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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어 있는 지방기록물 관리법 지면기사
검찰이 경기도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을 압수 수색한 지 나흘째이지만 대통령기록물을 확인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 노무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으로 옮겨 붙자, 국정원에서 대화록 사본을 전격적으로 공개한 이후 대화록 실종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국회의 국정조사는 여야 사이의 설전만 오갈 뿐 사실관계가 규명될 조짐은 없어 보인다. 결국 대통령기록물 실종이라는 국가적 망신만 부각된 셈이다.일련의 사태 전개에서 국가기록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기록물 관리 수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특히 국가기록물을 정쟁의 재료로 사용하려는 의도는 우려스럽다. 이번 논란으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제정한 취지가 크게 훼손되었으며, 이번 대화록 공개로 대통령들은 가급적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기록물 관리 차원에서 보면 커다란 손실이다. 여야는 정파적 관점에서 물러나 국가기록물을 역사의 '귀감(龜鑑)'으로 삼으려 했던 본연의 취지를 되돌아보고 제도에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할 것이다.지방의 기록물 관리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현재까지 지방자치단체의 기록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기록보존소는 물론 관리를 위한 기구나 예산, 전문인력도 배치되지 않고 있다. 지방의 기록관리는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근거문서뿐이다. 공공기관이 생산한 문서의 대부분은 보존기간이 지나면 대부분 폐기되고 일부 영구보존문서만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된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20년이 되어가는데도 아직 기록의 지방자치화는 요원하다. 지방 자신의 기억을 중앙(정부)에 맡겨 두고 있는 셈이다. 지방 아카이브는 우리가 만들고 있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박물관이자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는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지방을 운영하면서 생산된 행정기록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 시민생활 기록물들이 체계적으로 수집, 분류, 보관된다면 행정업무의 효율화와 투명화, 그리고 시민들의 지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지방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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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아는 나라 지면기사
'물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되 물을 잊어 버리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되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魚得水逝 而相忘乎水 鳥乘風飛 而不知有風) 중국 명나라 때의 고전 '채근담'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 역시 공기 속에 살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우리는 작은 것에 감사할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아니, 작은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큰 일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즈음이다. 어렸을 적 어른들로부터 6·25 전쟁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 이 마저도 잊혀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생각도 든다.한국전쟁 당시 풀과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라면을 끓여 먹지, 왜 그걸 먹었느냐고 손자가 반문했다는 얘기를 듣노라면 할 말을 잃는다. 지난 달 정전 63주년을 맞아 국가와 민간단체들이 주도하는 각종 기념사업들이 펼쳐졌다. 특히 해외 참전 용사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끌었다. 국군은 물론이거니와 유엔 참전 용사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발전된 대한민국이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60여년 전 당시 세계 최빈국(最貧國)의 하나였던 대한민국이 현재 세계에서 경제 강국으로 자랑스럽게 남아 있을 수 있게 한 것도 모두 이들의 헌신이 큰 역할을 했다.6·25 당시 우리를 도왔던 해외 참전국은 전투지원 16개국과 의료지원 5개국 등 모두 21개국 약 194만명이다. 이 중 필리핀 태국 에티오피아 남아공 콜롬비아 터키 등 일부 국가들은 현재 우리보다 형편이 많이 어렵다. 적어도 이런 국가 출신 참전 용사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 지난 달 터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전 참전용사 큐축(83) 할아버지도 한국방문을 열망하고 있었다. 매년 추첨을 통해 방문자를 선정하지만 올해도 탈락해 무척 아쉬워 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으로부터 받은 '평화의 사도' 증서와 기념 메달 등을 보여주며 가보(家寶)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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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게임 하는 여야, 답답한 국민들 지면기사
49일간 계속됐던 장마가 끝났다. 이제 낮에는 35도가 넘는 폭염으로 가슴이 턱턱 막히고, 밤에는 지난해 우리가 익히 경험했던 '열대야 현상'이 우리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 것이다. 장마가 끝났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이제 '국지성 호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순식간에 쏟아져 이곳 저곳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게릴라성 국지성 호우, 예고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것만으로도 장맛비보다 더 강력하고 더 무서운 존재다. 장마가 끝나니 폭염이 오고 폭염은 열대야를, 열대야는 불쾌지수와 스트레스를 부르니 서로 연쇄작용처럼 맞물려 여름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변화무쌍한 요즘 날씨가 우리 정치판을 닮았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8개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 국정원 여직원이 감금되었다는 뉴스로 대선 정국이 시끄러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게 벌써 8개월 전의 일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한지 5개월이 지났는데 그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정치의 한 복판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처럼 웅크리고 있다. 누가 불어 넣었는지 모르지만 대단하게 질긴 생명력이다. 이런 와중에 국정원장이 불쑥 NLL 대화록을 공개함으로써 정치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 NLL 포기발언으로 비화되고 정국은 큰 혼란 속에 빠져 버렸다. 결국 국정원 국정조사로 비화된 이 사건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민주당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천막당사를 차리고 장외투쟁을 시작하는 것으로 비화됐다. 지난 토요일에는 서울 청계광장에서 '민주주의 회복 및 국정원 개혁촉구 국민보고대회'를 열며 마침내 촛불까지 들었다.이제 9월 정기국회가 어떻게 진행될지 이제 불을 보듯 뻔하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출몰해 이곳저곳을 깨부수는 국지성 호우처럼 정국은 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혼미속에 빠져 들면서 순간 순간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결국 애꿎은 서민들만 열대야로 인한 불쾌지수성 스트레스에 정치성 스트레스까지 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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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안전은 뒷전인 은행 군살빼기 지면기사
은행권이 또다시 시끄러울 모양이다. 경기 부진의 장기화에다 저금리 여파로 시중은행들의 순이익이 2007년 15조원에서 지난해에는 8조7천억원으로 반토막난 터에 올 하반기에는 STX그룹 등 대기업 및 해외부문의 동반 부실에 기인한 대손충당금 격증이 예고된 때문이다. 은행경영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금융감독원은 수수료 인상 카드를 꺼냈다 여론의 몰매로 스타일만 구겼다. 비용 축소를 담보하는 군살빼기가 유일한 해법이다. 하나, 국민, 신한금융의 임원급여 삭감을 신호탄으로 뱅커들의 연봉 줄이기 도미노가 예고되었다. 은행원들의 평균급여는 1억원으로 지난 8년동안 무려 60%나 오른 데다 증권, 보험, 카드사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 이유이다. 인력 감축도 고려대상이다. 은행원수는 2002년 11만8천600여명에서 현재는 13만4천700여명이다. 그러나 은행노조가 반발할 가능성이 매우 커 구조조정은 시늉만으로 마무리될 개연성이 높다.점포 축소는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시중은행들이 인구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7천800여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영업점과 현금인출기(ATM) 이용자수가 현격히 줄어든 것은 또다른 이유이다. 인터넷뱅킹 인구의 폭발적 증가가 직접적 배경이다. 그 중심에 모바일뱅킹이 자리하고 있다. 3월말 현재 국내 모바일뱅킹 등록고객수가 4천만명을 돌파해 불과 1년전에 비해 무려 70%이상 격증했다. 유무선 인터넷뱅킹 인구수는 8천940만명으로 하루 거래액수도 1조원을 능가, 전통적인 어음수표 결제규모보다 더 커졌다. 오프라인창구에서 온라인창구로, 면대면 업무에서 비대면 업무로 은행권의 결제시스템이 변한 것이다.초고속 통신망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보급 확대가 결정적이다. 시간절약은 물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접속할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은행들의 경쟁적인 인터넷뱅킹 우대전략은 금상첨화였다. 은행수지는 물론 국가경제적으로도 순기능이 커 정부도 사이버결제 제고에 한몫 거들었다.스마트폰 기능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되어 조만간 '손안의 금융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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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 없는 사회적 기업 지면기사
사회적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회적 기업에 대한 기대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신(新)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사회적 문제를 비즈니스를 통해 해결하는 새로운 발상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몇 차례 심사위원 자격으로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의 공모전을 참관하게 되었다. 사회적 기업들은 과연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지 궁금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심사에 참여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기회를 통해 큰 염려를 얻게 되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우리의 사회적 비즈니스는 과연 지속가능한가'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가장 결정적인 염려는 사회적 기업은 있으나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를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놀라는 독자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적 기업 모델의 공모에 참여한 사람들이 바로 사회적 기업가가 아니겠냐고 반문할 것이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모 제안자들 중에는 상금을 노리는 소위 '공모 전문가'조차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이들은 실제 사회적 기업을 추진하지는 않고 상금만을 위해 온 동네 공모제에 참여하는 그룹이라는 것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나면 수익 모델이 성립되지 않거나 취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측면으로 운영될 수 있지만 사회적 기업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고, 수익 모델이 성립하는 경우는 오히려 그 사업을 추진할 기업가는 없는 상황이었다.정부 지원을 통해 청년실업자와 노동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 기업 모델은 당장 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업도 중장기적인 자립 능력이 없다면 기업으로 지속될 수 없다. 정부 지원이 없을 때를 대비하는, 그리고 자신의 사업체를 번창시킬, 그래서 현재보다 더욱 사회적 공헌을 높일 기업가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 운동과 동의어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을 복지로 보는 것은 오류이다. 복지는 복지이고 기업은 기업이다. 사회적 비즈니스가 복지와 만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같은 목적의 사회적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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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발을 위해 몸바친 사람 지면기사
벗은 조선인의 발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근대 복식사 연구자나 인천 연구자들에겐 익히 알려진 인천 삼성태(三成泰)의 대표 이성원(李盛園)씨가 그다. 맹인들을 위해 점자를 고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은 이성원을 전조선인이 각광했던 개량 신발인 '경제화'(經濟靴)와 10여종의 특허품을 발명한 '천재'로 여러 차례 특필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만능 접착제인 '만능호'의 전매특허를 받기 위해 태평양 건너 미국행까지 감행했던 인물이다. 이성원은 신발과 관련 기술에 관한한 일본인들의 기술을 능가한 장인(匠人)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기술 경쟁을 벌였던 선구적 경제인이기도 했다.이성원의 활동에 대한 관심과 환호는 세월에 묻혀 지금은 몇몇 회고담을 제외하면 잊혀진 전설이다. 그의 화려한 발명 신화가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한 원인이겠다. 또 그가 발명한 특허품에 관한 단편적 기사 외에 그의 생애에 관한 자료가 전무한 탓도 클 것이다. 그런데 이성원이 6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고일의 회고('仁川昔今')나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인 을미년(1895)에 인천으로 이주해 왔다는 이성원 자신의 회상기를 참고하면 그 생애는 성글게나마 복원할 수 있다.경기도 수원 태생인 이성원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홉 살이 되던 해인 1895년 개항장 인천으로 이주하였다한다. 인천에 와서 관립일어학교에 합격하였으나 집안사정으로 입학을 포기하고 만다. 한문서당 공부도 가난 때문에 그만두고 어린 나이에 포목점과 운송회사 등에서 점원생활을 하였다. 이성원은 7년간 점원생활로 모은 돈으로 처음에는 고급가구인 목칠기(木漆器) 공장을 운영하였으나 사업이 여의치 않자 개화 문물 중의 하나인 양화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이성원이 약관의 나이에 개점한 이 양화점이 바로 한국의 근대 신발인 '경제화'를 탄생시킨 삼성태이다.이성원이 1911년에 고안한 경제화는 1913년에 특허등록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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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용사 터키 할아버지 지면기사
터키를 여행 중이다. 지난 4일 새벽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이후 다시 비행기로 동남부 도시인 가지안텝을 거쳐 산르우르파에 와있다. 산르우르파는 아브라함이 태어난 도시로 성경에서 구약이 시작되는 곳이다. 아브라함은 기독교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동시에 이슬람에서도 이슬람의 선조인 이스마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인근 하란과 함께 1년 내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최대의 성지다. 산르우르파는 터키에서 가장 더운 도시 중의 하나로 오전에도 영상 40도를 넘는다.가지안텝에서 산르우르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난 터키 청년은 우리를 낯선 도시로 안내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어리둥절했을 우리에게는 고마움 그 이상이었다. 아들과 동갑인 26살이라는 그 청년의 반갑게 맞아주는 미소에는 으레 관광객을 향해 보여주는 형식적인 것 이상의 애정이 묻어났다. 그 청년 덕에 아브라함이 태어난 동굴과 아브라함의 연못 등 유적지들을 쉽게 돌아볼 수 있었다.며칠 전에는 배낭을 멘 채 도시를 걷다가 해가 저물어 길을 잃었다. 택시조차 보이지 않고 간간이 다니는 버스는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히잡을 두른 젊은 여인이 다가왔다. 아내를 포함한 3명 분의 버스비를 내주고 호텔이 많은 시내까지 우리를 안내해줬다. 일일이 우리들이 마음에 드는 호텔을 선택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었다. 간호사로서 야간 교대근무하러 가다가 길을 헤매던 우리를 만났던 것이다. 터키인들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따스한 마음을 똑같이 나눠 가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엊그제는 호텔에서 나와 도시를 걷고 있었다. 자그마한 가게 앞에서 물 한 병씩을 사서 마시고 있는데 중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자신의 승용차로 제법 멀리 떨어진 큰 공원에 데려다준 그는 퇴근 후 우리들을 또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공원을 산책하고, 케밥으로 점심도 때우고 터키 어린이들과 사진도 함께 찍으며 그를 기다렸다. 약속시간인 6시에 공원 앞에 나타났다. 집으로 우리 가족들을 데려갔다. 1남3녀를 둔 단란한 가정이다. 한국의 빌라와 비슷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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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구나! 똑같아 지면기사
정치는 피도 눈물도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는 내일 반드시 적이 된다. 국가의 미래도, 국민의 안위도 안중에 없다. 자신들의 그 알량한 정치생명, 그걸 지키기 위해 위기의 순간만 넘기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물러터진 국민들이 모든 것을 하얗게 잊어버린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번 NLL 파문으로 누가 공격을 더 잘하고 누가 역풍을 맞는지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국민들이 속으로 골병이 들고 있다는 것. 세상에 비밀은 없어 언젠가 밝혀진다는 것.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것. 그래서 상처는 국민만 입는다는 것.국론은 이미 분열을 시작했다. 대선이 끝나고 잠시 멈칫했던 국론은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사건을 기점으로 균열 조짐을 보이더니 NLL 논란으로 완전히 쫙 갈라졌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내전이 진행중이다. 보수와 진보 사이트간에 목숨을 내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슈마다 주렁주렁 달려 있는 저 수많은 저주의 댓글들. 여기에 언론들이 가세하고, 학자를 빙자한 정치교수들이 뛰어들고, 정치인들이 싸움을, 갈등을, 증오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 국가정보원 국정조사로 수세에 몰려있던 정국을 NLL 논란을 통해 공세로 바꾸려다 역풍을 맞는 새누리당, 대선 패배 책임론으로 바닥까지 추락했던 분위기를 NLL 논란을 통해 극적으로 전열을 정비하고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민주당 친노파, 밀리면 안철수 신당에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돌파하기 위해 '갈 데까지 가보자'며 몸부림치는 민주당 비노파. 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렇게 꾸역꾸역 판을 키웠는지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NLL 파문으로 새누리당 지지율은 41%에서 37%로 떨어졌고, 민주당도 반짝 상승 후 다시 18%까지 하락했다. 양당 모두 지난 대선 이후 최저다. 그러나 지지 정당 없는 무당파는 대선 이후 최고치인 41%까지 올랐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패자고 정치에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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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덩이 국가채무와 정치 지면기사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에 즈음해 국가부채 문제가 다시 주목되고 있다. 작금들어 각국의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미국은 시퀘스터의 적용으로 향후 10년 동안 총 1조2천억 달러의 재정지출을 줄일 계획인데 천문학적인 재정적자가 직접적인 배경이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작년 말 현재 16조4천억 달러로 국가부도지경인 법정 상한선을 돌파한 것이다. 기축달러국의 지위를 이용해서 달러화를 남발한 것이 화근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경기부양을 구실로 해마다 1조 달러 이상씩 빚을 불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일본은 국가부채가 970조엔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최고(205.3%)여서 재정파탄 내지는 금리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이다. 아소 다로 재무상의 "엔화를 찍어서 빚을 갚으면 된다"는 발언이 시사하는 바 크다.지난 4월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을 목적으로 17조3천억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한국은행 잉여금 2천억원과 세출감액 3천억원, 세계(稅計)잉여금 3천억원을 제외한 15조8천억원은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했다. 마이너스통장의 대출한도까지 융자받은 것이다. 덕분에 중앙 및 지방정부, 국민연금 등의 빚이 2003년 165조원에서 10년만에 3배 가까이 증가, 부채규모가 480조4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은 36.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02.9%에 한참 못미친다.정부는 우리나라의 부채수준이 양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시장연구원 조성원 박사의 "한국과 네덜란드 등 소규모 개방경제국들은 정부부채비율을 35.2% 이내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된다. 경제규모가 작고 금융시장이 개방된 국가일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한 만큼 부채비율을 낮게 유지해야 하는 탓이다. 부채증가속도가 빨라지는 점도 걸림돌이다. 시티그룹의 경고에 눈길이 간다. 새정부가 복지예산을 늘리는 대신 사회간접자본 지출을 줄이기로 한 것은 정부부채를 더 키울 수도 있어 주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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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는 한국경제의 첨병이다 지면기사
한국 경제는 중소기업에 관한 몇 가지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그 문제들은 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에서 잉태되어 고착된 문제들로서 해결책이 그리 만만치 않다. 첫 번째 문제는 중소기업의 낮은 혁신성 문제이다. 중소기업의 혁신을 높이려고 해도 자체적인 혁신 능력이 부족하고 자원 확보 역량도 떨어지는 편이다. 두 번째 문제는 대·중소기업 사이의 구조적 문제이다. 오랜 하청 관행이 굳어져서 중소기업이 스스로 성장을 계획할 수 없다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문제는 한국 경제의 성장모델이 통했던 '표준화' 시대 이후에 대한 대비 문제이다. 표준화 시대에서는 반도체 및 자동차를 비롯한 조립 산업에서 성공하고 있지만, 미래 시대가 요청하는 창조 경쟁에 관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이 과제들은 공통적으로 중소기업의 혁신 능력이 강해질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우리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중 99%의 비중을 차지하지만, 한국 경제의 성장 역사에서 잉태된 구조적 문제들로 인해 혁신 능력을 좀처럼 향상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중소기업의 역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중소기업을 경제 중심에 세우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판세를 바꿀 수 있는 선도 종(種)이 필요하다.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종을 생물학에서는 '생태공학자'라고 부른다. 생태공학자는 생태계 구조를 바꾸거나 다른 종들의 생존조건을 바꾸는 기능을 맡는 종자(種子)이다. 구체적으로, 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변경시키면서 생태계 전체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생태공학자이다. 사막의 다습성 식물, 초원의 들쥐, 북태평양 연안의 해달, 땅속 공간의 지렁이 등이 잘 알려진 생태공학자들이다. 한 생태계는 생태공학자에 의해서 존립 기반이 굳어지고 미래 진로를 개척한다. 이렇듯 생태공학자는 생태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공헌한다.현재 한국 경제에서 생태공학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기업은 바로 벤처기업군(群)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넓혀지기 위해서는 현재의 판도를 바꾸려고 전선에 나서는 첨병이 필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