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 폭우 속에서 지면기사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 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15년 전 폭우로 망쳤던 지옥같은 계곡여행'극한호우'속 예정됐던 4개 강연중 3개 소화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
[춘추칼럼] 윤 대통령만 할 수 있는 일 지면기사
내년 총선은 누가 승리할까?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제3당? '한 달이 1년'이라는 한국정치에서 7월20일 현재, 총선을 265일 남긴 시점에서 총선 승부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결과를 예상한다면 세 가지다. 국민의힘 승리 또는 민주당 승리 그리고 과반의석을 차지한 정당 없이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가진 경우다.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 승리는 한 정당이 국회 내 과반의석을 확보한 경우다.물론 진행 중인 제3당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 이 때 '성공'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을 제외한 제3정당이 1당이 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과반의석을 가졌다는 게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성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정치의 혁명적 상황'이다. 그만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제3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엇비슷한 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제3당이 캐스팅 보트가 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기대다. 이조차도 거대양당의 원심력이 강력하게 작용하면서 동시에 제3당이 유권자 요구와 불만의 분출구 역할을 담당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의 총선승리다. 먼저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전국선거 3연패의 반전이다. 총선승리의 민주당은 오는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승리를 향한 반(反)윤석열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민주당 총선승리가 윤석열 정권의 국민적 심판이다. 윤석열 정권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로 사실상 '식물정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격화될 것이고 더 이상 대통령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여당은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다음 총선을 위해 독자행보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말이 좋아 독자행보지 대통령과 거리두기 또는 대통령 버리기다. 여권은 각자도생의 시대다.내년 총선 민주 승리땐 '식물정부' 가능성국힘 이길시 선거 3연승 '완벽한 정권교체' 국민의힘이 승리한다면 전국선거 3연승으로 '정권교체는 완성된다'.
-
[춘추칼럼] 농단(壟斷)과 천장부(賤丈夫) 지면기사
정보가 권력이다. 정보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정보는 돈이 되고 이익이 된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의 정확한 정보는 투자 성공이 되고,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 정보는 곧바로 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보다 앞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이용한다. 깎아 세워 높은 언덕 올라 이득본 자 '멸시'농단도 재주라지만 힘있고 뻔뻔해야 가능문제는 국정·사법 등 권력과 결탁 부당이익공직자들 의심받지 않도록 행실 조심해야'손자병법'에서는 정보를 전쟁의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정의한다.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고, 물자를 모아 전쟁 준비를 하는데 적의 정보를 모르면 결국 전쟁의 패배로 이어지니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돈과 지위를 아끼지 말라고 강조한다. 용간(用間)은 정보원의 활용이다. 인적정보를 통해 확실한 정보를 얻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고급 정보는 일반 사람의 눈높이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의 시선과 다른 높은 곳에서 보아야 비로소 남들이 못 보는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힘쓰는 것이다. 옛날 시장에서 고급 정보를 얻으려는 남자가 있었다. 어디에서 어떤 물건을 파는지를 정확히 알면 엄청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시장은 현물거래였기 때문에 시장에 물건을 거래하러 나온 사람들이 가지고 온 현물의 공급과 수요로 가격이 결정되었다. 쌀이 넘쳐나면 쌀 가격은 내려갔고 직물이 모자라면 직물 가격이 올라갔다. 이런 정보를 알려면 높은 곳에서 시장 전체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그 남자는 시장 전체를 볼 수 있는 언덕(壟·농)에 올라갔다. 그 언덕은 깎아(斷·단) 세운 듯 높은 곳이었다. 농단(壟斷)에 올라가니 시장 어느 곳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나 거래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이 정보를 이용하여 싼 곳에서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 가서 팔아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남자를 천한 남자(賤丈夫·천장
-
[춘추칼럼]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라 지면기사
사람들은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나를 가리켜 '전업작가'라고 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책상 앞에 어깨를 구부리고 앉아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3분의2를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며 보내고 나니 알겠다. 제 고독과 마주하며 무언가를 쓰는 일은 보람도 없지 않지만 꽤나 건조한 작업이라는 것을! 작가의 일이란 '꿈, 낳기, 창작'이다. 그 일은 '우리를 통해 존재하고자 하는 것들'에게 몸을 주어 존재하게 한다. 현실에서 당장의 쓸모는 없을지라도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사는 동안 가끔 몸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하고 묻곤 했다. 국가재해보험국이란 직장에서 근무하며 퇴근한 뒤에는 자기 방에서 타자기로 소설을 썼던 카프카가 그랬듯이 나는 언젠가 '가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종일 나무에서 나오는 향내를 맡으며 일하고 싶다는 꿈은 이룰 수가 없었다. 내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다. 그는 솜씨가 좋은 목수였지만 몸을 쓰는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크지 않았다. 현장에서 몸을 쓰며 땀 흘리는 일보다는 '책상에서 펜대를 굴리며' 살기를 갈망하던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니 견디기보다는 여러 번 전직을 하며 옮겨 다녔다. 그렇게 옮겨 다녔건만 아버지는 만족감을 찾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실직으로 빈둥거리며 보낸 세월이 더 길었다. 일하지 않고 무위도식 하는 자는 무기력하고 비루해 보였다. 내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허황한 일확천금'을 꿈꾸는 아버지의 속내를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가 없었다. 목수였던 아버지의 일확천금 꿈 이해 못해누구나 하는일 괜히 소리치지 않게 애써야 이 세상이 온전하도록 떠받치는 것은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꽃을 피우는 구근식물, 벌과 나비들, 땅에 뿌리를 박고 광합성 작용을 하는 나무들, 그리고 제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자들의 성실함이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대장간을 짓고, 쇠를 달구고 망치질 하며 노래하는 사람들
-
[춘추칼럼] 100세 시대 지면기사
어느 선거일에, 나는 투표소 앞 긴 줄 안에 서 있었다. 하루 종일 줄은 길었고, 코로나의 끝물이라서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였다. 남들처럼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아 지루함을 이기며 서 있었는데 문득 투표 진행을 돕는 참관인이 도움을 청했다. "107세 유권자가 오셨습니다. 차례를 양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나 아닌 누구라도 이런 양보를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표정과 몸짓으로 기꺼움을 최대한 드러내보이며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하러 오신 107세 유권자를 기다렸다. 잠시 후 도착한 어르신을 보고 나는 내가 뻔하고 고루한 선입관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게 그분이 들것이나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오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은 아주 세련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누구의 부축도 받지 않았고 지팡이조차 짚지 않았다. 다소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앞선 안내가 없었다면 나는 그분이 80대쯤 되셨으려니 짐작했을 것이다. 아니 아무런 짐작조차 하지 않고 그분에게 어떤 관심이나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분은 107이라는 깜짝 놀랄 숫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노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91년 6월,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는 87이라는 숫자가 지금의 107처럼 들렸다. 107세 유권자와 나의 할머니를 겹쳐 떠올리면서 나는 그 사이 사람의 수명과 노년의 활력수명이 함께 길어진 것을 실감했다. 누구나 칭송할만큼 장수하고 세상을 떠나신 나의 할머니는 107세 유권자처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운신에 어려움이 없었다."오금이 붙으면 안뒤야."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바지런히 움직였다. 오금이 붙지 않기 위해서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왔고 쑤시는 어깨를 풀기 위해 관절을 돌렸다. 지금 생각하니 손녀에게 어깨나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셔도 좋았을 텐데,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몸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았다. "움적거리면 뒤야.
-
[춘추칼럼] 윤석열의 정치적 운(運) 지면기사
아직은 모른다. 유권자들은 좀 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시간도 충분하다. 22일 현재 293일 남은 2024년 총선여론의 흐름이다.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더불어민주당 지지'의 여론조사는 모두 28개.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가 25승1무2패로 압도적으로 앞선다. '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는 평균 40.0%, '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는 평균 48.4%다.'국정 지원론 또는 국민의힘 지지'의 여론은 최저 36%였는데 작년 12월 초와 지난 4월 초였다. 최고는 46%로 지난 5월 말이었다. '정권 심판론(견제론) 또는 민주당 지지'의 여론은 최저 43%로 지난 5월 초였고 최고는 56.2%로 대통령 당선 1주년 때였다. 28개의 여론조사는 '지원론 vs 심판론' 또는 '국민의힘 vs 민주당 지지'의 다양한 설문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따라서 장점은 여론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단점은 서로 다른 설문의 조사를 동일한 것처럼 간주하는 위험성이다. 총선 민심 '심판론 또는 민주당 지지' 높아'왜 정권 내놨는가' 김은경 혁신위 첫 과제 그래서 동일 또는 유사한 설문을 사용한 일정한 간격의 조사들을 본다. 28개의 여론조사 중 9개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그 중 하나는 지난 5월 초부터 2주 간격으로 2회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5월 초순 '지원론 vs 심판론은 44% vs 43%'였다가 같은달 하순 46%로 동률을 이룬다. 가장 최근의 조사로 현재여론의 흐름을 반영한다. 일정 간격의 동일 또는 유사설문의 조사 9개 중 7개는 작년 12월부터 이번 달 초까지 걸쳐있다. 이에 따르면 '국정 지원론'은 '36%, 44%, 42%, 36%, 37%, 39%, 37%'로 이어지고, '정권 심판론'은 '49%, 50%, 44%, 50%, 49%, 51%, 49%'다. 전체적으로 보면 28개 여론조사의 평균(40% vs 48%)으로 수렴하는 양상이다.28개의 여론조
-
[춘추칼럼] 명령 거부권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지면기사
인사권자의 부당한 지시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단호하게 거부할 것인가? 부당한 지시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납한다면 그 결과는 참혹하다. 작게는 기업과 사회가 부패하고, 크게는 나라가 망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인사권자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부당한 지시라면 과감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조직을 살리고, 미래의 더 높은 차원의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손자병법'에는 전쟁터에 나간 장군이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군주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고 한다. 전방의 현장 상황도 모르고 후방에 앉아 측근들의 편협한 의견을 듣고 잘못된 명령을 내리는 군주에 대하여 현장의 장군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君命), 따르지 않을 경우가 있다(有所不受)'. 이순신 장군은 무모하게 돌격하라는 선조의 명령을 거부하고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하였다. 나의 생존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후방 군주의 지나친 간섭과 부당한 지시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기'에는 제(齊)나라 대장군 사마양저(司馬穰저)가 왕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쟁터에 군대가 출정하던 날, 왕이 총애하는 신하 장고(張賈)라는 사람이 군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전횡을 일삼았다. 사마양저는 군율에 따라 참형을 명령하였다. 왕이 이 사실을 알고 사자를 보내 측근인 장고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였으나 양저는 아무리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부당한 명령이라면 거부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장고의 목을 베었다. 그는 군율을 어긴 제나라 왕의 측근 장고의 죄를 물어 처형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장군은 전장에서 지엄한 임금의 명령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임무를 맡아 전쟁터에 나선 장군이 잊어야 할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장군은 임명된 날에(將受命之日) 자신의 집안일을 잊어버려야 한다(忘其家). 둘째, 전장에서 군법을 한 번 정하게 되면(臨軍約束) 그때부터 부모도 잊어
-
[춘추칼럼] 나는 뭔가를 찾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요 지면기사
앵두나무에 박새 몇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앉고, 불두화는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오늘 아침 앵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앵두는 붉게 익어가는 중이다. 새벽에 어린 고양이는 내 품에 안겨 아기처럼 가르랑거린다. 어린 고양이의 털에 코를 묻고 있으면 기분 좋은 햇빛 냄새가 난다. 나는 날마다 변화무쌍하게 달라지는 날씨 속에서 산다. 해가 떴다 지고, 어둠 속에서 달은 야위었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하고, 어린 고양이는 반드시 성체 고양이로 자라나는 그런 합법칙의 세계에서! 남해 물결은 섬과 섬 사이에서 잠잠하고, 항구마다 정박한 배들은 묶여 있다. 동해에는 돌고래와 귀신고래들이 새끼를 데리고 떼 지어 유영을 한다. 먼 데서 달려온 파도는 해변에 포말을 남기며 사라지고, 깨끗한 하늘엔 적멸보궁 같은 흰구름이 피어오르는데, 꿀벌들은 지상에서 날개를 붕붕거리며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고, 복숭아나무 가지에서는 열매들이 최선을 다해 여문다. 지난 가을 어머니가 담근 고추장에는 순한 단맛이 들고, 장을 가득 채운 항아리들은 반짝거린다. 간밤엔 별똥별 몇 개가 동에서 서로 횡선을 그으며 흘러가고, 올해 처음 목격한 반딧불이의 군무는 신기했다. 실내 등을 다 끄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초록빛 인광을 반짝이며 떠다니는 반딧불이를 자정 너머까지 보다 잠들었다. 새벽에 깨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몇 년 째 쓰던 책의 마지막 줄을 쓰고 마침표를 찍었다. 나를 누르던 압박감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낙관은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푼다. 오늘 아침은 혈압은 높지도 낮지도 않고, 당뇨 수치는 정상이다. 연체료가 붙은 미납 세금고지서가 날아온 적은 없고, 두루마리 휴지도 몇 달은 쓸 만큼 넉넉하며, 오늘 외출할 때 신고 나갈 구두는 새 구두다. 주방에서는 딸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텃밭에서 딴 토마토를 믹서기에 갈아 주스를 만드는 중이다. 젊을적 노름 빠졌던 나… 항구도시로 여행숙소 옆방서 들리는 빌리 조엘 노래 구절에'타지서 인생의 진실 찾는걸까?' 알수없어나를 기쁘게 하는 것 몇마디 할 수 있을 뿐 지금보다
-
[춘추칼럼] 나의 아름다운 단골가게들 지면기사
도서관에서 북토크 행사를 했던 어느 날이었다. 행사를 온라인 라이브 송출한다는 것까지도 괜찮았는데, 내가 실시간으로 방송을 확인할 수 있도록 내 앞에 태블릿 하나를 놓아준 것이었다. 태블릿을 치워달라고 말할 찬스를 놓친 채 얼떨결에 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사람이 나 말고도 여럿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북토크를 하는 것과, 내가 북토크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내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모니터의 화면을 보면서 내내 생각하게 된다. 말할 때 왜 입이 비뚤어지지? 머리는 왜 저렇지? 멍청하게 웃는 저 촌스러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다행히 그 날 나는 그런 괴로운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았다. 모니터를 보면서 몇 번 구부러진 허리를 바르게 펴기는 했지만 그건 주최측이 내 앞에 태블릿을 놓아준 의도와 아주 부합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모니터 속의 내 모습을 헐뜯고 경멸하지 않으며 오로지 대화에 집중했다. 나는 평화롭게 행사를 마쳤다. 이 일은 나에게 뜻하지 않은 큰 기쁨을 주어,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일을 흐뭇하게 되새겼다. 작가 경력 20년만에 드디어 나에게도 경륜이나 자신감이라고 할만한 것이 생긴 것이다. 나는 이제 모니터 속의 내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베테랑이 되었다. 어쩌면 흔히 '나 자신과의 화해'라고 말하는 일을 해낸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한계와 현실을 인정하고 담담하고 편안한 눈으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용실 원장·옷가게 사장 등 '현실 속 사람'나를 그대로 볼수있게 만드는 변화 만들어줘 좋아하는 단골 옷가게에서 봄 세일을 한다는 안내 문자가 왔을 때 나는 갑자기 이날의 북토크를 번개같이 다시 떠올렸다. 그날의 일들이 빠른 속도로 머리 속에서 재생되면서, 이날 모니터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했던 생각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때 나는 북토크를 하는 중간중간 이런 생각들을 했다. 린넨 재킷을 사길 잘했어. 역시 독자들을
-
[춘추칼럼] 위선과 무능 vs 쇄신과 미래의 유능 지면기사
최근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다. 작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부터 최근까지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455개로 이 중 면접조사 139개, ARS 조사 316개다. 주간 단위로 적게는 2개, 많게는 19개의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평균적으로 한 주에 8개 내외의 여론조사가 있었다. 가장 많은 여론조사는 대통령 취임 1주년 때였다. 대통령 지지율은 4월 중순부터 상승추세를 보인다. 지난 5주 동안 실시된 여론조사는 모두 54개였는데, 이 기간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평균 32.1%, 34.2%, 34.7%, 37.4%, 37.9%를 기록한다. 반면 대통령 부정평가는 63.7%, 62.8%, 61.2%, 59.1%, 59%로 변화한다. 주별 평균으로 본 대통령 긍정평가가 한 달 이상 계속해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윤석열 정부출범 후 처음이다. 다른 조사도 비슷한 양상인데 갤럽조사는 3주, 리얼미터 조사로는 4주 연속 상승을 기록한다. 이제 40%를 목전에 둔 대통령 지지율의 다음 목표는 40% 중반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재건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행보가 출발점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이 주목된다.정당 지지율은 같은 기간 동안 더불어민주당 하락세의 약보합, 국민의힘 상승세의 약보합 양상이다. 주별 평균으로 보면 지난 한 달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계속 앞섰지만 그 격차는 점점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크게는 양당 지지율이 10% 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양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로 좁아진다. 양당 지지율의 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양당의 지지율의 흐름이 다르다는 말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최고 지지율은 한 달 전이고 국민의힘 최고 지지율은 가장 최근이다. 민주당 주별 평균 지지율은 이때 최저 37.7%, 최고 42.7%를 기록한다. 국민의힘 주별 평균 지지율은 최저 33.7%, 최고 36%를 기록한다.대통령 취임 1주년 지지율 4주 연속 올라국힘 상승세 '외교성과 기댄 부산물' 해석민주, 돈봉투 파문·김남국 코인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