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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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이재준 수원FC 구단주님 지면기사
지난 10일 인천공항 입국장에 때아닌 구름 인파가 몰렸다. 손흥민의 소속팀인 잉글랜드 프로축구 토트넘 선수단이 국내에서 열리는 프리시즌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한국땅을 밟은 날이었다. 앞서 한국에서 일정을 소화하던 손흥민이 단짝 공격수 해리 케인 등 동료들을 '깜짝 마중' 나온 장면만큼, 이날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행렬 선두에 모습을 드러낸 토트넘의 다니엘 레비 회장이었다.선수들과 한데 입국한 것도 모자라 이날 토트넘의 엠블럼이 진하게 박힌 폴로 티셔츠 차림의 레비가 선수단과 함께 태극기를 펼쳐놓고 사진을 찍자 그에게 박한 평가를 하던 축구 팬조차 '친근하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평소 선수 영입 시기마다 큰돈을 쓰지 않아 속칭 '짠돌이'라는 말을 듣곤 했던 그였다. 선수 투자에 미온적인 구단주가 전면에 나서지 않아 '실질적 구단주' 역할까지 겸하는 레비로선 억울한 면도 있겠지만, 적어도 국내 토트넘 팬들의 눈도장을 찍기엔 더할 나위 없는 행보였다.토트넘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스페인의 세비야와 프리시즌 2차전을 가진 지난 16일 경기 시작 전, 한 '구단주'의 이름이 경기장을 찾은 내빈 가운데 호명됐다. 이재준 수원시장 겸 수원FC 구단주였다. 수원FC가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상위권 도약을 위해 강원FC와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치르는 그 시각이었다. 이 시장이 구단주로서 수원FC 경기를 현장에서 꼭 챙기란 법은 물론 없다. 지난 10일 수원FC가 서울FC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둘 때, 이 시장은 첫 '직관'으로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자식 같은 선수들이 주요 경기를 치르는 와중에 차로 10분 거리인 다른 경기장에만 모습을 보인 건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수원FC는 수원 시민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시민구단 아닌가. 공교롭게도 구단주가 자리를 비운 이날, 수원은 강원에 역전패했다. 임기 내 이 시장은 팀의 구단주로서 숱한 경기를 남겨뒀다. 이 시장이 지겹도록 경기장을 찾아 이를 시정홍보의 마중물로 삼은들 어떤가. '수원FC 구단주'다운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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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조금 다르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지면기사
성격유형검사(MBTI)가 아직도 열풍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이 검사는 최근에도 성격을 정의할 때 쓰이고 있다.그중 판단기능을 다루는 부분은 사고(Thinking)형과 감정(Feeling)형으로 나뉜다. 사고(T)형은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며 감정(F)형은 공감능력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게 호되게 혼난 친구가 "상사가 나를 못살게 군다"고 당신에게 말했다. 그럼 F형은 그 부장을 같이 욕해주겠지만, T형은 아는 노무사를 소개해줄 것이다.T형인 나도 '공감능력제로'라고 불리며 여자친구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뭇매를 맞곤 했다. 뭇 T형들이 모두 공감능력제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F형보다는 공감을 못 하는 이들로 MBTI 신봉자들 속 빅데이터에 남아있는 듯하다.그런 T형에게도 장점은 있다. 문제를 직시하고 빠르게 대책을 찾아낸다는 점이다. 학교를 갓 졸업한 친구들이 취업과 연애를 못 하고 있다며, 결혼은 또 어떻게 하냐며 곡소리를 낼 때면 못내 이런저런 방안을 찾아보는 척하고 있다.이런 20~30대에게 한국은행 수장이 지난 13일 금리 인상을 발표하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지금 세대는 연 3% 금리로 돈을 빌렸다면 평생 그 수준으로 갈 거로 생각했겠지만, 지금 경제 상황으로 볼 때 그런 가정이 변할 수 있다"며 "이런 위험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의사결정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이 말은 대책일까 공감일까. 그의 당부가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마련한 부부에게, 은행의 도움으로 창업을 시작한 청년에게 도움이 됐을까. 당장 대책 마련이 어렵다면 차라리 진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MBTI에서 판단기능을 다루는 부분은 사고(T)형과 감정(F)형으로 나뉜다고 했다. 갑자기 한국은행 총재의 MBTI가 궁금해졌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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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말아톤 그리고 우영우 지면기사
장애를 주제로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통상 '연민'의 감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서 주인공이 고통을 겪다 주변의 도움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마련이지만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하고, 스스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2005년 개봉해 자폐 장애를 이겨내고 철인3종경기까지 완주한 배형진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말아톤'이 대표적이다."양해 말씀드립니다. 저는 자폐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장애인을 연민의 존재로 비췄던 미디어의 변화가 생긴 걸까.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인을 조금 특이하지만, 사회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한다.주인공 우영우가 자폐를 앓고 있어 사회성이 떨어진다 생각해 무시한 직장 상사가 "내가 우 변호사를 너무 편견을 갖고 판단했어. 미안해요"라며 사과하고, 발달장애 증상 중 하나로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반향어에 대해 "저랑 대화할 땐 참지 않고 말해도 괜찮아요"라고 공감해주는 직장 동료. 앞선 대사들처럼 장애는 더 이상 숨기고 극복하는 '장벽'이 아닌 다른 점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환경의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미디어는 말하고 있다. 방영 첫회 0.9%였던 드라마 시청률이 2주 만에 10배 이상 올라 9.1%를 기록한 것으로 보아 대중들도 이러한 인식 변화에 동감하는 분위기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 정부의 장애인 인식 개선 사업 등 누군가는 이런 행동과 정책들이 과연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런 조그마한 목소리들이 모여 사회가 장애인을 품을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고 우영우는 당당히 증명하고 있다.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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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韓 어선 발목만 잡는 TAC, 中 동참 촉구해야 지면기사
"올봄에도 꽃게가 잘 잡히긴 했죠. 하지만 금어기에 들어간 사이 중국 어선들이 통째로 꽃게를 쓸어가는 걸 손 놓고 봐야 하니 씁쓸합니다."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꽃게잡이에 순풍이 불었음에도 서해 어민들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다. 4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꽃게들이 많이 잡혔지만 크기가 크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게 이유다. 그나마 큰 꽃게들이 잡히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어기(6월21일~8월21일)가 시작되면서 어민들은 아쉬운 마음을 그물망과 함께 접어둔 채 조업을 멈췄다.서해 어민들은 매년 꽃게 총어획허용량(TAC·Total Allowable Catch)이라는 규제도 받는다. 지속 가능한 수산자원 관리를 위해 1999년부터 시작된 제도다. 이에 따라 연평도와 서해 특정해역 등 지정된 조업구역에서 정해진 양의 꽃게를 잡아야 한다. 과도한 어획으로 꽃게의 씨가 마르는 것을 방지하는 데 필요한 제도인 건 틀림없다.문제는 우리 어민들만 어업권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어선들은 금어기도, TAC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수역까지 들어와 꽃게를 싹쓸이해간다. 유엔식량농업기구 통계를 보면 1987~2016년 사이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한국 어선과 중국 어선이 잡아들인 꽃게의 연평균 어획량은 2만5천t과 2만4천t으로 대동소이하다. 30년간 계속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우리 해경의 단속만으로 막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중국 수역과 한국 수역을 오가는 꽃게의 이동 습성상 우리 수역에서만 TAC를 적용하는 것이 수산자원 관리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해에서 어업 활동을 하는 인접국들, 특히 중국이 TAC를 도입해야 본래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해 꽃게 자원을 보호하고 두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업을 멈추는 우리 어민들의 어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중국이 TAC에 동참하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한달수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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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문화와 정치 지면기사
문화예술 분야라고 해서 정치의 입김에서 자유로울리 없다. 실력에 상관없이 이해관계만 따지거나, 정책의 성격에 따라 사업이나 창작의 지속성과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모습을 적잖이 봐왔다. 정치가 문화예술이 성장하는 데 뒷받침이 되는 디딤돌이나 거름 역할이 아니라, 앞에서 이를 끌고 가며 필요에 따라 휘두르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올해 선거를 앞두고도 혹시나 새로운 수장이 문화에 관심이 없어 예산이나 지원 규모를 축소 시키지는 않을까하는 현장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꽤 들었다.정치 성향과는 무관하게 시나위의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가 밝힌 문화정책에 대한 소신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문화적으로 풍족해야 잘 사는 것"이라며 "문화의 향유는 시민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또 "문화의 소비와 체험을 위해 멀리까지 가야 한다면 불행한 것"이라며 "리스크가 큰 문화산업에 공공이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 봐온 경기도의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은 '지향점'을 잃은 느낌이었다. 생색내기 좋은 하나의 호혜적 도구로 이용되며 알맹이를 잃어버렸다. 신 씨의 주장에 수긍했던 이유이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수준 높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더 많이 누리게 할 것인지, 이를 보여줄 예술가들이 좀 더 많은 기회를 얻게 할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 주변의 문화 시설을 잘 활용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지 등에 대한 여러 고민은 뒷전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실의 기저에는 문화예술에 왜 투자하고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는 정치 논리와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케케묵은 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한 달. 새로운 출발점에 선 정치가 문화예술에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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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사회의 책임 지면기사
왜소한 체구를 가진 한 여성이 법정에 들어섰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살인 혐의였다. 그는 발달장애 자녀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았다.우리 사회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크고 작은 송사로 법정을 찾는 이들의 분쟁을 접하다 보면, 그들의 범행을 막지 못한 사회 시스템 부재를 떠올리게 된다. 이 지경까지 온 데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무관심은 무관심을 부르고, 불신이 불신을 낳다 보면 가족도 이웃도 원수가 된다.수원지법은 예외적으로 이 사건 피고인에게 법정 권고 형량보다 낮은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여러 사정을 참작해 이처럼 결정했다. 가정을 보듬지 못한 사회 시스템 부재를 짚으면서도 생명 존중 가치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살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으며 피고인에 대한 사회적 격리가 불가피하다고 봤다.분쟁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대개 본질적인 문제를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선고 직후 이 사건 변호인에게 다시 한번 연락했다. 피고인은 법정 권고 형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받았음에도 항소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형량이 가중될 수 있다는 변호인의 우려와 달리 꼭 다시 한번 재판을 받고 싶다며 먼저 입장을 전해 왔다고 했다. 친모는 이미 1심 재판부에 수십 건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런 그가 법정에서 다시 한번 소명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생활고와 끝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를 비관해 8년간 홀로 돌봐온 아이를 친모가 숨지게 한 사건이다.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애지중지 길러온 자녀와 함께 세상을 등지려 수차례 결심해왔던 친모. 범행을 저지른 뒤 그가 법정에 서기까지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이 사회는 더 이상 '사회'로 존립할 수 있을까. /이시은 사회부 기자 see@kyeongin.com이시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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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건물에 핀 꽃 지면기사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6월의 퇴근길이었다. 차들로 가득한 수원 인계동의 한 교차로를 지나자 차량들이 뒤엉키다시피 앞을 막아섰다.경적을 울리는 차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앞지르려던 찰나 갓길에 줄지어 선 소방차량이 보였다. 응급차량부터 사다리가 실린 대형소방차까지. 언뜻 봐도 '만만찮은 사고가 터졌구나' 싶었다. 교통사고라도 났나 했으나 인도 위에 몰린 사람들의 시선이 건물 위로 향해 있었다. 나 역시 무언가에 이끌리듯 잠시 차를 도로 한편에 세우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 위를 쳐다봤다.한 사람이 건물 옥상 난간 끝에 서 있었다. 하늘색 블라우스에 하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이었다. 건물은 예닐곱층쯤 돼 보였다. 건물 옥상에 선 여성은 한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난간에 올라 서 있었다. 건물 아래 몰려든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반쯤 정신이 나간 듯한 얼굴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인파의 절반은 소방관이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에어매트를 건물 아래 설치한 채 여성이 생각을 바꾸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오오! 여자 떨어진다", "크크크 안 떨어져, 돈 걸래?" 소방차 앞에 세워져 있던 레커차를 모는 세 명의 사내가 재밌는 볼거리라도 생겼는지 차에서 내려 여성의 행동 하나하나를 해설했다. 여성의 손짓, 표정 변화,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설명을 덧붙이는 게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 방송하는 듯 들렸다. 침묵으로 여성을 지켜보는 소방관들과 달리 사내들의 경박한 수다는 한동안 이어졌다. 절망에 빠져 슬퍼하는 누군가를 보고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두 모습이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간극이 컸다.한 시간 남짓 그 광경을 지켜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의 삶의 끝자락, 죽음의 문턱에도 조롱과 즐거움, 증오와 혐오가 있었다. 억겁의 고통 끝에 여성은 간신히 살았지만 그녀가 매일 맞이할 세상은 여전히 지옥일 터다. 그녀는 간호사복을 입고 있었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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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지역사회란 무엇인가 지면기사
지난 3일 저녁 10시 안산의 한 장례식장 앞. 심호흡을 두어 번 하며 떨리는 마음을 덜어낸 뒤, 비로소 빈소로 걸음을 옮겼다. 7시간 전쯤 발달장애인 형제를 홀로 키우던 6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족에게 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최근 발달장애인 자녀가 속한 가정의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던 터였다.아직 조문객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빈소에는 이미 안산지역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이 찾아와 자리를 지켰다. 이 중에는 발달장애인 형제의 아버지와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들도 있었다. 60대 남성의 가족과 지인은 그가 평소 두 형제를 돌보며 힘들어했던 기억을 꺼냈다. 이들은 남성을 먼저 떠나보낸 안타까움과 슬픔,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남은 형제에 대한 걱정도 함께였다.두 형제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된 건 2주 정도 지난 후였다. 빈소에서 만난 장애인단체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형제의 근황을 물었다. 이 관계자는 지역사회가 형제의 '자립'을 돕고 있다고 전했다. 안산지역의 몇몇 장애인단체는 형제를 도울 민간영역의 '사례지원팀'을 구성했고, 안산시는 형제가 받을 수 있는 최대한도의 활동지원 시간을 자체 예산으로 투입해 '24시간 지원'이 가능한 토대(6월23일자 7면 보도)를 만들었다.안산 지역사회는 이들 형제의 자립을 돕는 행위를 '사회적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거나 그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은, 부모에게 과도한 돌봄 부담을 지우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문제의식이다. 부모의 부재에도 발달장애인 자녀가 온전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지역사회의 강력한 의지가 발현된 움직임이다.저마다의 사정으로 돌봄을 포기한 다른 가족 대신, 지역사회가 두 형제를 품어보겠다고 한다.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에, 새삼 지역사회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웃의 안위를 생각하는 존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이렇게나마 지역사회란 이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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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경기도 청년 정책에 대해 지면기사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을 때, '참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취업이 주목적인 특성화고교에서 대학 진학은 쉽지 않았다. 특성화고에서는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기에, 야간자율학습도 없었고 고3 때까지도 상당수 수업은 실기 수업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뒤늦게 취업이 아닌, 대학 진학으로 진로를 바꿨을 때 앞이 막막했다.대학 진학의 문은 정말 좁았다. '특성화고 특별전형'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는데, 지원할 수 있는 학교도 제한적이었고 선발인원도 한 학과에 1~2명에 불과했다. 수능으로 3년 동안 공부한 이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에서 사실상 해당 전형으로만 진학할 수 있었다. 고교시절 내내 컴퓨터그래픽 등 디자인 분야만 배웠는데, 대학에 들어가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인생은 선택의 연속인데, 그 선택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는 천차만별이다. 대학 진학을 결정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운 좋게 하고 싶은 일을 일찌감치 찾은 사람이라면 인생계획을 차근차근 짜면서 나아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도 계획이 틀어지는 등 변수가 생기는데, 꿈을 찾지 못한 이들은 선택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직장에 취업해서 결혼한다'는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룰'이다.중간에 무언가를 꿈꾸며 마음 놓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치 않다. 1~2년의 공백기만 있어도 "쉬는 동안 뭘 했어요?", "공백기가 긴데, 이때는 무엇을 했나요?"라는 면접관 질문을 넘어서야 하고, 그러려면 그 답을 위해 또 무언가를 해야 한다. 일반적인 취업준비생이 선뜻 꿈을 찾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민선 8기 경기도정을 이끌 김동연 도지사 당선인이 '경기청년 갭이어(Gap year)' 정책을 내놨을 때,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갭이어 정책은 청년들한테 쉴 틈을 주고 사회에서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찾을 '기회'를 준다는 취지다. 본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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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청년에게 관심 있는 '척' 지면기사
"청년에게 관심 있는 척 좀 하지 마세요."6·1지방선거 인천 시장 후보로 나섰던 한 20대 청년은 '경쟁했던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노동운동가 출신의 이 후보는 노동조합 시위 현장보다 더 치열하고 교묘했던 선거전에서 청년을 바라보는 기성 정치인들의 관점을 체감했다고 한다.전·현직 인천시장 후보들은 임기 중 자신의 청년 정책을 성과로 내놓았고, 일자리와 주택·복지·문화 등 셀 수 없는 정책을 나열하며 2030 세대 표심잡기에 열중했다.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후보들이 내놓은 많은 공약은 청년과 연관된 정책으로 귀결됐다. 그렇게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겠다던 이들은 정작 젊은 후보의 TV 토론회 참석에 대해서는 반대 의사를 밝히며 청년이 마이크 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기존 정치판은 여전히 젊은 정치인을 반기지 않는다. 문제는 청년 정치를 배제하는 기성 정치인의 시각이 '청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것이다.선거가 끝난 지 20여 일이 지나고 민선 8기 인천시장직 인수위원회는 유정복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고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유 당선인이 '청년에게 희망과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공약 이행 방안 관련한 이야기는 부족하다. 지역 경제와 환경, 교통, 원도심 활성화 등 다양한 현안을 두고 활발하게 논의하는 것과 비교된다.청년 문제는 중앙 정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시민의 삶과 맞닿아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민선 8기 인천시가 청년 정책을 구상하는 데 많은 관심을 두고, 지역 청년의 짐을 덜어주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