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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의 손자 한민구 국방장관 내정자 지면기사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한민구 전 합참의장을 국방장관으로 내정하고 인사청문요청서를 5일 국회에 제출했다.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시절부터 한봉수 의병장의 손자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한 의병장은 충북 청원에서부터 의병을 일으켜 충청지역은 물론 평택 장호원, 심지어 강원도 횡성까지 종횡무진하며 일본군을 무찌르는 등 유격전술의 명장으로 '번개대장'으로 불린다. 항일 독립운동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손자 한민구 장군이 국방장관에 내정된 1일은 제4회 의병의 날이자 호국보훈의 달이 시작되는 날이어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박 대통령은 요청서에서 "한 후보자가 40여년간의 군 복무 기간 국방부 정책기획관, 수도방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등을 두루 역임하면서 국방정책의 발전과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온 전문가로서 위중한 안보상황 아래서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방태세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민구 내정자는 합참의장 재임 시절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대응과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직접 지휘했던 경험이 있는 데다 항일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훌륭했던 할아버지 못지않게 손자 또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1979~82년) 사병으로 근무할 때 나는 한민구 대위를 중대장으로 모시게 됐다. 당시만 해도 시설이나 장비가 열악한 데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문화가 자리잡은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사병들을 마치 동생처럼 대해주던 인자한 분이었고, 소대장과 선임하사들 모두 한 가족과 같이 그를 따랐다.전투지원중대의 특성상 장비가 많고 훈련 또한 다른 부대보다 잦았다. 형제처럼 뭉쳐진 부대 분위기는 연대전투단훈련 사단기동훈련 팀스피리트 보전포합동훈련 등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발휘했다. 한민구 중대장은 육사와 서울대에서 전사학을 공부해 각종 전투 상황에 따라 탁월한 전술능력을 갖춘 지휘관이었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미국의 고위 장성들이 대전차방벽을 방문할 때마다 브리핑을 도맡게 했다. 문무를 겸비했다는 세간의 평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결혼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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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도 '전관예우'를 막을 수 없다면 지면기사
현재 TV에서 방영중인 '개과천선'은 대형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다. 거대 로펌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 재판에 이기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철한 그가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보고 건전한(?) 변호사가 된다는 법정드라마다. 거기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로펌대표 차영우는 능력이 출중한 판사 전지원을 자신의 로펌으로 스카우트 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지원이 고집을 꺾지 않자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확히 15년 뒤 그자리(대법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각서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대형 로펌 대표가 공직을 움직일 정도로 막강하다는 뜻이다. 비록 드라마지만 이 부분에서 등골이 오싹했다. 실제 대한민국 대형 로펌의 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형 로펌의 힘은 이제 누구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다른 말로 하면 대한민국은 이미 '로펌공화국'이 된지 오래다. '법과 원칙'의 상징이었던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조차 서 보지 못하고 낙마했다. 검사 시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맡아 여·야 현역 의원들은 물론이고 당시 정권의 실세들까지 감옥에 보내는 강단을 보였던 그였다. 검사와 대법관 시절 재산 공개때마다 항상 최하위권을 기록해 '안대희 그 자체가 청렴'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러나 '전관예우'의 관행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전관예우.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한 대학을 나오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평범하게 회사를 관둔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전관예우 공화국'이었다. 평범한 국민들만 몰랐을 뿐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공직에 전관예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통령도 나섰지만 과연 그 튼튼한 연결고리가 끊길지는 비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관료·검사·법관 출신 중용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총리 정홍원, 법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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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론 지면기사
헌법은 국무총리에 대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조항에서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고 있다. 이른바 '책임총리'의 근거조항이다. 그러나 역대 총리는 거의 내각의 상징적인 존재로 그치기 일쑤였다. 대통령제의 특성상 불가피하다. 명망가형 총리, 화합형 총리, 관리형 총리, 정무형 총리 등 총리의 출신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 붙인 작위적인 분류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정국이 요동치고, 민심이 이반될 때 총리를 포함한 내각에 책임을 묻는 정치적 행위는 민심의 소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총리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큰 이유이다. 따라서 제한적인 총리의 역할 범위 내에서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정서에 부합하며 시대정신에 응답할 수 있는 인물을 써야 함은 불문가지이다.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에 많은 성찰과 뼈저린 회한을 남기고 있다. 정경유착과 민관유착이 대참사를 야기한 구조적인 문제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관피아의 혁파 없이는 한국사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음도 확인했다. 이의 처방으로 공직사회 개혁과 공정한 사회로의 개혁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차분하게 돌아보고 먼 원인과 가까운 원인에 대한 구분 없는 몰아치기식의 진단과 처방은 또 다시 많은 모순을 원점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참사가 우리 사회에 치열하게 던지고 있는 화두는 한국사회의 총체적이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관료와 민간의 유착은 왜 생겼으며 이념적 간극은 왜 더 벌어지는가에 대한 숙의이다. 부정부패가 왜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됐는가에 대한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적 근대화는 국가의 압도적 우위를 결과했으며, 시민사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산업화의 명분으로 인권은 배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권과 인간의 가치보다는 자본과 이윤의 논리가 절대시되는 물신주의가 배태되었다. 국가권력과 관료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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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기 아까운 나라 지면기사
평범했던 주부 김옥주(53)씨의 인생은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허리디스크와 고혈압에다 공무집행방해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8가지 죄목으로 올해 초에는 검찰에 기소까지 된 것이다. 2011년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면서 악착같이 모았던 예금 2억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화근이다. 돈을 떼인 사람들 대부분이 자갈치시장 인근의 60, 70대 노인들이어서 김씨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사태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했으나 결국에는 돈 잃고 몸까지 망친 기막힌(?)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저축은행사태는 이후 26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등 사상 최대의 금융사고로 비화되었다. 피해자수가 10만명을 넘고 사회적 비용만 물경 27조원에 육박한 것이다. 오너 경영인들의 '벼룩 간 빼 먹는' 악질범죄와 부실한 금융감독이 빚은 합작품이나 '88클럽'규정이 결정적이었다. 노무현 정부 3년차인 2005년에 재정경제부는 "영업활동 규제는 최대한 풀어주되 건전성 감독은 더욱 강화한다"며 98건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의 '제로베이스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88클럽'인데 자기자본비율 8%이상, 고정 이하(연체 3개월) 여신비율이 8%이하의 조건을 충족한 우량저축은행들을 지칭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모든 저축은행에 한 법인에 최대 80억원까지만 대출하도록 강제했으나 '88클럽'조건을 충족한 은행에 한해 대출제한을 풀어주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투자를 겨냥한 저축은행업계가 정부에 집요하게 로비해서 얻은 결과였다. 저축은행들은 88클럽 가입을 위해 후순위채를 경쟁적으로 팔았으나 부동산거품 붕괴로 막대한 혈세 낭비와 서민경제를 거덜 냈다. 그러나 이 사태와 관련해서 책임지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도를 고친 지 6년만에 사고가 터졌으나 관련자들 모두는 이미 공직을 떠난 것이다. 지난해 수많은 투자자들을 울린 동양증권 불완전판매사건도 규제완화가 빚은 해프닝이다. 사기나 다름없는 범법행각에 또다시 서민들만 당했다. 세월호 대참사는 압권이었다. 1985년까지 20년으로 묶여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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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윤리를 다시 생각한다 지면기사
시장경제를 믿는 자도 기업인의 과도한 탐욕에는 탄식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시장경제의 제창자인 아담 스미스조차 이득에만 눈이 먼 탐욕을 경계했다. 그는 '도덕 감정론'이란 저서에서 '하느님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탐욕을 심어주고 파멸시킨다'라고 말하고 있다. 탐욕만 가진 인간은 무너진다는 경고를 준 것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인들은 욕심을 조절하지 못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무모한 탐욕은 조절장치가 망가진 야욕의 끝을 보여준 셈이다. 자신의 사리사욕에는 너무도 적극적이지만 고객의 생명과 안전에 대해서는 한 치의 배려도 없는 어이없는 윤리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그 낮은 윤리수준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기업윤리의 실상은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구분 없이 윤리와 도덕 점수는 낙제점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파산에서부터 한보 정태수 회장의 해외 도피, 저축은행의 줄도산, 동양그룹의 파산 등에서 기업윤리의 희망적인 파편을 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이 정도까지 윤리수준이 추락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움이 너무 크다. 우리는 일본과 미국의 선진기업들을 추월하고자 했지만, 그들이 가꿔온 윤리의식은 따라잡지 못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기업윤리 수준이 높다. 일본 기업은 직원에 대한 배려가 많으며 이윤을 사회에 돌려준다는 의식도 강하다. 일본기업의 강한 윤리의식은 자신들의 영웅인 시부사와 에이치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그의 책인 '논어와 주판'의 영향이 컸다. 그는 사혼상재(士魂商材), 즉 선비와 같은 절개와 도덕,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재능을 겸비하는 것이 기업가의 이상임을 강조했다. 1930년 이전 일본기업들은 시부사와의 영향권에서 탄생했다. 마쓰시타 전기를 비롯해서 샤프와 히타치 등은 시부사와 정신의 계승자답게 사회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보여주었다. 또 이 정신은 현재까지 잘 전수되어 신생 기업들조차 윤리 경영에 적극적이다. 우리가 아직 일본경영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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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특성화사업 어디로 가는가? 지면기사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의 시행을 앞두고 대학별로 예술관련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학특성화사업은 본래 국내 대학들이 학과 설치, 학생 선발, 교육과정 운영 등에 있어서 특성과 차별성이 없고 모든 대학이 전 학문분야에 걸쳐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대학 교육의 획일화가 초래되고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한 사업이었지만 결점이 한 둘이 아니다. 3월에는 서일대 연극과와 문예창작과 폐지 방침이 알려졌으며 서울시내 사립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예술 관련학과 통폐합을 둘러싼 내부 진통이 심각한 실정이다. 현재 교육부는 '수도권 및 지방대학 특성화사업'을 추진하면서 평가 지표에 정원 감축 가산점을 부여하고, 대학별 졸업생의 취업률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원 기준은 대학별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가산점이다. 2017년까지 10% 이상 감축시 5점, 7~10% 미만 4점, 4~7% 미만 3점을 반영하는데, 이같은 정원 감축이 사업단 선정의 결정적 변수가 되고 있다. 재정이 어려운 대부분의 지방 대학은 이 사업에 목을 매달 수 밖에 없다.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감축 인원만 평가하여 일률적으로 정원 감축만 유도하는 사업이 되고있는 것이다. 이 평가제도는 대학에서 취업률이 낮은 예술계열 학과를 통합 또는 폐과하는 사태마저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분야 학과의 평가 기준으로 취업률을 삼는 것은 예술분야의 직업 특성이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탁상행정이 아닐 수 없다. 문화예술 관련 졸업생들은 상당수가 자유직업인 예술가로 활동하며, 설사 취업을 한다해도 4대보험을 납부해줄 수 있는 규모의 직장은 예술분야에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술학과 학생들의 취업률을 대학 평가에 반영해 논란을 빚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교육부는 2011년 9월 학자금 대출 및 재정 지원 제한 대학을 선정하는데 취업률을 주요 평가기준으로 삼았고, 예체능 관련학과 비중이 높은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게 돼 반발을 부른 적이 있었다. 대학 특성화가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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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殘忍)한 달' 4월을 보내며 지면기사
온 천하가 통곡하고 있는 4월의 마지막 날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중략)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의 장편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주검들과 뒤덮여 있는 땅에서 새싹과 꽃들이 피어나는 걸 보고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엇이 표현했다는 해석도 있다. 지금도 진도 앞바다 한가운데서 아우성치고 있을 못다 핀 어린 주검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온다. 그토록 잔인했던 4월에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내던져진 이 고귀한 목숨들이 너무 가엾다. 할 말이 없다.4월 16일 오전 9시 29분 필자의 휴대전화에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 침수중'이라는 문자가 떴다.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모 통신사가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뉴스다. 이어 9시 58분에는 '경비정, 헬기 동원 120여명 구조', 10시 18분 '여객선 좌초, 190명 구조', 11시 22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11시 27분 '여객선 완전 침몰… 승객은 전원 탈출한 듯'이라는 희망적인 소식들이었다. 그러나 오후 1시 41분 '107명 실종, 생사불명'으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공식발표는 구조에서 실종으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고 실종자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늘었다. 서서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 같은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언론의 확인 없는 발표와 보도로 국민들의 혼란은 더해갔다. 그러나 합동수사본부가 28일 밝힌 실종 학생의 '기다리래'라는 마지막 카톡 시간은 세월호가 물속에 가라앉은 오전 10시 17분이었다. 선장이 탈출한 뒤 31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금만 더 대처가 빨랐다면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퇴선명령을 내렸다던 선장의 새빨간 거짓말이 드러났고, 선장이 속옷 차림으로 배에서 빠져나오는 생생한 모습의 동영상도 공개됐다. 이로써 11시 이후의 '전원구조, 탈출' 등은 모두 허위발표와 보도로 드러난 셈이다. 얼마만큼 초동대처를 하지 못한 채 허둥댔는지를 알 수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세월호 탑승인원 발표만 공식적으로 6번이나 바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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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베이징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지면기사
20년 전. 그러니까 1995년 4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정치권ㆍ정부ㆍ기업이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대한민국 최대 그룹 총수가 겁없이 정부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 이 말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2년전 대선에서 현대 정주영 회장과 대권을 다투었던 김영삼 대통령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이 회장의 말을 정치에 도전하는 거대한 경제권력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국민과는 달리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정곡을 찔린 청와대와 정치권은 발끈했다. 특히 김영삼 정부는 당시 끊임없이 터지는 대형사고로 인해 깊은 상심에 빠져 있었다.1993년 3월 78명이 사망한 '구포역 무궁화호 전복사고', 그해 7월 68명이 사망한 '아시아나 733편 목포 추락사고', 10월 292명이 사망한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94년 10월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이 회장 발언이 있던 95년 4월에도 101명이 사망한 '대구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두달 후 6월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문민정권은 치명적인 결정타를 맞았다. 그리고 97년 8월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이 회장 발언 이후 삼성은 발언 배경과 진의를 해명하느라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이 회장의 말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그후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을 이야기할 때 자주 오르내리는 '명언'이 됐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사고 앞에서 할 말을 잃은 국민은 지금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 하지만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20년 전 이 회장이 '3류 정부 4류 정치'라고 일갈했던 그때와 지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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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현실정치'와 '새정치' 지면기사
현실정치와 권력정치는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어 사용된다. 그러나 권력정치가 권력의 획득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정당시하는 것임에 반해, 현실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정치라는 평범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현실정치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에 대한 진지한 설득과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자파세력을 포진시키는 것, 세력간의 다툼이 현실정치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불가피한 쟁투의 모습이 권력정치로 치환되지 않으려면 현실정치가 새정치로 보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정치와 새정치는 반드시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안철수 대표는 현실정치와 새정치를 자신의 편의에 따라 정의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닌가 되돌아봐야 한다. 안철수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좌절됐다. 그리고 기초무공천과 새정치를 과도하게 등치시킨 안철수 대표의 '새정치'는 빛이 바랬다. 그러나 새정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제는 새정치의 내용이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명분이었던 기초무공천은 애당초 새정치를 담보할 수 없었다. 또한 통합의 고리로도 미약했다. 안철수 의원이 부딪쳐야 했던 현실정치의 벽과 김한길 대표가 직면했던 당내 리더십의 위기가 만난 지점이 합당이라는 주장이 정파적 혐의가 짙어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는 이유이다.기초공천을 둘러싼 논란으로 안철수 입지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 다음이 더 문제다. 기초무공천 철회 이후 보여준 안 대표의 정치행태다. 개혁공천을 들고 나왔다. 그 자체가 문제될 건 없으나 개혁공천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있다. 안철수 대표 측과 구 민주당, 특히 친노진영의 공천 다툼으로 비치고 있고, 광주지역 의원들의 윤장현 후보 지지 선언은 그 자체로 개혁공천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을 걸었던 기초무공천의 명분은 기초선거에서 국회의원들의 후보 줄세우기를 혁파하고 지방자치의 본래 뜻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야권의 정치적 상징성이 강한 광주에서 안철수 측 인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선언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공천은 불가피하게 현역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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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받는 한국 기업문화 지면기사
금년 1월 2일 캄보디아에서 개발독재시절의 YH여공 폭력진압과 흡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공수부대가 파업현장을 무력으로 제압해서 노동자 5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류업체들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저임금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에 군대를 동원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권위주의와 황금만능의 천민적 경영도 도마에 올랐다. 진실이야 어떻든 한국기업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개운치 못했다. 경우는 다르나 국내 간판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세계최대의 직장평가 사이트인 '글라스도어'에는 세계IT업계 5위 삼성전자와 61위 LG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리뷰 글들이 상당한데 부정적인 평가가 유달리 많아 보인다. 푸른 눈의 리뷰어들은 해당 기업의 전현직 근로자들이어서 영향력이 큰데 주목되는 사례로는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사가 매우 무례하고 폭력적이다", "출근이 1분이라도 늦으면 직장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으며 일을 다 끝내도 퇴근 못하고 윗사람 눈치를 본다", "경영자들은 늘 회사위기만 강조하면서 정신 차리라는데 너무 식상하다", "회의에선 참석자 중 직급이 가장 높은 대장 혼자만 떠든다"는 등 날을 세운 것이다. "한국기업에 근무한 탓에 삶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고백은 가히 충격적이다.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은 고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한국적 정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고백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스타 운운이 민망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무모할 정도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캔두(can do)정신, 톱다운(top down), 캐치업(catch up) 등을 지적했는데 군사문화적 색깔이 특히 강하다. "한번 해보기는 해봤어?"하며 부하직원을 다그치던 정주영 왕회장과 '실패하면 우리 모두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죽자'며 포항제철소 건설을 독려하던 기업가 박태준이 연상된다. 군인정신이야말로 산업화기의 한국경제를 견인한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1961년 5·16쿠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