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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과 지율스님 지면기사
인간과 자연, 자연과 개발은 영원한 화두다. 인간의 삶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자연이 파괴되서는 안되고 개발 또한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에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상 자연과 개발이라는 화두는 늘 우리를 괴롭힌다. 하지만 자연의 논리는 개발의 논리와 대부분 수평선을 긋고 결국에는 개발의 논리에 밀리고 만다. 그러나 이번에는 만만치 않다. 천성산 지킴이 지율스님이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하면서 전 국민의 눈과 귀가 다시 천성상에 쏠리고 있다. 부산 금정산과 양산 천성산에 건설되고 있는 경부고속철도 터널공사를 반대해 목숨을 건 단식을 이어가는 지율스님은 환경의 문제를 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천성산대책위와 천성산을 위한 시민·종교단체는 “천성산과 도룡뇽은 단순히 환경문제의 화두가 아니라 경제발전에만 매진해온 결과 삭막해져 가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생명의 화두이며, 비도덕 비양심 부패라는 총체적 문제제기의 화두로서,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지키려는 지율스님의 진실이 무엇인지 바로 보자”고 호소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지율스님의 단식에만 말초적 관심을 쏟을 뿐, 스님이 목숨을 내놓고 전하려 메시지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천성산 터널공사 중단을 찬성하는 네티즌들도 “ 지율의 죽음을 건 단식은 우리사회에 자연과 생명의 존중성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각심도 울려주었고 도룡뇽 같은 하찮은 미물에 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며, 스님의 단식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소홀히 대했던 자연에 대한 귀중함을 일깨우는 함축의 메시지라고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여론도 꽤많다. 단식이 가져온 역풍으로 유명 포탈사이트에 오른 글을 보면, 지율스님을 비난하는 내용이 지상에 옮기지 못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환경운동과 환경운동단체를 비난하는 부정적 여론까지 눈에 띤다. 토론도 뜨겁다. 한 토론자 경우 “지율의 외침은 분명 청명한 것이다. 도룡뇽 같은 미물의 생명까지 중하게 여기는, 그의 불제자로서의 종교적 신념은 훌륭하고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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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피로증후군 지면기사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입각을 두고 열린 우리당이 한바탕 내홍을 겪었다. 한나라당도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여당과 죽기살기 식으로 일전을 불사하고 있는 야당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정부와 여당에 흠집을 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겠으나 유 의원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혹은 ‘노 지킴이’ 등의 닉네임이 붙을 만큼 한나라당에 많은 상처를 준 장본인일 뿐 아니라 그의 개혁성향이 비위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문제는 일반 국민들도 유 의원의 입각에 대해 별로 인 듯 하다. 일전에 모 일간지가 지난 1·2 개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가 이번 개각이 잘못되었다고 답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인사로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직 내정을 꼽았다. 불과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유 의원이 워낙 튀는 발언을 자주 하는 인사이다 보니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론조사결과를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의 개혁적 성향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싶다.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선거 때만 되면 선량 후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을 외쳐댔다.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정략적 차원에서 차별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내세우는 개혁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고 개혁강도도 더욱 심해졌는데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이후부터 특히 심해졌다.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지배구조 개선과 빅 딜, 벤처, 글로벌 스탠더드 등 생경한 신조어들이 속출했다. 내수진작을 위해 1가구 다주택 보유를 권장하고 카드 돌려 막기도 기승을 부렸다.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란 엄청난 충격의 와중에 출범한 탓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강도는 물론 그 파장도 클 수밖에 없었다.강도 높은 개혁 무드는 노무현 정권에서 절정에 달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빌미로 부동산부자들을 옥죄었으며 카드 돌려 막기도 금지했다.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를 표방한다며 성매매 금지법 제정, 접대비 실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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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홀로 가기 행보 지면기사
노무현 대통령이 1·2개각을 통해 유시민, 이종석이라는 양날개를 달았다. 두 사람의 입각을 반대하는 당론과 여론을 단칼에 잘라내는 결단을 통해서다. 그 이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됐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핫바지로 여긴다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대통령이 제안한 만찬을 걷어차버린데서 분노의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와대는 한 발 더 나아가 유시민 의원의 입각이 차세대지도자 육성 차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동영, 김근태 의원의 경쟁양상으로 전개중인 여권의 차기 구도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이에대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육성'이라는 표현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반발중이다.이런 양상이라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앞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긴장의 이완과 고조를 반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런 상황을 노 대통령이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에게 여당은 집권의 동반이자 정권유지의 토대이다. 갈등이 예상되면 당연히 겉으로나마 봉합하는 것이 상식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이같은 상식의 전복 탓이다. 아무리 인상주의적 비판이라지만, 동료의원들 대부분이 “유시민은 안된다”고 하는 판에, 당론 수렴 절차를 밟을 듯 하다가, 유시민 입각을 강행한 것은 통상적인 정치관행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당정회의 석상에서 국무총리와 동급인 당의장을 산자부 장관으로 차출한 것도 또한 노무현식 상식파괴로 여겨 넘어가기엔 의미심장한 복선이 느껴져 개운치 않다.그렇다면 대통령이 집권여당과의 상식적인 관계를 파괴하면서 까지 획득하려는 정치적 실익이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이미 실행된 개각과 발표된 청와대의 차세대 육성론에 담겨있다. 즉 대통령은 임기 후반의 국정과 정국에서 결코 자신이 소외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정권의 핵심적인 현안인 사회개혁과 대북관계 진전은 임기 내내 자신의 철학과 의지대로 관철할 것임을, 차기 대선 구도 또한 자신이 관리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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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과 피칭의 ‘한국號’ 지면기사
‘롤링(rolling)’이라고 하면 영국의 록 그룹 ‘롤링 스톤(구르는 돌)’이나 미국의 대중잡지 ‘롤링 스톤’ 또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롤링’부터 떠올릴 두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피칭(pitching)’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십중팔구 박찬호나 김병현의 내리꽂기 식 아니면 올려 꽂기 식 야구공 던지기 피칭이나 동전 던지기 피칭, 으리으리한 빌딩 로비의 대리석 포석(鋪石)―돌바닥 등의 피칭부터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항해하는 마도로스에겐 롤링과 피칭이 전혀 다른 뜻이다. 뱃사람에게 ‘롤링’이라면 파도에 의한 배의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상하 요동이다. 웬만한 파도에 의한 배의 롤링과 피칭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과 만원 승객의 극렬한 편 가르기 싸움과 심한 쏠림에 의한 롤링과 피칭이 격심하다면 어떻게 될까. 침몰은 시간 문제다. 2006년의 닻을 방금 올린 배 ‘한국호’는 롤링과 피칭이 너무나 심하다. 롤링은 좌우 이념 대결에 의한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에 의한 상하 요동이다. 이 격심한 동요에 시 시크―멀미를 일으킨 나이든 세대, 지각 있는 얼굴은 노랗게 질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선상엔 멀미약을 판다는 간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얼마만 더 항진하면 멀미약을 줄 수 있다든지 없다든지 그런 기색, 기미조차 없다. 더욱 불안한 건 항로와 중간 기항지, 그리고 종착 항이다. ‘한국호’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12월 로마 교황청은 한국을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항로가 불분명한 위험한 논스톱 항진이 ‘한국호’라는 한국 평론이다. ‘대한제국호’는 1910년 일제의 파고에 의해 침몰했고 영국의 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는 그 2년 뒤 북대서양 빙산을 들이받아 가라앉았다. 이쯤에서 불길하게도 영화 ‘타이태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 노파가 침몰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떠올라 지울 수 없이 괴로운 까닭은 무엇인가. 두 번 다시 ‘한국호’ 침몰은 없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호’ 선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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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뒤따라올 시간 지면기사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이따금 멈춰선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달려온 방향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미처 뒤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의 속도로 살지 못해 안달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쉽고 정곡을 찌르는 예화가 있을까. 고속철도처럼 달려온 한 해 끄트머리다. 한 과학자가 숨가쁘게 질주했다. 영혼이 뒤따라올 시간이 없었다. “3개면 어떻고, 1개면 어떻습니까. 또 1년이 늦어진들 어떻습니까.” 아쉽게도 그의 고백은 너무 늦었다. 그는 진작 멈춰섰어야 했다. 욕심을 다스리며 영혼이 함께 갈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대중은 그의 속도에 열광했다. 내달리는 선두를 좇아 미친 듯 달리는 들소떼처럼 그 뒤를 따랐다. 질주의 종착점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쓰디쓴 환멸이다. 우리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괴로운 연말이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달력조차 바꾸었다. 1년 365일을 30일 단위 12개월로 나누었다. 자연의 시간을 이성의 달력으로 규율하려는 시도였다. 30×12를 하면 360이 되고 닷새가 남는다. 혁명정부는 이 남는 5일을 축제의 기간으로 선포했다. 이들의 규정에 의하면 닷새는 달력에 없는 시간이다. 혁명력의 발상을 적용하면, 12월27일부터 31일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날들'이다. (물론, 혁명력은 9월22일을 1월(방데미에르·포도의 달)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사 시간에 배웠던 이 달력이 뜬금없이 떠오른 것은 차라리 이 날들이 없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 때문이다. 자연조차 이성으로 재편하려던 혁명주체들의 과욕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리던 인디언들의 겸손을 어찌 비교하랴만,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달력에서 이 날들을 비워버리고 지나온 시간 어디쯤인가에서 허위허위 나를 따라오고 있는 영혼을 기다린다면 이 또한 혁명적 발상일 터이다. 시간의 화살표는 늘 한 방향으로 흐른다. 거꾸로 뒤집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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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만 배불린 교육용전기료 인하 지면기사
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초, 중, 고교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학교가 춥다고 호소했다. 어린 자녀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에 시달리는 것만 해도 안쓰러운데 추위 때문에 2중의 고통을 받아야만 했으니 학부모들의 불만도 비등했다. 원인은 학교측의 과도한 전기료 부담 때문이었다. 학교운영비에서 에너지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확대되자 각급 학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당국에 교육용 전기료 인하를 하소연했으나 유야무야 넘겨왔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추위가 닥치면서 이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내수부진으로 코너에 몰린 정부와 여당입장에서는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선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차제에 정부와 여당은 전격적으로 교육용 전기료를 16.2%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높다. 한국전력은 이번에 교육용 전력요금을 크게 낮추는 대신 산업용과 가로등 전력요금을 각각 2.8%와 2.5%씩 인상했다. 동시에 주택용과 일반용 전력요금도 각각 1.8%와 1.9%씩 인상했다. 인상이유는 잘 확인되지 않으나 고유가에 대비, 에너지절약차원의 명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학교의 난방비 부담이 기업과 가계로 전가되었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내수부진으로 가계소득이 4년째 제자리걸음중인 상황에서 교실의 추위가 서민들 가정으로 옮겨갈 것이 자명하다. 또한 기업들은 가뜩이나 고유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터에 산업용과 일반용 전력요금까지 한꺼번에 인상됨으로써 국산품의 수출경쟁력 하락은 물론 내년도 공공요금 인상과 물가불안은 불문가지이다. 반면에 이번 전력요금 조정으로 한전은 아무런 공도 들이지 않고 막대한 어부지리를 얻었다. 필자가 작년도 한전의 종별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번 전력요금조정에 따른 매출액 증감을 추정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교육용 전기료 16.2% 인하로 내년도 한전의 매출액은 544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전은 산업용 2.8%인상으로 2,803억원을, 가로등 2.5% 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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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이 준동하는 위기 지면기사
동서고금, 권력을 둘러싼 인간의 불행은 끝이 없다. 권력의 이중성 때문이다. 권력은 쟁취의 대상이자 분배의 대상이다. 권력은 인간 집단을 소유자와 위임자로 구분하는 힘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권력은 대중으로 부터 나오지만 반드시 대중의 이익으로 귀속되지 않는다. 오히려 절대권력자나 소수집단의 이익 실현에 기여하기 쉽다. 권력의 이런 속성 때문에 권력의 담론이나 행위는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이나 인본적 규범인 인륜을 초월하기 쉽다.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이 선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며 정치권력을 초월적으로 정의한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진의와는 거리가 멀다. 또 브루투스가 자신을 아들 처럼 아꼈던 카이사르의 등 뒤에 단검을 꽂은 패륜도, '공화정의 단검이 제정의 심장을 찌른' 권력 행위로 치환하면 역사상 주목할만 한 사건이 된다.아무튼 인류는 권력의 폐해로 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권력 담론을 진화시켜왔고, 그 결과 권력의 주인 자리에 국민, 시민으로 일컬어지는 대중을 세운게 불과 2~3세기 전의 일이다. 즉 대중이 위임하고 인정한 권한과 권위로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권력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막론하고 권력이 대의(代議)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권력 담론의 형식적 진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세기, 대중이 행복했던 시절은 드물다. 권력의 모태를 총칼로 규정한 수많은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대중에게 무자비한 권력을 휘둘렀다. '나폴레옹'이 동물농장의 동물들을 교묘하게 배신했듯이, 공산주의는 권력이 대중을 가장 극적으로 배신한 경우일 것이다.그러면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고, 대중의 권력 선택의 범위와 자유가 그 어느 때 보다 신장된 지금 대중은 권력의 봉사를 받으며 행복한가. 불행하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특히 우리 사회로 범위를 좁히면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권한과 권위 없는 권력과 권력집단이 너무 많아서다. 대중의 저항을 받았던 정권의 정보권력기관은 대중의 지지로 선택된 정권 아래에서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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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개론’을 가르치자 지면기사
누구나 죽는다. 탄생 순간 운명의 시계는 이미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냉혹한 시간 사슬에 굴비처럼 엮인 채 스크럼을 짜고 죽음의 피안을 향해 일제히 행진하고 있는 게 우리 인간이다. 그런데도 모두들 죽음을 잊고 산다. 가족과 이웃, 절친한 친구와 친지, 존경하는 이의 죽음으로 일시 오열에 무너져도, 그래서 잠시나마 이마까지 찬 허무의 늪에 잠긴 채 무상(無常)의 눈금을 논하면서도 돌아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까맣게 망각한다. ‘80년, 90년 AS’의 염라대왕 보증서를 받은 바도 없거늘 자신의 죽음만은 까마득한 훗날 일로만 여기기 때문인가. 죽음=영원한 종장(終章), 다시없는 끝이다. 영어에선 왜 하필이면 총인지는 몰라도 방아쇠 자물쇠(lock)도 개머리판(stock)도 총신(barrel)도 ‘깡그리’ 두고 떠나는 게 죽음이다. 사자(死者)의 유일한 패션인 수의엔 아무리 뜯어봐도 주머니 하나 없다. 동전 한 개 달랑 넣을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절한 진리를 잊고 욕심을 불태운다. 죽어 태워지면 한 줌의 재로, 땅에 묻히면 한 움큼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숨이 멎어 하루만 지나면 생선처럼 부패한다는 건 차마 알려 하질 않는다. 땅에 묻히면 벌레의 공격(충렴→蟲廉)을 받고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에 휘감겨(목렴→木廉) 묶이고 스며든 물에 잠기는(수렴→水廉) 등 무참히 당하는데도 그렇다. 납골당 골분 단지도 영락없이 개미떼 등 벌레가 우글거린다. 언제 자신이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985년 3월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언론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은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사년월일(死年月日) 순위가 적힌 염라대왕의 호출수첩이라도 들여다본 건 아닐 것이다. 만약에 단 한 달과 1주일, 단 하루 앞의 죽음이라도 예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시간의 삶은 일생 중 가장 엄숙하고 겸허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될 것이다. 논어 말씀에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하면 그 말씀이 착해진다(人之將死其言也善)’고 했던가. 말뿐 아니라 행작(行作)도 착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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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 하실 분들께 지면기사
정신 없으시지요? 당내 경선 준비하랴, 바닥표 다지랴, 그럴듯한 공약 개발하랴…. 좀 바쁘시겠습니까? 신문에 실린 여러분들 사진을 뵈니 그런 걱정부터 들더군요. 무명의 설움 때문에 얼굴조차 못 실린 분들도 숨가쁘기는 마찬가지일 테지요. 경기도지사 자리가 그리 호락호락 수중에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대체로 알만한 분들이더군요. 한 분 한 분 짚어가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분이 정말 도지사 감일까. 경력과 경륜과 이미지와 소문까지 떠올려 보면서 말입니다. 글쎄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분도 있고, 더 깊이 따져봐야겠다는 분들이 대부분이더군요. 정확한 정보가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면 나아질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경기도지사가 되어야 할 이유'를 100가지 씩은 내놓으실 테니까. 왜 벌써부터 난리냐고 너무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이런 게 유권자의 권리이고 재미 아니겠습니까. 무례를 무릅쓰고 공개편지를 쓰게 된 까닭을 먼저 털어놓아야 하겠군요. 진작부터 가지고 있던 노파심에서 어줍잖은 조언 한마디 드릴까 해서입니다. 설마 필요없다고 한마디로 딱 자르시지는 않겠지요.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만 이왕 시작한 거 속시원히 말씀이나 드리지요. 받아들이시고 말고는 자유니까요. 질문 하나 드리지요. 혹시 경기도지사가 더 큰 자리로 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가요? 툭 까놓고 말해서, '경기도백은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 또는 징검다리'라는 속설을 믿으시냐는 것입니다. 대답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제 좁은 소견으로는 행여 그런 마음이 있으시더라도 겉으로 표현하시지는 않는 게 대단히 좋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저 명제는 검증된 적이 없지요. 징검다리 삼으려다 낙마하신 분이 한 분(두 분?) 계시고, 앞으로 도전하실 분이 있으므로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직은 진위가 판명나지 않은 명제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겁니다. 물론, 정치인이 더 큰 꿈을 꾸는 건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야망도 없이 한 자리 해보겠다고 나서는 쪽이 잘못일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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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역, 다시 살려내야 한다 지면기사
경부고속철도 광명역이 시끄럽다. 당초 고속철 시발역에서 정차역으로 바뀐 광명역이 활로를 모색하기도 전에 한국철도공사가 영등포역을 정차역으로 만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광명역은 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판이다. 광명역을 지역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던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 입장에서는 시발역에서 정차역으로, 정차역에서 사실상 역폐쇄로 이어지는 철도공사의 조치를 순순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광명역은 기대반 우려반속에 출발했다. 고속철도 시발역으로 4천68억원을 들여 일직동 일대 26만4천㎡에 지하2~층 연면적 7만4천400㎡규모로 건립됐다. 이정도 규모의 시발역이면 역세권 형성을 통한 지역발전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돌연 시발역이 서울역과 용산역으로 바뀌고 광명역은 정차역으로 변경됐다. 영등포 구로 강서구 등 서울 남부권과 수원 성남 부천 등 경기 서남부권, 인천 등 1천400만명에 달하는 수요만으로도 충분히 역사 유지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부의 계산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전철이나 국철이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버스와 택시만을 이용해야 하는 승객들이 광명역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승객 수요가 예상에 훨씬 못미치자 적자운영을 걱정하게 됐고, 개통하자 마자 이곳을 경유하던 시외 공항버스 마저 운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연계교통 시스템도 마련하지 않은 채 1천400만명의 인구가 광명역을 이용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 철도공사의 예측은 그야말로 탁상행정의 전형이었다. 즉 광명역은 처음부터 대책없이 세워진 건조물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건조물에 지역과 주민들의 꿈이 걸려 있던 점이다. 주민들이 광명역을 당초의 건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철도공사에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끓는 물에 불을 지핀 것은 한국철도공사 이철 사장이다. 이 사장은 10조원의 부채 해결을 위해선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연 420억원의 적자가 쌓이고 있는 광명역도 예외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광명역의 정상화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뿐 아니라 당초 계획된 역세권 개발, 경전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