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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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인천대교 '투신사고 방지책' 고민말고 대안을 지면기사
'연이어 투신사고가 발생하는 인천대교에 방지책은 없는가'. 수습기자 때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쓴 첫 기사가 나간 지 이틀이 지나고, 또 사고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3일 뒤 또다시 비보가 들려왔다. 당황스러웠다. 정말 대책이 없는 건지 답답한 마음으로 쓴 기사가 도리어 극단적 선택의 장소를 알린 꼴이 된 것 같아 속이 편치 않았다. 그 뒤로도 잊힐 만하면 들려오는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지난달 안타까운 사고가 한 번 더 일어나 해당 취재원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모두 한결같이 '고민 중', '논의 중',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대답이 있었다. "인천대교 사고와 관련해 언론에서 보도를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다." 언론이 다루지 않았으면 인천대교가 사고 장소로 꼽힐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투였다.극단적 선택과 관련한 언론보도는 신중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힘겨운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특정 장소를 언급하는 일이 자칫 누군가에게 나쁜 마음을 먹게 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바다와 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이 많은 인천에서 유독 인천대교만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는 건 우연한 사고로 볼 수만은 없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개인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같은 장소에서 사고가 반복되는 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다. 그래서 '고민'이나 '검토'가 아닌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 듣고 싶었다. 돌아온 대답은 애석하게도 다음과 같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대책이 나오면 공유해드릴게요."인천대교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더는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혹여 비보가 다시 전해졌는데도 관계자들이 그동안 했던 같은 대답만을 반복한다면, 기자 역시 계속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라도 공유해줬으면 한다. /한달수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dal@kyeongin.com한달수 인천본사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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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어느 한 '덕후'의 바람 지면기사
공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같은 공연을 여러 번 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어."연주자들의 컨디션, 공연하는 배우들의 대사, 동작, 애드리브는 매회 같을 수 없다. 보는 이의 감정,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과 찰나의 디테일을 발견하는 재미야말로 소위 말하는 '회전문'을 도는 이유가 된다.하지만 이렇게 덕후(한 분야에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말)가 되면 호구가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내 통장이 '텅장'이 될지라도 얼마든지 투자할 수 있는 관객이 바로 덕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호구지"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하면서도 좋아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덕후들의 마음이다.반면 가장 큰 팬이면서 뼈아픈 지적을 할 수 있는 덕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덕후가 있다는 것은 고정팬층이 있다는 건데, 이러한 팬층은 공연을 제작하고 무대에 올리며 유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들의 의견을 그냥 듣고 흘려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공연을 기획하는 기획사나 여러 기관 등이 이러한 수요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순간, 최고의 안티팬이 생기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 된다. 공연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그냥 시간이 지나고 얼렁뚱땅 넘기면 잊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거나, 잘 만들어진 토대에 정치적인 목적 또는 이유를 끼워 넣어 헤집어 놓는 일, 개인의 사리사욕이 지나치게 반영되는 일 등 팬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사례는 여럿 있어 왔다.어떤 것을 차근차근 쌓아올린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과연 무대 뒤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관객들이 모를까. 무대 위에 올라오는 하나의 공연에는 언제나 수많은 관객의 눈과 귀가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해 줬으면 하는 한 덕후의 바람이다. /구민주 문화체육팀 기자 kumj@kyeongin.com구민주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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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동스크랩 세금대란 지면기사
최근 자신을 동스크랩 업계 종사자라고 소개한 제보자를 만났다. 동스크랩 유통 거래 특성상 무자료 거래가 불가피한데, 과세관청에서는 정상거래였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업계 종사자들을 조세 포탈범으로 내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제보자가 뭔가 잘못 알고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정부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대원칙하에 국민들에게 정당한 세금을 물리고 있지 않은가. 세금을 다 내고도 옥살이라니. 사뭇 믿기 힘든 일이었다.제보자는 책 한 권 분량의 판결문을 손에 쥐어줬다.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제보자 말이 사실일 수 있겠구나'.판결문에는 구구절절 범죄사실, 양형 이유, 주문 등이 적시됐다. 그중 동스크랩으로 1천억원에 가까운 매출고를 올린 A씨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A씨는 990억여원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제12형사부는 동스크랩 수집자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하고 100억원 추징을 명령했다.재판부도 고심이 많았겠지 싶었다. 판결은 아쉬워도, 합리적인 법리를 들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판결문을 들여다본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피고인은 2017년 사업자 등록을 하고 그해 4월부터 11월까지 합계 990억여원의 세금계산서를 발급했다. 그러나 피고인이 이 사건 사업 이전에 동스크랩 유통업을 영위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수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는 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피고인은 성명 불상자와 공모해 범행에 기여하는 행위를 분담함으로써 허위 세금 계산서를 발급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성명 불상자 범죄자가 또 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성명 불상 범죄자도 공범으로 함께 법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들었다. 다행히 이러한 혐의로 법 심판을 받는 동스크랩 업계 종사자 대다수는 무죄로 풀려나는 모양이다. 이번 사건도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했다. 항소심 판결을 지켜보겠다. /이시은 사회부 기자 s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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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적당히 하자 지면기사
적당히 하자는 말은 무언가를 할 때 더도 덜도 말고 문제없을 만큼만 하자는 의미다. 하던 대로만 하라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리는 이 말은 유독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상황에서는 어색하게 들린다. 안 하던 것을 하려니 하던 대로 할 수 없고, 모처럼 새로운 것을 하려는데 적당히 하려니 퍽 아쉽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새로 출범한 자치경찰을 대하는 태도는 적당하기 그지없었다. 지난 7월 첫 출범을 앞두고 조직의 컨트롤타워격인 자치경찰위원회를 누구로 채우느냐가 중했다. 경찰학 전문가들은 기존 경찰과 차별화하려면 경찰 출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위원장만큼은 경찰 출신이 아닌 법조·언론·학계 인사가 적절하다는 진심 어린 충고였다. 당시 이 지사는 남부자치경찰위원장에 경찰 출신을 앉혔고 남·북부 위원 14명 중 6명을 경찰 출신으로 임명했다. 혁신보다 무난함을 택한 것은 또 있다. 지사직 사퇴 직전인 지난 10월, 도청의 새 식구가 된 자치경찰에 복지포인트 100만원을 더 주겠다고 했다. 경기도와 파트너가 된 자치경찰 직원들에게 소속감과 자부심을 주겠다는 구상이었으나 복지포인트에 들어간 예산은 자치경찰 자체예산 전체 105억원 중 대부분인 90억원. 주민 밀착형 치안서비스를 위한 예산은 사실상 없었다. 몇몇 직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무난한 혁신을 택한 결과 주민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경찰 출신들이 운전대를 잡아서일까. 자치경찰위원회는 출범 5개월이 지나도록 이전의 국가경찰 때와 달라진 점을 모르겠다는 도민 지적에 "더 많이 홍보하겠다"고만 한다. 치안 '서비스'가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홍보를 더 하겠다니, 소비자 평가가 안 좋다는데 더 많이 광고하겠다는 우매한 기업 같다. 이 전 지사와 그가 임명한 위원들이 적당히 하는 동안 자치경찰은 우리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이제 와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직원들에게 복지포인트 다 나눠주고 나면 남는 돈은 15억원이 전부다. 자치경찰의 자치는 안으로 굽는 자치였나 보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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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무뎌짐에 대하여 지면기사
호기심에도 총량이 있는 걸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모두 한도를 가득 채운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갓난아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건 아마 마음속에 넘쳐흐르는 호기심 덕분일 거다. 나이가 든다는 건 무한히 샘솟을 줄 알았던 호기심이 메말라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온 세상에 궁금증을 느끼던 어린아이들의 질문 세례가 꼭 영원하진 않은 것처럼 말이다.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다 보면 인생이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온다. 학교든, 직장이든, 인간관계든 그 과정과 결과가 뻔해 보일 때가 있다. 매사에 관심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해 기자가 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나 역시 처음 기자가 되었을 땐 정말 모든 게 궁금했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마음을 따라 몸이 움직이던 시기였다.머리를 따라 몸이 행동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누군가의 죽음에도 경중을 따졌고,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채 넘겨짚는 일도 있었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취재를 포기한 적도 있다. 호기심 총량이 벌써 '0'이 되었는지, 나는 그렇게 무뎌지고 있었다.지난달 1일 화성시의 한 폐기물 수집업체에서 일하던 터키 국적 20대 노동자가 사고로 숨졌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전한 짤막한 기사가 몇 건 노출됐다. 그냥 지나치려던 찰나,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다. 무작정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화성시의 한 동네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카자흐스탄 청년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있는 고인의 형과 연락이 닿았다. 고인의 형과 지인들을 만나며 또 하나의 우주가 무너지는 일이 벌어졌음을 비로소 실감했다.방부 처리된 고인의 시신은 사고 5일 만에 고국으로 옮겨졌다. 같은 날 그를 추모하는 부고 기사를 썼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선명해졌다. 말라버린 호기심을 다시 채워야겠다. 무뎌지지 말자. 나를 향한 다짐이다. /배재흥 기획콘텐츠팀 기자 jhb@kyeongin.com배재흥 기획콘텐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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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희망 고문 '말' 아닌, 지켜지는 '말'되길 지면기사
이달 초,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일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화성시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보건소는 '그럼 보건소로 오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의아했다. 가장 바쁘고 전쟁터 같은 코로나 현장이라면 선별진료소가 대표적인데, 보건소로 오라니. 그렇게 40분을 달려 보건소에 도착했고, 의문은 금세 풀렸다.보건소 겉은 평화로웠지만 내부는 전혀 달랐다. 직원들의 점심을 책임졌던 구내식당은 '심층역학반'으로, 재활치료실은 '해외입국자관리반'으로, 만성질환실은 '자가격리자 모니터링반'으로 보건소 곳곳이 코로나 대응에 분주했다. 코로나 이전 보건증(건강진단결과서)을 떼러 갔던 그 보건소는 없었다.보건소는 물론, 공공병원과 감염병 전담병원 등이 기존 역할에 더해 코로나 대응까지 한 지는 벌써 2년에 가깝다. 세상은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들떴을 때, 보건소와 의료계 근심은 커졌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우리는 집에 머물며 일상을 잠시 멈췄지만 보건소와 의료진은 2년간 이어진 코로나로 일상이 파괴됐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직원은 일과 가정 사이를 고민하다 직장을 포기했고, 간호사들은 번아웃을 호소하며 하나둘 병원을 떠났다.코로나 초기, 정부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말'을 쏟아냈다. 확진자는 연일 쏟아지는데, 인력은 그대로고 휴식은 보장받지 못했다. 공무원이니까, 의료진이니까, 그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등의 무책임한 말로 우리는 이들의 어려움을 외면했다.지난 9월 정부는 의료진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과 '노·정 합의'를 이뤘고, 최근 보건소 정규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2년간 멈췄던 우리 일상을 되찾는 것만큼, 코로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보건소와 의료진의 일상도 중요하다. 조속한 시일 내 보건소 등에 의료진이 지원돼 정부의 말이 희망 고문이 안 되길 바란다. /신현정 정치부 기자 god@kyeongin.com신현정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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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팬데믹 속 돌봄수요 느는데 갈길 먼 지원책 지면기사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이제 겨우 최저임금을 맞출 수 있게 됐네요."인천지역 아이돌봄 사업을 취재하며 만난 아이돌보미들은 최근 발표한 인천시의 내년도 아이돌보미 지원 정책을 두고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시는 2022년도 출산·보육 예산에 아이돌보미 활동장려수당 3억원을 편성했다. 월 60시간 이상 활동한 아이돌보미에게 월 3만원씩 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을 주된 골자로 한다. 활동장려수당으로 그동안 아동의 집으로 이동하기 위해 충당했던 교통비를 보전할 수 있다는 게 아이돌보미들의 얘기다. 이들은 일주일에 3~5번가량 이용하는 대중교통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아이돌보미 시급은 올해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10원 더 많은 8천730원이다. 인천 지역 아이돌보미 임금 중 일부는 교통비 명목으로 월 3~5만원이 나가는 셈이다. 한 아이돌보미는 "계산해보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7천원 후반에서 8천원 초반을 받는 거나 다름없다"며 "코로나19가 지속하면서 증가한 돌봄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들 먼 거리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다닌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른 지자체의 경우 교통비는 물론 식대나 경력수당 등을 제공하나 인천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처우가 열악하다"고 덧붙였다.인천시는 아이돌보미들의 이 같은 고충에 대해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나아진 게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돌봄 노동자들은 필수 노동자로 떠올랐다. 돌봄 정책이 공적인 영역에서 이전보다 원활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때다. /박현주 인천본사 정치팀 기자 phj@kyeongin.com박현주 인천본사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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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군 공항을 옮기든 통일을 시키든 지면기사
공군 출신이다 보니 훈련소 기간을 뺀 24개월 군 생활을 전투기 엔진 소리와 함께 살았다. 보직 특성상 공군 주력기 KF-16이 뜨고 지는 활주로 구역에서 종일 일하고 밥 먹고 잠도 잤다. 그 정도면 전투기 소리에 적응했겠지 싶지만 그렇지 않았다. 착륙보단 이륙할 때, 특히 전투기가 처음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엔진 소리가 가장 큰데 그야말로 굉음이자 괴음이다. 폭발음 같기도 하면서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연이어 찢어지거나 터지는 소리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주황색 귀마개를 양쪽 귀에 꽂아도 전투기가 이륙하는 동안 대화가 불가한 건 물론 순간 짜증이 날 정도다.고작 2년, 그 소리를 들었는데도 이 정도인데 10년, 20년 넘게 군공항 근처에 살거나 매일 출퇴근해 근무나 장사를 하고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얼마만큼일까. 뜨고 지는 전투기 아래 활주로가 아니라 공군부대 근처를 지나다가 전투기 지나는 소리를 들어도 소음 체감도는 군 생활 당시 듣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이런 군공항 소음피해와 관련한 주민 집단소송이 진행된 수십 년 동안 뒷짐만 지던 국방부가 뒤늦게 정부 차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군소음보상법을 만들었다. 내년부터 소음피해 규모에 따라 1인당 월 3만~6만원씩 준단다.그런데 보상기준이 엉망이다. 일단 같은 소음피해 지역이어도 거주자가 아닌 직장인·사업자는 보상을 못 받는다. 그러면서 거주자이긴 하나 당사자 직장이나 사업장 위치가 멀 경우엔 보상금을 깎는단다. 소음피해지역으로 새로 이사 온 사람에겐 보상금을 절반밖에 안 준다. 33년 전 군공항소음 문제가 이미 전국에 알려져 그 이후 이사 온 경우는 이를 이미 인지했을 거라는 게 이유다.이런저런 이유로 보상범위를 늘리면 그만큼 예산이 불어나고 정부가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은 알겠다. 그래도 최소한 같은 보상대상지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공평한 보상금을 줘야 하지 않나. 예산 때문에 보상기준도 제대로 못 세울 거면 주변 주민들이 적은 곳으로 군공항을 옮기든지, 아니면 통일을 시키든지. /김준석 사회부 기자 joons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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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출정식의 기억 지면기사
청년이 전쟁터에 나서기 전, 마당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굿판을 벌였다. 전쟁터에 나서는 이의 사기를 북돋우고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했던 의식, '출정식'이다.내가 출정식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수능 전날 열린 '수능 출정식'이다. 출정식의 시작은 책 버리기였다. 학생들은 의식을 치르듯 그동안 공부했던 책들을 모아 모조리 쓰레기더미에 버렸다. 책을 찢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책을 버린 후 모인 강당에서는 우리를 위한 응원행사가 펼쳐졌다. 다 같이 '수능 대박' 구호를 외치고 비장하게 응원가를 불렀다. 강당을 나오니 입구부터 교문까지 선생님, 후배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우리가 지나갈 길을 만들고 있었다. 후배들은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선배들의 고득점을 목이 터져라 기원했다. '내일 볼 수능 시험지도 아까 내동댕이친 책들처럼 찢어버릴 수만 있다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수능은 증오받는 시험이다.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헌신짝처럼 버림받은 수능 학습서들이야말로 수능이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증오는 엄청난 부담감에서 온다. 몇십 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는,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는 생각으로부터. 언제부턴가 고등학교에서 해마다 열렸던 수능 출정식은 시험의 무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장함이 은연중에 표출된 의식이기도 하다. 교육이 마치 적군을 이기고 살아 돌아와야 할 전쟁터에 비유되는 것이다.코로나19 이후 맞는 두 번째 수능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젠 코로나로 출정식은 하지 않겠지만 수능이 학생들에게 주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코로나 감염까지 신경 쓰느라 수험생들은 하루도 맘 편히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 쉼 없이 달려오느라 고생 많았던 모든 수험생들이 무사히 시험을 치르기를, 나아가 수능이 살벌한 전쟁터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 본다. /이자현 사회부 기자 naturelee@kyeongin.com이자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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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무엇이 그들을 불법으로 내모는가 지면기사
운전할 때 가장 마주하기 싫은 상황이 있다. 주차장에 갔는데 자리가 없거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내 차 하나 세워둘 공간이 없을 때. 빈 곳이 보여 그쪽으로 가면 '장애인 주차구역'이고, 주차돼 있던 차가 빠져나가 자리가 생겨도 다른 차가 냅다 들어가면 방법이 없다. 막막함과 불안함이 나를 감싸고,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진이 다 빠진다.이런 상황을 매일같이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물차 운전기사들이다. 승용차는 다른 주차장이라도 찾아서 간다지만,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화물차는 대안이 없다. 올해 8월 기준 인천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차는 3만2천318대인데, 인천 내 화물차 주차장은 5천560면에 불과하다. 화물차 절반가량이 타지에 나가 있다고 해도 1만대 정도는 주차장 없이 남는다.영업용 대형 화물차는 '차고지 증명제'에 따라 1년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해 신고해야 한다. 도심 속 화물차 주차장이 부족한 탓에 대다수가 차고지로 활용할 수 없는 곳이나 실제론 없는 주소를 차고지로 등록해 놓고 있다. 취재하며 만난 화물차 기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차고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었다.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는 공영차고지는 새벽 2~3시부터 줄이 이어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이를 놓친 화물차 기사들은 매달 30만원 내외 비용을 내고 민영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이마저도 자리가 없을 땐 단속을 감수하고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주택가 등에 불법 주차된 화물차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가려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지자체마다 불법 주차 단속을 벌이고는 있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화물차는 크고 위험하다'는 인식만 있으면 안 된다. 화물차 주차장 부족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유진주 인천본사 경제팀 기자 yoopearl@kyeongin.com유진주 인천본사 경제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