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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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소중한 한 표의 의미 지면기사
투표 도장 모양은 왜 '점 복(卜)'자일까. 문득 그 이유가 궁금했다.애초 도장 속 모양은 '卜'자가 아닌 원형(○)이었다고 한다. 투표용지를 반으로 접었을 때 반대쪽에 묻어 무효표가 발생해 1992년 원형(○)에 사람 인(人)자를 더한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문양은 좌·우 구분이 명확히 되지 않는 데다, 'ㅅ(시옷)'과 비슷해 일부 후보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1994년부터는 최종적으로 점 복(卜)자가 삽입돼 현재까지 이어졌다.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양이지만 나름 깊은 뜻도 있다. '卜'의 사전적 의미는 '점(占)', '점치다(占--)' 등으로, 투표 도장에는 '새로운 당선자를 점치다'라는 뜻과 더불어 '생각하다', '다시 한 번 되짚는다'는 의미가 담겼다.지난 주말,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이 나올 정도로 많은 유권자가 투표 도장을 찍었다. 각 당은 높은 투표율을 두고 가지각색의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제20대 대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보여주는 수치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싶다.선거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준비는 비판받을 만했다. 유권자들의 투표용지를 택배 상자, 소쿠리, 급기야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았다는 것은 표의 가치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선관위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겉으로는 그저 종이 한 장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표 한 장에는 우리의 미래가 달렸다.한 표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나의 한 표가 당락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면 한 표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선관위도 유권자도 모두 이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드디어 다가온 본 투표. 사전투표 열기가 본 투표에서도 이어지길. 선관위도 사전투표 때의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 /유진주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진주 인천본사 경제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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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어라운드 뷰 지면기사
친동생이 최근 새 차를 뽑았다.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신식 시스템은 다 갖췄다. 차량 외형도 근사했지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어라운드 뷰'였다. 어라운드 뷰는 자동차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가 보낸 영상신호를 1개의 화면으로 합성해 보여주는 기술이다. 약 15년 전 나온 이 기술은 당시 고급 자동차 모델에만 탑재됐지만 최근 들어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이 기술로 자동차 운전자는 차 주위 모습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됐다. 자동차에 생기는 사각지대가 없어진 것이다. 어라운드 뷰의 탄생은 사이드미러와 백미러만으로 사방을 살피며 주행·주차하던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안전을 향한 갈망이 현대 기술과 어우러져 만들어 낸 멋진 보호 장치인 셈이다.안전과 기술이 만나 사각지대를 없애는 시대에도,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가 빤히 보이는 곳이 존재한다. 최근 인천컨테이너터미널(ICT)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는 ICT에서 일하면서도 ICT의 안전보호조치 테두리 밖에 있었다. 항만 업계의 복잡한 근로계약관계가 안전보호조치 테두리 밖의 사각지대로 밀어낸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도 항만과 항운 업계는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급급하다. 올해 8월 시행을 앞둔 '항만안전특별법'에 자신들에게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 가는 방향으로 시행령·시행규칙이 만들어지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ICT에서 비극을 맞은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누구에게는 소중한 남편이자, 아들이었으며 직장동료이자, 친구였을 게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항만용 어라운드 뷰가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안전 사각지대를 꿰뚫어 볼 어라운드 뷰의 탄생을 위해 항만업에 몸담은 이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다./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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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작심삼일을 피하는 법 지면기사
작심삼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첫 번째, 구체적 계획 정하기. ‘운동 꾸준히 하기’ 보다는 일주일에 3번 이상 헬스장 가기처럼 지킬 수 있는 기준을 둔다. 계량화된 기준이 있으면 이행 상태를 체감할 수 있고 설령 3번을 다 못 채우더라도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지 점검 가능하다.두 번째, 실현 가능한 목표 세우기. 체지방률 20%인 직장인이 1년 안에 복근으로 무장한 몸 상태인 체지방률 10% 미만으로 낮추기는 쉽지 않다. 먼저 6개월 이상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하면 감량 가능한 15% 수준으로 세우고, 달성 여부에 따라 추가적인 목표를 정한다.벌써 2월의 끝에 다가와 있다. 수년간 새해를 시작하며 세워 놓은 각오들이 앞선 간단한 원칙들을 지키지 못해 무너져 왔다. ‘이번엔 기필코 지키리라’ 다짐해 나름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로 빼곡히 채운 올해 계획들은 점검 결과 절반 이상 겨우 지켜나가고 있다. 이처럼 스스로와의 약속도 전략이 없으면 지키기 어렵다.그러나 현재 대선후보들의 경기도 공약들을 살펴보면 작심삼일 정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최근에서야 일부 노선의 사업 승인을 받은 GTX에 대해서는 수익성, 재원마련 방안 등 추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노선을 신설하고 연장시키는 공약들을 각 후보가 앞다퉈 내놓았다. 경기 북부에 대해서도 균형발전을 위해 개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지역과 발전 방안에 대한 언급 대신 ‘첨단산업단지 구축’, ‘거점도시 육성’과 같은 장밋빛으로 포장한 공약들만 남발했다.대통령 선거가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1천350만 경기도민들과 한 약속들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기 위해 구체성과 현실성에 대한 원칙을 후보들은 다시 한 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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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재활용 힘든 '선거 현수막', 언제까지 쓸텐가 지면기사
선거의 계절이 찾아왔다. 제20대 대통령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 15일 아침. 전날 밤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후보들의 선거 현수막이 사거리마다 걸려 있었다. 선거가 다가왔음을 실감함과 동시에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선거철에 무수히 걸려 있던 선거 현수막은 선거가 지나면 곧바로 버려진다.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후보가 많지만 정작 그들의 공약을 내건 현수막은 친환경의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녹색연합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대선에는 5만2천545장, 2018년 지방선거에는 무려 13만8천192장, 2020년 총선 때는 3만580장의 현수막이 각각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수막이 가장 적게 쓰인 2020년 총선 당시 현수막들을 모두 이어 붙이면 305.8㎞. 63빌딩 높이의 1천225배에 달한다. 선거 직후 당선인사 혹은 낙선인사에 쓰인 현수막까지 포함하면 더 많았을 것이다.3만580장 중 재활용된 현수막은 25%에 그쳤다. 후보자 사진과 이름, 슬로건 등을 인쇄할 때 쓰인 염료가 묻어나오면 재활용을 할 수 없고 그나마 재활용을 해도 질 좋은 상품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다고 한다. 결국 4장 중 3장의 현수막이 소각 처리되는 셈인데, 폴리에스테르처럼 플라스틱을 만들 때 쓰는 합성섬유로 제작된 현수막을 불로 태우면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현수막을 쓰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끌어 한 표라도 더 얻어야 하는 이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틈이 있을까.대선 후보는 많아야 15명 이하지만 6월 지방선거 출마자는 어림잡아 수 천명이다. 올해 선거에서 쓰인 현수막의 길이를 내년 이맘때쯤 다시 헤아려보면 얼마나 많을까. 온택트 시대, 제로웨이스트가 화두가 되는 지금 정치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홍보 전략을 써야 할 때다. /한달수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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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개발과 상생의 평행선 지면기사
갈 때마다 새로운 가게들이 생겨나는 수원 행궁동. 수원 화성(華城)이 둘러싼 아늑한 동네에 주택을 개조한 개성있는 가게들로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활기가 도는 지역의 밝은 면 그 뒤에는 주민들의 남모를 고민도 있었다. 상당수의 주민이 떠난 이곳에 남아있는 이들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소음문제, 쓰레기문제, 주차문제와 같은 현실과 타협하는 일 말고도 그들에게는 "언젠가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는 시절도 끝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도 존재했다.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이미 이 곳에는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며 살기 어렵고, 가게 주인들은 와서 돈만 벌어 나간다는 인식이 생겼다. 한번 가게로 개조된 주택들은 다시 주거기능을 하려면 여러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 70대 어르신은 "아마도 내가 떠나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란 이야기를 툭 던졌다. 주민들은 이미 문화적·심리적으로 내몰리고 있는 듯했다.최근 썼던 기사에서 '정서적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표현이라 생각하는데, 내 집 앞에 빨래도 마음 편히 널지 못하는 상황부터 이 지역에서 더 이상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포함된다.낙후된 지역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가게를 늘리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만이 성공적인 도시재생이자 개발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성공적 도시재생·개발의 조건에는 이미 살고있는 주민들의 안정된 삶과 지역의 문화는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문득 1970~80년대 지역 개발의 바람을 정통으로 마주한 한 어르신의 말이 생각났다. "결국 원주민들이 다 떠나야 그 지역이 개발되더라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개발과 상생의 교집합을 찾는 일은 어렵다. /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레저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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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두려운 개학 지면기사
"전면등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대체 어떻게 수많은 아이들을 관리해야할지… 이대로라면 등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될까 걱정입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한 보건교사는 늘어난 방역 부담에 개학이 두렵다고 말했다. 다음 달 신학기부터 학교의 방역 책임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다음 달부터 각 학교는 위험도를 판단해 학사 운영 방식을 정하고, 자체적으로 밀접접촉자를 분류해 신속항원검사나 PCR검사를 실시한다.1천명이 넘는 학생들을 관리해 온 보건교사들은 이제 동선 파악부터 밀접접촉자 분류까지 홀로 해내야 한다. 보건교사를 도와 온 일반 교사들도 학교업무에 방역업무까지 맡게 돼 부담이 커졌다. 보건교사 A씨는 "제가 매일 밀접접촉자가 돼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함께 격리해야 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며 한숨을 쉬었다.아이들에겐 학교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친구와의 접촉을 통해 단체생활의 규칙, 관계 맺는 법 등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운다. 하지현 건국대 교수는 그의 책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에서 "물리적으로 확보된 공간에서 아이들은 모여서 놀고 공부하고 떠들고 또 혼도 나고 괴롭힘도 살짝 당하면서 경험을 쌓아 간다"고 설명했다. 수학여행, 점심시간, 북적북적한 등하굣길. 코로나19 한복판에 놓인 아이들에게는 당연했던 모든 기회가 사라졌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상을 되찾아줘야 할 책임이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교사들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은 말하고 있다. 늘어난 방역 책임에 아이들과 만나 즐거워야 할 개학이 두려워졌다고, 교육활동이 마비되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학교는 방역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다. 교육부라면 '교육기관'으로서 학교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이자현 사회교육부 기자 naturelee@kyeongin.com이자현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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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토론의 의미 지면기사
지난 연휴 내내 대선후보들 간 토론 이야기가 무성했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3일에서야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후보 간 4자 토론이 성사됐으나 깊은 토론이 이뤄지기보다 서로의 패를 확인하는 정도의 ‘감시 전(戰)’에 불과했다는 시각이 많다. 지금처럼 대선후보들 간 토론이 화두였던 적이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무소속 이회창 후보 간 3자 토론이 무산됐다.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인용되면서였다.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토론이 무산됐던 게 떠오른다. 이처럼 매 선거 때면 논쟁의 주제가 되는 게 토론이다.후보들은 토론 자체가 아닌 성사 여부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이들 후보는 토론보다 토론이 갖는 정치적 유·불리에 관심이 많다. 토론장 안이 아닌 토론장 밖에서 싸움을 한다. 최근 어렵사리 성사된 4자 토론에서 일부가 ‘콘텐츠(메시지)’가 아닌 ‘후보(메신저)’ 흠집 내기로 바쁘지 않았나.토론을 더 많이 해야 한다. 표심의 유·불리만 따지는 토론이나 정치공학적 도구로서의 토론이 아닌, 어떤 정책이 더 우월한지 따져보고 국민 공감대를 살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토론이 우리 선거에 참 절실하다. 선거법에서는 선거기간 동안 3회 이상 중앙선관위 주관으로 TV토론을 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오죽하면 법으로 정했겠나.지난 2일 이재명, 김동연 후보의 양자토론이 있었다. 가장 먼저 열린 대선후보 토론이었다. 재미는 없었다는 평이 많았으나 후보 당사자가 아닌 정책의 질을 따져보는 토론이었다. 양자가 좋냐, 다자가 좋냐는 게 아니다. 한 번의 토론은 빙산의 일각으로 그칠지 몰라도 열 번의 토론은 바다를 볼 수 있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명종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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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진심이 거짓되지 않으려면 지면기사
소설가 김애란은 부사라는 품사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부사는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는 중학생처럼 과장과 허풍, 거짓말 주위를 알찐거린다." '정말', '제일' 따위가 다른 용언 앞에 쓰이는 예를 떠올려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 부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우린 이렇게 모자란 부사를 쓰면서 상대방에겐 진심이 닿길 바란다. 보통은 고맙고, 미안한 게 아니라 '무척' 고맙고, '진짜' 미안하다. 진심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요즘은 진심처럼 보이는 일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토론회를 두고 대통령선거 유력 후보들 간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을 감게 된다. 이들은 각자의 진심보다 진심을 내보일 방법과 형식을 따진다. 유권자의 권리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유불리다.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부사를 사용할지부터 고민하는 어리석은 꼴이다. 설 명절 연휴 첫날이었던 지난달 29일에는 (주)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에서 토사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지점 아래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3명이 20m 높이 토사에 깔렸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이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삼표산업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언제나 그렇듯 '깊이' 사죄드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겠단다. 이들이 입장문에 담은 의지를 진심으로 믿고 싶지만,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삼표산업 포천사업소와 성수공장에선 노동자들이 바위에 깔리거나 덤프트럭에 부딪혀 숨졌다. 당시에도 사측은 깊이 반성하고,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을 것이다.모두가 자신의 진심을 증명하길 원한다. 그런데 내용물은 없고 화려한 포장지만 남았다. 겉치레로 사람들을 현혹하려고만 한다. 진심에서 거짓이 엿보인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주고 실천으로 뒷받침하면 될 일을 어렵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다. 그래야만 하는 현실에 살고 있자니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 /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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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아이들의 밥상은 누가 책임지나 지면기사
나는 한 끼 이상은 꼭 밥과 국, 나물과 고기가 골고루 들어간 반찬으로 끼니를 챙기는 버릇이 있다. 어릴 적 맞벌이 가정이었지만 조부모님 덕에 소위 '집밥'이 익숙해진 탓이다. 당시만 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편식하면 안 된다", "혼자 있어도 꼭 밥은 챙겨 먹어야 한다"고 하면 잔소리로 들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덕에 균형 잡힌 식사의 필요성을 체득하게 됐다. 특히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선배들이 먹고 싶은 메뉴가 뭐냐고 물으면 '한식'을 외치게 된 이유기도 하다.어릴 적 식사자리는 잔소리만 가득했다는 생각은 최근 아동들의 끼니 문제를 취재하면서 달라졌다. 맞벌이 가정이 늘고, 돌봄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가정 등에서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동들이 늘고 있다. 아침을 거르는 것은 물론, 코로나19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며 김밥, 햄버거 등으로 허기를 채우는 아동들이 빈번했다.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지자체를 비판하자, 담당 여성 팀장조차 "저도 맞벌이 가정이에요. 집에 있는 제 자식들도 '결식아동'이나 다름없네요"라고 한탄했다. 돈이 없어서 못 먹는 아동들도 여전히 많지만 돈이 있어도 돌봄이 부재해서 못 먹는 아동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밥상교육'도 문제다. 과거 부모로부터 배우는 밥상교육이 아니라, 내가 오늘 균형 잡힌 식사를 했는지, 대충 허기만 채웠는지 스스로 깨우치는 시간이 거의 없다. 한 아동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주는 '아동급식카드'가 정말 무책임하다고 토로했다. 그냥 카드만 던져주고, '알아서 먹으라'는 정책은 사실상 아동들의 끼니 문제를 방관하는 것이라는 쓴소리였다."나 때는 다 혼자 챙겨 먹고 그랬다"는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법을 고민해야지, 우리도 그랬으니까 하며 정체해서는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다. 아동의 끼니를 책임지겠다는 정부, 여전히 후자의 생각에 머물지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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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운'이 좋아 살았다 지면기사
"오늘 내가 있는 이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느냐, 다음에 무너지느냐 그 차이뿐이다."지난해 4월 인천 부평구의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난 소형타워크레인 조종사의 한숨 섞인 말이다. 이들이 일하는 건설 현장에서는 국토교통부가 안전성을 이유로 등록 말소한 소형 타워크레인 기종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었다. 이 기종은 크레인 마스트(기둥) 주요 부분 용접 불량으로 판단 위험성이 확인됐고, 쇠밧줄과 이를 감는 용도의 드럼이 안전 기준에 미달했다. 노동자들은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서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니 노동자 목숨은 사실상 '운'에 달린 것"이라며 "이 바닥에선 평소 알고 지낸 이들이 타워크레인 붕괴로 생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이로부터 2달 뒤 건설현장에서는 모두가 예상했던 사고가 발생했다. 타워크레인 쇠밧줄이 1t가량의 거푸집을 인양하던 중 30m 상공에서 끊어졌다. 철제 자재들이 쏟아진 지점에서 불과 10m도 되지 않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중이었다.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손익계산에 외면받는 노동자의 안전을 도외시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자와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작업 현장 내 사망·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업자의 안전 확보 등 권한 범위를 두고 법 해석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기업과 기관에서 법 시행에 맞춰 수많은 대책을 마련하는 등 이전보다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는 점은 명확하다. 이천 물류 공사장 화재부터 최근 발생한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평택 냉동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안전 문제가 지적됐었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 사전 징후가 있었지만 기업들은 이를 외면했다. 안전사고로 기업에서 떠안아야 할 손실이 커진다면 적어도 사전에 감지한 위험 요소를 안일하게 내버려두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의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시하는 기존의 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팀 기자 phj@ky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