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 측은지심(惻隱之心) 지면기사
이 엄동설한에 그 고양이는 어디에서 긴 밤을 떨며 견디고 있을까? 문득 아침마다 밥 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걱정이 든다. 어느 날 학당 앞에서 배고픈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어, 먹이를 사서 몇 번 주었을 뿐인데, 이 추위에 얼어 죽지는 않았을까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무슨 마음일까?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 고양이가 오늘 밤을 무사히 견뎌내고 아침에 먹이를 먹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무엇일까? 공자는 그것을 사랑(愛)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바란다(愛之欲其生, 애지욕기생)'. 논어의 짤막한 이 구절은 인생을 살면서 자주 가슴 떨리게 하는 구절이다. 사랑은 아끼는 마음이다. 아끼는 대상은 잘 살아 있기를 바란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가 상처 없이 잘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그 차를 아끼기 때문이다. 내 자식, 부모형제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역시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 내가 키우는 고양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 대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그 고양이가 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내고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와 인과 관계가 있듯 없든, 인간이라면 타자의 불행에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고, 타자의 불행에 대하여 차마 참지 못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유교의 마음 이론이다. 안 보이는 타자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이고, 보이는 타자의 불행에 대한 슬픔이 불인지심(不忍之心)이다. 나와 아무 관련없는 존재의 아픔 공감하고불행 두고보지 못하는 인간 '아름다운 존재'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박노해 시인의 이 시를 읽으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측은지심과 불인지심이 느껴진다. 측은(惻隱)은 내가 모르는 이(隱)에 대한 슬픔(惻)이다. 불인(不忍)은 내 눈앞에 벌어지는 불행을 참지(忍
-
[춘추칼럼] 늦게 찾아온 그리움 지면기사
자고 일어나니, 간밤에 폭설이 내렸는지 천지간이 하얗다. 키가 큰 전나무 가지마다 쌓인 눈이 소담하다. 전나무 너머 너른 회색빛 하늘 아래 먼 산도 순백이다. 고요가 켜켜이 쌓인 날에는 턴테이블에 즐겨듣는 음반을 찾아 올리자. 오늘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자. 음악이 주는 환희와 위안에 기대어 스스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자. 음악의 무아지경 속에서 마음의 격랑은 잦아들고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오른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생명 가진 것들은 몸을 움직여 먹이를 찾느라 바쁘다. 먹고 사는 일은 사람이나 담비와 족제비들, 말과 황소들, 뭇 조류에게도 생명의 숭고한 업이다. 산수유나무 가지에 달린 빨간 열매를 쪼으러 곤줄박이 몇 마리가 날아든다. 곤줄박이가 산수유 열매를 쪼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일하러 나간 어머니를 종일 기다리던 어린 날의 저녁들, 붉은 피에 잠긴 황혼이 사라지고 어둠 내린 마당을 가로질러 오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서둘러 쌀보다 보리가 많은 밥을 안치던 섣달그믐을 떠올린다. 마당엔 차가운 어둠이 차오르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린 하늘엔 별 한 점도 안 보였다. 저녁밥을 기다리다 지친 소년이 깜빡 잠이 들면 어머니는 기어코 흔들어 깨운다. 소년은 잠이 덜 깨어 비몽사몽 중이다. 그런 소년이 한밤중 밥상 앞에서 목구멍으로 넘기던 밥은 꺼끌꺼끌 했다. 그 시절 남루함 견디고 살 용기 준 어머니그 태양이 사라진후 세상 텅 비고 어두워 가난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남루와 모욕을 견디고 살 만큼 용기를 준 것은 어머니다. 오, 열이 펄펄 끓던 소년의 이마에 차가운 손을 얹던 어머니, 나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세요! 계절은 삐걱거리는 거룻배처럼 흘러가고, 당신 가슴 속 숨은 비탄과 환희는 감히 짐작조차 못하던 소년은 늙어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졌어요. 자식을 위해 늦은 저녁밥을 짓고, 구호물자로 받아온 우유를 데우던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겐 날마다 뜨는 태양이다. 그 태양이 사라진 세상은 텅 비고 어둠은 고집 센 바위
-
[춘추칼럼] 김장을 담그며 지면기사
어릴 때 나는 왠지 김장 담그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은 진정한 어른이다'라고 혼자 속으로 존경심을 가지곤 했다. 초겨울이면 리어카에 실린 배추 더미가 이집 저집 마당으로 들어가고 동네 여기저기서 김장을 담갔다. 산더미 같은 배추와 커다란 함지박에 담긴 고춧가루 양념, 고무장갑을 끼고 목에 수건을 둘렀지만 추위로 코가 빨개진 여자 어른들. 고른 두께로 곱게 썰린 무채와 비린내가 나는 젓갈, 알싸한 마늘과 생강. 노란 배춧속과 붉은 고춧가루와 푸른 쪽파가 이루는 선명한 색채의 대비. 그것은 정말이지 오감을 자극하는 현장이었다. 부드럽게 절여진 배추 사이사이 김장소를 채워서 장독에 차곡차곡 쌓으면 1년치 식탁을 책임질 김장이 되었다. 나는 가끔 절인 배추에 빨간 양념을 바르는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매운 양념이 닿으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재미삼아 한 두 번 발라보게 한 후 서둘러 나를 부엌에서 쫓아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김장은 고된 노동과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삶의 현장이었고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된다는 것의 성대한 기준 중 하나는 김장을 담그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김장을 담근 이웃들이 한번 맛이나 보라며 접시에 담은 김치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김장철이면 삶은 돼지고기와 생굴과 갓 담근 김치가 저녁상에 자주 올랐다. 나는 삶은 돼지고기를 조금 먹었을 뿐 굴도 날김치도 먹지 않았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김장철이면 오히려 먹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은 즐겼다. 김치와 함께 부침개나 내가 먹을만한 것들이 따라오는 일도 있었고, 집집마다 김치의 맛과 모양이 조금씩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옆집에서 온 김치 갈피에서 조그만 새끼 조기가 통째로 발견된 날 우리 가족들은 한참 웃었다. 우리는 김장김치에 해물을 많이 넣지 않았으므로 그 작은 생선을 김치와 함께 으적으적 씹어 먹어치울 자신은 아무도 없었고 양념을 씻어내고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어떻겠냐는 우스개가 저녁 식탁을 오갔다. 김치 갈피를 헤치며 '여기도! 여기도!'하고 작은 생선들을 찾아냈던 그 저녁은 어린 나
-
[춘추칼럼] 여야의 리더십을 주목한다 지면기사
최근 여야 리더십이 주목받는다. 여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 인식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며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의 자격기준과 선출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번 주 취임 100일을 넘긴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파장이 이어지는 양상이다.국민의힘 전당대회는 3월 초순이 유력해 보인다. 정진석 비대위 임기가 3월13일까지라는 게 일단 기준 시점이다. 그 전이냐 그 후냐 정도가 쟁점인데 비대위 체제를 가능한 빨리 정상화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 문제는 누가 차기 당 대표로 적합하느냐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대처가 가능하며 (상식·공정·정의의 미래) MZ세대에 인기가 있어야 하고 안정적으로 공천을 할 수 있는 대표"여야 한다고 하자, 한 쪽에서는 "수도권 출신 당 대표론은 지역감정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거론되는 당권주자 중에서 당 대표를 뽑느냐, 좀 늦더라도 새로 사람을 찾아서 하느냐 이런 문제도 정리가 안 됐다"는 언급은 '한동훈 차출설'에 다시 불을 붙였다.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 없다"고 반박하고, 한 장관 본인이 직접 "중요한 일 많아 장관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국힘 '한동훈 차출설' 결국 대통령에 부담지지율 하락 민주, 이재명 대표 위상 위협 '한동훈 차출설'은 결국 대통령에게 부담이다. 물론 대통령은 한동훈 논란에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윤심이 한동훈에게 있다는 것을 띄워서 국민과 당원의 반응을 보려했다"는 해석은 지나친 상상력의 산물일 수 있지만, "관저 갔다 와야지 (당 대표에) 낙점이 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의도하지 않은 메시지를 남겼다.많은 사람들이 7대 3 당원투표와 여론조사 비율을 9대 1로 바꾸자는 주장은 "수양버들 당 대표"를 향한 구체적 실행수단이라고 해석한다. "당 대표는 우리 당원들이 뽑는 것"이라고 하자 "특정후보를 배제하거나 지지하기 위한 룰 변경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정당들이 국민세금 받는 만
-
[춘추칼럼] 한파(寒波)를 마주하는 방법 지면기사
한파(寒波)는 글자 그대로 차가운(寒, cold) 파도(波, wave)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져 갑작스러운 매서운 겨울 추위가 파도처럼 몰려올 때 한파 주의보나 한파 경보를 발령한다. 시골에서 한파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수도관이 얼지 않게 하는 일이다. 계량기가 동파되지 않도록 이불로 싸고, 여기저기 바람 들어오는 구멍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막상 영하 10도의 한파를 맞이해 보면 그냥저냥 견딜 만하다.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해서인지, 아니면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이라 마음의 채비를 단단히 해서인지 생각했던 만큼 차가운 파도가 아니다. 위기는 미리 알고 맞이하면 위기가 아니다. 아무런 준비와 예측 없이 맞이한 위기가 진짜 위기다. 위기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고, 예상하지 못했을 때 그 피해가 커진다. 아열대 지역인 대만에서 영상 4도에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90명이 숨졌다는 소식도 있고, 인도나 홍콩에서 영상 기온의 추위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는 뉴스도 들린다. 경험도 없고, 준비도 하지 않으면 작은 파도에도 쉽게 무너진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경험·준비하지 않으면 작은파도에도 붕괴안정된 조직 순식간 몰락은 '호언장담' 때문 인생의 여정에도 한파가 있다. 그러나 예측한 대부분의 한파는 잘 견뎌낸다. 건강이나 재정적 어려움이 예측이 되었다면 이미 대비도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부지런히 건강을 체크하고 조심하면 그만큼 다가올 위기의 강도는 낮아진다. 불확실한 경제상황에 대비하여 비용을 줄이고 대비하면 경제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련의 파도를 아무런 대비 없이 마주하면 쉽게 넘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마 이 정도에 내가 무너지겠어?'라는 자만과 안도가 파도의 크기를 더욱 키운다. 아무런 준비 없이 호언장담하며 맞이한 시련이기에 순식간에 붕괴를 만나게 된다. '조직이 혼란(亂)에 빠지는 것은 안정(治)되었다고 안심할 때 시작된다(亂生於治, 난생어치). 용기(勇)를
-
[춘추칼럼]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 지면기사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그토록 책에 탐닉한 것은 심오한 뜻이 있어서기 보다는 책이 재미있어서였다. 책에서 나오는 교향(交響)의 장엄함 속에서 내 영혼은 더욱 깊고 굳세졌다고 믿는다. 청소년기에는 친구 집의 다락방에서 구한 책들을 읽고, 전업 작가가 되어서 그 수입으로 생계를 해결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20대 초에는 시립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책을 읽었다. 내 인생의 선택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책과 함께한 삶이다. 내 행복의 조건은 책, 의자, 햇빛이다. 그것에 더해 사랑하는 사람들, 숲, 바다, 음악, 대나무, 모란, 작약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은 없다고 믿었다. 책에는 가보지 못한 세계, 낯선 장소와 풍경들, 미지의 시간들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세계 속으로 뛰어들어 지적 모험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책 읽기를 '눈이 하는 정신 나간 짓'이라지만 아무리 소박하게 보더라도 책 읽기는 항상 그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 우리는 책을 통해 세상과 '나'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구하고, 교양과 지식을 갖춘 지성인으로 성장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뇌의 시각 피질이 달라지고 문자나 문자 패턴, 단어 등 시각적 이미지를 떠맡는 뇌의 세포망이 채워져서 지적 자극을 효율적으로 신경회로에 전달하는 능력을 갖춘다. 또한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기쁨을 느끼고,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 발달한다. 한 마디로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좋아하고 즐기는 것으로 이른 봄 종달새 소리, 모란과 작약 꽃들, 여름 아침 연못의 수련,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벗들과의 담소, 여인의 환한 미소, 동지 팥죽, 흰 눈 쌓인 겨울 아침의 햇빛 환한 것들을 꼽는다. 그밖에 고전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 벗과 바둑을 두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들 중에서 으뜸은 책 읽기다. 뼈가 약하고 살이 연할 때 나를 단련한 것은 책이고, 인생의 위기 때마다 나
-
[춘추칼럼] 일상의 붕괴 지면기사
"한낮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점심시간이길래, 뭘 놓고 갔나 했어요."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에겐 이런 종류의 일화들이 아주 많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새로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 하더니 우는 거예요. 난 너무 놀랐어요. 왜? 왜? 무슨 일이야? 하고 물으면서, 혹시 피싱인가 하고 의심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어설픈 구석이 없는 거예요. 말투도 그렇고, 분명히 ○○이 목소리였어요." 결국 그것은 흔하다면 흔한 피싱 이야기였다. 그녀는 놀랐지만 끝까지 주의력을 잃지 않았고, 아이가 학교에 안전하게 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좋은 마무리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이전과 다른 한가지 디테일이 더해져 우리를 좀 더 무섭게 했다. 듣는 이가 이미 피싱을 짐작하고 유심히 듣는데도 도무지 의심할 수 없이 똑같았던 '아이의 말투와 목소리'였다.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버전의 많은 '철렁한 보이스피싱 이야기'들을 들어왔지만 듣는 사람이 너무 놀라서 지레 정신줄을 놓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이것이 사기임을 짐작 가능한 힌트들이 있었다. 협박하는 사람이 특정 지역의 말투를 쓰거나 주변 잡음이 몹시 심할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숨길 수 없이 달랐다. 울거나 비명을 지르는 식으로 듣는 사람을 놀래켜서 목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숨기려 애쓰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힌트를 찾을 수 없었다. 아이가 울음이 섞이기는 했어도 또박또박 말했고 그 목소리는 엄마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들어도 분명 내 아이의 목소리였다. '피싱 전화 한통' AI로 목소리 똑같이 재현통화음 흉내 내도록 도운 통신사 등에 분노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전에 들었던 '목소리'에 관한 또다른 일화가 떠올랐다. "나 김정은한테서 축하 전화받았어요. 들어보실래요?" 한 지인이 자랑스럽게 넘겨준 전화기에서는 북한의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그의 유튜브 채널 개업을 인민의 온마음을 다해 축하한다며 유튜브 채널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고 있
-
[춘추칼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지면기사
이태원 이후 조사는 의외(?)다. 이전과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다. 조사시점을 기준으로 이태원 이후 첫 조사는 10월의 마지막 날부터 11월2일까지의 전국지표조사(NBS)였다. 윤석열 대통령국정운영 평가를 보면 '긍정평가 31%, 부정평가 60%'로 같은 조사의 2주 전과 같았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신뢰도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신뢰한다 35%, 신뢰하지 않는다 60%'로 직전조사와 비교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2% 포인트 상승하고 신뢰한다가 1% 포인트 하락했다.11월 1~3일 조사의 갤럽도 마찬가지다. '긍정평가 29%, 부정평가 63%'로 전주 대비 1% 포인트씩 각각 오르고 내렸다. 특이한 점은 긍정평가든 부정평가든 양쪽 모두 이태원 때문이다. 한쪽은 '사고수습을 잘해서', 다른 한쪽은 '대처가 미흡해서'다. 세월호 직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2주 만에 59%에서 48%로 하락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이태원 이후 비슷한 시기 다른 방식의 조사들도 결과는 유사하다. 변화가 있더라도 1% 포인트 내외였다. 대체로 '20% 후반 또는 30% 초반의 긍정평가, 60% 초중반의 부정평가'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의 일간지표로 보면 11월 첫 주 초반에는 추모 분위기로 지지율 변동이 크지 않았지만 주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사고'에서 '참사'로 '사망자'에서 '희생자'로 바뀌었고 결국 대통령 지지율은 매일 하락의 흐름이었다고 한다. 尹 지지율 '3대6 구도' 이태원 이후 변화 미미세월호 직후 박근혜 대통령 추락과 대조적 '유권자 10명 중 3명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고 국민 10명 중 6명은 반대하는 여론'은 최근 쟁점이 되었던 몇몇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분포와도 일치한다. 해외순방 중 비속어 논란에 대해 외교적 참사(64%) vs 언론왜곡(28%), MBC 보도에 대한 대통령실의 대응에 대해 과도한 대응(59%) vs 적절한 대응(30%), 그리고 대통령 사과 필요성에 대해 동의(70%) vs 반대(27%) 등이 대표적 사례다. 결
-
[춘추칼럼] 슬픔(哀)이 상처(傷)로 남지 않기를 - 애상(哀傷) 지면기사
하늘은 인간에게 일곱 가지 다양한 감정을 주었다. 기쁨, 분노, 슬픔, 공포, 사랑, 증오, 욕망이다. 이런 인간이 겪어야 하는 다양한 감정을 '희로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칠정(七情)이라고 한다. 칠정은 인간의 네 가지 본성 사단(四端)과 함께 인간의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 골격이다. 문제는 일곱 가지 감정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의 마음을 교대로 흔들어댄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기쁨에 들떠 춤추며 놀다가도 화내며 슬픔에 젖어 비탄에 젖기도 한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다가도 사랑과 연민에 어느덧 언제 공포가 있었냐는 듯 잊어버리기도 한다. 인간은 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의 기복으로 일상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며 평온한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감정의 조절과 평정은 성찰의 중요한 주제이며 죽을 때까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이태원 참사로 국민들 마음 널뛰고 있어분노와 분노 만나 갈등과 싸움으로 번져 '중용'에서 감정의 조절을 '중화(中和)'라고 한다. 중화는 인간의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면 삶의 중심축이 무너질 수 있기에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는 감정의 조절을 통해 인간의 생명력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분노를 참으면 속으로 병이 들고, 분노가 지나치면 화로 번진다. 기쁨을 억누르면 답답해지고, 기쁨이 넘치면 음란함이 된다. 공포는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지만, 조절만 잘하면 긴장감으로 인간의 잠자고 있는 세포에 불을 켜게 한다. 욕망은 인간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고, 탐욕으로 넘치면 인간의 삶을 파멸로 이끌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은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길들여야 할 대상이다. 야생마처럼 뛰어다니는 마음의 감정을 잘 조정하는 것을 '조심(操心)'이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 마음(心)을 잘 조종(操)할 수만 있으면 더 높은 단계의 삶을 살 수 있다. 마음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뛰게
-
[춘추칼럼]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면기사
미국 간 아들이 십년 만에 한국으로 온다고 한다. 아들이 낯선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고 뿌리를 내리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니, 새삼 애틋하면서도 대견하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자양분을 취하고 떼어가지만 그럼에도 애틋하고 안쓰러워지는 것은 피의 이끌림 탓이다. 가족은 서로에게 어둠 속의 검은 개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족이란 보호색 안에 있을 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가족 울타리 밖으로 사라진 뒤 그의 존재감은 또렷해진다. 우리는 가족이란 역사 안에서 자라나는 상처다. 그럼에도 가족을 향한 정이 애틋하고 떨어지면 서로를 그리워한다. 가족 공동체가 우리가 누린 안녕과 보람과 기쁨들의 요람이고, 추억이란 상징 자본이 가족 내부에서 빚어진 것이기 때문이리라. 가족은 선물로 주어진 생물학적 소우주, 처음 만나는 사회 집단, 험한 날씨와 질병들, 크고 작은 외부의 악에게서 우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외부악으로부터 우리 지키는 '최후의 보루'피의 기질·본성·닮은 식성·욕구 공유한 존재 우연히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며 가족의 의미를 곰곰 되새겨 본 적이 있다. H마트는 미국 내 한국인이 드나드는 한식 식재료를 파는 식료품점이다. 한국 라면, 설렁탕, 미역국, 붉은 고춧가루, 떡볶이, 어묵, 그리고 멸치 액젓, 마늘, 생강 같은 기본 재료들을 판다.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자란 '나'의 식성은 완전한 한국식이다. 모녀는 생긴 건 다르지만 한식이라는 정서적 탯줄로 단단하게 연결돼 있다. '나'는 딸에게 결코 '호밀밭의 파수꾼'을 권하거나 롤링스톤스 레코드판을 권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란다. 어머니는 한식을 사랑하고 그걸 만들어 가족과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가족은 피로 이어진 동맹체, 입맛과 취향으로 결속하는 공동체다. 한국인 어머니를 잃은 뒤 '나'는 상실에 따른 그리움을 앓는다. 어머니가 생시에 즐겼던 음식이 그를 향한 추억과 그리움의 끄나풀이 된다. 어머니는 '나'에게 김치를 좋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