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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가 핫머니로 둔갑했다 지면기사
"담배 있나?" 경호원의 거짓말로 드러나긴 했지만,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로 여겨지면서 전국의 분향소마다 조문객이 노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친 담배들로 넘쳐났다.서민들의 애용품인 담배소비량과 경기간에는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 속설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글로벌금융위기 여파로 담배소비량은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지난 1분기 국민들의 담뱃값 지출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술값지출도 동반하락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란다.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한 탓으로 추정하고 있다. 1분기 가구당 실질소득이 전년 동기대비 3% 감소하고 소비지출 감소는 이보다 두배나 높은 6.8%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적자가계도 3가구 중 1가구 꼴인데 하위 30%계층의 적자가구는 절반이 넘는다. 글로벌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층이었던 것이다.통화유통속도도 사상최저치로 추락했다. 실물부문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와 국책금융기관, 한국은행 등이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총 390조원을 조성했다. 올해 정부예산 284조원보다 무려 1.4배나 큰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고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규모를 5조6천억원으로 늘렸으며 유류세환급금 3조5천억원을 포함 총 6조6천억원의 세금을 돌려주는 등 지금까지 집행된 자금만 132조2천억원이다. 덕분에 나라빚만 1년 사이에 추가로 60조원이 불어나는 등 지난 1분기 통합재정수지는 12조4천억원의 적자로 사상최악을 기록,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그런데도 서민경제는 전황(錢荒)으로 돈 구경하기가 어렵다.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증가율은 지난 4월 3조2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10조9천억원의 3분의1 수준에 머물렀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린 나머지 엄청난 돈이 은행금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한몫 거들었다. 자산총액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올 3월말 기준 유보율은 9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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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권력 키우는 신문법 지면기사
"신문에 나타난 것은 이제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오염된 매체에 실리게 되면 진실조차도 의심받게 된다."'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후 신문에 대해 180도 시각을 바꾼 이유는 뭘까? 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공세에 지친 탓이 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만큼 언론과의 관계가 불편했던 대통령도 없다. 임기 내내 언론의 의제는 '대통령 때리기'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보수 메이저 신문과의 관계는 더욱 불편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언론이 누굽니까?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빌딩 갖고 있는 신문사들 아닙니까?"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던 노 전 대통령을 이들은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무명 정치인이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에는 이들 언론의 기여가 컸던 게 사실이다. 지난 1988년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서 공격적인 어투로 급소를 파헤치던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결국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까지 올라 청와대에 입성했다. 미디어 정치의 큰 혜택을 입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제퍼슨처럼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언론과 인터넷의 영향력은 컸다.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언론들의 적극적 보호가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여론을 실시간으로 주도한 우파 인터넷의 묻지마식 기대감과 지원이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보수언론 출신들은 당연히 MB정권 속에 파고들었고, 언론정책을 펼치는 데 주요 포스트에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대변인, 방송통신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그들이다.신문법 개정안을 비롯한 언론 관련 7대 법 개정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우선 신문법 개정안의 핵심을 들여다 보면 거대 신문의 방송진출 허용과 중소 신문에 대한 통제다. 기존법의 일간신문·통신이 방송을 겸영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을 삭제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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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도시의 꿈 지면기사
전국이 자동차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빵빵거리는 경적으로 소란스럽고 내뿜는 독가스로 공기가 혼탁하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길을 걷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 실제로 교통사고율도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모든 도시가 자동차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자동차에 밀려 사람은 위축되고 왜소해진다. 주차장과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집을 철거하고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까지 없애왔다. 차가 밀리면 도로를 넓히고, 도로를 넓히니 길거리 자동차가 늘고, 또 도로를 넓히는 악순환 속에서 사람이 사는 생활공간을 자동차에게 빼앗겨 왔다. 자동차가 주는 편리함보다는 자동차 때문에 잃어버린 삶의 터전이 너무나 크다. 지금도 사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은 뒷전에 있고 사람이 자동차를 모시고 사는 세상이다.이제는 더 이상 자동차에게 내어줄 공간이 없다. 발상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지금 단계에서 최선의 교통대책은 차가 밀려도 더 이상 도로를 확대해서는 안 된다. 자동차를 타고 나와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밀리게 되면 차량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차량의 속도가 걷는 속도 이하로 떨어지면 사람들이 차량을 버리고 싶어진다고 한다. 마침 서울 세종로의 16차선 가운데 6개 차선을 잘라내어 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불과 210m에 불과한 공원이지만 상징성은 매우 크다. 자동차에 빼앗긴 도로를 흙으로 채워 공원으로 가꾸어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좀 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시내 곳곳의 8차선 도로에서 4개 차선만 남기고 나머지 4개 차선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가꾸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낸다고 상상해 보자. 4차선 도로에서는 2개 차선을 남기고 나머지는 2개 차선을 마찬가지로 만든다고 해보자. 도심을 가로질러 수십㎞가 푸른 숲으로 연결되어 있는 도시모습을 생각해보자. 교통체증에 짜증을 내며 자동차 안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살맛나는 도시의 모습이다.이렇게 발상을 전환해보면 그동안 도로를 넓혀왔던 것도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포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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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행복 지면기사
행복은 만드는 것이 맞을 게다. 그 행복은 의지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며,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주변 여건이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생활환경에 따라 달리하는 행복의 조건은 만들 수 있어도 만족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것이 요즘 세상 일이다. 성장기의 행복은 의지와 상관 없이 꾸려진 가정에서 찾아야 한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년기 행복은 내 가정을 어떻게 꾸리고 지키느냐에 달렸으며, 그 후 행복의 정도는 선택한 생활의 형편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만족도에서 달리한다.결혼과 자녀, 즉 가정은 행복의 원초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애덤스는 결혼을 위한 배우자 선택과정을 4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제1단계는 이성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 즉 신체적 매력 혹은 매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제2단계는 관심과 매력을 느낀 상대를 만난 뒤 자신을 알리고 어느 정도 관계가 성립돼 교제를 시작하게 되는 시기다. 제3단계는 두 사람 사이에 적합성과 공감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로, 적합성이란 두 사람이 어떤 일을 함께 할 때 서로 뜻이 잘 맞는다는 의미며 공감성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제4단계는 '바른짝' 관계로 진입하는 단계다.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는 단계며,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혼자이던 때와는 달리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이는 행복한 삶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한 단계일 뿐, 그 이후 행복의 조건은 될 수 없다. 결혼 후 척도가 바뀔 수 있으며,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의 자족감 또한 크지 않은 듯하다. 미국 덴버대 심리학과 스코트 스탠리 교수팀이 부부 218쌍을 대상으로 8년 동안 조사한 '결혼생활 만족도와 아이의 상관관계'에서 90%는 첫 아이 출생 후 결혼생활 만족도가 급속도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같은 현상은 대가족 해체 후 가정구도가 한 세대화하고 있는 우리의 가족문화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 세대에 비해 집안의 도움을 많이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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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과 정치 지면기사
축제의 계절 5월이 서서히 마감되고 있다. 선거철 탓인지 올해는 지역축제수가 예년에 비해 더 많은 것 같았다. '2009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와 같은 전국규모의 메가톤급 행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동네 골목시장의 먹거리축제에 이르기까지 가히 축제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비난에도 행사 주최측은 오매불망 구경꾼을 한명이라도 더 많이 끌어 모으는 데만 올인하는 인상이다. 선량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가듯 마냥 반갑기만 했다. 그런 탓인지 올 축제에서는 평소 발길이 뜸했던 지체 높은 어르신(?)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덕분에 행사장 주변 난장들이 흥청대는 등 오랜만에 세상사는 맛이 나는 듯했다.그러나 그뿐이다. 찰나의 흥분은 여운도 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만 남은 탓이다. 재래상권 상인들에겐 그나마 그림의 떡이다. 썰렁한 가게를 지키느라 그 좋은 구경(?) 한번 못했으니 말이다. 인천지역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65세 이상 상인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50만원도 못버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네 슈퍼의 90% 이상은 매출이 형편없이 줄어드는 실정이다.재래상권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형할인점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경쟁력에 기인하나 근본적인 이유는 대책없는 유통시장 개방이었다. 국내 유통시장이 외국계 자본에 점령당할 것을 우려한 정부는 1991년부터 유통업 현대화를 미끼로 대기업들의 유통업 진출을 독려했다. 비업무용 부동산규제 해제 및 특별여신공여 혜택도 제공했다. 전국 도심의 금싸라기 땅들이 재벌들 소유로 이전되면서 전국 도처에 수많은 백화점과 창고형 대형할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 와중에 편의점, 카테고리 킬러 등은 동내 골목까지 진출했다. '위대한 국민' 운운하던 김영삼 정부는 한술 더 떠 1996년에 매장면적, 점포수 등 대형마트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완전히 철폐했다.유통업 대형화의 논리는 간단했다. 즉 현대적 유통질서의 정착과 대형화를 통한 안정적 일자리의 대량 창출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했으며 대형마트가 1개 신설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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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단상(斷想) 지면기사
20여년 전 총각시절 교편을 잠시 잡았던 적이 있다. 남녀공학의 예술고등학교였기에 학생들이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의 날이면 곰인형, 양초, 손수건, 과자 등등 학생들이 앞다퉈 준비한 선물들이 책상 위에 가득 쌓였다. 여학생들이 특히 많았던 터라 더욱 그랬다. 당시 가르쳤던 제자들 가운데는 현재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자주 비치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스타'들과 가수도 많이 있다. 그들도 이제 불혹의 나이가 훨씬 넘었다.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한 제자가 올해도 어김없이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스승의 날이면 전화라도 해 주는 몇 안 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비록 스타는 아니었지만 연극배우로 활동했었고, 지금은 두 딸의 학부모로, 현모양처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 직장을 따라 객지생활도 10년 넘게 했단다. 부천에서 통학을 하던 그는 단골(?) 지각생이었다. 안양의 학교까지 일찍 오기 위해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요즘 우스개 말로 BMW(Bus, Metro, Walking)로 몇 번을 갈아타면서 통학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결석은 한 번도 없던 학생이었다. 반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라 치면 당황해 하는 새내기 교사인 나를 꽤나 안쓰럽게 여겼단다.중년의 엄마가 된 '아줌마 제자'가 아직도 내게 잊지 않고 꽃을 보내 주는 것을 보면 고마움에 앞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별로 잘해 준 기억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투병 중인 당시 은사에게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뵙고 위로해 준다는 얘기도 들었다. 살림하는 주부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수많은 스승이 계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분들에게 꽃 한 송이 보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자주 만나는 은사들은 여러 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께는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 '아줌마 제자'의 정성을 보면서 해마다 나름 반성도 해 본다. 나를 일깨워 주는 멘토의 역할 때문이랄까? 그러나 매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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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체제개편, 제대로 논의하자 지면기사
국회가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방행정구역개편을 추진하려고 한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은 지방자치행정구역과 지방자치행정계층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방행정체제는 수직적인 측면에서 국가 전체의 근간을 이룬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은 단순히 지방행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근간을 개편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중앙정부의 업무수행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지방행정체제개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한번 잘못되면 다시 복원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진지한 담론의 형성이 필요하다.정치권에서는 2005년부터 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40~70개의 통합광역시로 재편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안은 정치권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도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없다. 정치권에서 구체적인 검증자료나 외국의 사례를 참조함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의 지방행정체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데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성립되어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는 마치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병의 근원에 대해서는 진찰이 완전히 다른 것과 같다. 진찰이 틀리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더구나 지방행정체제와 같이 중대한 국가의 근간을 논의함에 있어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공감대의 형성도 없이 수술부터 하고 보자는 정치권의 접근방식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이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흐름과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 오늘날 전세계는 국경을 넘는 지역간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주민과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경쟁이다. 이에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역량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에 지역의 규모를 500만 내지 1천500만명 수준에서 재편하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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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행하효(上行下效) 지면기사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이 어느 날 문무백관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주흥이 도도해진 제경공은 즉석에서 활시위를 당겼으나 그가 쏜 화살은 모두 과녁을 빗나갔다. 그럼에도 좌중의 신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손뼉을 치고는 "최고의 활솜씨"라며 칭송해 댔다. 신하들의 도를 넘는 아부에 내심 불쾌해 하던 그에게 현장(弦章)이란 신하가 찾아와서 아첨하는 신하들을 경계할 것을 당부했다. 순간 제경공은 "현장아, 안영이 죽은 뒤 다시는 나의 과오를 지적하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며 현장에게 생선 50수레를 포상했다. 그러나 현장은 "제가 이 선물을 받으면 안영의 교훈을 그르침은 물론 저 자신 또한 아첨하는 신하들과 진배없게 될 것입니다"라며 선물을 사절했다. '상행하효(上行下效)', 즉 윗사람이 행하면 아래 사람이 본받는다는 메시지다.우리나라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 들어 주식시장이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이려니와 지난 시절 단기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한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세계금융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의 고위책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외환위기 극복경험을 전수받고 돌아갔다는 소문도 들린다.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자존심까지 접고 금융후진국에서 구걸(?)하듯 한 수 배워 갔을까.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어깨가 절로 으쓱거리나 10년 전의 환란만 떠올리면 마음이 편치 못한데 그 중 하나가 부실기업인들의 과도할 정도의 모럴 해저드였다. 당시 다수의 부실 기업인들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못 잡는 건지 안 잡는 건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아직도 해외도피 중이며 절대다수의 부도덕한 부실 기업인들은 재산을 고의로 빼돌리고 알거지 행세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한마디로 '배째라' 식이었다. 덕분에 환란극복비용 200조원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지구촌시대에 편승하기 위한 대가 치고는 너무나 엄청나고 혹독했다.작금 정부의 경제난 극복 해법도 10년 전의 외환위기 해법과 흡사하다. 은행을 제외하면 구제대상이 종래 재벌에서 중소기업과 서민가계로 바뀐 것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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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보다 중요한 것 지면기사
'부인이 13억원을 받는 동안 대통령인 남편은 몰랐다?' '박연차게이트엔 누가누가 거론된다더라' '장자연리스트는 누구라더라'…. 요즘 신문과 방송의 1면이나 사회면을 장식하는 머리기사들이다. 하룻밤만 지새고 나면 새로운 인물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나오고 국민들은 귀를 솔깃한다. 물론 언론은 사회의 이슈를 추적보도하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사명이다.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 또한 언론의 기능이기에 그렇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이 검찰조사를 받고,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느라 기(?)를 쓰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특히나 재임시절 '청탁을 하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던 사람이 부인이 됐든, 가족이 됐든 측근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니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끼다 못해 분노마저 표출하고 있다. 뉴스의 진원지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니 가히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고 있다. 그의 돈을 받았다는 리스트에는 정치권의 실세들이 여럿 거론된다. 그를 지지하고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정치인들마저 얼굴을 들 수가 없어 외부활동을 삼간 채 숨을 죽이고 있다.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부산 경남 그리고 서울까지 휘젓고 다닌 박연차 회장이고 보면 몇 푼이라도 받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 또 그리고 누구의 이름을 불어댈지 그의 입만 쳐다보는 불안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검은 돈이라는 것은 받고 나면 영원히 마음 한 구석에 가시처럼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돈을 준 사람에게도 평생 마음의 빚을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번 만큼은 검찰이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누구든지 '패가망신'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언론사 대표가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가 돌자 해당 언론사는 실명을 거론한 국회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떠도는 리스트에는 방송계 유력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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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디에 있든지 지면기사
국민들이나 언론은 정치인에 대한 피로감을 말한다. 하지만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특권 때문인지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많다. 대학교수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교수 재직 중에 국회의원을 했던 분을 만났다. 지역에서 자주 뵙는 국회의원과 달리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는가. 전문성과 직역 등의 대표성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국회활동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그분은 4년간 '정치는 하지 않고, 자신의 전공인 과학정책'을 위해 일했다고 했다. 그러나 당론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정치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는 국회의원은 딱 한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시작했다고 했다. 비례대표를 두 번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 정치를 더 할 생각이 없었던가를 물었다. 국회의원직을 떠난 후 히말라야 트래킹을 두 번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높은 산에 올라갈수록 '정상에는 짧게 있어야만 살아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는 말로 대신했다.그의 시각에서 보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같은 산에만 있었다. 개교 50주년과 로스쿨 유치라는 특별한 상황도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도 대학에도 나름대로 정책과 정치적 성격이 혼재된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성취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추억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러한 고단한 일상에서 그나마 내 삶의 축을 지탱해준 기둥 가운데 하나가 '경인일보'다. 15년전 후배 기자와의 약속대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뢰에 답하자고 노력했다.덕분에 매일 많은 신문과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 이웃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었다. 특히 사설을 쓰는 전날은 과음이나 불필요한 모임 참석을 자제했다. 그것이 15년간 나름대로 내 산위에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러나 770주 동안 항상 편안한 위치에서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다른 원고요청이나 고정 칼럼을 마다했던 이유다. 나는 지역을 위해 일하는 신문에 일조를 하는 것이 바로 시민들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자 했으나 상처받은 분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 또한 많다.그러나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