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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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경인신춘문예 지면기사
'성산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생진이 지난주 38번째 시집 '무연고'를 출간했다. 그는 올해로 90세다. 노시인의 기사를 읽는 중 이 대목에 눈길이 갔다. "나도 시인이 되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이 있었다." 발버둥을 칠 정도로 하고 싶었던 시인(詩人). 하긴 우리도 한때 시인이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밤잠을 설치며 무언가를 끄적였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11월이 오면 그렇게 밤을 꼬박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신춘문예 지망생들이다. 신춘문예 역사는 백 년이 넘었다. 1914년 12월 10일 매일신보 1면을 장식한 '신년문예모집'이 그 시작이다. 1919년 매일신보가 '신년현상공모'를 냈고, 1924년 동아일보, 이 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던 벽초 홍명희가 단편소설, 신시, 가극, 동요, 가정소설, 동화 등 6개 부문에 걸쳐 '현상문예 대모집'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공모했다. 이때 아동 문학가 윤석중(尹石重)과 한정동(韓晶東)이 등용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그 이듬해부터 일간지들이 앞다퉈 신춘문예를 공모하기 시작했다. 문단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자 약속이나 한 듯 신문마다 신춘문예 공고가 게재되고 있다. 경인일보도 '기해년, 문단의 샛별을 찾습니다'는 제목 아래 '201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 사고가 나갔다. 경인 신춘문예는 경인지역 언론사 중 유일한 작가 등용문이다. 1987년 첫 당선자(소설·시·시조)를 배출한 이래 어느덧 서른 해를 넘겼다. 어려움 속에서도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신춘문예가 지속된 것은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경인 신춘문예로 배출된 작가들이 지역 문단은 물론 중앙 문단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물론 신춘문예를 통해야만 큰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이나 문예지, 기성작가의 추천을 받지 않고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도 적지 않다. 지적 문체와 듬직한 역사의식을 가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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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국민투표 지면기사
지난 주말 발표된 두 나라의 국민투표 결과가 화제다. 대만은 지난 24일 실시된 탈원전 폐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자의 59.49%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지에 찬성했다. 이로써 2025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차이잉원 총통의 '원전 없는 나라' 공약은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 발생한 국가적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총통의 꿈을 꺾었다. 그 불똥이 문재인 정부에 튀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롤모델을 잃었고, 탈원전 반대 세력은 뜻밖의 호재에 입이 열렸다.25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는 소의 뿔을 뽑지 않고 그대로 기르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자는 '가축 존엄성 유지' 법안이 거부됐다. 국제법보다 스위스법을 우선하자는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 반면에 보험사기 의심 환자의 사생활을 감시하자는 법안은 승인됐다. 소 뿔 제거·국제법과 국내법의 우선순위·나이롱 환자 감시라는 이질적이고 경중이 달라 보이는 안건을 국민투표에서 똑같은 무게로 다루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정수(精髓), 이를 견학하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대만과 스위스는 헌법과 법률로 국민투표 발의 조건을 쉽게 해 직접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만은 총통선거 유권자수의 0.01%의 서명을 얻은 뒤 다시 선거 유권자수의 1.5%의 서명을 받은 안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번 국민투표에는 10개의 안건이 올랐다. 스위스는 헌법개정 제안은 유권자 10만명, 법안은 유권자 5만명의 요구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올해에만 4번의 국민투표로 10개의 법안중 4건을 승인했다. 국민에게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기본소득법이 국민투표로 거부된 건 2016년의 일이다.물론 직접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다. 스위스와 대만의 정치는 천양지차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대의제도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라마다 정치를 구성하는 전통과 환경이 달라서다. 하지만 입만 열면 국민 여론을 앞세우는 한국정치에서 국민투표 발의권을 대통령에게만 한정하고 있으니 생각해 볼 문제다. 대신 국민과 소통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한답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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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이간계(離間計) 지면기사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大夫) 변장자(卞莊子)는 여관에서 일하는 아이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소고기를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반드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이며, 싸우게 되면 큰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죽은 놈까지 더해 호랑이 두 마리를 단번에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실력이 비슷한 둘을 서로 싸우게 해 둘 다 얻는다는 변장자자호(卞莊子刺虎),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는 여기서 유래됐다. 정치판에는 상대들의 갈등을 조장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계략들이 많다. 이이제이(以夷制夷)도 그렇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이이제이는 이쪽 적을 끌어들여 저쪽 적을 공격하게 하는 분열책이다. '남의 칼(힘)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차도살인계(借刀殺人計)도 모두 상대끼리 의심하게 하여 자중지란을 유발하는 고도의 책략이다. 방휼상쟁(蚌鷸相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일거양득(一擧兩得)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이간계(離間計)의 범주에 포함된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도 '말 몇 마디로 상대를 갈라놓는 이간계가 적을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다.이재명 경기지사는 경선을 앞두고 문심(文心)을 들고 나온 전해철 의원과 갈등을 빚던 지난 1월 15일, 성남시장 신년기자 간담회에서 "전통적으로 전략 중에서 가장 돈 안들고 효과적인 전략이 '이간계' "라며 "내부분열을 야기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다. 이간계 전략에 놀아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하나의 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협력해 나가는 그 중심에 나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 지사가 지난 25일 검찰 출석에 앞서 또 다시 '이간계'를 들고 나왔다. 페이스북에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의 본질을 '이간계'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 지사는 "검찰제출 의견서를 왜곡해 유출하고 언론플레이하며 이간질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이간계를 주도하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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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해안 철책선 철거 지면기사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제작이 발표되자 영화계가 크게 술렁거렸다. 주연을 한국 최고의 배우 장동건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예산 영화에 장동건이 출연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기덕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내가 자청했다.개런티는 중요하지 않다"는 장동건의 말이 더 화제였다. '해안선'은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흥행은 참패했다. 한국 5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한국인의 알 수 없는 영화 취향'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이 영화를 주목했다.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더 관심을 끌었다. 간첩을 잡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해안 초병이 실수로 민간인을 사살한 뒤 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광기와 영혼의 파괴, 나아가 남북 분단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장동건의 광기 연기는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브란도가 보여준 광기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장동건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라 할 정도로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김기덕이 '해안선'에서 주목한 건 '철책선'이다. 철책선은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많이 철거됐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해안가 곳곳에는 '이곳은 군사작전 구역이니 출입을 엄금함'이라고 쓰인 철책선과 경고판이 늘어서 있다. 해안은 아름다운 피서지가 아니라 출입금지 팻말과 철책선 둘러쳐진 분단의 현장이다. 영화는 철책선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극명하게 그려냈다. 국방부가 2021년까지 경기도 해안과 강에 설치된 철책선 107㎞, 인천 도심 해안가를 둘러싸고 있는 철책선 44㎞를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긴 해안선과 연안자원'을 한국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고 어장 및 수자원 관리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 건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였다. 철책선 철거로 해안선이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면 지역경제 발전에 더할 나위 없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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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DJ와 노무현의 현실감각 지면기사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늘 청와대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시키지만, 민주노총은 어제 총파업으로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노총은 이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민노총은 고집불통.(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라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서운하다는 표시이지, 척을 지겠다는 의지는 아니다. 민노총이 오히려 당당하다. '우리 때문에 집권한 것 아니냐'는 채권자의 위세가 대단하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생전에 정치지도자의 덕목으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했다. 현실을 외면한 정치철학의 공허함과, 철학이 없는 현실감각의 천박함을 동시에 경계한 것이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IMF위기를 단숨에 돌파했다. 노동자의 실직과 저임금을 감수한 용단이었다. 이지스함 건조를 시작했고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대북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했다. 재건된 경제와 강화된 안보를 바탕으로 햇볕정책을 밀어붙이고 임기말에 평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그의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론에 의지한 민주주의 통치론과 순결한 도덕성을 리더십의 근간으로 삼았다. 일선 검사들과의 맞짱 토론을 감수할 정도로 여론과 직접 맞섰다. 자신이 틀렸다면 입장을 바꾸는 도덕성의 소유자였다. 대통령 선거 공약과 달리 철도 민영화에 나서고, 기간제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처리했다. 민노총과의 약속과 국가경제를 위한 노동정책을 견준 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DJ정부의 햇볕정책만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서로 구체화했다. DJ의 리더십은 노무현 시대에 이어졌다.문재인 정부의 서생적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구분하는 문제의식은 비판의 수용을 거부한다. 소득주도성장 집착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제의식 밖의 현실은 차갑고 거칠다.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가 등 돌리고, 한미동맹은 흔들리며,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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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네이밍 법안 홍수 지면기사
네이밍(naming)은 '이름 짓기, 이름 붙이다'라는 뜻이다. 새로운 상품이나 회사, 그룹 등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 명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에도 소위 '네이밍 법안'이라고 해서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다. 내용을 알리고 법안 발의자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어 의원들 사이에선 유행이다. '김영란법'을 비롯해 '조두순법' '태완이법' '신해철법' '김광석법' '유병언법' '최진실법' 여기에 '우병우 방지법'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그러나 문제도 있다. 요즘 매일 언론을 장식하는 '박용진 3법'이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고 '신해철법'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 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 범죄수익을 은닉한 제삼자에게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할 수 있게 한 '유병언법' 등이 있지만 이름만으로는 법안 내용을 알아채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듣기 편하고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법안부터 피해자 이름을 붙인 법안, 처벌 대상자 이름을 붙인 법안 그리고 쟁점이 된 인물의 이름을 붙인 법안 등 무분별하게 갖다 붙인 탓이다. 과도한 네이밍의 사용으로 법안의 기본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다.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스물한 살의 젊은이 윤창호 씨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윤창호법'도 그런 경우다. 이 법안 역시 시간이 지나면 네이밍만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차라리 이 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본인이 음주 운전하다 적발돼, 코미디를 방불케 했던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 '이용주법'이라고 했으면 더 이해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모든 법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네이밍 법안의 가치는 제정된 법이 얼마나 타당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시행되느냐에 달려있다.네이밍을 남발하다 보면 진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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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백두칭송위원회 지면기사
백두칭송위원회라니 거창하다. 지난 7일 결성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 단체다. 지난 18일 광화문 집회로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집회는 먼저 회원들이 나서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연설회와 시낭송 등으로 구성된 '꽃물결'이라는 공연으로 구성됐다.대학생 회원들이 주도하는 연설회는 단체 명칭 그대로 김 위원장 칭송 일색이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추진력과 대범함을 갖춘 지도자', '세계 패권국 미국을 제압한 지도자', '천리안의 소유자'이다. 이런 지도자가 성조기와 태극기 부대의 위협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서울을 방문하니 '만세' 부르며 '환영'하자는 논리다. 꽃물결 공연에서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시 '백두칭송'을 낭독했다. 시는 백두산을 칭송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사들이 백두혈통인 김정은을 칭송하는 맥락과 연결하면 백두산이 무엇을 은유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백두칭송위원회의 집회에 분노한 보수단체들은 앙앙불락이지만, 위원회의 염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칭송'이라는 단체명 부터 '지도자'니 '천리안'이니 하는 칭송의 내용이 시대착오적이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평양의 꽃물결이 광화문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낮다. 외국 국가원수 방한 때 마다 환영인파를 만들어냈던 시절을 졸업한지 한세대가 넘은 대한민국이다.법원은 2016년 황 전 부대변인의 북한 찬양·고무·선전 혐의와 이적표현물 게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거니와 상식적인 국민이 넘어갈리도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100여명의 백두칭송위원회가 전국 순회 집회에 나서도, 우리 체제의 주역들이 이들의 비상식과 시대착오를 압도하면 된다.그래서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최근 여권 인사로 부터 평양 재방문 요청을 받은 대기업들이 불편한 표정이다. '가도 되나' 싶은 표정인데 침묵으로 심경을 대신한다. 리선권 냉면발언 사태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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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仁川 떠난 힐만 지면기사
트레이 힐만. 이젠 그에 대한 호칭을 SK 와이번스 '전' 감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천을 떠났으니까. 2년간의 짧은 감독 생활, 힐만은 SK 와이번스에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만 남긴 게 아니다. 2년 동안 힐만은 인천시민과 한국 야구 팬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남겼다. 힐만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힐만은 인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우승은 덤이었을 정도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팬들에게 음식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고, 의리의 배우 김보성 분장으로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소통했다. 일부러 머리를 길러 소아암으로 고통을 받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5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의 학교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 어린이가 한국 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PO 5차전 시구를 맡았던 김진욱 군이다.지난 16일 힐만 감독의 이임식장은 활기에 넘쳤다. '이별의 슬픔'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최항과 정의윤을 불러내 "의리! 의리! 의리!"도 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향해 "오늘부터는 동료가 아닌 우린 친구"라고 말했다. 힐만은 그런 감독이었다. 한·미·일·베네수엘라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힐만은 2년 전 SK 와이번스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야구하는 것보다 선수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선수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힐만은 이렇게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친해졌다. 상대 선발투수를 분석해 타순을 정하는 '데이터 야구' 로 SK를 홈런 군단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화끈한 홈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포스트 시즌 5차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투아웃에서 나온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 한동민의 결승 홈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힐만은 겸손한 감독이었다. 외국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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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박두진 문학관 지면기사
1992년 프랑스에서 로마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이 빗발쳤다. 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르뎅 드 뇌프 드무아젤(아홉아씨 공원)'을 만들어 세계 9개 도시로부터 시인 1명씩 추천받아 9년 동안 모두 81개의 시비를 설치키로 했다.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시인 추천도시로 선정된 안성시는 시인 박두진을 추천해 2001년 6월 21일 시비제막식을 가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 시 '해'의 첫 구절을 한글로, 뒷면에는 불어로 새겨 넣었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두진의 시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라는 시풍을 보여줬다. 청록파로서 순수미와 인간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염원했다. 자연은 청록파 시 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했다고 청록파 시인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박두진의 '해'는 자연만 노래한 게 아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에서 '해'는 암울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시대 저항정신의 표현이다. 박두진의 시에는 어둠,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이를 초월한 희망을 노래했다. 박두진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과 전혀 다르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후기 시에 가서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다.오늘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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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대학수학능력시험 지면기사
오늘 전국 1천190개 시험장에서 59만4천900여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시험문제 풀이로 대학입학 진로가 결정된다.한국사회에서 대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학력중심 사회구조는 대입에 목숨을 거는 교육과정을 잉태했다. 작금의 청소년 세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해 초·중·고 교육과정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대입전사로 봐도 무방하다. 운동장을 버리고 교실과 학원을 전전한 지난한 수련과정이 수능시험장에서 결판난다. 성년 통과의례로는 너무나 치열한 육박전이다.자녀와 공동운명체인 학부모의 심정도 비장하다. 아이가 걷자마자 자녀의 대입 병참기지를 꾸려 온 부모들이다. 대입 병참기지 최상의 조건은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병적인 대입 경쟁을 풍자하는 자조적 농담? 아니다. 누구나 열망하는 환상적인 조건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입수능의 여파는 국민 전체에 미친다.병적인 대입경쟁이 사회의 건강과 연대를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됐다. 역대 정권 모두 이를 고친다고 대입 시험제도와 입학전형에 손대고 고쳐 온게 수십년이다. 하지만 제도를 신설하고 전형을 이리저리 꼬아대도 소용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기민한 대응과 학부모의 호주머니는 언제나 정부의 정책을 압도했다. 최근에는 입시개혁의 근간이던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잇따른 학생부 조작사건, 숙명여고 교무부장 사건의 여파로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정부의 무능한 정책, 사교육 시장의 권위, 부모의 열렬한 후원이 만들어 낸 대입제도의 병리현상 한복판에서 오늘 미래의 동량들이 대입수능 시험지를 풀고 있다. 시험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수험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특히 고사장 주변 소음, 소란은 절대 안된다. 전국의 수험생이 가진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