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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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안전! 일일 소방관의 감회 지면기사
오토바이를 타고 충청도 말을 하면서 전국을 여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알린 사람이 되었나 보다. 내친김에 일일 소방관이 되어 내 고향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향으로 향하는 새벽녘은 차창을 적실 정도의 가랑비가 내렸다. '비가 오니까 축소해서 하겠지'라는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태안소방서에 도착했다. 아파트 2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빨간 소화기가 나를 반기고 널찍한 주차장에 군함처럼 늠름한 소방서가 눈에 들어온다.소방관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니 그야말로 각이 딱 잡힌 소방관이다. 제복이 주는 경건함과 비장함이 느껴진다. 일일 선생님으로 모신 사수는 "소방업무는 불끄기, 구조, 구급 3단계로 나뉩니다. 신고가 들어오면 차에서 1분 안에 옷을 갈아입고 현장출동을 해야 합니다. 아주 긴박해요"라면서 교육을 시작했다. 소방서 한편에 군고구마를 굽는 빨간 통이 놓여있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여쭈었더니 1950년대 원북 소방서에서 불을 끄던 소방차라고 설명을 해준다. 리어카에 실려있는 물통에 물을 채우고 경운기 엔진만한 엔진을 달고 나가서 불을 껐다고 한다. 지금의 커다란 펌프카 소방차에 비교하니 그저 장난감 같아 보이는 차지만 당시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든든한 소방차였을까. 그런데 설명해주시는 소방관은 아주 앳된 소녀로 보이는 소방관이었다. "잠깐만요. 학생 아니세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소방관 맞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직접 불도 끄러 나가세요?" 했더니 "네, 직접 불을 끄러 나갑니다. 불 끄는데 남녀와 나이 구분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목소리는 오히려 더 크고 당당했다. TV프로그램 덕에 고향을 알린 사람이 됐다내친김에 일일 소방관으로 홍보 내실화까지해보니… 나를 대신해 위험을 감수하는 일 이어서 바로 특수 구급훈련장소로 이동했다. 구조해야 하는 환자를 만났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방법이다. 맨 먼저 119에 신고를 요청하고 다른 사람이 있으면 주위에 자동제세동기(AED)를 가져와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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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사실과 진실, 대장동 사건을 보라! 지면기사
우리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반가워하며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집값이나 대장동, 이재명과 윤석열, 홍준표를 이야기한다.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뉴스와 정치인을 만날 뿐이다. 친구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은 친구를 만난 것이 아니다.나는 내가 발행하는 '월간독자 Reader'를 즐겨 보낸다. 그러면 "독자는 얼마나 되냐, 돈은 되냐"부터 묻는다. 편집위원 중에 유명인사라도 있으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한다. 글에 담긴 진실을 나누고 싶은데 사실만 알아내려고 애쓴다.언젠가 수십 년간 고위 공직에 있던 사람의 전재산이 몇천만 원에 불과한 걸 두고 언론에서는 그가 청렴결백하다고 떠들썩했다. 알고 보니 그는 퇴근 후 술집에 틀어박혀 월급을 술로 낭비했다. 그가 청렴한 공직자였을까. 무책임한 가장이었을까? 재산이 적다는 사실만 강조하다 보면 재산을 탕진한 무책임한 진실은 덮여버린다. 후보들 약자위한 것처럼 보이는 공약 많아'누군가로부터 빼앗은것 나눠 갖는게' 진실 현 정권은 다주택자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면 주택값이 안정될 거라고 큰소리쳤다. 서민을 위한 정책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세금이 오른 만큼 주택값도 임대료도 올라 결국 서민들의 집 구하기는 훨씬 더 힘들어졌다. 이것이 진실이다.미국과 패권을 다퉜던 소련이 공산화 초기 무상분배로 열렬한 박수를 받았지만 점점 국민들을 무능하게 만들어 거지꼴이 되었다. 무상으로 돈만 풀면 생산 증가는 없는데 시중에 돈만 쌓여 물가가 올라 생활은 오히려 궁핍해진다. 그런데도 현 정권은 세금을 더 부과해 서민들에게 나누어주면 소득이 늘고 소비로 이어져 경제가 성장하고 그 결과, 소득이 또 증가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을 고수했다. 부분 부분의 사실만 좇으면 서민들의 소득이 늘어야 했다. 과연 그랬는가!대장동 사건도 누가 얼마를 먹었느냐 같은 단편적 사실이 강조될수록 거대한 진실은 덮이고 만다. 택지개발은 기획단계부터 비용과 수익을 미리 계산하고 실행에 들어간다. 아파트 몇 채를 얼마씩 분양할지 곱하기만 하면 수입이 정확히 계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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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보수는 왜 스스로 대선 주자 못 만드나? 지면기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10일 최종후보를 확정하고, 국민의힘도 8일 2차 경선을 통해 4명의 후보로 압축한다.그런데 역대 전통보수는 스스로 대권 주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대부분 과거 보수 대통령이나 후보는 외부에서 주요 경력을 쌓은 자산으로 대선 후보가 되었다.정치경력을 논할 수 없었던 건국 초기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군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김영삼도 보수와 대척점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이후 3당 합당을 했고 '脫군부 권위주의'로 보수의 권력을 연장시켰다. 대선에 2번이나 출마했던 이회창도 영입케이스다. 이명박은 대기업에서 만든 신화였다. 박근혜조차 당시 한나라당 내 착근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막상 대통령도 박정희의 딸이라는 후광이 컸다. 역대 대통령이나 대선후보들을 보면 하나같이 보수당에서 잔뼈가 자란, 다시 말해 보수당이 스스로 키우지 않았다. '보수의 가치' 논의없이 좌파공격만 보여줘스스로 수구교조화 돼 거의 종교집단 형태 이번도 그렇다. 작년 윤석열이 조국과 대치하면서 대선 후보로 부상되기 전까지는 국민의힘 중심 정권교체가 무망했다. 그런 분위기가 외부에서 윤석열과 최재형이 합류하면서 정권교체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보수정당 정치인들은 보수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막상 보수에 대한 이론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담론이나 설명조차 잘 없다. 보수는 기존의 것을 지키는 것, 자유 우파, 또는 반공 정도로 뭉뚱그린 보수다. 보수가 무엇이며 보수의 가치나 도덕을 논하는 것은 어렵고 번거로우니 그냥 닥치고 좌파공격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보수는 정치인마다 모호하고, 정치인마다 공격 좌표를 찍은 좌파가 다르다 보니 보수가 규정하는 좌파의 수도 점점 늘어난다.큰 정부나 국가주도정책도, 복지, 지역 균형발전, 평준화, 탄소제로·탈원전도 좌파다. 사회적 책임과 연예인 기부도 좌파다. 끝도 밑도 없이 좌파다. 그러다 박정희도 좌파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서울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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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운 좋은 인생 지면기사
며칠 새 가을 기운이 완연해졌다. 푸른 하늘은 명징하다. 구름은 한가롭다. 산기슭에 구절초 꽃은 하늘거리고, 물가에 무리를 이룬 어여쁜 여뀌는 가을의 전령 같다. 대기가 맑으니 가시거리가 한껏 길어진다. 서울 남산타워에서는 인천 바다가 눈앞에 있는 듯하고,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개성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먼 풍경이 가까이 다가올 때 횡재를 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살아서 이런 가을을 맞으니 나는 그럭저럭 운 좋은 인생을 산 셈이다. 아침에는 강낭콩을 넣어 햅쌀로 지은 밥에 갈치조림을 먹었다. 갈치와 함께 얼큰하게 조린 가을무가 달다. 가을볕 드는 창가에 앉아 가르랑거리는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고, 붉은빛 도는 남천나무를 바라볼 수 있다면 운 좋은 인생을 살았다 해도 좋으리라. 해 질 녘 아이를 부르는 어머니, 기침하는 사람들, 입원한 혈액 투석환자들,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남자, 젖 달라고 생떼를 쓰는 아기들, 사랑을 앓는 다정한 청년들이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간다. 사람으로 사는 한 잔디 깎는 기계에 끼여 죽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다. 게다가 먼 고장에 인심이 후한 고모들 두엇이 살아 있고 그 고모의 딸들이 잘 웃는 처녀들이라면 세상은 더욱 살 만할 것이다.우리는 크고 작은 번민을 견디며 살아가듯삶이 늘 뜻대로 안되는것은 당신 잘못 아냐 어렸을 때 이웃에 진주가 고향인 아주머니가 살았다. 남편은 큰 요릿집에서 일하는 요리사였다. 그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자매처럼 사이가 좋았다. 두 집 다 가난한 살림을 꾸렸는데, 가진 것을 자주 나누었다. 그 남편이 간혹 요릿집에서 남은 음식을 가져올 때는 우리 집과 나누곤 했다. 처음 먹는 생선요리였는데,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 그 집은 아들만 셋이고, 그중 한 애는 내 또래였다. 세월이 오래된 탓에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잊었지만 그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진주 말씨는 잊지 못한다. 아주머니 목소리의 맑은 울림과 진주 말씨는 정말 좋았다. 귓가에 맑은 은종이 울리는 듯했다. 몇 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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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인생은 육십부터인 이유 지면기사
새해 초 여러 곳에서 주는 달력을 마다하고 하루하루 떼어내는 일력을 사다가 걸었다. 내심 올해는 일신일신 우일신(日新日新 又日新)해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떼어내며 새로운 날을 살아보겠다는 각오는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한꺼번에 여섯 장을 떼어냈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일까 달력을 떼어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서였을까. 어느새 달력의 두께는 아주 얇아졌다. 절기상으로도 상강을 향해 달려가니 월동준비도 해야 하고 금세 새해가 올 것 같다.올해가 아직도 두어 달이나 남았는데 내가 새해 타령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년이면 나는 육십이 된다. 내가 어떻게 육십이라는 나이를 먹지? 육십이라는 나이는 옆집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있을 나이이지 어떻게 나에게 육십이라는 나이가 오나. 이제 늙어갈 일밖에 없겠다고 인식하는 순간 덜컥 겁이 나고 두렵기도 했다. 나보다 먼저 육십을 맞은 사람들도 이런 심정이었겠지. 마음 성숙해지고 무슨 말에도 거슬림 없어인생중 한번은 은퇴, 100세시대 반갑지않아 육십을 맞이하는 게 이렇게 두려운데 사람들은 왜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을까. 나는 그 답을 찾아 나섰다. '논어 위정'편은 공자가 본인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회고하는 구절이 있다. 공자는 나이 십오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삼십에 홀로 설 수 있었으며 사십은 불혹이라 하였고 오십에 지천명하였으며 육십에 이순하였고 칠십에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여도 법과 도덕에 저촉됨이 없다고 하였다.어느 구절보다 육십에 귀가 순해진다는 말의 뜻이 궁금해진다. 논어를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송대 주희가 주를 달아놓기를 육십은 마음이 통하여(心通) 무엇을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된 것을 아는 때라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결국 마음이란 것은 육십이 되어야 성숙해지고 무르익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과 쉬이 마음이 통하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나 보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영복 교수는 오랜 수감생활 동안 본인이 읽어온 동양고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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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윤석열, 그의 선거 전략은? 지면기사
여권의 히어로였던 윤석열이 여권의 기피 인물이 되고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2년 전 내 사무실 건너 대검찰청 앞 도로는 '조국파'와 '윤석열파'로 나뉘어 아수라장이었다. 진보진영의 후광을 입은 검찰총장이 진보의 아이콘 조국을 수사하다니….윤석열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나라를 위해 나선 것이라면 그에게 길거리의 지지와는 또 다른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직 검찰총장이 나를 만나주겠는가.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어느 일요일 그와 찻집에 마주 앉았다. 내 궁금증에 그는 분명하게 답했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정권 내부의 환부를 도려내야 합니다. 대통령도 제 마음을 아실 겁니다." 현 정권이 올바로 가도록 수난의 길을 걷겠다는 그의 결의에 내가 오히려 위로받는 것 같았다. "전 정권 수사 때는 당신 역시 '정권의 개'인가 했는데 현 정권까지 수사하는 걸 보니 이제 '검사'로 보이는군요." 무례한 내 말에 화를 낼 법한데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그릇이 작진 않은 듯해 한마디 했다. "앞으로 진보든 보수든 모두 힘들게 할 겁니다. 국민들만 보고 힘껏 나아가세요."정치 현실 무시할 수 없다며 세력확장 몰두'현실정치' 빠져들수록 지지율은 줄어들어 그 후 대통령이 불의한 내 편을 감싼다는 의구심이 커져 갔고 서울·부산 보궐선거로 국민들의 마음이 확인되었다. 만약 문 대통령이 윤석열의 정권 내부 수사에 협조했더라면. 문 대통령이야말로 내 편의 잘못에도 칼을 빼어 드는 공정한 대통령이라며 국민들은 얼마나 환호했을까. 그것은 문재인 정권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는 아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정권이 공격하면 할수록 거물이 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박정희의 탄압이 김영삼, 김대중을 거물로 만들었듯 문 대통령이 윤석열을 내치자, 현 정권 인사들은 무차별적으로 그를 공격했다. 윤석열을 키운 것도 바로 대통령이었다.요즘도 여권은 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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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386은 왜 대선후보가 없는가? 지면기사
1980년대 학생운동세력이 2000년대 본격적으로 정치에 진출하여 386으로 불렸다. 386세력의 정치권 진출과정을 보면 이들에 대한 기대도 컸기에 정치권 진입도 특혜를 받았고, 정치에 들어와서도 특별대우를 받아 원내에 쉽게 진입했다.어느덧 세월이 흘러 386세력은 586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과정에서 50대 또는 60대에 진입한 586세력이 대중적 정치 지도자나 대통령으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들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세대 인구수가 역대 어느 시기보다 많기에 세대적 지원도 클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386세력의 등장을 보면서 첫 등장부터 창대했으니 현재 586에서는 당연히 더욱더 창대하리라 전망했다. 그러나 그러한 전망은 사라지고 있다. 정치권 등장부터 창대했으나 기대 사라져계몽적 사명감에 민심 대하는 태도도 달라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차기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지만 각 당 어디에도 586 유력 대권주자는 없다.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2강을 형성하는 이낙연이나 이재명 모두 과거 학생운동권 386이 아니다. 국민의힘 후보 중에서 원희룡 등이 있지만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 등 유력 주자에 밀리고 있다. 이는 386세력이 대중적 정치인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그렇지만 386세력이 많이 진출한 민주당은 당과 정부에는 자리를 잡고 있다. 송영길 당대표나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들의 위치는 대중적 정치인으로서 개인적 성취라기보다는 민주당이 여당이 되면서 민주당 내 관계에서 주어지는 측면이 크다. 이는 달리 말해 386세력의 집단적 성취다.김영삼·김대중은 이미 1970년대에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고, 61년생인 오바마는 2009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대통령을 하고 물러났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1977년생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왜 386세대에서 대중적 정치인 또는 국가 리더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이나 원인분석이 있어 왔다. 그러나 그 원인을 이들 386정치인의 민심 또는 여론을 대하는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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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가을밤에 생각한 것들 지면기사
가을의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밤의 서늘한 기운을 품은 풀벌레 소리의 데시벨이 부쩍 높아졌다. 불을 켜지 않은 채 풀벌레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것은 마치 영원의 저쪽에서 보내는 신호 같다. 몸 안의 가장 작은 뼈인 추골, 침골, 등골 등을 통해 이 소리가 전달된다. 이 청각의 기적을 타고 가을밤의 쓸쓸함과 멜랑콜리가 몰려온다. 물론 내 상태는 항우울제인 프로작을 삼켜야 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19세기 초 런던 거리에는 약 4만개의 가스등이 켜졌다. 헤드랜턴도 손전등도 없던 시절 작가 디킨스는 불면 때문에 축축한 습기와 안개가 짓이겨진 어둠이 유령처럼 떠도는 런던 거리를 쏘다녔다. 촛불과 고래기름을 써서 어둠을 밝히던 시대는 빠르게 지나갔다. 백열구가 나오고 산업사회로 진입한 뒤 인공조명들이 밤을 장악한다. 그리고 빛공해와 소음에 의해 밤은 잠식되었다. 이론적으로 인간은 밤하늘에서 3천개의 별을 식별할 수 있다지만 많은 별과 은하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이에 따라 빛과 어둠의 순환주기가 깨졌다. 많은 양서류와 파충류들이 이것에 영향을 받아 생태적 교란에 빠졌다. 밤은 낮의 노동·근심으로부터 해방시켜줘달이 뜨면 고요·쓸쓸함·멜랑콜리를 맞는다 우리 영혼 깊은 곳에는 밤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저 선사시대 인류의 뇌에 눌어붙어 있던 두려움이 유전된 탓이다. 밤마다 맹수들이 포효하고, 재앙은 어디서 덮칠지 몰랐던 시대에 밤은 지옥의 휘장이었다. 밤이면 소등과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중세 때까지 밤은 약탈과 방화가 일어나는 위험한 시간으로 인지되었다. 악령들이 출몰하는 미지와 불가사의의 시간, 갖가지 범죄들이 들끓는 시간에 인류는 전전긍긍했다. "밤은 인간 최초의 필요악이자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자주 출몰하는 두려움이다."(로저 에커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현대에 와서야 밤에 덧씌워진 사악한 이미지가 벗겨지고, 인류는 밤의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밤은 어둠의 시간이다. 밤은 개와 늑대가 분별이 안 되는 땅거미 질 때 시작한다. 해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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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천년 음식을 만드는 스토리텔링 지면기사
현대인들은 출근길에 인터넷 뉴스 읽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주제별로 모아 놓으니 이곳에서 골라서 볼 수 있다. 오늘은 '학교도 이렇게 일찍 안 갔다'라는 인터넷 뉴스에 관심이 간다.우리가 별다방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제법 근사한 상품이 나오는 날이란다. 커피 300잔을 130만원을 내고 먹으면 받을 수 있는 여행가방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돈을 다 지불하고 커피는 한 잔만 마시고 가방을 받아 갔다는 내용이다.무엇이 숱한 사람들을 별다방에 매달리게 하는가. 그 비밀은 이야기다. 이곳에 가면 어느 지점을 가더라도 똑같은 맛을 유지하고 매장이 넓어서 쾌적하며 응용소프트웨어를 깔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인데 '스토리의 과학' 저자 킨드라 홀은 "스토리가 있으면 저항이 사라지고, 음식을 먹어보지 않고도 그 음식점에 가고 싶어지고, 냄새를 맡아보지 않아도 그 향수가 사고 싶어지고, 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이 제품을 사랑하게 된다"고 말한다.기업에서도 생산하는 제품에 스토리를 입히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지갑을 열게 한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은 제품뿐만 아니라 음식분야에서도 중요시되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잘해서 천년을 살아 내려온 요리도 있으니 다름 아닌 동파육이다.소동파 詩 '저육송' 돼지고기 찬미 노래지만실제로는 동파육을 만드는 방법 읊조린 것 소식은 중국 북송대의 문인이자 철학자로서 우리에게는 소동파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당시 소식은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의견을 내면서 기나 긴 시간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데 후베이성 황주(黃州)에 단련부사라는 보잘 것 없는 직책으로 좌천되어 5년간 머무르게 된다.그의 시를 보면 황주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황주로 온 지 2년은 하루하루가 곤했다. 마정경이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을 불쌍히 여겨 군에 청하여 땅 몇 마지기를 얻어주어 농사를 지으면서 근근이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땅이 너무 황폐해지고 가시덤불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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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선(善) 자원론 지면기사
선배 변호사와 함께 현장검증을 가게 되었다. "윤 변호사, 한 달에 얼마나 벌어?" 내 수입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나보다 수입이 세 배나 많구먼!"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부장판사를 지낸 그의 수입이 초짜 변호사인 나보다 훨씬 적다니…. 나도 놀랐다. 경력이든 인맥이든 내놓을 것 없는 나에게 그 선배가 비결을 물었다.판검사도 한 적 없던 내가 사무실을 열자 사람들은 브로커라도 써야 사무실 유지라도 할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업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내 사무실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법조 고위직 출신이나 브로커를 쓰는 사무실에 가보면 손님이 북적북적했지만 무슨 배짱인지 그런 변호사는 되고 싶지 않았다. '진실하게 대하면 돈 잘번다' 체험 또 체험착한 마음 가지면 세상 잘 살수 있다는 확신 그러던 어느 날 두 부인이 찾아와 남편들이 집행유예 기간 중에 더 큰 죄를 저지르고 구속되었다며 "석방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사건을 맡으면 직원 월급도 주고 월세도 낼 수 있었다.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남편의 죄가 커서 힘들겠습니다." 모처럼 찾아온 고객을 놓칠 것이 뻔했다. 한참 침묵이 흘렀다. 한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변호사님! 이 사건 맡아주세요."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 부인은 말했다. "법무부 장관, 고위 법관 출신 변호사도 만났어요. 수임료만 많이 주면 석방시킬 수 있을 듯이 말했습니다. 내가 바보입니까? 나는 세운상가 일등 장사꾼입니다. 얼굴만 봐도 거짓말하는지 정직하게 말하는지 대번에 알 수 있어요. 변호사님은 믿고 맡길 수 있겠어요. 비용은 얼마 드리면 되나요?" 200만원이라고 하자 부인은 100만원권 수표 30장을 내밀었다. 어차피 선임료로 쓰려고 가지고 다닌 돈이라며. 1987년 당시 3천만원이면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엄청난 돈이었다. 나는 내가 말한 수임료만 받았다. 부인은 날마다 "돈이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라며 전화로 물어왔다. 전 재산 700만원으로 전세 살고 있던 처지였지만 나는 끝내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다른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