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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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교양 교육의 어려움 지면기사
대학은 상품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현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대학은 일반적인 상품만큼 평등하지 않다는 점에서 대단히 불합리하고 불완전한 상품이다. 일반적인 상품은 돈만 내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지만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자격시험을 통한 경쟁을 거쳐야 할 뿐 아니라 그 결과에 따라서 원치 않는 상품이라도 구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등록금을 지불하고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한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학점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학생들은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반발하게 된다. 심지어 등록금 냈는데 왜 학점을 안 주느냐고 주장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있을 정도다.학생들은 대체로 전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항변은 합목적적이다. 애초 대학이라는 상품을 구매한 목적이 전공을 충실하게 익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의 교양 교육은 그 반대다. 전공은 충실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등록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교양은 충실하게 가르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전공 시간에는 착실한 학생이 교양 강의에는 결석을 자주 하거나 교양 시간에 전공 공부를 하는 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많은 학생이 교양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을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 뒤에는 교양을 등한시하는 사회구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양 없는 한국 사회가 교양 교육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다. 무조건 들어야 졸업 '번들상품' 비슷물리학도에게 詩 알려주기 어렵듯타전공생에 교양교육 쉬운일 아냐 대학에서의 교양은 전공에 견주면 더욱 불합리한 상품이다. 싫든 좋든 무조건 들어야 졸업이 되니 선택의 여지 없이 받는 번들 상품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니 끼워 팔기 강매 상품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구매자의 처지에서는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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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지금이 인천의 대전환 적기이다! 지면기사
나는 자랑스러운 인천시민이다. 인천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자 내 삶의 터전이다. 자식들을 낳아 키운 곳이고, 제자들을 가르쳐 온 곳이기 때문에 인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인천이 진정한 미래도시, 초일류도시로 발전하길 소망한다. 지금까지 인천은 수도권의 배후도시로 간주되어 왔다. 인천은 서울과 수도권의 물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천에서 일하고 서울에서 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로 인해 인천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떠나기를 갈망하며 인천에 대한 애착이 낮다고 여겨져 왔다. 물론 이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렇다는 얘기다.나는 인천을 다섯 개의 터미널 도시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이 다섯 개의 터미널은 공항 터미널, 항만 터미널, 에너지 터미널, 쓰레기 터미널, 전력 공급 터미널을 말한다. 인천공항과 인천항은 설명이 필요 없는 시설들이다. 인천시민 중에는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머지 세 개의 터미널은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시설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시설들을 어쩔 수 없는 시설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존재를 애써 무시한다. 이제 이 다섯 개의 터미널을 디지털 전환, 첨단 바이오 및 헬스 산업, 스마트 도시산업의 전초 기지로 활용함으로써 인천은 대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항과 항만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인천 공항은 수도권 배후 공항 역할에서 벗어나 지금은 세계적인 허브 공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인천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설이 되었다. 공항과 관련된 면세, 관광, 레저산업은 영종도, 청라, 송도 미래도시, 강화 및 제물포 개항지구와 연계하여 한류 문화 지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영종도와 강화도 연결 대교는 강화를 역사안보갯벌 문화지구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인천항은 인천 신항, 인천 크루즈터미널, 인천 컨테이너 터미널 등을 활용하여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시설과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 기존의 인천항, 남항 등은 인천의 해양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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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양평 수모' 방관하면, 똑같이 당한다 지면기사
지난 5일자 경인일보는 사설 '정치와 정무에 흔들리는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게재했다. 종점 변경 의혹을 둘러싼 야당과 정부의 공방이 예사롭지 않았다. 민주당이 특혜 변경 의혹을 제기한 도로 종점에 영부인 김건희가 있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반박은 서늘했다. 늘공의 빈곤한 정무감각을 탓하며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러다 고속도로 사업이 지체되고 표류할까 조바심이 났다. 정치와 정무로 국책사업을 흔들지 말라고 경고한 배경이다.지체와 표류를 걱정했던 양평군과 지역언론의 우려는 순진했다. 민주당은 6일 강상면 종점 현장을 찾아가 특혜 의혹을 기정사실화했다. 다음 날 원희룡 장관은 사업 백지화를 선언했다. 정치가 없는 한국정치에 일말의 양식을 기대했던 지역의 호소는 철저하게 짓밟혔다.서울~양평 고속도로는 양평군민들의 15년 숙원사업이자, 1조8천억원 짜리 국책사업이다. 양평군민 13만여명이 오매불망 고대하던 고속도로가, 야당의 상투적인 의혹제기와 국토부장관의 신경질에 없던 일이 됐다. 양평군민에겐 생명선인 도로를 야당은 정쟁거리로, 여당 장관은 정치적 결백 입증용으로 날려 먹었다. 원인과 결과, 시종(始終)이 내로남불로 뒤얽혀 해법부재의 지경에 이르는 한국형 정쟁의 특징을 감안해도 서울~양평고속도로 백지화는 어이없는 일이다. 막장조차 없는 정쟁이 국책사업을 말아먹기에 이르렀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1조짜리 국책사업민주 의혹제기·원희룡 장관 백지화 선언 국책사업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백지화 사례가 하필 서울~양평고속도로이다. 아무래도 경기도라서, 양평군이라서 당하는 모욕이다 싶다. 영호남과 충청권에서 정치적 시비로 국책사업을 날린다? 상상할 수 없다. 제주도 국책사업을 이런 식으로 백지화한다? 원 장관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할 리 없다. 강력한 정서적 연대로 무장한 지역의 국책사업은 정쟁도 가볍게 뛰어넘는다. 십수년간 검토 차원에 머물던 동남권신공항은 2021년 2월 문재인의 선언과 국회 특별법 입법으로 순식간에 30조짜리 가덕도 신공항 사업으로 확정됐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동의했다.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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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조선의 선비 화서 이항로의 애국심 지면기사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선비란 유학에 고명하고 애국심이 투철하여 백성과 나라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글만 잘하는 사람이라고 모두 선비는 아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속유론(俗儒論)'이라는 글에서 선비 중에는 참선비(眞儒)와 속유(俗儒)가 있으며 선비라면 참선비이어야 한다면서 참선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였다. '참된 선비의 학문은 본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히 하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고 문식(文識)과 무략(武略) 등을 갖추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다.'다산의 이야기에 의하면 선비란 글이나 잘 하고 온순하고 모범적인 처신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알게 한다. 정치에도 밝아야 하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경제에도 밝아 부강한 나라를 만들 그런 역량까지 지녀야만 참선비라는 말을 듣게 된다. 500년 전통의 조선에는 참으로 많은 선비들이 있었기에, 조선은 선비의 나라라고 하는데, 특히 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한말에 경기도 출신 참다운 선비 한분이 계셨으니 바로 화서 이항로(1792~1868)였다. 고종 3년, 병인양요로 '민심 흉흉'대원군 기세에 바른말 못하던 시대 정조 16년인 1792년 2월, 경기도 양평군(당시는 양근군) 서종면 노문리 벽계마을의 청화정사(靑華精舍)에서 이항로는 태어났다. 청화정사는 아버지 때부터 있던 기와집으로 화서의 서재요 강학하던 곳이지만, 한말 의병운동과 척양척왜의 기본논리인 '주리척사(主理斥邪)'의 시대정신이 싹텄던 세기의 토론장이었다. 화서는 큰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힌 적은 많지 않고 아버지 우록헌(友鹿軒) 이회장(李晦章)이 글 잘하던 진사(進仕)였는데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운 뒤 독학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대학자에 오르게 되었다. 학문이 깊어져 명성이 높아지자 경기도 일대는 물론 다른 지역의 학자들까지 학문을 물으려 청화정사에 몰려들면서 백계마을은 크게 알려져 학문을 강론하는 세기의 명소가 되었다. 한말 위정척사파의 효장들인 중암 김평묵(金平默)·성재 유중교(柳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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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수 칼럼] 이민정책이 저출산·저성장 극복의 한 대안이길 지면기사
산업과 민생 현장에 일자리가 넘쳐나도 '일할 한국사람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저출산의 인구절벽이 가시화되면서 '외국인 불모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성장과 고용이 소멸될 첫 국가가 될 가능성을 예고하며 올해도 1%대 저성장을 전망하면서 성장률을 제고하려면 외국인 근로자를 지금의 4배 이상 더 고용해야 한다는 이민정책 연구 결과(한국경제연구원 외, 2023)가 가히 충격적이다.정부도 수년간 저출산의 타개책으로 많은 예산과 해결방안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실행했지만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은 게 없다. 전 세계에서 인구 감소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창의적이고 지속적인 정책과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에서의 노력과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숙련직 이민 활성화로 좋은 결과를 거양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고무적이다.이민자 비율을 배로 늘린 캐나다의 이민정책에서 그 해답을 찾으면 어떨까 싶다. 전 세계가 저출산에 이어 인구 감소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해외 고급 인력에게 영주의 특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패스트 트랙'의 '신속입국제도(Express Entry)'가 캐나다 이민제도의 주요한 핵심이다. 지난 3년 간 선진국 중엔 비교적 높은 3.4%의 성장률을 달성한 것은 경이적이다. 캐나다 '3년간 3.4% 성장률 달성' 주목IT인력 엔지니어 중 이민자 41% 차지 다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세계 이민사의 핵심 요소를 살펴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문화의 다양성 인정보다 더 앞서간 진정한 '다문화 공존 사회'로, 현대인의 삶 그 자체가 다문화이며 현실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이민의 나라지만, 기본적으로 소수문화를 주류 문화에 용해와 편입시키려는 동화주의(assimilation)인 용광로(melting pot) 정책을 시행 중인 대표적인 미국의 이민정책에 대해서다.두 번째로 각자의 문화적 다양성이 보편화되면서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하고 지향하는 주요 '자문화중심주의인 차별배제모형'은 소수자들만의 고유성을 인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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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 백범 김구를 생각한다 지면기사
백범(白凡) 김구라 하면 평생 독립운동을 한 지사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주석으로 알았다. 필자가 이 김구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접하기는 춘원 이광수가 해방 후에 '백범일지'를 다듬어 펴낸 문제를 살피고자 할 때였다.일제 말기에 대일협력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광수에게 백범은 어째서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자서전을 펴내게 했던가? 이광수와 김구의 만남은 1908년 황해도 안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김구는 안악 양산학교에서 김홍량이라는 분과 함께 교육운동에 매진하고 있었고, 바로 그때 일본 메이지중학에 유학하던 학생 이보경(이광수)이 여름방학을 맞아 신민회 황해도 지부 몫을 하던 안악의 '면학회'를 찾아 야학 일을 도왔다.이러한 김구와 이광수의 만남은 당시에 신민회 운동을 주도한 도산 안창호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광수는 일본 도쿄의 유학생들 앞에서 연설하던 안창호의 정신과 인품에 감화된 학생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고향도 아닌 안악으로까지 방학길을 멀다 않고 찾아갔다. 그렇다면 김구는 어찌하여 그 무렵 그곳 안악의 양산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것일까?위태로운 국운에 동학투쟁한 김구교육운동 필요 깨닫고 양산학교로안창호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결성 황해도 해주 사람인 김구는 반상의 계급적 현실과 위태로운 국운에 의기를 품고 동학에 입도하여 투쟁한 배외주의적 색채가 강한 인물이었다. 동학 투쟁에서 안중근의 부친 안태훈의 비밀서신으로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던 김구는 국모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으려 일본 군인 토전양량(土田讓亮)을 척살한 죄로 인천 감옥의 사형수가 되었다. 그의 사상이 일대 전환을 맞이한 것은 바로 이 인천 감옥에서였다. 인천의 외국계 형사범들을 가둬두는 감옥은 외국문물에 밝은 개화사상가들의 학교와도 같았다. 김구 또한 여기서 옥리가 가져다준 '태서신사'니 '세계지지' 같은 책들을 읽으며 동학투쟁에서 교육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를 발견했다.과연 김구는 '관념의 사람'이 아니라 '행동의, 실천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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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 칼럼] 이성과 과학 대신 감성과 선동이 넘쳐 지면기사
한국노총 금속노련의 간부가 철탑 고공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에 한국노총은 공권력의 폭력성을 규탄하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불참하고 탈퇴를 저울질한다. 민주노총 또한 올해 초 정권퇴진운동을 선언하였으니 사회적 대화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노동계의 강도높은 반정부투쟁에 대해 정부는 엄정한 법집행을 예고하면서 노정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여당은 생산성 향상에는 무관심하면서 정치투쟁과 불법파업을 일삼는 특권세력에게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한다. 야당은 노동계의 파업과 정치투쟁을 '노란 봉투법' 등으로 오히려 후원하고자 한다. 이 간부의 농성은 임금교섭과 부당노동행위 중단을 요구하는 포스코 하청사 '포운'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이 400일을 넘겨 장기화된 데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천막농성이 왜 발생했는지, 그 해법이 있는지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노총간부의 농성이 불법적인지 아닌지는 따지지도 중시하지도 않는다. 모두 묻어버리고 사태 발생의 이유도, 문제 해결방식도 알 수 없는 거대한 패싸움이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대체할 뿐이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처리수 방류가 임박하였고 여야를 넘어서 사회적 이슈로 진화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급식에 대해 방류시점부터 전수 방사능 검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소금사재기' 사태가 발생하며 소금거래액이 8배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전교조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서명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일부 정당은 '후쿠시마 오염수 저지 TF'를 가동하고 있다. 문제발생이 임박했는데 해결책도 없이 뒷북만 치고 있다. 日 오염수 방류 임박 사회이슈 진화IAEA 중간보고서 공신력 폄하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중간보고서는 일본 도쿄전력이 오염수 샘플에서 방사성 핵종을 측정분석한 방법은 적절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곧이어 동일한 내용의 최종보고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애써 눈감고, 심지어 이 기관의 공신력을 폄하하기도 한다. 조사에 참여한 IAEA 산하연구소와 한국,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 5개국의 실험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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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칼럼] 수도권 대의(代議) 않는 수도권 정치 지면기사
민주화 이후 지역균형발전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 수혜를 수도권이 독점한데 대한 반작용이 컸다. 민주화 주체세력들로 재편된 여야 정당을 지배한 영·호남 정치권이 주도했다. 언론자유화로 등장한 신생 지방 언론들이 뒤를 받쳤고 부활한 지방자치가 엄호 사격을 했다.지역균형발전은 마법의 지팡이다. 지방에 국제공항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수도 이전으로 비화했다. 헌법재판소가 안간힘을 다해 막아서자, 정부의 절반을 세종시로 옮기고 공공기관, 공기업을 전국에 뿌렸다. 20년 동안 경제성 때문에 지지부진했던 동남권신공항을,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통과시켜 불가역적 사업으로 확정한 것이 불과 2년 전이다.천문학적인 재정을 수십년 퍼부었으니 균형 발전의 성과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눈 비비고 볼 정도라기엔 턱없다. 곡식 널던 무안공항은 여전히 적자고, 양양공항은 휴업을 선언했다. 흩어진 공공기관, 공기업은 각 지역에서 새로운 불균형의 거점이 되고 있단다. 부산, 광주 언론들은 여전히 청년들의 수도권 러시를 걱정한다. 천문학적 재정에도 턱없는 지역균형 성과무관심속 '건설비리 천국' 변질 경인지역 수십년에 걸쳐 지역균형발전이 금단의 성역이 된 동안 경기·인천은 찍소리 못했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규제해제 호소는 냉소와 무관심으로 돌아왔다. 대신 서울에 봉사할 일꾼들이 잠잘 신도시만 잔뜩 늘었다. 복지와 기반시설 비용만 늘고, 건설 비리 천국이 됐다. 규제에 시달린 기업들은 해외로 도망갔다. 특별법으로 호흡기를 달아 줄 정도로 반도체 산업은 위기에 처했다.지역균형발전은 정치적으로 오염됐다. 지방은 균형의 효과를 의심하고 수도권은 균형의 부작용에 시달린다. 정치적 오염은 정치적으로 정화할 수밖에 없다. 힘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경기·인천 국회의원이 62명이다. 서울을 포함하면 121명이다. 이들이 지역균형발전 담론을 합리적으로 전향시키는데 힘을 합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항상 이 지점에서 절망적인 정치 한계에 직면한다. 수도권 유권자들을 대의하지 않는 경·인지역 국회의원들 말이다. 인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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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칼럼] 분필 지면기사
며칠 전 강의실에서 생긴 일이다. 준비한 강의 자료를 스크린에 띄우려고 컴퓨터를 켰는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컴퓨터뿐 아니라 빔 프로젝터도 켜지지 않았고 스크린도 내려오지 않았다. 전원 코드를 확인했지만 결국 원인을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칠판에 글을 써가며 강의할 생각으로 분필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칠판 한쪽 구석에 부착된 분필통을 열었더니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허연 분필가루 속에 여러 개의 동강 난 분필이 뒹굴고 있었다. 나는 분필을 손에 잡으면 분필 가루가 손에 묻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망설이다가 분필을 손에 잡았다. 이윽고 강의를 시작했는데, 강의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이런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선생인 내가 분필을 두려워하다니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시골에서 자란 내가 서울로 전학해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 번은 고향의 어머니가 학교에 와 담임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다. 3학년이었으니 아마 입시 관련 학부모 상담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을 만나고 난 뒤 어머니는 담임이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어머니는, 선생님 양복 소매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담임선생님의 소맷단에 묻어 있는 분필 가루를 보고 훌륭한 선생님이라 판단한 것이다. 한평생 한복 짓는 일을 업으로 삼아 언제나 깔끔한 옷매무새와 청결을 강조하셨던 어머니였는데, 그런 어머니가 뜻밖에도 미처 털어내지 못한 옷소매의 분필 가루를 훌륭한 선생님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학창시절 담임 소맷단에 분필가루어머니 눈엔 '훌륭한 선생님' 조건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가 강단에 서면서 어머니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직업상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자주 하는 내게 가장 중요한 도구는 두말할 것 없이 필기구다. 옛사람들은 지필묵연(紙筆墨硯, 종이·붓·먹·벼루)을 문방사우(文房四友)라 부르며 아꼈지만 지금의 내게는 종이만 그대로일 뿐 붓과 먹, 벼루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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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칼럼] 챗GPT와 인공지능 거짓말 지면기사
챗GPT의 등장 이후로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적절히 활용하면 매우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챗GPT의 인기로 인해 '챗GPT ○○○'이라는 도서가 쏟아지듯이 출판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챗GPT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정보를 기반으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뇌는 정보를 저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경험에 한정된 지식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성한 정보를 모아 거대한 언어 모델을 학습시킬 수 있으므로 뇌의 저장 용량과 비교할 수 없다. 우리땅 독도, 다케시마로 질문하면"일본 통제" 대답… AI 만능 아냐 생성형 인공지능에 적절한 질문을 하면 매우 신속하고 풍부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경쟁력을 가진 사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은 만능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 환각(ai illusion)' 또는 '인공지능 할루시네이션(ai hallucination)'이다. 인공지능 환각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 인공지능이 부적절한 답이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답을 천연스럽게 생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챗GPT에게 "독도는 어느 나라에 속하나?"라는 질문을 하면 "독도는 한국의 영유권에 속해 있습니다. 독도는 한국어로 불리는 섬으로, 동해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 동쪽에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독도가 한국의 일부로서 관리되고 있으며, 해당 지역에 경비대를 파견하여 주권 및 통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생성한다. 그러나 "다케시마는 어느 나라에 속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케시마는 현재 일본이 실제로 통제하고 있는 섬입니다. 다케시마는 동해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일본에서는 'T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