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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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세월이 오래 가면 모든 것이 변한다 지면기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름은 같아도 그 성질은 달라지는 것이 많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 세력이 집권하자마자 구정치세력과 선을 긋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했다. 민주와 반민주라는 오래된 구분선은 이 정부가 스스로 진보와 보수로 '전선'을 재편하고자 하면서 허물어져 내렸다.탄핵 국면이 열린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뒤로 하고 큰 덩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버린 열린당은 그 후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였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 선거는 엄청난 표차로 당시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 문제가 계급·계층 문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상수임을 무시한 데다가 스스로 민주·반민주의 구분선을 해체해 버린 결과였다.그 다음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당시 야권은 가까스로 재통합을 이루며 선거 막바지 국면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TV토론에 등장한 진보당 후보의 막무가내식 '선전'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범죄혐의 정치인 체포동의안 가결찬성표 색출한다니… 무서운 세상말·행동의 자유가 민주주의 초석 사실은 이 선거 전부터 야당은 당내에 이질적인 분파나 정견을 허용하지 않고 주류파가 독주하는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은 전통적인 야권에 '386 세대'로 정치에 입문한 이른바 '운동권', 그리고 새로 등장한 안철수 세력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386', 이제 '586'이 된 운동권 정치인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지도부는 다른 분파들을 일방적으로 고사시키거나 쫓아내는 행태로 일관했다는 해석이 많다.18대 대통령의 시대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유리한 국면에서도 국민 정서를 거스르며 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을 석권하면서 향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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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지연된 공적 정의, '민주적' 사적 제재 지면기사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이 있다. 헌법 27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다. 재판이 길어질수록 소송당사자의 부담이 커지고 범죄 피해자의 구제가 늦어질 수 있는 만큼 재판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판사들이 워라밸을 중시하고, 판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고, 인사이동이 빈번하다는, 혹은 이른바 '사법민주화'로 인해 판사들의 업무 동기가 약해지고 유능한 판사들이 퇴직한다는 지연사유들이 거론되기도 한다.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전혀 다른 사안들에서 '지연된 정의'를 인식한다. 현 야당대표에 대한 수많은 범죄혐의는 수사, 기소, 재판, 국회체포동의 등에서 발목이 잡히고 있다. 그의 선거법 재판사건은 확정된 후에도 '재판거래'의 의혹을 받고 있다. 몇몇 간첩단사건은 변호인 측의 재판방해에 휘말렸고, 피의자들은 석방되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이 총동원된 울산시장 선거개입사건은 그 당사자가 임기를 마치고 나서야 1심 구형이 이루어졌고, 그나마 그 주역들은 수사와 기소에서 빠져버렸다. 전임 법무장관 재판은 공범인 부인이 형 확정으로 복역 중인데도 아직 1심 진행 중이고, 주범일 수도 있는 그의 성인 자녀는 이제야 기소되었다. 이에 조력한 한 국회의원의 재판은 임기를 다 마쳐가는 판국에 대법원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의가 지연되면서 정치적 공방만 거칠게 이루어진다.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검찰과 사법부에 의해서 유력한 정치인들의 재판은 법치의 영역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국민들도 어느 순간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의 편에 서면서 법치주의에서 벗어난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임기 후 구형 등정의가 늦춰지면서 정치적 공방만사적 복수 허용땐 법치주의 붕괴돼현대에 이르러 시민과 시민사회의 사회적 행위 역시 공공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요구된다. 실제로 시민단체는 정당과는 다른 사회적 공공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익집단과 구별된다. 따라서 그들의 목소리는 공익을 담고 있다고 인식된다. 특히 이들은 정당체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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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대한민국 갈라치는 정치, 멈춰 세우자 지면기사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 대한민국 현대사의 발원지다. 역사의 두물머리에서 대하로 합수해 대해로 흐르기에 넉넉한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모자랐다 해도 지금쯤이면 두물머리 근처에 도달하기엔 충분했다. 불운한 역사는 화해하기 힘든 법인가.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은 자기 물줄기를 고집하며 오늘도 대한민국을 갈라치며 흐른다.보수와 진보는 정체성을 길어 먹는 역사의 우물이 다르다. 전쟁의 강은 보수의, 식민의 강은 진보의 상수원이다. 서로 다른 물을 먹는 동안 한국 정치에 망조가 들었다. 역사를 편식한 여야의 정쟁 앞엔 과학도 상식도 무의미하다. 진보는 슬그머니 남침의 앞잡이 정율성의 기념공원을 조성하려다 들키고, 보수는 공개적으로 홍범도 흉상 이전을 결정해 스스로 역사의 편식을 증명한다. 진보와 보수는 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에 댐을 세워 정쟁의 동력을 발전한다. 보수와 진보에게 두 역사의 합수는 존재의 상실이다. 대장동의 이재명이 살려면 윤석열은 일본의 앞잡이가 돼야 한다. 진보 정권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려면 공산전체주의에 호응하는 진보의 실체를 드러내야 한다. 합수한 정사(正史)가 없으니 야사(野史)가 판을 친다. 판을 치는 것도 모자라 정사를 왜곡해 현재를 오염시킨다.식민의 강과 전쟁의 강, 자기 물줄기 고집보수·진보에게 두 역사 합수는 존재 상실역사로 분리된 국민의 화합은 불가능하다. 역사적 적대는 전쟁의 서막이다. 역사의 거울을 따로 쓰는 정치 내전으로 국가의 정기가 탁해졌다. 대통령과 야당의 극한 대립으로 정부와 국회는 정상 국가의 행정·입법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됐다. 사법부도 붕괴됐다. 법원의 판결과 검·경의 수사는 정권에 부역한다. 문재인은 박근혜의 대법원장을 탄핵했고, 윤석열은 문재인의 대법원장을 탄핵할 기세다. 문재인의 검찰이 덮었던 수사를 윤석열의 검찰이 열심히 파고든다. 사법 정의가 무너진 자리에서 대중은 사적 복수를 열망하고 실행한다.언론의 붕괴는 결정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사초를 목숨으로 지킨 사관들 덕분에 명실상부한 '실록'으로 남았다. 진실에 목숨을 걸었던 대한민국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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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이순(耳順)의 이명(耳鳴) 지면기사
지난해 환갑을 맞이하면서 귀에 이명이 찾아왔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서거나, 세수하다가 머리를 들 때, 운전을 마치고 차 문을 열 때면 귀에서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시계태엽 감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쓰르라미 우는 소리 같기도 한데 자세히 들어볼라치면 또 들리지 않는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는 덜컹거리는 기차 소리에 잠을 깼다. 집 주변에 기찻길이 없기 때문에 기차 소리가 들릴 턱이 없었지만, 분명히 레일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기차 소리와 똑같았다. 잠결에 이제는 귀에서 기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명이 심해졌구나 싶었는데 깨어나 확인해보니 이삿짐 차량의 사다리에 연결된 운반용 트레일러가 오르내리는 소리였다.그다지 거슬리지도 않고 생활에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라 딱히 치료할 마음까진 생기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냥 놔두면 청력을 잃을지 모른다고 겁을 주기에 가까이 지내는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에게 어떻게 치료하는 게 좋을지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명에는 별다른 치료법이나 특효약이 없고 그저 충분한 휴식과 잠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며 본인도 가끔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덧붙인다.별다른 치료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은 병원을 오고 가며 이런저런 검사를 받는 일을 번거롭게 여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토록 시끄러운 세상에 나만 조용히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데 남들은 모르는 이명남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코골이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이명과 코골이를 글 짓는 일에 비유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한 어린아이가 뜰에서 놀다가 갑자기 귀가 울자 놀라 기뻐하면서 이웃집 아이에게 말했다. '너 이 소리를 들어봐라. 내 귀에서 앵앵 소리가 나는데 마치 피리 소리 같아서 동글동글 별 같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기울여 서로 대보았지만 끝내 듣지 못하자 아이는 슬피 울면서 자기에게 들리는 소리를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다.""한번은 시골 사람과 함께 잠을 자는데, 코 고는 소리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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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선진국으로 퀀텀 점프하는 방법 지면기사
요즘 대한민국의 국가 순위는 현란합니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기관인 Global Fire Power에 따르면 2023년에 대한민국은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2022년에는 1인당 GDP가 3만2천142달러로 전 세계에서 22위에 해당합니다. GDP 대비 연구 개발 비용 비중은 4.9%로 세계 2위입니다. 국제 수출시장에서는 2.8%의 점유율로 6위, 수입시장에서는 2.9%의 점유율로 8위입니다. 더불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2위(KOTRA)를, 배터리 생산순위에서는 5위(S&P Market Intelligence)를 기록하며, AI 분야에서는 7위(Tortoise Media)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표들을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입니다.하지만 현실적으로, 선진국이라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는 다양한 답이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방법 중 어떤 길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일까요? 대한민국이 현재의 위치에 도달한 것은 국민의 희생과 역량 덕분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 국민은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잡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협력하여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1997년 IMF 위기 때에도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우리는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국가의 외화 부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습니다. 중화학 공업에서 디지털 산업으로 전환할 때도 우리 국민은 민첩하게 대응하여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성취해 가고 있습니다. 한국, 선진국 지표 가졌지만 문턱디지털 전환·첨단바이오산업 세상우리만의 제품 개발하는 '선도자' 우리의 급진적인 경제 발전은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열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는 저임금으로 제품을 생산하면서 선진국을 모방하는 추격자로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추격자에게 필요한 것은 응용과학과 공학 지식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개발한 것을 모방하거나 변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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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율곡과 다산의 나라 사랑 지면기사
율곡 이이와 다산 정약용, 조선을 대표하던 학자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율곡은 태어나기야 강릉이었지만 고향은 파주로, 파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생을 마쳤다. 다산은 광주 출신으로 태어나고 삶을 마친 곳도 광주였으나 오늘날에는 남양주시로 행정구역의 명칭이 바뀐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살았던 율곡은 당시의 일반 성리학자들과는 다르게 백성과 나라에 대한 관심이 특별하여 온갖 병폐를 안고 있던 나라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여기면서 많은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그대로 두면 반드시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화란이 온다고 거듭 주장했다.율곡의 논리는 명쾌했다. 병들지 않은 곳이 없는 나라, '경장(更張)'하지 않으면 나라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국왕에게 대책을 올리고 상소(上疏)를 통해 경장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대표적으로 '경제사(經濟司)'라는 국가 기관을 설립하여 경제를 살려내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백성들이 굶주리고서야 어떻게 강한 나라가 되어 나라도 평안하고 외침도 막을 수 있겠느냐면서 경제 살리는 대책을 진언했다. 경제를 살려내 강병 육성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예언까지 했던 점은 율곡이 얼마나 훌륭한 애국심의 소유자였는가를 증명해주고 있다. 율곡, 경제 살리고 강병육성 진언다산 '숭문의 시대' 기술개발 외쳐끝내 뜻 이루지 못하고 위기·망국 18~19세기를 살았던 다산, 온 세상이 썩은 지 이미 오래라면서 털끝 하나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면서 지금 바로 나라를 개혁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는 망하고 말리라고 예언하면서 나라와 백성을 살려내려는 온갖 방책을 강구하였다. 특히 탐관오리들의 발호로 세상이 너무나 썩어 문드러져서(腐爛) 그대로 두면 필망(必亡)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였다. 율곡의 '경제사'에 해당하는 '이용감(利用監)'이라는 새로운 국가 기구를 신설해서 이용후생의 혜택으로 나라와 백성을 살려내자고 주장하였다. 숭문(崇文)에 빠져 있던 그 시대에 기술 개발과 기술 도입 없이는 절대로 국부는 이뤄지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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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 칼럼] 우리 경제 터닝 포인트에 몇가지 위협 요소 지면기사
COVID-19 팬데믹과 재난지원금, 인플레이션과 스태그 플레이션, 엔데믹 선언 등에 이어 무역 적자에서 16개월만인 지난 6~7월 연속 흑자로 돌아선 것이 경기 회복의 시그널인가. 폭염과 태풍 카눈에 지친 국민들에게 청량제가 되었으면 한다. 미 연준(FED)에서는 기준금리를 베이비 스텝인 0.25%를 또 인상했다. 이는 22년만에 최고치로 미국시장도 불확실성이 덜 진정됐다는 예다. 美 금리의 급등, 中 부동산 디폴트 확산이 우리에게는 또 다른 악재로 미칠 가능성도 있다.두 달 연이은 무역흑자가 비록 유가 하락에 따른 석탄과 가스, 원유 등 에너지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수출액이 수입액을 간신히 웃돌아 발생한 불황형 흑자지만, 차제 터닝 포인트로 그 기대나 관심이 매우 높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수출입 동향에 의하면 지난달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오히려 16.5% 감소해 10월 이후 연속해서 마이너스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속내는 시장이 지금보다 더 위축될까 강한 우려나 염려도 있다.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뤄왔던 중소기업 특히 창업 1세대 분들이 고령화로 기업의 승계나 매각이 아닌 폐업을 결정한다는 소식에 아연실색이다. 그 수가 무려 1천500여 곳이 넘는 것으로 '2세는 사업에 별 관심이 없고 전문경영인 영입 역시 실패했다'라며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M&A마저 막혀 선택지는 오로지 폐업이 유일한 돌파구라 진언하고 있다. 美금리급등·中부동산 디폴트 확산유가 하락 따른 에너지 수입 감소16개월만 '불황형' 무역흑자 전환 정부도 2019년 4월부터 M&A 거래정보망을 통해 기업을 팔거나 인수를 원하는 데 관심 있는 기업들을 매칭해주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매물로 오르는 기업들이 상당기간 경기 침체와 상속세 등 경영이 최악으로 치닫자 부도나 강제적 구조조정만은 피하자라며 부실기업만이 아닌 기술력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알짜배기 기업들도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업계는 상속·증여세에 2세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라 알려주고 있다.지난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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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선거혁명을 예고하는 경고와 징조들 지면기사
2018년 폴란드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열다섯살 스웨덴 소녀 툰베리가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을 직격했다. "당신들은 자녀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어린 선지자의 경고를 어른들은 무시했다. 푸틴은 "어느 누구도 툰베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해주지 않았나 보다"고 했다. 트럼프는 "밝고 훌륭한 미래를 기원하는 행복한 소녀 같다"고 했다.소녀 툰베리의 경고는 지금 현실이 됐다. 미국에선 선인장이 말라죽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겨울에 일광욕을 한다. 열돔에 갇힌 지구 곳곳에서 태양의 빛과 열에 사람들이 쓰러진다. 펄펄 끓는 바다는 거대한 태풍을 키워 육지를 물바다로 만든다. 과학자들은 수 십년 동안 기후 재앙을 경고했다. 사라지는 빙하는 분명한 징조였다. 정치인들은 경고와 징조를, 내년이면 정상이 될 이변으로 격하했다. 푸틴은 전쟁 중이고 트럼프는 대권 도전에 나섰다. 모든 비극엔 경고와 징조가 선행한다. 비극을 막을 선지자의 지혜와 자연의 섭리다. 모든 비극은 예정된 비극이라 더 비극적이다.기후위기 원년급 폭염 속에 대한민국은 비장하다. 한 시대와 세대의 종언을 고하는 만종이 울려퍼진다. 오래된 경고는 유효하고 새로운 징조는 심상치 않다. 기후위기 경고… 정치인들 무시했으나 현실로LH 부실시공·대낮 칼부림 등 사회위기 조짐 오래된 경고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치세대의 유통기한 만료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두 개의 기적으로 탄생한 나라다. 당대의 숙적 박정희와 김대중이 차례로 기적을 이룬 이적은 세계적 신화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한정된 자원을 국부 창출에 집중했다. 김대중은 사형선고에도 굴하지 않고 인동의 뚝심으로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워냈다.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의 목적어는 국가와 민족이었다. 그들의 리더십은 오롯이 국가와 민족을 향했다. 김대중이 박정희와 역사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산업화와 민주화의 유산을 반분한 정당이 국민의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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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상생의 공동체 세상 만들기 지면기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뉴스에 우크라이나 드론이 모스크바를 공격했다고 하니,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도 편할 수만은 없는 듯하다. 편하지 않은 게 아니라 큰일이다. 뉴스에 의하면 푸틴 대통령은 징집 연령 상한선을 27세에서 30세로 높이고 소집 영장이 발부된 사람은 출국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싸울 군인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금방 끝내려던 전쟁이 오래 계속되고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강화되면서 러시아 청년들이 허무하게 대량으로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탱크 안에서나 들판에서 우크라이나 드론의 표적이 된 병사들이 희생되는 장면을 텔레비전은 전자게임을 보여주듯 송출하곤 한다. 비록 전쟁을 먼저 건 나라의 병사라 해도 꽃 같은 목숨이 아니던가. 우크라이나는 더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고골을 러시아 작가로 알고 성장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민족적 정서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은 이번 전쟁을 통해서야 비로소 소상히 알려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를 코앞에 두고 여러 쟁점들이 산적한 가운데 나토 가입을 서둘러 푸틴의 전쟁 정책에 빌미를 제공한 점은 없었던가? 그렇지 않아도 푸틴은 체첸 지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전쟁 상태를 야기함으로써 국민적 지지를 끌어올리는 지도자가 아니었던가? 두 나라는 비록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전쟁으로 서로를 또다시 살상해야 하는 새로운 비극을 연출하지는 않았어야 한다. 이 전쟁에서 나는 국민을 이끄는 지도자가 얼마나 현명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봉기로 세상 바로잡고자한 전봉준젊은 강일순 무고한 희생 염려 거부 고부에서 전봉준이 거사를 일으키고자 하여 같은 고을의 젊은이 강일순을 찾아갔다. 이는 증산교 경전인 '도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확하게 옮길 수 없지만, 봉기를 일으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한 전봉준의 이야기에 강일순은 무고한 백성이 희생될 것을 염려하며 거부하였다고 한다. 동학군이 결정적인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것은 공주 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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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근대적 한국인, 근대적 대한민국 지면기사
'계단주의'라는 경고문을 흔하게 발견한다. 영어식 표현인 'Watch your Step!'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지만, 계단은 행위의 주체가 아니기에 의미의 맥락은 달라진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당신의 행동에 유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만일 이를 계단으로 해석한다면 비탈길, 젖은길, 자갈길 모두에 각각의 주의표시를 해야할 판이다. 이와 달리 물품이 선반에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는 상점에서 '선반 주의'가 아니라 '머리 주의'라고 씌어 있는 곳들도 종종 발견된다. 다른 예로 테니스 동호인들은 자신의 공이 네트에 걸리면 "오늘따라 네트까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우리식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독특한 표현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피동적이고 방어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다. 자유로운 행위주체로서의 근대적 개인은 없다. 자신의 행위를 구속하는 외적 요인을 강조하고 자신을 그 피해자 혹은 '을'로 규정한다. 우리는 이른바 '구조'를 개인의 행위를 제어하는 한계 혹은 개인 자유의 한계로 이해하고 인식한다. 반면 자유로운 개인과 주체적, 자발적 행위를 강조하는 미국인들은 '구조(structure)'라는 단어의 개념적 의미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개인들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계에서 자신의 행위의 한계를 발견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어떠한 합의와 보상의 방식을 통하여 그 한계들을 돌파하는 방안을 찾는다. 한국인 피동적이고 방어적 세계관국가간 충돌, 외부 요인 먼저 인식 개인 혹은 국가간의 충돌 속에서 우리는 외부의 뭔가에 의한 좌절을 먼저 인식한다. 사람간의 정당한 이해갈등을 흑백논리 등을 통해 하나의 적대로 이해한다. 자본가들이 적이 되거나, 국가 혹은 국가의 현실적 구성원이 적이 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사회계약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근대국가는 종종 자본가, 지배세력, 기득권을 보호하는 적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뿌리를 둔 한 통일운동가이자 종교인은 '벽도 밀면 길이 된다'는 말로 분단의 장벽을 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