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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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고(故) 조양호 회장' 지면기사
2013년 4월 18일 로이터 통신은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의 부고 기사를 타전했다. "약탈적 방법으로 막대한 성공을 거둔 자본가이자 투자가로,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 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수년간 비판한 조지 소로스가 00세로 00일 숨졌다." 미리 작성해 둔 부고 기사가 실수로 출고된 오보였다. 알렉산드라 페트리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의 부고 기사 촌평이 의미심장했다. "스크루지 영감 처럼 자신을 돌아 볼 좋은 기회다. 기사에서 묘사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면 아직 새 삶을 살 기회가 남아있다."지금 89세의 소로스가 새 삶을 살고 있는지, 로이터가 부고 기사를 대폭 수정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나, 알프레드 노벨은 부고 기사 오보로 사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 자신의 부고 기사에 충격을 받아 노벨상을 제정한 것이다.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제목 아래 "알프레드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오보를 통해 사후 평판을 미리 알게 된 노벨은 '죽음의 상인' 대신 '노벨 상'을 택할 수 있었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했다. 최근 수년 간 조 회장 집안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일으킨 갑질 스캔들로 인해 '적폐 가문'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4년 장녀의 '땅콩 회항' 사건을 간신히 수습했지만, 2018년 차녀의 물컵 갑질 사건과 배우자의 '갑질 동영상' 파문으로 침몰했다. 조 회장은 지난 달 27일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최초로 적용돼 대한항공 경영권까지 상실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의 과(過)에도 불구하고 항공산업계에 남긴 조 회장의 공(功)은 뚜렷하다. 부친과 함께 대한항공을 글로벌 국적항공사로 키워 낸 경제적 성취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사훈과 어울린다.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평창올림픽 유치에 애썼고, 프랑스와의 민간외교에 남긴 족적도 크다. 인천의 향토기업인으로서 교육분야에 남긴 흔적도 깊다. 전경련과 경총의 추모 분위기는 정중하다.조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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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무너진 마약 청정국 지면기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리나라 영화 팬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은 60대 중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해서였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등장하는 '판초'차림의 건 맨 조(Joe). 눈을 지그시 감은 무표정한 모습,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쏘는 속사포에 추풍에 낙엽 지듯 쓰러지는 악당들. 유령의 울음처럼 울려 퍼지는 음산한 휘파람 소리와 엔리오 모리꼬네의 황량한 주제음악. 이런 것들은 속도 느린 서부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에겐 전율에 가까운 신선한 충격이었다.일약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에서 냉혈 형사 캘러핸 역을 맡아 미국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10인'중 한 명으로 뽑혔다. 반전운동이 전성기를 맞던 시대에 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더티 해리'시리즈를 4편이나 더 찍은 그는 자타가 공인한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전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라스트 미션 (원제·the mule(마약 운반책 ))'을 보았다. 1930년생으로 이제 그의 나이도 90이다. 연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구부정한 그의 어깨 위엔 수없이 떨어진 연륜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스크린 위엔 조각 같은 얼굴 캘러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늙은 마약 운반책 얼 스톤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2011년 전 세계 최고령 마약 운반책으로 붙잡힌 '레오 사프'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영화는 절묘하게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으로 온통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에 개봉됐다. 흔히 '농익었다'는 말이 무색한 노배우의 연기보다 마약 이야기라서 더 관심을 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제 우편, 특송화물로 들어오는 마약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마약 구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운반 방법은 고전적 수법이 돼버린 셈이다. 운반책과 판매책이 누군지도 모른 채 암호 화폐로 거래되면서 단속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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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5G 지면기사
1973년 4월 3일은 세계통신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모토로라의 통신 책임자인 마틴 쿠퍼와 경쟁사인 AT&T 벨연구소 책임자 조엘 엥겔간에 세계 최초의 무선 전화 통화가 실현된 날이기 때문이다. 한참 후발주자인 우리는 1984년 5월 첫 무선전화인 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단말기 가격은 대당 300만원, 설치비에 채권료까지 410만원을 줘야 카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400만원인 승용차 포니2보다 비쌌다. 그래서 당시 차 꽁무니의 긴 안테나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카폰에 이은 실질적인 첫 휴대폰 서비스는 서울 올림픽을 두 달 앞둔 1988년 7월 1일 시작했다. 한국산 단말기가 없어 모토롤라의 '다이나택'이 사용됐다. 무게만 1.3 ㎏으로, 벽돌같다 해서 '벽돌폰'이라 불렸다. 10시간 충전하면 30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단말기 가격 400만원에 가입비 60만원으로 500만원이던 승용차 포니 액셀과 맞먹었다. 이어 무선 호출기 '삐삐'와 시티폰, PCS가 출시되면서 휴대폰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단말기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좋아졌으며 가격도 저렴해졌다. 하지만 단말기의 변화를 주도한 건 통신기술의 진화였다. 기술이 돼야 그에 걸맞은 단말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기술은 1996년 2세대(CDMA), 2003년 3세대(WCDMA)를 거쳐 2011년 4세대(LTE)로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황창규 KT 회장이 '5G, 새로운 미래를 앞당기다'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5세대 통신을 세상에 알렸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랬다.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 3대 특성으로 하는 5G가 산업 전반을 통째로 바꿀 4차 혁명을 주도하게 될 것." 황 회장에게 '5G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공교롭게도 마틴 쿠퍼가 조엘 엥겔과 첫 무선 전화통화를 한 날로부터 꼭 46년이 지난 2019년 4월 3일 오후 11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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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월미도 디아스포라 지면기사
1950년 9월13일 새벽 5시, 월미도 상공에 굉음과 함께 유엔군의 공군기 1개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하늘에서 기름통과 네이팜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떤 이는 새벽잠에 빠져 있다가 고스란히 타죽었고 잠에서 깬 이들은 속옷 차림으로 도망갈 곳을 찾았다. 비행기가 사람만 보이면 기총사격을 해대는 통에 갯벌에서 펄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숨죽여 있기도 했다. 간신히 인천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폭격이 잦아든 틈을 타 월미도와 인천을 연결한 다리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숨진 가족과 이웃의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에겐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틀 뒤인 15일 인천상륙작전이 본격 전개됐고 함포사격을 피해 다시 고향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고향을 잃은 사연은 한국전쟁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처럼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것도 아닌데 고향은 꿈속에나 남아있다. 물리적 공간으로 보면 고향에 머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삶은 타지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디아스포라'와 비슷하다.사실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었고 그들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 다리 앞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가 철수하면 고향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역대 인천시장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향수병을 달랬다. 하지만 그 약속은 '희망고문'이었다. 미군은 철수했지만 대신 국군 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했다. 이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공원이 들어섰다. 결국, 휴전 후 한국을 지배하던 안보논리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들의 귀향은 번번이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소식이 전해졌다.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인천시의회에서 가결된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통을 돌아보기까지 69년이 걸린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하니 십수년 전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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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골란고원 와인 지면기사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골란고원 이스라엘 주권인정' 포고문 서명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이스라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이은 트럼프의 이런 배려에 5선 도전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가 크게 감동했던 모양이다. 선포식이 끝나자 네타냐후는 "골란고원에서 최상품의 와인을 한 상자 가져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대신 백악관 직원에게 주고 싶다"며 호기를 부렸다.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골란고원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한 건 '포도나무 심기'였다. 1천m 이상 고도, 화산토와 선선한 기후는 포도 재배의 최적지였다. 그때 심은 묘목이 적당하게 자라나자 1983년 '골란고원 와이너리'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곳 와인은 '야르덴' '감라' '골란'이란 상표를 붙여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와인은 최근 국제시장에서 호주 와인과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직 프랑스나 칠레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포도주 제조기법에 최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와인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중이다.하지만 지난 2015년 11월 EU(유럽연합)는 이스라엘 와인에 대해 생산지 라벨 부착을 의무화했다. 무력으로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므로 이 지역 생산 와인을 EU에서 판매할 경우 '메이드인 이스라엘' 대신 해당 정착촌을 산지 라벨로 부착하라는 것이다.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베를린의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이스라엘 와인을 철수시키자 네타냐후까지 나서서 항의하는 등 외교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지금 튀니지에서는 제30차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아랍 정상들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주권을 강조하면서 미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이스라엘 우호 정책을 비난하는 데 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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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도마뱀의 꼬리자르기 지면기사
자절(自切)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처한 동물이 몸의 일부를 스스로 절단해 생명을 유지하려는 현상인데, 척추동물로는 도마뱀이 대표적이다. 도마뱀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꼬리를 잘라내주고 줄행랑 친다. 도마뱀이라면 명칭도 꼬리를 도막 도막내고 도망치는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도마뱀 꼬리에는 절단될 자리인 탈리절이 있고, 탈리절에는 격막이 있어 절단 후에도 출혈을 막아준다. 절단된 꼬리는 약 3분간 꿈틀대며 포식자의 시선을 빼앗고 그 사이 도마뱀 본체는 안전하게 피신한다. 상처가 아물면 1~2주 후 부터 꼬리가 재생된다니 위험회피를 위한 특별한 진화가 신비하다.문제는 도마뱀의 꼬리자르기가 보통 일이 아닌데 있다. 일부 도마뱀은 꼬리에 영양분을 저장하는데 이를 잘라내는 일은 목숨을 건 일이다. 또 꼬리는 재생되지만 뼈는 그렇지 않다. 재생된 꼬리의 형상도 처음과는 다른 이형(異形)이거나 심지어 두개의 꼬리가 생기는 기형(奇形)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꼬리자르기는 단 한번만 가능하다. 도마뱀에게 꼬리자르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딱 한번 결단해야 할 절박한 선택인 셈이다. 함부로 도마뱀을 위협해 꼬리를 자르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최근에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관용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버닝썬 사건에서도 회자되더니, 장관 후보자 2명의 낙마와 관련해 야당의 청와대 비판에서도 인용되고 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하거나 범죄의 몸통을 숨기려 조무래기 희생양을 내세우는 행태를 조롱하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는 도마뱀 꼬리자르기 행태가 너무 빈번해 각 분야에서 정상적인 꼬리 대신 이형과 기형의 재생 꼬리를 가진 도마뱀들이 너무 많아졌다. 일생에 딱한번 목숨걸고 꼬리를 잘라내는 진짜 도마뱀이 억울할 지경이다.도마뱀은 꼬리 뿐 아니라 망가진 심장도 재생한다고 한다. 과학계가 이 신비를 풀어 인간 심장치료에 응용하려 한창 연구중이라 한다. 하지만 이보다 먼저 '도마뱀 꼬리자르기'라는 관용구를 '도마뱀 심장바꾸기'라는 관용구로 대체하면 어떨까 싶다. 일이 벌어지면 도마뱀 꼬리자르는 사회 보다는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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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남경필의 정계 은퇴 선언 지면기사
1985년 4월은 당시 연세대학교 김동길 교수가 발표한 칼럼 '3金 낚시론'으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김 교수 글은 국민의 단일화 염원을 무시하고 대권 욕심에 빠져있던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에게 던지는 충언으로 요지는 "3김 시대는 끝났다"였다. 김 교수는 60대 말 미 대학 최초로 학내에 경찰을 불러 행정관을 점령한 반전 시위대를 진압한 후 "나의 시대는 지났다"는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기고 임기 전 물러 난 하버드대 퓨지 총장을 예로 들었다.김 교수는 이 글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의 기수는 이제 40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썼다. 3김은 은퇴하고 낚시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낚시하기 좋은 낚시터를 소개해 줄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글이 문제가 되자 유신 시대에도 절필하지 않던 김 교수는 붓을 꺾어야 했다. 그 후 김영삼은 대통령이 됐고 김대중도 정계 은퇴를 선언했으나 곧 복귀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3김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역사가들은 나를 쓸 때 첫머리에 '워터게이트사건을 일으킨 대통령'이라고 기술할 것이다"고 불안해했던 닉슨은 정계를 은퇴한 후 고향에서 집필작업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놀라운 혜안으로 현역들보다 더 좋은 글을 쓴다'는 평을 듣던 그는 전직 대통령이라기보다 전기작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이제 그를 떠올릴 때 '사임을 할 때 눈물을 흘린 정치가'라고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가장 멋지게 정계를 떠난 정치인으로는 프랑스의 드골이 꼽힌다. "나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서 기능을 정지하네. 오늘 정오부터 발효야"라며 고향 콜롱베에서 비서실장에게 전화로 은퇴를 선언한 69년의 드골은 '떠날 때를 알고 있던 정치가'였다.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제 젊은 시절을 온전히 바쳤던 정치를 떠난다"며 "깨끗하고 투명하게 벌어,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좋은 일 하며 살겠다"고 적었다. 5선 의원으로 늘 '보수개혁의 리더'로 불렸던 그는 정치적 나이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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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국민연금(國民年金) 지면기사
국민연금이 관리하는 연기금(年基金) 규모는 약 637조원으로 일본,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위다. 국민연금은 국내외 국채를 비롯해 여러 곳에 다양하게 투자한다. 미 월스트리트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고객이다. 물론 국내 주식도 포함된다. 그 액수가 100조원이 넘는다. 이른바 4대 시중 은행인 국민은행, 신한은행, KEB 하나은행의 최대주주도 국민연금이다. 은행장 선임이 정부 입김에 좌우된다는 '관치금융'논란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국가재정과 국민의 삶을 떠받치는 큰 기둥이다. 그래서 변동성이 큰 위험 주식엔 투자하지 않는다. 단기간 수익이 크지 않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즉 50년, 100년 이상 살아남을 기업에 투자한다. 국민 노후자금인 만큼 실패는 절대 금물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10%를 비롯해 KT(12.9%) 포스코(10.72%) 네이버 (9.48%) 현대차(8.27%) 등 우량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업만도 294개다. 그래서 주식 고수들은 초보자에게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을 매입하라"고 조언한다. 국민연금이 버티고 있으니 기업이 망할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서다.한때 국민연금은 경영진에 힘을 보태는 '백기사' 역할을 한 적이 있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인수하려 할 때 신한·하나·산업은행을 앞세워서 이를 방어해 줘 "역시! 국민연금"이란 소리를 들었다. 국민연금은 또 외국인의 대량 매도로 주가가 하락하면 매입에 나서 주가를 안정시키기도 한다. 금융위기를 호되게 겪은 영국이 2010년 '스튜어드 십 코드'를 도입한 것도 주가가 폭락할 때 이를 막아주는 등 기업의 재산을 '집사'처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이 제도를 도입해 지분 보유기업의 임원 선임·해임 등에 관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27일 대한항공 2대 주주 (11.7%)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해 조양호 회장의 대표직을 박탈했다. 기업에 늘 '백기사'였던 국민연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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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책 읽는 부평 지면기사
1998년 미국 시애틀 공공도서관의 사서인 낸시 펄(Nancy Pearl)은 다소 엉뚱한(?) 상상을 했다. "만약 시애틀의 모든 사람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 한 도시의 시민들이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은 이처럼 한 사서의 상상에서 출발했다.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지구촌에 알린 소설은 하퍼 리(Harper Lee)의 '앵무새 죽이기'다. 2011년 시카고 시민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계를 자극한 것이다. 이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잇따르더니 이제는 대표적인 독서운동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낸시 펄의 상상을 담은 'If All of Seattle Read the Same Book'이란 문장은 독서운동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각 도시 이름에 맞게 응용되고 있다.이 운동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2003년이다.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시범도시로 충남 서산시가 선정돼 황선미 동화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시민들이 돌려 읽은 게 최초다. 인천에서는 부평구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부평구와 부평구문화재단은 2012년 '만약에 53만 명의 부평구민이 같은 책을 읽는다면?'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책 읽는 부평' 사업을 시작했다. 첫해의 대표도서는 인문학 도서인 '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김육훈 외)였다. 이어 지난해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정주진)에 이르기까지 모두 7권의 대표도서가 선정됐다. 매년 대표도서를 선정하고 독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는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물론 모든 부평구민이 그해의 대표도서를 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책 읽는 부평' 사업이 독서와 토론문화 형성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평가는 분명하다. 다만 예산 문제로 올해 독후감 공모전 등 일부 사업의 추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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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슈퍼 주총 데이 지면기사
기업들이 한날 한시에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것이 이젠 관행이 됐다. 특정일에 주주총회가 몰리는 날을 뜻하는 '슈퍼주총데이(super 株總day)'라는 용어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지난 2016년 3월 25일엔 무려 818개 기업이 주주총회를 열어 사상 최대라는 기록을 세웠다. '슈퍼주총데이'로 주주의 권리가 침해된다는 비난이 비등하자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한날 한시에 주총이 몰려 있다. 12월 결산 코스피·코스닥 상장법인 2천67개사 중 오늘 328개사가, 29일에는 537개사가 정기 주총을 개최한다. 이렇게 주총을 여는 것은 소액주주의 참여를 막기 위해서다. 한 날에 열리니 여러 기업의 주식을 가진 개미투자가들도 기업 한 곳만 정해서 참석할 수밖에 없다. 20여년 전만 해도 주총은 축제일 같았다. 기업마다 주총을 찾은 소액 투자가들에게 우산, 필기구 등 비록 작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박용진 민주당의원은 기업들의 이런 속 보이는 행위를 막기 위해 '슈퍼 주총 데이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분산해서 주총을 하면 주주들의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취지에서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린 지난 20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소액주주 수천 명이 몰리며 입장이 지연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주총장에 들어서려는 대기 줄이 인근 도로까지 이어지는 등 진풍경도 연출했다.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액주주 친화 정책으로 '전자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전자투표제는 회사가 전자투표시스템에 주주명부, 주주총회 의안 등을 등록하면 주주가 온라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이미 올해 SK하이닉스, 포스코,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재계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세계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가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전자투표제 도입에 따른 부담감도 없지 않다. 대면 없이 온라인상에서 하는 회사 현안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