머니들은 고급 식당이나 에스테틱 살롱(전신 미용원)에 초대하면서 아버지날의 아버지들에겐 넥타이, 양말, 팬츠 등 만을 주는 것은 지구의 온난화와 맞먹는 중대 문제라는 것이다.한자를 모르는 우리 청소년들에겐 그런 조사조차 불가능 하겠지만 만약에 가능하다면 어떤 글자들이 아버지 상으로 비쳐질 것인가. 요즘 시위에 바쁜 아버지들의 붉은 머리띠인 '赤'이나 파업의 '罷'자, 노사의 '勞'와 '使'자, 결사 투쟁의 '死'와 '鬪'자, 그리고 온갖 어려움에 부닥치는 '難'자 같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고개 숙인 아버지의 목덜미 項(항)자나 목 頸(경)자거나. 이미 1980년대 미국의 아버지가 출연한 기저귀 광고나 아이의 이를 닦아 주는 치약 광고의 아버지에서 떠오르는 육아의 兒, 부엌의 廚(주)자쯤은 차라리 애교다. 일본의 아버지 상인 優 동 大 力 尊 强 嚴 등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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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싸움 지면기사
물 확보를 위한 국제분쟁은 숱하게 많다. 그도 그럴것이 전세계에 2개국 이상 걸쳐있는 강이 214개나 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요르단강을 사이에 두고있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다. 요르단강은 폭 3m밖에 안되는 작은 강이지만 사막지대에서 볼 수 없는 연중 물이 흐르는 생명의 젖줄이다. 이 때문에 시리아가 1967년 강 상류(현 이스라엘지역)에 댐을 건설하려하자 이스라엘이 물줄기가 끊길 것을 우려해 3차 중동전쟁의 원인이 됐다. 이때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의 전체 물 수요량 33%를 의존하고 있는 갈릴리호의 수원지다.나일강 상류에 있는 수단과 우간다의 댐건설에 대비한 이집트의 전쟁준비도 그렇고 아랍국가들의 원유무기화에 대비해서 유프라테스강 상류를 막아 아쿠아댐을 건설, 시리아에 물 공급을 차단한 터키도 이와같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다뉴브강의 수로변경을 둘러싸고, 인도-방글라데시는 갠지스강, 미국-멕시코는 그란데강, 페루-에콰도르는 지루밀라강, 프랑스-스페인은 카롤강을 사이에 두고 분쟁중이다.그러나 선진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물문제로 지방자치단체간에 지역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는 없는것같다. 현재 평창강 취수와 관련해서 제천시와 영월군이, 황강 취수를 둘러싸고 경남·부산과 합천군이, 대구 위천공단조성에 대해 대구와 부산이 대립중이다. 또 경북 상주의 용화온천개발에 대해 충북이, 영천댐과 관련해서는 대구·영천과 포항 안동시가, 용담댐 건설에는 전북과 충남이 갈등을 빚고있다. 이밖에도 서울 경기와 강원 충북은 한강 상수원보호구역 유지관리비 부담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정부는 최근 물을 확보하기위해 오는 2011년까지 중소형 댐 12개를 건설키로 하는 한편 가뭄 비상시에 대비,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중이다. 이처럼 우리는 물의 중요성을 알고 물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으나 정작 물의 수요관리에는 무관심한 것 같다. 이스라엘의 상수도 누수율이 거의 0%에 가깝고 폐수재활용률이 50%에 이른다는점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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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한돌 지면기사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적 평양 방문으로 일궈냈던 6·15 공동선언이 나온지 오늘로 꼭 1년이다. 그때 남북한 두 정상의 첫 만남은 그 역사성 못지않게 큰 성과와 보람을 안겨주었었다. 통일문제 자주적 해결이나 이산가족·친척방문단 교환 등 공동선언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간 한없이 드높게만 느껴졌던 ‘마음의 벽’을 한결 낮추었다는 게 무엇보다 가슴 뿌듯했었다. 특히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예상 밖 자세에 많은 국민이 놀라고 감탄했다. 어쩐지 항상 음습하게만 각인됐던 그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스럼 없는듯 하면서도 시종 깍듯이 김대통령을 환대하던 모습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온 국민이 기쁨에 들떴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기쁨을 뒷받침 하듯 곧바로 남북한 실무접촉 등이 뒤따랐고, 몇차례 이산가족·친척방문단 교환도 이뤄졌다. 남북한 긴장완화 화해의 상징이라 할 경의선 철도 연결이나 경제협력 문제 등 논의도 술술 풀려나가는듯 싶었다. 물론 그러는 중에도 약간의 불안감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렵사리 피워낸 여리디 여린 꽃 한송이가 자칫 풋열매도 맺기 전에 또 다시 엉뚱한 비바람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공연히 두려웠던 것이다. 그 옛날 7·4 공동성명이 유명무실해지던 과정을 너무도 똑똑히 지켜봐왔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불안했던 예감이 정녕 맞아들어가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한창 무르익는가 싶었던 남북한 화해분위기에 찬 기운이 돌고 있다. 요 몇달사이 남북한 장관급 회담 등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슬그머니 중단됐다. 경의선 연결문제 역시 언제 논의됐었나 싶게 감감 무소식이다. 곧 있을 것 같았던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아직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많은 이들은 미국 부시행정부의 보수 강경노선이 남북한 관계에 냉기류를 실어왔다고들 한다. 일면 수긍이 가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왠지 떨떠름하다. 정녕 그렇다면 지금껏 우리가 해온 일은 과연 아무 것도 아니었나 싶어서이다. 6·15 한돌이라지만 마냥 우울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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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노미 사회 지면기사
어제 오늘 이런 생각에 잠기는 지식인도 많을 듯싶다. 그 첫 번째가 '아노미 사회'다. 프랑스어 'anomie'는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사회적인 공통의 가치나 도덕 기준을 잃은 혼돈 상태를 뜻한다. 즉 무질서, 무정부 상태의 아나키(anarchy)와 비슷한 말이다.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 규범이 무너져내리는 그 아노미 이론을 학문적으로 전개한 사람은 프랑스의 에밀 뒤르켐이고 정리한 사람은 미국의 로버트 킹 머튼이다. '아노미'란 또 불안, 자기 상실감, 무력감 등 현실 부적응 현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이기도 하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바람에 날릴 것 같은 가볍고도 불규칙한 원형의 '가랑잎조개'를 바로 불어에서는 '아노미'라고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생각은 무대 뒤의 인형극 조종자인 와이어풀러가 그 끈을 놓치는 바람에, 그리고 모형 비행기나 자동차 조종자가 리모콘(리모트 콘트롤)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한꺼번에 뒤얽혀 충돌하는 인형들과 비행기, 자동차들이고 세 번째 상념은 역사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이른바 '역사의 종말론'이다. '지구상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적인 실험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나치즘과 파시즘이 몰락했고 사회주의가 붕괴했다. 이제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대안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결합한 형태이며 이런 사회체제는 세계화와 함께 계속될 것이므로 역사는 끝났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라는 마지막 사회체제보다도 우월한 체제는 이 지구상에 없는 것인가.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결점을 보완하고 한 발 또는 몇 스텝 발전시킨 보다 이상적인 구원(久遠)의 사회 체제는 불가능한 것인가. 대책 없는 가뭄에다 비행기는 안뜨고 도로는 막히고 급한 병이 생겨도 병원도 못가는 어제 오늘의 우리 세태가 너무나 답답하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약속과 회의, 상담 또는 시험 등을 제삼자의 파업과 시위로 망쳐버린 손해나 병원에 못가 죽는 사람 등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국가적인, 대외적인 손해는 또 얼마나 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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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와 부정부패 지면기사
지난 세기(20세기) 후진국 독재자들 치고 부정부패 사슬에서 자유로운 인물은 지극히 드물다. 장기독재 끝에 지난 1986년 2월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대통령을 비롯, 1998년 폭동으로 물러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전대통령, 18년 철권통치 끝에 1991년 물러난 칠레의 피노체트 전대통령, 지난 해 쫓기다시피 망명길에 오른 후 축출된 페루의 후지모리 전대통령 등등…. 그들은 하나같이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유린과 장기독재자로도 유명하지만, 집권기간 거액의 공금횡령 유용 등 부정축재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부정부패 지도자라면 뭐니 뭐니 해도 중남미 국가들 만큼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도 또 없을성 싶다. 며칠 전 무기밀매 혐의로 전격 체포된 메넴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차라리 중남미 지도자들의 기나 긴 부정부패 사슬 중 한 고리에 불과하다. 지난 1992년 탄핵위기에 몰리자 자진 중도사퇴한 데 멜로 전 브라질 대통령, 1995년 5월 독직사건으로 물러난 페레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1994년 외화를 빼돌린 혐의로 권좌에서 쫓겨나 망명생활을 하는 코르타리 전 멕시코 대통령, 마약조직으로 부터 유입된 검은 돈을 활용했다는 샴페르 전 콜롬비아 대통령 등 거의 10명에 가까운 인물들이 수십년간 부정축재에 앞장서왔다. 그래도 그들중 사법제재를 받은 인물은 도미니카의 불랑코 전대통령(징역 10년), 에콰도르의 알라르콘 전대통령(징역 4월),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전대통령(징역 2년4월) 등 고작 4명 뿐이다. 각국 정부와 사법당국의 어지간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전 정권의 부정부패를 척결한다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음을 새삼 일깨워 준다 하겠다. 하기야 그 오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역사 바로세우기’에 그토록 심혈을 쏟았던 우리나라에서도 결코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부질없이 과거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일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런 인물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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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파업에… 지면기사
일본의 재계에서 쓰보우치 히사오(坪內壽夫)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1953년 이미 도산한 구루시마도크(來島船渠)의 경영을 맡은 이후 80년대 사세보(佐世保)중공업 이외에 은행 호텔 해운 제지 신문사등 모든 업종에 걸쳐 100여개의 도산 또는 적자기업을 회생시켰거나 흑자로 돌려놓은 경영의 귀재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사원의 월급은 남들이 주는 수준으로 하고 이익은 모두 내부 유보한다. 다른 회사보다 2~3배 많이 일하고 간접비를 줄이며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흔히 듣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쓰보우치는 털끝만큼도 타협없이 이를 철저히 실행한다는 것이었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평범한 원칙을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그가 적자에 허덕이던 사세보 중공업경영을 맡고있던 80년 사세보는 장기파업이 일어났다. 쓰보우치는 인원감축을 노조에 통보했고 노조는 '쓰보우치 타도'를 외치며 결사투쟁에 나섰다. 회사는 적자인데도 매년 임금인상에만 익숙했기 때문에 쓰보우치의 감원통보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노사협상이 타결돼 파업은 25일만에 끝났다. 당시 노조의 임금부장 오카타 아키라(緖方彰)는 후에 이같이 회고했다. “파업당시 쓰보우치사장이나 회사를 이해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쓰보우치는 적대해야 할 상대였고 페어플레이할 겨를도 없었다. 이제는 그를 믿을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도 부도난 회사를 노조가 합심해서 되살리거나 적자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은 사례는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오늘(12일)부터 전국 200여개 사업장에서 연대파업을 본격화한다고 선언, 사회전체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노사분규건수는 지난해의 60%수준에 그치고 있으나 파업의 양상은 더욱 과격해져 폭력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은 92년만에 최악이라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고 정치 경제적으로도 지쳐있어 만사가 짜증스럽기만 한 때이다 이러한 때 민간 경제주체인 노사가 멋진 협력으로 불안요인을 해소시켜준다면 그래도 희망을 걸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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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傳女傳 지면기사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는 딸들도 재미있고 같은 길을 가는 딸들도 흥미롭다. 유전인자의 데모랄까 반항인 경우와 그 순종의 경우라고나 할까. 보이체흐 야루젤스키 전 폴란드 대통령의 딸 모니카 야루젤스키는 아버지처럼 정치가가 되지 않고 모델 겸 배우로 활약 중이고 같은 폴란드의 전 대통령 바웬사의 딸 막달레나는 발레니나다. 아버지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을 폭군이라 비난, 93년 12월 미국으로 망명한 딸 알리나 페르난데스 레브엘타는 패션 모델이고 레이건의 딸 패티 데이비스는 '플레이보이'지의 커버 걸로 나오기도 한 누드 모델이자 기타리스트다. 90년 서울서 개인전을 갖기도 한 화가 덩린(鄧林)은 등소평(鄧小平)의 장녀이고 주은래(周恩來) 전 중국 총리의 딸 아이페이는 아버지의 회고록을 출판하기도 한 작가다. 반면 아버지를 적극 옹호하는 이른바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경우도 흔하다. 재직 중 시크 교도에 의해 살해당한 인도 총리 간디는 간디가 아닌 네루의 딸이었고 부토 파키스탄 총리는 마치 쿠데타로 실권, 사형당한 아버지가 환생(還生)한 것 같은 그런 모습이다. 노벨 평화상의 아웅산 수키여사는 버마의 독립 투사로 국민의 영웅인 아웅산장군의 딸이고 일본 최초의 외무장관 다나카마키코(田中眞紀子)는 다나카 전 총리의 딸이다. 레이건의 딸 머린 레이건도 아버지처럼 정치가가 되었고 모택동(毛澤東)의 딸 리나(李納)도 아버지의 노선을 존중, 해방군보(解放軍報) 최고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녀의 성이 '毛'가 아닌 '李'인 것은 어머니(江靑)의 본명(李進)을 따랐기 때문이다. 20세기 철권의 딸들이 주먹 싸움을 벌여 전세계의 시선을 모은 것도 아버지의 유전자 발로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의 표출일 것이다. 한데 무하마드 알리의 딸 라일라 알리가 나이 많은 조 프레이저의 딸 재클린 프레이저 라이드를 판정으로 이긴 것은 진 거나 마찬가지다. 혹시 근육이 굳어지고 손이 떨리는 아버지의 파킨슨병 유전자까지 권투선수 딸에게 유전되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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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 대통령 지면기사
페루의 새 대통령에 사상 처음으로 인디오(영어발음으로는 인디언)의 후예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당선됐다. 국민의 87%가 인디오계 이기 때문에 원주민출신이 대통령이 됐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중남미에서 이러한 일은 혁명이나 다름없는 엄청난 변혁이다. 페루는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장군에 의해 정복돼 잉카제국이 붕괴됨으로써 식민통치를 받는다. 300여년의 식민통치 기간중 원주민인 인디오들은 금·은광에서 노예로 일하는 등 백인들에게 부(富)를 제공하는 도구로만 이용됐을뿐 감히 독립투쟁은 엄두조차 못냈다. 그러나 1821년 아르헨티나에서 온 백인 산마르틴장군이 리마에 들어와 스페인주둔군을 격파하고 페루의 독립을 선언했다. 그는 스페인 본국에서 아르헨티나에 파견한 한 장군의 아들이었다. 이당시 스페인은 본국에서 중남미의 식민지에 파견한 귀족이나 장군에게 막강한 권력과 토지분배 등 특혜를 제공했다. 그러나 백인의 자녀라 해도 식민지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자녀들은 이러한 특혜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끄리요라고 분류되는 이러한 백인자녀들이 본국정부에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의 독립은 이러한 불만세력인 끄리요들이 원주민인 인디오와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이들도 인디오로 분류됨)들을 선동해서 투쟁한 결과 얻은 것이다. 페루의 독립영웅인 산마르틴도 이중 한명이었고 1년후 그를 이어 독립을 완성한 시몬 볼리바르도 베네수엘라에서 온 끄리요였다. 따라서 이들 끄리요들의 후손들은 20세기 들어서도 대부분 중남미국가들의 집권세력을 이루어 왔다. 일본계인 후지모리도 지난 90년부터 10년동안 집권했으나 원주민인 인디오는 예외였다. 현재 페루의 인구는 2천300만명이 조금 넘는다. 이중 50%가 순수 인디오이고, 37%는 메스티소, 12%는 백인, 1%가 일본과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이다. 인디오의 혈통, 벽돌공의 아들, 스탠퍼드대학 경제학박사, 한때 세계은행 임원으로 일했던 톨레도가 어떻게 기득권세력인 백인들의 저항을 극복하면서 국가경제를 일으킬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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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지면기사
기원전 359년 중국 전국(戰國)시대 때, 진(秦)나라 효공(孝公)은 상앙이란 인물을 등용하여 국정 전반에 걸친 개혁과 쇄신을 단행했다. 상앙은 두차례에 걸친 개혁을 통해 엄격한 법의 기강을 세워나갔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만든 법을 어찌나 까다롭고 엄격하게 적용했던지, 심지어는 왕의 서자마저 법을 어겼다 하여 코를 베는 형에 처하였다. 당연히 그를 두려워하고 시기하는 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중 효공이 죽고 정권이 바뀌게 되자 그를 시기하던 무리들이 참소하여 나라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고만다. 이리 저리 쫓기던 상앙이 어느날 한 객사를 찾아들었다. 그러자 주인이 나와 이렇게 말했다. “상군(상앙을 높여 부르는 말)의 법률에는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재우면 그 손님과 함께 벌을 받도록 돼 있습니다.” 결국 그는 그곳에서도 쉬지 못한채 계속 쫓기다 체포되어 죽임을 당한다. 기원전 338년의 일이다.언뜻 이같은 경우를 두고 ‘자기가 친 덫에 자신이 걸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론 ‘넘치는 건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다로운 법으로 인해 그 법을 만든 상앙 자신도 도피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요즘 쌍둥이 딸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걸 보면 그 옛날 상앙의 경우와 너무도 흡사하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97년 텍사스 주지사 시절 ‘술을 소지하거나 사려하는 21세 미만자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규정한 알코올음료법’을 제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신의 두 딸이 올들어 두번씩이나 술을 사 마시려다 이 법에 걸려든 것이다. 부시의 심정이 어떨는지 짐작이 간다.하기야 이런 식으로 치자면 최근 미국이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국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대중국·러시아·북한관계 등이 껄끄러워진 것 또한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난히 힘의 외교를 표방한 부시 행정부의 보수 강경노선이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잔뜩 자극한 결과로 볼 수도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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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 클럽 지면기사
낭만이 있다 없다, 낭만적이다 아니다, 낭만을 안다 모른다 등 흔히 쓰는 말이 '낭만'이다. '낭만'이라는 이름의 다방이나 카페, 술집 등도 많고 최근에는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히트를 하면서 '낭만'이라는 말은 더욱 많이 쓰였다. 문예 사조에도 '낭만'이 빠져서는 안된다. 동적인 리듬 속에 인간 감정을 표출하려는 19세기 제리코, 들라크르와 등 화가들의 미술이 '만주의 미술'이고 베를리오즈, 바그너, 쇼팽, 슈베르트 등의 19세기 음악이 낭만주의 음악이다. '낭만주의'란 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을 중심으로 유럽을 휩쓴 근대 문예 사조 및 그 운동이었다. 그렇다면 '낭만'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은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인 상태' '현실적이 아닌 공상적인 모양'이 '낭만'이라고 풀이하지만 우리말은 아니다. '낭만'이란 옛 프랑스 말 'Roman'에서 온 것으로 어원은 라틴어 로마니스(Romanice)다. 원래 속어로 쓴 설화라는 뜻이다. '기이하고 가공적이며 감성적이고 경이적'이라는 뜻의 그 외래어 '로망'을 우리가 '낭만'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역시 19세기 그 무렵의 일본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낭만'이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 한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이신(明治維新)을 전후해 서양 문예 등 학문을 대거 수입하면서 불어 'Roman'을 번역해 '浪漫'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그 '浪漫'이란 한자는 '물결 랑' '흩어질 만'자로 '로망'의 뜻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Roman'을 '浪漫'으로 표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浪漫'이라는 글자의 일본식 발음이 바로 '로망(ろうまん)'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浪漫'을 '낭만'이라 읽지 않고 '로망'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 '浪漫'을 우리가 '낭만'으로 읽는대서야 되겠는가. 외래어 그대로 '로망'을 쓰는 게 마땅하다. 문화 예술계와 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낭만파 클럽'이 결성돼 낭만문화운동을 펼친다기에 붙여 두고 싶은 당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