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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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아고라] 한자(漢字) 비틀기 지면기사
MZ세대들 '연목구어'의'연목'을 '연못'으로 착각하기도'대기만성'도 '끈질기게 대기하면늦더라도 성공한다'로 봐야하나말글도 시대 뒤처지면 사라지는 법한 친구가 탄식했다. "요즘 한글세대 너무해. 한자를 너무 몰라. 자기 이름도 못쓰는 정도야." 과장이 심하다고 대꾸해 주었다. 설마 그 정도이겠느냐고 말이다. 한데 들려준 이야기에 웃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 결혼식을 마치고 방명록을 펼쳤다. 부부가 하객 명단을 정리하면서 조카가 담당한 축의금 내역서를 훑었다. 그런데 성명란에 '祝結婚'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뭐지. 혹시 봉투에 이름을 깜박 잊고 쓰지 않은 하객인가."일련번호로 봉투를 찾았다. 봉투에는 직장명과 이름 일곱자가 한자로 제대로 적혀 있었다. 한자로 쓰여진 직장명과 이름이 거의 붙어 쓰여있다 보니 '축결혼'을 하객 이름으로 착각했다는 거다. 나중에 당사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그 한자를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축의금 봉투에 이름을 한자로 쓰면 자칫 혼주가 낭패할 수도 있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이런 한자 문해력을 한탄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한글 전용세대에게 한자는 어려운 중국어일 수 있지 않나. 모바일시대 디지털 언어로서 한글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겠다.그러다 보니 MZ세대의 '한자 비틀기'가 심심치 않다.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대표적이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말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고 할 때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어떤 이가 "과거를 재단하는 법 기술자들로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나 칼잡이를 앞세워 덕치(德治)를 하겠다는 것은 비유하면 연목구어가 아닌가"하고 짚었다. 이에 한 MZ세대가 대꾸했다. "그러게요. 큰 물고기는 강이나 바다에 살고 연못에는 개구리나 송사리밖에 없잖아요." 젊은이는 '연목'을 '연못'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한데 오히려 그럴듯한 비유가 아닌가. 사실 '연목구어'는 맹자(孟子)의 '양혜왕장구상편'에 나오는 말로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듯이 왕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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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기회소득은 김동연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지면기사
'재정부담' 모든 이에게 지급 불가능노동방식 변화올지 학자들 부정적성과 논하기 이르지만 경기도 정책더 많은 도민들 체감하도록 알리고지금보다 더 과감히 재원 투자해야'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민선8기를 상징하는 핵심 개념은 뭐라 해도 '기회'일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반복적으로 국민이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누리게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민선8기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기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사실 기회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쓰면서도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것이 지자체의 도정 방향과 정책으로 사용될 때는 더욱더 모호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막연하게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기회는 나름대로 연원이 오래되고 또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왔다.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 기회가 '기회균등(평등)'이라는 개념으로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전문(前文)에 나오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구절은 제헌헌법(1948년)에도 그대로 나오는데, 이러한 '기회균등'의 정신은 3·1운동으로 탄생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제헌의회 의원들이 임시정부의 핵심가치로 생각하고 반영한 것이다.기회를 정부나 정당의 강령에서 강조한 대표적인 정치세력이 미국과 영국에서 '제3의 길'을 제창한 사람들이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신노동당'을 천명하면서 기회, 책임, 공동체, 민주주의를 제3의 길의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였고, 3번째 임기에 도전한 2005년에는 노동당 강령에 아예 '기회 사회'를 지향하겠다고 명시하기까지 했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도 기회, 책임, 공동체의 가치에 기초한 시민-정부 관계를 요청하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 선언(1990년)을 지도철학으로 삼아서 집권했다.결국 기회를 강조한 제3의 길의 특징은 사회정의와 평등 같은 진보가치를 달성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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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 더는 총을 겨누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지면기사
연극 '당연한 바깥'은 분단에갇힌채 살아가는 우리들 이야기탈북 브로커가 중심 인물이데올로기로 또다른 세계상상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아픔연극 '당연한 바깥'(이양구 작, 송정안 연출, 7월20일~8월 4일, 두산아트센터 Space111)은 분단에 갇힌 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분단으로 인해 잃어버린 바깥에 관한 이야기이자 상실한 상상력에 관한 이야기이다.탈북 브로커가 중심인물이다. 그는 '막힌 것처럼 보이는 곳에 난 길'을 안내한다. 끊긴 길을 잇고 막힌 길을 돌아서 안과 밖을 또한 밖과 안을 연결하는 사람이다. 통행료를 받기는 하지만 사람을 물건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반나절이면 건너갈 길을 평생이 걸려도 가지 못하는' 그 길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그는 분단으로 막혀버린 곳에 길을 내는 사람에 가깝다. '저쪽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나를 잡아주려는 손길인지, 아니면 총을 겨눈 손인지. 나는 알 수가 없으니까. 그래도 강은 건너야 하니까, 앞으로 걸어가면서' 상실한 바깥과 남겨진 안을 이어가는 사람이다.연극 '당연한 바깥'에는 연결하고 이어주는 실 모티프 외에도 진주와 새 모티프가 분단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진주조개는 '이물질이 안으로 들어오면 그걸 밖으로 밀어낼 수 없을 때 겹겹이 감싸'며, '내보낼 수 없는 이물질을 안에서 가둬' 진주를 만든다. 진주는 분단 시대가 겹겹이 쌓은 결정체인 셈이다. "풀어주라고 파는 거예요." "생명을 살리는 걸 파는 거죠." "누군가는 가두고 누군가는 풀어주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죠." 브로커가 묻는다. "그 '함께'에 새들도 포함되는 건가요?" 당연한 바깥을 상실한 줄도 모른 채 궁핍한 상상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분단이라는 새장에 갇혀 있는 셈이다.'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시인 박봉우가 1956년에 노래한 '휴전선'의 한 부분이다. 그 꽃은 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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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홍명보와 한동훈 지면기사
'홍감독 논란'은 축구협회 리더십의 실패양궁 대비 '긍정의 정의선 부정의 정몽규'국민의힘 전당대회 '혁신 메시지'도 분명韓 대표의 '국민 눈높이' 공공선은 뭘까?좋은 성적을 내면 '홍명보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용서를 받는 방법은 대표팀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것뿐"이라며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자신에겐 "대한민국 축구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본 감독 중 최악"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피노키홍'으로 전락했다. '홍명보의 부정출발'이라고 한다. 면접 없는 '부탁'으로 선임되었다고도 한다. '동문 짬짜미' 의혹으로까지 이어진다.감독선임을 주관하는 전력강화위원 중 한 사람은 "홍 감독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몰랐다"고 한다. 박지성은 "진실은 내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 하고 이영표는 "축구인은 행정에서 사라져야한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게 실력"이라고 꼬집는다. 홍명보 기자회견 이후에도 '감독사퇴가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팀 리더십의 신뢰와 권위를 이미 상실했다는 게 근거다."오해일뿐 특혜는 없다"는 게 축구협회의 입장이지만 '홍명보 논란'은 자초한 결과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들은 "외국인 감독을 후보에 두고 협상 중이다", 나아가 "외국인 감독을 중심으로 후보군을 한 자릿수로 압축했다"고 말해왔다. 논란의 핵심은 감독선임 원칙과 절차로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붕괴다. 리더십 선임과정의 정당성 투명성 공정성 모두 문제가 되었다. 과정과 결과 모두의 실패는 결국 한국축구의 퇴보로 나타난다."양궁협회를 보고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1988년부터 올림픽 10연패의 여자양궁이다. "올림픽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경쟁력 중심의 선수선발이 세계 정상의 출발점이다. 선수 선발은 물론 운영과 관련하여 뒷말이 없는 이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은 "협회가 선수명단을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히딩크 감독이 '인맥축구'와 '위계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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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교육과 돌봄은 본래 하나 지면기사
유보통합은 이제 선택 아닌 필수불필요한 갈등은 시간만 지체담당할 교원의 인식 전환이 중요거시적 관점에서 원만하게 이뤄져우리나라 영유아교육 새 전기 되길올해 초만 하더라도 '반신반의하던' 유보통합이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아니나다를까. 지난 6월27일 그간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던 보육 업무가 교육부로 공식 이관되며 일선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벌써 이에 대한 대비로 분주하다. 어떻게 보면 유보통합이 보육에 교육이 더해지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보육현장에선 이미 이런 통합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본다. 사실 보육과 교육을 서로 떼어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다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에 문제이지 보육과 교육은 보조를 맞춰 가야 한다. 진정으로 문제가 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유보통합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점일지 모른다.법 제도적인 관점에서 보면, 현행 영유아보육법과 유아교육법이 하나로 합쳐져야 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10년 전만 해도 이는 큰 진통이 따를 것으로 대다수가 내다봤지만, 불과 몇 년 새 그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게 사실이다.막연히 우려만 하던 저출생 현상은 이제 보육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고 어린이집 운영자들은 당장 문을 닫아야할지 말아야 할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물론 유치원도 별반 다른 상황은 아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이권을 두고 다툼을 벌일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생존을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산하는 추세다.돌이켜 보면, 어린이집이 지금처럼 급증하게 된 것도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정부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일터로 향하는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볼 기관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어린이집을 육성했다. 그러나 많은 예측기관이 당황할 정도로 영유아 수가 급감하자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상황을 맞게 됐다.새로운 길이란 이 기회에 영유아 양육의 개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저출생 시대 양육은 오롯이 부모의 몫만이 아니라고 본다. 지속성장의 차원에서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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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김수영 시인과 '푸른 하늘을' 지면기사
학병 징집 피해 귀국 연극 무대 서6·25 비극적 체험 '레드콤플렉스''푸른…' 자유·혁명 대한 직설적 詩어둠의 요인은 '정체성 혼란' 투사해방~1960년대말 전환기 삶 '詩作'김수영은 해방 직후부터 1960년대 말까지 한국사회의 전환기적 삶을 경험하면서 치열한 시작 활동을 펼쳤던 시인이다. 김수영의 시세계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라는 시각으로 양분할 수 없는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독특한 자신의 시세계를 열어갔던 인물이다.김수영은 1921년 11월27일 서울 종로구 종로 2가 18번지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김희종은 정삼품통정대부중추의관의 벼슬을 지냈다. 조부 김희종은 경기도 김포평야 일대와 강원도 홍천 등지에서 500여 석의 추수를 하는 지주였다. 형제로는 아우 수성· 수강·수경·수환, 여동생 수명·수연·송자 등이 있다. 같은해 종로 6가 116번지로 이사했으며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1924년 4세에 조양유치원에 들어갔다. 1926년 6세에 계명서당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했다. 1928년 8세에 어의동 공립보통학교(지금의 효제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934년 14세에 폐렴과 뇌막염으로 1년여를 요양했다. 1938년 선린상고 야간부 3년을 졸업하고 주간부 2학년으로 진학했다. 1941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성북고등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곧 포기하고 미지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다녔다. 1943년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자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한 김수영은 연극 무대에 섰다. 1944년 봄에 만주에서 귀국한 어머니를 따라 지린성으로 가서 임헌태 등의 청년들과 번역극 '춘수와 같이'를 무대에 올렸다.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해방이 되자 가족들과 개천 평양을 거쳐 서울로 돌아와 충무로 4가에 집을 마련했다. 1946년 시 '묘정의 노래'를 썼다. 1948년 박인환, 임호권, 김병욱, 양병석, 김경린 등과 동인 '신시론'을 결성했다. 1949년 동인 신시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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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talk)!세상] 양주 온릉(溫陵)에 7일의 왕비가 숨어 있다 지면기사
왕비 된후 7일만에 경복궁서본가로 쫓겨난 비운의 신씨중종 그리며 매일 인왕산 올라71세에 폐비로 왕릉 아닌 양주 장흥 일영리 선산에 묻혀 7년을 함께 살고, 왕비가 된 후 7일 만에 경복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가 있다. 13세에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과 혼인하고, 20세 중종반정 때 그녀는 하루아침에 왕비가 되었다. 조선 역사상 최초의 반정이다. 기쁨도 잠시 좌의정이었던 아버지 신수근은 딸보다 동생인 왕비와 연산군을 더 걱정하였다. 아니 연산군의 왕세자를 믿었기에 반정 세력 박원종과 성희안의 눈 밖에 났다. 잘 나가던 신수근 3형제는 모두 같은 날 죽임을 당했다. 왕으로 즉위한 진성대군은 중종이 되었고, 부부인 신씨는 중전이 되었다.하지만 불안한 반정공신들의 끊임없는 상소로 7일 만에 인왕산 기슭 본가로 쫓겨났다. 그 후 71세 생을 마감할 때까지 51년 홀로 살았다. 7일간 왕비의 슬픈 이야기는 도성 안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도성 밖 양주 장흥에서도 전해온다. 어린 나이에 혼인한 신씨는 현명하고 지혜로웠다. 연산군 폭정에도 12살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 진성대군은 궁 밖에서 부인과 조용히 살았다. 좌의정 신수근의 동생이자 고모인 왕비 신씨의 도움으로 인왕산 기슭 사직골에서 쥐 죽은듯 7년을 보냈다. 부부인 신씨는 반정군이 몰려온 역사적 순간에도 차분하게 군사의 말머리를 살피며 기다렸다. 그러나 1506년 9월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다. 중전 신씨는 왕비에서 폐서인으로 경복궁에서 궁 밖 본가로 쫓겨났다. 폐비가 된 신씨는 사랑하는 남편 중종을 그리며 매일같이 인왕산 바위에 올랐다.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따라 거니는 중종을 향해 붉은 치마로 아침 문안 인사하였다. 하지만 공신들 등쌀에 힘없는 임금은 궁 밖 인왕산을 바라볼뿐 방법이 없었다. 조강지처를 버려야 살 수 있었다. 왕이지만 살아남기 위해 왕비인 신씨를 버렸다. 왕과 왕비의 생이별이다. 슬픔에 젖은 폐비 신씨는 삼각산 넘어 아버지 신수근의 묘가 있는 양주로 갔다. 한양과 접경이고 이름처럼 '오래도록 길이 흥하다'는 장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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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침밥 먹고 대한민국 쌀 산업을 구합시다 지면기사
식습관 서구화 작년 1인당 쌀소비 역대 최소재고 증가로 가격 하락 농가 생존 위협받아'한국인은 밥심' 한식의 기본이자 삶의 근원쌀산업, 국민단합 위대한 힘이 필요할 때다어머니가 새벽잠을 설치며 일어나 가족들을 위해 따끈한 아침밥을 준비하고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 하루 잘 보내라며 담소를 나누던 시절은 점점 추억이 되어가는 것 같다.요즘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침식사 결식률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22년 기준 초·중·고등학생(10~18세)은 33.1%, 대학생(19~29세)은 59.2%이며 전체로는 34%에 이른다고 한다.아침식사를 거를 경우 에너지 부족으로 뇌가 잘 활성화되지 않아 사고력, 집중력, 인지능력 등이 떨어지고 다양한 건강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연구결과로 밝혀졌다.그럼에도 '2023년 식품소비행태조사'를 보면 시간이 없어서 66.1%(복수응답), 먹고 싶지 않아서 57.8%, 다이어트 7.2% 등의 이유로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또한 그나마 아침식사를 먹는 사람들도 식단이 밥이나 죽, 누룽지 등 쌀이 아닌 빵 21.1%, 시리얼 14.5%, 우유 7.2% 등 식습관이 서구화로 변화하며,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주식인 쌀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56.4㎏으로 30년 전인 1993년 122.1㎏ 대비 절반으로 줄어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62년 이래 역대 최소 수준을 기록했다.이에 따른 재고 증가로 가격은 하락해 쌀 재배 농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 최근 정부는 올해 식량 원조용 쌀 10만t과 민간 재고 5만t 등 총 15만t 매입을 발표했고, 정치권은 1천원의 아침밥 지원 확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쌀값 하락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다행이라 생각한다.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다. 이제 우리 민간이 적극적으로 나서 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할 때인 것이다.농협은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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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 지면기사
움직이는 건 모두 로봇인 세상승패, 파이 혁신아래 분배하느냐규제 아래 분배하느냐에 달려AI 돌풍, 시장 확대 순풍일지혁신 맞서다 밀려 역풍될지 기로"변호사가 1년 걸릴 일을 1분이면 해결한다." 올 1월 프랑스 기업인 이삼 레기(Issam Reghi)가 개발한 이아보카(IAVOCAT) 앱이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 출시됐을 당시의 홍보 문구다. 법률 조언 비용은 더 파격적이다. "변호사 비용이 1천유로라면, 나는 69유로밖에 필요치 않다." 비(非)변호사 조직인 리걸테크 기업의 등장은 체온 36.5도 인간에 의한 법률 업무의 종언을 고하는 듯하다."직장폭력을 당하고 있다. 상사는 지능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고소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직장엔 나를 지원해줄 사람이나 시스템도 없다. 고소장 샘플 하나 만들어줘." 이런 요청에 오픈AI의 챗GPT(GPT-4o)는 '직장 내 괴롭힘 및 폭력 행위에 대한 고소'라는 제목의 고소장 샘플을 뚝딱 만들어준다. 고소 이유를 비롯해 요구사항까지 적혀있다. '피고소인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법적 처벌을 요구합니다. (중략) 이상과 같은 이유로 피고소인 ×××를 고소하오니, 귀 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법적 조치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AI는 나홀로 소송 절차를 지원해주는 재판 도우미가 됐다.보수적인 법률 분야에서도 AI의 영향은 짙다. 방대한 양의 법조문과 판례·사건기록·서류 등을 읽고 기억하고 추론하는 건 AI가 가장 잘하는 일. 조만간 변호사·판사 같은 법률 전문가가 맡아오던 업무 중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하면서 일하는 방식이 송두리째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야구로 치면 AI 기술은 이제 1회 초다. PwC에 따르면, AI 노출이 높은 부문에서 노동생산성은 약 4.8배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전체 일자리의 최대 4분의1이 AI 기반의 자동화로 대체된단다. 특히 법률 업무의 44%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며, AI 발전이 법조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봤다. 비즈니스리서치 인사이트는 전 세계 리걸테크 시장(법률+AI 서비스)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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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상의 중심에서 이천을 외치다 (Crying out Icheon in the center of the world) 지면기사
이천통신사, 유럽 4개 도시서문화예술도시 위대함 알려작지만 거인같은 '이천' 대견시장·시민들이 만든 소중한 열매가을 국제음악제도 기대해도 좋아최근 파리에서 치러진 올림픽 개막식 퍼포먼스는 프랑스 문화와 예술이 담겨져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사랑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전신 근육강직 인간증후군을 앓고 있는 셀린 디온이 부른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는 모두를 전율케 했다. 그것도 파리의 상징 에펠탑 중턱에서 말이다. 품격 있는 문화와 예술을 갖춘 도시는 곧 그 땅의 수준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가늠케 한다.프랑스에 파리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도 예술과 문화를 담을 줄 아는 도시가 있다. 바로 'A.R.T 이천'이다. 도시 슬로건 A. R. T 이천, 아트 이천 안에는 Active, Rich, Top이라는 활력 있고 풍요로운 최고의 도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이 내포된 의미는 여전히 아트라는 즉, 예술 안에 이 모든 것이 깃들어 있다. 이토록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슬로건을 만든 공무원이 누군지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예술과 문화의 가치를 아는 분이다.유럽에서 15년을 살며 25개국의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도시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문화와 예술에 대한 경의와 존중이었다. 이천문화재단의 문지기로서 이천에 와보니 이 땅만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예술의 명맥을 이어가고자 하는 열정적인 시민들과 각 분야의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지난해부터 이천문화재단 공연기획팀에서 기획한 하우스콘서트 '이응광의 음악공방'은 무대 위 방석을 깔고 앉아 관객석을 바라보며 관람하는 하우스콘서트 형식의 공연이다. 매달 클래식, 국악, 재즈, 탱고,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는데 회차마다 조기 매진이다.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아티스트의 예술혼 앞에 경의를 표현할 줄 아는 진정 수준 높은 관객들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이천의 청중을 경험한 아티스트는 다시 이천을 오고 싶어