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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 연금과의 전쟁 지면기사
미국이 연금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진원지는 자동차산업이다. GM(제너럴 모터스)은 1999년 델파이를 분사하면서 2007년 이전에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이 회사 퇴직자들의 의료 및 연금불입을 떠안기로 했는데 최근 델파이가 경영난에 직면하면서 GM의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와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같은 상황에 직면, 자동차제국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고유가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유나이티드항공이 근로자에 대한 기업연금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비슷한 처지의 기업들이 동조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부시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복지천국인 유럽에서도 연금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지난달 독일 사민당은 연금혜택을 줄이는 내용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가 텃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EU) 헌법이 부결된 것도 연금 개혁 등 복지축소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금수령액이 퇴직 전 임금의 90%를 상회하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조기퇴직하려는 사람들이 쇄도하는 등 도덕적 해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눈에 띄게 둔화하는 반면에 고령자수가 급증, 연금재원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연금은 탈도 많고 말도 많다. 재원의 조기고갈을 우려한 정부가 연금급여액을 삭감하려 하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여타 연금들과의 형평성시비도 잦아지고 있다. 새로 손질한 기업연금도 노사 양측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도 손을 볼 모양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틈날 때마다 특수직역연금의 수술을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 및 진보진영의 전사(戰士)들이 특수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혜택이 상대적으로 매우 클 뿐 아니라 해마다 막대한 국민혈세를 쏟아부어 보전해 주는 등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로 하여금 특수연금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공무원,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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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신(神)이냐" 지면기사
10.26 재선거에서 완해한 여권의 내부투쟁이 자못 살벌하다. 올 봄 4.30 재·보선에 이어 이번 재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당 공천 후보 중 단 한명도 건지지 못했다. 이처럼 지독한 민심 이반 현상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이니 말과 행동에 체면을 가릴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책임론의 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 있으니 더욱 그렇다. 여권의 내부 투쟁을 살펴보면 오래 묵은 갈등의 뿌리가 드러난다. “대통령이 신(神)이냐”는 문학진 의원의 일갈이 이를 증명한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구사하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한 수사이자 누가 들어도 막말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권위의 해체를 강조해 온 사람 아닌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검사들과 설전을 벌이고 직접 국민에게 밤새워 편지를 쓰는 대통령이다. 오히려 대통령의 위엄을 요구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마당이다. 문 의원이 이를 모를리 없다. 그렇다면 그의 일갈은 무의식의 발로라기 보다는 전후 맥락을 따져서 살펴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 신이냐”고 대들기에 이른데는 그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소외와 좌절, 체념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부분이 17대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 역풍에 편승해 당선된 사람들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채무를 안고 정치를 시작한 셈이다. 채무자가 당당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날마다 접하는 민심을 애써 외면한 채 동의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맞추어 행군에 행군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의제를 선취하고 명분을 장악하는 대통령의 탁월한 능력은 야당의 비판 뿐 아니라 여당 내부의 이견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돌아선 민심과 대통령의 개혁행보 사이에서 겪었을 심적 스트레스는 대단했을테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정치적 스트레스가 “대통령이 신이냐”는 말로 폭발했을 것이다. 결국 여권의 장래는 민생파와 친노개혁파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로 결정될 듯 싶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흉중의 원성을 쏟아 낸 민생파는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니 차기 대선주자를 앞세워 용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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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와 호금도 지면기사
지난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Ⅱ)가 승하하자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은 연일 ‘팝 잔 폴 세컨’을 연발했다.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같은 폴란드 사람인 레흐 바웬사(Lech Walesa)도 호색한(好色漢)이라도 떠올리는 것인지 거침없이 ‘레치’하고도 ‘웨일사’라 불렀다. 지난 22일 수상자를 발표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선 폴란드의 라파우 브레하치가 우승, 한국인 임동민·동혁 형제가 3위, 일본인 야마모토(山本貴志) 등이 4위에 입상했지만 그 최고 권위의 쇼팽 콩쿠르(Chopin concours)도 영어권 방송에선 ‘초핀 콘쿼’로 발음했다. 예수를 ‘지저스’로, 나폴레옹을 ‘너폴련’, 바흐(Bach)를 ‘박’, 모차르트를 ‘마잣’, 베토벤을 ‘비도븐’이라 발음하는 건 영어의 지나친 오만이고 빅토르 위고를 ‘빅터 휴고’, 고흐(Gogh)를 ‘곡’ 또는 ‘고프’, 고갱(Gauguin)을 ‘고긴’이라 호칭하는 건 영어의 어이없는 방자함이다. 아르헨티나를 아진티나, 요르단(Jordan)을 조단, 바그다드를 백댓, 산호세를 샌조스라 하는 것도 그렇고 뮌헨을 뮤니크(Munich)라 부르는 건 더욱 그렇다. 각국의 언어엔 특유한 발음이 있고 지명, 인명에도 특유의 독음(讀音)이 있거늘 영어는 그 점을 싹 무시하는 것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조지(George)만 해도 지오르지오(이), 게오르크(독), 조르지(프), 조르제(포), 호르헤(에)로 각각 다르고 헨리(Henry)도 하인리히(독), 앙리(프), 엔리코(이), 엔리케(에), 엥리케(포), 헨리크(네), 하인리크(덴) 등으로 다르지 않은가. 제2의 국제어로 몇 년 안에 영어를 추월할 것이라는 중국어의 오만 또한 영어에 못지 않다. 데궈(德國), 파궈(法國), 빠시(巴西), 난페이(南非), 비루(秘魯)라 하면 각각 독일, 프랑스, 브라질, 남아공, 페루를 가리킨다. 미국은 아메리카가 아닌 메이궈(美國), 영국은 잉글랜드가 아닌 잉궈(英國), 일본은 닛폰이 아닌 리벤(日本)이고 도쿄는 둥징(東京), 오사카는 따반(大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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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돌리도! 지면기사
“가방 속에 책이 들어 있나요?” 인천공항 검색대 여직원이 물었다. “예, 평양에서 몇 권 샀습니다.” 남직원이 푸른색 띠로 가방을 묶었다. 작은 갈색 여행가방이 죄없이 포승줄을 받았다. 불현듯 20여년전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멀찍이 전경이 보이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지. 혹시 무심코 가방에 집어넣은 책이 불온서적으로 몰릴지 몰라서…. 그 땐 이런 책이 들어 있었더라면 영락없이 가방이 아니라 내가 닭장차에 태워졌을 터이다. 자료 욕심이 화근이었다. 지난 15일 아리랑 참관단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 들어서자 식당 앞 서점이 눈에 띄었다. 남쪽의 동네서점도 여기보다는 책이 많으리라. 조악하게 인쇄된 책들은 해방 직후 출판물을 연상시켰다. 그래도 서가를 훑으며 '문제 없는 책'만 골랐다. 민속 어학 문학서적 위주로. '북한 출판물·CD 무차별 반입'을 대서특필한 어느 신문의 보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 아니다. 사상 이념 선전물은 전문가나 볼 책 아니던가. 흥미도 없는 책을 아까운 유로화 주고 사고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민요 따라 삼천리', '조선의 사계절 민속', '조선어맞춤법편람'…. 18권이나 된다. 그래도 쪽수가 적고, 재생종이로 된 책이라 가볍다. 남쪽 책이라면 무거워서라도 가져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5유로짜리 '아리랑' CD는 사지 않았다. 내 눈으로 직접 관람한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세관신고서에 '국헌을 문란시킬 만한 책자'를 소지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표시했다. 나는 남북의 민속과 언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일행은 다 빠져 나갔다. 북한그림과 농산물을 보따리로 샀던 이들도 무사통과였다. 세관에 잡힌 건 나와 아리랑CD가 걸린 50대 남자 달랑 둘이다. 양각도에서 책을 사던 사람이 꽤 많았는데, 이상하다. 이른바 선별검사다. 아예 책이 없다고 잡아뗐더라면 보내 주었을까. 내가 그렇게 불온하게 생겼나. 쓴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세관직원들은 친절했다. 자신들은 판단할 권한이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 통일부에서 반입승인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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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空約)없는 선거를 희망하며··· 지면기사
선거때마다 쏟아지는 공약만 제대로 지켜도 복지사회 건설은 물론 나라살림도 경제도 걱정이 없다. 그러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혐오감은 더욱 깊어진다. 그 결과 유권자는 공약을 보고 정당이나 인물을 선택하지 않고 순전히 정당과 인물대결 구도로 갈려 한표를 행사한다. 재·보선 투표율이 낮은 것도 이런 대결 구도가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일게다. 10·26 재선거가 다가오면서 해당 선거구를 차지하기 위한 정당의 선거지원 열기가 높아가고 있다. 이번 선거로 민심을 가늠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차기 지방선거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공약도 양산될 것이고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역 현안이 공약의 윗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경기도에서 치러지는 부천과 광주선거는 어떨까. 부천시 원미갑 재선거를 들여다 보자. 모든 후보가 화장장(추모공원) 건립사업 절대반대를 공약하고 나섰다. 현안 사업이기는 하나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이나 심도있는 입지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다. 인근 시와의 빅딜 등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부천이 혐오하는 시설을 선뜻 받아들일 인근 지자체가 어디 있겠나. 또한 인터넷 게임 중심지, 첨단산업단지 유치, 서민을 위한 무상의료·무상급식, 낙후 지역발전 등 하나같이 달디 단 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광주도 친환경 미니도시유치, 복선전철, 정보통신연구단지설립 등 공약의 달기가 부천 보다 못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공약(空約)의 남발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행과 검증시스템을 당차원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그중 하나이다. 당 정책위가 공약이행을 주도하고 외곽의 당 연구소가 이를 평가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또 각 정당이 '지킬 수 있는 공약’ '책임지는 공약’을 생산하는 '매니페스토’(Manifesto, 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선거공약)의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현이 상당기간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추상적이고 구체성을 상실한 공약이 아니라 우선 순위, 시한, 재원조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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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정부의 이상과 현실 지면기사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세계는 다시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세금 먹는 하마인 우정(郵政) 민영화 및 정부계 금융기관들을 통폐합하고 공무원수를 지금보다 10% 줄여 향후 10년 내에 공무원의 총인건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억제, 반드시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혁신(innovation)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슘페터(J. Schumpeter)는 자본주의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강조했다. 혁신의 구체적 사례로 새로운 상품의 개발, 새로운 시장개척,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 새로운 반제품 획득, 새로운 경영관리조직의 개발 등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서 혁신자(entrepreneur)들은 우선 혁신에 대한 확신과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래서 슘페터는 혁신행동을 '창조적 파괴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케인지언(Keynesian)들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다가 지구촌(Globalisation)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효율성이 최우선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절감했던 선진국 정부들은 앞다투어 정부조직을 슬림화하고 ‘선택과 집중’식의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제고하기 위해 능력있는 자들이 열심히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감세정책도 병행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수상은 늙은 대륙 유럽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으며 잭 웰치는 죽어가는 공룡기업 GE를 살려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설파했다. 비록 지금의 부시정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기습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으나 작은 정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참여정부도 이 대열에 동참, 정부이름도 ‘혁신정부’로 명명했다. 만시지탄이나 올바른 선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혁신자역할을 자임했다. CEO형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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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광고와 '비데공주'의 눈물 지면기사
“한국인들은 삼성컴퓨터로 e메일을 확인하고 삼성에서 만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주말이면 삼성이 소유한 에버랜드에서 여가를 보낸다.” LA타임스가 25일자로 보도한 '삼성공화국이 반격을 받고 있다'는 서울발 기사중 일부이다. 전근대적인 재벌과 첨단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가 혼재된 삼성에 대한 한국인의 애증은 외국 저널리스트에게도 기괴한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삼성의 재벌 근성 타도를 외치는 가운데 국민의 일상 생활은 삼성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기에 삼성만한 기표도 없으니 과연 특파원의 눈썰미답다. 자본의 사회지배를 합법적으로 보장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거대자본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 밖에 없다. LA타임스는 삼성공화국을 언급했지만 일본에선 도요타 공화국이, 미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공화국이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LA타임스가 거론한 삼성식 라이프스타일을 제대로 완성시켜 보자. 삼성의료원에서 태어나 40평대 래미안에 살면서 매직스테이션이나 센스로 정보화 시대를 구가하고 애니콜로 통화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에버랜드에서 주말을 보내다가 노후를 노블카운티에서 보낸 뒤 삼성의료원에서 수많은 문상객들의 재배를 받는 인생! 삼성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도전해서 성취하고 싶은 열망의 대상일 것이다. 이런 삶을 천박하다고 욕할 지식인이 있을지 몰라도 대중들이 이런 삶을 열망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자본이 대중의 현실 뿐 아니라 대중의 환상까지 지배하려는데 있다. 기업은 직접적인 재화로 대중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대중의 욕구와 환상을 자기 것으로 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치른다. 기업과 대중 사이에서 욕구와 환상을 매개하는 집단이 바로 방송·신문·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이다. 대중매체의 광고는 대중의 욕구를 끊임없이 분발시켜 기업에 거대한 소비집단을 제공한다. 그래서 광고는 산업이자 시장이다. 대중매체는 당연히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의 확장과 점유를 위해 경쟁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방송사의 간접광고 허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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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부기 증후군 지면기사
지난 7월 18일 오후 2시35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을 지나다가 깜짝 놀랐다. 30대로 보이는 거지 차림의 한 여인이 엉덩이를 벌겋게 드러낸 채 대로변에 쭈그리고 앉아 한길 쪽을 향해 소피(소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숱한 차량이 상상도 못할 그 진기한 모습을 목격했음은 물론이고 방금 지하도 층계를 올라온 한 부인은 에구머니나 비명을 지르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순간 퍼뜩 떠올라 거지 여인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었다. 신라 충신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文姬)가 아니라 그녀의 언니 보희(寶姬)가 서형산(西岳) 꼭대기에 앉아 소변을 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보희가 어느 날 밤 서악 마루에 앉아 소변을 보는 꿈을 꿨는데 그 액체가 온통 홍수를 이뤄 나라 안에 가득 찼다지 않던가. 그 신기한 꿈을 예사롭지 않게 여긴 동생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샀고 처남인 김유신과 함께 3국통일의 위업을 이룬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아내(文明王后)가 되는 야망을 성취한다. 신라 처녀 보희가 산마루에 앉아 소변 홍수를 일으켰다는 건 어디까지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꿈속도 아니고 보는 눈이 빗발치는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 하고도 청와대가 코앞 1천m 거리도 안 되는 대로변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프레스센터를 등지고 앉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볼 일을 봐버린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슨 의도였던 것인가. 혹여 그녀도 신라 처녀 보희의 방뇨 사태처럼 소변으로 가득 찬 서울 땅을 상상했던 건 아닐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전설조차 까맣게 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뇌세포의 불들이 모두 꺼져 머리 속이 칠흑 같은 정신장애 여인이 무얼 어떻게 더 상상할 수 있으랴. 밤, 도토리 등의 한 부분이 썩어 퍼슬퍼슬하게 된 상태를 순수한 우리말로 ‘수리먹었다’ 하고 살아 있는 나무가 오래 돼 저절로 썩어 구멍이 훤하게 뚫린 상태를 ‘구새 먹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보리, 밀 등의 이삭이 흑수병(黑穗病)에 걸려 새까맣게 썩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이삭을 농부들은 ‘깜부기’라 부른다.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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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비즈니스 지면기사
재작년 초겨울 금강산 구룡연코스를 혼자 내려온 적이 있다. 상팔담까지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 중간에서 되돌아선 참이었다. 하늘이 녹수 위로 내려앉은 계곡을 따라 푹신한 낙엽 양탄자를 밟으며 호젓하게 홀로 걷는 기분이 각별했다. 이렇게 금강산을 밟는 남쪽 사람이 500만명을 넘어서면 통일이 이뤄지지 않을까. 밑도끝도 없는 '싸구려 감상'까지 밀려온 건 아마도 쭉쭉 뻗은 금강송 사이로 부는 바람이 여간 상쾌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국민 여러분께서 비리 경영인의 인사조치가 잘못 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저는 비굴한 이익보다 양심을 선택하겠습니다'. 밤하늘 별과 달을 보며 썼다는 현 회장의 '국민 여러분께'는 사뭇 비장하다. 그렇구나. 금강산 관광은 북한과 현대아산이 벌이는, 냉엄한 통일 비즈니스였구나. 새삼스러운 자각이 머리를 친다. 현대-북한의 거래에서 비즈니스 성격이 도드라지지 않은 까닭은 시작이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소떼 방북을 한 것부터가 '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양자의 거래는 사업이라기보다 통일을 향한 진전으로 평가됐다. 4천만달러 송금이 뒤늦게 불거졌어도 그건 당시 정권과 야당의 정치싸움 성격이 강했지 비즈니스 자체가 부각되지는 않았다. 퍼주기니 통일쇼니 하는 비난과 전 회장의 자살 등 숱한 곡절을 겪기는 했어도 현대와 북한의 사업 파트너십은 꾸준히 전진할 수 있었다. 일단 불이 댕겨진 남북의 통일열망이 그 정도는 태워버린 탓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김윤규 부회장 퇴진시킴으로 시작된 현대와 북한의 줄다리기는 양쪽이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계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로서는 그 이면의 비밀을 알 수 없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잘린 부회장의 비리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룹 내부 사정이다. 흘러나온 소문만으로 보자면 그만 일로 대북사업 성사와 진전에 지대한 공헌이 있는 인물을 물러나게 했다는 게 의아하지만, 어쨌거나 남의 회사 인사까지 감놔라 배놔라 할 일은 아니다.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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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나가니 한국군이 들어오나 지면기사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에 따라 미군 기지를 반환받는 도내 자치단체들이 희망에 부풀어 있다. 의정부 동두천 양주 등 경기 북부 자치단체들은 반환받게 될 미군공여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발전의 걸림돌이었던 미군기지가 이제는 지역 발전을 견인할 알토란 같은 희망의 땅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날벼락을 맞은 지역이 있으니 하남시 경우가 그렇다.하남시는 미군 기지 '캠프 콜번'의 이전이 확정되면서 다른 기지 이전 지역과 마찬가지로 쌍수를 들어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미군 기지 바로 그자리에 국군이 새롭게 기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하남시나 시민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결정이다. 미군기지가 떠날 줄만 알았지 그자리를 우리 국군이 차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 일이었으니 말이다. 시민 전체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경기개발연구원은 최근 '반환공여지의 효율적 활용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군 이전부지 활용방안이 해당지역의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계획적인 개발이 필요했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세부활용 계획을 제시한 보고서이다. 하남시의 경우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골프장 및 산업단지로 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하남시도 자체적인 용역을 통해 청소년 영어마을과 수련관, 실버타운, 대형 병원, 경찰서 등 공공복지시설 조성계획을 세웠다. 이달중 이같은 내용을 종합한 '미군공여지 활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경기도의 부속 연구기관이나 하남시가 이같은 반환기지 이용계획을 세운 것을 보면 반환기지를 국군이 이용한다는 계획을 전혀 몰랐음을 방증한다. 국방부의 기지 인수 계획이 그만큼 전격적이었다는 얘기다.62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인 하산곡동 일대 토지 8만6천204평에 캠프 콜번이 주둔해 왔다. 이 부지는 의정부나 동두천 등지의 미군부대에 비해 규모가 작고 주둔병력이 적지만 시전체 면적중 97.2%가 그린벨트로 활용부지가 턱없이 부족한 하남시로서는 도시개발의 숨통을 터줄 노른자위 땅이다. 캠프 콜번 이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