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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코에 녹아웃된 기업들 지면기사

    지금부터 꼭 100년 전 대대적인 토지조사사업이 개시될 무렵의 일이다.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바람이 불자 이참에 땅을 매각하려는 지주들이 많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일본 화폐의 국내 통용도 점차 늘어갔는데 엔화는 화폐가치가 안정되어 상거래수단으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도시에 국한된 것일 뿐 시골 오지에서는 엔화를 처음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서 어이없는 일도 발생했다. 일부 악질적인 일본인들은 어리숙한 시골 지주들에게 접근, 땅값을 후하게 쳐준다고 유혹한 뒤 10엔짜리 지폐를 물에 불려 앞면과 뒷면을 분리해 20엔으로 계산하거나 혹은 위조화폐를 건넨 다음 제3자에 되팔아버리고 도주하는 일이 빈발했던 것이다. 대박을 좇아 시류에 편승했던 상당수의 시골 촌로들만 낭패를 당했다.원-달러 환율이 900원대에 머물던 작년에는 키코(KIKO·Knock-in, Knock-out)라는 신종 파생금융상품이 한창 유행이었다. 대기업처럼 환헤지 전담팀을 갖추지 못한 수출중소기업엔 안성맞춤이었다. 이 상품에 가입하지 않는 중소기업 사장들은 원시인(?)쯤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서 은행원들은 대출 시 '꺾기' 방식으로 키코 가입을 권유하거나 신용등급을 실제보다 높여 약정액을 끌어올리는 등의 선심을 베풀기도 했다. 수출액을 훨씬 능가하는 오버헤징도 비일비재했다.키코는 환율이 약정한 범위 안에 머무를 경우 시장가보다 높은 지정환율(행사가)로 외화를 매각할 수 있어 환차익은 물론 지정한 하한선 아래로 떨어지면 계약무효(녹아웃)가 되어 기업은 손실을 입지 않는다. 짭짤한 환차익을 누리는 기업들도 다수 생겨났다. 국제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수출경쟁력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터에 웬 떡(?)인가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횡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연초에 들어서면서 환율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수출을 촉진한다며 환율상승을 부채질했다.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의 환차손액이 총 1조4천781억원에 달했는데 이 중 중소기업이 본 피해액만 1조1천387억원으로 전

  • 대통령만 보였다(?) 지면기사

    "선거사상 가장 큰 표차로 정권을 탈환했다"고 했다. "이제 잃어버린 10년을 다시 찾게됐으니, 희망을 갖고 기대만 키우면 된다"고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지난 2월 취임사에서 장담했다. "2008년은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이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 실용의 시대로 나갈 것이다. 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다.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통합하겠다. 특히 경제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다지겠다" 등등….그러나 새 정부 5개월여의 실적은 초라하기만 하다. 차라리 참담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출범 전후 밀어닥치기 시작한 고유가에 원자재값 국제 곡물값 폭등, 여기에 치솟기만 하는 물가로 백성들 삶은 하루 하루가 어려워져 갔다. 그나마 유가는 다소 숨고르기에 들어서는 듯 싶지만 아직은 앞날을 점칠 수 없고, 원자재값 곡물값도 계속 뛴다. 자연히 국제수지 적자폭이 커지고, 국제수지가 불안하니 환율 주식시장 불안까지 몰고와 금융위기감마저 고조된다. 물가 폭등에 경기는 위축되고, 기업이 비틀거리니 고용시장이 흔들리며 서민 가계는 바닥을 긴다. 하지만 정부는 여태껏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더구나 쇠고기 졸속협상 파동은 격렬한 촛불시위를 불러와 나라를 온통 들었다 놓았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쇠고기 정국에 완전히 함몰되다시피 됐다. 그 사이 언제 민생을 챙기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이 아예 혼까지 놓아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기껏 과거에 연연않고 실용외교를 편다 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뒤통수만 세게 얻어맞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교과서 해설서 명기에, 믿었던 미국마저 지명위원회가 독도의 한국령 표기를 '주권 미지정'으로 변경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 사이 우리 외교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거나 까맣게 모르고 있기까지 했다. 뒤늦게 대사를 소환한다 어쩐다 법석을 떨어본들 차 지나간 뒤 손드는 격이었다. 그나마 부시 미대통령의 아량인지 선심인지 덕에, 미지명위원회 독도표기 문제는 원상회복됐다지만, 우리 외교의 무능은 이

  • 낙하산에 흔들리는 리더의 품격 지면기사

    토공과 주공의 통폐합. 통합이 국가경제를 거덜 낼 수 있다는 토공 노조의 주장과 통합을 바란다는 주공 노조의 광고전이 치열하다. 이들 기관의 통폐합이 다른 기관보다 시민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땅과 집을 관장하는 공기업이라는 점 때문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통폐합의 단골이던 두기관이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러나 상황은 토공에 불리하다. 외형상 덩치가 큰 주공 노조가 통합을 찬성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노노싸움의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참여정부의 코드인사보다 훨씬 신속하고 폭넓게 공기업과 산하기관을 점령한 MB정부가 어떤 전략을 구사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또한 두 기관의 통합을 둘러싼 전략과 대응방식에 따라 일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결과에 따라 노조문화와 공기업의 역사 자체가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바탕은 넘쳐난다. 법의 정신보다 권력의 눈치에 익숙한 사회, 배려와 포용력이 사라진 가족 관계, 삶을 근원에서부터 흔들어 대는 경쟁 우선주의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통합과 민영화가 최선이라고 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공익'이 설자리는 어디인가. 공기업이 비리와 낭비의 주범이라면 낙하산 인사보다 해당기업을 없애는 것이 옳다. 공기업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개혁의 핵심은 CEO의 교체보다 보조금과 세제 그리고 각종 수수료의 구조적 조정에 달려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개혁을 앞세워 기관장을 교체하는 속셈이 전리품 분배의 수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에 있는가.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공기업이 거덜 나고, 리더의 품격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실력과 신념이 아니라 권력에 줄을 댄 사람들이 이끄는 조직과 사회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병을 완치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힘을 우선 키워가는 것이 병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보약이라고 해도 약의 남용은 사람의 몸을 해친다고 한다. 그런데도 5년 주기로 정권이 내건 개혁과 일등주의에 국민들은 골병이 들었다. 외과적 수술보다 조직의 내성과 자생력 보강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상사를 멀리 내

  • 손 놓은 50년 지면기사

    언제 멈출지 끝 모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망언이 또 불거졌다. 한·일 외교선상에서는 사이좋은 이웃이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이면의 얼굴은 굶주린 늑대 형상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제헌 및 건국을 선언한지 60주년인 올해 일본의 표리부동이 더욱 심각해 비굴할 정도다. 극보수층을 앞세운 일본의 영유권 운운은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정공법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일본의 극단주의적 행동에 대한 우리의 대처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일본이 독도에 대한 짝사랑을 노골화한 시점은 1950년대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독도는 예부터 일본 영토라는데 의심이 없다'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며 평화적 수단으로 꾸준히 해결을 추진하겠다' '다케시마는 우리 영토며 이같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 영토이자 시마네현 5개 촌에 속해 있다' 등등 망언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음모가 숨어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우리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커지고 있다. 드러내놓고 외친 구호는 독도를 일본 땅으로 예속시킬 근거 마련을 위한 시간벌기 속임수로, 이면에는 국제적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었음을 정당화시키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시켜 왔다.최근 숨가쁘게 진행된 사건만으로도 독도를 향한 일본의 치밀하고 은밀한 외교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내용을 명기하기로 하는 한편 섬으로 분류된 독도명을 국제법상 영유권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암석 개념인 '리앙쿠르 암'으로의 주제어 변경을 미국 의회도서관을 상대로 시도했다. 미의회 도서관 주제어는 미국 공공 및 민간 도서관, 각종 연구실에서 도서와 자료를 분류하는 기준이 되며, 각국에서도 이를 준용할 공산이 크다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이를 막은 것이 정부가 아닌 캐나다와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한국 여성이라는데서, 나라사랑 독도사랑을 외쳐온 우리 정부가 독도를 지키기 위해 해온 노력과 성과물이 있는지 묻고 싶다. 없다면 뼈

  • 재벌들은 문제가 없나 지면기사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0년래 최고수준인 5.5%를 기록했다. 선행지수인 생산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대비 10.5%나 증가, 1998년 11월 이래 최고수준이다. 지난 5월에만 원자재가격이 80%이상 상승, 1980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원-달러환율은 정부의 강력한 시장개입 덕에 그런대로 버티고 있으나 얼마나 견딜지 두고 볼 일이다. 올해 경상수지는 1997년 이후 10년만에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연중 최저수준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가계빚도 사상최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1998년 85%에서 지난해 150%로 증가, 부채상환능력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단기외채 비중이 급격하게 불어나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고유가에서 촉발된 해외발 열대성 저기압이 미구에 한반도를 강타할 예정이다.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되지 않으나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슈퍼태풍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일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제3차 오일쇼크가 시작됐다며 범국가적 위기대처를 당부했을까.정부는 지난 외환위기 때보다 외환보유고가 상대적으로 풍부할 뿐아니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상당수준 낮아져 애써 위안하는 눈치다. 그동안의 재벌성적표가 궁금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는 식이니 말이다. 국내기업들의 평균 부채비율은 1997년 당시 400%에서 최근에는 100%로 떨어지는 등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체기업 평균수치일 뿐 재벌부문의 내역을 보면 그리 편치 못하다.30대그룹의 계열사수는 2005년 3월 664개에서 올 3월에는 843개로 27%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그룹 계열사의 자산총액규모는 644조원에서 918조원으로 42.6%나 증가,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은 한층 심화됐다. 내부거래도 급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편 같은 기간 30대그룹의 부채총액은 403조4천억원에서 556조7천억원으로 최근 3년간에 무려 153조원이나 증가했다. 특히 올 1월부터 5월까지

  • 기싸움은 이제 그만 지면기사

    정부투자기관이나 공기업 직원들을 가리켜 '신이 내린 직장인'이라 일컫는 이들이 많다. 경영수익이야 올리건 말건, 심지어 마이너스 경영이 되든 말든 고액연봉을 받으며 한껏 흥청댄다 해서다. 그런데 시급한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였건만,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거액의 봉급을 타먹는 국회의원들은 무어라 불러야 좋을까. 그것도 아깝기 그지없는 국민의 혈세로 말이다. 아예 '신이 내린 직장인'을 넘어 신 그 자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18대 국회 임기시작 한 달을 훌쩍 넘기고 이제야 간신히 개원을 한다고 한다. 헌정 사상 처음 의장도 선출 못한 채 첫 개원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도 넘겨버렸다. 국회법엔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지난 5월 30일)로부터 7일째(6월 5일)에 개원식을 갖도록 돼 있다는데, 그런 건 이미 무시된지 오래다. 그런데도 지난달 20일엔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게 첫 세비가 지급되기도 했다. 1인당 900만원이 넘는다. 엄밀히 말해 무노동 유임금이다. 이제 열흘쯤 지나면 두번 째 세비가 또 지급될 것이다.그래도 그들 의원들 중엔 염치라는 걸 좀 아는 이들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한 의원은 아무 한 일도 없이 받은 세비가 마음에 걸렸는지, 지역구민들에게 환원한다며 암송아지 네마리를 사 축협에 사육을 위탁했다 한다.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의원의 처지가 참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쇠고기 파동 촛불시위를 빌미로 한달 넘게 등원을 거부해온 야당 의원들이나, 이를 제대로 포용 못하는 거대여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이나 한심해 보이기는 매한가지다. 도대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우선 야당 의원들만 해도 그렇다. 쇠고기 협상에 문제가 있으면 마땅히 제일 먼저 국회에서 따졌어야 옳았다. 그것이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이다. 직접 민주주의 방법이라 할 촛불시위는 일단 국민들에게 맡겨놓고 말이다. 정히 국민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고 여겨졌으면, 먼저 국회에 등원해서 그날 그날 회의를 마친 다음 밤에 촛불을 들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가 무엇인지도

  • 오사카의 이병창을 아시나요 지면기사

    지난 6월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기미술관에서는 '하늘에 바친 그릇, 조선시대의 제기'이라는 테마 전시회가 열렸다. 오사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사카 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한복판에 한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장마 비가 사정없이 내리던 날. 미술관에서 꼼꼼한 안내를 받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과연 내가 이 미술관에서 받은 충격은 무엇일까.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내내 고민에 빠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적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느낀 감정과 달리 왜 답답함과 뭉클함이 가시지 않는 것일까.우선 미술관의 탄생부터가 배울만하다고 생각했다. 미술관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아타카에이치(安宅英一)와 이병창 박사이기 때문이다. 아타카 Collection은 주로 상감청자와 조선백자로 대표되는 1천여점의 도자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회사가 도산하자 작품의 분산과 해외 유출 문제가 일본 문화청과 국회에서까지 문제되었다. 결국 작품들은 스미토모(住友)그룹이 오사카 시립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일단락되었고, 이를 위해 오사카시가 동양도자기미술관을 설립한 것이다. 그런데 초대 오사카 외교관이었던 이병창 박사가 평생 수집한 한국 도자기 301점과 살던 집 등을 같은 미술관에 모두 기증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이병창 Collection Gallery와 도자기 연구실을 1999년에 증축하여 개관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도자기 전문 미술관으로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정평을 얻게 된다.나는 일본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볼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어떤 이유로 크고작은 문화 공간들이 많이 설립되고 운영되는가. 문화재 보호에 대한 특별한 의식 때문인가 아니면 정책의 결과인가. 그 시작은 역사적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패전 후 이른바 명문가와 부호들이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고 한다. 연합국사령관 자문단이 일본의 세제 개혁을 권고했고, 이를 받아들여 부유세를 신설하였다. 그런데 세금 회피와 현금의 필요성 때문에 집안

  • 리더와 소통 지면기사

    오늘이 6·25발발 58주년이다. 10년 주기인 강산의 계산법으로 해도 다섯 번을 넘겨 여섯 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인간세상은 이보다 더해 그 속에서 숱한 부침을 거듭해 왔고, 사는 방법 또한 여러 갈래로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변화하기를 거부하며 우리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있다.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양극의 대치상황으로 여러 면에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 즉 이념이 조화가 아닌 반목상태의 양면성을 보이면서 사회를 양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생각의 고정이나, 정치 및 사회에 부조화가 접목되면서 반대편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풍토가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면 틀린 말일까. 특히 첨단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생각의 다양성이 특정한 이슈에서는 한곳으로 몰리는 획일화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리더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함이라는 생각이다. 게리 맥킨토시, 새무얼 리마는 "리더는 단지 효율적으로 일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목표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리더는 자기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라고 리더를 정의했다. 수단과 방법, 즉 과정이 좋지 않으면 일에 맞는 리더의 가치관 접목과 바른 판단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그것이 통치자의 행위라면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데서 사태는 심각하다. 그래서 바른 정치의 첫째 조건으로 원활한 소통이 전제돼야 한다. 소통 장애로 여론을 바로알지 못하면 의도가 좋아도 국정운영이 한 쪽으로 치우쳐 방향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의도와는 상관 없이 반대 급부 요인이 발생하며, 이는 국정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작금의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민들이 실정을 거듭 경고해도, 듣지 않고 결과를 미리 내 한 방향으로만 내닫는 일방통행식 정치행위가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나서야 끝을 고하는 형국이다.대통령의 두 번에

  • 경유대란의 교훈 지면기사

    지난 10년 동안 휘발유값은 70%정도 오른 반면에 경유값은 무려 380%나 올랐다. 경유가격의 상승폭이 휘발유 대비 5.4배다. 경유차 운전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경제적 고통을 호소할 만도 하다.경유값이 이처럼 엄청나게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장기간에 걸친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때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인도·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의 빠른 공업화에 따른 경유수요 증가가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국내 경유값 폭등에는 우리나라 정부도 한몫 거들었는데 계기는 지난 2000년 에너지세제의 전면개편이었다. 환경오염 방지차원에서 경유에 붙는 유류세를 점진적으로 높여 경유사용을 억제할 목적이었다. 세계 10위의 에너지소비국인 탓에 기후변화협약 강화움직임도 고려했으며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경유값을 휘발유값보다 높게 책정한 사례도 참고했을 것이다. 경유가격의 단계적 인상계획은 2004년 2차 에너지세제 개편으로 구체화돼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비를 2004년 100:70에서 2005년에는 100:75로 그리고 2006년에는 100:80, 목표연도인 2007년에는 100:85로 확정했다. 최종목표치 100:85는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상대가격비였다.유가자유화조치는 옥상옥이었다. 2001년 정부는 석유제품의 국내가격을 종래 도입원유가격에 연동시키던 것을 국제현물시장가격에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했던 것이다. 차제에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유가 상승분을 국내 휘발유가격보다 경유가격에 더 많이 전가시켰다. 불어나는 유류세에다 정유사까지 가세, 경유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2005년 7월 현재 휘발유대 경유의 상대가격비가 100:75여야 했으나 이때의 실제 가격비는 이미 100:79로 차년도인 2006년의 목표치에 근접했으며 2006년 7월에는 2007년 목표치에 접근(100:84.04)하는 등 계획보다 1년이나 앞당겨 조기에 목표를 달성했던 것이다.이명박 정부도 경유대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연말부터 국제경유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는데 정부가 의도적

  • 과학과 국민 정서 지면기사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 한때 TV전파를 타고 안방에 울려퍼졌던 어느 가구회사의 광고 카피다. 자신들이 만든 침대가 과학적 연구성과를 많이 담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멋모르는 사람들에겐 엉뚱한 오해를 살 수도 있었던 내용이다. 오죽하면 한 초등학교 시험에서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침대'라고 답한 학생이 속출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인들이 미 쇠고기에 관한 과학적 사실을 더 배우기 바란다"고 했다. "뭣 좀 알고 쇠고기 이야기를 하라"는 식으로 들렸다. 혹 '침대' 답변을 했다는 초등학생들을 떠올린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문득 19세기 초 한 서양인이 그렸다는 '한국인 상상도'가 생각난다. '파란 눈에 비친 하얀 조선'에서 옮겨 실었다는 어느 책에서 본 그림이다. 한쌍의 남녀 그림인데 남녀 모두 옷 대신 굵은 줄무늬천으로 몸을 둘둘 말았다. 머리엔 삼지창처럼 삐죽 삐죽한 게 장식으로 얹혀있다. 게다가 여자는 가슴을 모두 드러낸 반라의 모습이다.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기야 그 시절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그들이 멸시하던 인디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쇄국 탓에 당시 서구인들이 으스대며 자랑하던, 소위 근대화에 서툰 한국인들의 모습이 꼭 미개인들처럼 보였음직도 하다.그같은 이미지가 여지껏 씻겨지지 않아, 버시바우도 그런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정녕 그렇다면 우리의 외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 버시바우라면 세계 최강국의 외교관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가 우리와 어울려 산 세월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직업 외교관인데, 설마 한국을 그토록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면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우리 국민에게 일부러 어깃장을 놓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를 너무 쉬운 상대로 여긴 것일까. 별별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