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노트북] 순직과 위문
    노트북

    [노트북] 순직과 위문 지면기사

    최근 공군 10전투비행단 소속 조종사 심정민(29) 소령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고(故) 심 소령은 지난 11일 KF-5E 전투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군의 조사에서 상승 도중 전투기에 경고등이 켜졌고, 이후 조종계통결함도 발생하면서 급강하한 걸로 나타났다. 심 소령은 급하게 'Ejection(비상탈출)' 콜을 2번 했지만 항공기 진행 방향에 다수의 민가가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비상탈출을 시도하지 않고 조종간을 끝까지 잡았던 것으로 조사됐다.민간인을 보호하겠다는 그의 희생이 채 10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위문편지'를 두고 온라인이 시끌하다.선택할 수 있는 봉사활동 중 하나로 쓴 위문편지에서 군인을 향한 조롱이 담긴 메시지가 담기면서 논란이 됐는데, 위문편지가 '성차별'적인 요소이자 '시대착오'라며 재확산하는 모양새다. 이미 청와대 국민청원, 교육청 청원 등 각종 청원으로 위문편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일부 시민단체는 현수막도 걸며 목소리를 높인다.일부의 시각과 달리, 위문편지는 미국·프랑스 등 외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군인을 향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는 남성만 징병대상이라, 직업군인을 제외하곤 남성의 비율이 높지만 외국에선 여성 군인도 많다. 또 쓰는 주체도 아이부터 가족단위까지 다양하다. 구글에서 'write to soldiers' 정도만 검색해도 상당히 많은 편지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도 선택에 따라 쓰고 있다.편지는 하나의 수단일 뿐, 감사함을 전할 방법은 많다. 위문편지 그 자체를 두고 왈가왈부하기보다 민가를 피하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은 군인을 향해 마음속으로나마 감사함을 전하는 게 어떨까. /김동필 사회부 기자 phiil@kyeongin.com김동필 사회부 기자

  • [노트북] '적당히 어긴' 건설현장, 떨고 있니?
    노트북

    [노트북] '적당히 어긴' 건설현장, 떨고 있니? 지면기사

    기자로 일하기 전인 9년 전쯤 해외 한 건설현장 관리자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건축물 벽체 안에 들어갔어야 할 자재가 일부 빠진 채 시공된 걸 뒤늦게 알아차린 적이 있다. 재시공하면 공기(공사 기간)가 1주일가량 늘어나는 상황이다 보니 임의로 다음 공정을 강행했었다. 이후 감리자가 현장을 찾을 때마다 심장이 떨릴 만큼 불안해하다 결국 뒤늦은 재시공으로 공기를 2주일가량 늦췄던 기억이 난다.건설현장엔 각 공정마다 꼭 지켜야만 하는 여러 기준이 있다. 새로 타설된 콘크리트가 충분한 강도를 형성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양생기간', 그 기간 동안 콘크리트를 감싸고 받쳐 주는 거푸집과 동바리(비계)의 '해체기간'등. 이런 기준을 어겨서 시공하면 대형 사고 발생은 물론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기준을 '적당히 어겨서' 시공하면, 다른 이유로 늘어난 공사기간을 상쇄시킴으로써 자칫 발생할 뻔했던 비용 증가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막내 기자 때 찾아간 한 건설현장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각 공정별 기준 대부분은 너무 불필요할 만큼 엄격하게 세워져 있어서 어느 정도 '적당히 어기는' 수준은 건물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지난 11일 광주의 39층짜리 한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16개 층 일부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꼭대기 층 슬래브와 거푸집 등을 받치고 있었어야 할 동바리가 해체돼 있었고, 양생기간을 임의로 줄여 상부층 콘크리트 타설을 강행한 점 등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괜찮겠지"라거나 "이 정도로 건물 안 무너져"라는 시공 관리자의 안일한 생각이 사고를 불러왔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고 발생 전 그 시공 관리자는 9년 전 나처럼 불안해하며 심장이 떨렸을까. 중요한 건 이번 광주 붕괴사고 현장처럼 '양생기간', '해체기간' 등을 어긴 채 시공해 심장을 벌벌 떨고 있을 전국의 다른 건설현장 관리자가 적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

  • [노트북] '헌혈 정년' 김철봉 할아버지의 뜻을 잇자
    노트북

    [노트북] '헌혈 정년' 김철봉 할아버지의 뜻을 잇자 지면기사

    "나는 아직 헌혈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데 이제는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하네요."지난 10일 헌혈 정년(만 70세)을 맞은 김철봉 할아버지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김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서 헌혈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김 할아버지는 31년 동안 484차례나 수혈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자신의 피를 뽑아줬다. 보름에 한 번씩 꾸준히 헌혈한 그가 나눠준 혈액은 242ℓ에 달한다. 세상에 태어났으면 무언가는 남기고 가야 한다는 김 할아버지의 신념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김 할아버지에게 헌혈은 일상이었고, 그의 일상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김 할아버지는 헌혈을 시작한 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자신처럼 헌혈에 꾸준히 동참해 자신과 같은 기쁨을 느끼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하지만 김 할아버지의 바람과 다르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술 등으로 혈액이 필요한 사람은 많아지고 있으나 헌혈에 참여하는 사람은 해마다 줄고 있다. 혈액사업통계를 보면 국내 헌혈자 수는 2019년 261만여명, 2020년 243만여명, 2021년 241만여명으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1~2월이 되면 '헌혈 한파'는 더욱 심해진다. 헌혈의 주축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10~20대 연령층인데, 겨울방학과 명절 연휴가 있는 1~2월에는 이들의 헌혈 참여율이 떨어져 혈액 보유량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30대 이상 중장년층의 헌혈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김 할아버지가 헌혈을 시작한 나이는 39세였다. 그는 조금 더 젊었을 때 헌혈을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많은 사람을 도와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혈액 수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잠시 시간을 내 헌혈의집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 /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ksun@kyeongin.com김태양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 [노트북] 앞서간 자녀를 위한 어머니들의 행진곡
    노트북

    [노트북] 앞서간 자녀를 위한 어머니들의 행진곡 지면기사

    내 휴대전화엔 엄마가 여럿이다. 기자생활을 하며 수집한 전화번호 1만6천965개 중 '어머니', '엄마'로 저장한 취재원은 45명.기자가 되기 전엔 친구들의 엄마 전화번호가 다였다. 연락처 찾기에서 검색된 어머니는 코치에게 폭행당한 딸을 둔 피겨 스케이팅 꿈나무 OO이의 엄마,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엄마들, 용균이 엄마 김미숙 사단법인 김용균재단 대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을 비롯해 다양했다.휴대전화에서 엄마를 검색한 이유는 '아들을 이어사는 어머니'로 명명된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번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배 여사 전화번호는 없었다.배 여사는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1987년 6월9일, 전남 화순군에서 5남매를 키워낸 시골 아주머니였던 배 여사의 역할이 민주투사로 바뀌었다. 이한열 열사는 6·10 대회 출정을 앞두고 '범연세인 총궐기 대회'에 참여했다가 캠퍼스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한 달 만에 숨졌다.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숨졌다. 순리에 어긋나는 역리다. 잊지 않겠다는 구호를 아무리 외쳐도 자식 잃은 어머니가 겪은 역리를 뼛속까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한열 열사는 중학교 2학년 때 1980년 광주를 경험했다. 그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름만 들어도 눈빛이 달라졌다고 한다. 배 여사 입장에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독재자보다 아들의 매서운 눈빛이 더 걱정스러웠을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결국 아들은 학우들을 지키는 소위 '소크(SOC·전위대)' 역할을 맡아 5공화국 독재 정부의 전투경찰과 맞섰다가 숨졌다. 그의 죽음은 민주화의 도화선이 됐다. 자유로이 말하고 어디에나 모일 수 있기를 소망하다 앞서서 간 아들의 뒤를 배 여사가 따라갔다.스마트폰 속 연락처에 남겨진 어머니들은 자식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삶의 동력으로 되돌려 다시는 자기 자신처럼 자식 잃는 엄마가 없는 세상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저장되는 전화번호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안 된다면 더디고 천천히 늘어났으면 한다. /손성배 기획콘텐츠팀 기자

  • [노트북] 여자아이스하키 저변 확대 적극 나서야
    노트북

    [노트북] 여자아이스하키 저변 확대 적극 나서야 지면기사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경기에 나섰다.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일부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 선수가 단일팀이 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가 생길 수 있다는 등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결국 정부의 의지대로 팀은 구성됐다. 올림픽에서 남북단일팀은 5전 전패를 기록해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국민의 뇌리에 여자 아이스하키의 존재는 깊게 박혔다.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남북단일팀의 존재가 잊힐 무렵 수원시는 그해 12월 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팀 창단식을 열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국가대표 여자 아이스하키팀 선수들이 올림픽 이후에도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겠다는 게 창단 이유였다. 창단식에는 도종환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참석해 실업팀을 창단한 수원시에 감사를 표했다.수원시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2018년 1월부터 여자 아이스하키팀 창단을 준비했다. 선수단을 수원시청으로 초청해 환영행사도 열고 감독도 선임하는 등 창단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그러나 2022년 현재 한국에서 여자 아이스하키의 저변은 수원시청팀이 창단된 2018년과 비교해 변한 게 없다. 실업팀은 아직도 수원시청팀이 유일하고 코로나19로 경기 참여도 어려워졌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제안했다던 한·중·일 여자 아이스하키리그 창설 소식도 감감무소식이다. 수원시의 의지로 팀은 만들어졌지만, 주변 환경은 시의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여자 아이스하키가 여전히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팀 창단에 주도적 역할을 한 염태영 시장의 임기가 올해 끝난다는 점도 아쉽다.수원시청 여자 아이스하키팀 창단이 정치적 산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수원시, 팀을 위탁 운영하는 수원시체육회,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기관 모두 여자 아이스하키 저변 확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한다. /김형욱 문화체육팀 기자 uk@kyeongin.com김형욱 문화체육팀 기자

  • [노트북] 사생활 보호와 양육권 사이에 선 법원
    노트북

    [노트북] 사생활 보호와 양육권 사이에 선 법원 지면기사

    "사적 제재가 제한 없이 허용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23일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을 공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대표활동가 구본창씨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내린 선고 내용이다. 법정에서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게 사법부냐.", "말도 안 된다." 방청석을 가득 메웠던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퇴정하는 내내 재판부에 날을 세웠다.법 심판은 때로 국민 법 감정과 괴리가 크다. 실제로 배드파더스는 지난 3년간 국가가 손 놓고 있던 '양육비 문제'를 공론화했다. 배드파더스 대표활동가 구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하는 위험을 감수한 결과이기도 하다. 구씨는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아동 양육비는 생존권입니다. 필리핀 코피노 가정 중 양육비 미지급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에도 양육비 미지급 피해 아동이 많습니다. 배드파더스를 통해 이러한 아이들을 도왔기에 후회는 없습니다."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배드파더스 활동을 일종의 '사적 구제'라고 해석했다. 벌금 100만원 선고를 유예키로 했지만, 1심 재판부에서 배드파더스의 '공익성'을 강조하며 무죄 판결을 낸 것과는 상반된다.아쉬움이 컸다. 그간 배드파더스 활동으로 양육비를 지급한 사례만 총 1천여건을 웃돈다. 하루에 1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하지만 신상을 낱낱이 공개하지 않았다면 배드파더스는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배드파더스는 어떠한 합법적인 제도보다도 즉각적인 효과를 냈다. 그 결과 정부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제도 시행을 이끌어냈다.구씨는 이제 대법원 판단을 앞뒀다. 구씨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고소 고발에 시달려왔다. 그럼에도 '아동 생존권'을 위해 힘써왔다. 합법적인 제도 안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개인이 해낸 셈이다. 3년간 싸움의 종지부를 찍게 될 대법 판단을 지켜보겠다. /이시은 사회

  • [노트북] 내년은 '다사다난'하길
    노트북

    [노트북] 내년은 '다사다난'하길 지면기사

    한 해를 마무리할 때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한다. 올해 대한민국은 다사다난과는 거리가 있었다. 올해를 수식할 만한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코 '코로나19'가 모두의 입에서 나올 게 분명하다.이른바 코시국(코로나19 시국) 2년 차에 접어들면서 다사다난할 일은 비대면 세계에서만 이뤄질 뿐 모임과 취미생활도 거리두기에 막혀 최소한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지루하고 일원화된 일상은 한계점에 다다랐고, 참다못한 국민의 아우성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일상회복의 시작점이었던 지난 11월 정부의 '위드 코로나' 정책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다시 강력한 방역조치로 돌아섰다. 이에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정부의 이러한 행보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100차 백신 접종은 언제냐", "1인 이상 집합금지를 해야 한다"와 같은 비아냥까지 나오는 실정이다.이처럼 국민들은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국민들은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에 계획된 일정만 보면 그야말로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다가오는 3월 대통령 선거에 이어 6월에는 지방선거가 치러지며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11월 카타르 월드컵까지 국민들을 웃고 울릴 굵직굵직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이 이벤트가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지기 위해서는 코로나19라는 큰 벽을 먼저 넘어서야 한다. 국민이 코로나19로 시름 한다면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선거도, 온 국민이 단합할 기회인 스포츠대회도 국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날 게 뻔하다. 정부가 이 위기 해결에 앞장서며 국민을 보듬을 때 비로소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2022년을 수식할 것이다.내년 이맘때쯤엔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는 참 다사다난했다"고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 /변민철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bmc0502@kyeongin.com변민철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 [노트북]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노트북

    [노트북]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사람들 지면기사

    마트 문만 열어 놓아도 손님이 마감까지 줄을 잇던 시절이 있었다. 남순(가명)씨가 10여년 전, 한 화장품 브랜드의 마트 판촉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그가 일한 곳은 당시 전국 100개가 넘는 영업점을 보유한 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손에 꼽힐 정도로 불티났던 안산의 한 마트. 남순씨는 그 시절을 "일일 알바였음에도 매일 '불려나가' 21~22일 만근을 채우곤 했다"고 회상했다.실적이 좋은 달엔 다만 몇 푼 안 되는 인센티브도 남순씨에게 들어왔다. 그럴 땐 마치 화장품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된양 소속감 같은 것도 생겼다고 했다.그러기도 잠시, 어느새 일감이 하루 이틀 줄더니, 주말만 나가게 됐고 심지어 일하던 마트가 사라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날아들게 됐다. 이후 남순씨는 '떠밀리듯' 행사가 있는 인근 마트를 전전했고, 마음 맞던 주위 동료들은 하나둘 생계거리를 찾아 자리를 떠나갔다.남순씨가 사는 곳에서 차로 1시간 넘게 떨어진 수원의 한 마트에 임시로 터를 잡은 건 지난 8월이다. 이렇다 할 판촉행사가 없어 일을 나가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동료들도 사라져 되레 맡은 일만 늘었다던 남순씨는 여전히 용역으로나마 '불러주는' 회사가 고맙다고 했다. "며칠이라도 나와 일할 수 있어서 좋다…그래도 언젠가는 떠난 동료들처럼 내 일자리도 사라지지 않을까."마트 노동자들의 부당해고와 이에 맞선 투쟁 실화를 담은 영화 '카트'를 처음 봤을 때 현실을 핍진하게 재현했다는 인상이 깊었다. 최근 이 영화를 다시 꺼내봤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장면에 눈이 멈췄다. 계산대를 사수하고자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직원들과 '공성전'을 펼치듯 필사적으로 싸우는 장면이었다. 이제는 계산대를 악다구니를 써서 지켜야 할 자리가 아니라, 기계의 대체쯤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물론 그 역시 철저히 자의적인 결과일 뿐임에도 말이다. /조수현 경제부 기자 joeloach@kyeongin.com조수현 경제부 기자

  • [노트북] 믿음을 넘어, 그날을 넘어
    노트북

    [노트북] 믿음을 넘어, 그날을 넘어 지면기사

    2014년 4월16일.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TV에서 생생하게 방송되던 모습들, 사망자 수와 실종자 수가 표기된 자막, 유가족들의 망연자실한 표정까지. 속수무책으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세월호 모습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그날 이후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배는 볼 수 없었다.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추억으로만 간직했던 인천~제주 뱃길이 지난 10일 다시 열렸다. '신뢰, 그 이상'이라는 뜻을 품은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 뱃고동을 울렸다. 무려 7년8개월 만이다.취재를 위해 첫 운항하는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탑승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세월호 침몰 지점인 맹골수도는 우회해서 간다지만 세월호 기억이 두려움을 자극했다. 다행히 이 불안함은 배 내부로 들어선 이후 조금씩 사라졌다.이날 배에서 만난 한 시민은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대해 "테마파크 같다"고 했다. 배 내부는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편의점과 카페, 휴게·오락 공간, 안마의자 등 없는 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테이블과 의자가 쇠사슬로 고박돼 있는 등 안전을 놓치지 않으려는 점이 돋보였다.세월호 참사를 의식하듯 비욘드 트러스트호 직원들도 '안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배의 선사인 하이덱스스토리지 관계자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며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여객은 없다. 안전과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운항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욘드 트러스트호 선장의 팔목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팔찌'가 있었다.아무리 안전에 만전을 기해도 해양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날의 공포와 악몽은 절대로 반복돼선 안 된다.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이름의 뜻처럼 신뢰 그 이상을 쌓아 승객들의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유진주 인천본사 경제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진주 인천본사 경제팀 기자

  • [노트북] 무너진 일상과 합당한 보상
    노트북

    [노트북] 무너진 일상과 합당한 보상 지면기사

    '쿵' 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고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지난 9월 경기도청 오거리에서 신호대기 중 속도를 멈추지 못한 차량이 나를 포함한 3대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사고수습부터 보험처리까지 현장을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30분. 가족과의 저녁식사, 헬스장 PT 등 간만에 정시퇴근으로 세운 이런저런 계획들은 모두 사고로 무너졌다. 차량은 일부 파손됐지만, 다행히 경상에 그친 아찔한 사고였다.그러나 사고는 평온했던 나의 일상을 한동안 많이 바꿔놨다. 퇴근하면 틈틈이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사고 후유증에 대비해 하던 운동도 잠시 멈췄다. 신호 대기 중에는 이전과 달리 혹시나 그때처럼 뒤차가 나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곁눈질로 백미러를 확인하게 됐다. 사고가 바꿔 놓은 일상 때문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불평도 종종 늘어놨다."합의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치료가 끝날 때쯤 걸려온 보험사의 전화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했다. 한 달여간 무너진 일상들은 어느 정도 합당하다고 느낀 보상과 책임들로 회복돼 갔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항시 노출되고, 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산업재해 노동자다. 경기도 내 산재 사망 노동자는 매년 200여명. 올해도 9월까지 175명의 노동자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이 사고 피해로 받는 목숨값(위자료)은 최대 1억원. 노동자의 무과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금액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내년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산업현장에서 사업자에 대한 안전관리 책임이 강화된다. 이제는 산재사고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논의돼야 할 차례다. 회복의 제1원칙인 '피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보장돼야만 무너진 노동자들의 평범한 일상이 지켜질 수 있다. /고건 정치부 기자 gogosing@kyeongin.com고건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