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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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태국의 國喪 지면기사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의 노래 가사에 '진세잇데 후시기나 모노데스네(인생이란 불가사의한 것이네)'라는 게 있지만 불가사의한 인생도 흔하다. 13일 89세로 서거한 태국 국왕 푸미폰의 재위기간이 장장 70년이었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6살에 즉위한 루이 14세가 72년간 재위였을 뿐 유례를 찾기 어렵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각각 64년과 63년 7개월(現), 일본의 히로히토(裕仁) 왕이 63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61년이었다. 아무튼 푸미폰 태국 왕 별세에 온 나라가 침통에 빠졌고 7천만 국민이 한결같이 흑백 상복 차림인 것도 불가사의하고 한 달간 가무 금지, 오락방송 프로 중단은 물론 복상(服喪) 애도기간을 1년으로 잡은 것도 그렇다. 또 있다. 96세 프렘 추밀원(樞密院) 의장이 후계 왕 즉위까지 섭정을 맡는 것도….푸미폰이 운명한 날 방콕 서부 시리라트 병원 앞과 14일 병원→왕궁 운구 도로변은 온통 상복 인파였고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울었다. 중국은 CCTV(央電) 장젠(張劍)기자 등이 '푸미펑(普密蓬) 국왕은 학식도 풍부하고 다재다예(多才多藝)했다'는 등 태국의 국상(國喪)을 연일 보도했고 일본도 태국 국상 보도에 열성인 이유가 있다. 아키히토(明仁) 왕이 황태자 시절인 1964년 쇼와(昭和) 부왕 대리로 태국을 방문, 푸미폰 국왕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고 1991년 즉위 후에도 첫 외유로 태국에 갔는가 하면 2006년 푸미폰 왕 즉위 60년 식전에도 참렬(參列)한 사이였다. 그래서 아키히토 왕 양 폐하(夫妻)는 푸미폰 복상을 3일간으로 잡았다. 그런데 70년 간 신민(臣民)의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받은 푸미폰 왕의 비결은 무엇일까. 재위 기간은 쿠데타 19번, 개헌 20번의 격동과 혼란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늘 중재자와 해결사였고 7천만 신민의 정신적 지주였다.군왕제 국가가 아직도 43개국이라는 건 시대착오 중 착오다. 그러나 전 국민의 구심점, 자석처럼 심정이 쏠리는 회귀점, 그런 중심 역할의 국왕 존재가치만은 필요하지 않나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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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배터리 폭발 지면기사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배터리가 다됐나 봐요/ 사랑 없인 못살아 정말 나는 못살아…'는 사랑만 중요하다는 노래 같지만 배터리도 중요하다. 청소년 중독증이 심한 스마트 폰부터 배터리 없인 꺼진다. 그런데도 삼성은 스마트 폰의 여타 부품만 중요시하고 배터리 따위는 소수점 이하로 여겼던 건가. 그랬다가 배터리 폭발 노이로제에 걸린 게 뻔하다. 엊그제 일본 신문들은 '사무슨 스마호 갸라쿠시 노토7(삼성 스마트 폰 갤럭시 노트7)의 米國 機內持入(기내지입)이 금지됐다'고 보도했고 중국 언론도 'Note7 停産(생산정지)으로 95억 美元(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전했다. 기기(器機)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배터리다. 배터리가 다 되면 시간(시계)부터 멈추고 배터리가 불량이면 전기자동차나 드론(무인기), 인공지능 로봇도 움직일 수 없다.지구촌을 뒤덮은 게 삼성 광고판이다. 그런 세계 1등 기업이 폭발하지 않는 배터리, 한 번 충전으로 한두 달을 주물러도 다 닳지 않는 배터리를 개발할 순 없나. 그런다면 노벨상 0순위 감인데. 그런데 노래 가사 '사랑의 빳데리(밧데리)'는 일본식 발음이고 미국 발음은 '배러리', 영국식이 '배터리'다. 건전지 또는 축전지라고도 부르고 중국에선 '電池(띠엔츠)'라고도 한다. 프랑스어 '바트리(batterie)'가 뜻이 가장 여러 가지다. ①치고받는 싸움, 난투 ②치는 소리, 두들기는 북소리 ③현악기 퉁기는 소리, 오케스트라 타악기 ④군대의 포좌(砲座) 포열(砲列) 포대(砲臺), 포병중대 ⑤계책 방책 책략 등. 독일어 '바터리(Batterie)'엔 한 벌의 도구나 장치, 많은 병, 죽 늘어선 빈 병이라는 뜻도 있고…. 중국에선 야구를 '봉구(棒球)', 포수를 '접수(接手)'라고 하지만 야구의 투수와 포수가 배터리다. 일본에선 투수와 포수 얘기를 다룬 TV 드라마가 2008년(NHK)에도, 금년 7~9월(후지TV)에도 있었다.만약에 충전할 때가 아니라 생이 땅 구멍 들여다보듯 들여다볼 때 스마트 폰이 폭발한다고 가정해 보라. 또는 새벽 면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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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게릴라 가드닝 지면기사
누가 뭐래도 꽃은 평화, 사랑의 상징이다. 호박꽃이라도 그렇다. 여기 그림 하나가 있다.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시위대. 영국 출신의 '얼굴 없는 거리화가'로 유명한 뱅크시(Banksy)의 대표 벽화다. 그의 그림은 사회 비판적이지만 따뜻하고, 넘치는 위트 때문에 놀라운 메시지 전달력을 갖고 있다."벽화는 싸구려 예술이 아니다. 한밤중에 몰래 작업을 해야 하지만 가장 정직한 예술 중 하나다. 누굴 선동하거나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이것을 전시하기 위해서 그저 동네의 가장 좋은 벽만 있으면 충분하다. 작품을 보기 위해 누구도 입장료를 낼 필요가 없다." 뱅크시의 이 벽화는, 대기업 입사시험 시사문제에 나올 법할 정도로 아직은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용어, 이제 우리가 얘기하려는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주로 쓰인다. 게릴라 가드닝은 남의 땅을 허락을 구하지 않고 불법으로 점유한 뒤, 그곳을 정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말한다. 1973년 뉴욕에서 리즈 크리스티와 그녀의 동료들이 버려진 사유지를 정원으로 만든 게 시초였고, 언론으로부터 '도시를 아름답게 바꾸는 혁명'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뱅크시가 버려진 건물의 벽에 그림을 그리듯, 도심의 버려진 자투리 땅에 '정원'을 꾸미는 것이 게릴라 가드닝이다.버려진 땅에는 어김없이 쓰레기더미가 쌓인다. 갈곳 없는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쓰레기 속에서 꽃이 필 수는 없다. 그곳에 정원을 꾸며 꽃을 심고, 그 꽃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정원을 만드는 행위자들은 여럿이지만 서로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단 이를 주관하는 단체가 날짜와 시간, 장소를 통보하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정원을 만드는 식이다. 게릴라라고 명칭한 건 그런 이유다.수원이 '무서운 도시'로 알려지는데 일조(?)했던 '오원춘 사건'.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던 수원시 지동 주택가에 '꽃밭'이 생겼다. 쓰레기로 가득했던 버려진 공터였다. 그곳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선도대상 청소년들이 지역주민과 함께 꽃과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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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탈북 도미노 지면기사
지난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 주민들은 언제든 한국으로 오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의 권고사(辭)를 들었던가. 러시아의 북한 건설 노동자까지 집단망명 신청을 했다. 북한 해외 노동자는 러시아에만 2만8천명, 전 세계에 5만8천명으로 추산된다지만 드디어 탈북 도미노 조짐인가. 고위급 인사만 해도 1997년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귀순은 예고탄이었다. 지난 7월엔 인민무력부 현역 소장이 비자금 450억원을 갖고 탈북했고 8월엔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10월 들어선 조선노동당 과학교육부 보건1국 소속 의료행정당국자가 가족 동반 탈출했다. 보건1국은 김정은이 이용하는 평양 봉화(烽火)진료소와 남산병원 등에 약품과 의료 기기를 공급하는 부서라는 거다. 김정은의 충격이 클 수밖에….1989년 11월 9일 독일 분단 28년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이 열리자 망치와 곡괭이로 그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서독 청년들을 가리켜 미국 언론은 'creative demolition(창조적 파괴)'이라고 했다. 한반도 DMZ 철조망이 걷히는 날도? 박대통령은 최근 잇단 탈북을 가리켜 '먼저 온 통일'이라고 했다. '통일 마중물'이라는 건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목숨을 건 동독 탈출 난민은 1만500명이었고 장벽이 무너진 후 동→서독 이주민은 72만 명이었다. 1990년대 초 쿠바→미국 난민만도 수십만이었고 내전 중인 시리아는 인구 2천300만 중 420만이 해외 탈출, 760만이 국내 피난 중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는 작년 말 현재 전 세계 해외 탈출 난민과 국내 피난민이 6천만 명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금년 말 보고서엔 탈북 난민 수가 얼마나 추가될 것인가.그런데 통일 독일은 환상곡만이 아닌 둔주곡(fuga)이었고 침울했다. 통독 20년 간 동독에 퍼부은 돈이 1조3천억 유로였다고 2009년 11월 독일 언론이 보도했고 동서독 간 이질감은 아직도 난치(難治) 중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또 박대통령의 탈북 권유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한 독수리 눈초리, 그리고 만화 '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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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미국대선 TV토론 지면기사
9일(현지시각)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미국 대선 2차 TV토론은 사상 최악이었다는 평이다. 뉴욕타임스는 'tense exchanges(거북한 교환)' 정도로 점잖은 평가였지만 워싱턴포스트는 'body language 수준'이었다고 폄하했다. 네티즌 평가도 '저질(low quality)' '사상 최악(worst of worst)' 등 악평이 쏟아졌다. 힐러리와 트럼프 둘 다 저질로 눈뜨고 봐줄 수 없다는 거다. 생중계한 TV도 새삼 바보상자로 확인됐고…. 그러기에 뉴욕의 존 오코너 추기경은 1989년 6월 성 패트릭 성당 연설에서 TV를 '전파 쓰레기의 사막'이라고 매도했다. 하긴 토론이라는 말 자체가 정벌하고 토벌한다는 '칠 토(討)'자다. 영어 debate(토론)도 discussion보다는 격식을 갖춘 점잖은 입씨름이지만 일단 시작했다 하면 argument(시비)와 격한 감정의 dispute가 되고 종내는 쳐부수는 '討論'으로 끝장내기 쉽다. 그러니 그 질적 추락이야 항례(恒例)다.하지만 1960년 9월 26일 닉슨과 케네디의 사상 최초 TV 토론에 쏠린 시청자의 관심은 순수하고도 진지했다. 시카고 CBS에서 열린 토론은 미국의 3대 TV와 라디오로 미 전역에 생중계됐고 시청자는 대체로 닉슨의 우세로 점쳤다. 무명에 가까운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8년간의 부통령 후보로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늙고 초췌해 보이는 닉슨과는 달리 40대 케네디는 젊음이 넘쳐났고 짙은 색 양복에다 시청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설득해 나가 케네디에 시청자 시선은 쏠렸다. 결국 케네디는 노련한 닉슨을 압도했고 그만큼 또 시청자는 감성적이었다. 스웨터 차림의 구수한 땅콩장수 카터가 포드를 누른 것도 TV토론 덕이고 허여멀건 허우대에 부드러운 언변의 배우 출신 레이건을 별 진통 없이 대통령으로 출산시킨 것도 감성적인 TV였다.지난 1월말 갤럽 여론조사에선 30%의 미국인이 '좋은 대통령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는 게 CNN 보도였다. 이제 사상 최악의 2차 TV토론에 이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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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조선로동당 지면기사
노동당이라면 보수당과 함께 영국의 양대 정당이고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도 있다. 하지만 노동당이 조선로동당처럼 인민을 100일 전투다, 천리마 만리마 전투다 뭐다 해서 강제노역에만 내모는 정당은 아니고 엄청난 수해를 당해도 복구를 인민의 맨손에만 맡기지도 않는다. 조선로동당은 또 당 창건기념일 전·후면 꼭 핵실험이나 미사일을 쏴댔고 또 하나 당 창건기념일 전후의 크나큰 과업이 있다. 김일성 부자 동상 제막이다. 올해도 예외 없이 6일 개성 시에서 제막식을 가졌고 1945년 이래 최악의 수해지역에는 얼씬도 않던 북한 고위층이 총집결했다. 동상 키 20m. 7층 건물 높이다. 그런 김 부자 동상을 지난달 23일 수해지역인 양강도(평북과 함남 중간)에, 4월엔 평안남도 등 6개월도 안돼 연거푸 세웠다.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4년간 35개의 김정일 동상과 250여개의 김 부자 동상을 추가, 전체 김 부자 동상이 무려 3만8천여 개라는 거다. 개 고양이도 웃을, 인류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할 망발이다.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82년 방북, 낯을 찡그리며 지적했다. 2만3천개 김일성 동상이 너무 많다고. 그는 '이렇게 동(銅)이 넘칠 정도면 우리 지원은 필요 없는 거 아니냐'고 했다. 역사 속 동상 철거 시리즈를 김정은은 모를 수도 있다. 레닌의 동상이 소련 해체와 함께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광장에서 철거된 건 1990년 3월이었고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의 스탈린 동상도 그해 1월 철거됐다. 공산주의 본고장인 모스크바의 레닌 동상도 그 이듬해 8월 철거됐고 베이징대학의 마오쩌둥(毛澤東) 동상 철거는 그보다 앞선 1988년 4월이었다.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의 동상도 2003년 철거됐고….핵과 미사일, 동상이 김정은의 업적 전부다. 그런 3대 세습 독재가 와해되면 그 많은 동상 철거는 볼만한 역사적 광경일 게다. 그걸 못 보면 여한이 될 거고…. 올해 조선로동당 창건 71주년은 고요히 넘어가는가. 1948년 출범한 미국의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8일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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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지진에 태풍에 지면기사
태풍 이름이 웃긴다. 8일 제주도와 울산 등을 강타한 차바(Chaba)는 맹수도 아닌 태국의 꽃이다. 그런데도 위력은 커 특히 울산 피해가 컸고 경주는 지진에다 태풍까지 당했다. 그런데 지진 피해와 태풍 허리케인 타격을 무참히 당한 나라가 카리브 해의 아이티다. 프랑스어를 쓰는 흑인이 대부분인 아이티의 'Haiti'는 그 나라 토속어로 '산이 많다'는 뜻이듯이 최고봉 라셀 산(2천680m)을 비롯해 2만8천㎢ 땅의 4분의 3이 산지다. 그런데도 허리케인 피해는 크고 지난 5일 상륙한 매슈(Matthew)는 서부 항구도시 제레미(Jeremie)를 강타, 대부분의 주택 지붕을 날리고 벽을 무너뜨렸다. 사망자만 842명. 그 허리케인 이름 Matthew도 맹수나 마귀가 아니라 예수의 12사도 중 한 사람이다. 1537년 영국서 간행된 영어성경 'Matthew's Bible'의 저자 토머스 '매튜'도 '매슈'의 영국식 발음일 뿐이다.중국에선 아이티를 '하이티'로 읽어 '海地(하이띠)'로 표기하지만 아이티는 2010년 대지진 때도 900만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3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균 기온이 27도로 집들이 허술하고 꺼벙한 이유도 있지만 7.0 지진에 거의 다 무너져버렸다. 그 지진 피해 복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판에 또 허리케인 피해를 당한 거다. 설마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매슈의 저주는 아닐 터이고…. 엄청난 위력의 허리케인 카트리나(Katrina)와 리타(Rita)가 2005년 8월 연달아 미국을 덮쳐 1천209명이나 목숨을 잃자 레이 내긴(Ray Nagin) 뉴올리언스 시장은 '신이 미국과 흑인공동체에 확실히 노해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118년 만에 가장 강하다는 이번 허리케인 매슈도 아이티를 거쳐 7일 새벽 미국에 상륙했고 플로리다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4개주가 비상사태를 선포, 피난을 갔지만 그래도 13명이 숨졌다.경주는 지진에 태풍에 피해가 크고 특히 울산은 태풍 피해가 심하지만 전국에서 봉사대가 몰려가는 등 복구 작업이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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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정조대왕 능행차 지면기사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애민(愛民)', 즉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가(史家)들은 세종과 정조를 '백성을 가장 사랑했던 조선의 왕'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세종의 '한글창제'와 정조의 '기록'이야말로 애민사상의 정점이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 싶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매우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로 시작되는 훈민정음 창제 이유는 지금 읽어도 세종의 백성사랑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조선시대 기록문화 백미는 '조선왕조실록'이지만, 의궤(儀軌)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의궤는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남긴 기록이자 일종의 보고서다. 특히 정조 시대의 화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와 1795년 정조 19년, 어머니 혜경궁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맞아 화성과 현륭원에 다녀와서 만든 8일간의 행차 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정조가 얼마나 기록을 사랑했던 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정조는 의궤를 통해 믿지 못할 정도로 세세한 기록을 남겼다. 이는 마치 먼 훗날 이 기록과 맞닥뜨릴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도 이런 멋진 축제를 치렀어!'라고 자랑하는 몸짓으로 보여진다. 그날 그 8일간의 행차는 조선 500년을 통틀어 가장 흥겨웠던 '백성을 위한 축제'였다. 창덕궁과 수원 화성간의 48㎞는 단지 '왕족을 위한 길'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열려 있는 길'이었다. 기록은 말한다. '왕은 여섯째 날 새벽 친히 수원 행궁 신풍루에서 홀아비, 과부, 고아 등 사민 50명과 가난한 사람인 진민 261명에게 쌀을 나눠주고, 오전에 낙남헌에서 노인 384명을 불러 경로잔치를 열었다.'이 장엄했던 축제가 두 세기를 건너 뛰어 기적처럼 우리 앞에 펼쳐진다. 내일과 모레 이틀에 걸쳐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한강을 건넌 뒤 수원 화성행궁에 이르는 전 구간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 행사에 '의궤'의 기록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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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100세 보험 지면기사
'세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을 당장 고쳐야 할 판이다. 70도 드물고 끽해야 80까지 살던 구시대 속담 아닌가. 세계 최고 장수 국가 일본엔 '미쓰고노 타마시이 햐쿠마데(세살 아이 혼 백세까지)'라는 비슷한 속담이 진작부터 있다. 그런데 드디어 100세 보험시대라는 뉴스다. 길어야 80세까지 의료비, 치매 간병비 등을 보장하던 보험상품들이 100세까지로 바뀌고 이미 3분의 1이 그렇다는 거다.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는 '백세인생' 노래가 아니더라도 과시 100세 인생 시대다. 계단 오르기 TV 캠페인에서 '내가 올해 90이야! 나도 오르는데 힘들어? 헤헤'하는 송해 씨만 봐도 80세 보험은 웃기는 거 아닌가. 전국 노래자랑에서 사과덩이를 뭉텅 물어뜯는 걸 봐도 치아도 성한 것 같고 그 많은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걸 보더라도 두뇌도 아직 쌩쌩한 듯싶다. '그가 몇 살까지?'가 세상 노인들의 지대한 관심사다.'Homo hundred'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했던가. 올해 97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건강 또한 놀랍다. 아직도 TV강연 등 1주일에 5번은 강의를 한다는 그의 물 흐르듯 거침없는 어조는 40대 교수 때나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런 두뇌 유지의 비결이 뭘까. 끝없는 독서와 탐구, 연찬(硏鑽) 그거다. 재작년 3월 97세로 세상을 뜬 일본 작가 오니시 교진(大西巨人)도 '巨人' 이름답게 만년까지도 짱짱한 머리로 '심연(深淵)' '축도(縮圖)·잉코도리교(インコ道理敎)'등 작품을 발표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되기도 전인 1980년대 초 농가의 생산청부제(生産請負制) 실시에 큰 공헌을 했던 '농촌 개혁의 아버지' 뚜룬성(杜潤生)이 102세로 취스(去世)한 건 작년 10월이었다. 그는 당 최고 간부의 한 사람인 왕치산(王岐山)도 길러냈고 국가 주석 시진핑도 지방간부 시절 그에게 지도를 청원하기도 했다.100세 보험도 중요하지만 보험금 혜택 없이 떠나는 인생이 낫다. '9988 234'니 '나이야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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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일본인 노벨상 지면기사
올해도 일본인 노벨상이 한국의 기를 팍 죽인다. 3일 생리의학상이 일본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도쿄공업대 영예교수(71)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작년도 생리의학상의 오무라 사토시(大村智) 키타사토(北里)대 특별영예교수와 물리학상의 카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 재작년 물리학상의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 등 3년 연속 노벨상 수상국이 됐고 생리의학상만도 1987년의 도네카와 스스무(利根川進) 매사추세츠 대 교수, 2012년의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대 교수 등 모두 4명이 수상했다. 역대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25명. 한국은 후보설만 떠돌던 노벨문학상도 일본인은 1968년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5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가 받았고…. 한국은 단 한 명 DJ의 평화상조차 문제였다. 평화상이 아닌 '파괴상'이라며 반납해야 한다는 소리가 노르웨이에서도 불거졌다.올해 생리의학상의 공로는 이른바 '오토파지(autophagy)' 현상을 규명한 것이라고 했다. autophagia, autophagy란 인체 세포 속의 손상된 소기관이나 노폐물을 세포 스스로 잡아먹는 현상으로 우리말로는 '자가 포식'이다. 잔뜩 먹는 '飽食'이 아니라 잡아먹는 '捕食'이다. 한글로만 '자가 포식'이라고 하면 飽食으로 오해하기 쉽다. 일본 언론은 '自食作用(자식작용)'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도 정확한 말은 '自家捕食'이다. 어쨌든 일본인의 끈기는 무섭다. 오스미(大隅→큰 모퉁이)교수는 장장 50년 그 연구에만 몰두했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암 등 난치병 치료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는 도쿄의대도 아닌 도쿄공업대 영예교수다. 그 또한 기이하고 작년 생리의학상의 오무라 사토시 교수는 80세였고 재작년 물리학상의 아카사키 교수는 85세였다.왜 선진국인가. 작년까지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347명이고 영국 120, 독일 104, 프랑스가 65명이다. 동양에선 일본이 '유아독존'이다. 일본은 노벨상이 예사가 됐다. 천황 생전퇴위, 북핵실험 등은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