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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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극장에 있는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 지면기사
어느 날 한 후배가 물었다. "공연장에서는 숨만 크게 쉬어도 옆에서 뭐라 한다는 데 사실인가요?" 질문을 듣고 뭐라 대답해줘야 할지 살짝 고민했다. '어쩔 수 없는 별것 아닌 일에도 눈치를 준다'는 사례들을 들어서인지, 괜히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겪은 '관크'에 대해 설명해줬다. "공연을 하고 있는데 무대 사진도 찍고, 심지어 셀카도 찍더라. 그 사진을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아마 주변에 자랑처럼 보여주겠지?" 그 얘기를 들은 후배가 "그건 좀 심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관크에 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관크는 '관객 크리티컬(critical)'의 줄임말로 공연 관람 과정에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리사이틀 도중에 나온 휴대전화 벨 소리 관크 일화는 유명하다. 정명훈이 재치있게 벨 소리를 피아노로 연주하며 해프닝처럼 넘어갔지만, 사실 공연장에서 나와선 안 되는 장면이다. 예민하기로 소문난 '완벽주의자'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공연에서는 휴대전화는 물론 연주에 방해되는 소리가 절대 나지 않게 극도로 주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도 하다.공연장을 자주 찾는 편인 내가 나름대로 기록해놓은 후기들을 보면 어떨 때는 공연 내용보다 관크 당한 이야기가 더 길어 씁쓸할 때가 있다. 조용한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메시지 알림음 소리, 공연 내내 관람평을 속삭이던 커플, 옆자리에서 환하게 켜지던 휴대폰 불빛 등….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간 공연을 온전히 누리고 오지 못하는 것이 꽤나 억울하고 유쾌하지 못하다. 공연하는 아티스트에게도 정성 들여 보여주는 무대가 아쉬워지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공연장 예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브로드웨이의 살아있는 전설 '패티 루폰'이 말한 "극장에 있는 모두는 존중받아야 한다"에서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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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당연한 것들 지면기사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가수 이적의 곡 '당연한 것들' 노랫말은 거리를 걷고 친구를 만나던 것처럼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최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해제됐다. 당연한 일상을 되찾은 거리두기 해제 첫날, 나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2년여간 이어진 거리두기가 마침내 풀렸는데 이제야 온전히 거리두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을 겪어야 했다. 코로나가 아직 건재해서다. 27일 0시 기준 국내 누적 확진자는 1천708만6천여명이다. 세 사람 중 한 명이 코로나에 걸리는 동안 우리는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몸 약한 노부모를 격리실에 입원시키고 단절된 유리창 너머로 면회를 해야 했다거나 장례를 지낼 곳이 없어 장례식장을 찾으려 닥치는 대로 전화를 돌렸다는 사람, 고인의 시신을 거둘 화장장이 부족해 장소를 찾느라 밤을 지새운 이들의 푸념이 들렸다. 산모는 응급차에서 분만을 해야 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렸고 생후 7개월 아이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재택치료 중 숨지는 일도 있었다. 상인이 가게 빚을 못 갚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를 비롯해 사회 곳곳이 아팠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긴 터널을 지나 거리두기는 결국 끝났지만 상처는 남았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전염병에 대비해야 한다. 준비 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과가 어땠는지 우리는 수차례 목격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상공인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계속 보살펴야 할 때다. 사회구성원 간 멀어진 심리적 거리도 좁혀야 한다.올해는 두 차례의 큰 선거가 있다. 대통령선거는 지났고, 한 달여 뒤 지방선거다. 사회가 몸이라면 사회 곳곳으로 뻗어 생기 돌게 할 모세혈관을 뽑는 선거다. 후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의 삶을 더 좋게 바꿔드리겠다, 뽑아주면 열심히 일하겠다…. 아파봐서인지,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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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50만원에 얽힌 부끄러움 지면기사
이제 와 생각해도 참 부끄러운 기억이다. 2년 전, 동료 기자들과 세월호 6주기에 맞춰 '세월호 그 후, 또 4월이 간다'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한 적이 있다. 사흘간 경인일보 지면 1~3면을 할애하는 꽤 큰 규모의 프로젝트였다. 마지막 날 1면은 '세월호 장학생'인 수원시의 한 고등학생 이야기로 꾸몄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과 교사 261명의 이름으로 세워진 '416단원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이야기였다. 그해 세월호기획팀은 전국언론노동조합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의 모범조합원으로 선정됐다. 그렇게 받은 상금이 50만원이었다. 예상치 못한 부가 수입에 들뜬 나는, 이 돈을 동료들과 어떻게 나눌지부터 고민했다. 그때 한 선배가 기부를 제안했다. 세월호 관련 단체에 기획팀 이름으로 상금을 기부하자는 의견이었다. 아차 싶었다. 그리고는 부끄러워졌다. 아무 대가 없이 취재에 도움을 줬던 많은 사람들이 떠올라 더욱 그런 감정이 들었다. 이후 기획팀은 적당한 기부처를 상의했고, 취재를 하며 인연을 맺은 416단원장학재단에 50만원을 기부했다.2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준 동시에 뿌듯한 감정을 선물해준 416단원장학재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히고, 기부금 수입이 꾸준히 줄어 지난해 4월을 마지막으로 해산(4월18일자 7면 보도='416단원장학재단' 해산 알려져)했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꿈과 이상을 미래 세대로 잇자던 장학재단의 목표는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이러한 사실을 1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알았다. 장학재단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가 멋쩍은 목소리로 해산 소식을 알려줬다. 안타깝고, 또 한 번 부끄러웠다. 세월호 8주기라는 때가 돌아오니 그제야 장학재단의 소식이 궁금해진 내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지금 해도 소용없는 후회를 문득 해본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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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특례시 완성' 외친 수원시장 예비후보님들! 지면기사
"수원특례시 출범? 특례시 되면 뭐가 좋아져?" 주말이던 지난 3일 오전 가족들과 한 차로 이동하던 중 '수원특례시 출범'을 자축하는 수원시의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이 물었다. 단 몇 초였지만 긴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한 번에 쉽게 이해할까.일단 "경기도 같은 광역단체 수준의 행정 권한이 생기는 거"라고 답해줬다. 그런데 시청 담당 기자도 아닌 동생이 '광역단체'가 무엇이며, '행정 권한'이 얼마만큼이든 관심 있을 리 만무하겠단 생각에 다시 고민에 들어갔다.특례시가 되면서 일반 시민이 체감할 만한 행정 권한이 뭐가 있을까. 당초 중앙정부나 경기도가 하던 택지개발지구 지정, 개발제한구역 해제, 산업·물류단지 개발 같은 걸 수원시가 하게 될 경우 개발사업 같은 게 전보다 좀 빨라지겠으나 동생이 그걸 몸으로 느낄까. 그나마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 권한을 수원시가 넘겨받으면 이전보다 수원시 내에 차가 조금 덜 밀릴지 모르겠다.어떤 권한을 넘겨받아야 동생 같은 일반 시민이 특례시를 제대로 체감할지 고민하던 중 사실 아직 중앙정부나 경기도에서 넘겨받은 권한이 아무것도 없단 사실이 떠올랐다. 현재 특례시들이 권한을 넘겨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86개 행정 사무 중 단 6개만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논의 중이고, 나머지는 국회 문턱조차 못 밟았다.결국 동생에게 아무런 '특례시 자랑'도 못 해줬다. 나름 수원시 담당 기자인 형으로서 민망한 마음이었다. 그때 인터넷 포털에 '수원특례시'를 검색한 동생이 "'수원특례시 완성'이라 나오는데?"라는 말을 건넸을 때도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완성은 무슨, 아직 멀었어"라고 솔직히 말하기는 창피했다.인터넷 포털에 '특례시 완성'이라고 검색되게끔 공약을 내 건 이번 6·1 지방선거 수원시장 예비후보님들 덕분에 동생과 같은 일반 시민들에게 특례시에 대해 해줄 자랑이 많아질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 joonsk@kyeongin.com김준석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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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K소상공인의 목소리 지면기사
소상공인(小商工人)은 상시 근로자수가 5인 미만인 기업자나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한다. 경제산업부로 발령 난 이후 수많은 소상공인들을 만났다. 최근에는 특이한 습관도 생겼다. 점심, 저녁 자리에 가면 항상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감소 등 그들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들리겠지만 나에게 그들의 목소리는 훗날 기사로 재생산되곤 한다.2020년 1월20일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한 달 뒤인 2월29일부터 식당과 카페 등의 이용인원과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다. 거리두기는 2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도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며 유지되고 있다.2년여 간의 거리두기로 소상공인들은 그야말로 초토화됐다. 음식점은 배달이라도 하면서 끼니를 이어갈 수 있지만 노래연습장은 한마디로 '답'이 없다. 노래연습장 손님들 대부분은 술자리의 흥을 이어가기 위해 찾는다. 하지만 밤 9시, 10시 등의 영업시간 제한은 노래연습장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즐겨 찾던 수원 우만동의 한 노래연습장은 고요한 적막감이 익숙해졌다. 그동안 밀린 월세와 손해 비용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5천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최근 사회적 거리두기를 폐기하려는 정부는 소상공인들이 2년 동안 희생한 대가를 고작 수백만원의 방역지원금으로 갈음하려고 한다. 지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상공인들에 대한 감사 표시다. 정부의 K방역 덕분에 코로나19 확산세를 늦춘 게 아니라 '여러분'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이라고. 한 소상공인이 열변을 토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차피 코로나로 죽나 굶어 죽나 매한가지 아닙니까?" /서승택 경제산업부 기자 taxi226@kyeongin.com서승택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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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오늘이 제일 싼 기름값 지면기사
친구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에 운전면허를 땄다. 장롱면허 운전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서툴지만 지난해 12월부터 차를 몰고 다니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친구도 운전대를 잡게 되면서 만나면 할 얘기가 많아졌다. 비보호 좌회전부터 좁은 골목에서 만나는 반대편 운전자까지. 초보운전 스티커가 부적처럼 느껴지는 우리에겐 핸들을 잡으면서 일어난 일이 안줏거리고 영웅담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차에 시동을 거는 게 영 즐겁지 않다. 계기판에 킬로미터 수가 떨어질 때마다 한숨이 난다. 첫차가 생겼던 2021년 12월만 하더라도 ℓ당 1천500원대였던 휘발윳값이 2천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을 보면 20일 기준 경기지역 보통휘발유 평균 ℓ당 가격은 2천16.23원이다. 2천20.40원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지난 16일 이후 조금씩 하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2천원대다. 지난 1일(1천770.39원)과 비교해도 245.84원 차이가 난다.기름값 250원 차이는 굉장히 크다. 연료탱크용량이 35ℓ인 현대 캐스퍼에 가득 주유한다고 가정해보자. 1일에는 6만1천963원이면 됐지만, 20일에는 7만714원을 내야 한다. 20일 만에 기름값을 8천751원 더 내게 된 것이다. 이는 연료탱크용량이 클수록, 부담할 금액이 커진다.문제는 앞으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진전으로 국제 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려면 통상 2~3주는 걸린다. 기름값 2천원 시대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보다 어제가, 내일보다는 오늘이 싼 기름값에 운전자들의 비명이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의 유류세 20% 인하 조치는 상쇄된 지 오래란 평이 지배적이다. 특단의 대책,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윤혜경 경제산업부 기자 hyegyung@kyeongin.com윤혜경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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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프로 구단의 숨겨진 영웅들 지면기사
'숨겨진 영웅 신명자 감사합니다'.지난 13일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의 관중석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다.인천 구단은 이날 홈 경기에 앞서 조금 특별한 행사를 열었다. 바로 18년 동안 인천 선수들의 식단을 책임진 신명자 조리사의 퇴임식을 개최한 것.신 여사는 축구장에 선 채 전광판을 바라봤다. 전광판에서는 과거 인천에 몸담았었던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가 신 여사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구단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선수들의 은퇴식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행사가 진행된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인천을 위해 뒤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신 여사에 대한 구단의 예우였다.지난 5일 취재를 위해 찾은 부산 기장군의 프로야구 수원 kt wiz 스프링캠프 현장에서는 동분서주하는 구단 관계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수많은 취재진을 안내하고 캠프를 찾은 팬들의 질문에 응대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야구장 주변을 관리하기도 했다.프로 구단에는 선수와 감독만 존재하지 않는다. 팀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경기 외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구단 직원들이 있다. 구단의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을 비롯해 인천의 신 여사처럼 선수들에게 맛있고 영양이 듬뿍 담긴 음식을 제공하는 조리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런 직원들 덕분에 선수들은 오롯이 경기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고 팬들은 안락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인천처럼 구단을 위해 오랜 기간 헌신한 직원의 퇴임식을 성대하게 열어주는 프로 구단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 프로 스포츠 무대를 풍성하게 하는 동시에 구단의 품격도 높이는 일이다. /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레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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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인천초등생 유괴 살인사건과 소년법 개정 논쟁 지면기사
"세상을 떠난 우리 아이가 더는 슬퍼하지 않을 만큼 (피고인이) 제대로 된 벌을 받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2017년 7월12일. 수습기자 시절, 인천지법의 한 법정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증인석에 앉아 피고인의 엄벌을 호소하면서 한 말이었다. 자신에게 보물과 같았다는 8살 막내딸을 하루아침에 떠나보낸 어머니의 시선은 줄곧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뒤 유기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선 사람은 미성년자인 A(17)양이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큰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인천 초등생 유괴살인사건' 재판이었다. 생전 처음 경험한 재판이었기 때문에 그날의 기억은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최근 쉬는 날 볼거리를 찾다가 넷플릭스 국내 제작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게 됐는데 첫 번째 일화가 유독 낯익었다. 피고인 성별, 나이 등 세부적인 부분은 달랐지만 사건의 큰 줄거리가 5년 전을 떠올리게 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드라마에선 만 13세 나이의 촉법소년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촉법소년은 소년법에 따라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이 내려진다. A양은 징역 20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드라마에서의 촉법소년은 장기 소년원 송치인 보호처분 10호를 받게 된다. 물론 A양도 범행 당시 만 18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재판부가 무기징역을 선택하더라도 관련 법에 따라 20년의 유기징역형을 선고해야 하는 점이 반영됐다.5년 전 그때처럼 이번에는 소년범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 소년심판이 세계적인 관심을 끌면서 소년범 처벌 강화 등 소년법 개정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소년범은 미성숙하고, 장래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게 소년법이다. 소년범 처벌 강화 등 국민 법감정을 고려한 소년법 개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하다. 이와 함께 소년법 취지대로 소년범을 교화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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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비극과 책임 지면기사
10년간 26건.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의 수다. 특히 코로나19로 가족의 돌봄 부담이 커지며 죽음은 더욱 빈번해졌다. 2020년 3월 제주도에서는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발달장애인과 어머니가 세상을 등졌고, 이듬해 11월 전남 담양에서 발달장애인 아버지가 발달장애 자녀와 노모를 살해했다. 비극은 매년 장소와 날짜를 달리해 비슷한 형태로 반복돼왔다. 지난 2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9살 아이가 엄마의 손에 숨졌다. 강아지를 좋아했고 또래보다 유난히 몸집이 작았던 아이였다. 미혼모인 엄마는 발달장애를 앓던 아이를 홀로 키워왔다. 모자는 매달 160만원가량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월세 20만원 반지하에서 함께 지냈다. 20년을 넘게 동네에서 살아온 주민들조차 이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어떤 기관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았던 아이의 세상은 엄마와 함께였던 반지하가 전부였을 것이다. 같은 날 다른 곳에서는 발달장애 딸을 죽인 엄마가 체포됐다. 말기 암 환자인 엄마는 이혼 후 발달장애 딸을 홀로 키워왔다. 작은 화원을 운영했던 그는 열심히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보려 했지만, 코로나로 장사는 잘되지 않았고 건강 악화로 가게 문을 닫는 날이 잦았다. "아무리 힘들었어도"라는 말로 입을 연 그의 이웃은 곧 "안타깝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비정한 부모'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한 엄마는 "초등입학의 설렘보다는 낭떠러지 끝자락에 서 있는 공포감이 더욱 컸다"고 회상했다. 두 부모가 감당하기에도 벅찼을 돌봄 부담을 홀로 떠안았던 이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그 공포감을 발달장애인의 가족들이라면 느껴봤을 것이다. 이제 가족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책임을 나눌 때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나서 발달장애인들이 졸업 후 성인이 돼도, 돌봐줄 보호자가 없어도, 가족 없이 홀로 남겨진 노인이 돼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언제까지 낭떠러지 끝자락에 서 있는 이들을 외면할 것인가. /이자현 사회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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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피해를 직면하는 지도자를 원한다 지면기사
한 장병은 탈출구가 없는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면 불안도가 높아져 아직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다른 장병은 업무에서 벗어나 긴장이 풀리면 팔과 다리가 오그라들고 동공이 풀리는 발작 증세를 보인다.2010년 3월26일, 폭침으로 가라앉은 천안함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의 이야기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그들의 트라우마를 듣고 자신의 책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 이렇게 적었다.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사건'은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폭침의 원인을 둘러싼 분석과 책임소재 따지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생존 장병 58명의 이야기는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잊혔으므로, 제대로 된 기록조차 있을 리 없다. 살아남은 장병들이 트라우마에 허덕이고 '패잔병'이란 낙인에 고통받는지 알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이야기만 잊힐까. 일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유가족과 동료,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도 많은 경우 우리는 알지 못하고 떠나보낸다.김승섭 작가가 천안함 생존 장병 연구에 들어선 계기는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였다. 정치권이 참사 이후 사안을 진영논리에 가두는 동안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뒷전으로 밀리고, 잊혔다. 천안함에서 남은 자들의 이야기도 다르지 않았다.10일 새벽,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됐지만 우려가 앞선다. '여가부 폐지' 등의 '한 줄 공약'으로 2030 남성 표심 획득에는 성공한 듯 보이나, 정작 여성들에게 이 메시지는 현실적 위협에 다름 없을 수 있다. 부처의 '쓰임'이 문제라면 대안을 펼쳐놓고 공론장에서 머리를 맞대면 될 사안이다. 대안 없는 '성 평등'은 그저 텅 빈 기표에 불과하다. 피해를 외면하는 지도자가 아닌, 피해를 인정하고 바로 보는 지도자를 원한다. /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문화체육레저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