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참성단]판문점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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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판문점의 변화 지면기사

    판문점이 영화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현실의 드라마로, 글로벌 뉴스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대한민국 육군 이수혁(이병헌) 병장은 밤마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측 초소를 찾아 조선인민군 오경필(송강호) 중사와 호형호제하며 정을 나눈다. 하지만 절대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은 그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같은 얼굴,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청년들은 금단의 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판문점은 그들에게 표정없는 대치를 강요할 뿐이다.그러나 이제 판문점은 남북미 정상들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고무줄 놀이 하듯 넘나들며 월경(越境) 이벤트를 벌이는 리얼리티 정치쇼 무대가 됐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단초가 됐다. 새소리만 들렸던 도보다리 환담은, 어떤 영화도 구현할 수 없는 미장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또 다시 월경 이벤트를 재현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고, 자신의 트위터 초대에 응해 준 김 위원장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했다.레이건, 오바마, 조지W부시 등 판문점을 방문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은 군복 상의를 착용했다. 세계 유일의 냉전 현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라고 말했던 판문점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 대치의 꼭지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번개회동 장소가 됐으니 그렇다. 오히려 언론들이 놀라 역사적 장면을 송출하는 방송화면이 흔들렸다.영화적 상상에 머물러 더 비극적이었던 이수혁 병장의 금지된 월경을,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어 미국 대통령까지 해내는 현실은, 아버지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이방카의 말처럼 "비현실적"이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시작된 널문리 주막에서 비롯된 판문점의 역사가 휴전 66년 만에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선 듯 싶다. 그 변화가 대한민국과 한민족 전체의 축복으로 이

  • [참성단]독수 독과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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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독수 독과의 원칙 지면기사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년 작. 감독은 시드니 루멧. 데뷔작이 이렇게 주목을 받기도 힘들다. 미국의 배심원제를 세밀하게 그려낸 법정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TV 드라마로 이미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심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내재한 '법의 정신' 덕을 톡톡히 봤다. 이는 당시 미국의 '시대 정신'이기도 했다. 증거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한 소년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11명의 배심원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죄 가능성을 버리지 않은 8번 배심원을 맡아 마침내 전원 무죄 평결로 이끌어 낸 헨리 폰다의 연기가 일품이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6명에 대해 항고심에서 "수사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저장장치,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하여 가져간 다음 장기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기관의 관행이 된 '별건 수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선언한 셈이다.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이란 게 있다.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열매 역시 독이 있다는 것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에 이 이론이 도입된 것은 2007년으로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위법수집 증거능력 배제원칙을 명문화 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사기관은 그동안 독이 들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외면한 채 과실을 따 먹기에만 급급해 왔다. '별건(別件) 수사'가 그것이다. 별건 수사는 본래 수사 대상이 아닌 다른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피의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 범죄혐의를 얻어내는 수법이지만,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사건 조사에 자주 이용된다. 취임하는 검찰총장마다 별건 수사 관행 등에 대해 늘 개선 의지를 밝힌다. 하지만 이 '지독한'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 [참성단]쿠르디, 소하예트, 발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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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쿠르디, 소하예트, 발레리아 지면기사

    2017년 1월 생후 16개월 된 남자아이가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됐다.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자행하는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가 보트 전복으로 사망한 로힝야족 아이였다. 시인 서해성은 '슬픈 사진' 한 장이 준 충격을 이렇게 시에 담았다. '미얀마 해변에서 로힝야족 소년은 엎드려 죽었다./ 터키 바닷가에 쓰러진 아일란 쿠르디처럼./쫓겨가다 죽지 않았으면 아무도 몰랐을 이름/무함마드 소하예트./이름만으로도 무슬림인/썰물에 드러난 16개월을 산 세상./로힝야 로힝야/무덤이 없다.' ( '로힝야 소년을 위한 무덤'중에서) 사진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간혹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5년 9월 2일. 터키 도안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터키 휴양도시 보드룸의 해변 모래에 얼굴을 박고 숨진 채로 발견된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그의 가족 4명은 에게 해를 가로질러 그리스로 가려고 고무보트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아버지 압둘라를 제외한 전원이 변을 당했다. 쿠르디의 싸늘한 시신을 담은 사진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참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사진 한 장'은 유럽의 일부 국가에 난민 수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그제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두 살배기 발레리아의 사진 한 장이 또 전 세계를 울렸다. 지난 4월 고향 엘살바도르를 떠나온 이들 가족은 미국 망명을 위해 강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아빠는 딸을 물속에서 놓칠까 봐 자신의 티셔츠 안에 품었고,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 슬픔을 더하고 있다.이들 죽음을 담은 '사진 한 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1천200만 명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로힝야 족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 [참성단]백범 암살범의 마지막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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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백범 암살범의 마지막 인터뷰 지면기사

    어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범은 1949년 6월2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자택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그러니까 백범 서거 47주년이 되던 1996년 6월26일, 경인일보 지면에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그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이 80에 치매까지 겹쳐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누워지내던 터였다.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 숨어 살면서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그였다. 더구나 1992년 2월 민족정기구현회 회장인 권중희씨가 벌인 납치 사건 이후엔 아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 왔다.구차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지만 안두희는 '애국자는 죽고, 반역자는 살아남았다'는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입증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안두희에 대해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편집국이 술렁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 암살 배후세력과 미국의 사주를 암시하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지만 수시로 이를 뒤집기 일쑤였다. 그의 나이나 건강상태로 볼 때 그 인터뷰는 사실상 백범 암살의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였다. 굳게 닫힌 입을 열게 하는 고도의 인터뷰 기술이 필요한 만큼 인터뷰는 연륜 있는 베테랑 선배가 맡았다.그러나 그는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또다시 외면했다. 백범 암살 배후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안죽였다. 미국이 죽였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듯 했다. 하지만 국내 배후세력에 대해선 "나 혼자 죽였다"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당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분노와 함께 역사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 안두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몽둥이에 맞아 숨진 것이다. 한 택시기사에 의해 안두희가 생을 마감하면서 결국 경인일보의 인터뷰는 생전 안두희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말았다.이제 암살범을 추궁하는 것도, 그에게서 증언을 기대하는 것도

  • [참성단]DMZ와 美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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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DMZ와 美 대통령 지면기사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겐 이에 따른 긴장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70여 년간 이어진 좌절과 고통의 공간이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해방 후 9명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대부분이 DMZ를 찾았다.미 대통령의 최초 방한은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중·동부전선 수도고지를 찾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그의 최전방 시찰은 이승만 대통령도 몰랐다. 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젠하워가 북진 통일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언쟁밖에 없었을 것이다.미군을 철수하려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DMZ내 미군부대에서 1박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 판문점 인근 콜리어 초소를 방문, 30분간 머물렀다. 당시 분위기는 소련의 KAL기 격추,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레이건의 방문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논란이 일자 굳건한 한미동맹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992년 방한 때 DMZ에서 멀지 않은 경기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를 방문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93년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시찰 후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했고,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미군 초소에서 가죽 재킷을 입고 쌍안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DMZ 위에 선 미 대통령은 그 자체만으로 굳건한 한·미관계의 상징이었다.미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9, 30일 한국을 찾는다. 2년 전 방한 했을 때 기상 악화로 찾지 못한 DMZ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 [참성단]제2 윤창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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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제2 윤창호법 지면기사

    경찰이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되는 오늘부터 두 달 동안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벌인다. 윤창호씨는 지난해 9월 25일 부산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피해자다. 그를 아꼈던 친구들이 형편없이 약한 음주운전 가해자 처벌법규와 관대한 음주단속 기준에 분노해 국민청원에 나섰다. 그 결과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를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토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 즉 윤창호법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어 이번에 면허정지·취소 기준을 낮추고 음주운전 처벌도 강화한 제2 윤창호법,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효된 것이다.제2 윤창호법에 따라 앞으로 혈중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면 운전면허 정지, 0.08% 이상이면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는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면허정지 수준이라니, 입술에 술만 대도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처벌도 징역 3년, 벌금 1천만원에서 징역 5년, 벌금 2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생업 유지가 힘들고, 음주운전 인명사고는 아예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애주가들은 술 권하는 사회의 음주문화에 비추어 과한 처벌로 느낄지 모르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끔찍한 피해를 생각하면 내놓고 반발하기는 힘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윤씨의 경우처럼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반면에 그동안 가해에 대한 처벌은 피해규모에 비해 미약했다. 윤창호의 친구와 가족들이 분노한 지점이다.음주운전 사고만 놓고 보면 1·2 윤창호법으로 이제 겨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피해 규모에 맞게 법적 형평성을 맞춘데 불과하다. 남은 문제는 의식과 문화의 영역이다. 음주와 운전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시민의 각성이 중요하다. 한 두잔 정도는 음주로 여기지 않거나, 한잔 걸치고 운전대를 잡는 걸 묵인하는 걸 넘어 동승하는 취객들의 무리가 유흥가 마다 넘친다. 숙취에 찌든 채 운전대를 잡는 출근길 직장인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인천공항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채 하차했다가 사망한 여성 연예인은 부검 결과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동승한 남편을 음주운전 방조

  • [참성단]요즘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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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요즘 프로야구 지면기사

    여름밤, 조명을 가르며 빨랫줄처럼 시원하게 날아가는 백구(白球). "딱" 소리와 함께 일제히 베이스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치어리더 손짓에 스탠드를 박차고 일어나는 관중. 여기에 치맥만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손안에 있는 것 같다. 야구는 자유분방한 경기장의 분위기와 확실한 게임의 룰, 즉 느슨함과 엄격함이 함께 어우러지는 중독성이 강한 스포츠다. 이를 등에 업고 KBO 리그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로 우뚝 섰다.오랜만에 야구장에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텅 빈 야구장에, 수준이 마치 고등학교 야구만도 못해서다. 내야수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고, 캐처가 투수의 볼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 놀란 건 선수들의 태도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이겨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도 읽히지만, 프로 선수들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찾을 수가 없다. 결정적인 에러로 점수를 내줘도 그저 '픽' 웃고 만다. 여기에 고질적인 심판의 오심과 어설픈 경기운영으로 비디오 판독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야구는 '투수놀음'인데 투수의 수준은 더 한심했다. '끝내기 낫아웃 폭투'가 나오는가 하면, 한 이닝에 무려 사사구 8개를 내주며 안타 없이 5점을 주는 경기도 있었다. 팀 간 전력 차가 너무 심해 대승 아니면 대패하는 경우가 많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어도 뒤집히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선수의 자질이 떨어지는 탓이다. 은퇴해야 할 선수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대충대충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선수가 없다. 선수층은 턱없이 얇은데 구단 수가 10개로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보다 초· 중 ·고 야구팀이 훨씬 많은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1953년 양 리그에 각 6팀씩 총 12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올 시즌 프로야구는 개막 364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채웠다. 경기당 평균 1만1천23명의 관중이 찾은 셈이다. 지난해 364경기 누적 관중은 442만7천419명이었다. 지난해보다 9% 넘게 줄었다. 누굴 탓할 것도

  • [참성단]2009년생 오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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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2009년생 오만원 지면기사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고 해서 '돈'이다. 돌지 않으면 돈이 아니다. 전 세계 지폐 중 가장 비싼 500유로화(약 68만원)는 돈이지만 돈 대접을 받지 못한다. 너무 고액권이라 돌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사람도 500유로를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500유로에 '빈 라덴'이란 별명이 붙었다. 여행 중 500유로짜리를 건넸다가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거나 빛에 비춰보기도 한다. 아예 받지 않는 상점도 꽤 많다. 500유로는 주로 테러 및 범죄은닉 자금 등으로 이용됐다. 올 초 유럽중앙은행이 500유로 발행을 중단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처럼 고액권은 거래 수단보다는 가치 저장 성격이 강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것보다 금고로 들어가는 게 더 많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고액권 비중이 높다. 통화 확대 시 고액권이 많을수록 화폐 유통 속도가 느려져 물가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액권 5만원이 23일이면 태어난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유통 중인 5만원권은 98조2천억원으로 금액 기준으로 전체 은행권(지폐)의 84.6%를 차지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 10장 중 4장이 5만원권이다. 하지만 환수율은 여전히 낮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0년 41.4%에서 2014년 25.8%로 낮아졌다가 2015년엔 40.1%로, 지난해 67%로 높아졌지만, 1만원권(107%), 5천원권(97%), 1천원권(95%) 대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런 탓에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억원을 1만원권으로 가득 채우려면 사과 상자가 필요했지만, 5만원권은 007가방 하나면 충분하게 됐으니 수뢰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각종 뇌물수수나 비자금 조성 등 부정부패 사건이 드러날 때 5만원권을 가방이나 쇼핑백 등에 담아 전달했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발행을 앞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6년 국회에서 발행촉구 결의안이 의결되고서도 무려 세 해를

  • [참성단]요트, 그리고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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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요트, 그리고 낚시 지면기사

    2011년 6월 인천북항 관공선 부두에서 세일링요트 카트리나호가 돛을 올렸다. 이 요트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바로 요트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카트리나호는 한국수상레저협회가 개최한 '제1회 한반도연안 요트릴레이투어'에 나선 첫 요트였다.그렇다면 이 요트가 출항할 때, 요란하지는 않더라도 형식상의 출항행사라도 있었을 법한데 부두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인천에 일정 수심을 확보한 요트계류시설(마리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요트가 대형 상선들이 정박해 있는 관공선 부두에서 상선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천이 요트릴레이투어의 출발지이면서 정작 출항식은 경기도 제부도에서 열리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지금은 왕산마리나도 생기고 여건이 많이 달라졌지만 요트 레저에 관한 한 당시 인천은 전곡항은 고사하고 제부도에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요트를 타면서 국내 3대 도시 인천의 해양레저산업 인프라가 일개 섬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느낌을 경험한다.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이다. 중국낚시클럽연맹 회장단이 얼마 전 방한해 한·중낚시대회 개최지를 답사하고 돌아갔는데 그 장소가 바로 거제도다. 이들은 거제 일원에서 갯바위와 선상낚시를 체험한 뒤 9~10월 께 대회를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일이 성사되기까지에는 경상남도와 거제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은 수도권에 위치해 있는 데다 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어 해양레저산업이 발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의 거리 또한 거제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중국의 낚시인구는 9천만명으로, 중국낚시클럽연맹은 낚시전문 방송채널도 보유하고 있다. 인천이 발 빠르게 나서 대회를 유치했다면 섬은 물론, 수도권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사실 부산을 비롯한 많은 자치단체들이 낚시 인구 700만 시대에 발맞춰 시장배낚시대회 등 다양한 낚시 이벤트

  • [참성단]공포의 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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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성단]공포의 적수 지면기사

    아주 아주 오래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온 동네가 파헤쳐진 좁은 골목길 한가운데 묻힌 파이프가 집 대문 아래를 지나갔다. 문을 열었을 때, 우물가에는 앙증맞은 수도꼭지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큰 비가 오면 수도에선 한동안 흙탕물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수도가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상수도의 기원은 BC 312년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의 샘물과 호수의 물을 관을 통해 끌어와 공동 목욕탕과 분수대에 공급한 게 그 시작이었다. 상수도가 없었다면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도 없었다. 로마 황제들은 도로만큼이나 상수도 설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도시에 물이 넘쳤고 그 물로 로마 인구 150만명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예나 지금이나 치수(治水)다.인천에 상수도가 보급된 건 1910년 12월 1일이었다. 부산, 서울, 평양, 목포에 이어 전국에서 5번째다. 개항지 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노량진에서 넘어온 물은 송현 배수지(현재 인천 동구 송현동)로 합류됐고 이곳에서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883년 개항 전만 해도 전동, 용동, 화수동, 송림동 등엔 큰 우물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개항 후 급격한 인구 증가는 상수도의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신포동 일대 일본, 중국, 영국 조계지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붉은 수돗물 (적수·赤水)'은 B급 공포 영화의 상징이자 단골 메뉴다. 한밤중에 찾아온 심한 갈증. 수도를 틀었는데 붉은 피가 쏟아진다. 그리고 시작되는 살육(殺戮). 이런 공포를 인천 주민들이 20일째 체험중이다. 영화처럼 핏빛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적수가 배출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30일이었다. 처음엔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중구와 영종도, 마침내 강화도까지 확산했다. 공무원들의 초기 부실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자 어제 정부가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준비 부실, 초동대처 미흡 등 대응 부실 때문 "이라고 발표했다. 그제는 그동안 침묵하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