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춘추칼럼] 훈계질이 싫다… 어떤 약전(略傳) 지면기사
훈계질이 싫다. 얕은 지식으로 깊이 아는 체를 하는 자를 경멸한다. 소음과 서커스, 거짓과 허언, 정치가의 웅변이 싫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이념들, 일체의 회의주의도 없는 종교, 영혼이 깃들 여지가 없는 과학, 자동차 경적을 마구 울려대는 자를 싫어한다. 무능력한 가장, 함량미달의 책들, 말없이 끊는 전화, 자기가 정의롭다고 외치는 자들, 낯색 변하지 않고 뻔뻔한 말을 늘어놓는 정치가들, 탐식하는 자를 싫어한다. 봄날 아침 숲속에서 들려오는 뻐꾹새 소리, 펄럭이는 깃발, 4월의 잎사귀들, 막 떠오른 햇살에 금빛으로 빛나는 떡갈나무를 좋아한다. 라벤더꽃이 핀 들판, 빨래가 마르는 가을 오후를 좋아한다. 죄없는 동물을 학대하는 자들에겐 살의마저 솟구친다. 끔찍한 인간들. 불친절을 증오한다. 혼자 캐치볼을 하는 소년, 11월의 마가목 열매, 여행 마지막 날의 쓸쓸함을 좋아한다. 그 여행지가 다시 올 수 없는 먼 곳일 때 그 애잔함은 더욱 짙어진다. 그늘에서 꽃을 피우는 현호색과 바위의 초록 이끼를 좋아한다. 작고 여린 생명들, 어린 고양이, 호수를 가로지르는 물뱀, 작약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호박죽과 수제비를 좋아한다. 목포의 삼합, 평양냉면, 통영에 가서 먹은 봄날의 도다리쑥국과 여름철 민어회를 좋아한다. 여름 아침에 수련 꽃핀 것, 진공관 앰프로 들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의 한 소절, 잘 마른 면 셔츠를 입고 외출하기, 공중으로 도약하는 무용수, 친구의 첫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오후에 자는 듯이 죽은 개는 너무 슬퍼서 나를 화나게 한다. 부엌에서 끓고 있는 어머니의 배추된장국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고요하고 적막한 식욕. 나는 곧 맛있는 저녁을 먹겠구나, 하는 기대를 품는다. 낯색 변치 않고 뻔뻔한 정치가들 싫어하고세상이 기만할 때마다 나도 세상을 속였다 당신의 미소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당신의 하얀 이마와 쇄골을 사랑한다. 사랑할 수 없음, 그 불가능마저 사랑한다. 무지개가 뜨지 않은 다정한 저녁들, 여름 저녁 가장 먼저 떠오르
-
[춘추칼럼] 담을 넘는 사람들 지면기사
어린 시절 나를 생물학의 길로 이끌었던 영웅들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들의 생태에서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뽑아내던 장 앙리 파브르와 캐나다 대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야생 늑대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어니스트 시튼이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이제야 고백하지만 사춘기 이전까지 나의 숨겨진 자아 정체성은 늑대였다. 내가 네 발로 기어다니거나 방구석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습관이 있었던 것은 내가 늑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둑한 화장실에서 낯선 침입자 늑대를 물리치고 마루 아래 숨겨진 덫을 찾아내고 장롱에 숨겨둔 어린 늑대들을 보호하며 혼자만의 늑대 세계에 거주했다.청소년기에 새로이 찾아낸 영웅이 템플 그랜딘이었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인으로서 축산 현장의 관행과 구조를 낱낱이 파악하고 동물이 고통이나 두려움 없이 죽을 수 있는 동물친화적 도축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녀의 통찰에 의하면 죽음 자체는 동물에게 큰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미래를 예측하지 않는, 오로지 현재에 충실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도축장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큰 칼의 존재에도 두려움이나 비애를 느끼지 않는다. 템플 그랜딘 같은 자폐인의 '남다른 기억력'이같은 능력 최대 활용한 변호사 드라마 화제 가축이 패닉에 빠져 난동을 부리게 하는 것은 펄럭이는 깃발이 드리우는 그림자의 빠른 움직임, 발굽이 미끄러지는 젖은 철판, 직각으로 구부러지는 통로, 듬성듬성한 나무판자 사이로 돌연히 쏟아지는 눈부신 빛 같은 뜻밖의 사물들이다. 템플 그랜딘은 도축장에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여 동물들이 안정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고요한 최후를 맞을 수 있는 동물친화적 도축장을 설계했다. 동물친화적 도축이라니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지만 패닉에 빠진 동물이 몸부림치다가 다치면 도축된 고기와 가죽의 품질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이는 축산 농가의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이는 데에 크게 기여했고 템플이 설계한 새로운 시스템은 북미 축산 농가에 빠르게 적용되었다.보통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 동물의 사고를 한눈에 꿰뚫고 기존 건축 문법과 전혀
-
[춘추칼럼] 윤석열 어젠다, 위기극복의 시작이다 지면기사
권력의 결심은 확고하다. 지지율 하락은 감당할만하고 감수할 수 있으며 새로운 권력질서의 확립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의 결과다. 권력은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다. 하나는 단기대안으로 지지층 중심의 진영접근이자 보수적 요구의 부응이다. 대통령의 '국기문란'과 '국가범죄' 언급을 두고 일부에서는 '문재인 정권 털기의 사정정국 강경 드라이브 임박'으로 해석한다. 문제는 단기처방으로 지지층을 지킬 수 있느냐인데 이게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여론동향을 보면 '데드크로스'를 넘어 출범 한 달 20일 정도에 이런 사태는 심각한 상황의 '총체적 난국'이다.6월 중순 이후 조사를 보면 ARS방식에서는 부정평가가 절반을 넘었고, 면접방식에서도 긍정평가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였다. '이준석 징계효과'로 부정평가가 60%를 넘는 조사가 나왔는데 정부출범 후 가장 큰 격차다. 정당 지지도에서조차 민주당 역전현상이 나타난다.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율이 조정 없는 하락세로 저점을 계속 경신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는 핵심 지지층의 동요를 의미한다. 2030과 50대 그리고 중도층이 먼저 떠났고 영남과 60대 이상 그리고 보수층의 이탈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특별감찰관 임명·인사 시스템 점검 시급여당·한덕수 내각의 책임 역할 부여해야 윤석열 지지의 '반사체적 성격' 때문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다. 작년 12월31일부터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3월2일까지 여론조사 260개의 정권교체 평균 지지여론은 51.6%였다. 대선에서 그는 '반(反)문재인+비(非)이재명 결집'으로 48.6% VS 47.8%, 0.73% 포인트의 신승을 거두었다. 정권교체라는 대선의 정치적 어젠다에 올라탔고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의 필요와 지지로 간신히 이겼다. '정권교체의 도구'가 윤석열 권력과 정치의 출발점이어야 하는 이유다.최근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권교체' 이후의 '윤석열 어젠다'를 요구하는 민심이다
-
[춘추칼럼] 아버지 노릇하기의 어려움 지면기사
어려서 외할머니 아래서 외삼촌들과 함께 자랐다. 오랫동안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는 고향을 떠나 낯선 고장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경기도 북부의 운천이라는 소도시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운천이 어딘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미군부대에서 용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자식을 떼어 놓고 낯선 고장에서 삶을 개척하는 젊은 가장의 수고와 고단함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나는 열 살이 될 때까지 부모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자랐다. 영유아기 때 아버지와의 접촉 기억은 없다. 너무 어린 시절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엷은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 어쨌든 아버지의 자애를 경험하지 못한 채 성장한 것은 내 불운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사랑과 따뜻한 훈육을 충분히 받고 자랐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오랫동안 '아버지 노릇하기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사로잡혔던 데는 그런 곡절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자식은 자신에게서 쪼개져 나온 또 다른 자기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자신의 유전 형질을 물려주며 거기에 아들은 후천적으로 아버지를 닮고자 노력한다. 육아에서 배제된 아버지가 자식의 성장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는 아버지는 자식의 지능, 사회성, 언어능력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자식은 자신에게서 쪼개져 나온 또다른 자기아버지 된다는 것, 돌봄 의무 기꺼이 지는 일 인간 사회에서 아버지가 제 자식에게 애정을 쏟고 돌보는 현상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포유류 전체에서 보면 포유류 수컷 중에서 제 자식을 돌보는 것은 불과 5% 정도라고 한다. 포유류에게 아버지의 돌봄 현상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버지의 자식 돌봄은 자식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위한 일종의 투자다. 아버지의 부재는 분명 자식의 신체나 인지 측면에서의 발달과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버지와 떨어져 산다는 것은 그만큼 아버지의 돌봄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모든 남성이
-
[춘추칼럼] 영원한 것은 없다 지면기사
우리집은 광화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광화문에도 사람이 사냐는 반문이 흔히 돌아오곤 한다. 광화문에 사람이 산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출장을 가면 헬리콥터가 우리집 위로 날아갔다. 헬리콥터 날아가는 소리가 상당히 커서, 대통령의 지방 일정을 모르고 넘어가기 어려웠다. 이제 청와대는 시민공원이 되었으므로 그 일도 모두 추억이 되었다. 광화문이라는 특별한 동네에 한평생 살다보니 이래저래 정치가 일상생활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내가 30대였을 때까지는 대통령이 한번 출타할 때마다 20~30분은 족히 걸리는 교통통제를 했다. 대통령의 일정만 중요하고 시민들의 스케줄이야 아랑곳없던 시절이었다. 하염없이 서있는 버스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게 일상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VIP의 편의를 위한 광화문 일대의 차량통제는 차츰 사라졌다. 지난 10여 년간은 대통령 출타 때문에 교통통제로 불편을 겪은 일이 없다. 민주주의적 사고와 교통통제 기술력이 함께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오묘하게 교통신호를 조작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교통경찰이 잠깐씩 일반차량 통행을 지도하는 사이에 의전차량은 놀라운 속도로 복잡한 도심을 통과한다. 의전차량이 지나간 뒤 곧바로 일반차량들이 잠시 빨라진 도심통행속도를 즐기며 그 뒤를 따른다. 이 모든 일은 1~2분 안에, 눈깜짝할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진다.대통령 출장 헬리콥터 소리·시위정보 확인광화문에 살다보니 '정치'가 일상속 자리 기억하건대 2008년 광우병 사태 이전까지 광화문 일대는 도심 시위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도심 시위는 서울역, 을지로, 명동, 대학로 하는 식으로 구도심 일대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광장이 생긴 이후 광화문은 시위의 메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다. 이후 10여년간 광화문 거주자는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듯 오늘의 시위정보를 확인하며 지내게 되었다. 시위 시간은 몇시인지, 시위대의 규모는 얼마인지, 행진 구간은 어디인지, 버스 우회구간과 지하철 무정차 통과구간은 어디인지, 하나하나 꼼꼼
-
[춘추칼럼] 아버지와 아들 지면기사
"재벌 집안에 아들과 아버지가 있는 줄 알아?" 집안 문제를 아버지와 상의해보라는 내 권유에 재벌 회장 아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 그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낼 때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줄 알았다.그런데 그 말을 듣고부터 그를 만나고 나면 뭔가 허전했다. 한번은 임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저렇게 굽실대기만 하는 놈들이 회사에 꽉 차 있다. 저놈들 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며 빨리 점심 먹으러 가자고 했다. 겉치레 겸손을 수없이 보며 자랐을 재벌 아들 자리가 안쓰럽게 느껴졌다.어린 시절, 영화를 보면 부잣집이 부러웠다. 널따란 정원에서 아빠가 사다 준 멋진 자전거를 타는 아들, 생일이면 선물을 한 아름 들고 나타나는 아빠…. 내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선물을 해주지 않으셨다.하지만 아버지는 늘 내 곁에 있어 주었다. 나와 바둑, 장기를 두었고 어려운 산수문제도 같이 풀었다. 가끔은 돈을 걸고 화투도 쳤다. 한약방을 하는 아버지가 저울을 들고 한약을 지으면 나는 작두로 약재를 썰었고, 내가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면 아버지는 연필을 깎아주었다.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부터 찾았고, 어떤 시험 문제를 어떻게 틀렸는지까지 다 말했다. 손님이 많아 한약방 서랍에 돈이 모이는 날이면 내 주머니가 든든한 듯 기뻤다. 그렇게 나와 아버지는 하나였다. 그런데 그 재벌 아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룬 아버지가 그런 존재라니…. 늦은 밤 공부하면 연필을 깎아주었던 아버지친구처럼…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듯 세월이 흘러 아들이 회장이 되었다. 불미스러운 일로 수사를 받거나 구설에 오르는 그를 본다.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중학생 때 섬마을에 2년이나 가뭄이 들었다. 나는 물 긷는 사람들이 드문 한밤중에 십여 리 떨어진 샘터에 가서 졸졸졸 나오는 물을 한참 동안 모아 길어 와야 했다.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물지게를 지고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곤 했다.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가는 날이면 그 고된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
[춘추칼럼] 尹 대통령 지지율에 비치는 文 전대통령 그림자 지면기사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발표되는 국정 지지율이 심상치 않다. 취임 초임에도 낮은 지지율 조사가 발표되고 있고, 지지율 성격도 갈등형 구조라는 점이다. 취임 이후 불과 한 달이 지난 시점이라 아직 윤 대통령 지지율 분석을 하는 것이 이른 감도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으로 문 정부와 대립하면서 사실상 2년 동안 유일한 야당 대통령 후보였고, 국민들은 인수위원회 시절 국정 인수 과정도 보아 왔기에 짧다고 보기도 어렵다. 먼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지지율과 비교해서 많이 낮다. 대통령 지지율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은 긍·부정평가 외에 '보통이다'라는 중립적 평가항목 유무에 따라서 4점·5점 척도로 구분된다. 먼저 '보통이다'라는 항목이 들어가서 긍정지지율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5점 척도로 조사를 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 초 지지율은 80% 전후였고, 5점 척도 보다 더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4점 척도로 조사를 한 이후 대통령도 60% 전후, 또는 그 이상으로 출발했다. 반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11~13일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51.2%, 지난 7~10일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48.0%다. 다른 조사기관의 조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새 대통령과 국민간의 허니문 기간이 짧아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50% 전후의 지지율은 국민 전체가 아닌 고정 지지층만의 허니문에 가깝다. 尹, 50%내외 낮은 지지율과 갈등형 구조중도층, 긍정평가 보다 부정평가 더 많아 문제는 50% 내외의 낮은 정량적 지지율과 함께 갈등형 구조의 정성적 성격이다. 한길리서치 6월 대통령 국정수행평가 조사에서 긍정평가는 51.2%지만 '아주 잘하고 있다'는 33.9%, '다소 잘하고 있다'는 17.3%다. 반면 부정평가는 42.1%인데 '아주 잘못하고 있다'는 32.7%, '다소 잘못하고 있다'는 9.4%다. 이러한 대통령의 지지율 분포 모양은 바가지를 업어놓은 모양(정규분포)이 아니라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분포다. 즉 분포가 중립적 합의형이
-
[춘추칼럼] '섬머타임'이란 노래를 좋아하세요? 지면기사
여름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섬머타임(Summer time)'이란 노래 때문이다. '여름이란다. 그리고 삶은 평온하지/물고기는 뛰어오르고 목화는 잘 자랐다네/오, 아빠는 부자고 엄마는 미인이란다/그러니 쉿, 아가야, 울지 마렴//이런 아침이 계속되면 넌 다 커서 노래하겠지/넌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 거야/하지만 그때까지 아무것도 널 해치지 못할 거야/엄마 아빠가 네 곁에 있으니'.(조지 거슈인, 1919) 여름이 올 무렵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노래에 담긴 아련하고 슬픈 노스탤지어 때문에 인생의 웬만한 고달픔도 참을 만하다. 내겐 부자 아빠도, 미인 엄마도 없는데 '섬머타임'이 흘러나오면 심장이 함부로 나댄다. 어린 시절 여름의 이른 아침, 하늘은 맑고 부지런한 외할머니가 비질한 마당은 깨끗하다. 수련 꽃대가 올라오고 참새들은 짹짹거린다.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켤 때 뒷산에 올라 참나무 진액에 달라붙은 딱정벌레나 풍뎅이를 잡을 생각에 소년의 기분은 붕 뜬다. 먼 데서 수꿩이 울고, 하늘엔 흰 구름이 떠간다. 소년은 수줍음이 많았지만 숲에서는 용맹스러웠다. 아무 시름이나 걱정 없이 여름 숲을 어린 짐승처럼 땀 흘리며 뛰어다닌 소년의 작은 머리통에서는 풀 냄새가 진동했다. 복숭아 무르익어가고 수박엔 단맛이 배고태양의 중노동 덕택에 농작물이 익어간다 가난했지만 가난이 뭔지를 몰랐다. 자주 배가 고팠지만 가난에 주눅 들지 않았다. 왜 맨드라미는 피었다가 지고, 돼지는 왜 해마다 열 마리나 되는 새끼를 낳는지를, 계절이 바뀔 무렵 장롱에서 꺼낸 옷에는 왜 단추가 하나둘씩 떨어졌는지를, 맹꽁이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비 올 때만 나타나서 우는지를, 소년은 몰랐다. 땅거죽을 밀고 올라오는 작약 움이나 느릅나무에 돋는 연초록 잎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아름다움이 뭔지도 모른 채 이 세상에는 온갖 아름다움이 흘러넘친다고 생각했다. 마을 언덕바지엔 교회당이 있었지만 소년은 교회를 가 본 적이 없다. 소년은 여름 숲을 누비는 놀이의 천재일 뿐, 누구에게
-
[춘추칼럼] 알고리즘아 알고 있니? 지면기사
손안의 작은 기계에 정신을 위탁하고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 어떤 앱들은 나에게 예의바른 질문을 던지곤 한다. "당신이 나 말고 다른 앱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제가 사용자의 활동을 추적하도록 허용하겠습니까?"나는 이런 문제에 인심이 후하다. 온라인상의 내 개인 활동 이력이라고 해보았자 몇몇 친구들의 sns 안부와 뉴스 따라잡기, 조촐한 생필품 구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통같이 보호해야할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다른 앱에서 검색한 내용을 참조하여 예상치 않은 순간에 슬그머니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센스야말로 어찌나 요긴한지. 내 정보력이나 안목을 상큼하게 뛰어넘는 알고리즘의 역량에 몇 번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므로 나는 내 활동 이력을 마음껏 추적하라고 너그럽게 허락하는 편이다. 내 취향과 관심사를 알수록 더욱 더 나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할 알고리즘의 후의에 즐거운 쇼핑으로 답할 우리의 호혜적 관계를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적합한 정보로 쇼핑 호혜적 관계 의심치 않아친구 골프 제안 잊었는데 용품들 열정적 추천 다른 사람들도 알고리즘의 센스 넘치는 추천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으리라고 별 의심 없이 생각했는데, 세상은 내 생각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활동 이력 추적을 허용할지 묻는 질문에 나처럼 동의하는 사람은 5% 근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따라다니지 말라고 거절한다고 한다. 95%의 높은 거절률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난하고 안전하게 다수를 따르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별난 5%에 속해버려서 놀랐고, 남들이 아니오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고나자 이전처럼 마음 편하게 알고리즘의 추천을 즐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흔들리던 알고리즘과 나의 밀월을 방해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내 친구가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관심사는 온통 골프용품과 골프 연습장에 모이게 되었다. 친구는 나에게도 골프를 함께 배우자고,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소감을 강력하게 피력했는데 내 나이대에는 골프를 배우기 시작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사실 나에게 이런 권유가 처
-
[춘추칼럼] 홀로 뿌린 데모 전단 지면기사
1976년 12월, 진눈깨비 날리는 서울대 도서관 앞에서 한 학생이 경찰을 따돌리며 홀로 전단을 뿌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눈발과 함께 구경만 하는 학생들. 박정희 정권이 유신독재의 추악상을 감추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로비를 벌인다는 것이었다.이범영! 미국 의회 청문회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던 박동선 스캔들이 그 4학년 선배의 시위로 국내에도 알려져 박 정권의 가면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숨죽이던 사람들이 그때부터 기지개를 켰고, 시위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것은 부마사태로 이어졌고 박 정권은 김재규의 총성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이범영, 그가 겨울 교정에서 외롭게 외치다 잡혀간 지 3년 만이었다.박정희 정권 가면 벗긴 '이범영 선배 시위''국민위한 단일화' 내 제안 받아들인 안철수 그리고 44년이 흘렀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대한민국, 입법·행정은 물론 지방 권력까지 장악해 독주만 하는 문재인 정권, 사법부까지 흔들어대는 권력의 오만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힘없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 그 선배가 떠올랐다. 학생일 뿐인 그가 세상을 바꾸는 물꼬를 트지 않았던가. 3년 전 조국 사태로 고군분투하던 윤석열 총장의 용기를 보며 그를 만났다. 다행히 그는 지혜로운 검사로 보였다. "윤 총장! 지금 이 어두움을 걷어내면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불러낼 겁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1년 후 그는 유력한 대선 후보로 등장했다. 그런데 벌써 대통령이라도 다 된 듯 걸음걸이며 말투가 지나쳐 보였다. 국민들의 성원이 지속될까? 그의 부풀어 오른 자신감에서 바람을 빼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력이든 학식이든 인품이든 윤석열에게 뒤지지 않을 인물을 찾기로 했다. 안철수가 떠올랐다. 일면식도 없는 그를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더니 후배가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시장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해 위축돼 있던 그를 만나자마자 나는 "윤석열을 위해서도 이번 대선에 꼭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유력한 야당 후보라도 견제할 후보가 있으면 자세를 낮추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