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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민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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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민지에게 지면기사

    MZ세대가 자주 찾는 '힙(hip)'한 카페에 갔다.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이었다. 익숙한 듯 낯선 힙합이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실내를 가득 채웠다. 실내 벽은 콘크리트, 마감재 곳곳엔 날카로운 못이 그대로 노출돼 있는 '공사판' 콘셉트 카페인 이곳은 주말이면 인파가 몰려 커피 한 잔 먹기 힘든 '맛잘알(맛을 잘 아는 사람)'들의 성지였다.'테이크아웃(포장)'이라도 하기 위해 카운터(계산대)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주문을 받는 훤칠한 키의 직원은 트렌디한(멋진) 패션과 '타투(tattoo·문신과는 다르다고 한다)'로 고객인 우리 무리를 압도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 주세요." 여느 카페에서처럼 나는 지인들과 함께 논의해 정한 메뉴를 주문했다. 음악이 시끄러웠을까. 카페 직원은 아랑곳 않고 포스기(주문기기) 화면만 응시했다. 음악이 시끄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에 잔"을 외쳤다. 이번에는 포스기를 응시하던 그의 두 눈이 내 눈을 향했다. "뭐 드시겠어요?" 이미 두 차례나 메뉴를 말했단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힙스터(멋쟁이)'의 두 귀에는 야속하게도 '에어팟(무선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2년 전 일이다.2023년에도 MZ와 에어팟은 '찰떡궁합'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예능 TV프로그램 'SNL코리아'는 'MZ오피스' 코너를 선보였다. 극중에서 MZ이자 '맑눈광(맑은 눈의 광인)' 역을 맡은 김아영씨는 사무실에서 연일 에어팟을 꽂고 일하며 MZ세대의 모습을 풍자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MZ의 당찬 모습은 TV에서 개그 소재로 쓰일 만큼 일상이 돼버렸다. 혹자는 일의 능률과 효율성, 개인주의란 고상한 단어로 합리화하며 문제 제기하는 이를 향해 '꼰대' 프레임을 씌우려 하나 그들이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순전히 특정 세대를 지칭하던 MZ가 이젠 혐오표현이 되고 있음을.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이제는 한숨이 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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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이제는 한숨이 나오지 않도록 지면기사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한숨으로 시작했다. "보증금 1억원을 돌려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지금 사는 집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며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엔 시름이 가득했다.두 달 전 '전세사기 피해자 법률지원 접수처'가 마련된 인천 미추홀구청 복도는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평일 오전에 생업을 제쳐놓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다른 아파트에 살지만, 집주인의 이름이 같다는 사실을 알아챈 피해자들도 더러 있었다. 집주인이 부유한 자산가라는 부동산중개업자의 말까지 똑 닮아있었다. 같은 집주인에게 당한 세입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추홀구 일대 피해자들은 대책위원회를 직접 꾸렸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는 공동주택 21곳의 입주자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위원회는 2천여 가구가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평생 모은 보증금을 한순간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실어증이 온 피해자가 있다는 사연을 대책위를 통해 전해 듣기도 했다.최근 연락이 닿은 또 다른 20대 피해자는 같은 아파트 이웃집의 경매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지난해 여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부동산을 통해 전세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대책위도 피해 가구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피해 가구인지 모르고 있는 세입자의 집도 경매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앞으로 전세로 집을 구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피해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보금자리를 찾는 세입자들의 소망은 물거품이 됐고, 전세제도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 개인의 부주의만을 탓하기엔 피해 가구가 너무 많다. 정부가 이제 막 제도를 손보고 있지만, 전세살이하는 이들의 불안을 없애기엔 역부족이다. 더 늦기 전에 이번 사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피해자들의 전세보증금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백효은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100@kyeongin.com백효은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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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 지면기사

    '새는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데미안) 우리는 사춘기 시기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투쟁하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보살핌이 필요한 소년인 터라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호락호락하진 않다. 그래서 고민도 하고, 방황도 하고, 교육도 받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갈고 닦으면 자기만의 세계가 꾸려지는데 그때 우린 비로소 어른으로 거듭난다.지난해 선감학원 피해자들을 만났을 때 이 구절이 떠올랐다. 사춘기 시기를 선감학원에서 보낸 피해자들은 아직도 선감학원 원생 티를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퇴소한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악몽과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인터뷰 중 그때가 떠오르면 눈물을 흘렸다. 상처가 마음속 깊이 자리한 탓이었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11살 나이에 끌려와 4년 이상을 강제 수용됐다. 교육은커녕 학대와 고문, 고된 노동이 일상이었다. 선생과 직원에게 따질 수도, 반항할 수도 없었다. 어른으로 성장할 시기에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 셈이다.그러던 피해자들은 백발의 노인이 돼서 지금의 자신을 만든 세계와 투쟁하기로 했다. 2012년부터 단체를 조직해 자신이 부랑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렸고, 강제로 수용해 폭력을 저지른 국가에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해엔 노력이 일부 결실을 맺었다. 원생이 묻힌 묘역 시굴 작업 결과 5개 봉분에서 모두 아동 유해가 발견됐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위로금과 생활비를 지급 받게 됐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사과와 모든 피해자 배·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은 그 시절 상처를 오롯이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발 소년이 국가의 사과를 받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다수가 고령에 접어들었고, 해마다 한두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앞으로의 길이 지난하겠지만 역사적 진실은 언제나 소년들의 편이다. 백발 소년의 새해 소망을 진정으로 응원한다. /김동한 사회교육부 기자 dong@kyeongin.com김동한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한마디 사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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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한마디 사과를 위해 지면기사

    전국적으로 한파가 찾아온 지난 14일 수요집회를 주관하기 위해 인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였다. 집회 당시를 떠올리며 얘기하던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고, 당찼다. 한 학생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 데 일본만 모르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일본을 향해 똑 부러지게 내뱉는 학생들의 말이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게 했다.매주 수요일 낮 12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1992년 1월부터 시작된 이 집회는 30여 년 동안 진행 중이다. 이 긴 세월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에 조금도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위안부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19 여파와 줄어든 사회적 관심 등으로 집회 규모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국제 사회는 일본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공식 인정하고 있다. 2007년 7월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으로 '미국 연방의회 일본군 위안부 사죄(HR121) 결의안'이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 그 근거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주인공 나옥분은 미국에서 열린 위안부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선다. 그는 과거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말하며 "I am sorry, Is that so hard?"라고 외친다. 진정 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고 싶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실한 마음을 대변하는 대목이다.한마디 사과를 듣기 위해 애썼던 또 한 명의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가 최근 별세했다. "죄송하다." 그 한마디를 듣지 못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 가늠이 가지 않는다. 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 생존자가 10명으로 줄었다. 점점 작아지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모두가 힘을 실어줘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수진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wed@kyeongin.com이수진

  • [노트북] 애프터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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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애프터 크리스마스 지면기사

    12월26일. 겨우내 거리를 메운 캐럴 소리와 트리 조명이 사라졌다. 연말 동안 잔뜩 들어온 '성탄절 바람'이 빠지는 날이다. 모두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복귀해 숨 가쁜 하루를 준비한다. 하필 올해는 또 월요일. 하루만에 출근길 아침 코끝의 찬 공기가 시리게 들어온다.매년 이맘때가 허무한 이유는 설레는 성탄절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올해가 벌써 일주일도 안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해를 돌아보며 유독 허무함이 클 이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화물노동자들도 그중 하나다. 파업 종료 이틀 전 평택항에서 만난 30세 또래 운전기사는 안전운임제가 연장되지 않으면 아예 다른 직종으로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내심 협상 결과를 기대하는 기색이 보였던 그였다. 실제로 파업이 끝나고 답보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문득 그는 정말 덤덤하게 이직을 준비하는 연말을 보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사고도 많았던 한해였다. 유독 안타까운 참사와 희생자가 속출했던 만큼 취재 과정에서 주변인들의 일상을 알게 되는 일이 잦았다.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건설 현장에서 떨어지면서, 심지어 그저 친구와 오랜만에 놀러 나온 자리에서도 세대를 불문한 희생 소식이 잇따랐다. 이들이 남긴 가족, 친구, 동료들은 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허한 빈 자리를 두고 작년과 사뭇 다른 시기를 보낼 그들의 연말은 또 어떨까.개인적인 소회보다 타인의 허무함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사회 전반의 안타까움이 컸던 한해였다. 미리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이들의 허무함을 지나가는 기억으로만 제쳐 두고 싶지 않다. 일주일 남은 올해지만, 일주일 뒤면 다시 새해가 밝는다. 캐럴이 지나간 자리도 곧 희망과 안부를 주고받는 인사말로 가득 찰 것이다. 늦지 않을 때 이들을 다시 찾아 새해 안부를 물어볼까 한다. /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mountain@kyeongin.com김산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붕어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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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붕어빵을 찾아서 지면기사

    칼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겨울이 되면 늘 현금 3천원을 지니고 다녔다. 입에 넣자마자 "앗, 뜨거워"를 외칠 정도로 뜨끈한 붕어빵과 호떡 등 겨울철 길거리 간식을 즐기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겨울철 서민 간식 붕어빵 찾기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만큼 어렵게 됐다. 밀가루 등 주재료 가격 상승 영향이다. 실제 지난 14일 앱 '가슴속3천원'을 통해 수인분당선 수원시청역 인근 붕어빵 가게를 찾아봤다. 해당 앱은 이용자들이 올린 정보를 토대로 사용자 위치 주변의 붕어빵, 호떡, 푸드트럭 등의 판매 위치를 알려주는데 오후 3시 기준 수원시청역 6~10번 출구 인근엔 총 6곳의 붕어빵 가게가 검색됐다.가까운 가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뜻한 붕어빵이 꽁꽁 언 손과 속을 녹여줄 거란 기대에 부풀어서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붕어빵 가게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찬바람만 감돌았다. 6곳을 돌았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반대편인 1~5번 출구 방면으로 발길을 돌리자 멀리서 붕어빵 트럭 한 대가 보였다. 1시간 만에 만난 올해 첫 붕어빵의 가격은 3개 2천원. 개당 700원꼴이었다. 사장 A(32)씨는 "재료 가격이 전년 대비 10% 이상 올라 작년(5개 2천원)처럼 팔 수는 없다"고 했다. A씨는 붕어빵 노점이 줄어든 이유로 '신고'를 거론했다. 앱을 보고 오는 이들이 많은데 사람이 모일수록 주변에서 불법 노점상으로 신고한다는 것. "이틀 전에도 영업하다 신고를 당했다"고 A씨는 설명했다.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지만, 붕어빵이 가진 추억과 감성은 대체하기 힘들다. 가슴속3천원 등의 앱이 인기를 얻는 이유다. 앱 덕분에 소비자들은 붕어빵 트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게 됐지만 반대로 자영업자들은 신고당할까 떨고 있다.노점상들도 할 말은 있다. 세금을 낼 테니 우리도 직업으로 봐달라며 '노점상 생계보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했으나 국회에선 관련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벌금 대신 세금을 내겠단 이들의 요구는 언제쯤 받아들여질까. 소비자는 발품을 팔지 않고 붕어빵을 사고, 붕어빵

  • [노트북] 갈길 먼 한국대표팀 월드컵 훈련장 취재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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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갈길 먼 한국대표팀 월드컵 훈련장 취재 환경 지면기사

    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 취재 당시 찾았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카타르 도하의 알 사드 스포츠 클럽 훈련장에 마련된 일본 대표팀의 훈련장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훈련 일정이 적힌 보드판에 13명에 달하는 선수들의 사진과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던 것.이들은 훈련장의 '믹스드 존'에서 인터뷰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일본의 카타르 월드컵 최종 명단이 26명인데 이 중 절반의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이날 훈련을 마친 일본 대표팀의 도안이 훈련장에 설치된 믹스드 존에 등장하자 수많은 취재진이 선수의 발언을 듣기 위해 몰렸다. 훈련장에 있던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는 "훈련장에 오는 취재진들이 100명 이상"이라며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반면 한국 대표팀은 카타르 월드컵 훈련장에서 믹스드 존을 운영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가 언론에 훈련 일정을 공지할 때 기자회견을 할 2명의 선수를 정해줘 이들만 인터뷰할 수 있었다. 일본 대표팀에 비해 다양한 선수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적은 셈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에서 활약한 선수를 훈련이 공개된 날에 인터뷰하고 싶다고 가정하면 한국의 시스템상으로는 불가능했다.일본 대표팀처럼 많은 선수가 훈련장에서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한국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아시아의 축구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과 일본 모두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훈련장의 취재 환경은 일본이 한국을 압도했다. 다음 월드컵에서는 이 같은 한국의 훈련장 취재 여건이 개선되길 바란다. 기자들이 편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 [노트북] '해양 도시' 주도권 확보 나선 인천과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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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해양 도시' 주도권 확보 나선 인천과 부산 지면기사

    "프랑스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분관, 극지연구소 제2쇄빙연구선 모항(정박부두), 해사법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인천시, 부산시가 치열하게 유치전을 벌이는 안건이다. 이 중에서도 제2쇄빙연구선 모항, 해사법원은 인천, 부산이 해양도시라는 정체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데서 그 의의가 크다.정부는 최근 국무회의에서 북극 항로 개척을 위한 제2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을 담은 '제1차 극지활동 진흥기본계획'을 의결했다. 2009년 인천을 모항으로 하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운영한 지 10여 년 만의 두 번째 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이다. 인천, 부산 등 전국에서 제2쇄빙연구선 모항이 어디에 들어설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부산시는 제2쇄빙연구선 모항 유치를 위해 일찌감치 후보지 도출, 관련 인프라 조성 등 계획안을 내놓았다. 인천시는 정부 계획이 나오자 급하게 모항 유치 방안을 마련하는 데 나섰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민선 6기 재임 시절인 2016년 제2쇄빙연구선 모항을 인천에 지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인천시는 타당성 검토도 했지만 제2쇄빙연구선 건조 계획이 불투명해지고 시정부가 바뀌면서 관련 정책도 동력을 잃었다.해사법원 유치 또한 비슷한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인천시는 2017년 해사법원 범시민 추진 기구를 만들고 정책 설명회, 토론회를 여는 등 활발하게 의제에 불을 붙였지만 잠시뿐이었다. 반면 부산시는 지자체, 해운·항만업계, 법조계, 정치권이 지속해서 해사법원 설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담론을 이어나가고 있다.이 두 안건에 대한 인천시의 정책적 관심이 떨어진 것은 행정 연속성을 잃은 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사업이 방향을 잃지 않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지역사회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인천시를 주축으로 정치권, 시민사회, 전문가 집단이 함께할 기회도 뒷받침돼야 한다. 인천이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원팀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

  • [노트북] '27번째 멤버' 오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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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27번째 멤버' 오현규 지면기사

    수원 삼성의 공격수 오현규가 벤투호의 '27번째 멤버'로 카타르 월드컵 여정을 마무리했다. 월드컵을 보름 여 앞두고 '캡틴' 손흥민이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만에 하나 대체될 상황을 대비해 최종명단 26명 밖 예비명단으로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 전 공격수 황희찬의 햄스트링 부상까지 겹쳐 엔트리 교체를 열어둔 국제축구연맹의 규정에 따라 오현규의 대체 합류 가능성이 있었으나 결국 무산됐다. 벤투호는 기존 엔트리를 유지한 채 월드컵을 치렀다.오현규의 엔트리 합류 여부를 끝까지 지켜본 건 카타르로 떠난 선수 중 유일하게 그가 경인지역 프로구단 소속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13골로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린 데다, FC안양과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그였기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었다.비록 월드컵 무대를 직접 밟진 못했지만, 오현규에게 이번 동행은 분명히 뜻깊은 시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는 대표팀 경기마다 벤치에 앉아 세계적 수준의 선수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현지 훈련도 빠짐없이 수행하며 동료들이 출전 의지를 불태우는 것을 보고 다음 월드컵에 대한 내적 동기부여도 확실히 다졌을 것이다. 마침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의 드라마를 썼을 때 잔디 위에서 선수들과 얼싸안고 극적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눈 것도 향후 그의 경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임이 분명하다.오현규는 카타르로 떠나기 전 "월드컵이라는 영광스런 무대에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다. 수원 이병근 감독과 동료들, 수원 팬분들께도 감사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강등 문턱에서 '소년 가장'이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무게를 견뎌냈던 오현규다. 이제 당당히 팀의 '간판' 공격수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선수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 [노트북] 대불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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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대불안의 시대 지면기사

    '패닉(Panic)'.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개인의 심리상태나 행동을 뜻하는 말로, 고대 그리스 신화의 '판(Pan)'이란 존재에서 유래한 단어다. 목축의 신인 판이 위기로부터 보호해준다는 믿음을 가진 아테네인들은 공물과 제물 등을 제사장을 통해 판에 받쳤다. 실제 그리스에 평화와 호황을 가져올 때마다 그 믿음은 더욱 굳건해졌지만, 흉작을 맞거나 전염병, 전쟁 등이 벌어지면 아테네인들은 큰 좌절과 공황을 겪게 됐고 훗날 패닉은 사회적 불안을 뜻하는 대표적 단어로 발전하게 됐다.우크라이나 전쟁과 3고 현상(고물가·고환율·고금리), 북한의 군사 도발과 가상화폐의 몰락 징조 등 우린 모든 생활이 불안한 패닉에 빠져있다. 일명 '대불안의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다. 올 초부터 시작된 경제불안은 고용불안으로, 여기에 안보불안까지 이어지며 경제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코로나19만 끝나면 '호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믿음은 사라졌고 내년 상반기까지 경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란 우울한 소식만 들린다.와중에 겪은 '이태원(10·29) 참사'는 대불안의 시대에 안전불안까지 겹치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8년만에 반복된 참사. 잠시 잊고 있던 일상 속 죽음의 요소가 언제든지 우리를 덮칠 수 있다는 불안감까지 우리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한 것이다.불안의 증폭은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결혼하면 배우자란 불안요소가 늘어나는 거고 자식이 늘어나는 출산도 마찬가지다. 혼자만의 불안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출산을 선택할 이유는 줄어든다.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책임 회피'와 경제위기에도 '펀더멘탈'은 문제없다는 정부, 판에 의지한 그리스인들과 달리 현재 국민들이 겪는 패닉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 가져야 할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