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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름달 아래서

    보름달 아래서 지면기사

    추석이 지났다. 다행히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괜찮았다. 고향집은 여전했으나 부모님의 등은 조금 더 굽어져 있었다. 누렁이는 앞다리를 들어 반겨주었고 살이 오른 흰 토끼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빨간 눈으로 토끼장 밖의 웅성거림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 봄 병아리였던 닭들은 어느새 중닭으로 자랐고 수탉은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을 건드릴까봐 부리부리한 눈으로 철망 앞에서 시위를 했다. 고향집에 오면 마치 순례를 하듯 하나하나 돌아보는 습관이 든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예년보다 일찍 추석이 찾아온 탓에 고추는 아직 반밖에 물들지 않았고 수수열매를 찾아왔던 새들은 양파 망이 씌워져 있는 걸 확인하자 치사하다고 지저귀며 다른 밭으로 날아갔다. 품종개량을 한 것은 아닐텐데 들깨줄기는 사람 키보다 컸다. 깨를 베고 옮겨서 털려면 꽤나 품이 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쓰다듬고 담장을 따라 뻗어간 머루줄기에 매달린 검은 머루 알을 지그시 눌러본 뒤 겨우 네알밖에 열리지 않은 사과나무에 애틋한 눈길을 주었다. 작년에는 한 집에 한 봉지씩 들고 돌아갔는데 올해는 한 알씩 가져가야할 형편이었다.집 뒤편 개울가에서 자라는 돌배나무는 이미 열매를 모두 떨어트린 채 잎이 말라가고 있었다. 돌배는 다른 과일과 달리 익기도 전에 열매를 툭툭 떨어트리곤 했다. 어린 시절 돌배를 줍다가 돌처럼 단단한 돌배에 머리를 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 고향에서는 돌배를 맛이 몹시 시다해서 심배라고 불렀다. 잘 익은 돌배라 하더라도 한 입 깨물면 그 신맛에 몸서리를 치는 게 돌배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산열매보다 인기가 없었는데 최근에 들어와 돌배 술로 일약 주가가 치솟았다. 잘 담근 돌배 술은 외국의 와인보다 그 맛이 깊고 그윽하기 때문이다. 폭설이 내리는 길고 깊은 겨울밤, 구들장이 뜨끈뜨끈한 고향집 뒷방에 앉아 문밖의 눈을 내다보며 마시는 돌배 술의 맛을 어디에다 비교하겠는가.뿔뿔이 떨어져 사는 식구들이 먼 길을 달려와 모두 모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간다. 성묘 가는 길이 어

  • 한 교포가 울고 있다

    한 교포가 울고 있다 지면기사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동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립대학이 대부분 소도시에 위치한데다 주민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도시라 외국인들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그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일어났다. 미시시피 어느 시골에서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뒤 화장실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화이트(white)라고 쓰인 화장실이 전면에 있고, 컬러(colors)라고 적힌 화장실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 있었다. 뒤편 화장실은 불결하기 그지 없었다. 잠깐 망설이다 우리 가족은 백인 화장실을 이용했다. 다행히 주유소측에서 시비를 붙지 않아 무사히 빠져 나왔다. 그러면서 나는 여행내내 흑인들의 슬픔을 생각하게 된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50년이 지났지만 미국 남부 오지에 가면 아직도 이같은 행태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미국에서 남부는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을 넘어서 복잡미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예해방, 남북전쟁 패배 등으로 인해 남부는 양키(북부)에 대해 뿌리깊은 증오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남부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하며 우아한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플랜테이션 농장주의 거대한 저택과 화려한 파티 등을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인종차별과 가난에 찌들은 암울한 지역을 떠올린다.남부에 대한 북부의 경멸은 백인들 사이에서도 심하다. 북부 백인들은 게으른 남부 백인을 일컬어 화이트 트래쉬(white trash), 레드 넥(red neck) 이라고 비웃는다. 말 그대로 '쓰레기 같은 사람'이란 뜻이다. '레드 넥'은 '목덜미가 빨갛게 익었다'는 의미로 볕에 탄 무지한 백인 단순 노동자를 뜻한다. 또 남부의 여러 주들을 두고 바이블 벨트라고 비웃는다. 창조론을 지지하는 골수 기독교인을 비하하는 말이다. 실제로 앨러바마·미시시피 등 남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놀랄때 급히 나오는 "오 마이 갓"조차도 불경스럽다며 문제삼는 이도 있다. 반대로 골수 남부인들의 양키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

  • 지속가능 발전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 필요

    지속가능 발전 위한 경제활성화 대책 필요 지면기사

    최근 정부는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업 진흥을 위한 규제완화 및 지원방침을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서민경제와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책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선 국민의 안전과 건강, 환경훼손을 담보로 하는 규제완화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처럼 여론이 나누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 용어는 1987년 발표된 유엔(UN)보고서 '우리들의 미래(Our Common Future)'에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다소 광범위하고 애매모호한 개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자연 또는 환경용량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경제·사회·환경, 나아가 문화부문의 균형 잡히고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이런 측면에서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는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간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기업의 생산성을 감소시키고 투자를 어렵게 하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완화하고 복잡한 행정절차는 혁신적으로 간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줘야 할 우수한 자연자원이 훼손될 수 있는 환경규제 완화는 성급하게 실행하기보다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규제완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예를 들어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내 유해 부대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하는 것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언론매체를 통해 학교 주변의 각종 유해업소들이 불법으로 영업하다가 적발되거나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뉴스를 접하는 상황에서 안전과 학습환경을 저해할 수 있는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한다는 경제활성화 대책에 대해서 자녀를 둔 부모라면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규제완화 이전에 아이들이 교통사고 위험 없이 안전하게 통학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 청소년이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

  • 미래의 엘론들 한국의 희망

    미래의 엘론들 한국의 희망 지면기사

    엘론,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안녕, 엘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왔네요.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죠?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무렵을 '처서'라 부릅니다. 처서가 되면 왕성한 여름기운이 수그러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도 많이 읽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기도 한답니다.엘론, 당신은 24절기 내내 바쁘죠? 당신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해서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하면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현란하고 아름답죠. 21세기형 슈퍼 히어로, 혁신의 아이콘, 제2의 스티브잡스, 영화 '아이언 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 당신이 창업한 회사들의 면면 또한 세계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죠.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친환경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인류의 화성시대를 개척하려는 민간 우주선 제작업체 '스페이스X'. 그곳의 CEO가 자산 91억달러의 43세 미남자라니, 많은 이들에게 어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테슬라가 보유한 300여개의 특허권을 모두 개방해 버린 당신의 대담한 결정을 보면 충격 그 자체죠. '기업이 빠른 혁신을 계속하면 기존 특허권이 의미없게 된다'는 당신의 선언은 삼성과 애플에도 귀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엘론,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엘론 머스크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죠? 우리나라에도 미래의 엘론들이 있지 않겠어요? 풋내기 공학도가 단순한 엔지니어로 기업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과 도전정신으로 사회의 틀 자체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당신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사람들은 그걸 미국의 힘이라고 진단하는데요, 당신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더군요. …미국은 누구에게나 창업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대학에서도 체계적으로 창업교육을 시키고 국가적인 지원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러니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사람이 벤처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결국 시스템 이야기네요. 대학과 기업과 국가가 미래의 수많은

  • 세월은 약이 아니다

    세월은 약이 아니다 지면기사

    지난 봄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자리한 문인집필실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며 봄날을 건너가던 중이었다. 때늦은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마침내 봄을 알리는 목련이 하나둘 피었다.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변해 아직 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목련이 얼어버렸고 그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시인·소설가·동화작가들은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 얼마 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한 척의 배가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그렇게 잔인한 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 도착했다. 그 사이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일부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말복과 입추가 겹친 날 세월호 특별법에 여야가 합의했지만 곧바로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는 세월호 특별법 무효를 선언했다. 요지는 이렇다. 참극에 대한 1차 책임이 있는 집권세력이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꾸리는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것.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는 특별법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것. 게다가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무슨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득권 세력에게 면죄부를 주고 동시에 축소·은폐의 길을 열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지난 넉 달 동안 우리는 착잡한 심정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살아왔다. 술을 마시다가도 문득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술에 취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들과 웃고 떠들다가도 문득 이 웃음이 과연 온당한 웃음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얼굴의 웃음을 황급히 지우기도 했다. 복 더위를 넘기기 위해 삼계탕 집에서 닭 뼈에 붙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뜯다가도 갑자기 죄송한 마음이 들어 젓가락을 놓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아직도 울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아직도 뜨거운 천막 안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술

  •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정의는 뱀처럼 가난한 사람의 맨발부터 문다 지면기사

    학창시절, 국사 수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는 의병에 관한 기록이었다. 임진왜란 의병 기록은 지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소상히 배웠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시험에 자랑스런 의병의 역사는 꼭 출제되었고 행주치마 유래까지 곁들인 역사 선생님의 자부심이 가득한 수업을 들으며 뿌듯해 했다. 그런데, 커서 어른이 된 뒤 가진 의문은 병자호란 때에는 어찌하여 자랑스러운 의병의 역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 의병의 활약사는 배운 기억이 많지 않다. 아니 나의 경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이같은 의문은 책을 읽고 역사학자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풀려 나갔다.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큰 고통이었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했다. 전쟁은 특권만 있고 의무는 없는 사대부 지배체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알려진 대로 선조는 전쟁이 발발하자 의주로 도망간다. 조선의 정궁은 왜적이 아니라 이 땅의 백성들에 의해 불타는 치욕을 겪게 된다. 선조의 도망은 곧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도피하면서 사흘 뒤 평양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허언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당시 선조의 명나라 망명 시도는 걸내부(乞內附) 파동으로 정의된다. 걸내부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속으로 들러붙기를 애걸한다는 의미다. 곧 자신과 비빈들만이 살기 위해 조선을 버리겠다는 것. 그러던 이 저열한 조선왕은 이내 왜적과 싸우기로 맘을 바꾼다. 선조실록에 따르면 명이 선조를 요동의 빈 관아에 유폐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명에 빌붙어 비빈들을 거느리며 제후로 살려던 계획이 틀어지자 선조는 내키지 않은 전쟁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이 시기 류성룡은 노비들이 왜적의 수급을 가져 오면 양민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면천법을 강행한다(선조 26년). 왜적 수급 하나면 양민으로 돌려준다는 데 의병을 마다할 노비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몇몇 개혁입법과 함께 수많은 조선 의병들을 탄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노비제 철폐는 궁궐을 불태웠던 백성들이 희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이런 개혁이 지속적으로 행해진다면 임란은 조선에 되레 기회가 될 수 있었다

  • 건강한 자연공원과 건강한 삶

    건강한 자연공원과 건강한 삶 지면기사

    요즘 도심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아마도 건강한 삶, 웰빙(well-being)에 대한 욕구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캠핑문화의 확산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최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 도립공원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가서 방문객들에게 태백산이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질병 치유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태백산의 건강증진 가치를 위해서 얼마를 기부할 수 있는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태백산을 찾는 것이 건강과 질병 치유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흥미있는 부분은 건강증진을 위해서 태백산을 많이 찾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기부금을 낼 수 있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등과 같은 자연공원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장소일 것이다.최근 미국과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Healthy Parks Healthy People(HPHP)'이라는 새로운 국립공원 관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HPHP는 인간과 자연을 서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뿐만 아니라, 건강한 지역사회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립공원 등의 자연공원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역할, 생물종 다양성 증진, 미기후조절, 수원함양, 공기정화 등의 생태적·환경적 가치를 강조해 왔다면, 이젠 인간의 건강한 삶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우리는 국립공원 등의 우수한 자연자원을 보전할 것인가, 지역 경제발전을 위해서 개발할 것인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삶에서 건강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과 호주 등의 HPHP 정책과 같이 어떠한 모습을 가진 국립공원일 때 과연 인간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줄 것인가,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를

  •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장마 끝에 보이는 푸른 하늘 지면기사

    - 장마철 풍경장마철에 접어들어도 마른 장마가 지속되더니 어느새 국지성 호우가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이라더니 여름 한 철 강수량이 꼭 그렇다. 예측 가능하다면 퍽이나 좋을까. 장마철엔 비가 오래도록 많이 내려야 제격이다. 산과 들이 충분히 젖고, 저수지가 만수위에 올라 넉넉해져야 안심이다. 농부는 논에 물꼬를 터주고 시청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넘쳤던 도심 하수구를 새로 정비한다. 그러는 사이 천산만야의 풀과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절기도 질서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삶의 축축한 비애를 한 장의 빈대떡으로 달래보는 소시민들의 심사는 제법 풍류에 속한다. 제격이건 풍류건 그런 빗속 풍경이 문득 그립다. 요즘 장맛비는 예측하기 어렵다.- 분단의 해소와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윤흥길의 소설 '장마'에 보면 빗속 풍경은 '제격'도 '풍류'도 아닌 하나의 상징이다. 현대사 최고의 비극과 갈등이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전쟁 기간중 외할머니가 할머니 집으로 피난살이를 온다. 두 할머니의 아들들은 국군과 빨치산이다. 소년 화자인 '나'에게는 외삼촌과 삼촌이 된다. 전사한 외삼촌을 그리워하면서 외할머니는 문득 비내리는 앞산을 바라보며 바위 새에 숨은 '뿔갱이'를 다 쓸어가라고 저주한다. 그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격분한다. 더부살이하고 있는 사돈의 저주는 금기 위반을 넘은 전쟁선포와 다름없다.마을의 소경 점쟁이는 모월 모일에 아들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지만 그 날 나타난 것은 빨치산 삼촌이 아니라 큰 구렁이다. 동네 아이들은 구렁이를 향해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치며 쫓아버린다. 이를 본 할머니는 기절하고 외할머니가 뒷일을 수습한다. 그녀는 나타난 뱀을 자신이 저주했던 빨치산 사돈의 혼령이라 생각하고 잘 달래서 좋은 곳으로 보낸다. 뒤에 깨어난 할머니가 이를 알고 사돈 간에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는 진술이 소설을 마감한다. 장마의 끝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첨예한 대립도 끝난다.여기서의 장마는 한 집안의 갈등과 비극적 상

  • 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지면기사

    집에 총을 든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트럭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나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헌병에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물었다. 헌병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적이더니, 군 시절 서류를 위조해 세 달이나 빨리 전역을 한 게 발각이 됐으므로 다시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서류란 대학 일·이 학년 때 받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저런 이유로 그 수업에 F를 맞으면 3개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즉 30개월을 꼬박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 서류를 위조해 제출한 뒤 3개월 먼저 전역을 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트럭의 짐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일찍 전역을 했다가 들통이 나 잡혀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맙소사! 내가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가만, 저 인간은? 트럭 안쪽에서 나를 주시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전역하는 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Y병장이었다. 내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인간과 또 군 생활을 함께 해야 한다니….이것은 내 꿈의 일부다. 오랜만에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놀란 내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왜 오래전에 사라졌던 꿈이 되살아났을까. 군대란 곳이 과연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떤 계기만 있으면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일까. 군대에 대한 꿈은 이것 외에도 많았다. 소총을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는 꿈. 전역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제대특명이 내려오지 않는 꿈. 찾아가 항의를 하니 시국이 불안정해 한 달을 더 복무해야 한다는 꿈. 참 종류도 가지가지였고 그 까닭도 그럴 듯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그 꿈들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나는 군사교육이수증명서를 위조하지도 않았고 현역 시절 총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으며 어처구니없는 제대특명 역시 받지 않았다.

  •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의리없는 시대를 위한 만가 지면기사

    2차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토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강에 투신한다. 뒤따라간 남자 A가 건져낸다. 전쟁이 일어났다. 남자 C는 점령군 독일군의 고급 장교로 등장한다. 엄청난 권력자다. 피아니스트 남자 B는 권력자로 돌아와 다시 여자를 욕망하는 그를 보고 좌절해 자살한다. 남자 C는 생명의 은인인 남자 A를 가스실로 보낸다. 남자 A를 구해준다는 말에 여자는 남자 C에게 몸을 허락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훌륭한 사업가로 변신한 남자 C가 추억속에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다. 늘 찾던 비프 롤을 먹던 그는 목을 움켜쥐고 죽는다. 독살이다. 이어 백발의 한 여자가 샴페인을 치켜들며 행복해한다. 수십 년을 기다려 온 복수에 성공한 것이다.이쯤 되면 아! 하고 이마를 탁 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는 사람은 꼰대소리쯤 들어도 될 법하다. 1999년 개봉된 영화 그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의 줄거리다. 한 여자를 두 남자가 공유한다는 설정이 우리 정서에 불편하지만 영화는 반전을 거듭하는 서사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으며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뜬금없이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방학을 틈타 헝가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방문 일정중 어느 하루, 나는 만사를 제쳐두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레스토랑은 부다페스트 도심 외곽 동물원 옆에 있었다. 고풍스러운 현관에는 교황·영국여왕·반기문총장 등 세계 저명인사가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순간 영화속의 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