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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동포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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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동포의 목소리 지면기사

    어색한 눈인사로 시작해 영어와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처음 본 기자에게도 살갑게 대하며 할 말이 많은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사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고려인들과 오랜 시간 이어간 대화는 낯선 고국 땅으로 돌아온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했다.고려인은 일제 강점기 무렵에 항일 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이들과 그 후손을 말한다. 인천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만 7천여 명이다.주거와 일자리, 언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고려인들에게 자녀 보육료도 큰 부담이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한 달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보육시설 원비를 내긴 힘들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주민참여예산사업 일환으로 '재외동포(고려인) 자녀 보육서비스 지원사업'을 시범 운영했다. 올해도 같은 사업을 펼치게 됐지만, 형평성 문제가 불거졌다. 올해 사업에 선정된 단체가 모두 연수구와 남동구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연수구와 남동구에 살지 않는 일부 고려인은 보육 지원금을 받기 위해 매일 아침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어린 자녀를 이끌고 연수구와 남동구로 가야 했다.인천의 다른 군·구에 사는 고려인들은 대략 1천여 명이다. 이들의 자녀는 단지 연수구와 남동구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기가 어렵게 됐다. 서구에 사는 한 고려인은 자신이 직접 고려인 엄마들을 모아 서구에 사는 아이들이 몇 명인지 집계해 봤다며 가져온 종이를 보여줬다. 그가 보여준 종이에는 29명의 고려인 자녀가 서구에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 있었다.뜻하지 않게 차별을 겪어야 했던 고려인들의 아쉬운 목소리에 인천시 한 관계자는 내년 사업에는 모든 고려인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업이 시작된 후에야 연수구와 남동구가 아닌 지역에 사는 고려인들도 지원을 받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 들었다고도 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고려인들도 똑같이 지원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사업을 펼치기 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노트북] 잊히는 것과 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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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잊히는 것과 잊는 것 지면기사

    지난 3월의 첫날을 미안하단 말로 시작했다.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부랴부랴 짤막한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상황이 해결돼서요. 마침 부서도 문화체육부로 바뀌었네요. 미안해서 어쩌죠." 무심코 쓴 '해결'이란 단어가 왠지 모르게 찝찝했지만, 괜찮다는 답신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 명에게서 응원 메시지까지 받으니 마음의 짐은 말끔히 사라졌다. 그렇게 기억에서 잊었다.'들랑날랑 혼삿길'이란 다큐멘터리를 처음 본 건 지난주였다. 장소는 영화관이 아닌 미술관. 고백건대 현대미술 전시를 관람할 때면 영상 작품은 힐끗 보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시각효과를 사용한 이 작품도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던 찰나, 장면이 바뀌고 주인공 '민기'의 아버지가 말을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민기'를 타일렀다. 분노하는 대신 온화한 태도로, 마치 교화시킬 수 있는 것이란 듯. '민기'의 정체성은 게이다. 문득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보냈던 질문지가 떠올랐다.치열한 정쟁이 한바탕 벌어졌다. 지난 2월 경기도의회는 '성평등 조례'를 두고 시끄러웠다. 기본권인 '평등권'을 담은 이 조례를 상위법에 맞춰 용어를 남성과 여성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개정안이 나왔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당사자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가장 보통의 사람, 퀴어' 첫 기획 취재 때 만났던 '퀴어 대학생' 취재원들에게 오랜만에 연락했다. 당사자들은 지역 사회의 소외된, 지워진 존재들이 앞으로 더욱더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될 거라 걱정했다.가스레인지 불을 끄니 주전자에 담겨 팔팔 끓던 물은 잔잔해졌고, 곧바로 차갑게 식었다. 결과적으로 위 개정안은 상임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정쟁은 일단락됐고, 구상해뒀던 기사도 작성을 멈췄다. 소수자가 마주하는 부당한 현실은 여전하지만, 그 사이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무섭도록 완전히 잊혔다. '해결'된 게 아닌데 함부로 쓴 단어 때문일까. 나조차도 쉽사리 기억에서 잊은 탓일까. 다시 마음이 불편해진다. /유혜연 문화체육부 기자 pi@k

  • [노트북] 유쾌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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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유쾌한 기억 지면기사

    무겁고 긴장되는 마음을 딛고 약속장소에 들어선 것도 잠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보니 장장 2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어머니뻘 중년 여성 세 분은 기자가 질문을 채 건네기도 전에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만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개 우리 아들이 어디서 칭찬을 받았다든지, 우리 아들이 이제는 '에이스'로 불린다든지 하는 말들이었다. 서로 웃고 귀여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취재도 잊은 채 박수를 치며 함께 웃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유쾌한 기억으로 남은 하루는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물론 가벼운 이야기들만 오고 가는 자리는 아니었다. 종종 산통을 깨는 아픈 질문을 건네야만 했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금세 반전되곤 했다. "우리 애는 요새 요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제는 호박 같은 채소도 적당히 잘 써는 거 있죠"라는 말에 다 같이 기특해 하고, "우리 애는 아직도 손 인사를 손등을 앞으로 보이면서 해요. 글쎄 상대가 자기 쪽으로 손바닥을 보이면서 인사하니까 그대로 배운거죠(웃음)"라는 일화에는 모두가 손을 들고 따라 하며 귀여워했다.그런 하루를 마친 뒤 홀로 기록을 살펴보던 다음 날. 왜인지, 무거운 내용들만 자꾸 눈에 밟혔다. 통상 취재 당시의 감정을 떠올리면서 중요한 내용을 되짚는데, 이날의 기록은 유쾌했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당장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면 그 다음 곳은 어떻게 찾을지", "결국 내 손을 떠날 때면 남은 애는 어떻게 지낼지 막막할 뿐"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나 많이 웃고 떠드는 사람들도 혼자 있으면 그렇게 걱정도 많아지고 우울해 한다"는 말의 본뜻을 그제야 체감했다.혼자 남겨진 발달장애인 가정이 겪을 우울감은 안타깝게도 비극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보호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경기도 내에서만 5건이었다. 안산에서 홀로 발달장애 20대 형제를 키우다 숨진 60대 남성은 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생활고에 시달렸었고, 수원시와 시흥시의 부모들은 처지를 비관해 제 손으로

  • [노트북] 저출산 대책? 있는 아이라도 잘 키우는 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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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저출산 대책? 있는 아이라도 잘 키우는 환경을 지면기사

    최근 100일 난 아기를 안고 외출을 할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아기 너무 오랜만에 본다. 요즘 아기 보기가 어려워요." 몇 년 새 출산율은 급감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의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이 지난해 0.78명을 기록했다. 인구 규모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합계출산율은 2.1명을 넘어야 하는데 이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아이 구경하기 어려운 시대인데 수원 망포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많아서 고민이다. 아파트 인근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고 학군도 우수해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 키우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 인기가 높아서다.아이들이 몰리니 문제는 어린이집을 보낼 때부터 시작된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놔도 순번이 100번대에 달한다. 2세 반 총원이 12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1년도 넘게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이곳은 출산율 감소를 걱정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외딴 섬 같다.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대기 전쟁을 거쳐야 한다. 아이들은 많은데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여기를 떠나는 학부모들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맡기고 싶어도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실제로 수원 망포동은 2천~3천세대당 어린이집 수가 불과 1곳뿐이다. 아이들은 많은데 보육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니 집 앞에 위치한 어린이집을 놔두고 20분 거리의 어린이집을 보내야만 하는 실정이다.문제는 어린이집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수원시가 올해 수원 망포동 일대에 4곳의 어린이집 운영 모집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는 2명뿐이었다. 인건비, 물가상승 등의 이유로 운영이 녹록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정부와 지자체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데 있는 아이들도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할까.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승택 경제부 기자 taxi226@ky

  • [노트북] 축의금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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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축의금의 기준 지면기사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청첩장을 받는 일이 늘었다. 코로나19로 미뤘던 결혼을 진행하는 이들이 많아져서다. 본격 웨딩 시즌이 도래한 요즘엔 종이 청첩장은 물론 모바일 청첩장을 심심치 않게 받고 있다. 청첩장을 받고 난 이후엔 가끔 고민에 빠진다. '축의를 얼마나 해야 할까…'. 사실 축의금은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다. 관련된 일화도 있다. 사회초년생과 다를 바 없던 2017년 일이다. 입사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때인데 소속부서 선배가 옆자리에서 넌지시 청첩장을 건넸다. 얼떨떨하게 청첩장을 받은 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친구가 말했다. "계속 볼 선배니까 5만원이면 되지 않을까."이후 김불꽃 작가의 책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 받아서 쓴 생활예절'을 읽게 됐다. 2018년에 출간된 책으로 작가는 축의금 기준을 이같이 정리했다. 기본 5만원, 친하면 5만원 이상, 진짜 친하면 10만원 이상. 기본 식대가 4만원인 만큼 기쁜 마음으로 내자는 취지다.그러나 책이 출판된 지 5년여가 지난 지금, 과거의 기준을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결혼식 식대가 크게 올라서다. 성남의 한 결혼식장은 올해 초 정식 식대 가격을 기존 5만5천원에서 5만9천400원으로 5천원 가까이 올렸다. 수원의 한 결혼식장 식대도 최근 6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물가에 예식장 식대도 줄줄이 인상된 것이다.최근 결혼 소식을 전한 지인도 이 문제로 시름이 깊었다. 5월 예식을 앞둔 A(32)씨는 "상담 다녀본 곳 중에 식대 7만5천원 이하는 없었다. 나이트 웨딩을 택해서 6만원 후반으로 저렴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식에 와서 5만원을 내고 밥 먹으면 솔직히 서운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치솟는 물가에 결혼식 비용이 전반적으로 오르면서 신랑·신부는 물론 하객들의 부담도 늘었다. 돈의 가치도 하락해 결혼식에 참석할 거라면 축의 10만원이 기본이 됐다. 축하를 담아야 할 축의금 봉투에 가끔 한숨이 담긴다. 고물가가 낳은 씁쓸한 단면이다. /윤혜경 경제부 기자 hyegyung@kyeongin.com윤혜경

  • [노트북] 세계선수권 개최가 여자아이스하키 발전 계기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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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세계선수권 개최가 여자아이스하키 발전 계기돼야 지면기사

    국내 유일의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을 보유한 수원에서 세계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권대회가 열린다.오는 17일부터 광교복합체육센터 아이스링크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세계 여자 아이스하키 대회 중 3부 리그(디비전1 그룹 B)에 해당하는 대회로 대한민국을 포함해 이탈리아, 폴란드, 슬로베니아, 영국, 카자흐스탄 등 총 6개국이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우승을 차지하면 사상 처음으로 2부 리그인 디비전1 그룹 A로 승격하는 역사를 쓰게 된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우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아직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의 현실은 열악하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단일팀이 출전해 국민들의 관심을 끌어낸 데 이어 2018년 12월20일에는 수원시청 대강당에서 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팀 창단식까지 열리는 등 희망이 부풀어 올랐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별반 나아진 것이 없다. 아직도 여자 아이스하키 실업팀은 수원시청뿐이라 대회를 치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이번 세계 선수권대회 개최는 이처럼 침체한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환경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세계 선수권을 계기로 광교복합체육센터 아이스링크라는 좋은 시설을 보유한 수원시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수원시청팀의 발전을 포함해 여자 아이스하키의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어린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여자 아이스하키 클럽팀이나 학교 운동부를 만드는 방안 등 다각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오늘도 묵묵히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대한민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세계 선수권 우승을 기원한다. /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부 기자

  • [노트북] 설레는 봄의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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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설레는 봄의 캠퍼스 지면기사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가 삐뚤빼뚤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대학 광장에 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새내기를 이상하게 보기도 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가져다주며 응원해주기도 했다.그해 가을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적인 판단, 교육의 흐름, 여론 등 종합적인 이유로 추진된 정책이었다. 그만큼 사학과에 갓 입학한 학생이 모든 걸 이해하기엔 복잡한 사안이기도 했다.그래도 주관은 있었다. 적어도 '역사'만큼은 여러 시각에서 보고, 많은 입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했다. 그런데 본인 학과의 한국사 교수가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내가 1인 시위를 하게 된 계기였다.국정화 정책은 학과생 모두의 관심거리였다. 수업에서든 사석에서든 여러 의견이 오갔다. 학생회는 '사학도로서 어떤 입장을 내야 할 것인가'를 화두로 학생총회까지 열었다.건강한 논의였다. 이런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국 캠퍼스에서 울려 퍼졌다. 지역, 학과, 정치적 신념을 초월한 토론이었다.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에겐 무시할 수 없는 큰 여론이었을 것이다.정부가 이번엔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국외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방안을 일본 측이 참여하지 않는 '제3자 변제' 방식으로 결정했다.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 정치적 판단, 경제 활성화, 여론 등 종합적인 이유로 정책이 추진됐다. 이번엔 대학에서 어떤 목소리가 나올까.봄의 캠퍼스는 설렘으로 가득하다. 특히 올해는 그 설렘이 곱절은 될 것이다. 떨어지는 벚꽃 잎 아래서 사진을 찍고, 술을 왕창 사 들고 엠티를 떠나고, 학과의 명예를 위해 체육대회에 참여하고, 다가오는 중간고사를 위해 밤새워 공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다만 봄의 캠퍼스에 설렘만 가득하고, 건강한 논의가 없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부 기자

  • [노트북] 우리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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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우리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지면기사

    천생 문과인 기자가 과학에 빠졌다. 그것도 이해조차 어려운 우주과학이다.틈만 나면 블랙홀의 원리와 제임스웹 우주 망원경 같은 과학용어들을 유튜브에 검색해 시청하고, 관련 기사를 검색한다. SNS 알고리즘은 온통 우주로 도배돼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우리은하부터 안드로메다은하까지 광활한 천체들을 탐험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과학에 빠지게 된 건 '언제나 완벽한 이론은 없다'는 과학의 속성 때문이다. 새로운 학설이 나오면 반증이 뒤따르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주장과 반론이 반복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가령 현재는 비과학적인 주장임이 입증된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멈춰있고,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천체가 원을 그리며 회전한다'라는 천동설은 역설적이게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떠올리게 하는 지대한 역할을 했다.이처럼 과학자들은 '언제나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증을 받아들이고, 학설의 폐기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정하며 과학혁명을 이끌고 있다.반면 과학과 함께 우리 삶의 큰 일부를 차지하는 정치는 어떨까. 내 말이 맞고 네 말은 틀리다. 정당 정파에 따라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혐오의 정치'는 정부와 국회가 민생 회복을 위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마비시키고 있다.혐오의 정치는 우리 사회에도 파고들고 있다. 국민들은 세대, 남녀, 지역 갈등 등 단순히 주장뿐 아니라 이제는 서로의 존재조차도 부정하는 극단의 사회로 흘러가고 있는 실정이다.'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과학적 사고는 인류의 진보를 가져왔다. 우리가 과학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이자, 지금 가장 과학이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노트북] 바보야, 문제는 시간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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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바보야, 문제는 시간이 아니야 지면기사

    "일이 없는 날이 없는데 휴가를 언제 써?"콘텐츠 제작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발표 기사를 보고 물었다. 그는 "프로젝트 하나 끝나면 숨돌릴 시간을 주겠다고 (회사에서) 말하지만, 일감은 매일 생긴다"며 "퇴근하고도 일해야 간신히 기한을 맞추는데, 장기휴가를 어떻게 쓰느냐"고 하소연했다.일이 몰릴 때 한 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쉬게끔 하는 유연한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게 애초에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이었다. 특히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도입해 추가 근무에 대한 보상을 휴가로 적립하는 방안도 제시했다.여론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감지한 대통령은 '주 60시간'을 거론했고, 주무부처 장관은 60이 맞는지 69가 맞는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전국의 노동자들을 만나 진화에 나섰다. 지금도 업무시간은 충분히 긴데, 시간을 더 늘리는 대신 당근으로 주어지는 게 '그림의 떡' 같은 휴가라니 반발이 없는 게 이상하다.1인당 노동시간을 줄이되 사람이 필요하면 추가로 고용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52시간제 취지다. 그러나 고용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고, 노동 여건도 크게 나아진 건 없다. 그렇다면 손을 대야 할 부분은 둘 중 하나다. 사람을 더 고용하게 하거나, 추가 고용이 안 되면 기존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더 해주거나.시간을 늘리고 줄이는 문제를 논할 게 아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하게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먼저다. 결국 투자가 필요한 영역이나 사용자는 경기 악화를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그럼 사용자의 부담을 완화할 방안(법인세 인하 등)과 노동시간 문제를 함께 다룰 수도 있지 않은가. 여야와 노사 간 시각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사안을 두고 의견 수렴 없이 내놓으니 대립이라는 혹만 하나 더 붙었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타협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정치의 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부 기자

  • [노트북] 수많은 창작물이 빛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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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수많은 창작물이 빛나기 위해 지면기사

    "생각했던 것보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 같았어요." 지난해 말 손원평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몬드'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저작권자와 협의 없이 제작된 사실이 알려지며 큰 이슈가 되자 한 공연계 관계자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저작권 중개를 담당했던 출판사가 연극의 제작 사실을 인지하고도 작가에게 뒤늦게 전달한게 문제였다. 손 작가는 출판사의 SNS를 통해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저작권자의 동의는 가장 후순위로 미뤄졌다"며 "많은 사람이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떠밀리듯 상연에 동의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출판사와 극단 연출이 사과했지만, 저작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업계에서 오히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사태 이후 '아몬드'의 출간 계약이 종료되면서 절판·품절사태를 불러왔다. 비슷한 시기 즈음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로 불리며 오랜 시간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빨래' 역시 라이선스 중단을 공지했다. 제작사 측은 안내문에서 "교육을 목적으로 공연 제작을 희망하는 단체에 한해 선한 목적으로 공연 라이선스를 무료로 제공했다"면서 "그러나 무단 저작물 수집·유포·거래, 불법 저작물을 활용한 공연 상연 등의 무수한 악용 사례로 라이선스 운영을 중단한다"고 알렸다. 저작권 문제에 대한 이슈가 한두 해 있었던 것이 아닌데, 여전히 그 인식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다시 자각하고 있을 때 만화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씨의 별세 소식이 들렸다. '작가에게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는 한 연극의 대사가 떠오르며, 저작권자가 저작물을 두고 이토록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몹시 안타까웠다.문화체육관광부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대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이 보호돼야 수많은 창작물이 빛날 수 있음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다. 고질적인 문제지만, 지금껏 개선되지 못하고 있었던 어두운 이면을 이제는 정말 모두가 관심을 갖고 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