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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눈 흘기기 지면기사
일본과 러시아 사이엔 반세기 넘도록 풀지못한 골칫거리가 하나 있다. 일본측에서 본다면 쿠릴열도와 홋카이도에 걸쳐있는 북방 4개섬 문제가 그것이다. 2차대전 말기 옛 소련은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하면서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남사할린과 함께 쿠릴열도를 얻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쿠릴열도엔 일본이 자기네 고유영토라 주장하는 에토로후·구나시리·시코탄섬이 끼어 있었다. 게다가 하보마이 군도 역시 일본 홋카이도의 일부로 돼 있었다. 그럼에도 소련은 종전 후 평화조약 체결 없이 이들 4개섬의 영유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도 쿠릴열도 전부를 일본의 영토가 아닌 것으로 했다. 일본으로선 맥없이 영토를 잃은 판이니 두고만 볼 수도 없었으리라. 소련을 상대로 줄기차게 반환을 촉구해 왔지만 한번 ‘손에 넣은 떡’을 쉽게 내줄 소련이 아니었다. 동서냉전이 종결되고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현재까지도 문제 해결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속내가 결코 편할 리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일·러갈등의 불똥이 애꿎은 한국에까지 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지난 해 12월 한국과 러시아는 남쿠릴열도 부근 꽁치잡이 조업에 관해 합의한 바 있다. 애초 이를 몰랐을 리 없는 일본이건만 반년이나 지난 지금와서 뒤늦게 트집을 잡고 있다. 한·러합의가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한국 어선이 남쿠릴열도에서 조업을 할 경우, 자기네 배타적 경제수역(EEZ)내 한국 어선의 조업허가를 유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지금 북방 4개섬은 러시아가 엄연히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해역에서 조업하려면 러시아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일본의 주장이 황당한 건 그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보고 눈 흘긴다’더니 지금 일본이 꼭 그 모양이다. 어업과 정치문제를 구분할 능력조차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만만한 게 한국으로 알고 억지를 쓰는지 모르지만, EEZ은 한국에도 있다는 걸 필히 알려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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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게놈 지도 지면기사
진짜 공룡을 본 현대인은 없다. 미국의 귀재 영화감독 스필버그가 진짜처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공룡의 피를 빤 호박(琥珀) 속의 모기 화석에서 공룡의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루이 17세가 감옥에서 죽었다는 것도 DNA 검사로 확인할 수 있었고 제정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의 황녀 아나스타시아의 처형 여부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던 것도 그 일가의 유골에 의한 DNA 감정 결과였다. 캐나다에 묻혀 있던 타이태닉호의 희생자 3명의 신원이 지난 달 밝혀진 것 역시 같은 결과였다. 유전자 규명과 유전공학은 필요하고도 유익하다. 미국 케네디가의 비극은 바로 '위험을 즐기는 유전자(Risk taking gene)' 때문 이라는 이스라엘의 분자유전학자 리처드 엡스타인 박사의 견해나 클린턴의 오입이 계부의 알코올 중독, 동생의 약물 중독 등 중독 가계(家系) 탓이라는 등의 해석은 차후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유전자 개조와 변조로 이른바 '행위=유전자 명령'이라는 등식을 깰 수도 있고 얼굴이나 손가락 등 겉만 낫는 것이 아니라 암을 비롯한 유전병 등 '속까지 낫는다'는 부모의 책임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위험성도 높고도 크다. 푸른 장미, 파란 달걀, 야광 생쥐, 발광(發光) 원숭이까지는 좋다 치자. 하지만 '닭+메추리'의 '메닭'이나 네 발 달린 닭만 해도 끔찍하다. 하물며 인간의 유전자를 지닌 돼지나 쥐 또는 양 폴리랴. '남남+여' 또는 '여여+남'의 유전자 야합 인간도 모자라 인간 복제에 의한 똑같은 인간,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까지 출현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느 날 갑자기 독충으로 변했다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이 아니라 파리와 인간의 유전자가 잘못 합쳐져 거대한 파리인간이 돼가는 미국 영화 '더 플라이'부터 떠오른다. 한국인의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는 것은 낭보는 낭보다. 한데 왠지 떨떠름한 것은 신의 인간 설계도를 그렇게 무엄하게 훔쳐 읽어도 과연 괜찮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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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유감 지면기사
골프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서민대중의 미움을 크게 사는 스포츠도 드물성 싶다. 하긴 골프는 처음 도입될 때부터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기던 그런 스포츠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 아니면 몇몇 선택받은 귀족층이나 뻐겨가며 즐길 수 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골프의 시초는 1900년경 원산항의 우리정부 세관 관리로 고용된 영국인들이 세관 안 유목산 중턱에 6홀의 골프장을 만들어 경기한 것이 처음 이라고 한다. 또한 1913년 원산 근처 갈마반도의 외인촌과 황해도의 구미포에도 외국인들의 코스가 있었다지만, 목책으로 엄중히 막아 한국인 출입을 절대 금지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러던게 한국인들도 일부 상류층에서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영친왕(英親王)부처는 1924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배워 이따금 서울에 와서 골프를 즐겼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때쯤엔 경성골프구락부라는 골프클럽이 탄생하기도 했다지만, 여전히 골프는 일부 선택된 자들의 스포츠 일 뿐이었다. 요즘은 웬만큼 산다는 이들 치고 필드에 한 두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만큼 크게 퍼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 그날 살아가기 바쁜 서민대중과 농민들 눈에는 정치인들이나 부자가 즐기는 귀족스포츠 일 뿐이다. 회원권 하나에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고, 골프채 마련에도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스포츠를 아무나 즐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즐기는 이들도 크게 늘었지만, 그만큼 위화감을 조성하는 스포츠 이기도 하다. 때로는 주변 상황이나 사정 따윈 아랑곳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즐기다가 눈총을 받는 것 또한 골프다. 군 수뇌부들이 골프를 즐겼다가 두고 두고 구설수에 오르는 신세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북한 상선이 우리 영해를 침범, 하루 종일 긴박하고 심상찮은 상황이 펼쳐질 때 유유히 골프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철통같은 국방태세에 자신만만해서 였는지, 아니면 너무 둔감해서 였는지 좀체 판단이 서질 않는다. 군함이 아닌 상선 침범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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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개방, 그 후는… 지면기사
미국의 고교에서는 학교마다 좀 차이는 있지만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종전의 성교육 내용을 바꿔 순결을 강조하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의 내용은 우선 에이즈와 관련된 슬라이드, 비디오 등을 보여주고 성병에 감염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를 서로 토론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에이즈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장래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순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60년대 말부터 70년대까지 미국은 이른바 성혁명 이라고 말하는 시기였다. 섹스를 할수록 인간은 행복하고 성욕을 억제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주장이 만연했다. '플레이 보이', '플레이 걸' 등 포르노 잡지와 심지어 부부교환 잡지가 등장해서 최고의 인기를 끈것도 이 시기였다. 이 때문에 약 10년전인 90년에 이미 미국의 에이즈환자는 30만명에 감염자는 150만명에 이르렀다. 60년부터 90년까지 30년동안 인구대비 결혼건수는 50% 감소한 반면 이혼은 2.5배, 10대소녀 출산율은 3배나 증가해서 국가적인 문제로 부각됐다. 전 미국 후생성 10대임신에 관한 프로그램 입안실장이었던 페트리시아 S 팬더버그는 성 개방풍조가 만연했을때 불가피한 경우 콘돔사용을 권장한 것이 오히려 청소년의 성행동을 부추겨 왔다고 분석하고 청소년의 성행동을 절제와 금욕쪽으로 바꿔 나가기 위해 성교육의 U턴을 모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프리섹스의 선진국처럼 여겨졌던 스웨덴도 1982년 포르노숍과 섹스클럽을 모두 폐쇄시켰다. 정신문화원 오만석교수 등 4명의 교수는 최근 한국, 미국, 일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들이 미·일보다 성개방 의식이 훨씬 강하다는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순결은 인간의 도덕적 의무다'라는 문항에 긍정적인 반응이 미국인 66.5%, 일본인 24.6%인데 비해 한국인은 10.1%밖에 안됐다. '포르노물을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는 문항에서도 한국인 40.7%, 일본인 38.8%, 미국인 8.1%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성개방 의식과 교육은 아직도 미국의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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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6·15 지면기사
6·25와 6·15는 숫자가 비슷하다. 6=6, 2>1, 5=5로 6·15보다 숫자 하나가 많은 게 6·25처럼 보이지만 6=6, 25>15의 날짜로 치면 10일이나 차이가 난다. 이런 숫자의 구조가 엉뚱한 생각에 빠뜨린다. 즉 6·15는 마치 숫자 하나 차이(2>1)로 6·25에 근접한 것 같지만 6·15의 감격과 기쁨으로 6·25의 슬픔과 상처를 에끼고 치료하기에는 아직도 10일(25>15)이라는 큰 간격과 거리가 있다는 느낌 그것이다. 다시 말해 사망 56만1천, 과부 30만, 고아 6만, 이산가족 1천만명에다 61만채의 집이 무너지고 2백8억달러의 전비(戰費)를 날린 그 엄청난 6·25의 비극과 장장 51년간의 통한을 하루 이틀의 6·15 악수와 너털웃음으로 덮고 어루만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6·15가 아닌 6·25의 지름길로 만나 6·25부터 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의 그 깊은 계곡 비목(碑木)은 이미 오랜 비바람에 썩어갔고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나온다/ 장미 냄새보다도 더 짙은 피의 향기여'의 '죽어서 말하던' 국군의 피 향기도 뼈도 풍화한 지 오래건만 그 비극 그 상처는 51년 세월 사무치게도 깊기만 하다. 결코 한반도의 '반도(半島)'가 아닌 섬으로 끊어져 내린 남녘 산하에 아직도 뒹굴고 있는 녹슨 불발탄을 보라. 어찌 6·25를 남의 전쟁에 비하랴. 미국의 같은 남북전쟁도 비교가 안된다. 6·25보다 많은 61만명이 사망했고 종전 이틀 뒤인 1865년 4월 링컨대통령을 잃었어도 무엇보다도 노예해방이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얻을 수 있지 않았던가. 앙드레 말로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참전했고 후자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피카소의 명화 '게르니카'를 낳은 스페인 내전은 어떤가. 3백만이 죽은 베트남전도 6·25와는 상대적으로 다르다. 이 비극의 종막은 언제 내려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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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암센터 지면기사
주위의 가족이나 지기(知己)가운데 암 진단을 받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아 이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며 동정심이 우러나게 된다. 그만큼 암은 지금까지 현대의술이 완전극복하거나 치료할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인식돼왔다. 일본은 지난 1962년 암센터 설립에 앞서 설립준비위원회에서 센터의 이름에 '암"이란 단어를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당시 문부대신 나다오(灘尾), 설립위원 다케미 다로오(武見太郞), 암연구 대가인 요시다 도미조오(吉田富三)가 연일 격론을 벌였다. 결국 전문의사들의 다수 의견을 받아들여 암센터로 결정됐다. 이유는 환자들에게 암이라는 병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정면으로 대결해서 고쳐 간다는 각오를 갖게 할 필요가 있다는데 모두가 공감했다는 것이다. 62년 개원당시 일본의 암 치료율은 평균 30%에도 못미쳤으나 30년만인 92년에는 55%, 지금은 60%를 넘어섰다는 통계다.전문가들은 국내 암연구도 일본 못지않은 선진국 수준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문제는 폐암, 간암, 췌장암 등 아직도 완치율이 낮은 악성들이다. 현재 국내 암 환자수는 대체로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암이란 종양의 크기가 보통 1㎝정도일 때 발견확률이 가장 많은데 이때는 이미 10억개이상의 암세포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암세포는 빨리 발견할수록 치료율이 높다. 전문의들은 사람은 누구나 암세포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데 체내 면역체계가 정상적이면 세포가 자동제거 되거나 억제되는 반면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암이 발생한다고 말한다.엊그제 일산에 국립 암센터가 문을 열었다. 500개 병상규모에 암역학, 기초과학 등 5개분야 142명의 고급 전문인력이 배치됐다. 앞으로 국내에 발생률이 많고 치료가 어려운 폐암, 간암, 위암, 대장암 등 10대 암을 위주로 연구치료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암을 대처해 나간다는 의지다.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인간배아 등 유전자공학연구등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국내에서도 암정복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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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지면기사
우리나라 지명들은 대개 지형 기후 등에서 유래되거나 나름대로 특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지명에 산(山) 곡(谷) 현(峴) 천(川) 신(新) 대(大) 송(松) 등의 한자(漢字)가 들어있는 것이 많은데, 그중 산 곡 현 천 등은 산과 고개 및 그 사이를 굽이치는 하천 등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또 신 대 등은 인구 증가와 개간 등에 따라 새로 형성되는 마을과 관련된 것이며, 송은 어딜가나 흔한 게 소나무 였으므로 이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지명의 유래를 찾다보면 자못 흥미있는 내용들이 꽤 있다. 일례로 판문점의 유래를 봐도 그렇다. 원래 6·25 전쟁중 휴전회담이 열렸던 곳은 널문리 가게 앞 이었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판문점(板門店)이 된다. 그리고 애초 지명인 널문리는 ‘옛날 어느 임금이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려 하자 마을 주민들이 집 대문들을 뜯어내 임시로 다리를 놓아주었다’는 데서 붙여졌다고 한다. 요즘 한창 개발계획이 나와 관심을 모으는 분당의 판교 역시 그 유래는 다리에서 찾아진다. 판교는 원래 이 마을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널빤지로 다리를 놓고 다녔다 하여 ‘널다리’로 불리다가 ‘너다리’로 변했고, 이것을 한자로 판교(板橋)라고 표기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판교가 신도시로 개발된다고 한다. 그것도 수도권에서 가장 쾌적한 도시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계획안을 보면 전체 280만평 중 100만평이 택지로 개발되고, 인구를 5만9천명으로 잡아 인구밀도가 ㏊당 64명밖에 안된다. 여기에 녹지율을 24%로 하며 산업시설도 벤처기업과 연구소 등만을 들여 친환경 도시로 꾸민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한국의 ‘비버리 힐스’가 되리란 성급한 기대도 나올만 하다. 그런데도 정작 서울시 경기도 성남시 환경단체 등이 일제히 반대의견들을 내놓고 있는 걸 보면 어딘가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는 모양이다. 하긴 얼핏 생각해도 일대의 교통문제 및 수도권의 추가적 비대화 등부터 큰 걱정이긴 한데, 무슨 뾰족한 묘안이라도 구상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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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風十雨 지면기사
'오풍십우(五風十雨)"라고 했다. '닷새에 한 번 부는 바람과 열흘에 한 번 내리는 비"다. 그런 바람과 비가 우순풍조(雨順風調)다. 즉 적당한 때에 부는 바람과 알맞게 내리는 비의 기상 상태가 우순풍조다. 그러나 실상은 거의 그렇지 못한 기상이변과 이상(異常)기후이기 일쑤다. 90년만의 혹독한 가뭄이 해소되자 이제는 또 주말부터 온다는 장마 피해가 걱정이다.공자님식 표현대로라면 '春春夏夏秋秋冬冬"이다. 봄은 봄,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고 가을은 가을,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말부터 더웠다 하면 너무 덥거나 이상저온이고 추웠다 하면 너무 춥거나 이상난동이다.봄과 가을은 여름과 겨울에 흡수 통일돼 비발디의 '4계"가 아닌 '2계"가 된지 오래다. 미국만 해도 98년엔 47도의 지나친 더위로 110명이나 사망했고 94년엔 영하 36도의 지나친 추위로 130명이나 동사했다. 여름 저온과 겨울 고온으로 인한 농사 피해 등은 또 얼마나 큰가. 모두가 몇 년 주기로 가뭄과 이상고온을 몰고 오는 엘니뇨와 이상한파와 폭우를 부르는 라니냐 현상 탓이라고 한다.아이러니컬하게도 스페인어 'el Ni o"는 어린이를, 'la Ni a"는 여자아이를 뜻한다니 천상천하 얼마나 힘센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인가. 독일의 93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반세기만의 홍수에 잠가버린 아이도, 94년 1월초의 파리를 때아닌 홍수에 빠뜨린 무서운 아이도 라니냐였고 95년 1월의 유럽 폭우로 19명의 목숨을 삼켜버린 것도 그 여자아이였다. 역시 관련성이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홍수, 태풍 등 피해도 심각하다. 유엔환경계획 보고나 지난 15일 일본 각의(閣議)에 보고된 '2001년 방재백서"가 아니더라도 금세기 중 지표 온도는 1.4∼5.8도, 해수면은 88∼89㎝ 높아질 전망이고 뉴욕 런던 파리 베니스 도쿄 오사카 상하이 방콕 자카르타 등은 바다에 잠긴다는 것이다. 기상(氣象)의 신 아다드(Adad)의 기상 관장권을 우리 인간이 인계받을 수 있는 날은 과연 올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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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와 비에케스 지면기사
마을 앞 바닷가 모래톱에 매화꽃이 무성, 그 향기가 온 마을에 진동하던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그러나 지금은 그 아름답던 매화꽃들은 간데 없고 미군 전투기의 요란한 굉음과 포연만이 그득할 뿐이다. 반세기 동안 미공군 사격장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처음 이곳에 사격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1951년 미군 폭격기들이 매향리 앞 해안으로부터 1.6㎞가량 떨어진 바다 위 농섬을 해상 표적으로 사격을 시작한데서 비롯됐다. 그후 1954년부터 미군이 사격장 지역에 주둔하기 시작했고, 1968년엔 농섬을 중심으로 반경 3천피트의 구역과 이에 접속한 해안지역 38만평을 징발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1979년엔 농섬을 중심으로 반경 8천피트까지 확장 징발했고, 그후로도 계속 넓혀 들어가 지금은 무려 728만평이나 차지하고 있다. 사격훈련으로 인근주민들이 입어온 피해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극심하다.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으로 주택이 흔들리는 건 예사고 주민 8할 이상이 이명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오폭이나 불발탄 폭발사고가 빈번, 툭하면 주택 지붕과 벽이 내려앉는가 하면 사상자도 심심찮게 나온다. 게다가 주민들은 황금어장을 상실했고 농사마저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10년 넘게 사격장 이전 등을 강력 촉구하고 있지만, 미군측 반응은 마냥 ‘쇠귀에 경 읽기’식이다. 그런 미국이 푸에르토리코의 매향리라 할 비에케스 섬에서는 사격훈련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비에케스 섬 역시 반세기 넘게 미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돼 주민들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온 곳이다. 지난해 9월엔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대표들과 함께 이곳 주민들도 백악관 앞에서 연합시위를 벌였었다. 그런데 며칠 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이 이 섬에서의 훈련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첫번째는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었고, 두번째는 그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똑같은 처지인 매향리에 대해선 아직 아무런 언급도 없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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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죽음 지면기사
몇해전 음악가가 성직자와 함께 가장 장수한다는 한 조사통계가 있었다. 서양의 명 음악가들중에도 장수한 사람은 많다. 기록에 의하면 17세기 독일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요한 아담 라이켄이 1663년 99세로, 스페인의 걸출한 첼리스트이자 작곡·지휘자인 파블로 카잘스가 97세, '가보트'로 낯익은 벨기에의 조세프 고세트와 미국서 지휘자로 활약한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각각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또 교향시 '핀란디아'의 시벨리우스와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 샤롤마리 비도르, 미국서 오페레타 작곡가로 활동한 루돌프 드리믈, 영국의 지휘자 조지 스마트, 의사로 더 유명한 슈바이처등이 90세를 넘긴 장수 음악가들이다. 스트라빈스키(83)와 생상스(83),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카라얀(81)이 80을 넘겼고 아르비니, 헨델, 하이든, 엘가, 요한 스트라우스1세, 로시니등이 칠순을 훨씬 넘긴 장수 음악가들이다. 이들이 현대에 살았더라면 아마 100세를 넘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명에 간 음악가들도 적지 않다. 17세기 프랑스의 장 밥티스트 룰리라는 작곡가는 자신의 지휘봉에 엄지발가락을 찧어 이 부위에 병균이 감염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5년동안 고생하다 55세에 죽었다. 같은시기 런던의 폴사원의 합창장 마이클 바이스는 아내와 싸움을 한 뒤 집을 뛰쳐나가 야경꾼의 방망이에 부딪쳐 39세에 죽기도 했다. 18세기 독일의 요한쇼베르트는 32세때 독버섯을 먹고, 19세기의 어네스트 쇼숑은 자전거산책중 자동차에 충돌해서 44세로, 20세기 들어서는 모리스 라벨이 집앞에서 차에 치어 62세로 숨졌다. 얼마전 천재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덜익은 돼지고기로 만든 돈가스를 먹고 선모충(旋母蟲)병으로 죽었다고 미국의 재향군인회 의료원의 한의사가 연구 결과를 밝혀 관심을 모았다. 모차르트의 사인은 지금까지 살리에르에 의해 독살됐을 가능성이 많다는 정도로만 전해져 왔었다. 생전에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말년에도 비참하게 살다 35세에 요절, 빈의 공동묘지 어딘가에 묘비도 없이 묻힌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의 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