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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이 청중 수준을 만든다

    시장이 청중 수준을 만든다 지면기사

    유럽 문화에서 부러운 것 중의 하나가 관객 기반이 아닐까 싶다. 정장 차림의 원숙한 관객들이란 연주가에겐 최상의 선물일 것이다. 좋은 관객이 좋은 극장을 만들고 고스란히 그 감동을 되돌려 받는다. 거꾸로 관람에 익숙하지 않은 불편한 관객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때문에 오페라, 콘서트, 연극, 미술관에 안목있는 청중과 콜렉터들이 얼마나 있는가가 도시의 문화 성숙도를 말해주는 증표다.필자는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80년대부터 해설음악회란 것을 수백 회나 진행해왔는데 지금은 상당한 인프라 확충과 관객 기반의 증가를 몸으로 느낀다. 돌이켜 보면 70~80년대는 르네상스, 필하모니 같은 감상실 문화가, 80년대는 오디오 및 음반 회사의 레코드 및 영상감상회가 주종을 이뤘다.그러다 번스타인 해설음악회를 본뜬 '금난새 해설음악회'가 나오면서 대중화는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90년 들어 대학의 사회교육원과 지자체 구민회관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2000년 들어서 예술의전당을 출발한 '11시 콘서트'는 공연의 패러다임을 바꿔 아침 시간대에 주부들과 소통하며 전국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다.직업상 수천 회의 공연을 경험한 평론가 입장에서 지역에 따라 관객 편차가 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즈음은 학부모들이 문화를 좇아 주거를 이동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문화가 도시 경쟁력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청중이 없어 좋은 공연물을 소화할 수 없다면 공연 기획사들이 회피하기 때문에 그 격차가 날로 심해진다. 정부도 이런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란 것을 운영해 제작비 절감, 네트워크 교류의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러시아 관객들처럼 발레리나 이름을 축구 선수 이름 외듯 한다든가, 연주회에서 무조건 큰소리로 앙코르를 외치지 않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 가려면 비평가도 필요하겠지만 행정의 장인 시장(市長)의 마인드가 대단히 중요하다.모차르트 시대의 귀족들은 모차르트가 작곡하고 연주한 곡에 대해 바로 즉석에서 평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재 모차르트도 귀족들의 입맛을 맞추며 예술성을

  • 유권자는 담화의 광장이 필요하다

    유권자는 담화의 광장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격동하는 현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정치가들은 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납작 엎드리면서 잘 모시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일단 유권자가 한번 모셔보라고 당선을 시켜주면 유권자는 뒷좌석에 팽개치고 사익 추구 또는 소속 정당의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한다. 야당도 집권당이 무리하게 과속할 때 절제하는 견제 장치가 아니라 깜빡 잊고 켜 논 사이드 브레이크처럼 무조건 집권당에 반대만 하면서, 타는 냄새 뿐만이 아니라 아예 최루탄 냄새까지 풍기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정치제도가 삐꺽거리는 것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새로운 정당, 정치세력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과거에 유권자들은 선거철에만 정치가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었고 평상시에는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매체를 통해서 정치에 의견을 피동적으로 반영하는데 그쳤다. 이제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이런 모델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경제생활에서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대접을 받아 온 유권자들은 정치면에서도 같은 대접을 바라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는 이런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등장했다.소셜네트워크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어떻게 사용되느냐는 그곳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슈에 대한 지식과 대화에 대한 태도에 달려있다. 다른 관점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라면 담론과 소통의 장이 될 수 있고, 자신과 같은 생각만을 접하려고 한다면 선동의 매개체로 전락할 것이다.얼마 전 국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통과된 후 각계 반응이 다르다. 어떤 이는 이제는 미국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차별 받지 않고 진출하여 힘을 마음껏 써 볼 기회가 될 것처럼 생각하고, 어떤 이는 좋은 세상이 다 끝나고 이제는 미국기업의 냉혹한 이윤추구 때문에 한국 산업이 거덜나고, 국민들의 삶이 더 빠듯해질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수행이 ISD(투자자 국가소송제)에 의해서 제한을 받기 때문에 이것은 망국의 조약이라고 부르고 있다.필자 의견은, 총체적인 경제적 성장은 더 빨라질 것으로 본다. 대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고, 수출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

  • '사이'에 대한 명상

    '사이'에 대한 명상 지면기사

    사람이란 개인이 아니라 관계로 이뤄진 존재다. 사람을 한자로 인간(人間), 즉 '사람 사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제 한 몸 건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과 제대로 관계를 맺을 때라야 참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냐, 사람 짓을 해야 사람이지!'라는 우리 속담도 같은 의미다. 여기 '사람 짓'이란 곧 상대방과의 사이를 제대로 수행할 적에야, 즉 소통할 수 있을 때라야 올바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덕담으로 자주 쓰는 '사이좋게 지내라'는 당부 속에도 그런 뜻이 담겨있다.이 점에 주목한 것이 유교의 오륜이다. 오륜은 5가지 인간 관계망, 즉 네트워크를 뜻한다. 부자간, 부부간, 벗들간의 사이를 잘 이룰 때라야, 사람다움을 획득한다. 오륜의 핵심은 나를 중심에 놓지 않고, 외려 상대방을 중시하는 데 있다. 노랫말을 빌리자면,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를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문제는 상대방의 처지로 바꿔 생각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사실이다. 옛날 공부란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몸에 익히는 과정을 일컬었다. 명륜당이라, '오륜을 닦아 밝히는 집'이 대학(성균관)의 본부건물이었던 까닭도 그 때문이다.인터넷이란 컴퓨터 통신망이다. 관계를 맺어 서로 연결하고 또 소통한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핵심도 '사이'에 있다. 인간의 간(間)과 인터넷의 인터(inter)는 그 뜻이 똑같은 것이다. 인터넷의 특징은 정보교류가 상호적이고, 수평적이라는 점에 있다. 인터넷은 위에서 하달하는 명령보다는 평등하게 교류하는 정보가 주를 이룬다. '사람의 사이'가 상대방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사람다움을 이뤄낸다면, '정보의 사이' 곧 인터넷 세상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람들의 자발성으로 구성되는 곳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사람이든 인터넷이든, '사이'는 도덕성을 본질적으로 내장한 듯하다.이 사이를 이어주는 것을 정치라고 부른다. 정치란 청와대나 정부청사, 혹은 의사당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 과정만이 아니다. 도리어 비근하고 구체적인 일상 즉 가족간, 동료간의 사람 사이를 적절하게 소통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 '성찰적 도시, 메타폴리스(Metapolis)'

    '성찰적 도시, 메타폴리스(Metapolis)' 지면기사

    중세에 지은 이탈리아 시에나 시청사 내부에는 암브로지오 로렌체티가 그린 도시와 농촌의 관계를 나타내는 프레스코 벽화가 있다. 그림 속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는 많은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밝은 분위기의 시민들은 상거래에 몰두하고 있다. 반면에 어둡게 그려진 성 밖에는 농부들이 죄다 머리를 숙이고 경작에 열중하는 동안, 잘 포장된 도로 위를 성에서 나온 귀족들이 사냥도구를 실은 말을 타고 하인들을 데리고 가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에도 도시와 농촌의 차이는 빈부와 신분의 차이였던 게다. 사실 도시가 발생하고 나서야 농촌이라는 공동체가 생겼다. 농촌은 도시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는 공급처였으니, 늘 도시에 의해 그 성격이 정해졌고 도시가 요구하면 사라지기까지 했다. 이 특별한 신분의 도시 거주민을 성내에 산다고 하여 부르주아라고 불렀다. 성벽은 농민에게는 완고한 상징이었던 것이다.그러나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정신의 자유를 얻고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물질의 자유를 취득하게 된 19세기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포화상태를 견디다 못한 성벽은 마침내 허물어지고 도시는 이제 기회의 땅이 되어 보랏빛 미래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확장 일로에 놓이고 만다. 그렇게 커진 도시를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라고 부른다. 현대에서도 주변에 위성도시를 여럿 둔 대도시를 의미하는 말이어서 그 배경은 확장과 성장에 있다. 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 메트로폴리스는 오늘날 무려 450개나 되며, 이는 천만 명 인구의 메갈로폴리스를 낳아 현재 세계에 20여 도시에 이르는데, 이 초대형 도시는 도시 상호간의 연합을 촉진하여 에큐메노폴리스라는 이름으로 지구 전체의 도시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폭발적이었다.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인류의 75%가 도시민이 된다고 한다.미래를 예견하는 이들은 죄다 비관적이었다. 온실가스, 지구 온난화, 이상기후, 석유자원의 고갈, 원자력의 공포 등등…온갖 지표와 예측도 불안하다. 과연 우리 인류는 지속할 수 있을까?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도시 그리고 그 화려한 종착점인

  • 정치와 예술은 거리가 필요하다

    정치와 예술은 거리가 필요하다 지면기사

    10·26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시민운동가의 승리로 끝났다. 박 시장은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의 승리라고 답했다. 재보선은 끝났다지만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향해 무한질주할 것이다.국민이 요구하는 변화의 실체가 뚜렷이 무엇인지는 입장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경제가 잘 돌아가 사람 살기가 좀 편했으면 하는 요구일 것이다.이제 우리나라도 몇 번에 걸친 보수와 진보 진영의 권력 장악을 해오면서 진저리 치는 이전투구의 싸움을 펼쳐 온 만큼 이제는 투쟁보다는 설득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치에 혐오감을 주고, 각자의 세(勢) 규합만으로는 어느 쪽도 큰 승리를 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기존의 식상한 정당(政堂) 정치를 벗어나기 위해 최근 신당론(新黨論)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은 인물을 찾기 위해 당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큰 고민에 빠진 것이다.박 시장이 오세훈 전 시장의 측근을 가까이 둔 것도 포용의 리더십을 통해 보다 강력한 변화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뜻일 것이다. 여기서 정치와 예술의 나쁜 관행도 이번 기회에 좀 고쳤으면 한다. 사실 MB 정부 들어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 전 장관이 예술에 정치색깔은 맞지 않다고 옷을 벗긴 사례가 몇 있지 않았는가. 말은 옳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코드인사 역풍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옷을 함께 벗어야 한다는 관행이 이제 예술계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문화계는 나름대로 굳건한 질서와 전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름석자도 생소한 인물이 정치권력을 업고 등장하면 예술가들은 아연실색이다. 이들이 훈장이라도 단듯 종횡무진하면 예술가들은 허탈감에 빠져 창조력이 감퇴하고 숨고 싶을 것이다. 박수 받을 사람은 떠나고 인적 네트워크가 빈약한 실습 수준의 인물이 나타나 다시 시동을 켠다면 이는 변화가 아니라 후퇴요 잘못하면 침몰이다. 예술은 정치가 혼돈스러울 때에도 시민을 위로해 주고 믿음을 주어야 한다. 제정(帝政)

  • 신문, 오늘날의 정당을 반면교사 삼아야

    신문, 오늘날의 정당을 반면교사 삼아야 지면기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이 정당도 없고 정치 경험도 없는 무소속 박원순씨를 시장으로 선출했다. 이것은 정치가들이 현 세대들이 겪고 있는 등록금, 취업, 안정적 고용, 육아, 주택 등의 문제를 유권자 입장에서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당 싸움을 비롯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국회에서의 몸싸움 등을 함에 따라 시민들이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 개개인의 조그만 목소리가 침묵으로 사라졌던 과거와 달리 소셜네트워크는 이를 수용, 정제, 확장함으로써 하나의 웅장한 교향악을 창출하는 효과를 냈다.과거에는 정당에 가입하면 경쟁상대가 타 정당의 소수 정치인 뿐이었으나 이제는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새로운 다크호스 등장 가능성으로 과거의 좋은 시절은 다 가버렸다. 한국의 신문도 정치인과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2008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자료에 의하면, 시민들은 신문기사 및 뉴스에 대한 설문에서 기자들의 전문성이나 신문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신문에 대한 신뢰감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으로 편파적이라고 느낀 사람이 68.8%, 국민의 이익보다 자기 회사이익을 우선한다고 보는 사람이 67.8%, 부유층과 권력층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는 사람이 65.8%, 정치·경제에 대한 비판 부족 59.2%, 정정보도 부족 59.2%, 대책 제시없이 비판 일변도 56.6%, 사실보도와 기자의견 구분 모호가 56.4%였다. 반면에 2009년 언론인 의식조사에 의하면 국민이 신문을 신뢰한다고 보는 언론인이 그렇지 않다고 보는 언론인보다 9.3%가 많았다. 신문이 이런 착각 속에서 시민들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기존의 일부 독자들은 관성으로 신문을 계속 읽겠지만, 어떤 독자들은 금품공세를 해야만 구독을 할 것이고, 젊은 세대들은 신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아예 소셜네트워크를 주 정보원으로 삼을 것이다. 신문이 광고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있으면 이

  • 더러운 입

    더러운 입 지면기사

    오백년 전,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살던 조식 선생이 출세한 제자와 함께 저녁 밥상을 맞았다. 내내 기름진 음식을 먹던 제자는 헐한 밥과 박한 찬이 목에 넘어가질 않았다. 선생이 한 마디 던졌다. "자넨 음식을 등으로 먹질 못하는구먼!" 헐한 음식을 억지로 삼키려면 목울대를 울리고 등을 움찔해야 넘어가는 것을 두고, '등으로 먹는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음식은 창자를 채우기만 하면 될 뿐, 입맛에 집착하지 말라는 회초리다.저녁 무렵 텔레비전을 켜면 언제나 먹을거리 타령이다. 이마엔 비질비질 땀을 흘리며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벌려 음식을 우적우적 씹는다. 또 그게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기 전에 엄지손가락을 쑥 내밀고서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해 가며 호들갑을 떤다. 먹는 음식을 두고 이런 추한 모습을 꼭 보여야 맛기행이 되고, 고향 탐방이 되는 것일까 싶다.50년 전 보릿고개 시절 오늘의 풍요를 헤아리지 못했듯, 또 머지않아 굶주리는 때가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 그래서 저 입들이 두려운 것이다. 문득 "음식에 탐닉하는 걸 비천하게 여기는 까닭은 고작 입의 욕망에 휘둘려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던 맹자의 말이 귀에 따갑다. 먹는 입은 더러워지기 일쑤인 것이다.음식을 삼키는 입보다 더 조심스런 것이 내뱉는 입이다.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사람됨이 들어있다.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흰소리를 자주 하면 사람이 실없어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입으로 내뱉는 것이 모두 다 말은 아니다. 지키지 못할 말, 책임지지 못할 말, 거짓말은 '말'이 아니다. 말 속에 의미가 없고, 말 뒤에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것은 '소리'일 뿐이다. 소리를 내는 것은 짐승이다. 흰소리, 발림말, 거짓말은 새가 지저귀는 것이나 개가 짖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니까 말이 뜻을 잃고 소리로 떨어지면, 사람은 곧장 짐승으로 추락하는 것이다.옛말에 "사람이 사람 짓하기 어렵다"라더니 말 한마디 잘못에 짐승이 되고 마는 셈

  • 광주폴리

    광주폴리 지면기사

    지난 9월1일 개막된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이번 주말 막을 내리게 된다.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고 담론의 계기를 만들어 그 지평을 넓힘으로써, 디자인비엔날레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줬다는 유수한 해외 언론들의 찬사가, 그간의 노력에 대한 좋은 위로가 되었다. 여러 전시 중에서도 광주폴리라는 이름으로 광주의 도심에 지은 작은 공공시설물이 이번 비엔날레의 성격을 단연코 부각시켰다고 했다. 폴리(Folly)는 원래 '다소 우둔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을 뜻한다. 지난 80년대 중반 버나드츄미가 파리의 라빌레트공원을 설계하여 지은 35개의 시설물을 폴리라고 부른 이후, 건축용어로 자리 잡으면서 간단한 구조물이지만 문화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시의 공공시설물로 알려지게 되었다.광주는 문화수도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문화와 관련된 많은 도시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비엔날레의 총감독직을 맡고 광주를 오가면서 본 도시 모습은 이에 걸맞은 게 아니었다. 급조한 듯한 신도심의 풍경과 낙후된 구도심이 어정쩡하게 결합된 모습은 우리 땅에 있는 여느 지방도시와 다를 바 없었으니, 치졸하였다. 풍부한 녹지와 유려한 광주천 그리고 언제나처럼 듬직한 무등산이 빚는 자연환경은 특별한 아름다움이며 그 속에서 빚어 온 인문의 역사는 빛나는 것임에도, 파행적 근대화 과정이 만든 불구의 풍경이었던 것이다.나는 사라진 광주의 읍성에 주목하였다. 광주가 역사도시임을 밝혀주는 광주읍성은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 도시 확장을 이유로 붕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라진 읍성은 도심 내 중요한 도로가 되어 그 존재의 사실이 남아있고, 읍성 안에는 여전한 옛길들이 있었다. 이 광주읍성의 흔적을 밝혀낸다는 것은 역사도시 광주의 복원이며, 원도심과 신도시의 경계를 확인하는 일은 도시 발전의 정체성을 찾는 일일 게다. 따라서 우리는 이 2.3킬로미터에 달하는 읍성길을 따라 읍성을 출입하는 문이 있던 자리와 모서리부분 10군데에 광주폴리를 짓기로 하였다. 어느 곳은 작은 공원으로, 어느 곳은 작은 공연장 혹은 전시장, 또는 버스정류장이

  • 클래식 레퍼토리 준비하는 지자체들

    클래식 레퍼토리 준비하는 지자체들 지면기사

    엊그제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인천시립합창단의 뮤지컬 오라토리오 '모세(우효원 작곡)'공연이 있었다. 시립합창단으로선 이례적으로 2억원의 예산을 투자해 브랜드 상품을 만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그런가하면 고요하고 정적인 정가를 음악극으로 만들어 새로운 변화의 옷을 입히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전당 개관 기념으로 월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콘서트가 있었는데 5천명의 청중이 큰 감동을 느꼈다. 각 도시마다 시립교향악단이 있긴 하지만 시가 월드필하모닉을 지원해 시민 만족을 높이고 도시 문화 역량을 키웠다는 평가다.대전시립교향악단도 지난달 서울 콘서트에서 변신의 모습을 보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처럼 극장은 극장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문화 역량을 키우기 위해 그간 소외되었던 예산을 클래식에 투자하고 있다.관객이 많이 모이는 것이야 대중문화 쪽이지만 이제는 사회 전체가 명품을 찾는 고급 정서가 지배적이어서 클래식을 선호하는 쪽으로 방향이 선회된 느낌이다.서울시합창단은 오는 12월 '칸타타 한강'(임준희 작곡)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 은행에서 전석 티켓을 구매하겠다고 요청이 왔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그만큼 클래식에 대한 시장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경남에서도 경남오페라단에 매년 지원을 하는 지역은행이 있어 문화가 풍성하게 꽃피고 있는 데 이는 나눔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때문이고, 지자체도 공공투자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하는 것은 문화의 방향을 바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무릇 세상의 이치가 풍성해지면 보다 나은 것을 찾게 된다. 대중문화 한류가 시장 논리 면에서 거대한 수효를 만들어 가고는 있지만 '동남아'라는 한계시장에서 맴돌고 있다. 지금의 10대 청소년과 드라마 청중들로 채워진 시장을 벗어나 유럽시장을 공략하려면 현재의 상품으로는 지속적인 시장 개척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유럽은 동유럽과 서유럽에서조차 서로의 문화적 자존심에서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자신들이 접하지 않은 동양의 문화가 이곳 상류사회로 쉽게 젖어들 수 없음은 당연하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고 일방적으로 우리

  • '소셜네트워크' 직접민주주의 불러 올까?

    '소셜네트워크' 직접민주주의 불러 올까? 지면기사

    미국에선 지금 기존의 경제질서에 저항하는 운동이 뉴욕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구호 아래 3주째 접어든 젊은이들의 데모는 잠깐 모였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명은 아예 인근 공원에 노숙을 하며 데모를 하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불만을 기존 정당정치가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느낀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전달된 정보에 따라 데모에 참석하여 그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업의 남용과 탐욕, 월스트리트 파워에 반대하는 데모가 지난 9월 17일 뉴욕에서 시작되어 10월 2일 일요일에는 700명의 참가자가 도로 점거라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이런 취지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보스톤 등 여타 대도시에서도 데모를 시작했다.지금 데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주로 80년대 또는 9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내 왔고 또한 인터넷을 통한 정보 소통에 익숙한 세대다. 부시 대통령 말기 때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에 직면한 젊은이들은 대학을 다닐 당시엔 비싼 등록금을 지불했고, 졸업 후엔 일자리가 없어 융자받은 부채에 허덕인다. 또한 직장을 찾기는커녕 인턴십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 세대들은 지금 좌절을 경험하면서 낙담하지 않고 그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과거에는 이런 불만의 소리는 친구들 사이의 대화에서나 술집에서 하는 토론 속의 불평으로 끝났겠지만, 이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덕분에 불만이나 다양한 의견들이 인터넷에서 수렴되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데모 참가자는 온라인 조직을 통해서 돈, 음식, 담요 등을 기부받기도 하고, 새로운 참가자들도 모으고 있다.그 이전 세대들도 현실에 불만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로 실직한 사람들이 은행으로부터 집을 몰수 당한 경우도 많이 있다. 금융기관의 방만한 주택자금 대출로 시작된 경제 위기는 정부의 금융기관에 대한 지원금으로 진정되었지만 정부지원이 주택상환금 감소에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금융기관들이 CEO들의 경제적 희생 없이 직원 감소를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