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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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인구 문제, 경제주의를 넘어 지면기사
분명 인구 문제를 경제 문제에 연결시키는 방식은 5·16 직후에 정책화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예각화되었다.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하더니,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 했다. 안 낳아야 한다는 논리가 이미 40년 전에 정식화되었다. 386세대는 군사독재의 경제성장 논리에는 분배 요구를 내세워 저항했지만 인구가 증가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맬서스 인구론적 사고법에는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요구와 함께 여성해방 사상도 함께 제출되었고, 그 시점부터 결혼 기피, 출판 기피는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X세대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구가하면서도 개인의 행복이나 윤택함을 위해 자손을 포기할 수 있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최초의 세대였고, IMF세대는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한 최초의 세대였다. 이후 88만원 세대가 뒤를 이었는데, 이는 실질임금의 저하나 빈부 격차의 역행적 확대로 인해 미래에 대한 비관이 확산되고 신념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386세대부터 IMF 세대에 이르기까지 30년 이상을 결혼과 출산에 비판적이었으므로 그들의 자녀 세대인 MZ세대, 즉 밀레니엄 세대부터 Z세대에 이르는 젊은이들에게 이 낡은 전통을 일으켜 달라 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해법 같다. 지금의 20~30대를 설득할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젊은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사회적 진출의 장애요소이자 경력 단절이며, 남성 청년들에게도 그 무거운 사회적 절차는 수행하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과업으로 여겨진다. 청년층 결혼·출산 기피 해결 방법은능률·노동집중 위주 자본주의 탈피가족삶 향유 보장시스템 도입해야 과연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만약 지금 정부가 착수해야 할 일이 있다면 사회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지금 진행되는 상황에 따르면 인간 생명을 유지하고 증식시키는데 끝내는 불리한 경제제도임이 밝혀지는 것 같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생산활동에 다투어 투입되어야 하고 이 과중한 노동 집중은 가족적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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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불완전한 국가체제, 불안정한 민주정체 지면기사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뒤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을 둘러싼 여진이 여전하다. 민족주의적 정서의 뇌관을 건드린 탓에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아가 한-미-일과 중국-북한 사이의 진영간 충돌 모습도 보인다.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지소미아 정상화 등 한일 양국간의 난제들을 풀기 위한 해법에 대해 여야간에 극단적인 이견을 보이는 배경에는 또 하나의 '그레이트 게임'이 도사리고 있는 듯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외교-안보적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간에 이견을 내지 않으며, 서로 갈등하다가도 외교적 중대국면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북한과 중국, 미국과 일본 등에 관련된 입장들이 극단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상충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기자는 사실을 보도하고, 학자는 진실을 토로하고, 정치인은 국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 반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학자들이 이념의 주구들로 전락하고, 정치인이 집단적 사익을 위해 국익을 외면하는 모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철저히 국가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국제관계에서 한국 내에는 여러 개의 국익, 국익으로 덧씌워진 사익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거대한 이념·사회적 합의 전혀없어조그만 갈등에도 큰 충돌로 이어져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국가형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국익에 대해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고 그 외교적, 안보적 실행에 있어서도 극단적 이견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한국이 단일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거나 여전히 분화하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다. 중국에 예속되어 있었던 조선에서 명과 청 사이에서 동요하거나 주전론과 주화론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실은 독자적인 국익이나 국가 정체성을 세우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바와 같다. 현재의 한국이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늘 불완전한 국가형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측면도 존재한다. 한국은 북한을 배제한 자기충족적인 국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북한을 통합하고자 적극적으로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로 인해 한국 내에서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이견은 동일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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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재능에 관하여 지면기사
흔히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반은 맞는 이야기다. 한자어 재능(才能)의 '才(재)'는 초목의 싹이 아직 땅 아래에 묻혀 있는 모양을 그린 것이고 '能(능)'은 곰을 그린 상형문자로 곰처럼 강한 힘을 의미하는 글자다. 따라서 이 두 글자가 합쳐진 재능이란 말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재능은 각 개인이 나면서부터 지닌 고유의 능력으로 사회의 영향과 상관없이 타고나는 것이다. 이른바 능력주의는 재능의 유무에 따라 사람마다 역량의 차이가 있게 되므로 이를 기준으로 사회적 재화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재능의 차이가 한 사람이 지닌 역량의 상이함에서 기인하기보다 사회적 분업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지게꾼과 학자를 예로 들었다."사람들이 가진 재능의 차이는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작다.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구별 짓는 것처럼 보이는 자질상의 큰 차이도 분업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가령 학자와 거리의 지게꾼은 전혀 닮지 않은 성격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선천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습관과 풍습 및 교육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또 그 뒤의 첫 6년 내지 8년 동안은, 그들은 아마 매우 비슷했을 것이고, 그들의 부모나 놀이 친구들도 별로 두드러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나이 때, 또는 그 얼마 뒤에 그들은 아주 다른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 무렵 재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되며, 그것이 차츰 커져서 마침내 학자의 허영심이 지게꾼과는 거의 아무런 유사점도 시인하지 않으려 하기에 이른다." 아직 안 드러난 잠재적 능력 지칭애덤 스미스 '능력주의' 반박 주장"사람들 간 차이, 생각보다 작아" 재능의 형성과 기원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이 주장을 전적으로 옳다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같은 분야,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재능에 따라 성취에서 현격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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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챗GPT와 미래사회 변화 지면기사
최근에 챗GPT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다. 2016년 바둑 두는 인공지능인 알파고의 충격으로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과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후에 챗GPT 공개는 또 다른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챗GPT는 OpenAI사가 만든 채팅 인공지능이다.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약자로 대형언어 모형(Large Language Model)을 사용하고 있다. 챗GPT는 매개변수 1천750억개를 사용한 거대 인공지능 기술로서 GPT3.5를 기반으로 2021년까지의 데이터를 학습하였다. 입력창에 영어나 한글로 질문을 입력하면 챗GPT는 거의 실시간으로 답변을 생성해 준다. 챗GPT를 사용해본 사람들의 평가는 놀랍다는 답변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의 창의영역으로 여겼던 글쓰기, 시짓기, 간단한 수학 질문에 대한 답변, 코딩 등의 영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답변을 생성한다.전 세계의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투어 생성형 AI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챗GPT 기술을 Bing 서치 엔진에 탑재했으며,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도 대화형 AI인 람다(LaMDA)를 선보였다. 우리나라의 네이버, 카카오, KT 등도 한글을 학습한 한국형 챗봇을 개발하고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 초거대 AI 센터를 건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기술을 선점하려는 전 세계 유수한 기업들의 경쟁이 심화할 것이고, 정부도 인공지능 쪽으로 연구 개발비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챗GPT가 부상하자 각종 도서가 발간되고 있고 세미나, 교육, 포럼 등이 열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챗GPT가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챗GPT는 과연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학습 데이터양 적어 엉뚱한 결과'글쓰기' 교육적 타당성 논란 대두검색엔진 기능 대체할 가능성 커 전문가 수준 특정 프로그램 출력'교육분야 활용' 고민해 볼 시점챗GPT가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줄 것이지만, 그중에서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다. 교육에 줄 영향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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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상처뿐인 '더 글로리' 사회 지면기사
정순신 변호사의 망신은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주는 우리 사회의 비극을 함축한 다큐멘터리다. 정 변호사는 학교폭력 가해자인 아들이 전학 처분을 받자 불복하고 법정으로 끌고 갔다. 현직 검사의 아들 사랑은 실패했다. 대법원은 학교와 교육청의 전학 징계가 합당하다 판결했고, 아들은 결국 전학했다.아들과 아버지가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선처를 구하고 징계를 수용하면 끝날 일이었다. 생활기록부의 학폭 징계 기록도 2년 후엔 삭제돼 아버지와 아들의 인생에서 떠오를 일이 없었다. 정 변호사가 법정에서 얻으려 했던 법익은 징계 취소였다. 아들의 장래에 혹시라도 지장을 초래할 학폭이력 세탁이다. 재판이 길어지면서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생활하는 2차 피해에 노출됐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다.정순신 사태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주는 비극이재명 전위 문재인·이낙연 敵게시 반민주적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1에서 학폭 가해자들은 고데기와 다리미로 주인공 '문동은'을 고문한다. 동은의 복수는 가해의 잔인성과 가해자의 반성 없는 악행으로 개연성이 뚜렷해진다. 시청자는 동은의 복수가 본격화될 시즌2를 학수고대한다. 예술에서 비극은 정화와 치유의 서사이다. 반면 현실의 비극은 권선징악의 궤도를 이탈해 권력 속에 은폐되고 더욱 잔혹하게 재생된다. 대중이 '더 글로리'의 현실판이라며 정순신 사태에 치를 떠는 이유다. 현실은 늘 허구를 압도하고 도피처를 잃은 대중은 절망한다. 학폭은 요즘 아이들의 세태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반영이다. 폭력으로 엉망진창이 된 우리 시대 말이다. 정치 언어는 적개심과 살기로 충만하다. 민주당의 언어는 반민주적이다. 이재명의 전위는 문재인과 이낙연을 적(敵)으로 게시한다. 대통령 부부를 인형으로 세워놓고 저주한다. 이재명을 기준으로 내부에선 동무와 반동을 구분하고, 밖으로는 선출된 권력을 저주한다. 국민의힘 언어라고 다를리 없다. 대통령실은 모욕과 냉대로 전당대회 경쟁 구도를 정리했다. 이준석은 소설 주인공 엄석대를 소환해 손오공의 분신처럼 부린다. 엄석대는 대통령이고 윤핵관이고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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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공정·공평이 수사와 재판의 원칙이다 지면기사
오늘 또 '목민심서'를 읽는다.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학자가 다산 정약용이고 다산의 대표적인 저서가 '목민심서'이니 목민심서야말로 조선 실학의 상징적인 저서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다산이 책의 저작 이유에서 '목민관'들이 읽고 백성들을 제대로 보호해주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목민관들의 행정 지침서가 다름 아닌 목민심서였다. 당시 조선시대에야 목민관은 지방의 수령들을 말하는데, 오늘로 보면 목민관은 바로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서 3부의 요인은 말할 것 없이 국가 전체의 모든 공직자들이다.목민심서의 핵심 키워드는 '공렴(公廉)'이다. 다산은 28세 문과에 급제하고 집에 돌아와 급제를 했으니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공직을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각오를 시를 통해 표현하였다. '공렴원효성(公廉願效誠)'이라는 다섯 글자의 시인데,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를 원하노라는 의미였다. 인간이라면 모든 일을 공정하고 청렴하게 처리해야 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나, 특히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공직자들이라면 더욱 공렴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다산의 뜻이었다. 모든 공직자들 중에서도 유독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공직자들이라면 더욱 공렴하게 업무를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목민심서의 '형전(刑典)'은 그 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한결같이 공정하게 해야만 한다(一出於公正 : 斷獄)'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옥사(獄事)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공정' 아니고는 다른 길이 없음을 강조하였다.'인정머리 없는 각박한 수사 안되고정상 참작없는 판결 안된다' 다산 뜻수사하는 과정도 공정해야 하지만 재판의 결과도 반드시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인정머리 없는 각박한 수사도 안 되고 정상 참작의 여지 없이 혹독하게 내리는 재판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수사관이나 재판관이 꼬치꼬치 밝게 따짐으로써 명성을 얻으려고 머리털을 헤치고 흉터를 찾아내듯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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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 칼럼] 이미 당면한 플럭스(Flux) 시대 지면기사
지난달 중순 美 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은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시장의 방향 전환 기대감에 마치 찬물을 끼얹는 인플레이션 대응에 갈 길은 아직 멀다며 종전 입장을 한 번 더 강조한 예가 있었다. 이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19명 중 17명과 시장에서 늘 강경한 어조로 여론을 주도하는 매파마저도 올 하반기에 한두 차례 더 금리인상을 예측했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기준금리 인하의 시급성이 급히 부상하면서 연준마저 고개를 심히 갸우뚱하고 있다. 이달 초 美 연준은 물가 때문에 통상의 회복을 기하고자 한 차례 더 베이비 스텝의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4.75%가 됐다. 유동성의 부작용인 물가를 잡기 위해 취한 조치이나 원하는 상황 반전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국은행도 몇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통화긴축 조치를 취했으나, 오히려 경기침체를 촉발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된 것 같다. 최근 주식과 부동산, 코인의 가상시장도 불투명해 단순 이익만을 위한 투자자산으로 유턴하면서 경제적으로는 불확실성과 스태그 플레이션에 이어 경기 둔화마저 더욱 심화되고 있다.일련의 상황으로 미국의 빅테크 기업의 CEO를 비롯 많은 억만장자나 심지어 2030 영끌족까지도 눈물을 삼키고 있다. 저소득층 보다는 오히려 고소득층에 더 타격을 주는 리치세션(Richcession, 부자들의 경기침체)이라는 말도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미 연준과 우리의 중앙은행에서 부득불 취한 기준금리의 인상이 유동성 위기를 더 야기시킨 것이 아닌가도 한다. 미 연준·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유동성 위기 유발 경기침체 촉발러-우 전쟁·코로나 의학신뢰 훼손 갑작스런 경기의 큰 오판에는 러·우의 영토 전쟁과 이 전쟁이 장기전이 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원인도 크다. 거기다 팬데믹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결국 스태그 플레이션으로 유발돼 전 세계 경제가 급작스런 '플럭스'(Flux, 끊임없는 변화와 혼란) 상태로, 종전과는 달리 보수적인 포트폴리오 위주의 위험분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 H자동차사 정의선 회장은 시무식에서 올해의 화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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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인구, '경제주의'가 문제다 지면기사
바야흐로 인구감소시대다. 2021년, 한국의 출산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고 했다. 가임여성 1인당 8.808명이었다.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 숫자는 26만500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여러 곳에서 인구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무엇보다 학교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요즘 고등학교 교실은 한 반에 스무 명 아래위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농촌 소재 학교는 물론이고 서울에서도 폐교되는 곳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비혼주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으려는 심리의 소유자들을 주위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 테고 인구는 격감할 것이다. 한 해에 26만명이 태어난다면 십 년이면 260만명이요, 삼십 년이면 780만명이다. 인구 많은 베이비 붐 세대가 물러가면 한국 사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완연히 줄어들 것이다.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너나없이 경제가 문제라고 한다. 먹고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나 출산에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면, 교육비나 기타 양육비 부담을 줄여주지 않는다면 이런 현상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아예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경제주의다. 오늘의 낮은 출산율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산아제한 정책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처음부터 인구 제한이 '경제개발', '경제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표방해 왔다. '경제와 인구 제한' 오랜 사고구조'X→IMF→88만원 세대' 더 극단화MZ세대 '비혼·출산 기피' 결정판 우리의 경우, 군사정부가 들어선 1961년 5월 이후 산아제한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인구폭발 운운하며 '적게 낳고 잘 기르자'고 했다. 1970년대 초가 되어서는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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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사회적 고립 지면기사
대한민국에서 '고독사'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항에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된다. 다른 나라에도 이러한 법률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고독은 중대한 사회문제임이 분명하다. 고독사는 노년의 경제적 빈곤이나 청년의 장기실업 등이 낳는 사회적 고립의 극단적인 형태이지만 산업사회와 도시화, 그리고 익명의 대중사회로 변모하는 현대사회에서 고독한 개인은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만은 이미 1950년에 '고독한 군중'이라는 책에서 현대적 고독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는 시대변화에 따른 미국인의 성격변화를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그리고 '외부지향형'의 3단계로 구분하고, 특히 외부지향형은 또래 집단이나 친구집단에 따라 행동하는 현대인으로 타자들에게 격리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내면적으로 고립감에 번민하는 사회성으로 정의한 바 있다. 다른 맥락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사회의 역사적 변환을 공동체적 '기계적 연대'의 사회에서 개인적 '유기적 연대'의 사회로 설명한다. 현대의 개인들은 인식하기 어려운 관계의 사회 속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갑작스런 사회변화 극복 어려웠고개인·자유주의 확산 분리 더 심화스스로 대응하는 가치관·삶 갖춰야 산업화된 도시의 한국사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명절이면 부모와 고향을 찾아 밥상에서 주고받던 설민심이나 추석민심이 정치적 풍향을 예고해주는 시대는 이미 사라졌다. 나이 든 사람들은 부모와 고향을 잃었고, 젊은 사람들은 그보다는 같은 세대 간의 랜선과 미디어를 통한 횡적 커뮤니케이션을 더 중시하게 되었다. 집산주의적 문화가 짙게 자리잡고 있었던 한국사회에서 그 공동체적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던 개인들에게 갑자기 불어 닥친 산업화와 도시화는 극복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다. 여기에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분리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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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내가 못 본 꽃 지면기사
지난 학기에도 학생들과 함께 시를 읽었다. 내가 담당한 과목은 시 창작이나 글쓰기가 아니지만 한 학기 동안 모든 학생이 각자 시 한 수를 마음에 들여놓는다는 목표를 세워놓았다. 그래서 매 학기 한 주는 시를 읽고 낭송하는 데 할애한다. 비록 2년 반 동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시 낭송 시간을 가지지 못했지만, 지난 학기에 대면 강의를 시작하면서 다시 시를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시를 한 편씩 손글씨로 써왔다. 정성껏,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쓴 시를 친구들과 함께 읽는다. 시를 한 편씩 읽을 때마다 잠깐씩 시간이 멈춰 선다.첫 번째 시 낭송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낭송하는데 중간중간 숨을 몰아쉬며 떨었다. 듣고 있던 다른 학생도, 보고 있던 나도, 같이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민영규 선생은 말했지. 지남철이 떠는 이유는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라고 떨지 않는 지남철은 버려야 한다고. 손이 떨린다. 목소리가 떨린다. 그렇지. 떨림은 진실의 몸짓이니까.이렇게 그 시간의 떨림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이렇게 잡아두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덧없이 지워져 버리고 말 것이다.두 번째 시 낭송 시간이었다. 한 학생이 고은 선생의 시를 골랐다. 왜 그 시를 골랐는지 물었더니 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짧아서 골랐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나는 버럭 호통을 치고 말았다. "짧아서 골랐다고? 자네가 시를 고르는 기준이 고작 분량인가? 상품 고를 때조차도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자네가 시를 고르는 정성이 상품 고르는 정성에 미치지 못하다니, 이건 자네가 고른 시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하지만 학생의 표정은 진지했다. "교수님, 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말씀드린 겁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내가 오해했을 수도 있겠구나. 아무렴 비난도 진심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한번 말해보거라." "예, 저는 시를 고르기 전에 다른 시를 많이 읽어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 시는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