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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을 권하는 사회 지면기사
러시아에서 예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 한토막. 농부가 밭에서 요술램프를 발견했다. 램프를 문지르자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농부가 말했다. "이웃집에 젖소 한마리가 생겼는데 가족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우유를 얻었고 결국 큰 부자가 됐어." 그러자 요정이 말했다. "그럼 이웃처럼 젖 잘나오는 젖소 한마리 구해 드릴까요? 아니면 두마리?" 농부가 대답했다. "아니, 이웃집 소 좀 죽여줬으면 좋겠어."웃자고 한 얘기인데 속마음이 들킨 것처럼 괜히 콕 찔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저 농부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다.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하면서 끝까지 당리당략에 주판알만 튕기는 여·야 수뇌부도 이런 마음이 아닐까해서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보고, 심지어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고, 시기와 질투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사람이 주변에 의외로 너무 많다. 말이 질투, 시기지 따지고 보면 모두 불신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러시아의 농부가 이웃집 주인이랑 신의와 의리로 맺어진 돈독한 사이였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둘의 사이는 불신 때문에 갈등하고 있는 사이였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 사회가 그렇다. 지독한 불신사회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 몸에 칭칭감고도 남는 삼손이 와도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는 불신의 벽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대와 세대 사이에, 아니 여기 저기에 수없이 솟아나 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다. 지금같은 망국적인 불신의 벽은 태어나서 보다보다 처음이다. 이러다 '불신병'이 치유가 어려운 한국의 고질병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겁이 난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멀리 갈 것도 없다. 정치권을 보면 해답이 나온다. 우리사회에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 크다. 정치의 힘이 세다보니 사사건건 정치에 휘둘리게 된다. 아직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해서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비공식적이지만,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쟁점화' 능력은 전 세계 1위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쟁화 시키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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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활성화 전제조건 지면기사
중국의 부패추방운동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대 이권집단 석유방(幇)의 좌장이자 장쩌민 국가주석의 심복인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처벌이 임박한 때문이다. 권력투쟁, 이데올로기 강화, 법치(法治) 확립 등 설이 분분하나 중국인들은 판관 포청천이 부활했다며 크게 반기는 분위기이다.국내에서도 부패척결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중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가 비리를 방치한 탓에 도처에서 구린내가 진동하고 있음을 개탄하는 것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부패정도를 지수화해 매년 세계 각국의 랭킹을 발표한다. 부패인식지수(CPI)는 각 나라 공무원과 정치인들 사이에 부정부패가 어느 정도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수치화한 것으로 국가청렴도나 기업경영·신용평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력과 부패 간에는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후진국일수록 부정축재가 심한 것이다.지난해 한국은 조사대상 176개국 중 46위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다. 더 걱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의 부패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2009년의 39위를 정점으로 2011년 43위, 지난해 46위 등으로 순위가 계속 뒤로 밀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비리 청산을 호언했으나 집권후 CPI는 더욱 떨어졌다. 경제와 비리가 동반성장하는 기현상이 확인된 것이다.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OECD가 발표한 '2014 더 낳은 삶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36개 조사대상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홍콩 정치경제리스크컨설턴시(PERC)가 발표한 한국의 부패지수는 작년의 6.98에서 금년에는 7.05로 아시아 16개국 중 중국과 함께 바닥권을 형성했다. PERC는 한술 더 떠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부패수준이 남아있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고위층의 부패가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해 '대한민국=관피아공화국'이란 국제공인(?)을 받았다. 부패국가로 낙인찍히면 해외자본 유치는 물론 자국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구시대적 성과만능주의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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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기업가 배출하는 창업자형 대학 가능한가 지면기사
청년 취업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내 대학 중 졸업자의 취업률이 60%를 넘는 대학은 손꼽을 정도로 적다. 그중 공무원 혹은 대기업과 같은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비율만 따지면 더 상황은 비참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져 왔다. 그런데 창업과 연관된 통계지표에서 아직까지 속 시원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창업이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내면을 보면 생존에 급급한 생계형 자영업의 창업 비중이 40%에 달하는 문제를 노출한다. 생계형 창업은 주로 숙박 및 음식료 부문 등 영세 서비스업에서의 창업을 말한다. 음식점의 경우 우리는 인구 1천명당 12.2개꼴인데 미국은 1.8개에 그친다는 비교는 우리의 생계형 창업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치를 창조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은 51%에 그치는 실정이다.가치 창조형 창업이 많아져야 창업효과가 제대로 나온다. 자영업 창업의 80%는 2년후 실패하고 말며 파급효과도 거의 없다. 그러면 문제는 생계형 창업을 벗어나 기회추구형 창업을 확대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된다. 문제의 근원은 우리 사회에서 창업 교육과 실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것에 있다. 해결은 대학이 나서서 창업에 대한 기초소양을 학습시키고, 창업전략과 기업가정신을 전수시킬 때 해결될 수 있다. 대학에서 창업교육을 활발하게 제공하면, 음식료 등만이 아니라 보건의료·사회복지·교육·문화예술 등으로 창업분야가 확대될 수 있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 사회서비스업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높이고 자격제도를 만들어 관련 일자리를 매년 6%씩 늘렸다는 것도 참고할만하다.결국 해답은 대학의 변화에 있다. 즉, 대학이 창업 기업가형 대학으로 변모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보면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스토리가 나온다. 하버드대학에서의 탄생 초기부터 수많은 난관과 그에 대한 창업자의 돌파과정이 묘사된다. 저커버그와 같은 청년들이 쉽게 창업으로 뛰어든 것은 미국 대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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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 시대의 일상과 문화 지면기사
3D프린터(3D-printer)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3D프린터는 그대로 입력된 설계도면 대로 3차원 입체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다. 이 프린터의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입력한 디지털 설계도에 따라 플라스틱이나 금속 물질을 노즐로 분사해 켜(layer)를 쌓아올리듯 물건을 만든다. 금형 제작의 단계 없이 물건을 바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다만 프린터라는 명칭이 가진 고정관념 때문에 관련분야의 종사자들 외엔 이 혁신적 발명품이 몰고 올 변화상을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다. 차라리 입체사출기(立體射出機)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3D 프린터 기술이 제조업의 혁명 혹은 3차 산업혁명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전방위적 파급효과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3D프린터의 기술 개량과 생산비 절감이 이뤄지면서 전 세계 제조업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2012년 47억 달러였던 3D프린터 시장은 2019년 138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조업의 혁명으로 불리는 3D프린터 기술은 이미 우리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도 100만원대의 보급형이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이미 자동차와 항공기 부품 등 정밀기계에서 3D프린터의 강점이 입증되었다. 의료분야에서는 인공관절과 인공뼈, 인공치아 등을 비롯한 이식용 인공장기를 만들어 환자에게 이식하고 있다.3D 프린팅 기술이 산업구조 변화는 물론 시민생활과 문화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머지않아 3D 전용 스튜디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사진관들이 3D스튜디오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스튜디오에서는 고객의 얼굴이나 전신상을 입체상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3D프린터는 시민들의 여가생활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제작 동호회가 급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D 프린팅 과정을 통해 개인들은 창의적 물건을 만들면서 창작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 또 일상에서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기념품을 직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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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면서… 지면기사
청년들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지만 젊은이들은 꿈을 먹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는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을 내고 졸업하자마자 대다수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인데도, 너도나도 더위를 피해 산과 바다로 나서는데도,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들로 가득하다. 대학의 낭만은 온데간데 없이 눈앞에 닥친 실업난으로 고통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청년 일자리 창출, 고용확대 등을 외치는 정부의 대책은 이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뿐이다.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외쳤거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마땅하게 일할 곳조차 없다. 부지런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취지였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 사회적 기반을 잡아가는 게 순리다. 그러나 대다수는 아직도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는 처지다. 부모들 역시 자녀의 취업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기성세대와 신흥세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1970년대 종로와 광화문 일대에 학원가가 형성됐다.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는 필수, 3수는 선택'이란 유행어도 있었다. 지금의 대학가에는 '5학년은 필수, 6학년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되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이른바 '대학 5학년족'이 늘고 있는 것이다. 확실한 취업을 위해 몇 학점을 남긴 채 졸업을 미루고 대학교를 한 학기 이상 더 다니는 어정쩡한 상태다. 졸업 후 백수가 되는 것을 피해 대학 울타리 안에서 머물면서 취업의 기회를 엿보는 새로운 트렌드다. 이들은 노심초사하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 사회는 젊고 우수한 인력이 낭비되는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더욱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사회에 던져지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일부는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학자금을 빌려서 등록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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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우리는 투표장 간다 지면기사
7월30일 우리 정치사상 가장 규모가 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다. 15석. 전체 국회의원수의 5%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이번 선거가 15대0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압승이 예상되기도 했었다. 여당의 과반수가 무너져 여소야대 국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야당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후유증이 여전히 진행중이고, 문창극 총리지명자 낙마, 골라도 참 희한하게 고른 2기 내각 몇몇 장관 후보들, 이전투구였던 여당 전당대회, 여기에 결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하락 등 모든 게 야당에 유리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5석만 얻어도 잘하는 선거"라고 말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전략공천' 때문이다. 행태는 여·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분위기는 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서울 동작을에 광주 광산을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선거사무소까지 차렸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광주 광산을에는 '광주의 딸'이라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을 '내리 꽂았다'. 무려 3곳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이번 선거의 핵심인 수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보니 '여우비' 같은 민심이 변덕을 부리고 있다. 언제 비를 내릴지 모르게 알쏭달쏭하다. 그런 민심이 이번엔 들끓고 있다. 이런 터무니 없는 공천으로 치러지는 재보선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무용론'도 나온다.사실 이번 선거에 들어가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대충 140억여원의 혈세가 투입된다. 여기에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이번 선거를 치르는 이유는 공직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당선무효, 임기 중 각종 비리로 인한 피선거권 상실, 지방선거 출마로 인한 중도사퇴가 원인이다. 쓸데없는 선거비용 낭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선거 출마를 하기 위한 의원직 사퇴와 범법행위로 인해 의원직을 박탈당했을 경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에게 선거관리경비를 전액 혹은 일정 부분을 부담하도록 하는 방안이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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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지지율 지면기사
박근혜 정권 출범이후 처음으로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에서 부정이 긍정을 능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지율은 이슈와 현안에 따라 등락이 교차한다. 그러나 국정수행에 대해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섰다는 의미는 단순 지지율 하락의 함의와는 다르다. 지난해 정권 초 인사 실패로 지지율이 하락할 때도 나타나지 않았던 현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질렀다는 것은 정권이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진대 그 소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은 정권에 대한 지지율로 받아들인다. 최고집행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권력의 수입이다. 정책집행을 권력의 지출이라 한다면 권력을 추동하는 원천이 되는 수입은 지지율이다. 대통령이 임기동안 국회의석에 관계없이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구조적 관점에서 대통령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안정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지탱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권력누수현상은 불가피한 것이 대통령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이러한 레임 덕은 대체로 임기 말 측근과 친인척에서 유래하는 것이 역대 정권에서 경험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박근혜 정권이 출범한 지 1년4개월여를 맞는 시점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본 동 시기의 지지율은 결코 좋은 성적이 아니다. 세대로는 50대 후반, 지역적으로는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강고한 지지가 있다 하더라도 민심은 바로미터의 역할을 한다. 바로 그 결과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상승이다.결정적 요인이 인사난맥이다. 이는 시민사회, 국민과의 소통 부재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권력 핵심과 시민사회 인식의 간극이 벌어지는 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성찰 부재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명의 총리후보자 낙마가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책임성과 대표성이다. 국정의 최고 집행권자가 국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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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 지면기사
'대학을 밟지 마시오'.서울 모 대학 학생들이 만드는 교양지 '중앙문화'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운동권 학생 K씨의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학교를 그만 둔다'는 대자보 내용이 핵심이다. 대학의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내투쟁과 함께 구성원들의 동참을 호소했음에도 반향 없는 현실에 실망했던 탓이다. 자퇴생 K씨는 물론 그를 외면하는 동료 학생들과 이 문제를 다루는 학생기자 모두의 '안녕하지 못한' 실상이 간취되었다. 이 땅의 절대다수 젊은이들 또한 이 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7080가수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감미로운 '침묵의 소리' 멜로디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의 장면들과 오버랩 되어 뇌리를 스친다. '졸업'은 미남청년 벤이 부모 친구인 로빈슨부인 및 그녀의 딸 엘레인과 동시에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묘사한 작품으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학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는 설정도 당시엔 생경했거니와 사회규범의 허용치를 크게 넘어선 주인공 벤의 일탈 때문이었다.1950~60년대의 미국인들은 부지런히 일해서 초유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청년들의 대학진학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1960년 400만명도 못되던 대학생수가 1975년에는 무려 1천만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오일쇼크에서 비롯된 스태그플레이션이 수많은 대학생들을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로 전락시켰다. 풍요로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다음 세대들이 성년이 되어 벼락을 맞은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아메리칸 드림도 깨졌다. 근면성실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과 고물가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1960~70년대의 미국은 마피아, 마약과 히피, 로큰롤과 헤비메탈, 펑키음악, 청바지 등의 시대로 기억된다. 이 무렵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을 '비트제너레이션'으로 불렀다. '패배의 세대'라는 의미로 현대산업사회로부터 이탈해서 개성의 해방을 부르짖는 무정부주의 경향의 집단을 의미한다. '호밀밭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코필드는 붉은 베레모를 삐딱하게 쓰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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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조직의 비결, 상하동욕(上下同欲) 지면기사
인천시 정권이 바뀌면서 인사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한편으론 새 시장에게 공정한 인사를 바라는 희망 메시지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새 권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권력은 마치 왁자지껄한 시장(市場)과 같다. 권력자 주변은 시장 바닥처럼 항상 사람들로 들끓게 되며, 사람 장막에 갇힌 권력자는 환상에 도취된다. 또 권력이 사라지는 날 시장 사람들은 새 권력에 붙어 버린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권력자 주변의 모습이었다. 모든 조직원은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데, 공무원 조직은 특히 그렇다. 그들은 권력의 도움으로 조직 위계질서 사다리의 상단부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공무원의 본능이다. 오죽하면 공무원에게 왜 사냐고 물으면 승진하기 위해 산다고 답한다고 한다.이런 공무원 조직을 이끌고 성공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손자병법은 그 최고의 비책으로 '상하동욕(上下同欲)'을 말한다. 즉, 최고 장수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 같은 꿈을 꾸는 군대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최고위층부터 말단 조직원까지 같은 꿈을 꾸는 조직은 인화(人和)와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좋아도 인화가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 인천시 조직에서 '상하동욕'이란 유정복 당선자의 비전이 전 조직원에게 공감되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공무원들이 시장(市長)과 같은 마음으로 신나게 움직여준다면 성공할 수 있다. 유능한 지휘관이 병사들로부터 공감을 얻으려면 자신부터 진정한 헌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진정성이 없는 소통은 공감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랫동안 '의리'를 외쳐온 연예인 김보성이 최근 진정성의 화신(化身)으로 등극한 사례도 그것을 말해주는 교훈이다. 새 권력이 들어서면 조직은 표면적으로 응집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소명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응집력은 의미가 없다. '이 사회에 무엇을 공헌할 것인가'라는 소명의식이 없다면 응집력이 높아질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조폭 조직을 응집력이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다. 응집력은 '같이 뭉쳐 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응집력은 소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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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성과 미래 도시 지면기사
개방성(openness)은 도시가 추구해야 할 주요한 가치이다. 제국주의의 시대였던 19세기와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점철된 20세기에 개방성이나 국제주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북한이나 쿠바 같은 체제 수호를 위한 농성(籠城)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와 규모가 큰 도시들은 저마다 글로벌 국가, 글로벌 시티를 표방하며 개방성을 강조한다. 지식과 정보 역시 개방될수록 더 많은 은총을 내린다. 누리꾼들이 만들어 가는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은 공유된 정보를 재가공하거나 보완하면서 다중(多衆)의 집단지성을 실현해 나간다. 개방성의 확장은 사회 발전의 주요한 방법이자 결과이다. 사회의 민주화도 시민의 참여와 수평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것이므로 개방성의 구현인 셈이다. 개방성은 문화 정책에서도 중요하다. 문화 분야에서 개방성이란 시민들이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시설의 운영 및 정책수립 과정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는 향유 가능성 측면에서의 접근성, 과정과 절차라는 측면에서의 공정성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가치이며,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접근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업에 대한 접근성, 시설운영에 대한 접근성, 운영 방식과 의식 등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시민들이 정보의 제약이나 시·공간적 한계, 경제적·심리적 부담 등으로 인해 문화향유에 어려움을 느끼는 환경이라면 개방성이 담보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방성은 시설과 공간은 물론 프로그램, 조직운영에 이르기까지 관철되어야 할 미션이라 할 수 있다.도시공간도 개방성을 지향해야 한다. 고층화 밀집화 현상은 현대도시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환경과 교통, 안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도시인들은 고층빌딩이 밀집된 시가지에서 일과를 보내며 주택도 고층아파트인 경우가 많다. 도시인들의 영혼은 위압감과 폐쇄감 속에서 일상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교외로 탈출하는 도시인들이 주로 찾는 곳은 산이나 들판, 해변, 옛 마을이나 유적들이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