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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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홍명보와 한동훈 지면기사
'홍감독 논란'은 축구협회 리더십의 실패양궁 대비 '긍정의 정의선 부정의 정몽규'국민의힘 전당대회 '혁신 메시지'도 분명韓 대표의 '국민 눈높이' 공공선은 뭘까?좋은 성적을 내면 '홍명보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용서를 받는 방법은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뿐"이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자신에겐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피노키홍'으로 전락했다. '홍명보의 부정출발'이라고 한다. 면접 없는 '부탁'으로 선임되었다고도 한다. '동문 짬짜미' 의혹으로까지 이어진다.감독선임을 주관하는 전력강화위원 중 한 사람은 "홍 감독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몰랐다"고 한다. 박지성은 "진실은 내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하고 이영표는 "축구인은 행정에서 사라져야한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게 실력"이라고 꼬집는다. 홍명보 기자회견 이후에도 '감독사퇴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팀 리더십의 신뢰와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는 게 근거다."오해일뿐 특혜는 없다"는 게 축구협회의 입장이지만 '홍명보 논란'은 자초한 결과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들은 "외국인 감독을 후보에 두고 협상 중이다", 나아가 "외국인 감독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한 자릿수로 압축했다"고 말해왔다. 논란의 핵심은 감독선임 원칙과 절차로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붕괴다. 리더십 선임과정의 정당성 투명성 공정성 모두 문제가 되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의 실패는 결국 한국축구의 퇴보로 나타난다."양궁협회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1988년부터 올림픽 10연패의 여자양궁이다. "올림픽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경쟁력 중심의 선수선발이 세계 정상의 출발점이다. 선수 선발은 물론 운영과 관련하여 뒷말이 없는 이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협회가 선수명단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인맥축구'와 '위계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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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지면기사
비오는 이른아침 논에 갔다 온 종길이 아재불 켜진 현수네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부채·파리채·물병 정리된 정자는 아직 조용 갑자기 먼곳서 천둥… 나라에 큰비 온단다현관문을 나섰다. 마을은 아직 조용하다. 비가 왔다. 우산을 폈다. 비가 잘 온다. 착실하게 온다. 마음이 착해진다. 우산 위에 빗소리와 오동나무, 가죽나무, 고욤나무, 오갈피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각각 다르게 일정하다. 바람이 없다. 빗소리가 마을을 불안하게 하거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꾀꼬리가 아무 일 없는 소리로 노래한다. 참새들이 마당 잔디에서 무엇인가를 물어간다. 할미새가 지붕 끝으로 날아와 앉았다. 자태가 곱다. 파랑새 새끼들 다 길렀는지 나는 연습시킨다. 집 앞에서 종길이 아재를 만났다. 이른 아침인데 벌써 논에 갔다 오신다. 고라니와 멧돼지 방지를 위해 논 가에 둘러놓은 전선 줄 전기를 차단하고 오신다. "생각보다 비가 적게 왔네요" 그랬더니, "말보다 적게 왔고 만" 하신다. 종길이 아재가 집 앞 콩밭에 들어서며, "어젯밤에 또 고라니란 놈들이 왔다 갔고 만, 이놈들은 꼭 콩 새순을 똑똑 따먹는 당게" 하신다.강가로 나갔다. 돌아가신 당숙모네 밭에 이장이 콩을 심어놓았다. 이장 부인이 콩밭 풀을 매다 말았다. 다른 급한 일이 생겼었나 보다. 뽑아 모아둔 풀과 호미가 비 맞는다. 이장이 우리동네 농사를 다 짓다시피 한다. 옥수수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토닥토닥 차분하다.강가에 섰다. 물이 조금 불었다. 물이 다리를 넘어간다. 어제 온 비와 보태졌다. 붉덩물이다. 어디서 갑자기 소낙비가 왔나 보다. 강 건너를 보았다. 칡넝쿨들이 묵은 밭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 감싸버렸다. 감나무 형체가 보이지 않는다. 큰 돌들이 물에 잠겨 물살을 일으킨다.오늘도 마을을 한 바퀴 돌기로 한다. 마을 제일 끝집인 양식이네 집을 지났다. 양식이는 아직 출근 전이다. 전주 누나네 집 식당 일을 돕는다. 현수네 집에는 불이 켜져 있다. 텔레비전 소리가 새어나온다. 현수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했는데, 어제는 회관까지 걸어오셨다. 집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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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피니싱웰(Finishing-well)', 멋진 마무리란 지면기사
가까운 선배와 친구 등 연이은 부음에 울적새삼 '좋은 끝맺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다전임 총장 故 '존 엔디컷' 박사의 삶 떠올려 도전·협업·낙관적 태도… '여운' 고민케해 지난주, 필자가 존경하던 선배 두 분이 돌아가셨다. 그분들과 웃고, 대화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다시는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수년 전만 해도 친구 부모님들의 장례식 조문이 더 많았지만 이제는 주변 선배들의 부고 소식이 더 많으니 새삼 '피니싱웰(Finishing-well)'에 대해 생각해 본다.필자가 있는 대학의 전임 총장이었던 고 존 엔디컷(John E. Endicott) 박사의 삶은 수많은 도전과 변화가 담긴 한 편의 영화 같다. 군인에서 대학교수, 낯선 타국의 대학 총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변화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도전과 용기로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ROTC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였고 졸업 후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일본, 하와이, 베트남 등 전쟁터에 투입되는 등 군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국방 최고공로훈장을 받았다. 전역 후 1986년 국방부 산하 국가전략 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후,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에서 교수로서의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국제전략기술정책센터 소장 겸 샘넌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군에서 경험한 이론과 실무를 토대로 국가 방위전략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고, '동북아시아 비핵화구역(LNWFZ-NEA)'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런 공로로 두 번의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70을 넘긴 나이에는 낯설고 물선 한국 땅에서 대학 총장(2009년 취임)으로 세 번째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고 당시로는 참신한 글로벌 대학의 모델을 실현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100%로 진행되는 영어수업과 다양한 국가의 학생, 교수 선발 등 다문화 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국제경영대학 모델을 구축하여 AACSB(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 인증을 받는 등 안정적으로 대학을 운영하였다. 국제대학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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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미연(未然)에 방지(防止) 지면기사
중국 원나라 좌극명이 편집한 '고악부'에는군자는 일이 터지기 전 대비하는 사람 정의사고 발생 전 조짐 '기미' 읽는 능력 있어야고위층 인사들 의심·의혹 살 행동하면 안돼시간당 1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장마철 각종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정도 발생할 수 있는 강수량이라고 발표했다. 승강기 침수와 산사태로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도로가 침수되고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는 등 장마철 피해를 미연(未然)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일방통행로를 잘못 인식하고 진입,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사망사건이 발생하였다.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까?아동학대 혐의로 고소당하여 진실 공방을 하고 있는 축구아카데미 대표, 명품 백 알선 수수에 대한 공방으로 촉발된 정치권 싸움, 음주운전 사고 후 뺑소니로 구속되어 재판받는 연예인, 눈뜨면 벌어지는 각종 사건 사고를 보며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을까를 질문해 본다. 미연에 방지할 수만 있었다면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안타까움 때문이다.미연(未然)은 아직까지 일이 터져서 그렇게(然) 되지 않았다(未)는 뜻이다. 미연에 방지하라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미리 조치를 취하여 일의 발생을 막는다는 것이다. 하수는 사고가 터져도 해결하지 못하고, 중수는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해결하고, 고수는 사고가 나기 전에 해결하여 사고 자체를 막는다. 미연에 방지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고수다.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편작(扁鵲)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을 갖고 있었던 명의였다. 편작에게는 형제가 셋이 있었는데 모두 의술에 능통했다고 한다. 형제 중에 누가 제일 의술이 뛰어나냐는 질문에 편작은 큰형이라고 대답하였다. 큰형은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알아차려서 미연에 예방하니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은 병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 치료를 해주고, 자신은 환자의 병세가 깊어 고통을 호소할 때 비로소 치료하기 때문에 가장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자신이 명의라고 세상 사람들에 알려져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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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우리는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 지면기사
성인 10명중 6명은 1년간 책 한권 안 읽어 인류는 '읽는 뇌' 도약대 삼아 놀라운 진화출판업은 지식 생산하고 역량 키우는 산업문전성시 '서울국제도서전' 벅찬 감정 느껴서울의 한복판에서 열린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여느해와 달리 인파가 몰렸다. 전시장에 입장하려는 인파가 통로를 메운 채 이동하는 광경은 진풍경이었다. 전시장 입장에만 한 시간 넘게 소요되었다. 출판사 부스마다 저자 강연을 마련하고, 전문가가 나서서 책 추천도 하고, 저자 서명 같은 행사 등으로 독자의 관심을 끈다. 출판사 부스를 순례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다. 이토록 많은 독자들을 마주하며 고무된 한 출판인은 출판사는 좋은 책 내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이 낮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해마다 수천군데의 출판사에서 8만여 종의 신간을 쏟아내는데, 1년 동안 책을 1권도 안 읽는 우리나라 성인은 10명 중 6명이라고 한다. 책을 읽지 않으면 가용 어휘의 양이 줄고, 복잡한 사유를 할 능력이 사라지며, 뇌의 인지능력도 감소된다. 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가? 시간이 없다, 책값이 비싸다, 좋은 책이 드물다, 같은 다양한 이유를 댄다. 책을 멀리하는 사정도 제각각이다.우리에게 '읽는 뇌'의 경이로운 여정을 알린 이는 인지신경과학자인 매리언 울프라는 사람이다. 울프는 독서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반복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읽는 능력, 즉 공감하고 이해하는 문해력, 추론, 사색과 성찰을 위한 지력을 키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독서란 학습과 훈련을 통해 체득해야만 하는 생존 기술 중 하나다. 독서는 인지적 프로세스 전체를 포괄하는 활동이고, 뇌에 생물학적, 지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제다.인류는 독서 능력을 체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인류는 책 읽는 능력을 갖춘 뒤 놀라운 지력을 갖춘 존재로 진화한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독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그 발명품을 통해 인간은 뇌 조직을 재편성했고 그렇게 재편성된 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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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국민의힘 전당대회 '보수 재구성의 출발점' 될까? 지면기사
대표경선 나선 4명 '1강 2중 1약' 분위기서'어대한' 계속될까… 첫 여론조사가 분기점채상병 특검 등 당내 입장차 정치운명 결정과반 득표 없을땐 결선… '尹 시험대' 될 것국민의힘이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의 후보자 등록을 마감했다. 대표경선에는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 후보가 나섰고, 4명을 뽑는 최고위원에는 모두 10명이 후보신청을 했는데 현역의원이 4명, 원외에서 6명이 지원했다. 최고위원 4명 중 한 명은 여성 몫인데 후보자 중 유일한 여성후보는 이미 당선이 확정된 셈이라고 한다.청년최고위원 한 자리에도 11명의 후보자가 몰렸다. 10명이 신청한 최고위원 경선과 함께 전당대회 선관위가 예비경선의 컷오프 적용 여부와 경선 참여인원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어서 본선 경쟁 참여자 수는 다소 줄어들 수 있어 보인다.본선 진출자들은 7월23일 치러지는 전당대회까지 전국 권역별 합동연설회를 갖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첫번째 관심은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 계속되느냐다. 후보등록 전까지의 여론흐름은 '1강 2중 1약'이었다. 조사에 따라 다르지만 국민의힘 지지층 또는 보수층에서 한동훈 지지여론이 압도적이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찬성과 지지가 최소한 절반 이상이고 높게는 70% 전후까지 육박하기도 했다.흥미로운 부분은 '한동훈의 출마와 이재명의 연임'에 대한 여론이 당내외로 엇갈린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당원과 핵심 지지층의 높은 지지를 받지만 당 밖으로 나가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이재명 연임'에 대한 찬반여론이 지지층과 당 밖으로 나뉘는 것은 이중적 해석의 대상이다. 이재명 지지층의 계속된 결속력 강화와 동시에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위기의식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한동훈 지지'에 대해 지지층과 당 밖 여론이 엇갈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국민의힘 지지층과 보수층의 미래 기대와 아쉬움의 표현이다. 그들은 한동훈이 보수의 미래라고 기대한다. 물론 한동훈이 지난 총선패배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도 않지만 총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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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그렇게 된 나의 인생 지면기사
마을밖 걷다보니 비닐하우스 일하는 제자그의 아들과 담소 … 아이 형도 가르친 나초교 6년 선생으로 31년… '나의 길' 깨달음새벽 새소리에 괴롭다 기뻤다 다시 청한 잠해진다. 나는 걸어서 마을 밖으로 나간다. 마을에서 떨어진 길가 모정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인사를 하며 어디 사느냐고, 물었다. 이웃 마을에 사는데 선생님 제자라고 해서 놀랐다. 그냐? 하며, 반갑게 악수하였다. 자기 이름을 말하며 수줍어한다. 제자 아버지는 허리가 몹시 굽었었다. 짧은 머리에 유순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어떤 때는, 영화 속의 동학농민군들이나 흑백사진 속 독립군 단체 사진 얼굴처럼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은 공동의 신념이 얼굴에 스쳐 갈 때도 있었다. 달구지로 나무도 해 나르고 보리도 벼도 실어 날랐다. 나는 그 어른이 어쩐지 좋았다. 제자는 시내버스 운전한단다. 정년이 6년 남았단다. 내가 아버님을 속으로 좋아했다고 말했다. 제자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봤다. 사회적인 공분을 살만한 일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선량한 시민의 얼굴이다. 우리 집에 한 번 들러라. 아버지 사진이 나온 책이 있다고, 했다.조금 걸어갔더니, 다른 제자가 비닐하우스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저 제자 아들도 가르쳤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를 닮은 아이가 있어서 사진 찍어 준다고 했더니, 길로 쪼르르 뛰어 올라왔다. 이름을 물었더니 이름을 말하고는, 아버지가 힘들게 지었단다. 내가 웃었다. 아이는 2학년이다. 자기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잘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었다. 네 아버지와 네 큰 형을 가르쳤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했다. 저기, 간다고 했다. 비가 온다고 했냐고 내게 물었다. 모르지만 비는 올 것 같지는 않다고 하늘을 보며 말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또 물었다. 우리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내용은 별로 없다. 오랜만에 2학년 학동과 몸짓 손짓 발짓을 해가며 큰 소리로 떠들며 이야기했다. 둘이 크게 웃기도 했다. 막힌 데 없이 이어지는 유쾌하고 활발한 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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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나이 들어 하는 공부의 즐거움 지면기사
지인은 '제임스 조이스' 원문소설 목표 세워60대에 영문과 편입후 아일랜드 방문 '성취감'진짜 해보고 싶은 일 찾는 도전엔 용기 필요고등교육기관·지자체는 프로그램 제공해야이른 아침,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대학 캠퍼스로 출근하는 것은 교수 생활을 해 온 나의 고유한 즐거움이다. 아침 등굣길, 젊은 학생들 사이로 배낭을 메고 활기차게 걸어가는 나이 지긋한 분들의 모습이 눈에 띄면, '정년을 앞둔 교수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업 준비를 하시려고 일찍 출근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저절로 흐뭇해진다. 그런데 며칠 후 교내 행사에 참여하니 학생 대표석에 (교수라고 착각했던) 그 분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이후 사석에서 그 분에게 만학의 이유를 물으니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딸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보살펴주기 위해 대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껴 입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공부가 재밌고 행복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학과 교수들이 수업시간, 시험 등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어린 학생들에게 모범이 된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새삼 마음이 따뜻해졌다.지금까지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목표를 위해 공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은퇴 후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또 다른 모델이 필자 주변에 있다. 연구소에서 평생 연구직으로 종사하며 나름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분이 은퇴 즈음, 평소 소망이었던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원문소설을 읽고 소화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고, 60대에 영문학과에 편입하여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대학 생활 동안 젊은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었고 졸업 후 대학원까지 진학하였다.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면서 직접 아일랜드에 가보고, 소설의 배경이었던 더블린을 방문하여 작가의 하숙집, 애용하던 카페, 서점에 가서 작가와 시간을 초월한 공감대를 느끼는 경험을 통해 생애 최고의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일본은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재취업, 고령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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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태평성대를 위한 교태(交泰) 혁명 지면기사
다름을 인정해야 건강한 사회집단 가능익숙하고 편한것과 결별 혁신·개혁 필요강자들 세상 아닌 약자들 보호하고 배려패거리 사회 희망없어 사적집단 해체를 요즘 석천학당 학생들과 주역 공부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낸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주역 철학은 상처 나지 않고 온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인생은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가온 상황을 정확히 인정하고(時, 시), 바라보고(觀, 관), 결정(彖, 단)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질문과 대답은 모두 나의 몫이다. 주역은 나에게 묻고 내가 답하는 학문이다. 세상에 나만큼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내 깊은 곳에서 나오는 엄중하고 현명한 답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주역의 11번째 괘, '지천태(地天泰)' 괘를 뽑았다. 태(泰)는 평안하고 태평하다는 뜻으로 사람 이름이나 지명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한자어이기도 하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이 편안하다는(國泰民安, 국태민안), 태안(泰安)은 인류 역사의 꿈이었다. 경복궁 교태전(交泰殿)은 주역의 태괘(泰卦)에서 유래한다. 하늘(天)과 땅(地)이 서로 자리를 바꿔 교차(交, 교)하여 태평한 세상을 만든다는 뜻으로, 최초 만들어졌던 세종 때에는 왕과 신하들이 정사를 의논하고 연회를 베풀던 장소였다. 하늘은 자신을 낮추고 내려가고(來, 래), 땅은 하늘 위에 올라가(往, 왕) 존중받는 지천(地天)의 세상이 태평성대다.강자가 약자를 섬기고, 권력이 개인을 보호하고, 갑이 을에게 양보하는 세상이 교태(交泰)의 세상이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지 않고 소통하니 같은 꿈을 꿀 수 있다. 기업이 교태하면 경쟁력이 강화되고, 가정이 교태하면 만사가 형통하다. 교태는 역할을 바꾸는(交) 혁명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혁명은 교태혁명이다. 정치인은 나라에 헌신하고, 의사는 환자를 섬기고, 경영자는 노동자를 존중하고,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고, 국가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실질적 혁명이 교태혁명이다.교태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약이 필요하다.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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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딸애들처럼 웃자라 내 품을 떠나는 여름의 날들 지면기사
파란 바다·흰모래, 긴 셔츠·반바지의 계절저녁엔 식구와 찐 옥수수·복숭아 먹는 일비 오는 날 쇼팽 피아노곡 귀 기울이는 것인생을 스쳐간 '영화'의 기억을 불러온다모란과 작약의 계절이 지나면 곧 수국꽃 피는 계절이다. 수국꽃은 여름을 여는 신호와 같다. 벌써 이마가 데일 듯 한낮 땡볕은 뜨겁고, 머잖아 향기로운 여름 과일들이 쏟아져나올 테다. 기억 속 여름의 한 풍경. 때죽나무 위에서 매미가 맹렬하게 울어댄다. 화단에는 키 작은 맨드라미가 있고, 껑충 자란 해바라기도 우두커니 서 있다. 어른들이 집을 비워 나 혼자 종일 심심했다. 뽕나무로 올라가 오디를 따먹었다. 까맣게 잘 익어 달콤새콤했다. 오디를 욕심껏 움켜쥐었던 손은 금세 보랏빛으로 물들고, 셔츠 자락도 보랏빛 범벅이 되었다. 옷을 더럽혔다고 어머니가 꾸중을 하실 게 분명했다. 밤늦게 지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내 옷을 보고도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어린 시절의 동네에는 철공소가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면 용접봉에서 쉭쉭 소리를 내며 튀어나온 파란 불꽃이 뱀의 갈라진 혀처럼 허공을 핥았다. 모루 위에는 제물처럼 달궈진 쇠가 올려져 있는데, 망치가 모루 위의 쇠를 두드리면 나는 쇳소리가 천둥소리 같이 퍼졌다. 세상의 강철들을 연마하는 모루와 망치들. 한여름의 철공소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거기엔 모루와 망치의 합창, 후끈한 열기와 땀방울들이 있었다. 나는 심부름을 나왔다가 용접봉에서 나오는 파란 불꽃에 매혹되어 철공소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여름의 철공소와 함께 나는 미처 가보지 못한 먼 고장을 꿈꾸곤 했다. 거기 번잡한 도시들, 낯선 기름과 향신료 냄새들이 후각을 찌르는 시장, 귀에 선 말로 소통하는 사람들과 맛보지 못한 열대과일도 풍성할 테다.여름은 나무들의 전성기다. 수목들은 무성하고, 식물 특유의 방향이 공중에 가득 떠돈다. 녹색 잎잎은 기름을 바른 듯 반짝거린다. 바람이 불면 챙캉챙캉 쇳소리를 내는 녹색 잎들, 활엽의 나무들이 일제히 내뿜는 산소,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들. 여름의 모든 것이 다 좋다. 여름의 나무 그늘에서 여름을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