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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트북] 한 장애인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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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한 장애인의 부탁 지면기사

    최근 자전거 유튜버 박찬종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9월 불의의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사고의 순간 보고 들은 것들, 당시 스쳐 지나간 생각과 감정을 오롯이 블로그에 남겨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느냐'는 명언과 함께 병상 일기도 썼는데,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의지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박찬종씨와의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끝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께 남기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제가 함부로 '아무렇지 않습니다. 도전하세요'라고 말할 순 없다. 장애인들에게 뭘 하라거나 어떤 생각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주제 넘는 소리인 것 같다"고 했다. 대다수의 장애인은 장애를 얻는 순간 가난(경제적 부담)도 함께 얻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박찬종씨는 퇴근길 사고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아 근로복지공단 재활공학연구소에서 의족을 맞췄다. 이곳은 비용이 외부업체의 절반가량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최소 수백만원 이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산업재해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 의족 비용은 천차만별로 올라간다.의족의 수명은 5년. 의족 값으로 5년 혹은 3년에 한 번씩 정부가 일부 금액을 지원해준다. 이마저도 정보를 알지 못해 수십 년 전에 맞춘 마네킹 같은 구식 의족을 평생 쓰는 분도 있다고 한다.단순히 의족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신체의 일부를 보조하는 장애 보조 도구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일 것이다.박찬종씨는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주변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나라에서 지원을 해줘도 당사자는 알 수가 없어요. 제 글을 보고 메시지를 준 절단 환자와 그의 가족들조차도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신청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아요. 주변에서 장애인분들을 위해 조금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유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진주 인천본사 정치부 기자

  • [노트북] 기자 아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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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기자 아닌 사람 지면기사

    "우선 기사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난주 카페에서 만난 취재원은 인터뷰에 앞서 이 말로 입을 열었다. 김빠지는 말이었다. 며칠 전, 그는 통화에서 작정한 듯 이야기를 쏟아놓을 태세였다. 전화가 아니라 내일이라도 당장 시간을 잡고, 얼굴을 보고 해야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나로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관심을 가졌던 사안이었던 데다, 여전히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어 그의 반응이 반가웠다. 사안의 실체를 증언해줄 당사자였다.취재원은 경기도 내 학교 어느 종목 운동부 학생의 부모였다. 기사는 안 된다는 신신당부에도 우회적으로 설득해 보려고도 했다. 그와 자녀가 겪은 일들을 기사에 담으면, 이전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강고했다. 이내 나는 의지를 꺾었다. 그러고도 그는 2시간 가깝게 최근 2년 사이 자신이 맞닥뜨린 이야기들을 빼곡히 읊어갔다. 마치 이런 자리를 위해 수십 번은 준비한 사람처럼, 그의 머릿속엔 이 문제를 둘러싼 타임라인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기사가 아니라 기자, 아니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몇 가지 일화에 방점을 찍어 목소리를 높이자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그가 열변을 토해 답답한 심정을 전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며 반대편 상대를 나무랐을 땐, 나 역시 한 편이 되어 질책의 목소리를 더했다. 그는 후련하다는 듯 인터뷰 막바지에 "마음의 정리가 좀 됐다. 지금은 아니지만 기사가 필요하면 꼭 먼저 연락드리겠다"며 고마워했다.지나간 기사로 자주 부끄러워하면서, 드물게 '자뻑'하는 지독한 이 일의 굴레에서 하나의 틈을 마련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쓰지 않거나, 쓰는 것을 잊음으로써 그 이상의 의미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틈 말이다. 카페를 나간 뒤 그의 하루가 평안했기를 빈다. 그날 만남 자체가 고통의 터널 속, 그와 자녀의 기댈 언덕쯤은 됐기를 소망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 [노트북] 겨울만큼 따뜻한 봄·여름·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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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겨울만큼 따뜻한 봄·여름·가을 지면기사

    150㎝는 됐을까. 황 할아버지의 보금자리로 들어가는 문은 고개를 절로 숙이게 했다. 주방인지 창고인지 모를 현관을 지나면 할아버지의 단칸방이 나온다. 성인 남성 한 명이 세로로 누우면 꽉 찰 정도였고, 가로로는 누울 수도 없는 크기였다. 할아버지는 "좁아서 어쩌나…"라고 중얼거리며 겸연쩍게 나를 반겼다.이날 연말의 공기는 뼈 틈 사이사이를 시리게 할 정도로 새삼 차가웠다. 방은 그야말로 얼음장이었다. 좁은 방에 앉자마자 허연 입김으로 주위가 가득 찼다. 할아버지는 이 집에서 십수 년을 살았다고 했다.방에는 연탄이나 기름보일러를 놓을 만한 자리가 없다. 방 안을 덥히는 건 작은 온풍기가 전부다. 할아버지는 집안에서조차 털모자, 장갑, 내복, 점퍼를 입고 지내야 했다.할아버지는 이날 인천쪽방상담소에서 건넨 두꺼운 겨울 점퍼를 받고 몸에 아주 꼭 맞는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올겨울은 예년보다 개인과 기업에서 들어온 후원이 늘었다고 한다. 고유가, 고물가에 우리네 생활도 넉넉하지 않은데 소외된 이들에게 온기를 전해준 고마운 어떤 이들 덕분이다.아직 찬 바람이 불긴 하지만 올겨울도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봄이 와 쌓인 눈이 녹아도 이들의 삶은 냉골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봄 추위에 털모자, 장갑, 내복, 점퍼를 여전히 입고 지내진 않을까. 여름 무더위와 많은 비에 지치진 않을까. 풍요로운 가을에는 홀로 쓸쓸하지 않을까. 그렇게 또 추운 겨울을 맞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쪽방촌 주민들의 집을 데우는 건 기름이나 연탄 따위가 아닐 수도 있다. 온정을 모아 칠순잔치를 열어줬을 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눈시울을 붉히던 게 이들이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가려 할 때쯤 황 할아버지는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밝게 웃었다. 아마 사람이 남기고 간 온기에 고맙다는 인사를 한 걸지 모른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한 손엔 핸들, 한 손엔 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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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한 손엔 핸들, 한 손엔 수저 지면기사

    '30초'.한 화물차 운전자가 차 안에서 식사를 마친 시간이다. 운전자는 적색 신호에 핸들을 잠시 놓고 허겁지겁 조수석에 있던 수저와 국 통을 들어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그저 내 차량 백미러를 통해 잠시 마주한 50대 가장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그는 왜 차 안에서 식사를 할까. 그것도 왜 위험천만하게 운전을 하면서 먹고 있었을까. 아마 제한된 화물운송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당에 들어갈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숙식 모두 차 안에서 해결한다', '하루 16시간을 운전만 한다' 등 미디어에 표현됐던 그들의 전쟁터 같은 일상을 실제 두 눈으로 마주하니, 그 충격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맴돌았다.신호가 파란불로 바뀌고 차량을 출발한 나는 마치 그 운전자의 식사를 방해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주히 국을 들이켜던 운전자는 곁눈질로 신호를 확인하다가 내 차가 출발하니 재빠르게 국 통과 수저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지난해 연말 화물연대는 생존을 위해 '안전운임제'의 일몰을 폐지해 달라며 총파업을 진행했다. 정부는 설득, 협상 대신 업무 복귀 명령 등의 강대강 대응을 가하며 사태가 격화됐다.'귀족노조' '민폐노조' 등으로 얼룩진 이들은 결국 백기를 든 채 파업을 종료했지만, 달라진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없애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회에선 2월 임시국회 때 야당을 중심으로 안전운임제를 처리하겠다며 나서고 있지만, 지난 1월 본회의조차 단 한 번 열지 않은 국회가 협의에 적극 나설지는 미지수다.오늘도 그 화물차 운전자는 한 손엔 핸들, 다른 한 손은 국통을 들고 차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 중 하나인 그들이 잠시라도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제도와 생존권을 주는 게 국가와 위정자의 역할 아닐까.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 [노트북] 이 정도면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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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이 정도면 된걸까? 지면기사

    2019년 11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SO) 음악감독 마리스 얀손스의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클래식에 관심 갖기 시작한 당시의 나에게도 세계적인 거장 지휘자의 사망 소식은 무척이나 안타깝게 다가왔다. 얀손스가 남긴 발자취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오슬로 필 음악감독으로 거둔 성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79년부터 21년간 오슬로 필을 이끌었고 무명에 가까웠던 이 악단을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로 발돋움시켰다. 명문 악단인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였던 사이먼 래틀 역시 버밍엄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18년을 지냈다. 악단의 기량을 월등히 높이며 영국의 대표 오케스트라로 키워낸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았다. 좀 더 가깝게는 2024년부터 서울시향 음악감독을 맡게 된 얍 판 츠베덴이 있다. 그는 10년간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했는데, 홍콩필은 미국과 유럽의 여러 유수 악단을 제치고 2019년 '그라모폰'이 선정한 올해의 오케스트라에 선정된 바 있다. 우리나라, 특히 지역 악단의 경우 이처럼 한 지휘자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사례가 드물다. 기관장이 바뀔 때마다 예술감독들도 함께 바뀌는 것이 마치 관례처럼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상임지휘자의 임기가 끝나기 전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차기 지휘자를 물색한 뒤 악단이 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보는 시스템을 가진 곳도 흔치 않다. 현재 경기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와 부지휘자 모두 공석인데 이는 비단 악단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예술감독들이 예술단을 맡아 무엇인가 보여주기에 2년은 너무 짧고, 한 번 임기가 연장되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버린다. 예술단을 충분히 잘 이끌 역량이 있고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단원들의 기량을 높일 수 있는 예술감독이라면 사실상 임기와 지원에 어떠한 한계나 선을 그어놓을 필요는 없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 속에 담긴 잠재력과 가치를 행정의 한 단편으로 치부해 버리는 현실이 씁쓸하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 [노트북] 배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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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배려석 지면기사

    지하철 임산부석 앞에 섰다. 이미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흘금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금세 눈을 감았다. 모른 척한 것인지, 정말 몰랐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그렇게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젠 정말 안되겠다' 싶어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았다. 진한 분홍 색깔의 배지는 무채색의 옷차림과 대비돼 더욱 눈에 띄었다. '임산부'란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것 같아 민망했다. 배려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위치에 놓인 상황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그 이후에도 임산부석에 앉기란 쉽지 않았다. 만삭이 되기 전까지 배지는 가방고리에 지나지 않았다. 지하철, 버스까지. 크게 다른 건 없었다.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이런 '민망한' 경우를 헤아려봤다. 한 손가락을 넘어가면서부터 더는 헤아리지 않았다.임산부 배려석이 생긴 지 10년이 지났다고 한다. 현실은 제도 시행 전후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지자체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 개선에 나섰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6년 임산부가 보이면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비워두는 자리로 캠페인 내용을 수정했다고 한다. 대전교통공사는 임산부 배려석 알림 서비스를 최근 도입했다. 발신기를 가지고 있는 임산부가 배려석 근처로 가면 안내 음성과 점등이 나와 자리 양보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제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쭉 읽다 보니 오히려 댓글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양보를 안 하면 이런 것까지 생겨?"임신 후기로 접어든 요즘, 한동안 이런 걱정을 잊고 지냈다. 누가 봐도 임산부이니 이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임산부석에 앉을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타는 일은 피하게 된 것도 한몫했다.승용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어려움은 있었다. 옆 차와의 간격이 좁은 곳에 주차하면 차량 문을 여닫고 나서 배가 차량과 차량 사이에 끼여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런 일을 하도 겪으니 차량을 운전석보다는 조수석 쪽으로 좀 더 기울여 주차하는 웃지 못할 습관마저 생겼다. 임신한 경험이 없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상황이다.매번 '후웁

  • [노트북] '규탄'과 '방탄', 그리고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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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규탄'과 '방탄', 그리고 한탄 지면기사

    "아휴, 이제 하다 하다 고사리도 비싸서 못 사겠네." 설 연휴를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를 취재하기 위해 전통시장을 돌아다녔다. 지난 추석과 달리 이상하리만큼 '비싸다'고 탄식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렸다. 취재를 나서기 전 차례상에 오르는 품목들의 가격을 살펴보니 작년보다 조금 떨어지거나 비슷한 편이었기에 다소 의외였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그럼에도 시민들이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는건 그만큼 우리네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증거일지 모르겠다. 밥 한 끼에 만원은 심심찮게 넘고 각종 공공요금도 급격하게 올랐다. 지갑에서 나가는 돈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영하 5도의 추운 날씨 속에 전통시장을 찾았을 텐데, 예상보다 높은 가격표에 선뜻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았을 터다.취재를 마치고 시장 밖으로 나서니 이번엔 각 정당이 거리에 내건 현수막들이 시선을 끌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문구도 보였지만, 상대 정당을 속된 말로 '디스'하는 내용에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민심의 밥상 위에 오를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벌어지는 '장외 신경전'이 마냥 낯선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마스크 넘어 입김과 함께 섞여 나오는 시민들의 한숨을 마주한 뒤 바라본 거리의 풍경은 잔뜩 찌푸린 날씨만큼이나 잿빛이었다.20여 년 전 대선 토론회에서 한 후보가 말했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가 떠올랐다. 그가 이 질문을 던진 건 '우리 정치가 민생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에둘러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민생이라는 단어가 쉴 새 없이 거론되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인다. '무능한 정부 여당 규탄'과 '당 대표 방탄'이라는 지루한 공방 속에 늘어가는 건 시민들의 한탄뿐이다. 올해는 더 암울할 것이란 경제 전망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번 설에는 우리 정치권이 삿대질을 내려놓고 건설적인 대안을 찾는 데 시간을 활용하길 권한다. 아무도 모르게 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퍽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 [노트북] 운전석 기사, 조수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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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운전석 기사, 조수석 기자 지면기사

    안전운임제가 일몰된 이후 화물 기사들의 삶은 어떤지 궁금했다. 기꺼이 옆을 내어준 컨테이너 화물 기사의 차량에 지난 16일 몸을 실었다. 오전 9시55분 의왕에서 출발한 차량은 충북 보은과 경북 상주를 거쳐 부산항에 도달했다. 컨테이너를 내리고 싣는 작업이 끝난 뒤 차량은 다시 상주에 들러 기름을 넣고 종착지인 안산에 17일 새벽 2시25분 도착했다. 꼬박 16시간이 걸렸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기사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취재를 위한 인터뷰는 진작 끝났다. 정치·사회·문화로 주제를 바꿔가며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주에서 안산으로 이동할 때쯤 대화 소재는 거의 고갈됐다. 말수는 줄어들고, 피곤이 몰려왔다. 창문을 여닫는 일이 잦아졌다. '눈꺼풀이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고 너스레를 떨며 애써 졸음을 쫓아냈다.운전석의 기사는 이런 피곤함에 적응돼 괜찮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14시간째 접어든 장시간 운행은 그에게도 벅찼다. 그가 기지개를 켜거나 지압봉으로 허벅지 등을 누르는 횟수가 많아졌다.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하루 종일 조수석에 앉아만 있던 나를 말이다.기자로서, 동행 또는 체험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 '아는 체'하는 걸 경계한다. 짧은 경험을 바탕으로, 마치 당사자가 된 것처럼 기사를 쓰는 건 기만처럼 느껴진다. 운전석의 기사, 조수석의 기자. 안산에 도착해 차량 안에서 잠을 청하는 기사, 안산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탄 기자. 기자는 당사자를 모두 이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한계다.기사는 헤어지며 자신이 귀족노조처럼 보이느냐고 물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퀭한 눈에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그와 작별하고 집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우연히도 택시 기사는 작년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5월 퇴직한 이후 컨테이너 화물 기사를 하려고 실제 기사들과 1주일간 함께 다녔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잠도 못 자고 300만~400만원 버는 사람들이 귀족이요?"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 [노트북] 경기도의 작은 날갯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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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경기도의 작은 날갯짓 지면기사

    최근 드라마 '더 글로리'가 열풍이다.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복수에 나선다. 피해자를 향해 가혹한 폭력이 계속되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 모두 외면한다. 해외에서도 더 글로리를 주목한다. 태국에서는 트위터에 '#The Glory Thai'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학교폭력 고발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민선 8기가 시작된 경기도는 연일 떠들썩하다. 김동연 지사가 강조해 왔던 '유쾌한 반란'이 경기도청을 휩쓸면서다. 김동연 지사는 "배추벌레는 배춧속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며 공직자들을 '배춧속'에서 꺼내려 한다. 지난 6일 도청 실·국장, 도 산하 공공기관장 등이 모여 10시간 넘게 마라톤 토론을 이어간 데 이어, 도청 과장 등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책으로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김 지사는 자신의 철학을 명확히 전했다. "자녀, 청년들이 부모, 사회가 정해준 길에서 착실하게 공부벌레처럼 공부해 부모, 사회가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길을 가길 원하나. 청년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하는 걸 억누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 '게임의 룰(rule)'이지 않나."한국 사회에서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은 행복한 인생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여기서 '좋은'이라는 기준은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 아닌, 주로 명문대, 대기업 등으로 치환된다. 한국 사회의 구조는 이렇게 이미 공고한데, 그 속에서 꿈을 찾고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김 지사의 새로운 시도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또 누군가는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쉽게 바뀔 것 같아?"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매번 '계란으로 바위치기' 정도로 여겨지고 우려도 나오겠지만, 경기도에서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위험부담에도 꿈을 이룬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회보다는, "나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더 기대되기 때문이다. 민선 8기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으로 사회의 공고한 틀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비효과'를 기대해 본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

  • [노트북] 겉보기만 요란한 수원시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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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 겉보기만 요란한 수원시의회 지면기사

    12년 만에 여소야대 형국을 맞다 보니 수원시의회가 조용할 날이 없다. 시작부터 '반쪽짜리'란 오명을 얻은 인사(정책검증)청문회부터 초유(?)의 예산 삭감이 이뤄진 올해분 예산안 심의까지. 최근엔 시장의 새해 첫 인사발령이 지난 예산 삭감에 대한 '보복인사'라며 시의회 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시의회가 시끌벅적한 건 당연한 일이다. 시의회 안에서 정당끼리 싸우거나 집행부에 항의하는 게 의원의 본분이다. 특히 시장의 인사권 견제와 집행부의 예산안을 심사하는 건 기본적인 의원의 역할이다. 다만 여대야소 구도가 지속하는 동안 다소 소극적으로 역할이 수행된 것뿐이다.민선 8기 들어 12년 만에 시장이 교체되고, 여소야대 형국과 아울러 시장과 소속 정당이 다른 의장이 자리하면서 내심 기대감에 부풀었었다. 기자로선 잠잠하기보다 소란스런 시의회가 반갑고, 시민들에게도 의원의 적극적인 집행부 견제 활동이 이로울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시의회는 여소야대란 구조적 특징이 자신 또는 소속 정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점만 과도하게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산안 중 일부에 대한 삭감 의견이 나오거나 그 방향으로 표결이 진행되면, 그 삭감 내용과 타당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왜 반대만 하냐'는 논란이 더 커져 뒤덮는다.네 번이나 반쪽짜리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도 여야가 함께 산하기관장 후보자의 자격에 대해 머리를 맞댄 적은 없고 청문회 진행 절차만 갖고 싸우고 있다. '보복인사'란 주장까지 나온 시장의 새해 첫 인사 논란은 야당만 집행부에 반발할 뿐 여당은 입장조차 없다.시의회가 잠잠해선 안 되지만 시끄러우려면 청문회장이나 상임위 회의실 또는 본회의장 안에서 예산삭감 대상이 되는 정책 내용이나 인사권을 두고 같은 테이블 상에 앉아 싸워야 한다. 얼굴은 마주하지도 않으려 하면서 여소야대 형국만 의식해서는 요란한 빈 수레밖에 안 된다. /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