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인칼럼
칼럼니스트 전체 보기-
'걸어다니는 도서관'과 마을 만들기 지면기사
도서관 관련 검색을 하다보니 '걸어다니는 도서관'사업을 확대한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새로운 방식의 이동도서관으로 지레짐작했는데 실은 주민들이 집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마을 도서관을 건립하는 사업이었다.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 아니라 '걸어서' 다니는 도서관이었다. 요즘말로 '낚인' 셈이다.진짜 '걸어다니는 도서관'은 노인들이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진 것이다"라는 소말리아 속담이 있다지 않은가? 노인을 도서관에 비유한 소말리아 속담은 사람이란 사람에게 배우고 사람에 기대어 산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만든다. 사람이야말로 지식과 지혜의 원천인데, 갑년(甲年)을 넘기고 살아온 분들이 온축한 경험과 지혜야말로 생생한 책이다. 꼭 공부를 많이 한 박식한 노인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도서관'이라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평범하게 살아온 분들의 삶과 경험도 소중하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아온 분들의 삶과 꾸밈없는 이야기가 오히려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전통사회에서 노인은 갈등의 조정자요, 난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였다. 설화 속의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했을 경우 '수염이 허연 백발 노인'이 나타나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경우가 많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할머니가 만능해결사였듯이. 지혜의 상징이었던 노인에 대한 존경이 급격히 옅어진 것은 농경 공동체가 해체되고 성장 만능주의사회로 바뀐 탓이다. 노인 대신 '어르신'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이나 고령(高齡)이라는 대신 '실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기실 노인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그런데 몇 년 사이 '욕망의 도시'에서 중요한 성찰의 흐름이 일고 있다. 투자의 수단으로 여기던 집과 투기의 대상으로만 여기던 땅을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이다. 아직은 침체된 부동산 경기 때문에 재개발의 대안으로 선택한 고육지책인 경우도 있
-
국어사랑은 나라사랑 지면기사
"버카충은? 솔까말 화떡녀 근자감 깜놀!"어느 청소년이 휴대전화로 대화한 문자의 내용이다. 얼핏 봐서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버스카드 충전은?(버카충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솔까말) 화장 떡칠한 여자의(화떡녀) 근거없는 자신감(근자감)에 깜짝 놀랐어(깜놀!)"라는 뜻이란다. "엄마가 문상 10만원을 주셨어." 나는 어떤 어머니께서 나이 어린 학생에게 문상을 가라고 10만원씩이나 주는지 놀랐다. 그런데 '문상'이 문화상품권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랐다. '문상'이라는 단어가 상품광고에서도 문화상품권의 줄임말로 널리 쓰이고 있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의 잘못된 띄어쓰기는 아예 옛 이야기가 됐다.설명 없이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해괴망측한 줄임말이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인다. 이 같은 줄임말을 쓰지 않으면 서로의 대화에서 소외된단다. 오히려 시험볼 때나 대화할 때 원래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우리말을 홀대하는 풍조도 여전하다. 2002년 'Hi 서울'로 영문표기를 시작한 이후 지자체마다 '다이내믹(Dynamic) 부산', '컬러풀(Colourful) 대구', '프라이드(Pride) 경북' 등 영문으로 된 구호 일색이다. 인기 드라마의 제목 '차칸 남자'가 논란을 빚은 끝에 '착한 남자'로 바로 쓴 적도 있다. KT, KB로 시작된 회사 이름의 영문표기에 따라 농협이 NH로 탈바꿈한 것에는 실소가 터졌다. 우리말과 글의 훼손 상태는 심각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우리말의 뒤틀림 현상은 더 있다. 커피전문점에서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했더니 종업원은 "7천원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진하시면 물을 더 타 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 상대방을 높여야 할 것을 물건인 커피를 높이고 말았다. 병원에서 혈압을 잰 간호사가 "아버님, 혈압이 높게 나오시네요"라고 한다. 누구의 아버님이라는 건지 아무한테나 '아버님'이라 하고, 또 혈압이 높게 나오신단다. 보험회사 광고에서도 "벌금이 나오셨다고요?"라고
-
백령도에서 생각해본 해양설화들 지면기사
지난주에 예술인들과 함께 백령도를 다녀왔다. 이번 백령도 기행은 분쟁의 현장이 된 서해의 섬들을 평화의 섬으로 전환시키려는 정부와 인천시의 사업에 예술인들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두무진의 절경과 콩돌해안의 잔자갈, 사곶해변의 탄탄한 모래밭은 서해의 파도와 해풍이 창조한 백령도의 관광자원이다.백령도의 새로운 명물인 심청각은 소설 심청전과 그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관광콘텐츠이다. 맹인 심학규의 딸 심청은 아버지가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뜨게 해주겠다는 화주승의 말을 믿고 시주 약속 때문에 중국 뱃사람들의 제물로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용왕의 도움으로 용궁에서 죽은 어머니를 만나고 연꽃으로 피어나 인간계로 환생하여 황후가 되고, 맹인잔치를 베풀어 재회한 아버지가 소원대로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백령도의 심청각은 효행으로 맹인이 눈을 뜨게 된다는 맹인개안(盲人開眼)이야기를 강조하여 심청이 바다에 몸을 던지는 모습의 조형물을 세우고 전시실에는 여러 효자효녀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심청각의 콘텐츠는 효행의 교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여운은 적었다. 그것은 심청설화의 중요한 모티브인 해저 세계를 다녀온 용궁설화(龍宮說話), 그리고 저승으로 갔던 사람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환생설화(幻生說話)를 간과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백령도가 가진 스토리텔링 자원은 신라 진성여왕 때의 괴물 퇴치담인 거타지(居陀知) 설화와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되는 작제건(作帝建) 설화이다. 거타지 설화는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거타지는 신라 진성여왕 때 사신으로 당나라로 가던 아찬 양패의 호위 무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신라 사신 일행이 당나라로 가던 중 풍랑이 심해져서 백령도(鵠島)에 머물고 있던 중 서해의 해신인 '약'(若)이 승려의 꼴을 한 괴물에게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타지는 해신을 죽이려는 사미승을 쏘아 죽인다. 해신은 은혜의 보답으로 딸을 꽃으로 변신하게 해 거타지에게 준다. 당나라에서 무사히 돌아온 거타지
-
부(富)의 대물림 심화 지면기사
'공시파차이(恭喜發財)''부자 되세요'란 의미로 중국인들이 요즘 가장 많이 쓰는 인사말이다. 모든 이들이 친소(親疎)를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건네는 덕담인 것이다. 1970년대만 해도 '식사하셨어요?'를 뜻하는 '치판레마(吃飯了 )'가 일반적이었는데 중국경제가 상당히 성장했다는 방증이다.국내적으로도 '부자 되세요'란 표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해맞이 인사로 특히 압권인데 젊은층일수록 많이 사용하는 추세이다. 부자는 저승사자(?)까지 부릴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부(富)야말로 현대판 로망이자 메시아인 것이다. 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세인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블룸버그는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10대 거부들을 선정했는데 1위는 멕시코의 통신재벌인 카를로스 슬림이다. 1940년에 레바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슬림은 26세에 부친에게서 받은 40만달러로 사업에 착수해서 세계에서 돈이 가장 많은 사람이 되었다.기부천사 빌 게이츠가 2위, 스페인 국적의 인디텍스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3위를 기록했다. 오르테가는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부터 셔츠가게 사환으로 사업과 인연을 맺은 이래 자수성가해서 패스트패션 브랜드 '자라(ZARA)'를 세계 1위로 키웠다.4위인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1956년에 단돈 100달러로 주식투자에 나서 미국최고의 갑부로 등극했으며 자린고비로 유명한 이케아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는 17세에 사업계에 투신한 이래 조립식(DIY) 가구 생산으로 5위에 올랐다. 코크인더스트리즈의 코크형제가 각각 6위와 7위, 시스템 개발업체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8위를 기록했다.'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의 창업자 베르나르 아르노와 미국 최대 할인매장인 월마트의 상속녀 크리스틴 월튼이 각각 9위와 10위에 랭크되었는데 세계 10대 거부들 중 골드스푼을 들고 태어난 경우는 미국 석유재벌 코크형제와 크리스틴 월튼 등 3명에 불과하다
-
누가 창조경제의 주역인가 지면기사
창조경제의 주역은 누구인가? '창조' 능력을 가장 잘 갖춘 기업군(群)이 주역이 될 것이다. 지난 산업화 시대에서는 대기업군이 주역이었다. 그들은 선진국을 따라잡을 경제추격의 견인차로 선택되어 자원 집중의 혜택을 받았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로 경제 추격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제 추격 능력의 가치는 떨어지고 오히려 창조 능력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는 새로운 주역이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이 새로운 역할에는 '벤처기업'이 가장 적임자이다. 벤처는 혁신성으로 무장하여 신(新)성장동력에 도전하는 기업군으로서, 창조 개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기업유형이다. 벤처가 본연의 능력만 발휘한다면 창조경제의 견인차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창조경제를 선도하는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과 같은 신흥 강자들 모두 벤처 출신인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선진경제에서는 벤처가 창조경제의 첨병으로 자리매김한 지 이미 오래되었다.이렇게 세계적으로 벤처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지만, 우리 벤처가 이런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직 미지수이다. 양적으로 보면 벤처기업은 3만개에 육박할 정도로 확대되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벤처 출신의 일류 기업은 아직 없는 실정이고, 또한 벤처생태계 조건도 좀처럼 기대하는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뒤돌아보면 우리 벤처 영역은 적지 않게 변질되어 왔다. 현재 벤처기업 중, 과연 혁신 역량 측면에서 손색이 없는 기업이 어느 정도 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 점이 바로 한국벤처에 '리셋' 수준의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리셋'은 컴퓨터를 초기화하듯이, 초기 벤처의 원형으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달리 표현하면 창조적 기술로 무장하고 도전정신이 충만한 기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며, 또 이를 통해 벤처기업군을 진정 창조경제를 견인하는 기업모델로 만들자는 제안이다.벤처 리셋의 출발은 무엇보다 벤처의 인증기준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
-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지면기사
대기업이 운영하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을 폭행했다는 대기업 간부가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이 대기업 상무의 이력은 인터넷수사대에 의해 신상이 털려 그와 그의 가족은 큰 상처를 입었다. 이 사건을 빗댄 웃기면서도 서글픈 패러디물이 인터넷에서 홍수를 이뤘다. 유명 호텔 주차지배인의 뺨을 때린 제빵회사 사장 역시 끔찍한 신상털기를 당하고 결국 회사문을 닫았다. 그 회사 직원들은 사장의 실수로 인해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공교롭게도 최근 일어난 이 두사례를 들어 언론마다 '을의 반란이 시작됐다'고 난리다.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생각해 보자. 대기업 상무와 제빵회사 사장은 과연 갑인가. 앞에 잠깐 언급했듯이 공교롭게도 라면사건이 일어난 비행기 회사나 호텔은 우리나라 10대 재벌에 들어가는 회사들이다. 단 한번도 '을'일 수 없는, 늘 '갑'의 위치에 있었던 회사인 것이다. 이면에 비행기 안에서 라면 한 그릇을 시키는 바람에 험한 꼴을 당했던 대기업 상무는 비행기를 타기 한달여 전 상무로 승진했다고 한다. 어쩌면 상무로 승진한 후 첫 외국출장이었을지도 모른다. 부장시절에도 출장은 다녔겠지만 아마도 부장 신분으로는 사내 규정상 라면을 끓여주지 않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상무 승진 후 첫 해외출장에 비즈니스석을 탔을 터이고 과연 말로만 들었던 비즈니스석에서 라면을 줄지 궁금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처음 먹어본 라면이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새로 끓여달라고 요구했을 것이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니 승무원 입장에서 약간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언성을 높였을 것이고 급기야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제빵회사 사장도 마찬가지다. 한번 이런 가정을 해보자. 호텔에서 바이어 상담이 있었는데 그는 교통체증 때문에 늦었다. 겨우 호텔에 도착했는데 시간이 꽤 흘렀다. 아주 중요한 상담인데 주차가 문제였다. 기사를 데리고 오지 않은걸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는 주차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
-
계절의 여왕 5월은 왔지만… 지면기사
새 해인가 싶더니만 벌써 5월이다. 천지가 푸르다 못해 찬란한 빛을 발하는 5월은 자연 그대로의 축복임을 느끼게 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대학가에서는 봄 축제가 펼쳐진다.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기운이 온 천지를 흔들어놓는 듯하다. 꽃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의 봄과 지루한 여름의 사이에 있는 달이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5월은 우리말로 '다섯'이니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닫고 서다(閉, 立)'의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인의 날 등 좋은 날이 많다. 그래서 5월을 또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반면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깐깐 5월, 미끈 6월,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 하면서 5월을 깐깐하다고 했다. 음력을 얘기하는 것이지만 어떻든 농촌에서의 5월은 이것 저것 챙길 것이 많은 달이다. 보리는 파랗게 익어가는 보릿고개인데다 모판에는 볏모가 푸른 빛으로 자라 가뜩이나 부족한 일손을 기다린다. 눈코뜰 새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있으면 라일락과 아카시아 꽃의 향기는 이제 콧 속을 마비시킬 기세다.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불우헌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이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산과 들로 뛰쳐나가 마음껏 봄의 계절을 만끽하고 싶은 게 모두의 심정이다.그런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5월이 왔지만 주변의 상황은 영 봄같지가 않다. 봄이 왔나 하고 외투를 벗어놨다가 다시 주워 입곤 하는 변덕스런 날씨랄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것 같다. 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은 요즈음이다. 대학가에는 지난 해에 이어 어김없이 축제가 이어지지만 학교 밖에서는 청년실업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달 통계청이 집계한 3월의 20대 취업자 숫자가 작년에 비해 10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대가 학교나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청년실업의 악순환이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의 취업이 3월에
-
우리 내부의 비무장지대를 만들자 지면기사
뉴스를 생산하는 입장에서도 요즈음 신문 읽기는 고통이다. 좋은 소식이 별로 없다. 가까스로 내각을 구성한 박근혜 정부는 국제외교의 시험대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지만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대한 미국측의 입장은 완고하다.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권한을 인정해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정색을 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일본은 엔화를 무차별로 쏟아부으면서 한국의 수출경제를 목조르는 것도 모자라 각료와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보란듯이 참배해 대한민국을 모욕했다.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결렬되고 한·중·일 정상회담도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의 조정결과를 지켜보며 사태를 관망중이지만 수틀리면 언제든지 한반도 긴장조성에 나설 것이다. 중심을 잃고 헤매다간 우리 뜻과는 상관없는 우발적 위기가 언제 한반도를 강타할 지 모르는 형세다.국내로 시각을 돌려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창조경제는 원론 수준을 맴돌 뿐 각론 진입이 요원하다. 한 시사평론가는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정치, 김정은의 생각을 아무도 모르는 세가지"라 농을 던졌다. 박근혜정부의 경제 철학이 벌써 희롱의 대상이 됐다니 이만한 낭패가 없다. 문제는 우리 경제에 창조적인 기운 대신 모든 경제주체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거나 관망하거나 규탄하는 이기적 기운이 싹트는데 있다. 재벌들은 계열사간 거래규제에 반발하거나 자세를 낮추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지하세원 발굴 의지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청년 백수들은 정년연장 추진에 울화통을 터트린다. 6억 이하 집 한채 못팔아 안달이던 사람들은 한숨 돌렸지만, 그 이상인 사람들은 "6억원으로 떨어질 때 까지 손가락 빨고 살아야 하느냐"고 원망이 늘어진다. 아파트 한채로 중산층이라 자위했던 세월들이 허망할 뿐이다.안팎의 불안한 기미 탓인가. 모두 제 앞가림에 급급하다. 대기업들은 대통령 앞에서 대규모 투자를 운운하지만 실제 금고 안에 쟁여 넣어 둔 현금을 선뜻 풀 태세는 아니다. 오히려 엔화 공습에 대비해 국내 투자 보다는 해외 투자로 자금을 돌릴 것이란 예측이 지배
-
누가 전쟁괴담을 만드나 지면기사
이런 지긋지긋한 봄날이 또 있었을까. 지천에 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향기가 없고 향기가 없으니 벌도 나비도 찾아보기 힘들다. 봄이 온 것을 눈치 챘는지 어제 사무실 안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제비가 사라진 후 파리가 봄을 알린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무실 안을 왱왱거리며 날아다니는 파리에 신경이 쓰였다.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하다. 신경을 쓸수록 파리 소리가 점차 헬리콥터 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들리니 말이다. 시중에 떠도는 전쟁 괴담도 그렇게 조그맣게 시작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을 것이다. 한 시간 만에 파리는 내 손에 잡혀 죽었다.지난 대선기간 종편, 이른바 종합편성채널들이 대목을 맞았었다. 선거 6개월 전부터 종편들이 대선바람을 잡기 시작하더니 선거 100일 앞두고 4개의 종편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아리아리한 '정치평론가'들을 총망라해 앞다퉈 방송에 출연시켰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을 수 있고 출연자의 발언이 강할수록 시청률이 높다는 것을 종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특정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등 일부 종편은 공정성을 포기한 듯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치우쳤다. 급기야 어떤 종편은 선거 당일 그동안 출연한 출연자들을 모두 불러 놓고 누가 대통령이 될지 묻는 등 위험천만한 프로를 만들기도 했다. 선거가 종료되려면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분명 선거법 위반 같은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난 후 종편은 물론이고 그 어떤 출연자도 자신의 빗나간 예측에 사과하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종편들도 마찬가지다. 종편들의 이런 태도가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다.그런 종편이 요즘 또 대목을 맞았다. 북한위기 때문이다. 4개의 종편이 하루종일 경쟁하듯 쏟아내는 방송의 양이 지난 대선 못지않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성이다. 태양절인 15일 대규모 군사퍼레이드를 예측했지만 북한은 잠잠했다. 호들갑 떨던 종편들은 머쓱해 하기는커녕 '조용히 지나간 북한의 속셈은?'이라고 제목을 바꾸고 방송을
-
벤처신화 부활할까 지면기사
코스닥시장에서 외국인 매수세가 강해지고 있다. 지난 3월 한 달 외국인 순매수액이 9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것이다. 코스닥 지수는 올 들어 12%나 상승, 미국 나스닥의 8.2%를 능가했다. 경쟁국들의 양적 완화와 북한변수로 코스피시장이 갈수록 활력을 잃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미국 실리콘벨리를 비롯한 글로벌 기술투자붐이 주목되는데 특히 기술력 있는 국내 벤처기업들이 포진한 코스닥시장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선을 끈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벤처붐이 또다시 불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 정책은 또 다른 호재였다. 창조경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육성하겠다는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여서 예단은 금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후보시절 내내 '중기대통령'을 표방, 지난 3일에는 드디어 선물(?)보따리를 풀었다. 착한 천사투자를 활성화하고 대기업들의 기술탈취문제를 근절하며 공공조달에서는 신제품이 역차별 받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할 것을 관계기관에 지시한 것이다. 벤처기업가들의 가장 큰 애로인 투자자금의 조기회수 관련 세제지원도 언급했다.근래 들어 고용없는 성장이 고착된 국내 실정을 감안할 때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가 주목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벤처시장이 다시 가열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낙관은 금물이다. 그동안 국내 벤처생태계가 형편없이 나빠진 것이다. 벤처펀드 출자 등을 목적으로 적립할 때 감세혜택을 제공하는 '기술개발준비금 손금산입'과 '투융자손실준비금 손금산입'이 2007년에 없어진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2000년 벤처붐 당시에 마련했던 주식 양도차익 비과세 대상도 대폭 축소되었다. 덕분에 은행과 증권사 등은 벤처에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다. 벤처기업이나 벤처펀드에 출자할 경우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출자액 소득공제' 비율도 엔젤투자를 뺀 나머지는 당초 30%에서 10%로 크게 축소되었다. 개인이 벤처캐피털에 출자해 확보한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규정마저 2009년에 없앴다. 정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