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안중근과 동양평화론 지면기사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언이다.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수감 중이던 뤼순(旅順)감옥에서 일제의 사형집행으로 순국했다. 1909년 10월 26일 일제의 거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한 하얼빈 의거를 일으킨 지 5개월 만이다.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함으로써 일제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조차지(租借地)로 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던 일본, 러시아, 영국이 이 사건을 주목했다. 한국과 청나라에 대한 식민 침략을 아시아의 연대로 선전해 온 일본 입장에선 큰 낭패였다.이토 사살 이후 안 의사의 항일투쟁은 재판정으로 이어졌다. "이토 공작(伊藤 公爵)을 적대시"한 이유를 묻는 재판부를 향해 안 의사는 이토의 죄목 15개를 나열했다. 명성황후 시해와 을사늑약 강제 등 대한제국의 국권 침탈 죄목을 빠짐없이 나열했다. 또한 안 의사는 이토를 동양평화 교란범으로 지목했다. 일제는 러일전쟁(1904∼1905년)의 명분으로 동양평화유지를 내세웠지만, 한국의 국권침탈로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밝혔다.안 의사는 유작인 '동양평화론'에서 일본을 "용과 호랑이의 위세로서 어찌 뱀이나 고양이 같은 행동을 하느냐"고 말했다. 동양의 강대국 일본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환란을 이용해 대한제국과 청나라를 점거한 악행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동양 평화를 위한 의전(義戰)을 하르빈에서 개전하고 담판하는 자리를 여순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동양평화를 빌미로 한·중 두 나라의 국권을 침탈하는 일본의 위선적인 정략에 대한 정의로운 전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토와 같은 일제의 정략가들로 인해 독립국가 사이의 연대와 협력을 통한 동양평화가 깨진 사유를 밝힌 역사적 안목은 지금 봐도 예사롭지 않다.사형집행이 당겨지는 바람에 동양평화론은 미완에 그쳤다. 한·일 양국이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는 역사를 써왔다면 관계가
-
[참성단]황혼 이혼, 황혼 결혼 지면기사
조선시대 때부터 결혼 60주년이 되면 회혼례를 성대하게 치렀다. 평균수명이 50세가 채 안 됐기 때문에 회혼례의 가치는 그만큼 컸다. 하지만 100세 시대를 맞은 지금 회혼례를 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늘어나는 황혼 이혼 때문이다. 황혼 이혼은 20년 이상 함께 산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를 말한다. 황혼 이혼이 급증한 이유는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져 남은 삶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여성이 많이 늘어나서다. 국민의 인식이 개방적으로 바뀌었고, 고령층의 체력이 과거보다 향상되고 건강해지면서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진 점도 한몫 했다. 남자가 퇴직으로 경제력을 상실한 이후, 오랜 세월 쌓인 불만이 폭발한 여성이 이혼 서류를 내미는 경우가 더 많다.졸혼(卒婚)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결혼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졸업했다'는 졸혼은 "유명 연예인 OOO도 했다더라"라는 말까지 돌면서 황혼기 부부들이 들썩였다. "이혼하지 않고 따로 살면서 자유롭게 각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며 무용담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말하고 다니는 사람도 늘어났다. 졸혼은 당장 이혼을 피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눈곱만치의 애정도 없이 사실은 그동안 자식들 때문에 살았다'는 '커밍아웃' 부부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이를 반영하듯 지난해 '황혼이혼' 건수가 1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해 전체 이혼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황혼 이혼의 급증은 황혼 결혼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60세가 넘어 황혼 결혼한 남성은 6천126명, 여성은 3천604명으로 집계됐다. 이런 통계를 처음 집계한 1990년과 비교하면 남성은 3.9배, 여성은 9.1배나 늘어난 수치다. 75세 이상 결혼도 남성은 같은 기간 128명에서 660명으로 5.1배, 여성은 9명서 264명으로 29.3배나 많아졌다. 결혼생활은 여섯 가지 이유로 유지된다는 말이 있다. 한 가지는 사랑, 나머지 다섯은 신뢰라는 것이다. 1975년 9월호부터 월간지 샘터에 소설
-
[참성단]서해 수호의 날 지면기사
'명예훈장(Medal of Honor)'은 미국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훈장이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재임 당시 '자유훈장'과 함께 '명예훈장' 시상식을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 그래서인지 검증작업도 매우 까다롭다. 맥 라이언 주연의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는 걸프전 복무 중 사망한 여자 조종사에게 사상 최초로 여군 명예훈장을 추서하기 위한 조사단의 검증 과정을 그렸다.'명예훈장'은 1862년 남북전쟁에서 처음 수여된 이래 지금까지 3천400여 명의 군인에게만 수여됐다. 이 중에는 1871년 '신미양요'에 참여한 미군 15명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146명도 포함돼 있다. 훈장은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직접 받으며 이 과정은 미 전역에 생중계된다. 훈장 수훈자는 대통령부터 장군, 의원들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다. 이들 자녀에겐 조건만 되면 추천이나 입학 정원에 상관없이 미국 사관학교 입학이 주어지는 등 14가지의 큰 혜택을 준다. 미국은 이런 예우를 해줌으로써 국민 간 결속을 다진다. 이는 미 국민의 군인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게 몸에 밴 이유이기도 하다.우리의 군인 예우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지난해 7월 17일 포항에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도중 추락해 5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현장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와 시신 등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처리는 어이가 없었다. 사고 현장을 즉시 공개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란 뜬금없는 발표로 국민을 어리둥절케 했다. 대통령의 애도 역시 사고 3일 후에야 나왔다. "유족들이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 같다"는 국방부 장관의 실언에 유족은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오늘은 4회 '서해수호의 날'이다. 2016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과 제2연평해전 희생 장병을 기리기 위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행사는 천안함이 폭침(2010년 3월 26일)된 3월 넷째 주 금요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진다. 1회엔 박근혜
-
[참성단]안 들리는 능력 지면기사
"이 세상에는 귀가 들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그건 못 듣는 게 아니라 안 들리는 능력이 있는 거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특별히 안 들리는 능력이 더 있는 거니까 신비한 일이지. 너는 축복받은 거야." 청각 장애인인 10대 소녀는 인공와우 수술을 앞두고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정은 작가의 '산책을 듣는 시간'이란 소설 중 한 대목이다.안 들리는 게 능력이고 축복이라고? 뜬금 없는 소리 같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나서 소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말은 욕이었다. 구화(口話)를 배운 뒤 비밀 욕 수첩을 만들고, 소설책에서 생전 처음 보는 욕들을 수첩에 옮겨 적었다가 옥상에 혼자 있을 때 꺼내어 소리 나게 읽어보며 발음이 자연스럽게 되도록 연습한 결과였다. 소녀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처음에는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표현대로라면 '이래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세상은 시끄러웠다. 소리가 온 몸을 때리는 것 같았다. 방향감각도 이상해져서 종종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소녀는 말보다 오히려 수화(手語)에서 더 행복감을 느꼈던 듯 싶다. 구화를 배우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기 전, 수화가 유일한 의사소통수단이었던 소녀의 독백이다. "나는 손안에 투명한 새 한 마리를 기르는 느낌으로 수화를 하며 걸어 다닌다. 새를 쓰다듬듯이." 수화를 어쩌면 이렇게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문체다. 소설을 읽으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자기반성에 빠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청각 장애인도 아니면서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쓴 이들이 있다. 자전거 경음기나 응원용 나팔로 청각을 일시 마비시킨 뒤 장애진단서를 받는 수법으로 병역 면제를 받거나 시도한 철없는 젊은이들이다. 안 들리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그들이 기울인 노력을 생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차 안에서 나팔을 귀에 대고 1~2시간 동안 인상 찌푸리며 고막을
-
[참성단]돌아온 반기문 지면기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별명은 '기름 장어'다. 민감한 질문이나 난처한 상황을 매끄럽게 잘 피해간다고 해서 언론이 붙여줬다. 본인도 이 별명을 능숙한 외교관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여겨 싫어하지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 취임 전 기자들에게 스스로 별명의 유래와 의미를 홍보했다. 미국의 한 방송 사회자가 질문마다 모호한 대답을 하는 그에게 "한국에서 당신을 왜 미끄러운 장어라 하는지 알겠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반 전 총장이 대권 도전 움직임을 보이자 비판적인 언론으로부터 '기회주의자'로 집중 공격당하는 등 별명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하지만 반 전 총장 특유의 부지런함과 끈기는 당시 유엔 내에서도 유명했다. 재임 중 수단 다르푸르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프리카 연합 혼성 평화유지군 파견'이라는 공로를 세웠다. 특히 반 전 총장은 지구 온난화 문제를 국제적 관심사로 부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도 10년 재임 기간 기후변화 분야의 성과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그의 노력의 결실은 2015년 12월 체결된 파리기후변화협약이다. 이 협약엔 무려 195개국이 동참했다. 그는 이 협약을 위해 전 세계를 직접 뛰어다니며 세계 각국 정상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반기문이 '미세먼지 해결사'로 돌아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사회적 기구' 위원장직을 그가 수락했다. 그의 등장으로 대중국 외교력 및 국제사회 영향력으로 인해 미세먼지를 둘러싼 한·중 외교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하지만 중국의 오만한 태도로 인해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래도 유명무실하게 방치돼 온 국무총리실 미세먼지특별위원회보다는 외교 전문가로서, 중국 등 주변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하고 중재할 능력을 갖춘 반 전 총장의 능력이 더 돋보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반 전 총장은 UN사무총장 퇴임 후에도 기후변화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지난해 3월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의장에 선출됐는
-
[참성단]서울외신기자클럽 성명 지면기사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겠다"며 언론의 자유가 국가나 정부에 앞서는 가치임을 단언했다. 물론 언론의 자유가 없는 국가와 정부도 있다. 파시즘의 이탈리아, 나치즘의 독일, 공산주의 독재국가를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 국가나 정부가 그렇다. 하지만 국민의 자유를 박탈한 이런 국가나 정부는 혁명의 대상이지, 애국의 대상이 아니다.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서 왕정(王政)을 비판해 온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 주재 총영사관저에서 살해했다. 터키 수사당국은 암살단이 그의 손가락을 자르고 참수하는 현장의 녹음을 확보했다. 왕실 편에 있다가 왕정을 반대하는 언론인으로 변신한 카슈끄지를 사우디 왕실은 배신자로 규정해 처단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아랍이 가장 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그의 유고를 게재해 사우디 왕실에 항의했다.언제고 탄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언론인, 언론사는 남다른 연대감을 갖는다. 국내 언론이 탄압받던 시절 수많은 외신들이 한국의 진실을 알렸다. 독일 공영방송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목숨 걸고 1980년 광주의 비극을 세계에 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자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항의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진실을 외신을 통해 마주했다.서울외신기자클럽이 16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언론 통제의 한 형태이고 언론 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3일 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블룸버그 통신의 기자 실명을 밝히고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이라고 비난한 데 대한 항의이다. 이 기자는 지난해 9월 문제의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수석대변인' 기사를 작성한 장본인이다. 이 기자는 이 대변인의 지목으로 비난의 '표적'이 돼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라고 한다.민주화의 주역을 자초하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민주당의 DNA에 언론탄압은 없다고 자부해도 토를 달기 힘들다. 그런 민주당이 기자
-
[참성단]대사간과 민정수석 지면기사
조선 시대 사간원(司諫院)은 왕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이를 바로잡거나, 왕의 언행에 문제가 있으면 이를 비판하는 일을 했다. 사간원이 소신 있게 직언하고 왕이 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때, 왕은 '성군(聖君)'이란 소리를 들었다. 사간원의 수장 대사간(大司諫)은 비록 정3품 당상관이었지만, 소신과 배짱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었던 자리였다. 왕과 독대하는 자리도 많아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만큼 시샘하는 사람도 많았다.대사간은 지금으로 따지면 청와대 민정수석쯤 된다. 예나 지금이나 이들의 역할은 민심과 여론의 동향을 대통령에게 전달해 국정을 제대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본 업무다. 개각을 앞두고 문제가 있는 인사를 걸러내는 것도 민정수석의 주요 임무다. 인사 대상자들의 주변을 현미경 검증 하고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대통령이 후보자를 신뢰해도 "안된다"고 소신 있게 말해야 한다. 그만큼 업무량도 많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두 번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운명'에서 "업무량이 늘 한계를 초과하는 느낌이었다. 무리하다 보니 민정수석 1년 만에 이를 열 개나 뽑아야 했다"고 적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인사검증은 거의 비선조직에 의존했다. 그래서 편지 풍파 인사가 많았다. 그나마 인사검증시스템이 제 자리를 잡은 건 참여정부 때였다. 인사수석이 인재를 추천하면 민정수석이 검증했다. 이후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친 최종 후보자 중 1명을 대통령이 낙점했다. 그런데도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인사 참극'이 자주 일어났다. 그때마다 비난은 인사수석보다는 민정수석에게 쏟아졌다. 검증 실패를 더 크게 본 것이다.지난 3 ·8개각으로 임명된 7명의 장관후보자가 청문회도 하기 전에 자질논란에 휩싸였다. 해도 너무했다. 최정호(국토교통부)의 꼼수증여, 김연철(통일부)의 막말 발언, 박영선(중소 벤처기업부)의 아들 이중국적 논란, 조동호(과학기술 정보통신부)의 배우자 부동산, 박양우(문화체육관광부)의 자녀 억대 예금논란, 진영(행정안전부)의 후원금 부당공제 등 후보자 대부분이 문제가 있
-
[참성단]대체육(代替肉) 지면기사
육류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가 아니라 한승태의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 창 刊)를 읽고 나서다. 새삼 독서의 위대함까지 깨우쳐 준 이 책의 저자는 닭, 돼지, 개 농장에서 노동하면서 동물이 식용고기가 되는 과정을 세밀하게 적고 있다. 그 묘사가 너무 생생해 전율이 일어날 정도다. 영화 '옥자'를 보았을 때처럼 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2주 정도는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종말 시리즈로 유명한 제러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에서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곡식이 부족해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선진국에선 육류, 특히 쇠고기의 과잉섭취로 인해 '풍요의 질병' 즉, 심장 발작, 암, 당뇨병 등에 걸려 죽고 있다"며 육류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채식주의자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아울러 전통적인 축산업이 환경파괴 논란을 낳고 있으며, 밀집 사육시설과 도축과정에서의 잔인함 등 동물복지를 문제 삼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채식주의를 선언해버리는 이들도 꽤 많다.전 세계 육류 생산을 좌지우지하는 연 매출 55조원의 다국적 기업 '타이슨 푸즈'가 지난해 5월 구멍가게 수준의 '퓨처미트 테크놀로지'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발표했다. 퓨처미트는 '실험실 고기'로 불리는 '배양 고기' 원천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회사다. 이 밖에도 타이슨 푸즈는 '비욘드 미트' 지분도 5% 인수했다. 이 회사 역시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효모, 섬유질 등과 배양해 고기의 풍미, 육즙, 식감을 구현한 식물성 고기를 만드는 회사다. 아쉬울 게 하나도 없는 공룡 기업이 이런 대체육 제조회사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이슨 푸즈의 발 빠른 움직임에서 우리는 '축산업의 종말'을 읽는다.지금 미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식품 기업까지 대체 식량 개발에 한창이다. 고기의 맛과 식감을 그대로 재현해 낸 대체육이 세계 식품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100% 식물성 단백질이면서도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을 낸다는
-
[참성단]'닥터-카' 달리다 지면기사
"자네 아버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았고 한국 사람처럼 죽었네."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벽안(碧眼)의 청년이 아버지의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응급구조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한국에선 길에서 허무하게 죽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 택시로 병원에 이송됐는데 의사의 권유로 더 큰 병원으로 이동하던 중 택시 안에서 숨졌다. 이후 청년은 전 세계 각국을 돌다가 선진화한 미국 텍사스의 응급구조시스템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5인승 승합차부터 사들였다. 이어 목수, 철공 기술자와 함께 집 뒷마당에서 승합차를 구급차로 개조하는 일에 매달렸다. 대한민국 1호 구급차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때가 1993년이다. 사실 이전에도 구급차는 있었다. 1972년 전북 전주소방서를 시작으로 1973년 부산 동래소방서 등 일부 소방서에서 구급차를 운영했고 1982년 3월 서울소방본부에서 구급대를 창설하면서 119구급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38년 경성교통안전협회의 의뢰로 경성모터스주식회사가 제작한 구급차가 운행되기도 했다. 당시 백미 240가마를 살 수 있는 '거금'이 투입된 이 구급차는 중상자 2명이나 경상자 4명을 동시에 이송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들 구급차는 단지 환자를 이송하는 운송수단에 불과했다. 차 안에 의학 설비를 갖춰 응급처치가 가능토록 한 전문 앰뷸런스는 청년이 제작한 구급차가 최초다. 그 청년이 이제는 60대로 접어든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1895년 외조부가 선교를 위해 제물포 땅을 처음 밟은 것을 시작으로 4대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가 뚱땅거리며 만든 구급차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며 구급차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응급구조시스템에서 볼 수 없었던 신개념의 구급차가 또 한번 선을 보였다. 가천대길병원이 지난 12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운영에 들어간 '닥터-카'다. 전문의와 간호사 등 전문 의료진이 응급구조사와 함께 탑승한다는 것이 응급구조사만 타는 기존의
-
[참성단]백건우의 지방 연주회 지면기사
피아노의 귀재 '안톤 루빈시테인'은 앵글로 색슨의 콧대 높은 자존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영국인이 대문자로 쓰는 유일한 글자는 나(I)이다. 이것은 그들의 민족성을 가장 뚜렷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대계 러시아 출신인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연주여행을 하면서 영국인들이 지나치게 '아이'를 내세우는 게 싫어서 그랬는지, 영국인들의 그 '자만'이 부러워서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쓰라린 역사를 떠올리며 선조와 민족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는 1960년대 서구로부터 가장 열렬한 환호와 칭송을 받은 대 피아니스트였다. 끊임없는 귀화 요구에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낳아주고 키워준 소비에트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71세였던 1986년 그는 자동차 한 대에 몸을 싣고 당시 레닌 그라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대륙을 횡단하며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을 찾아 순회연주회를 열었다. 시골성당의 낡고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도 그의 감동적인 연주를 막지 못했다. 이런 '마을연주회'가 100회를 넘었다. 언제는 스무 명 앞에서도 연주했다. 자신들을 찾아준 고마움과 그의 음악에 감동한 마을사람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우리의 피아니스트 백건우도 25년째 지방을 찾아가 연주회를 열고 있다. 거기에는 섬도 포함되어 있다. 2011년 9월 연평도에서 시작한 첫 섬 연주회는 관객들이 둘러앉거나 일어선 채 자유분방하게 대가의 공연을 관람해 신선함을 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악기 등 조건이 갖춰진 곳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음악은 청중에게 잘 전달됐다. 섬마을을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 그 속에서 한국적인 속살을 찾고 싶었다."백건우가 지방 순회 연주회를 시작한다. 이젠 사통팔달 길이 뚫려 지방이라 하면 그곳 분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수원 인천을 제외하곤 거장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곳이라 이번 '백건우 & 쇼팽' 연주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16일 군포, 17일 여주, 19일 과천, 20일 광명, 30일 수원,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