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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칼럼] 처음 되어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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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처음 되어본 사람 지면기사

    생애 처음해본 '달리기 시작' 의미있는 한해'30분 넘게 달려 5㎞ 돌파' 인생 최대 환희그러나 나에겐 뚜렷한 긍정적 변화 못느껴 영원히 매순간 행복하고 보람찬 일은 없다한해를 돌아보니 늘 그러하듯이 2023년에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섞여 있었다. 여러가지 일들 중 하나는 1972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한번도 일어나본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난 해로서 2023년은 분명 의미 있는 한 해가 되었다. 나는 2023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등학교 체육시간이 끝난 이후로 나는 자발적인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깜빡이는 신호등의 파란 불에 쫓겨 조금 발걸음을 빠르게 하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헉헉거리는 대단한 운동치였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처지인 것처럼 보이던 이웃 언니가 어느날 살을 예쁘게 빼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달리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달리기 같은 건 하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자 직접 휴대전화에 앱을 깔아주기까지 했다. 자기 같은 사람도 할 수 있을 만큼 정말 쉬우며, 두 달이 흐르면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쉬지 않고 30분을 달릴 수 있는 사람.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멋지게 들린 말은 다시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겨우 휴대전화 무료 앱과 2개월의 시간이면 그런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니? 그것은 더없이 매혹적인 유혹이었고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폭염이 어느 정도 지나서 해진 뒤에는 숨쉴만하다 싶던 늦여름 저녁에 나는 처음으로 휴대전화 앱이 시키는 대로 달리기의 첫발을 내디뎌보았다.나와 같은 서툰 초심자에게 최적화된 달리기 앱은 한가지 중요한 팁을 알려주었는데, 숨이 차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라는 거였다. 옆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라고 했다. 시키는대로 했더니 거의 달리기라고 할 수 없는 속도가 되었다. 발걸음이 빠른 사람이라면 나를 휙휙 지나쳐갈 수 있을 만큼 나는 느릿느릿 천천히 달렸다. 어쨌거나

  • [춘추칼럼] 업그레이드된 인재영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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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업그레이드된 인재영입이 필요하다 지면기사

    총선 앞둔 외부수혈 '선거승리' 필요 조건'세대교체' 상징… 당 주인이 직접 나서고'가치·철학 어젠다' 정치개혁 전문가 필요'공익·공동체·공공성'의 성실·겸손 갖춰야총선의 시간이다.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되었고, 한쪽에서는 '불출마와 사퇴'가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장재원 불출마와 김기현 사퇴' 그리고 '이탄희·홍성국 불출마'가 한쪽이라면 '인재영입위원회'와 '인재위원회'가 다른 한쪽이다.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회는 첫 '총선 영입인재' 5명을 발표했다. 박지성과 이영표 그리고 장미란 영입설도 있다. 내년 1월 중순까지 매주 새로운 인재를 발표하며 모두 40여명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첫 '총선 영입인재'는 기후환경 전문 여성 변호사다. 박정훈 임은정 류삼영 영입설도 있다. 민주당 인재위원회는 국민추천제를 통해 8천632명을 접수받아 이중 1천400여 명을 영입대상으로 검토 중이란다.총선을 앞둔 외부수혈은 '대한민국 선거승리의 필요조건'으로 외연확장의 효과다. 새로운 사람 영입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거나 상대의 강점을 약화시킨다. 15대 총선은 '역대 최고의 영입'으로 평가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은 민중당 출신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정태윤을 영입한다. 운동권 출신과 함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그리고 총리시절 갈등관계였던 이회창까지 함께한다. 승부사 YS의 진면목이다. 이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출마하며 '민주 vs 반(反)민주' 구도를 희석시킨다. 결과는 신한국당 139석 원내 제1당 특히 수도권 96석 중 54석을 얻는다. "한 자릿수 의석확보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넘어선 선전이다. 1997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인재영입은 '정계은퇴 번복과 대권 4수'를 넘어 '뉴 DJ'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인기가 높았던 소설가 김한길과 MBC 앵커 정동영 그리고 정세균과 추미애가 영입된다. 노태우의 대북정책 담당자였던 군 출신 임동원도 함께하며 균형을 맞춘다.영입은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 [춘추칼럼] 본말(本末)과 시종(始終), 그리고 선후(先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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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본말(本末)과 시종(始終), 그리고 선후(先後) 지면기사

    기본 무너진 시대 먼저 해야할 일 고민해야아무리 예뻐도 내면 아름다움 없다면 허상정치는 민생이 근본… 교육은 인성이 우선초심으로 다시 시작하면 길은 저절로 열려'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꽃도 예쁘고 열매도 많이 열리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니 내가 되고 바다에 이르게 된다'. '용비어천가' 2장에 나오는 글이다. 꽃이 예쁘고 열매가 많이 열리려면 나무의 뿌리가 깊어야 하고, 냇물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먼 여정을 가려면 샘이 깊어야 한다는 간단한 논리지만 우리 삶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유교(Confucianism)의 핵심 가치는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s)'이다. 가정이 화목하면 사회와 국가가 평안해지고, 내면이 충실하면 외면에 저절로 드러난다는 것이 유교가 세상을 보는 눈이다. 기본이 무너지고 말단이 횡행하는 시대, 우선이 생략되고 결과만 중시되는 세태, 초심을 잃고 결론에 묶여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면, 처음, 근본, 그리고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대형 로펌 출신 현직 변호사가 부인을 둔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고, 자신의 아이를 아파트 15층에서 내 던진 비정한 엄마에 대한 최근 뉴스를 보며 기본이 무너진 이 시대를 한탄하게 된다. 법률 지식 공부를 하기 전에 배려와 존중의 기본을 배웠어야 했고, 엄마가 되기 전에 자식 사랑의 기본을 익혔어야 했다. 기본과 근본이 제대로 서지 않고는 어떤 지식과 자격도 의미가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학생들의 성적과 경쟁력은 높아졌지만, 인성과 인격의 근본은 여전히 의문이고, 기업의 가치와 매출액은 성장했지만 기업의 윤리와 사회적 기여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뿌리가 약하고, 샘이 얕으면 가벼운 바람에 열매는 떨어지고, 짧은 가뭄에 물은 금방 말라버린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현재 풍요로움이 위태롭다면 기본을 건너뛰고, 초심을 잃고,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결과가 아닌지 질문해보아야 한다.'아무리 예쁜 미소와 아름다운 눈빛을 가

  • [춘추칼럼] 가을에는 서둘러 가을의 일을 끝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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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가을에는 서둘러 가을의 일을 끝내라 지면기사

    쇠락하는 것들 통해 진리의 한조각 엿본다 한 생에서 잃는것도 있지만 얻는게 더 많아곧 폭설·혹한… 모든게 얼어붙는 겨울온다눈밭엔 상형문자처럼 짐승 발자국 남을 것단풍은 지고 천지간에는 쇠락과 소멸의 예감으로 가득 찬다. 곧 북풍의 계절이 다가온다. 한해살이풀들은 시들고 꽃대는 바스라지고 줄기는 바짝 마른 채 서걱거린다. 한해살이풀들은 씨앗을 떨군 채로 혹한을 견뎌내고 이듬해야 다시 꽃망울을 맺고 여린 잎을 피워낼 테다. 들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배추들 잎이 얼고 물러서 땅에 달라붙는다. 밤에는 어린 고라니들이 어둠 속에서 불안하게 울어댄다. 어린 고라니들은 태어나서 처음 맞는 추위에 잔뜩 겁을 먹은 것이다.봄여름은 만물이 싹을 틔우고, 뻗고, 피우고, 자라는 계절이다. 녹음은 울창하고 뭇 생명들은 번창한다. 밤엔 저 광활한 우주에서 날아온 별똥별이 공중에 빗금을 그으며 반짝하고 타오르다가 꺼진다. 누전으로 불꽃이 튀듯 찰나로 반짝하다 이내 사라지는 것, 그게 우리 생이 아닌가? 네가 갈망하는 것을 거머쥘 수 없다면 오직 가질 수 있는 것과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갈망하라! 뜨겁게 갈망하고 죽을 듯이 꿈 꿔라! 네 생명이 불타오르게 하라! 이것은 우리 생의 숭고한 명령이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고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마라. 가을에는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진다. 더는 헤매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건 허락되지 않는다.가을철이면 어머니는 혼자서 배추 쉰 포기를 소금물에 절이고 속을 채워 김장을 담그셨다. 그 김장김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먹을 한 해 양식이었다. 붉은 석양이 번질 무렵 김장을 마친 어머니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오려나 보다. 어머니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어머니가 스스로의 수고에 보내는 위로의 뜻이 담겼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김장을 담그지 않는다. 김장은 가을의 의례였는데, 그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만큼 삶의 보람과 기쁨은 줄고 가슴에 허전함은 커진다.이 계절은 벗들과 수다를 떨고, 음식을 먹고 술잔을 높이 들며 흥겨움에 도취할 때가 아니

  • [춘추칼럼] 구십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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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구십 세 지면기사

    '아버지 구순' 가족들 모르고 넘어갈 뻔여행 제안 드리자 '완벽한 계획표' 전달철원 주상절리길 힘들었지만 '완주 기쁨'스스로 가꾸는 한결같은 모습 본받고파"올해 아버지 구순인 거, 알고 있지?"친정엄마의 귀띔에 기절하게 놀란 사람은 다행히 나뿐이 아니었다. 오빠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우리 남매는 아버지가 올해 구순인 것을 생신 일주일 전에야 간신히 알았다.서양식 나이 계산법에 익숙한 우리는 아버지가 34년생이시니까 내년에 구순인 줄 알고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엄마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버지의 구순은 자식들이 아무도 모른 채 넘어갈 뻔했다. 우리는 서둘러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예약을 했고, 가족들의 오붓한 축하 속에 아버지의 구순 파티를 괜찮게 보낼 수 있었다.생일파티라는 말에 메뉴에 없는 미역국을 준비해주신 음식점 직원들은 아버지가 무려 구순이라는 말을 듣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날렵한 청바지와 재킷을 입고 오신 아버지의 외모는 아무리 보아도 구십세라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불시에 구순을 맞이한 바람에 구순 기념여행이나 다른 축하 이벤트는 당연히 준비하지 못했다. 늦가을의 바쁜 일정들을 얼추 넘겼다 싶은 즈음이 되어서 아버지와 강화도에 새우구이나 먹으러 다녀올까 하고 연락을 드렸더니 "안그래도 한번 놀러가보려던 참"이었다며 난데없는 액셀 파일을 즉시 보내셨다. 2박3일의 철원 여행 계획표가 완벽하게 짜여 있었고 숙소와 관광택시와 민간인 통제구역 출입 예약까지 완료되어 있었다. 엄마와 두분이 철원에 나들이 다녀오실 생각이었는데 딸도 함께 한다면 얼마든지 환영이라고 하셨다. 내가 모시고 가는 여행이 아니라 두분의 여행에 얹혀 가는 셈이 되었다.아버지의 꼼꼼한 여행 계획표에 의하면 일산에서 철원까지 한번에 가는 시외버스가 없어서, 버스를 서너 번 갈아타야 하는 복잡한 방식이었다. 내가 운전해서 모시고 다녀오면 딱 좋을 것인데, 내 스케줄 상 최대 1박2일만 가능했다."아버지, 제가 마지막 날은 다른 일이 있어서요. 일정을 1박2일로 줄여서 다녀오시는건 어떨까

  • [춘추칼럼] 대통령은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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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대통령은 보호해야 한다! 지면기사

    중도층 절반 '보선패배 책임' 대통령 지목국정운영 긍정평가 40%가 최고수치 '하락'인요한 "생각대로 소신껏 끝까지 하라" 신호그들의 선택은 '변화와 쇄신 가늠하는 잣대'강서구청장 보선 후 국민여론은 선거 전의 양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대통령 지지율은 보선 다음 주 8개의 여론조사에서 평균 31.6%까지 떨어진다. 그후 대통령 지지율은 평균 35.4%(12개 조사), 35.5%(9개)로 보선 전주의 평균 37%에 접근한다.지난주 갤럽조사 역시 보선 직후에는 갤럽조사 기준 6월 이후 최저치 30%로 떨어졌다가 보선 후 33%, 34%, 36%로 상승한다. 윤 대통령의 중동순방과 박정희 추도식 참여 그리고 박근혜 면담 등이 결정적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 중 32%가 뽑은 '외교'성과가 핵심이다.지난주 NBS 조사에서도 대통령 지지율은 10월 마지막 주 32%로 떨어지는데 올 들어 4월 둘째 주와 함께 가장 낮은 수치다. 11월 둘째 주 대통령 지지율은 34%로 회복되지만 대통령 국정운영 부정평가 역시 60%로 상승하면서 올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에 이른다.한편, 내년 총선의 성격을 '정권 심판론 vs. 국정 지원론' 중 무엇으로 보느냐의 여론은 혼전이다. 한 달 간격의 갤럽조사에 따르면 정권 심판론은 50%, 48%, 46%, 국정 지원론은 37%, 39%, 40%로 이어진다. 이런 패턴은 비례대표 정당투표 의향에서도 나타나는데 국민의힘은 1% 포인트 앞섰던 전월에 비해 11월 '39% vs. 36%'로 간격을 조금 더 넓힌다.하지만 10월에 있었던 10개의 관련 조사를 보면 9월에 비해 정권 심판론은 상승하여 평균 50.5%, 국정지원론은 약간 하락하여 평균 38%를 기록한다. 정권 심판론이 50%를 넘긴 것은 작년 11월 이후 올 4월과 함께 두 번째다. 8월 이후로 보면 한쪽은 상승세 다른 한쪽은 하락세여서 이번 달 조사가 주목된다.대통령 지지율이 내년 총선 승부를 결정한다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게 총선전망은 어둡다. 특히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절반을

  • [춘추칼럼] 파국(破局)
    칼럼

    [춘추칼럼] 파국(破局) 지면기사

    파국(破局)은 일이 잘못되어 끝장났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판(局)이 깨지고(破) 망한 것이다. 경제 파국이니 관계의 파국이니 하는 것은 위기를 맞이하여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거나 관계가 끝장났다는 의미다. 그러나 파국의 다른 뜻이 있다. 지금의 어려운 국면을 깨고(破) 새로운 국면(局)을 모색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국면 전환이다. 망한 것과 새로운 국면을 모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뜻이지만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부서져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간단한 맥락이다. 깨지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없다. 익숙한 나를 부서야 새로운 나를 만난다. 곪은 것은 터져야 하고, 썩은 것은 도려내야 한다. 아픔이 두려워 곪은 것을 방치하고, 상처가 두려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손쓸 방법이 없게 된다. 아프더라도 힘들더라도 도려낼 건 도려내고, 쳐내야 할 건 쳐내야 한다. 그것이 파국을 겪고 새로운 국면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곪고 썩은것 도려내는 또다른 뜻 '국면전환'견뎌내면 변통의 국면… 두려워할 것 없어 최악의 상황(窮)은 변화(變)의 계기가 되고, 변화는 새로운 길(通)을 만든다. 일명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궁변통(窮變通)의 파국 이론이다. 우주와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진화해 왔다. 우주는 파국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인간은 변통을 통해 생존에 성공하였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새로운 것은 파국을 통해 형성된다. 지난날 IMF 경제위기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하였고, 지구 환경의 파국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냈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지는 것이 언제나 나쁜 일만은 아니다. 파국을 견뎌내면 변통(變通)의 국면이 펼쳐진다. 당장은 아프지만 파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모두 안정과 유지를 원한다. 그래서 가능한 문제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점을 알고도 인정하지 않고, 심각함을 느끼면서도 보려 하지 않는다. 방관과 회피, 방치와 도피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과감하게 칼을 빼서 단숨에 얽힌 것을 끊어내야 새

  • [춘추칼럼]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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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당신이 웃을 때 누군가는 운다 지면기사

    숲길 바닥 여기저기에는 여문 도토리알들이 나뒹군다. 활엽수의 잎들은 단풍이 들고, 숲길에는 낙엽이 쌓인다. 단풍은 꽃인 듯 화사하다. 동네 도서관 뒤편 단풍으로 물든 숲길을 걷는 게 오후 일과 중 하나다. 나는 숲길을 걸으며, '구르몽, 너는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은가?'라는 중학교 시절 배운 한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숲길의 청량한 공기와 빛을 사랑한다. 나는 숲길에서 인생이 노래와 같이 흘러간다고 느낀다. 숲에는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간혹 야박한 사람들이 다람쥐나 청설모의 양식인 도토리를 싹 쓸어간다. 그건 숲의 생명체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이고 약탈이다. 숲에는 고양이 쉼터와 급식 접시와 물그릇이 놓여 있다. 누군가가 고양이를 살뜰하게 돌보며 물과 먹이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산책에서 돌아와 스탠드 등을 밝히고 어제 읽던 독일 시인 아이헨돌프의 시집을 읽는다. 내가 시집을 읽을 때 고양이들은 애기가 칭얼대듯 공연히 운다. 나는 시집을 내려놓고 심심하다고 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사냥놀이를 한다. 막대에 매단 깃털을 휘두르면 마치 사냥감이라도 되는 듯 고양이는 그걸 쫓아 달린다. 깃털이 공중에서 펄럭이면 고양이는 그걸 포획하려고 솟구친다. 고양이가 도약할 때마다 나는 감탄을 한다. 고양이가 숨을 헐떡일 때쯤 사냥놀이를 그만둔다. 간식 몇 알을 얻어먹은 고양이는 더 이상 울지 않고 두 앞발을 가슴으로 접어 넣은 뒤 조용히 쉰다. 태어나서 죽는건 부정 못하는 불멸의 진리지금도 누군가 숨결 꺼트리고 우리곁 떠나 지난 여름 장마때 물막이용으로 쌓은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 넘어 흘러나왔다. 모래가 가득하던 모래자루에서 모래가 반쯤 빠져나간 탓에 홀쭉해졌다. 그새 아이들은 자라고 노인들의 무릎 관절은 조금 더 닳는다. 해질녘 소란스럽던 새떼가 사라지면 빈 들에는 어둠이 내린다. 종일 모이를 찾아 돌아다니던 닭들은 닭장 횃대에 올라앉아 잘 준비를 마쳤다. 어느덧 이웃 교회 첨탑의 십자가 네온 조명에 불이 켜지고, 적막하고 검푸르고 하늘에는 청과일 같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 [춘추칼럼] 10월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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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칼럼] 10월의 남자 지면기사

    10여년 전 겨울, 친구들과 여행가자고 꺼냈던 이야기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서, 우리는 갑자기 하얼빈행 비행기를 탔다. 대륙의 작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영하 25도의 찡한 추위보다 먼저 닥쳐온 것은 도시를 온통 뒤덮은 매캐한 석탄 냄새였다. 오리털 의복으로 중무장한 탓에 정작 피부에 닿는 추위는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그 석탄 냄새가 북방의 추위를 더 상징적으로 느끼게 했다.하얼빈 기차역은 현대적으로 새로 지어졌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쏘았던 구 역사는 문화재로 보존되어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오래된 플랫폼을 볼 수 있었는데,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던 자리가 5m 내외, 겨우 승용차 한 대 정도랄까, 거리라기보다 간격이라고 해야 할 만큼 너무나 가까웠던 것에 가장 놀랐다.안중근은 세 발의 총알로 이토를 쓰러뜨린 후 "코레아 후라"를 외치고 체포되었다. 심문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포수로 살아왔으므로 상박을 겨누면 흉곽을 뚫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어린 시절부터 산과 들을 누비며 짐승을 잡아왔던 청년 안중근, 사냥 기술자로서의 노련함이 보이는 그 진술이 나는 매우 인상깊었다. 스스로 배우지 못한 포수라고 칭한 것과는 달리, 이토 히로부미를 쏜 이유를 말하라는 심문관의 요구에 1. 조선의 왕후를 살해한 것, 2. 한국에 불평등한 을사 5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것으로 시작해 무려 15번까지의 이유를 막힘없이 서술한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 이상으로 이 심문에 대한 답변을 중요하게 여겼고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쏜 안중근개인 아닌 대한의군 자격 '전쟁의 일부' 강조 안중근이 시종일관 강조했던 것 하나는 그가 개인이 아닌 대한의군 중대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쏘았다는 점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일어난 일이 테러리스트의 저격이나 심지어 애국지사의 의거조차 아니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일부인 것을 그는 분명히 하고자 했다.그것은 전쟁이 맞았다. 총 한 자루를 품에 넣고 하얼빈으로 가기 전, 대한의군 참모중장

  • [춘추칼럼] 보수의 재구성, 여당이 시작이다
    칼럼

    [춘추칼럼] 보수의 재구성, 여당이 시작이다 지면기사

    야당 지지자와 중도층의 분노참여, 여당 지지층의 낮은 참여가 강서구청장 보선을 결정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다. ARS 조사에서는 대통령 책임론이 절반을 넘는다. 근본원인은 국민의힘에 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인재공급과 국정비전 제시, 주도의 정치적 선도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무기력한 여당'을 만든 사람은 대통령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주어진 방침을 잘 따르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여당체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치의 주체는 정당이고 대통령실을 쳐다보지 말고 국민을 쳐다봐달라는 주문은 오히려 대통령의 뜻"이라며 "국정운영에 있어 때로는 '대통령이 이렇게 가시면 안 된다'는 쓴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최근 언급은 많은 사람들을 허탈하게 한다. 스스로 아무 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여당'유권자 70% '대통령 국정 기조전환' 요구 '총선 전초전'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패배하고 총선을 6개월 앞둔 지금 시점에 윤 대통령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그것은 '대통령의 총선목표는 무엇인가'이다. '과반 안정 의석' 아니면 '윤석열 친위대 확보'? 대통령의 선택이 후자라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하면 된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회의 윤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불가피하다. 총선 승리의 야권은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3연승을 향해 정치공세를 강화할 것인데, 만약 대통령도 지금처럼 한다면 그 끝은 '대통령 탄핵'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내년 총선에서 과반 안정의석의 확보는 '2022년 대선승리의 중도보수연합 복원'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유권자 10명 중 7명 가까이는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전환과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이제 부터 '정치 승부사 윤석열 대통령'의 진면목을 보일 때라는 것이다.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와 국민의힘 지지율 그리고 김태우 득표율이 유사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