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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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섬마을 K드론 지면기사
4차산업 시대 드론(Drone)의 진격은 경이롭다. 비행하면서 변형하는 트랜스포머 드론, 나방의 더듬이를 접목한 냄새 맡는 드론, 우주기지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 드론, 2천㎞ 밖에서도 조종 가능한 드론까지. AI(인공지능)·블록체인 등 첨단기능을 장착하고 '하늘을 나는 강자'로 한계 없이 진화 중이다.드론은 올림픽 무대에도 등장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1천218대의 드론이 밤하늘에 오륜기를 수놓아 진보된 기술과 예술의 합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팬데믹으로 개최가 1년 미뤄졌던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드론 1천824대가 엠블럼과 지구를 형상화하며 개막을 알렸다.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드론이 스파이로 돌변했다. 캐나다 여자축구대표팀이 지난 22일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 뉴질랜드팀 훈련장에 염탐용 드론을 띄운 사실이 발각됐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승점을 삭감하고 감독·코치·전력분석원에게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캐나다는 부당한 징계라며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다가 패소해 "올림픽 정신보다 메달이냐"는 비난을 자초했다. 캐나다팀은 뉴질랜드는 물론 프랑스·콜롬비아를 차례로 격파했다. 승점 6점이나 깎이고도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개운치 않다. 2020 도쿄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의 명성에도 지워지지 않을 흠집이 남았다.때론 자폭 무기가 되어 전쟁터에 출몰하고, 작전 염탐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착한 드론도 있다. K드론이 이달부터 전국 32개 섬지역, 17개 공원지역, 1개 항만에서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은 반갑다. 성남·양주·포천 등에 이어 9월부터 인천 섬마을 하늘을 누빈다. 덕적도·문갑도·대이작도·자월도에 이어 11월 이후에는 굴업도·영흥도로 영역을 확장한다. 소야도 선착장 인근에서 출발하는 K드론은 3㎏ 이하의 음식·생필품 등을 실어 나른다. 섬 지역은 병원과 약국이 부족한 의료 사각지대다. 응급환자에게 자동심장충격기(AED)·구급약품 등을 신속하게 보낸다는 국토부의 구상이 실현되면 주민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다.드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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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마약 '편견'과의 전쟁 지면기사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가던 무렵 독일로 떠났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6개월 동안 독일의 한 대학교에 파견갈 기회를 얻었다. 베를린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시골 동네였다.유럽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오는 외국인 학생이 대다수인 기숙사여서 그랬을까. 당시 코로나 규제가 조금씩 완화되고, 백신 접종자가 늘며 분위기가 풀어져서였을까. 기숙사 안에서 공공연히 대마초를 피우는 학생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는 권유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처음 맡아보는, 담배와는 사뭇 다른 냄새가 대마초 향이라는 것을 알고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 충격적이게도 "나도 한번 해볼까?"였다.마음만 먹으면 마약을 경험할 수 있는 사회. 이젠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청소년들은 어느새 마약중독자가 되고, 더 값싼 마약을 찾다가 마약판매업에 발을 들인다. 십여년 전엔 대마 투약 혐의가 불거진 유명 연예인의 "마약인줄 몰랐다"는 말이 얼토당토 않았지만, 이젠 그 말이 얼추 개연성을 갖게 됐을 정도다.물론 '호기심'이 마약 투약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회는 적어도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낸 이들이 빠져나올 통로를, 작은 구멍이라도 연결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들은 이 순간에도 끝이 안보이는 싸움을 하고 있다. 마약과의 싸움과 동시에 사회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섭외도 취재도 어느 하나 매끄럽지 못했다. 기자가 다가가면 움츠러들고 피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들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반드시 단약에 성공하리라' 하는 스스로의 다짐이자, 살기 위한 용기였을 것이다.마약중독자 자녀를 둔 엄마조차도, 처음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를 방문할 때 마약중독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두려웠다고 한다. 이젠 사회가 먼저 용기내 마약중독자들에게 손내밀어야 할 때다. 이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게, 사회가 마약중독자들을 똑바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이영지 정치부 기자 bbangzi@kyeongin.com이영지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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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홍명보와 한동훈 지면기사
'홍감독 논란'은 축구협회 리더십의 실패양궁 대비 '긍정의 정의선 부정의 정몽규'국민의힘 전당대회 '혁신 메시지'도 분명韓 대표의 '국민 눈높이' 공공선은 뭘까?좋은 성적을 내면 '홍명보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용서를 받는 방법은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뿐"이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자신에겐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피노키홍'으로 전락했다. '홍명보의 부정출발'이라고 한다. 면접 없는 '부탁'으로 선임되었다고도 한다. '동문 짬짜미' 의혹으로까지 이어진다.감독선임을 주관하는 전력강화위원 중 한 사람은 "홍 감독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몰랐다"고 한다. 박지성은 "진실은 내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하고 이영표는 "축구인은 행정에서 사라져야한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게 실력"이라고 꼬집는다. 홍명보 기자회견 이후에도 '감독사퇴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팀 리더십의 신뢰와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는 게 근거다."오해일뿐 특혜는 없다"는 게 축구협회의 입장이지만 '홍명보 논란'은 자초한 결과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들은 "외국인 감독을 후보에 두고 협상 중이다", 나아가 "외국인 감독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한 자릿수로 압축했다"고 말해왔다. 논란의 핵심은 감독선임 원칙과 절차로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붕괴다. 리더십 선임과정의 정당성 투명성 공정성 모두 문제가 되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의 실패는 결국 한국축구의 퇴보로 나타난다."양궁협회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1988년부터 올림픽 10연패의 여자양궁이다. "올림픽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경쟁력 중심의 선수선발이 세계 정상의 출발점이다. 선수 선발은 물론 운영과 관련하여 뒷말이 없는 이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협회가 선수명단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인맥축구'와 '위계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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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육과 돌봄은 본래 하나 지면기사
유보통합은 이제 선택 아닌 필수불필요한 갈등은 시간만 지체담당할 교원의 인식 전환이 중요거시적 관점에서 원만하게 이뤄져우리나라 영유아교육 새 전기 되길올해 초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하던' 유보통합이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아니나다를까. 지난 6월27일 그간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던 보육 업무가 교육부로 공식 이관되며 일선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벌써 이에 대한 대비로 분주하다. 어떻게 보면 유보통합이 보육에 교육이 더해지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보육현장에선 이미 이런 통합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본다. 사실 보육과 교육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문제이지 보육과 교육은 보조를 맞춰 가야 한다. 진정으로 문제가 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유보통합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점일지 모른다.법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행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이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는 큰 진통이 따를 것으로 대다수가 내다봤지만, 불과 몇 년 새 그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게 사실이다.막연히 우려만 하던 저출생 현상은 이제 보육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고 어린이집 운영자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할지 말아야 할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물론 유치원도 별반 다른 상황은 아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이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돌이켜 보면, 어린이집이 지금처럼 급증하게 된 것도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터로 향하는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볼 기관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어린이집을 육성했다. 그러나 많은 예측기관이 당황할 정도로 영유아 수가 급감하자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상황을 맞게 됐다.새로운 길이란 이 기회에 영유아 양육의 개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저출생 시대 양육은 오롯이 부모의 몫만이 아니라고 본다. 지속성장의 차원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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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김수영 시인과 '푸른 하늘을' 지면기사
학병 징집 피해 귀국 연극 무대 서6·25 비극적 체험 '레드콤플렉스''푸른…' 자유·혁명 대한 직설적 詩어둠의 요인은 '정체성 혼란' 투사해방~1960년대말 전환기 삶 '詩作'김수영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 한국사회의 전환기적 삶을 경험하면서 치열한 시작 활동을 펼쳤던 시인이다. 김수영의 시세계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시각으로 양분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독특한 자신의 시세계를 열어갔던 인물이다.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구 종로 2가 18번지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김희종은 정삼품통정대부중추의관의 벼슬을 지냈다. 조부 김희종은 경기도 김포평야 일대와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500여 석의 추수를 하는 지주였다. 형제로는 아우 수성· 수강·수경·수환, 여동생 수명·수연·송자 등이 있다. 같은해 종로 6가 116번지로 이사했으며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1924년 4세에 조양유치원에 들어갔다. 1926년 6세에 계명서당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했다. 1928년 8세에 어의동 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 14세에 폐렴과 뇌막염으로 1년여를 요양했다. 1938년 선린상고 야간부 3년을 졸업하고 주간부 2학년으로 진학했다.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성북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포기하고 미지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다녔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자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한 김수영은 연극 무대에 섰다. 1944년 봄에 만주에서 귀국한 어머니를 따라 지린성으로 가서 임헌태 등의 청년들과 번역극 '춘수와 같이'를 무대에 올렸다.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자 가족들과 개천 평양을 거쳐 서울로 돌아와 충무로 4가에 집을 마련했다. 1946년 시 '묘정의 노래'를 썼다. 1948년 박인환, 임호권, 김병욱, 양병석, 김경린 등과 동인 '신시론'을 결성했다. 1949년 동인 신시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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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달팽이(이공명)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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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중소기업 생산성 제고할 정책 드라이브 서둘러야 지면기사
중소기업의 경기전망이 두 달 연속 나빠지고 있다. 3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8월 중소기업 경기전망조사'는 지난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중소기업 3천61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8월의 업황 경기전망지수(SBHI)는 76.6으로 전달보다 1.4p 하락했다. 6월 지수가 소폭 상승(0.2p)한 후 2개월 연속 하락세이다. 작년 같은 기간(79.7)에 비해서도 3.1p 떨어졌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80.4로 지난달보다 2.9p, 비제조업은 75.0으로 0.7p 하락했다. SBHI가 100 미만이면 향후의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는 업체들이 더 많다는 의미이다. 경영 애로 요인으로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62.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인건비 상승(44.3%)과 업체 간 과당경쟁(34.6%), 원자재 가격 상승(31.2%) 순이다.반면에 8월의 수출 전망은 7월의 77.8보다 7.2p 더 높다. 2·4분기의 중소기업 수출은 1·4분기 277억6천만달러보다 늘어난 293억5천만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전년동기 대비 5.1% 증가했다. K뷰티와 미국시장 호조에 힘입은 화장품(+31.4%)과 반도체 제조장비(+26.8%), 기타기계류(+13.2%), 패션잡화(+157.8%) 등이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수출 중소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사이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이른바 '3고'→실질구매력 약화→내수 부진의 악순환이 화근이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민간 소비는 역성장(-0.2%)했다. 수출시장은 뜨겁지만 서민들의 지갑 두께는 점차 얇아지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수출이 증가하면 일정 시차를 두고 소비가 늘어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상품 수출이 1% 증가할 경우 민간소비는 1분기 후에 최대 0.07% 상승한 뒤 대략 3분기 후까지 그 영향이 파급된다.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살아나는 것을 감안하면 내수가 살아나야 할 시기가 벌써 지났지만 밑바닥 경기는 냉랭하다. 올해 상반기 전체 수출은 전년보다 278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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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2부속실 설치' 늦었으나 마땅한 조치다 지면기사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의 일정과 행사 기획·수행·메시지 등을 전담하는 기구다. 대통령 배우자의 다양한 공식 활동을 지원하며, 대통령의 공식 행사나 국내외 방문 시 필요한 업무도 수행한다. 지난 19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처음 설치된 이후 줄곧 유지되다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대통령실의 슬림화를 주장하며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대통령 배우자라는 지위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과 함께 기존 시스템 안에서 배우자 지원이 가능하다는 실무적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이른바 '명품백 수수 의혹' 등 김 여사를 둘러싼 구설과 논란이 잇따르자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김 여사 업무를 제도권 안에서 공식적으로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과 건의가 잇따랐다. 결국 대통령 부인을 보좌할 제2부속실이 설치된다. 대통령실은 제2부속실 설치를 위한 대통령실 직제 개정에 착수했다. 운영을 총괄할 제2부속실장도 내정했다. 지난 22일 출입기자들을 만난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의 확인이다. 이 관계자는 연초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KBS 신년 대담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제2부속실을 설치하겠다고 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켰다.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 등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제 도입도 재확인했다. 특별감찰관 추천은 본래 국회의 몫이며, 국회에서 추천하면 언제든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권 전체에 '리스크'가 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를 지금부터라도 제도권 안에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현 정권의 뜻으로 읽힌다.제2부속실 설치에는 특검법으로 압박을 가해 오는 야권의 공격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과 여권의 전투 의지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의 '허점'을 파고들면서 종국에는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연결시키려는 범야권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되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사임한 이후 지금까지 8년째 공석 상태인 특별감찰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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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만평] 불호령!!! 지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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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100억에 팔린 동교동 사저 지면기사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100억원에 매각됐다. 뉴스를 접한 민주화운동 세대의 심경은 착잡하다. 동교동 사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와 함께 군부독재 시절 야당 정치인들의 아지트이자 반독재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에겐 동교동과 상도동 사저는 단순한 개인주택이 아니라 민주화 서사를 증거할 역사적 공간이다.매각 당사자가 DJ의 막내 아들 김홍걸 전 의원이라 당혹스럽다. "상속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는 변명엔 기가 막힌다. 김 전 의원에게도 각별한 동교동 사저다. 아버지가 유신정권과 5공정권 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청을 피하려 필담을 나눴던 집이다. 아버지가 미국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동교동 집에 들어설 때의 감격도 생생할 것이다.김 전 의원은 민주당 위성정당의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이 됐다. 아버지 김대중과 어머니 이희호 여사의 후광 덕분이었다. 자질은 부모의 명성에 한참 부족했다. 다수의 고가주택을 보유하고도 허위 재산등록으로 당선 5개월 만에 당에서 제명됐다. 결정적으로 이 여사 사후에 의붓형 김홍업 전 의원과 동교동 사저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일으켜 가문의 품격을 떨어뜨렸다.이 여사는 분쟁을 예상한 듯 동교동 사저에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기념관 관리를 맡긴 김대중기념사업회에 DJ의 노벨 평화상 상금 8억원을 기부했다. 지자체가 동교동 사저를 공공기관으로 매입할 경우에 대비해 매각대금 상속 지분까지 정해 놓았다. 김 전 의원은 상금과 동교동 사저를 독차지하려다 법정에서 제동이 걸렸다.상속세 때문에 매각했다지만, 공론화 됐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역사적 장소였다. DJ 유산으로 호남을 독식해 온 민주당은 물론 권노갑, 한화갑을 비롯한 동교동계 아저씨 삼촌들이 발벗고 나서 문제를 해결했을 테다. 가족도 당도 김대중기념사업회도 모르게 매각할 공간이 아니었고 매각할 처지도 아니었다.동교동계는 올해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