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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였나 지면기사
국정감사가 끝났다. 역대 국감중 '최대 성과'를 거두며 막을 내렸다. 여기서 '최대 성과'란 '시간 버리고 예산을 축내는 이런 국정감사를 계속해선 안된다'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성과를 거뒀다는 뜻이다. 국정감사는 여당보다는 야당에게 유리한, 야당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그러나 야당은 '국정원 댓글공방'의 망령을 뒤집어 쓰고 스스로 진영논리를 만들면서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번 국감은 그만큼 야당에게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여당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역대 국감중 이번처럼 여당의 존재가 신기루 같았던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이번 국정감사의 압권은 10월15일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 일어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임준성 한성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수입차 업계의 부품가격 담합에 대한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임 대표 왈, "저희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고, 자동차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국정감사장은 순간 얼어 붙었다. 민주당 의원이 수입차 한성모터스 사장을 부른다는 것을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있는 같은 이름의 다른 회사 대표를 부른 것이다.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문제로 출석한 삼성전자 서비스대표도 엉뚱한 질문을 받고 당혹감에 빠졌다. "삼성전자 서비스는 AS때 사용되는 부품을 삼성전자로 부터 받느냐"라는 엉뚱한 질문 때문이다. 국감장은 멘붕에 빠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국회의원들 때문이다.더 놀라운 것은 기업대표가 무려 3시간을 기다려 받은 질문이었다는 것이다. 14일 환노위 국감에서는 늦은 밤 11시40분 위원장은 증인과 참고인이 자리에 있는지 출석을 체크하는 일도 벌어졌다. 갑의 횡포를 따지는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이 최대 슈퍼갑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국감에 불려나온 기업인들의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다. 소환된 기업 대표들마다 "이미 공정위에서 시정명령 요구를 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왜 국감장에 와야 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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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의 역할 지면기사
집권당과 야당의 대립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또한 정치의 본질은 갈등의 표출이며 갈등을 제도화 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갈등을 여하히 집약시키고 제도화해서 최소화 하느냐에 정치력이 달려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여야의 대립은 건강한 갈등과 대치의 수준을 넘는 것이다. 대선 국면에서 불거진 대화록 유출 의혹,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여부,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갈등으로부터 검찰총장의 사퇴 파동 등 국면과 현안을 달리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공히 여야가 정파적 계산하에서 행위하고 정쟁으로 연결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국가 기관들의 일탈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일련의 정치적 쟁점의 본질은 국정원의 댓글과 트윗 등 여론 조작 의혹이며 이것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느냐의 여부이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외압설이 제기되고, 검찰총장과 특수수사팀장의 사퇴 및 경질이란 사태도 불거졌다. 각종 사안의 본질이 가려지고, 사실 관계의 규명이란 명분으로 진실이 호도되어서는 더욱 안된다.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의 형식을 빌려 박근혜 대통령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정쟁적 측면의 해법을 제시했다. 총리의 대독(代讀)형식을 논하기 앞서 내용에서 진전된 바가 없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데 협조해 달라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구조 개혁 등의 현안들을 정쟁으로 보는 관점에서 사태 해결의 단초를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 최고 권력의 의중과 심기를 살피는 무력한 집권당의 존재가 계속 된다면 총리의 담화에서 밝힌 사법부의 판단이 나오더라도 정국 대치와 민생 챙기기는 요원해질 수 있다. 여야의 시국을 보는 인식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야당의 문제 제기를 정치적 공세로 보고, 정쟁으로 치환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의석 반수를 넘는 집권당이 국민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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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들의 구태(舊態)경영 지면기사
"S그룹의 모 회장은 자동차광이다. 한때 재규어, BMW, 벤츠, 로터스, 람보르기니에 이르기까지 20여대의 자동차를 소유했고, 그래서 번듯한 디자인팀이나 판매망도 없이 이미 과잉인 자동차산업에 뛰어들었다. 40억 달러를 쏟아부어 만든 자동차회사를 단 한 푼도 못받고 경쟁업체에 넘겼다."1997년 외환위기가 한창일 무렵의 모 일간지의 기사내용이다. 재벌총수의 브레이크 없는 권력 남용이 초래한 해프닝이었다.당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302억 달러를 지원받아 급한 불을 끄는 대신 경제주권을 통째로 IMF에 넘겼다. 이후부터 경제주체들은 살인적인 고금리와 고환율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시중은행을 비롯한 수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헐값에 외국인에 팔렸다. 대마불사의 신화도 깨져 대우그룹을 비롯한 30대 재벌의 절반가량이 좌초되었으며 수백만명의 직장인들이 한꺼번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國難)으로 치부될 만큼 국민 모두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정부는 금융기관 및 대기업들의 부채청산에 혈세 64조원을 투입하는 대신 재벌개혁을 요구했다. 결합재무제표 도입,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주력업종 선정, 지배주주와 경영진 책임강화 등이었다. 외부감사기능을 한층 강화하고 사외이사수 확대 및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지주회사제도 이때 도입되었다.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도고 놀란다 했다. 웅진, STX, 동양그룹 등 중견재벌들의 잇따른 부도가 15년 전의 고통스런 기억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구태(舊態)경영도 재확인되었다. 진작 청산되었어야할 고질적인 악습들이 여전한 것이다.중견재벌들 좌초의 결정적 이유는 유동성 부족이다. 장기간의 부동산경기 위축에다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가세해 사업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터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부실기업들을 연이어 인수한 때문이다. 부채비율의 경우 동양그룹은 2007년의 147%에서 작년 말에는 무려 1천231.7%로 수직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STX는 170%에서 256.7%로 늘어 30대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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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혁신기업이 많아지려면 지면기사
며칠 전 미국의 톰슨 로이터가 2013년 세계 100대 혁신기업 명단을 발표했다. 우리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LS산전 등 3곳이 선정되었는데, 28개 기업이 선정된 일본에 비해 9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어서 실망과 염려가 적지 않다. 이번 발표를 보니 우리가 그동안 삼성전자의 실적에 의해 착시(錯視) 속에서 살고 있었던 듯싶다. 즉, 삼성전자 외 다른 모든 곳에서도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아직 일본에 비해 혁신수준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종(警鐘)이었다. 우리는 이 경종을 계기로 최소한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첫번째는 많은 업종에서 아직 추격 전략의 가치는 높다는 교훈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에서 추격(catch-up)이라는 단어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글로벌 선도 기업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그들을 추월하는 것이 바로 추격 전략인데, 우리는 그 추격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몇몇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경제전략 전체를 추격 전략에서 혁신선도 전략으로 옮기려는 분위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전체적으로 전략 축을 옮길 일이 아니다. 혁신과 창조의 경쟁 시대로 접어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아직 모든 곳에서 추격 전략을 버릴 정도의 수준은 아닌 것이다. 추격 전략을 벗어 던질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서의 고민은 소정의 초우량 기업에만 해당한다. 우리는 현재 혁신선도 전략과 추격 전략을 모두 추진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두번째 교훈도 중요하다. 우리는 보통 혁신을 말할 때 주로 대기업 위주의 혁신을 말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 쪽의 혁신 성과가 없으면 밑힘이 부족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의 세계 혁신기업 리스트에 우리는 몇 개의 대기업이 고정적으로 올라섰을 뿐이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대기업만으로는 혁신기업 숫자가 늘어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중소기업의 혁신은 중소기업만의 이슈가 아니다. 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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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發) 인문주의의 과제 지면기사
최근 우리정부의 정책을 보면 수세기전 유럽을 풍미했던 문예부흥기를 방불케 한다. 르네상스를 관류하는 정신 중의 하나는 인문주의라 할 수 있는데, 현정부 들어서서 인문정신은 국정과제인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과정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간 인문유대 강화활동을 제안하여 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인문정신문화계 인사'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인문학 활성화와 문화 융성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한국연구재단이 매년 420억원의 연구비를 대학에 지원하고 있는 인문한국(HK) 프로젝트까지 감안한다면 최근 정부의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주목할만하다. 인문정신과 관련한 더 중요한 움직임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제정 작업일 것이다. 인문정신문화 진흥법은 우리 사회의 인문적 전통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여 삶을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인문정신문화의 진흥과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14, 15세기 르네상스기의 인문주의가 신의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성을 옹호하고 수호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면, 21세기 한국발 인문주의는 물신주의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 변화된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눈부시게 발전한 미디어와 정보 혁명은 역설적으로 사회구성원들을 개인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로운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례 없이 빠른 산업화 과정을 거쳐 온 것도 한 배경이 된다, 이로 인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최소의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물량적 생산과 속도가 지상과제인 시대,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인사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창조성이 사회 각 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특히 성장동력이 떨어진 한국경제의 혁신을 위한 핵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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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민은 '핫바지'가 아니다 지면기사
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이다. 실용주의를 비유한 표현으로 중국을 발전시키는 데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무관하다고 주장한 그는 이 이론을 내세우며 실용주의적 노선을 제시했다. 이달 말 치러질 화성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도 지역 발전을 위해 누가 더 잘할 것인지 토박이든, 낙하산이든 관계없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도민과 화성시민들은 지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물러난 것이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표를 내던진 것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화성갑 지역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누가 공천될지에 관심이 쏠려있다. 친박계 '거물'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가 이 지역에 출사표를 던져 유력한 여당 공천 후보자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서 전 대표와 김성회 전 의원으로 최종 압축된 상태로 이번 주 내로 공천자가 발표될 예정이다.이를 놓고 화성 토박이 출신인 김 전 의원은 "화성에 단 한 달이라도 살아 봤느냐"며 "보궐선거 출마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서 전 대표의 정치 재개를 두고 야당의 공세가 이미 시작됐다"면서 "정치 혁신을 해 온 새누리당과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을 주고 있다"고 서 전 대표를 압박했다. 서 전 대표의 주장도 만만찮다. "내가 나서야 당내 화합과 소통을 할 수 있다. 애초부터 보선에 출마한다면 수도권에서 당당하게 심판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송산그린시티 및 유니버설스튜디오, 동서연결 고속화도로 숙원사업을 해결하는 데는 큰 정치를 해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하산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외가가 화성으로, 본인도 6·25때 화성군 일왕면(현 의왕시 왕곡동) 외가에서 피란생활을 했다고 한다.공직자추천심사위원장인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지난달 23일 라디오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서 전 대표와 같은 전국적인 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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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정말 정권을 잡고 싶은걸까 지면기사
두 살기가 팍팍한 모양이다. 지난해 추석, 카톡을 가득 메웠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따위의 격려성 메시지가 올해는 반으로 푹 줄었다. 무엇보다 그만큼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도 된다. 내 코가 석자인데 남 걱정할 여유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정치? 그 신물 나는 정치가 하늘에서 뚝하고 스팸 선물세트를 떨어뜨려 주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 개혁이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그것도 채동욱에 묻혀서 긴장감도 크게 떨어졌다. 그러니 야당대표가 서울시청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한들, 그게 그렇게 국민들의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을리 없다. 이말은 뒤집으면 민주당이 아직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지난 MB정부시절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광우병 촛불시위대의 너울거리는 불빛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닐까.민주당이 '원내 복귀'를 선언했다.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국회에서 전쟁을 치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때를 놓쳤다. 만일 대통령과의 3자회담이 열렸던 그날, 수첩에 적어간 일곱가지의 요구사항이 단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대통령을 비난했던 그날, 차라리 "대통령의 사과를 받지 못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로 국회로 복귀한다. 우리의 투쟁은 국정감사를 통해, 두 눈 부릅뜨고 정부를 감시하는 것으로 국회안에서 계속될 것이다"라며 국회로 돌아갔다면 국민들은 김한길 대표와 민주당을 다시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추석 연휴 내내 '한가위의 위력'을 새삼 느끼며 '민주당 재해석'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성숙한 야당의 정치의식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번에 100% 원내복귀가 아니라 장 내외 병행투쟁을 선택하면서 또다시 국민에게 감동을 줄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마침내 민주당이 들어 온 국회가 어떤 모습일지 눈에 선하다.누가 뭐래도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동안 국정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수권정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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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의제설정' 능력 지면기사
언젠가부터 국가정보원이 뉴스의 중심이다. 지난 해 대선 이후 정국을 쥐락펴락하는 파워 집단으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데뷔했다. 과거 국정원의 모토였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국정원을 대상으로 한 국정조사도 헌정 사상 처음이었다. 남재준 국정원장의 말을 믿는다면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단독으로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대화록을 공개해서 일거에 정국을 반전(反轉)시킨 예도 흔치 않다. 지난 달 공개된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사건으로 국정원의 존재감은 절정에 이르고 있다. 국정원과 통합진보당의 대결 구도로 짜여진 대진표 앞에서 정치권은 망연자실(茫然自失) 그 자체다. 민주당과 진보정의당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이라 해서 사정이 나을 것이 없다.대의제에서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라야 한다. 다양한 사회의 균열 구조와 갈등을 대표하고, 정권의 획득을 위해 합법적 공간에서 선거경쟁을 통해 승부하는 기제가 정당정치이며, 정당의 구성과 행동양식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게 짜여진 것이 정당체제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집권당인 새누리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의 존재감은 국정원이 주도하는 정치환경속에서 여지없이 형해(形骸)화 되고 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은 정치 부재의 종결자다. 정기국회 회기 중이지만 이석기 의원 제명 여부와 통진당 해산까지 여야 공방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정치 실종은 좀처럼 치유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지난 달 말까지 결산 국회가 끝났어야 하나 공안 정국속에서 결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푼수'같아 보인다고나 할까.이석기 의원이 구속되고, 통진당의 관련 인사들로 수사망도 확대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이 사건 수사의 공조 형태를 띠고 있으나 수사의 중심이 국정원에서 검찰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안의 성격상 내사와 초기 공개 수사 단계에서 국정원의 수사는 불가피하며,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이석기 의원이 구속된 상황에서 국정원이 수사를 통해서 정치권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는 모양새는 정국을 경직시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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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외자 증가가 대세인데 지면기사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치인 980조원을 기록했다. 실제는 이보다 훨씬 높아 심지어 1천500조원이란 설까지 들린다.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면서 관련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결정적이다. 400만에 달하는 저소득 가구 중 150만 가구가 빚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채무의 질도 갈수록 나빠지는 추세이다. 가계대출 중 비은행권 대출과 다중채무자가 각각 증가한 것이다.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내고 있는 가구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신용불량자수 누증(累增)은 설상가상이어서 지난해 말 기준 120만~130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에 육박한다.일전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위험점수가 148점으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의 154.4점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경기부양과 빚 권하는 부동산대책을 이어갈 예정이어서 가계수지는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핵폭탄에 비견되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서민생활 핍박이 큰일이다. 과도한 채무부담이 소비 위축을 초래해서 경기회복을 지연시킬 공산이 큰 탓이다. 금융소외자 공적 지원기구인 미소금융, 햇살론, 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지원 3종 세트에 눈길이 간다.이명박 정부는 삼성, 현대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과 은행 및 보험사 등으로부터 10년간 총 2조2천억원의 재원기부약속을 담보로 2008년 7월부터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소득층에 창업자금과 운영자금 등 5천만원까지 연 4.5% 저리로 대출해 준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총 7천억원의 대출실적에다 이용자수만 8만여명에 이른다. 빈곤층 자활지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그러나 장기간의 내수부진에 돈이 된다 싶으면 불문곡직하고 덤벼드는 대기업의 등쌀에 소자본 창업열기가 식으면서 올해 들어 대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연체율 증가에 따른 건전성 악화도 주목대상이다. 더욱 걱정은 작년 8월 대법원이 휴면예금 활용을 금지하는 판결로 미소금융의 가장 큰 돈줄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대기업의 추가재원 염출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동안 정부의 강요로 마지못해 출연했었는데 현 정부가 '나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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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지면기사
창조, 요즘 이것만큼 뜨거운 단어도 없을 듯싶다. 모든 국정 이슈의 한복판에 '창조'라는 단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창조'를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며, 일부 천재들의 몫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창조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천재 안무가(按舞家)로 꼽히는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에 의하면, 창조적 소질은 천재 DNA와 같이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경험한 창조는 오직 준비하는 습관과 성실함에 의해서 만들어질 뿐이다. 창조적인 춤 예술로 인정받은 그녀의 초우량 작품들도 알고 보면 기존 아이디어의 변형에서 나온 것이며, 그것에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입혀서 창조작품으로 만들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타프의 말을 들으면 창조가 천재들만의 전유물이 분명 아니며 누구든지 노력 여부에 따라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면 창조 방법은 어떤가. 창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마치 요리(cooking)와 같다. 실제로 요리사 100인에게 계란과 토마토와 같은 오믈렛 재료를 전해주면, 다양한 유형의 오믈렛이 나오고 또 그중에 몇 명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오믈렛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요리 재료의 묘합(妙合)과 새로운 조리법에 의해 창조적 음식이 탄생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창조적 인물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년 동안 피렌체의 스포르차 궁(宮)의 요리책임자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는 오랜 요리 경력을 통해 창조 능력을 키웠다고 알려지는데, 실제로 그는 스파게티라는 음식을 창조하고 제대로 먹기 위해 삼지창 포크를 개발했다고 한다. 다빈치 같은 천재가 요리에서 창조적 힘을 키웠다는 것은 요리야말로 창조를 가장 쉽게 생각하게 하는 메타포임을 알려준다.창조에 대한 '요리 메타포'는 경제학자인 슘페터(Schumpeter)의 귀중한 통찰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슘페터에 의하면 창조는 기존 자원의 교환과 합성의 결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