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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자들을 위한 변명 지면기사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예정이란다. 소위 부자로 대표되는 ‘강남과의 전쟁’에서 정부가 판정패한 듯 싶다. 그 와중에서 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명예회장이 부자예찬론을 들고 나왔다. “많이 쓰고 많이 투자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야 황우석 교수 같은 영웅들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매우 당연한 지적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꽃은 자본가들이다. 이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할 때 새로 일자리가 생겨나고 조세수입도 증가할 뿐 아니라 이들이 활발하게 소비활동을 해야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인구경제학의 창시자 로버트 멜더스는 부자 옹호론자로 유명하다. 그는 지주나 자본가 등 부자들을 옥죄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불황일수록 부자들의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지어 경제사상가 헤일 브루너는 졸부예찬론까지 부르짖으며 한술 더 뜬다. 즉 근검절약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보다 부정한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번 자들이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소비한다. 따라서 부의 축적방법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경제발전을 위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석유재벌 록펠러나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벤더빌트 등은 어떤 유형의 부자들인가. 그들은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미국민들로부터 ‘강도귀족’으로 맹비난 받을만큼 천민자본가들의 전형이었다. 포드자동차의 창업주 헨리 포드는 근로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악랄한 경영자였다. 출발부터 자본의 국적성(國籍性)이 무의미했던 미국자본주의의 역사를 고려해볼 때 돈을 어떻게 벌었건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한 무방했던 것이다. 그리고 축적한 부의 일부를 기부 등의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면 그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자본주의를 ‘비열한 자본주의’(crazy capitalism)로 혹평하겠는가. 이런 풍토에서 성장한 제프리 존스에게 한국민들의 반부자정서는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 프로들의 세상을 꿈꾸며··· 지면기사

    얼마전인데요, 초등학교 6학년 아들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햇살 좋은 날 모처럼 부자가 공원을 찾았더랬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던 끝에 화제가 컴퓨터 게임으로 옮아갔지요. 저야 뭐 '너무 게임에 넋놓지 말라'고 상투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았지요. 그런데 이놈이 아비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말을 잘라먹을 심산이었는지 대뜸 “아빠 그런데 정부가 썩었어요” 그러더군요. 참 기도 안차서 “왜냐” 하니 대답이 시원합니다. “우리집 컴퓨터는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데 학교 컴퓨터는 인터넷 한번 접속하려면 친구들하고 한참 놀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인터넷을 클릭하고 지루하게 기다리던 중 컴퓨터 옆구리가 눈에 들어 온 모양입니다. 거기에 문제의 정부 조달 마크, 무궁화 문양에 정부라고 쓰여진 그 마크가 떡하니 붙어있더라 이겁니다. 아차 싶었지요. '아 초등학생 꼬마도 정부를 이렇게 가까이 체감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리곤 곰곰이 생각을 키워보았더니 보통 문제가 아니더군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정부 조달 컴퓨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정부의 '능력'을 판단할테니 말이지요. 속도가 미덕인 디지털 세상에서 학교의 먹통 컴퓨터는 아이들에겐 그 자체로 정부의 아이콘일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체감할 또 다른 먹통 정부가 하나 둘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 미래는 안중에 없는 공교육 현장, 지옥같은 입시부담, 바늘귀 같은 취업문, 적개심이 가득한 사회에 부딪힐 때 마다 이 아이들도 아비 세대와 마찬가지로 먹통 정부를 성토하는 비난쟁이들이 되지 않을까 무섭더군요. 아비 세대와 다름 없는 세대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요사이 이런저런 정책들이 표류하는 모양이 반복되자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습니다. 정부의 뒷배를 봐주어야 할 여당 부터가 아마추어들이 정부를 점거한 모양 난리입니다. 야당은 '그걸 이제 알았느냐'며 생뚱맞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문제입니다. 과거사 청산, 각종 국토균형발전 정책, 부동산투기 대책, 영세사업자 지원 정책

  • 아, 몽골 초원에도 韓流가… 지면기사

    몽골에 가면 두 번 놀란다. 먼저 몽골 가구의 60%가 넘게 사는 전통가옥 게르(ger)에서 황당하면서도 은근히 놀란다. 게르는 원룸이다. 남쪽으로 난 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두 기둥이 버티고 서 있을 뿐 부부 방, 아이 방, 노인 방이 따로 없고 칸막이 구조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은밀한 부부 사랑 실천 공간은 어디서 확보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순진하고 때깔 고운 의문은 전혀 뜻밖의 10배, 100배는 더 순진무구하다 못해 수만 년 원시에 근접한 지독히도 자연스런 답변을 비켜낼 수 없다. 원룸의 “생긴 그대로 누릴 뿐”이라는 아주 태연스런 대답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초원의 말들, 양들의 행위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해발 1천600m의 고원 국가, 한반도 면적의 7배의 땅 중 80%가 넘는 광활한 초원의 밤하늘 아래 섰을 때 가슴 벅차 터지도록 놀란다. 북두칠성을 비롯해 오른쪽의 큰곰, 작은 곰, 기린과 왼쪽의 뱀, 알파카 등 숱한 별들이 저렇게도 커 보이고 유난히 반짝일 수 없다. 금세라도 이마에 쏟아질 것 같지 않은가. 초원의 가을, 청정하기 그지없는 공기 탓인가, 하늘이 그만큼 가까이 내려앉은 1천600m 고원 덕택인가. 달도 몽골의 달은 유달리 크고 밝다.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인구,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평균수명 남자 64세, 여자 67세. 아직 개발 바람, 문명의 광풍이 미치지 못한 자연 환경은 너무나 청정하고 아름답고 인심 또한 어질고 후박(厚朴)하다. 그 몽골 고원, 드넓은 초원까지 우리의 한류(韓流)가 가파른 기세로 타고 오르다니! 국영방송의 ‘욘사마’ 주연 ‘호텔리어(hotelier)’ 방영을 신호로 같은 욘사마 주연의 ‘초련(初戀)’과 역사물 ‘장금이의 맹세’ 등 6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돼 무려 60%의 시청률까지 돌파했다. 민간방송도 ‘겨울 연가’ 등을 방영했고…. 고비사막 가까이 사는 어느 유목민의 6인 가족 중 3녀인 뱐반스렌 양(22)은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좋다. 그런데 때로는 마구 눈물이 난다”면서 한국 배우들의 사진을

  • 녹색 상상력 지면기사

    천수만 갈대밭이 불탔다. 폭죽도 터졌다. 새떼를 쫓기 위해서다. 아니, 이런 '야만'이! 가끔 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경악했다. 녹색과 청정을 꿈꾸는 사람들도 놀랐다. 그러나, 매일 새를 보고 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새보다 인간이 먼저 잖아! 뒤이어 화성 송산 사람들도 머리띠를 묶었다. 시화호 생태자연도 1등급이 웬말이냐! 푸른 5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오래 된 레퍼토리다. 개발이냐, 보전이냐. 좀 지겹다. '보전파'들은 점잖게 나무란다. 이젠 그런 차원 낮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아? '보전파'가 대세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딴동네' 보전이라면 모를까 '내 땅'이 걸리면 상황이 다르다. 우린 어떡하라고?! 우리만 손발 묶고 살라고? 죽기살기로 소리부터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어영부영 하다간 대세에 밀릴 테니까. 크게 보면, 수도권 규제 논란도 이 테두리 안에 있다. 사실, '생태자연도 1등급' 소동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환경부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새로운 규제가 아니다. '국토청정도'를 다시 파악하도록 한 법에 따랐을 뿐이다. 1등급이 된다고 아무 일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절차가 까다로워질 따름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국토를 몽땅 '자유개발경쟁'에 내맡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기업도시', '시화호 개발'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에겐 날벼락이다. 이제야 살림 좀 피나 했더니, 또 묶는다고? 그렇겐 못 한다! 앞뒤 없이 불지르고 시위에 나선 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지역이기주의'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개발망령'에 들씌운 경거망동이라고 나무라도 괜찮은 걸까? 이들은 정녕 '1등급'이 좋은 줄 모르는 바보들일까? 답답하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뚫을 '녹색 상상력'이 절실하다. 환경부는 안이했다. 켜켜이 쌓인 오해와 불신의 두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녹색 희망'과 '개발 욕망'이 얼마만큼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지 외면했다. 1등급 지정이 불러올 파장을 짐작조차 못한 게 틀림없

  • 공직사회의 인재등용 지면기사

    요즘 공무원사회에서는 인사철이란 용어가 따로 없다. 1월과 7월 상·하반기에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다는 의미의 관행적 인사는 관선에서 민선으로 넘어 오면서 용도폐기된지 오래이다. 연공서열식 승진인사와 관례적인 순환인사로는 자치단체들이 직면하고 있는 경쟁의 시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주하는 행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게 기구의 신설과 통폐합은 불가피하고 이에 따른 인사를 시간을 기다려 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인재의 등용과 운용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의 성공 여부는 인재등용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명제는 가장 어려운 리더의 실천 과제이지만 요즘 처럼 경쟁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반드시 실천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세계화와 지식정보화 시대를 맞아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모든 조직이 핵심 인재의 발굴과 육성에 목을 매달고 있는 게 현실이다. 리더의 인사 능력은 인재등용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인재들의 개별적인 능력을 엮어 조직의 힘으로 승화시키는게 더욱 중요하다. 이런 조직의 힘을 바탕으로 조직의 목표를 달성토록 독려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그러자면 안팎에서 분출하는 욕구를 수렴해 한발 앞선 조직의 목표를 설정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능력 또한 리더의 몫이어야 한다. 선출직인 자치단체장 역시 한 지역의 행정조직의 리더로서 마찬가지 인사능력을 요구받는다. 그런데 우리 공직사회는 인사만 실시되면 그 전후로 만만찮은 후유증으로 조직의 균열을 겪고 있으니 문제다. 이는 공직에서 자리를 다투어야 할 공무원들의 과잉경쟁 탓이기도 할테지만 리더인 단체장들의 인사 원칙과 철학의 부재 탓도 크다. 지방자치 실시 이후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됐다가 법망에 걸려 도중하차 하거나, 기사회생했으나 도덕성에 상처입고 초라해진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런데 단체장 본인의 입신양명 과정이 부도덕한 지방자치단체일수록 정실인사와 부당인사 후유증으로 공직사회 전체가 기능마비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 서민만 잡는 주택정책 지면기사

    A씨는 9년 전 서울 강북 변두리에 32평 아파트를 1억2천여만원에 구입, 그곳에 정착했다. 그 동안 강남은 물론 심지어 경기도조차 집값이 크게 올랐다. 그러나 A씨 동네 집값은 게걸음을 지속, 시간이 흐를수록 지역 간 집값 격차는 벌어졌다. 더 늦기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했다. 가장 좋은 대안은 신규분양이었으나 당첨은 고사하고 자녀들 사교육비 때문에 목돈마련이 불가능했다. 대신 그간 푼푼이 모은 약간의 자금과 사채를 빌려 이웃 동(棟)의 19평 아파트 한 채를 구입, 전세를 놓았다. 1가구2주택자가 되었으나 이 또한 잘못된 투자였다. 또 몇 년이 흐른 작년 10월에 다른 변두리지역의 연말입주예정인 재개발아파트 32평을 프리미엄을 주고 계약했다. 가격차가 심해 평수를 늘리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계약 즉시 살고 있는 집을 매물로 내놓았으나 잇단 고강도의 투기대책으로 입질조차 없었다. 사채와 은행 융자를 받아 이사할 아파트의 잔금과 연체료, 취득세 등을 겨우 치렀다. 그리곤 불어나는 이자 등이 부담스러워 살고 있는 집을 헐값에 처분했다. 집을 매물로 내놓은 지 무려 8개월 만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또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10년 가까이 살던 집을 처분해 얻은 양도차익은 겨우 1천500여만원에 불과했으나 1가구 3주택에 해당, 양도차익의 60%를 세금으로 물어야했기 때문이었다. A씨가 1가구 3주택자가 된 기간은 이사할 집 잔금 지불일(금년 2월)부터 살고 있는 집의 처분시점(금년 5월)까지 불과 3개월이었다. 양도세와 그간 동원한 사채이자 등을 정산해보니 A씨가 실제 손에 쥔 돈은 10년 전에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구입할 때 매입비로 지불한 액수보다 적었다. 그 동안 물가가 오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손해를 본 셈이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어떻게 내가 1가구 3주택자란 말인가. 정부가 투기는 못 잡고 서민만 죽이고 있다”며 A씨는 분통을 터뜨린다. A씨는 그래도 낳은 편이다. 집이 제때에 팔리지 않아 경매로 집을 날린 서민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투기꾼들은 초고강도의 투기대책

  • 명분과 타이밍 지면기사

    총리 주재의 수도권발전대책회의에서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총리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이 자리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반발했다. 수도권 규제완화 요구를 이해찬 총리가 '대통령이 시킨다 하더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한 직후다. 건교부 장관은 '경기도만 도냐'고 독설을 내뱉었다.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손 지사를 향해 연일 쌍포를 퍼붓고 있다. (대권에 집착해) 수도권 정책을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이용한다는 거다. 여당 대변인은 손 지사의 최근 행보가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할 낡은 정치행태'라고 몰아쳤다. 총리실은 더 사납다. 이 총리는 '정치 논리의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는 절대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일개 도백(道伯)을 향한 정부·여당의 집요한 공세는 손 지사의 완승을 반증한다. 진 X이 더 말 많고 시끄럽다는 건 다섯살 꼬마들도 다 아는 경험칙이다. 정부·여당이 악악댈수록 괜한 오해를 부르고 손해만 커질 뿐이다. 일부 언론은 '손학규의 한판승'이라고 단정했다. 한나라당도 손 지사의 응원가를 부르고 있다. 겉으로는 '손 지사 구하기' 모양새지만 이 참에 정부와 여당의 경제 실정(失政)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투다. 싸움은 보는 것도 좋지만 슬쩍 끼어들어 어느 한쪽을 죽쑤게 만드는 게 갑절 재미나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4·30 재보선의 압승으로 거둬들인 여소야대의 전리품을 써 먹지 못해 근질근질하던 참이다. 자리를 박찬 무례(無禮)와 파격(破格)이 오히려 빛을 발한 건 명분과 타이밍이다. '(수도권내 외국기업의 투자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 총리의 말은 정부가 정부 방침을 스스로 번복한 꼴인 어처구니 없는 완착이다. 경기도와 산자부는 이미 외투기업 유치에 대해 잠정 합의한 상태였다. '수도권 이용하기'라는 정부·여당의 폄훼에도 불구, 정작 손 지사의 손을 들어준 건 정부 일각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다. 일부 여당의원은 아예 수도권 정비법의 전면 손질을 들고 나왔다. 해괴하게도 야당 도지사를 편드는 여권의 반란은

  • 위기라면 위기로 인식해야··· 지면기사

    지금 한반도는 위기인 모양이다. 우리 정부나 여야 정당 누구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없으니 '그런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위기의 정보는 주로 외부에서 유입되고 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같이 끔직한 전망이요 비관적인 예측들이다.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을 보도하는 외신의 경고가 봇물을 이루더니, 급기야 미국 네오콘과 앙숙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엘바라데이 사무총장도 북한이 이미 6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기의 실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급한 정상외교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나치의 침공을 몰아낸 러시아의 전승기념행사에 참석한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한반도에서의 미-북 충돌 위기 해소에 집중돼있으니 아이러니다. 북한을 6자회담의 우리에 몰아넣기 위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따로 만나 협조를 간절히 요청했다. 다음달엔 미국과 일본을 연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안전보장이 그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사태해결을 위한 전개과정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무력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 제재를 주장해 온 마당에 최근에는 중국까지 대북 압력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6자 중 3강의 국제공조는 어떻게든 북한이 핵을 포기토록 하자는 것이니 러시아 또한 이같은 움직임에 역행하기 힘들것이다. 사실 미·일·중·러 4개국은 북한이 원시적인 핵무기 몇개를 보유한다해도 그들의 안보와는 무관하다. 북한이 핵무기 몇개로 이들과 전쟁을 할리 없을테니 그렇다. 문제는 북한의 핵무장에 한반도가 볼모로 잡힌다는 점이고 이는 동북아 전체의 긴장고조와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있다. 동북아의 긴장이 자국 이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6자회담의 틀을 꾸린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이 결렬된다면 이들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즉 선택할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북한 또한 핵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주도국이다. 그것이 핵무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유효한 외교카드임에 분명하다. 우리 입장이 갑갑한 이유가 여기에

  • 85억8천993만4천592 지면기사

    2020년 세계 인구 추계치가 아니다. 어느 고위층 인사의 재산공개 액수도 아니고 어느 소기업의 작년 판매고도 아니다. 이 숫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체 없이 직고(直告)하기 전에 철학적 질문부터 던져 보자.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닌 인간은 부모라는 두 핏줄을 타고 고이 지상에 던져진다. 그런데 부모라는 두 핏줄은 조부모와 외조부모 핏줄로부터 연결되고 이들 4인은 또 증조부모와 외증조부모 8인의 핏줄을 타고 내린다. 그래서 8→16→32→64→128…의 끝없는 배수의 핏줄로 불어난다. 이렇게 33대 조상까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까마득한 역 피라미드, 거대한 역삼각형 조상탑이 하늘을 뚫을 듯 뻗쳐 올라간 형상을 자신의 머리 위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33대까지의 자기 조상 수가 무려 85억8천993만4천592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 인구 육십 몇 억을 비교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쳐도 33대 조상까지는 990년 전에 불과하고 옛날처럼 한 세대를 20년으로 치면 660년 전, 겨우 고려 말 그 시절이다. 그러니 예수, 공자, 석가모니 시대까지의 자기 조상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것인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몇 억, 몇 조분의 1 확률로 귀하고 귀하게 세상에 온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들숨 날숨 숨을 쉬고 있는 존재만으로도, 가슴 속에 시뻘건 염통 피 샘이 솟구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늘과 땅에 감사해야 하고 길가의 한 송이 꽃, 발끝에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벌레 하나에도 엎드려 절을 하도록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야 자신이라는 인간 존재, 생명의 핏줄을 이어내린 몇 조, 몇 십조의 조상이 일제히 하강하고 솟구쳐 “맞아 맞아” 동의의 박수를 보내줄 게 아닌가. 그럼 이토록 귀하디귀한 인간의 값어치를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되는 것인가. 육신분석학자, 사체분석학자로 유명한 뉴욕대의 바인더박사가 몸무게 70㎏정도 어른의 육신을 화학적 물질로 분류, 분석했다.

  • 장애우가 주인인 복지정책 지면기사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사회 곳곳에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행사가 나름대로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물론 하루만이라도 몸이 불편한 이들이 즐거운 마음을 갖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에서 일게다. 다채로운 행사에 장애를 가진 불우 이웃이 혹시 소외되고 외면당해 더욱 쓸쓸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나 않는지 되돌아 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사람이 살아가며 신체적 장애를 갖는 것은 개인으로 볼때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천적 장애도 있을 수가 있고 뒤늦은 질병과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한 장애도 있다. 이는 장애가 선택불가능할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고 불시에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장애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셈으로 복지정책의 우선이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데 문제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에 '대한민국에 장애인 인권은 없다'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84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벌써 4년째 정부의 기념행사를 거부하고 있다. 거듭되는 장애인 차별정책을 비난하며 '차별철폐공동투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말로만 차별금지를 외칠 뿐 차별해소를 위한 사회복지 정책의 부재가 장애우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넘어 2만달러 소득을 지향하는 현실이고 보면 최소한 선진국 기준에 부응하는 장애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40%가 이동권에 제약을 받아 스스로가 사회적응을 못하는 실정이며 70%가 넘는 장애인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50% 이상의 장애인은 초등학교 학력 이하라는 수치에 이르면 빛나는 복지구호 바로 밑 어둠속에서 소외된 장애우의 현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정도라면 복지정책이 실현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그동안의 경제성장의 혜택으로 장애인복지도 많이 나아졌을 것이란 비장애인의 판단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발생한 오판일 뿐이다. 여전히 도시는 장애인의 이동을 막는 '턱'으로 즐비하고 중증장애인은 활동력 차단으로 최소한의 생활보장이 안된다며 몸을 던져 항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